제 5 장 진을 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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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운이 만들어 낸 돌개바람은 이것으로 잦아들지는 않았다.
《서울신문》이 다시 노불의 기자회견내용을 전하자 김구의 당인 한독당이 쑤신 벌둥지가 되여 덤벼든것이다. 일은 한독당 중진인물들이 김구에게로 신문 한부씩 걷어쥐고 달려간것으로부터 시작되였다.
경교장에서는 부랴부랴 이 당중앙정치위원회가 소집되여 결정이 채택되였다.
《첫째, 무책임한 정치적언사로 정계의 혼란을 자초시킨 브라운을 소환할것. 둘째, 남북총선거를 즉각 실시하며 통일정부를 수립할것. 셋째, 남북조선에 있는 현 무장세력들을 조속히 해산, 제거할것.》
이 소식이 알려지자 하지는 안절부절하였다.
가뜩이나 죽가마처럼 끓고있는 소란스런 서울정계를 협상의 명수라 하던 브라운이 설치고 돌아가더니 설상가상으로 만들어버린것이다.
하지는 브라운을 불러다가 앞상끝에 멀찌감치 세워놓고 한시간이나 호통을 쳤다. 그러지 않아도 까닭없이 첫눈에 곱게 보이지 않던 인물이였는데 그의 기를 대번에 문질러버릴 기회가 찾아든것이다. 부하들이란 한번씩 되게 다불려 놓아야 상관모시는 법을 배운다는것이 하지의 오랜 근무생활의 지론이다. 그는 브라운을 붙여주면서 《정치력이 약한 너, 하지에게 큰 혜택을 주노라》는 식이던 맥아더나 마샬의 따귀를 후려치는 통쾌한 심정으로 닦아세웠다.
《도대체 당신이 정치는 알고 덤비는 사람인가.
조선사람이 바지저고리가 아니라고, 쪽발이 같은 족속이 아니라고 강조하기까지 했는데 그렇게 선불질을 하면 어쩔 셈이요? 이제는 당신이 그들의 손끝에서 놀아대게 됐으니 꼴 좋게 되였소. 당신이 저지른 불이니 당신 수완껏 꺼버리시오.》
브라운은 그의 채찍같은 욕설을 들으며 강심을 벼리고있었다.
(중장, 이건 사실상 당신이 지른 불이다. 좋다. 이 브라운이 그 불을 끄고야말테다.)
브라운은 그 실책에서 실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 나라의 정치계에서 차지하는 자기의 무게가 하루새에 공인된것이 다행스러웠다.
…정치가란 무엇보다도 사회일각에서 권위와 발언권을 인정받는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어떤 방법과 결과로 이루어지던지 일단 성사가 되면 어제날의 실책도 뒤날의 밝은 영상에 그늘을 던져주지는 못한다.… 브라운은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였다.
브라운은 그날 저녁에 자기 부관을 김구집으로 보냈다. 남조선정치가에 대한 처음으로 되는 초대이니 사양을 말아달라고 정중히 전하게 하였다.
김구는 자기의 비서인 안우생만 데리고 부관이 가지고온 자동차를 타고갔다.
안우생은 안지생의 손우의 형이고 안중근의 조카였다. 그들은 김구의 맏며느리인 안미생과 사촌지간으로서 김구가 가장 믿는 측근인물들이였다. 안우생은 오래전에 영국의 명문대학인 옥스포트대학을 졸업한 어학자로서 벌써 상해시절부터 정시명의 지도밑에 림정계의 반동화를 견제하기 위해 노력해온 인물이기도 했다.
브라운은 그들을 저녁식탁으로 안내하였다.
식탁에는 토장국과 김치가 특별히 올라있었다. 김구가 그것을 보고 씩-하고 웃자 그의 눈치를 따르던 브라운도 소리내여 웃었다.
식사가 끝날 때까지는 외교관답게 례의바르게 김구를 다루던 브라운이 일단 응접실로 자리를 옮기자 거친 반응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미국식외교에서 기본으로 되는 강, 온을 적절하게 타산한 브라운의 의도적인 공세였다.
《김구선생, 난 당신이 신의를 지키는 고명한 정치인이라고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상봉이 며칠전이였는데 그렇게 쉽게 합의를 깰수가 있습니까?》
브라운은 응접탁우에 있는 신문을 흔들며 소리를 높였다. 그 신문에는 《한독당》의 결정이 소개되여있었다.
《신의를 지키지 않는건 당신들 미군정측이요. 내가 구태여 노불의 기자회견내용을 꺼내야 되겠소?
그래 당신은 또 이 자리에서 노불의 립장이 미국의 립장이 아니라고 둘러메칠 생각이요?… 그리고 우리사이에는 합의가 없었소.》
김구는 심술스럽게 브라운의 거친 반응을 일축하여버리였다.
브라운은 김구의 역공격에 대항할만한 여지가 없었다. 제가 쒀놓은 죽에 코를 박게 된것이다.
그러나 브라운은 이런 궁한 처지에서도 자기를 지켜낼줄 아는 외교관이였다. 말문이 막히자 얼른 화제를 돌렸다.
《내가 서울에 와있는것이 미국의 리익보다도 조선을 위한것임을 당신은 잘 알고계시지 않습니까?》
브라운은 얼굴에 웃음을 담으며 곧 유순한 눈길로 김구를 지켜보았다.
《글쎄… 리해는 될듯 한데…》
김구는 브라운의 엉뚱한 이야기에 입이 쓰거웠으나 웃는 낯에 침 뱉을수 없어 뒤말을 중둥무이하였다. 생각같아서는 회담이고 군정이고 다 걷어안고 어서바삐 대양을 건너가라고 소리라도 지르고싶다.
《그런데 당신들의 결정에는 미군의 조선주둔에 대한 로골적인 적의가 엿보이고있습니다.》
《뭘 보고 그렇게 말하시오?》
김구는 딴전을 부리는 브라운의 이야기에 끝내 말려들고말았다.
《당신들은 남북에 있는 무장집단을 조속히 해산, 제거하라고 했는데 여기에 미군도 속하지 않는가요?》
브라운이 슬쩍 다시 역습을 가해오자 김구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렸다.
(네놈도 양놈이기는 매한가지로다.)
첫 대면때 브라운은 하지나 아놀드와썩 차이가 있다고 좋게 보아왔는데 이놈도 그놈이다.
김구도 이제는 미국놈들을 다루는 방법을 안다.
요사스런 놈은 우직하게 다스리고 우직한 놈은 례의로 다스려야 하는데 미국놈과는 언제나 우직하게 대응하는것이 제일가는 비법인것 같다.
《당신은 날 불러 대접을 잘해주더니 그걸 따지자고 했구려. 그건 보는이마다 생각하기 나름이요. 헌데 당신들은 페일언하고 감히 귀맛좋은 요설로 이 나라 정객들을 우롱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사죄부터 해야 될것이 아닌가.
… 난 더 할 말이 없고 밤도 깊어가니 이만 실례하겠소.》
김구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안우생이 브라운의 속통을 더 헤쳐보고싶어 만류했으나 김구는 한사코 뿌리쳤다.
브라운은 앞뒤로 곤경에 빠져들게 되였다. 김구의 환심을 사보고 그의 정치력을 가지고 리승만이까지 끌어당기려고 한번 슬쩍 내비친 말이 이렇게 정계를 휩쓸고 현지 주민들의 여론을 흔들어놓을줄은 상상도 못했다. 확실히 이 나라 국민은 개명하고 정치기상도가 높은 민족이다.
펜타곤의 인정을 받아온 자기의 몸값이 정복지에서 눅거리로 흥정되고있다고 인정하지 않을수 없었다. 다소간의 실적으로 첫 발자국을 값지게 장식하자고했는데 하지조차도 실망하게 만들고말았다. 무엇보다도 그게 명치에 걸려 내려가지 않았다.
그래서 브라운은 또다시 정치인들에 대한 행각을 하자고 했던 당초의 계획을 거두고 하지에게로 찾아갔다. 자기의 경솔한 발언과 《정치적미숙성》에 대해 사죄부터 해야겠다고 생각했던것이다.
그러나 집무실에서 그를 맞아준 하지는 김구와의 2차 상면을 이야기하며 면목이 없다는 말을 꺼내 놓자 손을 홱 내저었다.
《됐소, 됐소. 뭘!… 그쯤한 망신꼴은 이 서울에서는 소부연이요. 교훈으로 삼으시오. 내가 래일부터 적당히 만나주겠소.》
《예, 정말 면목이…》
《아, 아, 됐소. 우린 참회나 할 시간이 없소. 자, 앉으시오. 여기 국무성에서 또 당신한테 전보가 날아왔소.》
하지가 한장의 전보문을 들고 휘두르는 바람에 브라운은 다행으로 거북살스러운 처지에서 벗어났다.
하지는 자기가 큰 소리로 읽었다. 자기의 명령도 바로 이것이라고 강조하는 의미였다.
《들으시오. 극비. 미쏘협상과 관련한 현지인들의 대중적소요가 준비된다는 정보에 류의하면서 될수록 속한 시일안으로 제2차 미쏘협상을 대조선정책방향에 따라 처리할 방안을 작성하여 보고할것. 마샬》
다음날 하지는 브라운이 쑤셔놓은 벌둥지를 더는 소란스럽지 않도록 하느라고 하루종일 차를 타고 서울시내를 싸다니였다.
그는 정책보좌팀에서 작성한 대안에 따라 개개 대상들에게 적당한 담보를 주었다. 김구에게는 자기 명의로 된 노불의 발언에 너무 신경쓸건 없다, 아직 미국은 그 누구에 대해서도 자기의 립장을 정리해 놓은게 없다고 어벌쩡하게 위로해주었다.
리승만에게는 《기다리라. 여유를 가지고 기다리라.》하고 간단히 말해주고 악수를 하고 이내 돌아섰다. 김규식에게는 앞으로 있을 유엔총회에 대표로 갈 준비를 하라고 전하면서 뉴욕에 가면 워싱톤에 들려오라고 은근한 추파를 던져주었다. 려운형도 만났다. 당신들 중도세력의 립장에서 우리는 깊은 감명을 받고있다, 좌우익을 조정하는 이 나라 정치권의 구심점은 중도세력만이 차지할수 있다고 인정한다고 해두었다.
하지는 련쇄방문이 성공적이라고 믿었다. 당분간 그에게는 시간이 필요하였다. 정치의 각 세력들을 필요할 때까지 잠재워두는것이 현명한 지책이라고 정책보좌관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았던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