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 장  진을 꾸리다

 

1

조선호텔에서 영국의 실업가들을 만나고 집으로 돌아온 하지는 방금 부관이 가져온 브라운의 사업보고서를 읽기 시작하였다.

서울에 들어온 브라운은 얼마전까지 실태료해라는 구실을 붙여가지고 강원도와 경기도에 널려있는 6사단의 관하 대대들을 싸다니기만 하였다. 38선에까지 나가 논밭에 달구지로 거름을 내는 북쪽농민들이며 줄을 지어 노래하며 학교에 가는 학생들을 흥미 있게 보았다고 한다.

하지는 그가 서울에 들어오지 않고 그냥 주위에서 설치고 돌아가자 골이 났다.

(이자가 맥아더의 훈계에 놀라 골치 쑤시는 군정치닥거리에서 아예 몸을 사릴 작정인가?)

마침 미국무성에서 지시문이 떨어졌다. 제2차 미쏘협상에 대한 방안을 준비하라는 지령이였다.

그래서 하지는 즉시 그를 불러들이였다. 그에게 국무성의 지시문부터 보여주었다.

《이제부터 일체 군무에서 손을 떼고 준비작업에 달라붙으시오. 국무성은 미쏘협상재개를 원하지 않소. 그런만큼 현지 정객들과의 사업부터 해야겠소. 서둘러야 하오. 우리에겐 어정거릴 시간이 없소.》

하지는 오금을 박았다.

하지는 이렇게 제꺽 정치인들과의 치닥거리를 그에게 밀어붙인것이다.

하지에게 보고된 브라운의 동향자료에 의하면 열흘동안 노불을 비롯한 하지보좌관들을 련쇄적으로 만나고 닷새전부터는 김규식, 려운형, 김구, 리승만순서로 의례방문하여 오찬과 만찬에도 초대되였다고 한다.

오늘 브라운은 그 정형을 묶어 제출해온것이다.

하지는 브라운의 보고서를 주의깊이 읽었다. 이미 파악이 있는 정계인물들의 동향이 아니라 그 인물들에 대한 브라운의 견해가 궁금하였다.

그 인물들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이것은 앞으로 하지가 브라운이라는 인간을 평가하는데서 중요한 인자로 될것이였다. 브라운은 이미 국무성과 맥아더측의 견해를 알고있다. 자기도 립장을 이미 명백히 해두었다. 브라운이 어느 측의 립장을 옹호하겠는가.

《려운형과 김규식에 대한 중장각하의 평가는 매우 정당하다고 생각됩니다. 려운형은 미국에 있어서 더는 쓸모가 없는 존재입니다. 아니 그는 우리의 대조선정책에 커다란 걸림돌이라고 평가하고싶습니다. 그는 내가 제기한 모든 문제에 부정적반응을 보였으며 오히려 미군 철거, 38선 철페, 친일파의 숙청, 인민위원회복구와 자치권이양 등 현 단계에서 재론할 여지가 없는 문제들만 제기하였습니다.

김규식은 현재의 지위와 역할에 한정시켜야 할 인물입니다. 그는 민족의 자주와 독립국가로서의 하나의 정부를 구성하기 위한 선거를 요구하였습니다.

나는 이에 긍정적인 대답을 주었고 김규식은 나의 대답에 만족감을 표시하였습니다. 나는 김규식 인물평가에서 강직하다는 중장각하의 평가에 타협적인 인물이라는 의견을 보충하고싶습니다.

김구와 리승만은 역시 문제가 있는 인물들입니다. 그들의 정치적야심과 무게에 대한 각하의 견해에 동의합니다. 그리고 김구와 리승만을 하나의 동아리에 묶어내기 어렵다는 당신의 견해에 리해가 갑니다.

간단히 례증을 들어보겠습니다.

나는 김구가 차린 오찬과 리승만이 차린 만찬에 참가하였습니다. 김구는 오찬에 앞서 상을 둘러보다가 자기의 맏며느리를 찾았습니다. 그 녀자는 조선사람들속에서 민족적영웅으로 받들리는 한 애국지사의 소생이라고 합니다.

김구가 하는 말이 〈어째 밥상에 김치와 토장국을 내오지 않았느냐?〉하고 물었습니다.

그때 오찬에 통역삼아 동석했던 그의 둘째아들이 자기의 형수를 대신하여 대답하였습니다. 〈아버님, 토장국과 김치는 서양사람들이 냄새를 맡기싫어하는 음식입니다.〉

〈안다.〉

〈그래서 제가 형수님께…〉

〈시럽의 자식! 여긴 서울이다. 내 나라땅에서 날 찾아온 손님을 대접하는데 내 나라의 음식을 내려놓는다면 어떻게 조선사람이 차린 음식상이라 하겠느냐. 아가야, 어서 내오너라.〉

인차 콩알이 둥둥 떠있는 누런 토장국이 들어오고 새큼한 냄새가 코를 찌르는 김치가 들어왔습니다.

나는 김구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싶지 않아 안면근육에 힘을 주어 가까스로 웃으며 김치를 먹고 토장국을 마셨습니다.》

하지는 자기도모르게 히죽히 웃었다.

구미가 돌지 않는 음식을 드느라고 곤욕을 치르는 브라운의 모습이 선하였던것이다.

(역시 외교관이 다르군.)

자기가 김구의 초대를 받던 일이 생각났다. 그때도 김구는 그에게 김치와 토장국세례를 안겨주었다.

그러나 자기는 브라운처럼 김치를 먹지도 않고 일부러 웃음을 지어내느라고 왼심을 쓰지 않았다.

그때 하던 김구의 의미심장한 말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사령관각하, 조선에서 조선의 물과 공기를 마시면서 군정을 펴나가려면 싫든 좋든 이 김치에도 맛을 들여야 합니다.》

그때 하지는 속으로 이렇게 응수하였다.

(엉큼한 두상, 누가 누구를 길들이는가 어디 두고보자.)

그런데 브라운은 벌써 그 맛을 본것이다. 지어냈지만 웃음까지 보이면서.

(그래 브라운은 애교가 있는 인간이야. 앵글랜드족이라… 흥.)

다시 중얼거리던 하지는 고소를 금치 못하며 계속 읽어갔다.

《나는 김치를 들면서 이야기하였습니다.

〈나는 아직 리승만을 만나지 않았다. 내가 리승만을 의례방문에서 뒤전으로 밀어버린것은 그가 지나치게 독선적이고 하지중장의 의사와 배치되는 견해를 당리당략의 견지에서 함부로 란발하며 중장각하와 척을 지고있다는 말을 들었기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리승만은 우리와 합작하려고 애쓰면서 될수록 미국의 정책적지향에 걸음을 맞추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한다고 한다.

그런데 김구선생, 당신의 정치로선은 우리와 매우 근사하다. 나라의 독립과 민족자결에 대한 당신의 립장은 곧 미국의 립장이기도 하다. 민족자결론이 미국의 대통령이였던 윌슨이 내놓은것이라는것을 당신도 알고있을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보다 긴밀히 협조하고 지지하지 못할 리유가 없다. 만일 당신이 미국과의 합작에 성의를 보인다면 미국이 당신을 통수권좌에로 밀어주리라는것은 의심할나위가 없다. 미국은 지금 당신들 민족주의자들이 서로 옥신각신하면서 북조선의 공산세력과 겨룰수 있는 단일세력권으로 뭉치지 못하고있는데 대하여 깊은 유감과 우려를 가지고있다.〉

이에 대해 김구는 이렇게 반론을 제기하였습니다.

〈당신은 우리 민족주의자들이 뭉치지 않았다는 무슨 자료라도 가지고있는가?〉

〈당신이 리승만과 합작하지 않고있는것은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다.〉

〈그건 당신이 리승만을 잘 몰라서 하는 소리이다. 리승만이 어떻게 되여 민족주의대렬에 끼여들수 있는가. 그를 배척하는건 필연적이다. 그와는 절대로 합작하지 않을것이다. 리승만의 역스러운 작태를 나는 서른해가 넘게 보아왔다.

당신은 우리 림정이 벌써 25년전에 리승만을 권좌에서 몰아낸걸 아는가?

내 생각에는 미국이 리승만을 자기네 빵부스러기로 살지게 해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있는것 같은데 사귀는 친구보면 그 사람의 됨됨을 안다는 우리 나라 속담을 말해둔다.〉

〈흥미있는 유모아다.〉

김구와의 이야기는 더는 전진이 없었습니다.

리승만이 차린 만찬회는 판이한 분위기속에서 진행되였습니다. 라일락꽃이 만발하고 프랑스의 샹데리아표향수내가 진하게 풍기는 방에서 우리는 마주 앉았습니다. 상우에는 드라이 쏘세지(서양식순대)며 브레드(서양빵), 철갑상어알 등 서양식품과 소포트크림(크림상태로 만든 얼음보숭이 일종), 웨이퍼(얇게 구운 과자) 등의 과자류며 와인과 스코트브랜드 등 주류들이 전통적인 영국것들로 차려져있었습니다.

〈나는 소장각하가 앵글랜드족의 훌륭한 혈통을 이어받았다는것을 알고있다.〉

리승만은 이렇게 말하며 스코트브랜드를 부은 잔을 들었습니다.

나를 위해 차려놓은 두개의 서로 다른 식탁이 결국 두 인간의 모든것이 집약화된 축소판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나는 김치는 쓰거운대로 먹었지만 스프는 달게 먹었습니다.

이것이 그 인간들에 대한 미국의 립장이 아니겠는지?

중장각하, 솔직히 상황보고를 하는 저를 리해하여주기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김치는 우리에게 습관되지 않았고 앞으로도 습관되지 않을것입니다. 입에 가져갈 선택을 한다면 입에 맞고 습관이 된 스프가 낫지 않을가요?…》

재담처럼 엮어가는 브라운의 보고에 실소를 지은채 심취되여 있던 하지는 좁은 이마를 찡그리였다.

리승만을 멀리하여온 자기에게 야릇하게 도전해오는것이다.

(음, 너도 워싱톤에서 단단히 침을 맞고왔구나.)

하지는 이마에 굵게 질러간 주름살을 풀지 않고 다시 보고서에 눈길을 보냈다.

《리승만도 김구에 대한 립장에서는 적대적이고 비타협적이였습니다. 그는 김구세력이 없이도 능히 정권을 창출해낼수 있으니 미국의 지원만 있으면 구태여 딴 눈을 팔지 않을것이라 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번 길에서 자그마하지만 전망성이 있는 성과를 이룩하였습니다. 그것은 미쏘협상재개에 대한 그들의 분명한 반대의사를 유도해낸것입니다.

나는 그들에게 미쏘협상을 재개할 가능성에 대하여 시사하면서 2차협상이 재개되면 이미 쏘미영 3상회담에서 합의된 신탁통치에 대한 실무적조치가 합의될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리승만은 그 기한이 50년정도가 되리라는 말에 실망을 표시했고 김구는 극히 랭소적이였습니다.

김구는 〈난 결사반대요. 조선사람이 뭐가 모자라 50년간 남들의 턱밑에서 산단 말이요. 그렇게 되면 이땅에 다시금 광복전의 포성이 울리게 될거요.〉하고 우직하게 반응하였습니다. 그들의 거부적자세는 미쏘회담의 완전결렬을 유도하는데서 희망적인 진일보이며 두 세력의 접근을 바랄만한 공통분모라고 생각됩니다.》

《진일보라…》 하지는 입이 쓰거운듯 이렇게 중얼거리며 브라운의 보고서를 앞탁우에 던져버렸다. 그건 이미 기정사실화된 립장들이다. 김구를 그 정도에 이르게 하기 위해 정보고문 노불이 제일 분주스레 뛰여다녔다. 그런데 브라운이 진일보라고 감히 으시대는것이다.

《역시 정치군인이란 성실성이 부족하거든.》

하지는 세모꼴 머리를 절레절레 내젓고는 초인종을 눌렀다.

부관이 기다린듯 들어왔다. 그런데 그의 손에 여러장의 신문들이 쥐여있었다. 부관은 그중에서 한장의 신문을 하지에게 내밀고 나머지는 앞탁에 조심히 놓았다.

《뭐요?》 하지는 때없이 신문을 들고 나타난 그에게 불쾌한 어조로 물었다.

부관은 죄송스럽다는듯 고개부터 떨군다.

《브라운소장의 면담소식이 오늘 서울 일간신문들에 실렸습니다. 그 아래에 방금 서기실에서 번역해온 기사전문이 있습니다.》

지난해 웨스트포인트보병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했다는 부관은 충견처럼 주인의 기분을 민감히 냄새맡아가지고 알맞게 움직일줄 아는 군인이였다.

하지는 부관의 낯빛을 보자 어쩐지 예감이 좋지 않았다. 이따금 폭탄선언같은 문제거리들을 들고 나타날 때면 부관은 지금처럼 제가 만들어놓은 우환거리인양 저렇게 침울하고도 처진 상을 해가지고 송구스럽게 서있군 한다.

그래서 하지는 부관의 얼굴부터 살핀 다음에 일감을 접수하는 습관이 생겨났다.

《읽으라!》 하지는 신문을 도로 내주고 명령했다.

부관이 마치도 녀선생앞에 작문을 읽어드리는 소학생처럼 류창한 어조로 높지도 낮지도 않는 잘 들리는 음계를 잡아 마디마디 강약을 넣어 읽기 시작했다.

《경교장을 찾은 미쏘회담 수석대표 브라운의 엄숙한 선언》

《그건 뭐야?》

하지가 자못 요란스러운 제목에 껑충 놀라 앉음새를 흐트러뜨리며 소리쳤다.

《브라운은 김구와의 회담에서 단 하나의 독특한 선물을 전해주었다. 브라운은 김구에게 미국과의 합작에 적극 나선다면 미국이 이 나라의 통수권좌에로 밀어줄것을 확약하였다. 서울정계에 또하나의 돌풍이 번져지게 되였다.》

《뭐라구?!》

하지는 부관으로부터 신문을 뺏아가지고 단숨에 읽었다. 김구의 측근들이 정권인수를 위한 세부준비에 돌입했다는것이다.

하지의 얼굴이 생콩을 씹은듯 이그러졌다.

브라운이 제 정신 가지고 줴친 망발이냐. 이건 망발치고도 이만저만한 정도가 아니다. 그런데 왜 보고서에는 이런 수작질이 언급되지 않았는가? 아니…

어느 대목에서 보았던것 같다.

하지는 탁상우에 아무렇게나 던져져있는 브라운의 보고서를 성급히 다시 훑었다.

분명히 그런 구절이 있다. 그러니 나도 그런 소리를 스쳤구나. 여론이 돌풍을 예고한 대목을 내가 놓쳐버리다니… 이것이 바로 애치슨이 말하던 그 정치적감각의 둔화라는거구나. 분명 또다시 이 길지 않는 문장을 걸어놓고 진폭이 큰 충격파가 불어닥칠것이다.

(빌어먹을 자식, 두달이나 준비기간을 주었는데 이꼴로 일해.)

하지는 두덜거리다가 여느때없이 일찌기 잠자리에 들어누워버렸다.

그런데 온 밤 그 무슨 괴물에게 쫓겨다니는 꿈을 꾸느라고 자리에 땀만 흠뻑 적셔놓았다.

아침시간에 하지는 수하의 모사군들을 불러들여 대책을 협의하였다.

일은 터지기 시작했다. 꿈에 봤던 괴물들이 오후 첫 시간부터 나타났다.

노불이 리승만을 꼬리에 달고 처음으로 응접실에 나타났다. 하지가 부관의 보고를 듣고 응접실에 들어서니 노불이 리승만의 옆에 앉아서 뭐라고 쑥덕질을 하다가 용수철에서 튕겨나듯 벌떡 일어났다.

헌데 리승만은 늙고 쇄락한 몸을 이기지 못하겠다는듯 엉뎅이를 약간 들썩거렸을뿐 그 문제거리의 신문부터 내민다.

《각하, 난 브라운소장의 발언에 대한 각하의 공식적인 해명을 기대합니다.》

몸집은 큰데 울려나오는 목소리는 모기소리처럼 앵앵거리는 기분잡치게 하는 소리다. 리승만은 하지의 대답을 듣기전에는 일어나지 않을양으로 뒤통수를 쏘파에 붙이고 부어오른 눈시울을 꾹 붙여버렸다.

원래 리승만은 브라운이 자기 집에 나타났을 때부터 기분이 나빴다. 그래도 이 나라를 다스리러왔다면 누구보다도 자기, 리승만부터 찾아 알현해야 순리가 아니겠느냐.

브라운이 맨 마지막으로 제집문턱을 넘어선것이 우연치 않다는 짐작이 갔다. 그런데 어제 신문을 보니 브라운이 김구와 로골적인 흥정을 벌리고 나타난것이다. 이럴수 있느냐. 리승만은 미국의 배척을 받은 모멸감과 억울함을 억누를수 없었다. 그렇게 되여 달려온 길이니 구태여 인사 차릴것도 없다는게 리승만의 배심이였다.

하지는 언제나 자기앞에서 방자한 태도를 일부러 짓군 하는 리승만의 자세에 분격이 굴뚝같이 치밀었다. 그래서 신문을 신경질적으로 뒤적거리다가 아침시간 수습모의에서 도출된 합의를 뒤집어엎고 덧바람에 총알처럼 쏘아붙였다.

《나는 당신이 왜 브라운의 이야기에 이렇게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지 리해되지 않습니다.》

수습모의에서는 그것은 브라운 개인의 립장이지 미국의 립장도 자기의 립장도 아니라고 간단히 답변을 주도록 합의를 보았었다.

그러나 하지는 리승만앞에 나서자 신경질부터 앞섰던것이다. 하지는 리승만의 속통을 더 죄여 비틀어놓고싶었다. 그런데 그이상 죄여놓을 트집거리가 언듯 떠오르지 않았다.

《어험!》

리승만이 하지의 고압적인 대답을 듣자 눈을 번쩍 떴다. 꿩본 매눈처럼 번뜩거리는 하지의 눈총에 단번에 오금이 저리고 등곬에 식은 땀이 돋았으나 인차 자신을 수습하였다. 어떤 상황에서도 제 할소리는 할줄 아는 두상이였다.

《난 그것이 미국의 공론으로 굳어진것이라면 우리의 독촉(리승만이 조직한 독립촉성회)과 독촉이 제휴하는 련합단체들의 련환비상총회를 금일저녁에 소집하겠다는것을 당신에게 통고하는바입니다.》

리승만이 이미 준비하여 온 말을 양철긁는듯 한 새된 소리로 외워놓고는 몸을 일으켰다.

노불이 그를 만류하였다.

《사령관각하는 아직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 소리에 리승만이 못이기는척 다시 쏘파에 들어붙는다.

하지는 노불에게로 찔 눈길을 빨았다. 노불의 말은 하지에게 이미 눌러진 수습방안대로 움직이라는 신호였다. 별수가 있느냐 하는것이다.

(네놈도 리승만과 한 통속이겠다.)

하지는 이미 쫓아보낸 구펠로를 대신하여 지금은 노불이 리승만을 적극 비호해주고있다는것을 잘 알고있다. 세월을 이어온 그들의 긴 유착관계를 알고있다.

하지는 생각같아서는 리승만더러 마음껏 용을 써보라고 박아주고싶었으나 은근히 그 후과가 두려웠다.

어떻게된 영문인지 리승만이 광기를 부리면 국무성도 따라서 소란을 피우면서 몸살이 나게 한다.

(하는수 없다.) 하지는 뒤로 물러서는수밖에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건 뭐 당신 마음대로… 그러나 한가지만 말해두오. 브라운의 발언은 나도 미국도 대표하지 않소.》

하지는 씹어 뱉듯이 대답을 주고 일어섰다.

《그런데 각하!…》

리승만이 또다시 두툼한 입술을 내민다. 그것으로서는 만족할수 없다는것이다. 하지는 그의 눈빛에서 이것을 읽었다.

네가 나서서 브라운의 말을 공식적으로 취소시켜달라는것이다.

령감이 보통 찔통이 아니다. 제 안속 다 챙기기전에는 벽도 문이라고 골받이 하며 늘어지는 진절머리나는 두상이다.

《노불! 당신이 나의 명의로 서울신문과 기자회견을 가지시오. 만족합니까. 리승만선생?… 안녕.》

하지는 리승만을 돌아보지 않고 짤막히 인사를 던지고는 응접실에서 제먼저 사라져버렸다.

그제야 리승만이 늙은이답지 않게 잰걸음으로 문가까이로 따라가다가 하지가 사라진쪽에 대고 《고맙습니다. 중장각하!》하며 허리를 세번 굽신거렸다.

그리고는 제 생각에도 노불앞에서 체신머리없다는 생각이 들었던지 《허허. 노불씨, 난 저 사람이 좋아. 씨원씨원한게 과시 무관이거든.》하고 쇠비린내나는 소리로 중얼거리며 허파에 바람든 사람처럼 웃었다.

노불이 리승만을 흘끔 돌아보고는 골살을 찌프리였다. 늙은이의 변덕에 오래전부터 습관되여온 노불이였지만 이처럼 조변석개하는 변신에는 매번 아연해지군 한다. 곁에서 관찰해보면 리승만의 정치술수라는게 별게 아닌것 같다. 자기 욕심이 다 챙겨질 때까지는 상대를 가림없이 맞붙어 고집을 쓰고 야단을 부리다가도 정황에 따라서는 제때에 변신하는것이 전부다.

그런데 이상한것은 그의 이런 어리석고도 늘어붙는 재주에 상대방이 쉽게 넘어가는것이다.

 이전페지  차례  다음페지 
되돌이 목록
감 상 글 쓰 기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를 하려면 여기를 눌러주십시오
Copyright © 2003 - 2022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
辽ICP备15008236号-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