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장 해발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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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일경이 다시금 부근부근한 함박눈에 포근히 묻힌 어느 이른 새벽이였다.
정시명이 출발준비를 하다가 일손을 멈추고 마동열이더러 먼저 떠나라고 이야기하였다.
마동열이 의아쩍어 하자 정시명은 《난 장군님에 대하여 너무나 모르는게 많네.》하고 간단히 설명했다.
그의 머리에는 경애하는 장군님의 위대성을 남조선인민들속에 광범히 선전해야겠다는것과 그러자면 평양체류일을 연기해서라도 자료작업도 하고 연구도 해가지고 나가야 되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던것이다.
정시명은 마동열이 서울에 도착하여 해야 할 일을 일러두었다. 무엇보다도 이미 련계가 이루어진 동무들을 속히 모일수 있도록 대기시키는것이 필요하였다.
마동열이 길에 나섰을 때 정시명은 《마동무, 나가다가 우리 고향에 들려주오.》하고 부탁하였다.
마동열이 정확한 지명을 묻자 정시명은 대수롭지 않게 알려주었다.
《우리가 들어올 때 평산읍을 지나 잠시 휴식하면서 샘물을 마시던 일이 생각나나?》
《네.》
《허허 … 그 마을이 내 고향마을이야. 그 옹달샘에서 제일 가까운 초가집이 우리 집이요. 아마 기다리고있을거요.》
《그러면?… 선생님은 너무하십니다. 어떻게 그럴수가 있습니까?》
마동열이 순간 두눈에 물기가 핑해져서 원망조로 부르짖었다.
《이러지 마오. 날 매정하다 욕하지 말아주오. 장군님 뵈오러온 길이 아니요. 집에 가면 기별을 전하고 인차 뒤따라 온다고 하오.》
마동열은 커다란 주먹으로 눈굽을 닦으며 길을 떠났다.
마동열이 주상마을에 들어선것은 해질무렵이였다.
마동열은 하루 묵어갈 셈으로 타고온 자동차를 돌려보내고 정씨집을 찾았다.
초가삼간짜리 수수한 농가였다. 수북히 쌓인 눈을 뒤집어쓴 추녀낮은 집이 수수대를 엮은 울바자에 에워싸여있는데 곁에는 헛간인지 사랑방인지 자그마한 별채가 붙어있다.
삽짝문옆으로 두 그루의 들메나무가 보초병처럼 서있었다. 나무가지들에는 여러마리의 참새들이 재잘거리며 팥알같은 눈알을 대룩대룩 굴려 낯선 손님을 반기는듯싶다.
마동열은 자기의 고향집에 들어서는듯 무량한 감회가 어린 눈으로 초가집과 그 주위를 둘러보다가 삽작문을 열고 큰 소리로 기척을 냈다.
《주인님 계십니까?》
그러자 기다리기라도 한듯 본채와 별채의 방문이 동시에 열리였다. 머리가 더부룩한 젊은이들이 내다본다. 아마 정시명의 아들이 아니면 조카들인 모양이다.
《누굴 찾으시나요?》
《난 정시명선생님을 모시고있는 사람이요. 선생님의 부탁을 받고 한발 먼저 왔소.》
《그래요?》
두 젊은이가 약속이나 한듯 크게 탄성을 올리며 고무신을 끌고 달려나왔다.
《누구시라구요?!》
한 젊은이가 마동열이 들고있는 자그마한 보따리를 받아들며 다시 물었다.
《정시명선생님과 같이 온 사람이요.》
그러자 그 젊은이가 일시에 눈물을 펑펑 쏟으며 마동열에게서 돌아서더니 마당이 떠나갈듯 소리질렀다.
《어머니! 할아버지! 아버지가 정말 오신대유! 아버지가 정말 오셨대유!》
그러자 또다시 본채와 별채의 크고작은 문들이 우당탕탕 열렸다. 늙은이가 버선발로 뛰여나오고 녀인들과 남정네들이 올망졸망한 조무래기들과 함께 마동열에게 달려들었다.
《우리 둘째가 정말 살아 돌아왔단 말이시유?》
늙은이가 마동열의 앞에 와서 우뚝 굳어지더니 이렇게 벌써 한가슴이 눈물에 차서 묻는다.
《예. 이제 인차 돌아오실겁니다. 지금 평양에 계십니다.》
《옳거니! 이게 정말 꿈이냐 생시냐.》
로인은 두팔을 허공에서 허우적거리다가 마당에 그대로 폴삭 주저앉는데 손주들이 모여들어 부축하여주었다.
삽시에 마당복판에서 울음소리가 터져올랐다. 아이들이 녀인들의 치마자락을 탈아쥐고 울고 녀인들이 서로 부둥켜안고 소리내여 울었다. 며칠전에 마을로인이 정시명을 해주에서 만나 발바리차까지 얻어타고왔다는 소리를 들려주었지만 실성한 소리를 한다고 반신반의해 왔던 그들이였다. 그저 믿기에는 너무도 꿈과 같은 소식이였던것이다. 그래도 식솔들은 누구나 기연가미연가하며 여태껏 울바자밖에서 들리는 작은 발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왔다.
잠시후 온 마을 사람들이 소식을 듣고 정씨집안에 몰려들었다. 닭모가지를 비틀어쥐고 오는 사내들도 있고 찹쌀 몇되박 들고오는 아낙네도 있었다. 동네의 대소사를 한집안일로 여기며 화목하게 살아오는 오붓한 마을이였다. 온 마을이 울며 웃으며 정씨집안의 경사로 꽃을 피웠다.
정시명의 아버지는 둘째가 들어서자 상투를 틀고 망건을 쓰고 앉아서 스무해전에 슬하를 떠나 무수한 사선의 고비를 넘어 이제야 고향집문턱을 넘어선 아들을 엄엄하고도 정중하게 맞았다.
정시명이 마당에 정히 깔아놓은 돗자리에 나서서 토방마루에 엄숙히 앉아있는 로인에게 세번 절을 올렸다. 땅바닥에 엎드렸다가 일어설 때마다 온몸이 후들후들거린다. 세번째로 절을 하고는 《아버님!… 그간 불효자식이 끼친 심뇌가 과히 이를바 없으니…》하고 가까스로 인사말을 이어가다가 종시 말끝을 여물구지 못한다. 다시 무릎을 꿇고 머리를 떨군채 하회를 기다렸다.
로인은 입을 꾹 다물고 한동안 얼이 나간듯 초점을 잃은 눈으로 아들의 모습을 망연히 굽어보고있었다. 그는 지금 꿈을 꾸고있는것만 같았다. 슬하를 마지막으로 떠나던 일이 까마득하다. 배재학교를 마친 뒤에도 내내 서울에 눌러앉아 편지 한장 없다가 압록강을 넘으며 소식을 보내온것이 꼭 스무해전이다. 둘째가 나라지경을 벗어나기전에 보내왔던 편지를 로인은 글자 한자 빼놓지 않고 여적까지 기억하고있다.
《아버님, 상의없이 떠나는 불효자식 용서하십시오. 조국이 광복되기전에는 둘째가 없었다는것으로 생각하시고 기다리지 말아주십시오. 광복년에 아버님의 존안을 뵈오려하오니 그날까지 부디 옥체만강하여 주시옵소서.》
그렇게 사라져버린 아들이다. 이제는 저세상에 간것으로 생각해왔던 아들이였다. 하건만 그 어느 한시엔들 망막에 새겨져있는 그 모습을 지워버린적이 있었더냐.
로인은 정시명이 그대로 땅에 얼어붙은듯 일어나지 못하자 토방마루를 내려 아들을 끌어안고싶은 충동을 꾹 누르고 촉촉히 젖어드는 두눈을 스르르 감았다. 그러자 허구한 세월에 겪었던 가지가지 뼈저리던 경난이 일시에 덮쳐들었다. 간특한 왜놈들의 모함으로 정시명이 옥사했다는 날벼락같은 소식에 하늘이 무너지는것같은 애통함을 못이겨 마누라가 절명을 하던 날이 떠올라 그만에야 로인의 닫아붙인 눈시울로 쭈르르 더운 눈물이 새여나와 볼을 적시고 수염발에 구슬처럼 맺혔다가는 후둑후둑 떨어졌다. 어느새 맏며느리가 흰 무명수건을 들고와서 《아버님…》하고 오열에 떨며 부른다. 그제야 로인은 눈을 떴다. 얼른 수건을 받아 얼굴을 문질렀다.
아직도 정시명은 땅바닥에 머리를 떨군채 일어날념을 모른다.
로인의 눈이 쓰다듬듯 둘째의 몸을 이리저리 훑어가다가 반백이 서린 머리칼에서 굳어졌다. 홍안으로 떠나갔는데… 반백의 머리를 떠이고 나타났구나.
…
아들의 머리우에 때일찍 내린 서리를 보는 순간 무정히도 흘러간 세월에 아들이 겪었을 부지기수의 고행이 짐작가서 또 한번 메마른 가슴에 더운것이 뭉클 치밀어오른다. 여적까지도 로인의 뇌리에 떠오르는 둘째의 모습은 새까만 학생복을 차려입고 노상 책에 묻혀있던 홍안의 모습이였다. 올해 스물을 넘기는 막내손주가 아버지를 삐여나게 닮았다고 이르며 어떤 때는 둘째가 여적 살아있으면 어떻게 달라졌을가 하는 애모쁜 생각을 하면서도 달리는 그려낼수 없었던 그런 얼굴이였다. 헌데 스무해만에 나타난 둘째는 저렇게 벌써 눈귀에 주름이 잡히고 서리불린 머리를 떠이고 엎드려있다.
아, 세월도 무정쿠나, 네가 벌써 그렇게 되였구나…
《음-》
드디여 로인의 입귀가 실룩거리더니 피를 토하는듯 한 한숨이 나왔다.
《정씨가문에 자고로 쉰전에 반백이 된이 없었건만…》
로인은 혼자말처럼 나직히 외우는데 다시 눈언저리가 불그레해졌다.
《아버님, 이 기쁜 날에… 아우님이 큰 어른이 되여 돌아오셨는데…》
맏며느리가 로인의 처량한 모습에 마음을 쓰며 토방에서 내려서지 못하고 옷고름으로 눈굽을 닦아내다가 여쭈었다. 그제야 로인은 정신을 차린듯 했다.
그의 안색은 순식간에 달라졌다. 스무해 넘는 세월 지지리도 애간장을 태워온 둘째가 그 칠흑같은 세월을 넘어 얼마나 영광 큰 소식을 안고 들어섰느냐.
로인은 눈물에 함뿍 젖어 마당에 주런이 서있는 일가식솔을 둘러보다가 불꺼진 장죽을 입에 가져갔다. 어느 손주녀석이 날쌔게 부엌에 가서 류황을 묻힌 불가치에 불을 달아가지고왔다.
로인은 한모금 달게 빨고는 석쉼한 목소리로 물었다.
《장군님을 뵈웠다면서?!》
《네.》
《경사로다! 정씨집안에 과시 인물이 났도다! 장군님 뵈온 나라의 신하가 주상고을에 나왔은즉 경사로다! 어험-》
로인은 아들이 자랑스러워 연신 토방마루를 손바닥으로 두드린다.
《전일에 제가 고향을 지나갔습니다. 용서하여주십시오.》
《객적은 소리! 장군님 뵈오러가는 길인데 용서구 뭐구 할게 있느냐. 예로부터 충신은 불고가사라 했거늘 집안일 앞세우는놈 큰일 치는걸 못보았니라.
어찌 나라어른 뵙기전에 제 애비 찾아보는 망녕된짓을 할고. 대처에 돌아다니더니 신하된 도리는 참말로 잘 배웠구나. 자, 뭣들 하느냐. 다들 눈물을 거두구 만나봐라.》
로인이 그제야 담배연기를 가느다랗게 올리는 장죽을 입에 가져가며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정시명이 무릎을 꿇고있는 돗자리 좌우에 주런이 서서 로인이 자리에서 일어나기를 기다리던 일가식솔들이 제마끔 일시에 부르며 정시명에게 달려들었다.
《아버지!》
《삼촌!》
《아우님!》
어느새 소식이 전해졌는지 이웃에서도 아이어른 할것없이 달려왔다. 삽시에 마당은 눈물의 바다가 되였다.
정시명의 처 민순임은 엄한 시아버지와 사람들앞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아까부터 마당구석에 서서 치마말기로 눈굽만 찍어내고있었다. 그 녀자는 맏동서의 손에 이끌려 남편의 앞에 나서기는 하였으나 작은 입을 오물거리다가 끝내 한마디도 못하고 터져나오는 울음을 짓씹으며 부엌으로 달려갔다.
이어 부엌에서는 녀인의 흐느끼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자기의 울음소리가 마당에 들릴가 저어하듯 재게 두드리는 칼도마소리만이 들려왔다. 정시명과 가족들은 서로 말문이 막혀 가슴들을 부둥켜안을뿐이였다. 모두가 변하였다.
아버지는 퍼그나 여위여 졸아든듯싶고 걸음마를 타던 자식들이 20대의 끌끌한 장정들로 자라났다.
정시명이 트렁크에서 갖가지 옷감들과 식료품을 꺼내 김정숙녀사께서 손수 마련해주신 선물이라고 하자 아이어른 할것없이 너도나도 한가지씩 받아들고 기뻐 어쩔줄을 몰라하였다.
시간이 흘러 이웃들도 물러가자 아버지가 범상치 않은 둘째의 모습을 대견스럽게 지켜보다가 《그래 둘째야, 이제 어떻게 할셈이냐?》하고 신중히 물었다.
《장군님슬하에서 그분을 보좌하렵니다.》
《그래야지. 암 그래야 하구말구.》
로인이 채수염을 내리쓸며 흡족해마지 않았다.
《오마님이 계시여 이렇게 장하게 돌아오신 아드님을 보신다면 얼마나 기뻐하실가. 그 쪽발이놈들…》
어느새에 제상을 다 차려놓은 형수가 이렇게 말하며 또 열탕같이 더운 눈물을 쏟아놓는다.
모두가 눈물이 그렁해서 돌아앉는데 《다들 그쳐라. 비명횡사한 네 어미도 이 소식을 듣고있을거다.》하며 로인이 속이 웅근 소리를 하고는 움찔 자리에서 일어나 토방에 나선다.
《아우님, 오마님께 문안 올려요.》
형수가 치마말기로 눈굽을 찍어내며 조심스럽게 말을 했다.
자리에서 일어난 정시명은 웃방에 차려놓은 제상을 보자 문턱을 넘다말고 《형수님, 이왕이면 어머님을 찾아뵙고…》하였다.
《오시느라 곤하시겠는데… 뒤산을 넘어야 한다우. 래일 아침에 가시는게 어떨가요?》
형수는 해가 떨어질 때가 되여 념려스러운 모양이였다.
《아니요, 이제 갔다 오렵니다.》
정시명이 그렇게 말하자 형수는 더는 만류하지 않고 상에 차렸던 제물을 거두어 커다란 싸리바구니에 주섬주섬 담았다.
그들은 곧 집을 나섰다. 정시명의 둘째아들이 따라섰다.
맏이는 큰아버지와 같이 마동열이 집에 들려 소식을 전하기 하루전에 비료구입차로 흥남에 갔다고 한다.
다복솔이 깔려있는 뒤산은 예나제나 크게 달라진게 없었다. 산기슭에는 사이사이에 크고작은 묘지들이 더 생겨났을뿐이다. 뒤산을 지나자 형수가 밋밋한 등성이를 손으로 가리켰다.
《오마님의 묘를 저기에 썼다우. 원래는 재등너머 있는 공동묘지에 쓰자는걸 형님이 우겨서 집가까이에 오마님을 모셨지요.》
멀리로 등성이에 덩실하게 솟아있는 봉분이 보였다. 서켠 련봉에 맥이 진한듯 걸터앉은 해가 마지막 빛살로 포근히 감싸주고있어 봉분은 금빛으로 물들어있다. 가까이 다가서니 금잔디가 알뜰하게 다듬어져있는데 앞에는 화강석상돌이 있고 묘비가 없는대신 상돌좌우에 두그루의 노가지나무가 바늘같은 잎새를 총총히 떠이고서있었다. 광복된 그해 가을에 큰아버지가 떠다 심었다고 둘째가 말했다.
어머니의 봉분뒤에는 또 하나의 봉분이 있다.
정시명의 눈길이 그리로 돌아가는데 둘째가 볼이 부어서 혼자말로 중얼거린다.
《저건 어떻게 한다?… 참, 내 당장 파헤쳐버려야지.》
그 소리를 언제 가려들었는지 상돌우에 제물을 차려놓던 형수가 《조카-》하고 새되게 부르며 눈을 흘긴다.
잠간사이에 상돌우에는 밑굽이 달린 나무종바리에 정하게 담아놓은 제물이 꽉 찼다. 봉분가까이에는 커다란 닭 한마리가 대가리를 북쪽으로 쳐들고 당그라니 앉아있고 그 좌우켠으로 말리운 고등어와 마른 낙지, 산골물에서 방금전에 건진것 같은 산천어가 통채로 눕혀져있다. 그 앞줄에는 사과와 배, 감, 밤이 한그릇씩 자름자름하게 올라있다. 맨 앞줄에는 숟가락을 꽂은 쌀밥 한그릇을 중심으로 찰떡과 송편, 시루떡이 한종바리씩 정하게 쌓여져있었다.
형수가 허리를 펴고 그때까지도 우두커니 서서 봉분을 내려다보는 정시명에게 두홉들이 대두병을 내민다.
정시명은 술잔을 상돌우에 놓고 뒤로 한걸음 물러섰다.
《오마님, 아우님이 오셨어요. 오마님이 그렇게도 생전에 보고싶어하던 아우님이 큰어른이 되여오셨어요. 애고… 오마님!… 애고 오마님!…》
형수가 목을 놓아 곡을 울리기 시작하였다. 그 녀자는 봉분앞에 주저앉아 노랗게 색이 바랜 잔디를 박박 쥐여뜯으며 애통하게 설분을 토하였다.
《오마니, 어서 눈을 뜨고 일어나세요. 아우님을 보세요. 아우님이 이렇게 긁힌 자리 하나 없이 성성한 몸으로 오마님 뵈러왔어요. 세상에 어찌 그렇게 돌아가신단 말인가요. 오마니!》
정시명은 여전히 장승처럼 버티고서서 봉분만 내려다본다. 어찌된 영문인지 옆에서 형수가 태질을 하며 울며불며 곡을 하는데 눈물이 쇠통 나오지 않는다. 그저 눈앞이 뿌예질뿐이다. 그 뿌예진 눈앞에 마치도 운무를 헤치고 나온 달덩이같이 어머니의 둥실한 얼굴만 령롱하게 비껴있을뿐이다. 마지막으로 어머니의 바래움을 받은것이 저 둘째가 태여난 그해였지. 방금 해산한 안해를 대신하여 어머니가 평산읍내까지 엿덩이를 한보퉁이 해 이고 나왔었다.
《이걸 동무들과 나눠먹어라. 그리고 둘째야, 제발 좀 편지를 보내주려마. 식자를 깨쳤으면 뭘 하노. 어째서 잘 있다, 잘 있어라 그 한마디 써보내는게 그리두 힘들다더냐. 서울에 가기만 하면 죽었는지 살았는지 통 알길 없으니 기다리는 사람 속태우는게 그리두 재미냐.》
《하하 참 어머닌… 무소식이 희소식이라지 않나요. 좋아요. 내 이번에는 정말 매일 한장씩 소식 보내지요.》
이것이 어머니와 나눈 마지막이야기였다. 어머니는 그때 씩 웃었다. 그렇게 웃음속에 헤여진 어머니, 지금도 웃는 그 모양대로 나타나있다. 금시 어깨를 두드려줄것 같은 그 모습, 《왔구나!》하고 반가움에 겨워 책만 가득찬 배낭을 풀어헤치다가 《에그, 아이들에게 줄 사탕 몇봉지 사넣는다면 못쓴다더냐.》하며 웃음속에 푸념을 하시는 모습이다.
형수가 울음을 시작하던 때처럼 뚝 그쳤다. 그 녀자는 그때까지도 봉분앞에 굳어진듯 서있는 시동생을 이상스러운 눈길로 쳐다보다가 《아우님, 소리를 내세요.》하고 핀잔조로 일깨워준다. 울라는것이다. 소리를 내여 울라고, 울어야 한다는것이다.
그러나 정시명은 어찌된 영문인지 울음이 터져나오지 않는다. 어머니의 웃는 얼굴만이 그냥 눈앞에 가득 차있고 그 정찬 눈길이 자기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사실 오마니는 아우님이…》
다시 소리내여 울던 형수가 흐느낌을 씹으며 이렇게 말하다가 정시명의 눈길과 마주치자 얼른 뒤말을 삼켜버린다.
정시명은 물기가 번들거리는 형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 녀자의 뒤말이 더듬어지자 그만 세찬 충격에 금시 심장이 뚝 멎는것 같다. 《어머니가 나때문에… 나때문에 비명에 돌아가셨다!》
심장의 벽을 들때리는 그 비통한 울부짖음이 머리까지 윙- 하고 울렸다. 순간에 가슴 한밑에서 소리없는 통곡이 욱 치밀어올랐다.
(정말, 어머닌 나때문에 돌아가셨다. 나를 그리워하다가 그 그리움속에 돌아가시고말았다! 얼마나 그리웠으면, 아들의 비보가 얼마나 절통하시였으면 그 자리에서 절명하시였으랴. 아, 세상에 이런 불효가 어디 있다더냐. 어머닌 그예 나때문에 이 외로운 등성이에서 오가는 바람 다 맞으며 누워계신다. 아-)
정시명은 급기야 무릎을 꿇고 어머니의 품에 안기듯 봉분우에 쓰러졌다. 《어머니!-》 그는 잔디에 이마를 박은채 이렇게 목멘 음성으로 불렀다. 지심깊이에서 솟구쳐오른 지진마냥 배창밑에서 훑어오른 거센 호곡이 터져올랐다.
… …
산에서 내려오는 길에 둘째가 제 큰어머니보고 뭐라고 쑥덕거린다. 형수가 뭐라고 대답했는지 둘째가 성깔사납게 대답질을 한다.
《큰어머니, 난 오늘밤중으로 헤쳐놓고 말겠어요. 왜놈쪽발이들에게 속아서 스무세월 뼈를 깎으며 살아온것만 해도 분한데 저걸 하루라도 그냥 둬둬요?! 난 오늘밤중으로 파헤쳐버리겠어요.》
《조카, 조용조용…》
《일없어요. 아버지가 들으시면 뭐라나요, 까짓거!》
둘째가 그냥 곧은 목을 내두르는바람에 난처해진 형수가 정시명에게로 고개를 돌려 게면쩍게 웃어보이고는 《아우님, 이왕 이렇게 됐으니 세상에 기가 찬 일이지만 말합세다.》하며 발을 세운다.
《사실은 저 오마님뒤쪽에 있는 산이 아우님거라우.》
《아우거라니요?… 나 말인가요?》
정시명이 무슨 당찮은 소리라는듯 허거프게 웃기부터 한다.
《그렇지요. 아우님이 옥사했다고 그 쪽발이들이 아우님의 중절모와 두루마기를 덜렁 들고와서 전해줬다우.》
형수가 그날의 기막히던 광경을 떠올리며 또 속눈섭에 팥알같은 이슬을 달고 흐느낀다.
정시명이 그제야 형수가 이야기하는바가 짐작되였다. 정시명이 압록강을 넘기전에 아버님께 하직인사를 올리느라고 편지와 함께 변장하느라고 쓰고다니던 중절모와 두루마기를 소포로 집에 붙이였는데 왜놈들이 그걸 중도에서 가로채서 그따위 간악한 모함을 했던 모양이다. 해주에서 들었던 로인의 말이 무슨 말인가 했더니 거기에 기가 막힌 사연이 있었구나.
《그걸 받아들자 오마닌 그 자리에서 그만 숨이 지고… 오마니장례를 치른다음에 아우님 찾으러 아버님과 형이 평양감옥에 부지기수로 북나들듯 했다오.
한번은 나도 따라가서 울며불며 야단을 쳤지요. 그런데 그놈들 바른소리 해주는가요. 하긴 이렇게 시퍼렇게 살아있는 사람을 두고 급살을 맞을 거짓부리 늘여놨으니 갈적마다 애간장을 말리우느라 새라새로운 거짓말이지요. 시신을 여기다 묻었다, 저기다 묻었다 해서 가보면 다 헛수작이였지요. 그래 다음해 동리 어른들이 의논을 하고 몰려와서 어머님뒤에 저렇게 묘지를 만들어줬지요. 아우님 보내주신 중절모와 두루마기와 중학시절에 입고 다니던 학생옷을 저기에 묻었다우. 윽… 흐윽…
그런데 상돌은 왜 없는구 하니 아버님이 그냥 반대시지요. 왜놈모가지 하나 비틀어놓지 못하고 애비앞서 갔으니 불효자식에게 상돌 괴여서는 뭘하느냐, 정 해놓고싶으면 내 죽은 다음에 해놔라.》고 하시는데 아버님고집 누가 꺾는단 말이요.
그래 동서가 더 속썩였지요. 해마다 어머님제사를 지내고는 동서가 가만히 홀로 와서 창호지를 깔고 제상을 차려놓고는 울다가 가군 했는데 마디마디에 피눈물이 고여서 스무세월 보내왔다우…》
형수가 연해연송 옷고름으로 샘솟듯 하는 눈물을 찍어내며 울음절반 말절반 가까스로 이어가는데 그 울지도 못할 희비극을 그려보느라니 집안 사람들의 가긍하고 처절한 정상들이 방불해져서 코마루가 찌릇찌릇해나고 두눈에 열기가 번들거렸다.
…민순임은 종일 부엌에서 찾아오는 손님들의 음식시중을 들다가 잠자리에 들어서야 남편의 얼굴을 똑똑히 볼수 있었다. 저보다 세살 아래인 남편을 만나 내외간의 정이라는것을 알만 해서 인차 헤여져 살아온지라 어쩐지 서먹서먹한 감이 앞서는것을 어찌할수 없었다. 더구나 남편이 만사람이 우러러받드는 김일성장군님을 가까이에서 받드는 인물이라는 소리를 듣고는 은근히 두려워지기도 하고 함부로 범접도 할수 없게 어렵게만 생각되였다.
정시명은 눈물이 앞서 자꾸만 끊어지군 하는 민순임의 과거지사를 다 듣고나서 래일 아침에는 서울에 나가야 되겠다는 말을 넌지시 비쳤다. 이 말을 들은 녀인은 잘 리해가 가지 않아 두눈이 올롱해져서 남편의 얼굴만 쳐다보았다.
《김장군님을 받든다고 하시더니…》
녀인의 도툼한 입에서 가느다란 한숨과 함께 나지막한 혼자소리가 새여나왔다.
《장군님께서 바라시는 일이요.》 정시명이 짤막히 설명하자 민순임은 《그러면야 뭐…》하고 남편의 뜻을 선뜻 받아안았다. 정시명은 그에게 부부간의 정을 귀하게 여겨주시던 김정숙어머님의 간곡한 이야기를 감명깊게 들려주었다.
민순임이 그 고매한 뜻과 정에 감심이 되여 인차 눈언저리가 불깃해지고 두볼에 더운 눈물이 이랑을 지어내렸다.
정시명은 안해에게 앞으로 할 사업에 대한 초보적인 교육을 주기로 결심하고 며칠간 집에 더 머물렀다. 막상 지내보니 안해가 자기가 생각해왔던 그저 어질기만 하던 옛적의 녀인이 아니였다. 하기는 모진 세상에서 살뜰한 정도 나눌새 없이 훌쩍 곁을 떠난 남편을 그리며 인생의 온갖 고초를 헤쳐 이를 악물고 스무해세월을 넘겨온 녀인이다. 어찌 용해빠져서야 이날이때까지 견디여낼수 있었으랴.
광복후 한해사이에 녀인은 몰라보게 달라졌다. 소녀시절에 이름석자도 모르고 지내다가 정시명이 언젠가 제손으로 편지 한장 쓸줄 모르면 인연을 끊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바람에 글을 배우기 시작했던 그 녀자가 지금은 리녀맹부위원장까지 되여 보고문도 제손으로 척척 써낸다고 한다. 실지 적구생활에서 반드시 필요한 문제를 가지고 여러날 이야기를 해주니 쉰줄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뜬금으로 받아외운다.
며칠이 지나 정시명은 식구들과 마을사람들에게 먼저 안해만 데리고 평양에 가서 자리를 잡은 다음에 가족을 이사시키겠다는 소문을 돌려놓고는 민순임과 함께 38선을 넘어섰다.
이날 저녁은 싸락눈이 내리였다. 송악산마루를 넘어 산중턱에 내려서니 동녘이 희붐해지기 시작했다.
《여기가 남조선이예요?》
이제까지 말한마디 없이 남편을 따라 수굿이 걸음만 옮기던 민순임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물었다. 그 음성이 가볍게 떨리고있었다.
정시명은 걸음을 멈추었다. 민순임의 이마에 좁쌀같은 땀방울이 송송 맺히고 귀밑에선 흰김이 피여오른다.
정시명은 가까이 다가온 안해의 손목을 꽉 잡아주었다. 녀인은 떨리던 가슴이 진정된듯 빙그레 웃는다. 남편의 억센 주먹에서 툭툭 거세게 뛰는 심장의 박동이 그대로 녀인의 가슴에 전해졌던것이다.
《그렇소. 여기가 남녘이요. 무서워하지 마오. 여기도 내 나라요.》
정시명이 새삼스럽게 부르짖으며 시야에 펼쳐진 남녘의 산과 들을 바라본다. 저 산과 들에 광복은 맞았으나 여전히 강탈자의 억압의 대상으로 된 내 동포, 내 형제가 살고있다. 인민의 새 생활이 꽃펴야 할 강산에 새로운 민족의 비극이 드리워있다. 반만년 유구한 력사를 자랑하는 이 땅에 어찌 나라가 동강이 나고 민족이 갈라지는 비극을 펼쳐놓을수 있단 말인가. 어찌하여 부산으로, 신의주로 달리던 렬차의 기적소리가 여기서 끊어지고 내 나라 땅인 이 송악산눈길을 가슴조이며 걸어야 하는가.
《안된다, 안돼!》 가슴속에서 김일성장군님께서 안겨주신 회중시계의 초침소리가 엄숙하게 흉벽을 두드린다.
민순임이 목도리를 풀어 눈우에 깔아놓고 자리를 권한다. 그리고 집에서 맏동서가 도중식사로 밤새워 정히 빚어준 송편을 두개 꺼내여 한개는 남편의 손에 쥐여주고 자기도 입가에 가져가다가 정시명의 눈길과 마주치자 수집게 웃으며 고개를 돌린다. 정시명이 한입 큼직하게 물어떼니 아직도 따끈따끈한게 방금 가마에서 꺼내놓은듯 하다. 의아해서 여겨보니 보퉁이에서 꺼내는것이 아니라 품속에서 또 한개를 꺼내 내민다. 도중식사가 얼세라 념려되여 자기 몸으로 덥혀온것이다.
《원, 당신도.》
정시명이 코마루가 찡해져 나무랐다. 녀인은 긴 속눈섭을 차분히 내리깔며 고개를 수그릴뿐이다.
(이것이 내외간의 정이라는건가.)
새삼스러운 생각에 어쩐지 가슴이 훈훈해왔다.
그러나 죄스러운 생각도 덜길 없다. 도대체 저 사람의 팔자는 어떻게 돼먹었길래 날 따라와 이다지도 고생살이만 하게 되는가. 스무해세월 지지리도 속을 태우며 시난고난 다 겪어오다가 이제야 남편이라고 맞아들이고 보니 또 새라새로운 고생살이를 짊어지게 된다. 나야 한생을 나라에 바치겠노라 나선 몸이지만 저 사람은 아무튼 사랑을 받고 행복을 누리기를 소원의 전부로 알고있는 연약한 녀인이 아닌가. 그런데 행복은 고사하고 한 녀성으로서 누려야 할 너무도 보잘것 없는 만족도 모르고 젊은시절을 보내다가 이제 또 시련속에 녀성으로서의 황혼을 보내게 되였은즉 그 책임의 몫은 누구에게 있는가.
이런 생각을 정시명이 중국에 있을 때도 해보지 않은바는 아니지만 이렇게 눈깔린 산기슭에 호젓이 마주 앉고보니 더욱 가슴에 에여든다. 그래도 자기의 체온으로 덥힌 송편을 대접하는것만으로도 이 녀자는 행복에 겨워한다. 자기를 깡그리 태워서라도 사랑하는 이들을 기쁘게 해주는게 녀자인가. 그래서 녀인들이 남편을 가리켜 주인이라 부르며 하늘처럼 땅처럼 믿고 의지하고 위해주는걸가.
생각이 깊어질수록 안해가 지난 세월에 겪었을 무수한 고생거리들이 일시에 떠올라 가슴에 더운 눈물이 차게 한다.
(아 아… 녀성의 인격을 그렇게 생각하는건 옳지 않다. 저 사람도 광복조선의 주인이다. 아녀자라고 해서 어찌 가정에 묻혀 나라밖에서 살게 할수 있는가. 저 사람도 나라앞에서 몫을 안고 살아야 할게 아닌가. …저 사람이 그렇게 될수 있을가?…)
정시명이 이렇게 민순임을 앉혀놓고 매듭없는 생각을 굴리는데 당사는 아무런 생각없이 품에서 또 송편을 하나 꺼내서 수집게 내밀며 방긋이 웃는다.
… …
서울에 도착한 그들은 류동명이 새로 마련해준 세칸짜리 단층집에서 스무해만에 가정생활을 시작하였다.
결혼한 후에 한해치고 몇주일 같이 지내본적이 없이 얼굴이나 기억해둘 정도로 서너해 살다가 헤여진지라 참말로 신접살림을 하는 심정이였다.
류동명과 송호정은 자기의 처들을 데리고와서 이들의 새 살림을 진심으로 축하하고 세간살이 꾸리는것을 성의껏 돌보아주었다. 이웃사람들은 그들의 새 살림을 리도령과 춘향의 해후에 비기며 전설처럼 이야기를 하였다. 하기는 춘향의 절개 아무리 굳다 한들 어찌 20년세월 남긴 정없이 떠나간 랑군을 못 잊어 꿋꿋이 가정을 지켜온 민순임의 그 비단같은 마음에 비하며 사랑의 전설치고 어디에 20년 해마다 제상까지 차려오다가 나라의 큰 재목이 되여 나타난 주인을 만나 또다시 어려운 애국의 길에 함께 나선 이야기가 담겨져있으랴.
모진 고생속에서도 20대의 꽃나이로부터 이날이때까지 조선녀성의 송죽같은 절개를 지켜온 민순임에 대한 이웃 녀인들의 칭찬은 이만저만이 아니였다.
어느 하루는 민순임의 미거가 한입 건너 두입 건너 녀성잡지사 편집부에까지 전해졌다. 한 녀성기자가 찾아와 생글거리며 취재를 하겠다고 해서 점심한끼 대접하여 겨우 돌려보내기까지 하였다.
순박하고 어진 마음씨는 곧 이웃들과도 인차 친숙해지게 했다.
정시명의 주위에 있는 전우들에게도 매우 좋은 인상을 주고 그들을 동지적으로, 인간적으로 단합시키는데 소리없이 큰 도움이 되였다. 민순임이는 례영이와도 만난 첫날부터 매우 다정하게 지냈다.
녀인의 어질고 착한 마음씨와 다심하고 근면한 살림살이솜씨는 정시명의 사업에 부드럽게 비껴든 후광이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