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장 구름깔린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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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항으로 전변된 요꼬스까항을 떠난 맥아더의 전용요트 《5성》은 시모노세끼항에 들려 하루밤을 보내고 이튿날 아침 일찌기 부산을 향하여 물결 거치른 현해탄을 헤가르기 시작하였다.
《5성》은 맥아더가 미국의 건국이래 최초의 5성장군으로 된 후 그의 고향 도시사람들이 돈을 모아 기증한것이였다.
화려하게 장식을 한 요트의 객실에는 남조선주둔 미군사령관인 미24군단장 하지가 양탄자를 깐 쏘파에 비스듬히 등을 붙이고 가없이 펼쳐진 바다를 내다보고있었다. 오목하게 꺼져든 눈확에서 매섭게 번뜩이는 눈이 여간 차겁지 않다.
맞은편 쏘파에는 아놀드소장을 대신하여 미6사단장 겸 쏘미공동위원회 미국측수석대표로 임명되여오는 브라운소장이 역시 창밖에 시선을 박은채 생각에 잠겨있었다.
올해 갓 60에 잡아든 브라운은 청년시절을 국무성계통에서 보낸 경력이 있는, 정치성향이 우세한 군사외교관이라는 인정을 받고있다.
하지가 눈빛에 독을 올리고 심사가 꼬여있는것은 전혀 파악이 없는 사람을 수하에 두게 된 불쾌감이 아니였다. 브라운의 선임으로서 정부담당 군정장관의 직함을 가지고 가까이 상종해온 아놀드소장의 해임리유때문이였다. 그는 지금 일본의 유명한 유흥명소인 닛꼬온천에서 그 리유를 지껄이던 맥아더의 주글주글한 상통이 더듬어져 막 구겨놓은듯 한 이마살을 펴지 못하고있었다.
… 맥아더는 사면을 푸른 비단으로 둘러치고 밝은 샨데리아불빛으로 낮조명을 대신한 밀실에서 정치보좌관인 애치슨을 대동하고 하지와 브라운을 만나주었다.
맥아더는 커다란 원탁두리에 빙 둘러앉은 좌중을 색안경을 벗어놓고 한명한명 일별하고나서 브라운소장의 임명부터 정중하게 선포를 하였다. 이어 맥아더는 《이제부터 백악관의 지시에 따라 남조선에서 부문별군정장관직제를 없애고 당신에게 모든 권능을 집중시키게 되였소.》하며 하지에게로 미소어린 눈길을 보냈다.
하지는 그 소리에 어깨를 으쓱거렸을뿐이였다. 첫 이야기부터 듣기가 좋지 않았다. 그러지 않아도 지금까지 모든 권능을 행사한것이 이 하지가 아니고 누구란 말인가.
군정장관이 주둔군사령관의 꼭두각시라는건 세상이 다 인정하는 일이다. 그런데 새삼스럽게 이걸 강조하는 말은 뒤집어놓으면 이제부터 모든 책임을 너에게 묻겠노라고 일종의 경고를 해두는것이다.
하지가 무표정해서 반응이 없자 맥아더는 좌석을 차분하게 하여보려고 그들에게 방금 부관이 가져온 커피를 권하며 브라운에게로 눈길을 옮겼다.
《소장, 당신은 미군정청에 관여는 하지 않지만 미쏘협상대표니만치 여전히 정치적문제들에 대해서는 중장을 잘 도와야 하오.》
《알겠습니다.》 브라운이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참대로 엮은 등받이걸상을 뒤로 옮겨놓는데 맥아더가 그냥 앉아있으라고 손짓을 하였다.
《그러자면 아놀드의 해임리유에 대하여 똑똑히 알아야 하겠소. 아놀드는 옳게 일하지 못했소. 남조선을 옳게 평정 못했거던.》
맥아더가 이렇게 투박한 어조로 아놀드의 해임리유를 단마디로 찍어넘기는데 그에게로 흘끔 고개를 돌린 하지의 세모꼴눈이 거칠게 번뜩거리였다.
맥아더가 그 눈빛의 의미를 무시해버리듯 여전히 고저가 없는 랭담한 어조로 이야기를 엮어나갔다.
《물론 당신들은 점령군으로서 1단계의 작전 말하자면 공격전야의 포병대의 준비사격은 멋지게 해냈소. 에, 정치적용어로 이야기한다면 뭐라던가, 그렇지, 과도기의 임무는 잘해냈단 말이요. 당신들은 인민위원회들을 쓸어버렸고 좌익을 지하에 몰아넣었소. 1차미쏘회담을 걷어치움으로써 미국의 반도정책이 낭떠러지에 굴러떨어질수 있는 아슬아슬한 고비도 용케 넘겼소. 현지의 공산화를 막음으로써 미국의 대조선정책의 첫 단계목표를 달성했단 말이요. 헌데 이 정도의 작전은 사실상 포병대 소좌정도로서도 얼마든지 해낼수 있소. 사격제원을 알려주고 명령을 내리면 포탄은 날아가고 목표는 소멸되기 마련이거든. 당신들 최정예군단 7만 8천의 무쇠주먹을 가지고 그쯤한것을 공로라고 이름을 붙일수는 없소. 그건 정치가 아니라 점령군의 힘의 시위에 불과하거든. 헌데 보다 정치적으로 성숙된 과제를 맡겨주자 아놀드의 지도력이 한계점을 나타냈단 말이요. 나의 사령부는 유감스럽지만 아놀드가 미군의 대조선정책을 집행해낼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소.》
맥아더는 예까지 마치도 보고서를 읽듯이 띠염띠염 쉬여가며 말하고나서 은장식을 한 굵다란 곰방대를 입귀에 가져갔다.
하지는 례사롭지 않게 고저가 없이 메마르게 울리는 맥아더의 말투며 아놀드에 대한 질책이 사실상 자기의 뒤통수를 겨누어 던진것이라는것을 대뜸 알아차렸다. 이래서 아마도 시간이 금쪽같은 시기에 자기를 도꾜에 불러댄 모양이였다.
맥아더는 하지가 여전히 푸른 휘장에 거친 눈길을 박은채 덤덤해있자 몇모금 빨지 않은 곰방대의 불을 재털이에 대고 신경질적으로 털어버렸다. 그리고는 옆자리에 공손하게 앉아있는 애치슨을 돌아보았다. 당신이 뒤말을 넘겨받으라는 속심이였다.
미국의 외교권을 틀어쥘 꿈을 안고있는 야심적인 외교관인 애치슨(그는 일후에 미국무장관으로 자기의 꿈을 실현하였다.)은 시누런 별을 어깨에 무겁게 메고있는 장성들을 거만하게 굽어보다가 맥아더의 말을 받았다.
《한마디로 말하면 아놀드는 정치에서는 둔재요. 정치감각이 퇴화된 사람이요. 해임리유는 바로 그것이요.》
하지는 그 말에 놀란듯 매서운 눈길로 그를 쏘아보았다. 애치슨이 독설가라는 말은 여러번 들어오지만 이건 너무 도수를 넘는다. 그의 지적은 맥아더보다도 더 랭소적이고 로골적으로 자기를 강타한다.
《당신들이 상식으로 알겠지만 우리의 대조선정책은 궁극에 있어서는 깔고앉자는것이고 당면해서는 그 명분을 세우고 기틀을 마련하자는것이요. 그런데 어떻게 되여 세개 사단이 깔고앉은 정복지에서 일본치하에서도 흔치 않았던 소요가 끊임없이 일어나는가. 어떻게 해방자의 월계관을 목에 건 미국에 대한 민중항쟁이 우리의 무자비한 철의 세례를 받은 일본이나 도이췰란드가 아니라 반도에서 터져나왔는가. 반미농도로 말하면 일본에 비할바도 아닌 서울의 공기가 어째서 그리도 매운지 리해가 안된단 말이요. 지금 반도에서 벌어지는 모든 소란스러운 일들에 미국의 이름이 거들어지는것은 참으로 통탄할만 한 일이요. 그건 아놀드가 이태가 가까와오도록 미군정을 이어받을 권력기관의 실체를 찾아내지 못한데 있소.》
하지는 애치슨의 이야기가 길어질수록 귀가 따갑기 그지 없었다. 맥아더가 빙빙 에돌아 뒤통수를 쳤다면 애치슨의 질책은 면상을 마구 후려치는 방망이와도 같은것이였다. 그의 이야기는 일종의 조롱이고 모욕이다. 그런대로 참는수밖에 없다. 애치슨은 현실을 그대로 빠개놓고 마구 란도질을 해댄다. 사실이 그런데야 울며 겨자먹기로 씹어삼키는수밖에 없었다.
《다그치시오. 늦잡아서는 안되오. 시간을 놓치면 우린 많은걸 잃게 되오. 새롭게 시작한다는 각오를 가지고 달라붙어야 합니다. 어차피 우린 2차미쏘회담에 나서야 할거요. 그런데 2차미쏘회담에서 모쓰크바3상회의결정리행이 구체화되면 미국의 립지는 최소화되고 우린 반도에서 발을 뽑게 될거요. 그렇다고 여론을 납득시킬수 있는 명분이 없이 협상을 계속 중도반단할수는 없소. 그럼 2차 미쏘협상을 어떻게 처리하겠는가. 이건 그때에 가서 봅시다. 당장은 북조선의 공산세력에 대치해놓을수 있는 집단을 무어내야 하오. 일본을 모델로 삼으시오. 진주만을 불더미로 만들어놓고 태평양을 저들의 호수로 만들어놓으려고 덤비던 야마도족속이 얼마나 고분고분해졌소. 그렇소. 일본을 모델로 삼으시오.》
일본을 모델로 삼으라는 이야기를 곱씹자 하지는 충동적으로 그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로골적으로 자기들을 내세우며 자화자찬하는 애치슨의 이야기가 점점 시시껄렁한 랑설로 들렸다.
일본의 정치를 평정하는데서 애치슨의 배후조종이 크게 실적을 보였다는것은 워싱톤정가에서 이미 여러차례 돌아간 후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공식적인 장소에서 저들을 따라배우라고 일장 훈시까지 하는것은 너무도 치졸한짓이다.
(자식, 도꾜에 틀고앉아 호통을 치지 말고 너희들이 건너와서 해봐라.)
하지는 이렇게 불끈거리는 속을 가까스로 누르느라고 세모난 주걱턱을 부르르 떨었다.
맥아더가 언듯 하지의 불편한 마음속을 그 주걱턱에서 알아본듯 애치슨의 이야기를 중둥무이하고 끼여들었다.
《중장, 그래 어떻던가?… 그 갓쟁이족속들이 듣던바 하고는 다르던가?》
하지는 맥아더의 돌발적인 조롱기 어린 질문이 뜻하는바를 딱히 모르고 색안경을 다시 코등우에 걸어놓은 맥아더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문득 한 생각이 그의 뇌리에 번개치듯 떠올랐다.
이것은 2년전 남조선의 모든 령역의 통수권을 거머쥔 점령군사령관의 직함을 안겨주면서 자기의 잔등을 너그럽게 다독여주며 뇌까리던 맥아더의 훈시였다.
《장군, 축하하오. 장군은 이제부터 조선반도의 통수권자요. 하지만 뭐 어렵게 생각할건 없소. 조선사람들이란 얼마전까지만 해도 갓 쓰고 하늘소 타고다니던 족속들이요. 이건 내가 소년시절에 선친과 함께 직접 현지에서 체험했던바요.》
하지는 그날의 일이 떠오르자 이마가 좁고 하관이 벌어진 세모진 얼굴을 찡그린채 저도모르게 화가 우쩍 동했다.
(빌어먹을 갓 쓰고 하늘소를 타고 다녔다고?… 흥, 남하는 일은 다 땅짚고 헤염치기라는거지, 주제에…)
그는 거친 눈길로 모멸과 질책이 묘하게 얽혀있는 맥아더의 상판을 보며 속으로는 랭소를 지었다.
원래 맥아더수하에서 오래동안 굴러온 하지는 그의 은총을 받아 3성장군까지 되기는 했어도 미국민의 우상으로 되여있는 맥아더의 인격을 탐탁치 않게 여기고있었다. 하지에게는 맥아더가 미국회가 기립박수로 평가한 백전로장으로 보이는것이 아니라 흰소리 잘 치는 대포쟁이요 고집과 변덕이 많은 허세군으로나 보일뿐이였다.
지금 맥아더는 트루맨대통령의 빈번한 호출지령도 《태평양을 한가히 날아다닐 여가가 없다》는 극히 방자하기 그지 없는 단마디로 무시해버리면서 《군인은 명령에 불복하는자가 더 유명해진다》고 함부로 지껄여대는 안하무인이 되였다. 하지만 그건 단연코 태평양전쟁에서 숨진 수십만 장병들의 피로 얻어진 권위일뿐이지 그 자신의 인격이나 비범성으로 차례진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하지였다. 맥아더는 이따금 수하막료들도 종잡기 어려운 황당한 수작질을 련발하여 막료진이 그 수습에 곤욕을 치르게 하군 한다. 정황판단과 정세평가에서도 전문가들의 보고서보다도 자기나름의 분석과 추리와 직감을 중시하는 맥아더였다. 그에게는 《쪽발이족》에 정복되였던 조선사람들의 짓눌린 모습만 있고 부단한 항거로 사무라이들의 대동아공영권의 현실화된 꿈을 배후에서 처갈긴 백의민족의 기개는 안중에 없는것이 분명하다. 그러니 조선사람들에 대한 맥아더의 그 희떠운 평가도 어리석기 그지 없는 황당한것일수밖에 없다. 하지가 만난 이 나라의 정치인들치고 누구 하나 갓 쓰고 하늘소 타고 오는 사람도 없었지만 그들중 어느 한 인물도 쉽게 휘여잡을 위인이 없었다.
… 하지가 남조선에 들어와서 처음 만난 현지의 정치인이 려운형이였는데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다리가 꿋꿋해온다.
하루는 정무담당 군정장관 아놀드가 기가 죽어가지고 찾아왔다. 그가 하는 말이 미국이 상륙하기전에 정권형태로 존재한 건국준비위원회 위원장 려운형에게 군정장관의 개인고문으로 되여달라고 찾아갔다가 퇴를 맞고왔다는것이였다. 그것은 이미 하지와 토론이 있었던 문제였다.
려운형이 대답하기를 《남조선에 우리가 인민공화국을 세웠는데 그대들이 우리의 고문이 될수 있어도 내가 그대의 고문이 되는것은 주객이 뒤집힌것이다.》라고 했다고 한다.
《불손하기 그지 없군. 려운형이 어떤놈이기에 감히 점령군장관한테 그따위로 엇서는가.》
하지는 대뜸 자리를 차고 일어나며 방이 떠나가도록 고함을 질렀다.
《그 방자한놈이 조선사람이 옳을테지.》
《각하, 사령관각하께서 려운형씨를 친히 만나주시여 협조를 부탁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는 일본천황이 대만총독이 돼달라는 요구도 사절했던 인물입니다.》
《좋소. 당장 끌고오시오.》
하지는 기고만장해서 윽윽했다.
얼마후에 아놀드의 안내를 받으며 려운형이 들어왔다.
려운형이 가까이 다가서는 순간 키가 꺽두룩하면서도 머리가 작고 머리칼을 조야스럽게 짧게 깎은 하지는 나비수염을 기른 풍채 름름한 그 사나이앞에서 자기도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기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커다란 두눈에서 금시 빛줄기가 뿜어져나오는듯싶어 하지는 자연히 자세가 꿋꿋해졌다.
《하지중장, 내가 려운형입니다. 당신이 나를 찾는 용무는 무엇이요?》
려운형은 류창한 영어로 이렇게 먼저 입을 열었다. 그는 여전히 엄숙한 눈길로 하지의 얼굴을 쏘는듯 바라보았다.
《려운형선생, 이렇게 만나니 반갑습니다.》
하지는 그제야 점령군사령관의 위엄을 다시 회복하고 그를 쏘파에 앉으라고 손짓을 하고는 자기도 그의 옆자리에 와서 앉았다. 려운형이 자리에 앉자 하지는 미군이 태평양전쟁을 힘겹게 치른 이야기를 장황하게 하고는 남조선에서 질서가 잡힐 때까지 군정을 실시할것이니 그동안 군정장관을 도와주다가 때가 되면 도로 정권을 이양받으라고 루루하게 부탁하였다.
려운형이 하지의 언행이 듣던바와는 달리 고압적이 아니고 계속 사절하기도 난처하여 당분간 그렇게 해보자고 하고는 일어났다.
하지는 그에게 그러면 아놀드장관과 함께 고문실에 들려달라고 부탁하고 그를 문밖에까지 나와 상냥하게 바래워주었다.
그런데 그가 떠나간지 5분도 되지 않아 도로 들어왔다.
《하지중장, 당신은 조선사람들의 지탄을 받고있는 송진우나 김성수와 같은 친일매국노들과 날더러 자리를 같이 하라는거요? 똑똑히 들어두시오. 당신들은 조선사람을 잘 알아야 하오. 난 당신이 부여한 고문직을 이로써 끝낼가 하오.》
려운형이 고문실에 갔다가 거기에서 이미 임명된 친일분자들인 김성수와 송진우를 보고 돌아서 온 모양이였다.
하지는 그에게서 사태에 대한 설명을 듣고저 다가갔으나 때는 이미 늦었다.
려운형은 인사도 없이 총총히 사라지고말았다.
《저게 갓 쓰고 하늘소 타고다닌다는 조선사람이라는건가.》
려운형의 도도한 기상에 얼이 빠진 하지는 저도모르게 그가 사라진 나들문쪽을 풀어진 눈으로 멀거니 바라보다가 혼자소리로 중얼거리였다.
두번째로 만난것이 리승만이였다. 미국무성은 리승만은 고집이 세지만 골수에까지 친미로 젖어있는 사람으로서 미국의 리익을 위해 충실히 복무할것이라는 소개장을 보내왔다.
그러나 하지는 리승만의 야단스러운 입국때부터 불만이였다. 하지는 일본놈들이 쫓겨나자마자 《상해림시정부》의 《해외대표》라는 공식직함을 가지고 입국하려는 리승만의 청원을 서울민심을 고려하여 일축하여버리였다. 그렇게 하자 리승만은 미국에서 사귄 미국인동료들을 내세워 미전략정보국으로 하여금 미군대령복을 입히게 하는 놀음을 벌리도록 하고 그후에는 맥아더가 직접 비행기를 보내주도록 막후공작을 벌리였다. 그리고는 측근미국인들이 서울에 선발대로 와서 설치게 한 다음 들어왔던것이다.
리승만은 첫 대면에서 하지를 은근히 경계하면서도 자기의 주장을 내세울줄 알았다. 만나는 회수가 늘어나자 하지에게는 이 늙다리가 권력욕에만 환장이 되여 돈과 재물과 주색을 마구 휘뿌리는 광인이라는 판단이 갔다. 그러나 미국의 여러 인물들이 늙다리의 권력독점야망에 놀아나고있는것을 볼 때면 부아가 났다. 그 대표적인물이 구펠로였다.
미전략정보국의 부국장이라는 고위전직까지 가진 구펠로는 리승만을 정치의 중심에 내세우기 위하여 전력을 다하고있었는데 전략정보국과 미국무성의 후광을 받아 그 도수가 위압적이여서 그와 마주서기조차 싫었다. 그러니 리승만을 다루기도 무척 까다롭고 조심스러웠다. 김구나 김규식이도 여러차례 만나보았으나 그들 역시 자기들의 당리당략에서 한발자국의 양보도 타협도 하지 않았다. 맥아더가 크게 문제될것이 없다던 그 조선사람들이 정치적배심에 있어서나 정치술수에 있어서 도무지 휘여잡을수 없었다.
달이 바뀌여질수록 백악관과 국무성은 남조선에서 북의 공산력량과 견줄수 있는 친미적인 정치세력을 만들어내라고 불같은 독촉이였다. 하지만 하지는 서울에 들어선지 두해가 되여오는 이 시점에까지 남조선의 우익세력들을 하나의 세력권으로 결합시키는것은 고사하고 아직 그 중심에 세울 인물도 선정하지 못하였다. 이제 당장 전조선적인 총선거를 실시한다면 자기의 관할지역을 대표하여 이 나라의 정상에 내세울 인물이 없다. 아무리 달래고 위협하여도 정치의 주도세력들은 저마다 자기 두령의 휘하에서만 움직이면서 부단한 리합집산으로 우익과 중도세력의 혼선만 빚어내고있었다. 최근에 와서 리승만이나 김구는 로골적으로 자기에게 도전하면서 미국무성을 상대로 고소질까지 하기 시작하였다. 이러니 맥아더가 《하지, 그 친구가 정치로 말하면 갓 국민학교를 졸업한 셈이니 좀 더 기다려주자》고 《도량이 넓게》 관용을 베푸는가 하면 국무성의 양복쟁이들에게서 《정치학의 1장도 떼지 못한 외교무식쟁이》라는 치욕스러운 뒤공론을 들을만 하게 되였다. 헌데 맥아더의 잠꼬대는 얼마나 얼빠진것인가. 갓 쓰고 하늘소 타고 다니던 보잘것없는 족속들이라고? 흥… …
맥아더는 오만상을 풀지 않고 생각에 잠겨있는 하지를 보다가 《중장, 우린 군인들이야. 정치는 군인의 체질에 맞지 않거든. 그래서 정치란 요지경속처럼 대중할수 없다고 하지 않는가.》하며 어조에 아량을 담아 하지의 불만을 눙쳐주느라고 왼심을 썼다.
그러나 그 소리도 하지에게는 곱게 들리지는 않았다. 여전히 정치초년생이라는것을 강조하는듯싶다. 하지만 상대가 상대니만치 꿈틀거리는 불단지를 꾹 누르고 가까스로 흔연한 미소를 만들어내고는 애매하게 대꾸했다.
《글쎄요.》
시종 불편한 심사를 가까스로 이겨내는 하지를 어루만져주기 위해 맥아더는 그들을 지역의 유명짜한 무녀들이 참가하는 저녁만찬에 주빈으로 초청한다고 하면서 사업상용무는 끝났다는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하지는 머리가 어지럽다는 핑게로 점잖게 사절하고는 브라운만 남겨놓고 도꾜로 올라왔다.
다음날 맥아더는 친히 데이고꾸호텔에서 류숙하고있는 그에게 전화를 걸어 중장이 한번 시원한 해풍에 려독을 풀라고 삽삽하게 이야기하면서 자기의 전용요트를 타고 유람삼아 돌아가라고 특례를 베풀었다.
하지는 그것마저 사양할수가 없어 고맙다고 깍듯이 인사를 올리고는 《5성》에 몸을 담고 요꼬스까를 떠났던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