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당은 선생을 믿습니다》

 

찌는듯 무더운 날인 해방된 이듬해의 7월 25일이였다.

위대한 김일성장군님께서는 남조선에서 들어오는 한 애국인사를 맞으시기 위하여 바쁘신 일도 뒤로 미루시고 어느 한 지방에로 향하시였다.

당시 북반부에서는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밑에 여러 대중단체들을 조직하는 사업이 성과적으로 진행된데 기초하여 1946년 7월 22일 북조선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위원회(민전)가 결성되였으며 각계각층의 광범한 민주력량이 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의 기치아래 하나의 정치적력량으로 굳게 결속되였다. 또한 1946년 8월 공산당과 신민당이 합당하여 대중적당인 북조선로동당으로 강화발전됨으로써 민전에서의 로동당의 령도적지위가 보장되게 되였다.

한편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남조선의 복잡한 정치정세를 예리하게 분석하신데 기초하여 남조선공산당과 민주정당인 인민당과 신민당을 합당하여 로동당으로 발전시킬데 대한 방침을 제시하시고 그 실현을 위한 사업을 정력적으로 이끌어가고계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뜻을 받들어 허헌선생을 비롯한 애국인사들이 합당준비사업을 힘있게 밀고나가게 되자 미제는 이를 막기 위해 탄압을 더욱 강화하는 한편 안으로부터의 분렬책동에 매여달렸다. 미제의 조종을 받는 박헌영이 합당사업을 파탄시키는 길로 나가자 이때라고 생각한 엠엘파들도 분파의 길로 나가기 시작했다. 이로 하여 남조선에서의 3당합당사업은 엄중한 난관에 봉착하였다.

바로 그러한 때 남조선의 신민당에서 활동하던 허헌선생이 그 타개책을 찾기 위해 자신을 뵙고저 한다는것을 아신 수령님께서는 그를 평양으로 부르시였다. 하여 허헌선생이 또다시 북행길에 올랐던것이다.

수령님께서는 로년에 험한 산길을 타고 사선을 넘느라고 고생하였을 그를 생각하여 미리 사람을 보내시여 38°선을 넘어서자 즉시 충분히 휴식시키도록 하시고 몸소 그가 머무르는 곳까지 나오시는 길이였다.

그날 오후 위대한 수령님께서 타신 승용차는 허헌선생이 머물러있는 숙소앞에 서서히 멎어섰다.

숙소앞마당에 나와 서있던 허헌선생은 승용차에서 내려서시는 수수한 여름옷차림의 젊으신 장군님을 뵙는 순간 흥분을 금할수 없었다. 오랜 세월 꿈결에도 만나뵙기를 소원했던 김일성장군님께서 몸소 이곳까지 나오실줄을 전혀 생각지 못했던것이다.

수령님께서는 허헌선생의 이름을 부르시며 그의 손을 뜨겁게 잡아주시였다.

돌이켜보면 망국의 비운을 한탄하며 민족을 이끌어줄 위대한 령도자를 애타게 그리여 헤매인 그 나날은 과연 얼마였던가. 더우기 해방후 력사의 소용돌이속에 깊숙이 빨려들고있는 남조선정국을 보며 김일성장군님의 령도를 받을 그날을 얼마나 애타게 갈망하여왔던가.

허헌선생은 망국의 기운이 짙어가던 리조 말엽부터 우국지심으로 조선이 나아갈 길을 찾아 몸부림쳐왔고 후날 변호사로서 일제와 매국노들에게 맞서 애국적지조와 량심을 지켜왔다. 그 나날 그는 김책이 공산주의운동관계로 서울 서대문형무소에서 감옥살이를 하게 되였을 때 자진하여 변호를 맡아주었을뿐아니라 출옥후 그가 다시 지엔다오로 떠날 때에는 집물건을 저당잡혀 마련한 돈을 로비로 보태주기도 하였다.

후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렇게 회고하시였다.

《허헌선생이 김책의 변호를 서준것은 순수한 애국심의 표현이였습니다. 조선의 애국자들이 조선사람으로서 응당 해야 할 일을 하고도 벌을 받는것이 가슴아프고 억울해서 무료변호를 서준것입니다. … 그러고보면 허헌선생은 참으로 훌륭한 사람입니다.》

이러한 반일활동을 한것으로 하여 그는 일제놈들에게 체포되여 서대문형무소에서 감옥살이를 하였으며 1944년 가을 병보석으로 풀려나와 8. 15해방을 맞을 때까지 병석에 누워있었다.

해방이 되자 그는 서울에서 홍명희선생을 비롯한 애국적인 활동가들과 함께 김일성장군환영준비위원회를 뭇고 해방의 은인이신 김일성장군님의 서울입성을 손꼽아 기다리면서 미군정의 통치를 반대하여나섰다.

하지만 날이 감에 따라 남조선시국이 점점 엉망진창이 되여갔다. 그럴수록 정확한 로선과 령도의 절박감을 느끼게 된 그는 오직 민족의 태양이신 김일성장군님께서만이 민족이 나아갈 앞길을 밝혀주실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그이께 편지를 써서 인편을 통하여 올리였다. 그리고 얼마후에는 수령님으로부터 회답서한을 받게 되였다.

허헌선생은 위대한 수령님의 회답서한에서 민족의 활로를 찾게 되였으며 그 어떤 정치적소용돌이속에서도 흔들림없을 마음속기둥을 깊이 세우게 되였다.

그런데 오늘은 그토록 뵙고싶던 절세의 위인을 만나뵙게 되였으니 그는 격동된 마음을 금치 못해하며 위대한 수령님께 인사를 올리였다.

《장군님! 조국과 민족의 운명을 구원해주시고 저희들이 나아갈 길을 항상 밝혀주시는 장군님께 충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저때문에 이처럼 먼길을 몸소 나오시다니 황송하기 이를데 없습니다.》

그러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가볍게 웃으시며 선생을 제대로 도와드리지 못하여 오히려 제가 죄송합니다, 지난번에 선생이 저를 찾아오셨다가 헛수고를 하였고 또 이렇게 험한 길을 오시는데 제가 어찌 평양에 앉아서 선생을 맞을수 있겠습니까라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겸허한 말씀의 마디마디에는 진정 자애의 정이 차넘치고있었다.

사실 허헌선생은 얼마전에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뵈오려고 평양에 왔다간 일이 있었다.

그때 그이께서는 외국방문중에 계셨다. 외국에서 돌아오시여 그가 왔다갔다는 소식을 들으셨을 때 수령님께서는 몹시 아수해하시였다. 그런데 부득이했던 그때 일을 두고 또 이렇게 사과의 말씀까지 하시는것이 아닌가.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날 그와 오래동안 자리를 같이하시고 남반부에서의 3당합당정형에 대해 깊이 료해하시며 합당사업에서 지침으로 될 강령적인 말씀을 주시였다.

이날 허헌선생은 그간의 사업정형을 수령님께 말씀올리는 과정에 합당문제와 관련하여 인민당 당수 려운형도 박헌영과는 합작을 못하겠다고 도리를 흔든다고 덧붙여 말씀드렸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근심어린 안색으로 생각에 잠기셨다가 자리에서 일어나시여 그 문제에 관하여서는 아마 선생보다 저의 안타까움이 더할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잘못된 생각을 하거나 그릇된 길로 나가는 사람들을 꾸준히 교양하여 옳은 길로 들어서게 하여야 합니다, 그리하여 남조선에서 3당합당을 반드시 이룩하여야 합니다, 단결은 승리를 가져오며 분렬은 패배를 의미하기때문입니다라고 말씀하시였다.

신중한 어조로 하시는 그이의 말씀을 깊은 자책속에 받아안고 한동안 머뭇거리던 허헌선생은 수령님께 지금 서울에는 별의별 사람들이 다 있는데 어떻게 합작을 할수 있겠는지 자기로서는 그 방도를 찾을수 없다고 솔직히 말씀드리였다.

그러자 그이께서는 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의 중요성에 대하여 강조하신 후 남조선의 민주정당들과 사회단체들속에는 별의별 사람들이 다 들어있는것이 사실이다, 우리는 그 사람들을 꾸준히 교양하여 옳은 길에 들어서게 하여야 한다, 우리 민족대렬내부가 서로 분렬되여 옥신각신하는것은 바로 반동세력이 원하는것이다, 민주주의의 원쑤, 우리 민족의 원쑤들은 무엇보다도 로동자, 농민, 근로인테리 등 근로인민이 사분오렬되여 서로 싸우고 서로 물어뜯는것을 원한다, 지금 남조선의 민주정당들과 사회단체들이 뿔뿔이 갈라져서 서로 당파싸움과 《령도권》다툼을 하고있는 바로 그것을 원하고있으며 기뻐하고있다고 하시였다. 그러신 후 이러한 분렬책동은 반동파들이 세계 도처에서 공통적으로 쓰고있는 상투적수단이다, 우리는 여기에 속지 말아야 하며 여기에 넘어가지 말아야 한다, 모든 애국적민주력량의 통일을 위하여 특히 근로인민대중의 단결을 강화하기 위하여 3당합당은 반드시 이룩하여야 하며 전체 근로자들과 전체 인민의 단합된 힘에 의거하여 반동세력을 물리치고 조국의 통일독립을 달성하여야 한다고 절절히 말씀하시였다.

미제와 반동세력들의 악랄한 분렬책동에 대처하여 남반부의 진보적인 정당, 사회단체들이 나아갈 앞길을 환히 밝혀주시는 그이의 말씀을 받아안으며 허헌선생은 커다란 감동을 금치 못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계속하여 그에게 합당사업에서 나서는 암초들을 극복해나갈 방도들에 대해 차근차근 가르쳐주시고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우리 당은 선생을 믿습니다.》

다함없는 믿음을 부어주시는 그이의 모습을 우러르며 그는 순식간에 흉중을 꽉 메운 감격과 고마움을 터쳐올리려 하였으나 그 심정을 집약할수 있는 적중한 말이 인차 떠오르지 않아 가슴을 들먹이며 눈굽을 적시였다.

그때로 말하면 남조선에서는 민족의 단합을 파괴하려는 미제와 반동파들의 교활한 모략책동에 박헌영, 리승엽도당의 반당반혁명적행위가 겹치고 저마다 《령도자》로 자처해나서며 벌리는 부질없는 망동까지 덮씌워져 조성된 사태를 가늠하기조차 어려운 형편이였다.

이러한 때 남조선인민들을 하나의 정치적력량으로 묶어세워 통일애국의 길로 이끌어나갈 근로대중의 전위대인 남조선로동당을 창건하는가 못하는가 하는 문제는 실로 중대한 문제가 아닐수 없었다.

이 중요한 사업의 책임적위치에 아직은 민족주의사조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자신을 세워주시니 이보다 더 큰 믿음이 세상에 또 어디 있겠는가.

하기에 그는 《장군님, 분에 넘친 황송한 말씀이십니다. 저는 언제 어디서나 장군님의 뜻을 받들어나가겠습니다.》라고 말씀올리며 절대적인 신념과 의리를 지니고 깨끗한 량심으로 그이의 뜻을 끝까지 받들어나갈 굳은 맹세를 마음속깊이 다지고 또 다지였다.

남조선으로 돌아간 허헌선생은 높은 사명감으로 3당합당실현에 모든 정열과 심혈을 다 기울이였다.

그리하여 남조선에서의 3당합당사업은 많은 어려움을 겪었으나 수령님께서 의도하시는대로 추진되여나갔으며 마침내 남조선로동당을 창립하게 되였다.

허헌선생의 사업과 생활에 대하여 언제나 깊은 관심을 돌리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남조선로동당창립후 이 당의 위원장으로 사업하던 그에게 신변상위험이 닥쳐왔을 때에는 그를 평양으로 데려오도록 조치를 취해주시였다. 그후에는 북남조선의 모든 애국적민주력량을 통일단결시키는데서 한몫 하도록 내세워주시였으며 공화국의 창건을 온 세상에 선포한 최고인민회의 제1차회의에서는 최고인민회의 의장, 북남조선로동당합당시에는 당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 위원의 중책을 맡겨주시였다.

그밖에도 법제위원회 위원장,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의장단 성원, 김일성종합대학 총장의 직책에 내세워주신 수령님께서는 그에게 언제 어디서나 인민의 편에 튼튼히 서서 모든것을 다 바쳐 투쟁하겠다는 각오와 투지만 있으면 그 어떤 어려운 일도 해낼수 있다는 고귀한 투쟁진리를 깨우쳐주시며 사업방법으로부터 사업작풍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 가르쳐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손길아래 허헌선생과 같은 어제날의 수많은 민주인사들이 이렇게 민족의 대단합과 새 조국건설의 골간으로 성장하였으며 통일애국력량이 굳건히 준비되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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