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빨찌산대장에게 베푸신 믿음

 

해방된 이듬해의 6월 2일이였다.

위대한 김일성장군님께서는 남조선공산당조직의 서한을 가지고 찾아온 한사람과 오래도록 이야기를 나누고계시였다. 그가 바로 후날 지리산의 호랑이로 조국의 추억속에 깊은 자취를 남긴 리현상이였다.

이날 그를 반갑게 맞아주시고 건강에 대하여 따뜻이 물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당을 조직사상적으로 강화할데 대한 문제로부터 근로정당지도자들과의 사업을 잘하여 공산당과 인민당, 신민당사이의 행동통일을 실현할데 대한 문제, 적들의 반동공세를 폭로분쇄하기 위한 정치공세를 주동적으로 벌릴데 대한 문제 등에 대하여 구체적인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해방전 6. 10만세시위투쟁과 광주학생시위투쟁을 비롯한 반일대중투쟁에 앞장서 싸워온 리현상은 한때 조선공산당재건운동에도 참여했었다. 그는 대단한 정열을 가지고 일하였다. 하지만 위대한 령도자의 옳바른 지도를 받지 못한 개인의 정열은 한갖 종이장에 달린 불과도 같은것이였다. 그에게 차례진것은 옥살이의 뼈아픈 고통뿐이였다. 일제경찰에 체포된 그는 서대문형무소에서 옥살이를 하던중 박달, 리제순, 권영벽 등 항일투사들을 만나게 되였으며 그들을 통하여 비로소 위대한 김일성장군님의 전민항쟁방침을 전해듣게 되였다.

이에 대해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회고의 말씀을 하시였다.

《그 구상을 알게 된 때로부터 그는 단식을 하였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살아나가서 항쟁대오를 뭇고 왜놈들과 결판을 내자는것이였습니다.

20여일간의 단식끝에 생긴 병으로 하여 가석방된 리현상은 얼마동안 몸조리를 하다가 지리산에 들어가 징병, 징용을 피해서 숨어있는 청장년들과 학생들로 무장소부대를 편성하였습니다.

리현상이 타고앉은 지리산은 해방구형태의 근거지였습니다. 그는 우리와의 련합작전을 위해 백두산에 련락원도 파견하였다고 했습니다.》

병보석으로 출옥한 후 지리산을 타고앉아 일제경찰서를 습격하고 친일매국노, 악질주구들을 청산하는 투쟁을 벌리던 그는 해방이 되자 남조선에서 공산당조직을 내오기 위한 사업에 관여하였으며 1945년 9월 당건설과 관련한 수령님의 가르치심을 받기 위해 북으로 들어왔었다.

그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서울에서 찾아온 리현상을 처음으로 만나시였다.

수령님께서는 초면이면서도 믿음이 가는 그와 남조선에서의 당, 근로단체건설을 비롯한 여러가지 문제를 놓고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나누시였다.

이날 리현상은 김일성장군님을 서울에 모시고싶어하는 남녘겨레의 절절한 념원을 아뢰이고 그이의 통일국가건설구상을 실현하는데 자기의 모든것을 다 바칠것을 굳게 맹세다지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후 그를 처음으로 만나던 때를 회고하시며 그때 리현상과 권오직이 같이 왔는데 리현상은 갱핏하였고 권오직은 좀 뚱뚱하였다, 권오직은 내가 남에서도 공청을 해산하고 민청을 조직하라고 말하자 말로는 접수하면서도 아수해하였다, 그러는것을 리현상이 옆에 있다가 장군님께서 하라는대로 할게지 뭘 그러는가고 박아주었다, 리현상은 내 말을 무조건 지지하였다라고 말씀하시였다. 그날 수령님께서는 리현상이 자신의 말을 무조건 지지하였다는 말씀을 여러번이나 반복하시였는데 그 말씀은 사실상 그에 대한 최상의 평가였다.

바로 그러한 리현상을 이날 또다시 만나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에게 조국통일의 방도며 각계각층 정당, 단체들과의 사업문제, 급변하는 정세에 대처하기 위한 전략문제 등 많은 문제들에 대하여 명철한 해답을 주시였다.

수령님께서는 리현상을 동지적으로뿐아니라 인간적으로도 굳게 믿으시였으며 조국통일투쟁에서의 그의 역할에도 큰 기대를 걸고계시였다.

《화산》, 이것은 리현상의 별호였다. 수령님께서는 인정깊고 침착하면서도 정의를 위해서는 화산처럼 분출하는 이런 인간에 대하여 뜨거운 정과 사랑을 느끼시였다. 하기에 그와 함께 통일의 중대사도 진지하게 론하시며 누구에게나 주기 어려운 무거운 과업도 선뜻 안겨주군 하시였다.

1948년에 그를 또다시 만나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어려운 환경에서 활동하는 그를 생각하시여 권총과 함께 시계, 승용차를 보내주시였다. 오늘도 만사람의 심금을 뜨겁게 울려주는 한장의 모포에 대한 이야기도 이때 생겨난것이였다.

나라가 해방되였어도 군용모포 한장을 덮으시면서 불철주야 건국사업에 전심하고계시던 수령님이시였다. 그때 유럽의 어느 한 나라 국가수반이 위대한 수령님께 올린 선물들중에는 흰 바탕에 연록색 계수나무잎사귀무늬가 새겨진 한장의 모포도 들어있었다. 모포 한장도 귀한 때여서 항일투사들은 몹시 기뻐하며 수령님께서 그 모포를 꼭 사용하시도록 간청하였었다. 그런데 수령님께서는 그 모포를 리현상에게 돌려주시는것이였다. 이것은 그를 지켜주는 호신부와도 같은것이였다.

그 모포를 안고 남조선으로 돌아가 한밤중에 집에 들어간 그는 가족들에게 감격에 겨운 목소리로 말하였다.

《우리 민족의 령도자이신 김일성장군님께서 친히 이 모포를 우리 가족들에게 보내주셨소. 38°선을 넘어온 귀중한 모포요. …》

그후 리현상은 수령님의 뜻대로 공청을 민청으로 개편하는 사업에서도, 당건설의 어려운 과업을 실현하는데서도 중심인물로, 적극적인 활동가로 활약하여 후세에 그 이름을 남기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만을 절대적으로 믿고 따르려는 투철한 신념을 지니였기에 그는 박헌영, 리승엽이 배신과 변절을 파쟁의 면사포에 가리운채 남조선혁명운동에 막대한 해독을 끼치는 한편 리현상을 눈에 든 가시처럼 여기고 모해, 제거하려고 책동할 때도 든든한 배심으로 원칙적활동을 할수 있었다.

참으로 수령님의 접견과 가르치심은 리현상이 민족의 위대한 태양의 거룩한 풍모를 심장에 뚜렷이 새겨안고 조국통일을 위한 투쟁의 기치를 끝까지 고수해나갈수 있게 한 힘의 원동력으로 되였다.

그가 지리산에 들어가 파란많은 생애를 마칠 때까지의 처절한 투쟁의 나날들은 그의 통일애국투사로서의 인간적면모를 집중적으로 보여주는 나날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1950년 6월 26일과 7월 8일 전체 조선인민에게 하신 방송연설에서 남녀빨찌산들은 더욱 대담하고 용감하게 빨찌산투쟁을 전개하여 적들의 도로와 철도, 교량, 통신망들을 파괴하고 적의 병력과 무기, 군수물자수송을 파탄시키며 적의 유생력량을 보는족족 소탕하여버릴데 대하여 호소하시였을 때 리현상은 대오를 이끌고 락동강계선으로 진출하여 빛나는 전과를 거두었다.

당시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 보도들과 신문들은 자주 지리산빨찌산의 투쟁소식을 전하군 하였다.

전쟁시기의 리현상의 활동에 대하여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리현상동무는 전쟁때 지리산에서 용감하게 잘 싸웠기에 〈지리산의 호랑이〉라고 하면 적들이 벌벌 떨었습니다.》

이렇게 지리산과 소백산줄기의 험한 산발을 넘나들며 적을 유인, 매복, 기습소탕하는 유격투쟁으로 전쟁승리에 기여한 그는 정전후인 1953년 9월 17일 지리산 빗점골에서 적《토벌대》와의 불의의 교전끝에 희생되였다.

그때 그의 나이는 48살이였다. 그를 붙잡기 위해 수만금의 현상금까지 걸고 날뛰던 적들은 그의 시신에서 목을 잘라 전라북도 금산군의 고향마을에 매달아놓았고 그가 전사한 곳에는 《공산비적 리현상이 죽은 곳》이라는 말뚝까지 박아놓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생은 그것으로 끝난것이 아니였다.

1959년 9월 공화국북반부에서는 그의 장례식이 엄숙히 거행되였다. 이미전에 그에게 수여되였던 공화국영웅메달, 국기훈장 제1급과 자유독립훈장 제1급이 그의 사진앞에 주런이 놓였고 추도사에서는 그의 위훈이 높이 평가되였다. 그리고 1968년에는 렬사증 제1호에 그의 이름이 생생하게 새겨졌다.

이뿐이 아니였다. 1990년 8월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에게 조국통일상을 수여하도록 해주시였으며 신미리 애국렬사릉에 안치된 그의 묘에 20년전에 세상을 떠난 부인의 묘를 합장하도록 크나큰 은정을 베풀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가 세상을 떠난지 수십년세월이 흐르도록 잊지 않으시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추억해주시였다.

주체82(1993)년 7월 26일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탑을 돌아보시던 수령님께서는 《적후인민유격대원들의 투쟁》편 조각군상앞에서 걸음을 멈추시고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리현상은 지리산빨찌산대장을 하였다고 하시며 그에 대해 은정깊은 말씀을 해주시였다.

떠나간 사람에 대한 가장 높은 표창은 아마도 세월의 흐름속에도 영원한 추억이라고 해야 할것이다. 추억, 그것은 사랑이였다. 위인의 사랑을 받는것처럼 고귀한 삶이 또 어디 있으랴.

정녕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더더욱 깊어진 위대한 사랑속에 그는 통일애국투사로 영생의 삶을 누리고있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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