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문제를 민족통일문제의 하나로 보시고
언어는 민족을 특징짓는 중요한 징표의 하나이다. 더우기 외세에 의하여 민족이 분렬된 우리 나라의 조건에서 민족적공통성을 지키고 나라의 통일을 이룩하는데서 언어는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것이다.
그런데 한때 일부 불건전한자들이 이른바 《조선문자개혁안》이라는것을 들고나와 통일적인 민족어발전에 장애를 조성하려고 획책한적이 있었다.
민족의 숙원인 조국통일을 실현하시기 위해 언제나 마음쓰시는 위대한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이들의 주장의 반동성을 꿰뚫어보시고 언어문제를 나라의 통일문제와 결부시켜나가도록 현명하게 이끌어주시였다.
주체53(1964)년 1월 3일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사회과학원 언어학연구소 소장으로 사업하던 김병제선생을 비롯한 언어학자들을 친히 몸가까이 불러주시였다.
자나깨나 흠모하여마지 않는 위대한 수령님을 이제 만나뵙는다고 생각하니 김병제선생의 가슴은 말할수 없는 감격과 흥분으로 하여 높뛰였다. 그의 뇌리에는 열다섯해전 처음으로 수령님을 만나뵙던 잊지 못할 그날의 일이 삼삼히 떠올랐다.
때는 1949년 4월 24일이였다. 그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경치좋은 대동강기슭에 새로 지은 살림집에 이사한 김일성종합대학 교원들의 생활형편을 알아보러 나오셨다가 그의 집을 찾아주시였다.
그의 살림살이형편을 하나하나 따뜻이 물어주시던 수령님께서는 집구경을 좀 하자고 하시며 신발을 벗고 마루에 오르려고 하시였다.
이사온지 하루밖에 되지 않아 집안팎이 정돈되지 못하였을뿐아니라 벽에다 회칠을 하느라고 마루바닥이 어지럽기 그지없었다.
그는 너무도 당황하여 그이의 앞을 막아서며 신발을 신고 올라가셔야 한다고 말씀드렸다.
그러나 수령님께서는 선생이 거처하는 곳인데 어찌 구두발로 들어가겠는가고 하시며 끝내 신발을 벗고 집안에 들어가시여서는 매 살림방들과 부엌, 목욕탕까지 일일이 돌아보시였다.
그이께서는 맨 나중에 서재에 들어가시여 생활에서 곤난한 점은 없는가고 물어주시고는 동행한 일군들을 둘러보시며 당을 따라 남조선에서 온 대학선생인데 잘 돌봐주어야 한다고 간곡히 당부하시였다.
해방전 일제의 민족어말살책동으로부터 우리 말과 글을 지켜내야 한다는 의로운 생각을 가지고 조선어학회에도 관여하였고 해방후에는 남반부에서 조선말사전편찬과 조선말교과서심사 등 일련의 사업들에도 참여하였지만 미제에 의해 조선의 말과 글이 무참히 유린당하는 현실에 혐오감을 느끼고 38°선을 넘어섰던 그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민족어를 지키고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해온 그의 애국의 마음을 소중히 여기시여 김일성종합대학 교원으로 사업하게 해주시고 그가 연구사업을 마음놓고 진행할수 있도록 온갖 조건을 보장해주시였으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까지 내세워주시였다.
그런데 이렇듯 집에까지 친히 찾아오시여 한량없는 은정을 베풀어주시니 그의 마음은 그이에 대한 감사의 정으로 끝없이 설레이였다.
그날 수령님께서는 선생은 일본놈들이 없애버리려고 하던 그 조선말을 배워준다는데 참 좋은 일이라고 하시면서 이제는 마음놓고 배우고 또 배워줄수 있는 좋은 세상이 되였으니 학생들이 자기 나라 말을 똑똑히 알도록 잘 가르쳐줄데 대하여, 앞으로 우리 말을 더욱 깊이 연구하고 그것을 발전시킬데 대하여 강조하시였다.
그때로부터 열다섯해가 지나 그는 오매에도 그리던 위대한 수령님을 또다시 만나뵙게 되였던것이다.
김병제선생을 비롯한 언어학자들이 위대한 수령님께서 계시는 방안으로 들어서자 그이께서는 만면에 환한 웃음을 담으시고 마주 걸어나오시여 그들의 손을 일일이 잡아주신 다음 자리를 권하시였다.
일행이 자리에 앉자 수령님께서는 부드러운 음성으로 김병제선생에게 연구소성원이 얼마나 되는가고 물으시였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륙십팔명입니다.》라고 대답을 드렸다.
그의 말을 들으시고 수첩에 무엇인가 적으시던 그이께서는 가볍게 웃으시며 《예순여덟명입니까?》라고 그의 말을 되받아물으시는것이였다.
순간 그는 머리를 들수 없었다.
언어학을 전문해왔다는 그자신이 우리 생활에 익숙해진 고유한 조선말을 쓰지 않은것이 더없이 부끄럽게 생각되였던것이다.
수령님께서는 그의 속마음을 헤아리신듯 너그럽게 웃으시며 연구소형편을 다 알아보신 다음 벌써 오래전부터 언어문제에 대하여 동무들과 한번 의논해보려고 생각하고있었으나 여러가지 일때문에 지금까지 미루어왔다고 하시면서 오늘 우리 나라 언어학의 발전과 관련된 문제들에 대하여 말하려고 한다고 하시였다.
그이께서는 먼저 한때 일부 사람들이 문자개혁문제를 들고나왔던 사실에 대하여 언급하시였다.
해방후 일부 사람들이 이른바 《조선문자개혁안》이라는것을 들고나왔었다.
그때 그들은 문자개혁안이라는것을 언어학자들에게 마구 내려먹이면서 하루빨리 북반부에서 새 문자를 써야 한다
는것을 주장해나섰다. 그러면서 자기들의 직위를 악용하여 교원, 학생들속에서 《조선문자개혁안》을 지지하는 발표회를 제멋대로 조직하기까지 하였다. 그렇게 되자 일부 언어학자들은 좌왕우왕하였으며 나중에는 그것이 옳은것처럼 론증해보려고까지 하였었다.
그들이 주장하는 《조선문자개혁안》이 민족의 말과 글의 발전에 엄중한 후과를 미칠수 있다는것을 통찰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 문제를 바로잡아주시려고 1947년 12월 26일 귀중한 시간을 내시여 김일성종합대학 력사문학부 교원들과 담화하시였다.
수령님께서는 담화에서 《조선문자개혁안》의 부당성에 대하여 신랄히 비판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문자개혁문제는 무엇보다도 민족문제와 밀접히 결부시켜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조선민족은 예로부터 한강토우에서 같은 말을 하고 같은 문자를 쓰며 살아온 단일민족입니다. 그런데 해방후 우리 나라는 미제의 남조선강점으로 말미암아 남북으로 분렬되였습니다. 이러한 조건에서 북조선에서만 문자개혁을 한다면 하나의 민족이 서로 다른 문자를 쓰게 될것입니다.》
그러시면서 수령님께서는 우리 민족이 남과 북에서 서로 다른 문자를 쓰게 되면 남북사이에 오가는 편지나 출판물도 서로 알아볼수 없게 될것이며 이런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우리 인민의 민족적공통성이 점차 없어지고 결국 우리 민족이 둘로 갈라질수 있는 엄중한 후과가 초래되게 될것이라고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러므로 지금과 같이 나라가 분렬되여있는 상태에서는 문자개혁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하시였다.
그때로부터 오랜 세월이 지난 오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또다시 언어학자들을 몸소 부르시여 언어문제를 나라의 통일문제와 결부시킬데 대한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는것이였다.
그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문자개혁론의 부당성에 대하여 다시금 알기 쉽게 해설하여주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언어는 민족을 특징짓는 공통성가운데서 가장 중요한것의 하나입니다. 피줄이 같고 한령토안에서 살아도 언어가 다르면 하나의 민족이라고 말할수 없습니다.…
그런데 만일 우리가 …문자개혁을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남북조선사람들이 서로 다른 글자를 쓰게 되면 편지를 써보내도 모르게 되고 신문, 잡지를 비롯한 출판물들도 서로 알아볼수 없게 될것입니다. 이것은 조선인민의 민족적공통성을 없애며 결국은 민족을 갈라놓는 엄중한 후과를 가져오게 될것입니다. … 우리 공산주의자들은 자기 민족을 갈라놓는 그 어떠한 문자개혁도 절대로 허용할수 없습니다.》
지난날 문자개혁을 주장한 일부 사람들은 언어를 민족문제와 결부시켜보지 않았으며 더우기 북과 남으로 갈라져있는 우리 나라의 실정에서 문자개혁으로 하여 빚어지는 후과에 대하여 전혀 고려를 돌리지 않았다.
그런데 수령님께서는 언어와 민족과의 호상관계를 명철하게 분석하신데 기초하여 언어가 민족을 특징짓는 공통성가운데서 가장 중요한것의 하나이라는것을 밝혀주시고 나라가 남북으로 갈라진 조건에서 민족의 통일을 고려하지 않고 문자개혁을 한다면 엄중한 후과를 가져오게 된다는것을 깨우쳐주시였다. 그리고 언어문제를 반드시 나라의 통일문제와 밀접히 결부시켜 풀어나갈데 대한 원칙을 또다시 명백히 밝혀주시는것이였다.
그이께서는 계속하여 그들은 당장 문자개혁을 하는것이 과학과 문화의 발전에 큰 지장을 준다는것을 고려하지 않았다고, 과학과 문화의 발전에서 문자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수령님께서는 이어 그들은 문자발전의 국제적인 방향도 고려하지 않았다고, 우리는 자기의 말과 글을 발전시키는데서 세계인민들의 언어발전의 공통적인 방향을 고려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언어발전을 세계공통적인 방향에 접근시킨다는것은 언어의 민족적특성을 버리는것을 의미하지 않으며 또 민족적인것을 살린다는것은 세계공통적인것을 고려하지 않는다는것을 의미하는것이 아니라고 가르쳐주시였다.
수령님께서는 이날 언어학자들에게 언어문제해결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근본원칙들을 밝혀주시면서 지난날 문자개혁을 들고나온자들의 주장이 바로 이 근본원칙을 어긴것으로 하여 비과학적이라는것을 명백히 결론하여주시였다.
그이께서는 문자개혁을 하더라도 남북이 통일된 다음에, 우리의 과학기술이 세계적수준에 오른 다음에 하여야 한다고, 그때에 가서는 문자를 고쳐도 같은 민족이 서로 다른 글을 쓰는 일이 없게 될것이며 또 사람들이 새 문자를 배우는데 일정한 시간이 걸려도 과학문화의 발전에 별로 큰 지장이 없을것이라고 말씀하시였다.
그이의 말씀을 받아안으며 김병제선생은 한가지 일을 생각하시고 어떤 문제를 보시여도 언제나 나라의 통일문제와 결부하여 생각하시고 풀어나가시는 수령님의 한없이 숭고한 뜻에 깊이 감복하였다.
수령님께서는 이날 어휘정리의 방향, 우리 말 단어형태화문제, 철자법정리문제, 한문자의 학습과 그 사용범위문제 등 우리 민족어발전에서 제기되고있는 많은 중요한 문제들에 대해서도 과학적인 해명을 주시였다.
그이의 말씀 한마디한마디는 심오한 진리성과 과학성, 투철한 론리와 설득력으로 하여 언어학자들의 가슴속에 속속들이 새겨졌다.
한생을 언어학연구에 바쳐오는 수많은 언어학자들도 오래동안 풀지 못하고있던 민족어발전에 관한 그 모든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들을 단번에 풀어나가시며 하나하나 명백한 해명을 주시는 수령님의 열정에 넘친 말씀을 들으면 들을수록 김병제선생은 더욱더 그이의 빛나는 예지와 비범한 과학적통찰력에 경탄을 금할수 없었다.
세상에서 제일 우수한 우리 말과 글을 더욱 빛내이시려고 해방후에 벌써 조선말사전편찬사업을 진행하도록 하시고 여기에 커다란 관심을 돌리시였으며 준엄한 전쟁시기에는 언어학연구소를 창설해주시고 전쟁전에 언어학자들이 올렸던 조선말사전교정지를 당과 국가의 중요문건들과 함께 보관하시였다가 언어학자들에게 보내주신 위대한 수령님.
그런데 오늘 또 귀중한 시간을 내시여 언어학연구와 발전에서 맺혔던 문제들을 그토록 환하게 풀어주시니 그는 수령님처럼 자기 민족의 모든것을 그토록 사랑하시는 그런 위인은 세상에 더는 없다고 소리높이 웨치고싶은 심정이였다.
그때로부터 2년후인 1966년 5월 14일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김병제선생을 비롯한 언어학자들을 또다시 몸가까이 불러주시고 우리 말의 통일적발전과 관련한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수령님께서는 조선어의 민족적특성을 옳게 살려나가기 위하여 언어분야에서 사대주의를 철저히 극복해야 한다고 하시면서 언어학에서도 주체를 세워 우리 말을 체계적으로 발전시키며 사람들이 그것을 쓰는데서 민족적자부심과 긍지를 가지도록 하여야 한다고 이르시였다.
그이께서는 계속하여 우리 말 발전의 터를 닦아야 한다고, 평양을 중심지로 하고 평양말을 기준으로 하여 언어의 민족적특성을 보존하고 발전시켜나가도록 하여야 한다고 가르치시면서 평양말을 문화어로 규정하여주시였다.
참으로 위대한 수령님의 비범한 예지와 크나큰 로고, 세심한 지도가 있었기에 우리 말과 글은 낡은 사회에서 물려받은 혹심한 상처를 가시고 주체가 확고히 서고 민족적특성이 살아숨쉬는 민족어로, 민족의 통일에 이바지하는 무기로서의 면모를 훌륭히 갖추어나갈수 있었던것이다.
김병제선생이 생전에 제자들에게 우리 수령님은 일제에게 빼앗겼던 조국을 찾아주시였을뿐아니라 우리 말과 글을 찾아주시고 빛내여주신 우리 민족어의 구원자이시며 위대한 스승이시라고 자주 이야기하였던것은 바로 그의 한생의 총화였다고 할수 있다.
수령님의 이렇듯 현명한 령도와 세심한 보살피심이 있었기에 그는 내각직속 국어사정위원회 부위원장, 사회과학원 언어학연구소 소장의 직책에서 언어학연구의 새로운 분야들을 개척하고 능력있는 언어학자들을 수많이 키워냈으며 공화국의 원사, 교수, 박사로 생의 마지막까지 조선어연구발전에 헌신할수 있었다.
언어문제를 민족의 통일문제와 결부시켜 풀어나가야 한다!
언어학발전의 참된 길을 밝힌 이 가르치심은 모든 문제를 조국통일의 관점에서 풀어나가신 민족의 태양이신 위대한 수령님의 투철한 애국애족의 립장의 일단을 보여주는 이야기로 길이 전해지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