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중영웅이 되여 어머니가 계시는 고향에 가야 한다시며
제2차 전국천리마작업반운동선구자대회가 열린 1968년 5월 9일이였다. 이날 오후회의가 시작되기 전에 평양방직공장(당시) 직포공 리화순녀성은 몇몇 대회참가자들과 함께 위대한 수령님의 부르심을 받게 되였다.
그들이 방으로 들어서자 수령님께서는 자리에서 일어서시며 반가이 맞아주시였다.
잠시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시던 수령님께서는 리화순녀성에게 지금 몇대의 직기를 보고있는가고 다정히 물으시였다.
그가 72대의 직기를 보고있다고 말씀올리자 수령님께서는 그것 참 대단하다고 하시면서 그림을 그려가면서 설명해달라고 하시는것이였다.
수령님께서 어찌도 친절히 대해주시였던지 리화순녀성은 어려움도 잊고 수첩을 펼쳐들고 80개의 동그라미를 그린데 이어 연필을 그어가며 기대들을 순회하는 방법을 설명해나갔다.
《80대를 그려놓았는데 72대를 이런 방법으로 순회하며 짭니다. 나머지 8대는 제가 순회할 때 그냥 지나가게 됩니다. 그래서 이번 대회를 끝내고 내려가면 좀더 노력하여 80대를 다 보려고 결심하고있습니다.》
그의 설명을 들으신 수령님께서는 대단하다고 거듭 치하하시더니 그렇게 걸으면 하루 얼마나 걷는것으로 되는가고 물으시였다.
리화순녀성은 하루 180리를 걷는것으로 된다고 말씀드렸다.
그의 대답을 들으신 수령님께서는 《180리를 걷는다? 매일 180리를 걸어야 한단 말이지.》라고 뇌이시고는 매일 그렇게 걸으면 다리가 아프지 않은가고 걱정스레 물으시였다.
《괜찮습니다. 이제는 단련되여서 아무 일 없습니다.》
《단련되여서 아무 일 없다. …》
부모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으려 마음쓰는 기특한 자식을 대하듯 정겨운 시선으로 그를 보시던 수령님께서는 나이는 몇살이며 어느 학교를 다녔는가, 생활에 애로되는것은 없는가고 일일이 알아보신 후 다른 사람들은 기대를 몇대씩 보는가고 물으시였다.
그가 공장에 새로 들어온 로동자들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다기대공들이라는것을 말씀드렸다.
그러자 수령님께서는 《그렇게 하면 얼마 안 가서 조국이 통일되오. 하루에 180리씩 가면 이내 남반부에 갈수 있소.》라고 하시며 매우 만족해하시였다.
그러신 다음 수령님께서는 그의 어깨에 손을 얹으시며 남반부에는 누가 있는가고 물으시였다.
리화순녀성은 어머니가 혼자 있었는데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에 서로 헤여진 후 소식을 모르고있다고 말씀드렸다.
수령님께서는 안색을 흐리시며 무엇인가 깊은 생각에 잠겨계시더니 문득 이렇게 물으시였다.
《화순동무가 몇살때 인민군대에 업혀왔소?》
《9살때였습니다.》
《그러니까 어머니가 지금 어디 살아계시는지 모르겠구만.》
《모르겠습니다.》
방안에는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 순간 그의 뇌리에는 서울의 어느 침침한 거리에서 남의 집 아이보개로 구박을 받던 일, 인민군대가 서울을 해방시켰을 때 환희로 들끓는 인파속에서 만세를 부르던 일, 전략적인 일시적후퇴를 할 때 어머니와 헤여져 미국놈들의 비행기맹폭격에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가 인민군대의 등에 업혀 그속을 뚫고나오던 일, 그후 전투와 행군의 간고한 나날 인민군전사들의 배낭우에 업혀 공화국북반부에 들어와 초등학원에서 배움의 나날을 보내던 일, 초등학원을 졸업하고 방직공장에서 일하면서 여러차례 기대옆에서 수령님을 만나뵙던 일들이 삼삼히 떠오르는것이였다.
그가 위대한 수령님을 처음으로 만나뵈온것은 주체53(1964)년 10월 어느날이였다. 그날 공장을 찾으신 수령님께서는 리화순녀성이 일하는 기대앞에 이르시여 그가 48대의 직기를 다룬다는것을 아시고 모범로동자라고 치하하시였다.
수령님께서는 그 이듬해에 오셨을 때에도 그가 55대의 직기를 다루는데 대하여 높이 평가해주시고 일을 계속 잘하라고 고무하여주시였다.
그는 위대한 수령님의 그 믿음을 심장에 새기고 계속혁신하여 72대의 직기를 보게 되였으며 제1차 7개년인민경제계획을 1968년 4월 15일까지 앞당겨 완수하고 제2차 전국천리마작업반운동선구자대회에 참가하게 된것이다.
수령님께서는 리화순녀성의 이러한 성장경위를 이미 알고계신듯 거듭 용타고 치하하시고는 《이번에 우리는 당중앙위원회 비서국회의에서 동무에 대한 사업보고를 듣고 로력영웅칭호를 주기로 했소.》라고 말씀하시였다.
순간 그는 너무나도 세찬 충격으로 하여 몸둘바를 몰라하였다.
지난날 누데기옷을 걸치고 남의 집 아이보개를 하며 고생할 때 주인놈이 선심이나 쓰듯이 그에게 준것이란 소가죽같은 천으로 만든 옷이였다. 천이 얼마나 꽛꽛했던지 조금만 움직여도 온몸은 쓸릴대로 쓸리여 피투성이가 되여버리군 하였다. 하지만 누구도 그를 거들떠보지 않았다.
그렇게 천덕꾸러기로 생을 연명해오던 자기가 오늘은 영웅칭호를 받게 된다니 정녕 꿈같은 일이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너무나도 크나큰 은정에 리화순녀성은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감격의 눈물을 걷잡을수 없었다.
수령님께서는 그러는 그의 손을 꼭 잡아주시며 로력영웅이 되여 일을 더 많이 하고 또 2중영웅이 되여 어머니가 계시는 고향으로 가야 한다고 힘있게 고무해주시였다.
평범한 직포공에게 이렇듯 크나큰 신임과 기대를 표시하여주시는 수령님께 미처 감사의 말씀도 올리지 못하고있는데 그이께서는 아까 그린 그림을 다시한번 보자고 하시였다.
수령님께서 손수 수첩장을 번지시자 그림이 나타났다.
그이께서는 이것 좀 보시오, 이 동무가 하루에 180리를 걷는답니다, 이것이 전부 기계요라고 하시면서 방안에 있는 여러 일군들에게 가까이 와서 보라고 하시고는 그의 순회작업방법을 몸소 설명하시였다.
《자, 보시오. 이 동무는 백묵으로 길을 표시해가면서 일해왔습니다. 대단합니다. 이것은 간단한것이 아닙니다. …
적은 구간이지만 그냥 뛰여다닙니다. 8시간동안을 이렇게 그냥 뛰여다닙니다. 1년에 300일을 걸으면 얼마나 걷는것으로 됩니까?》
옆에 있던 한 일군이 인차 계산해보고 6만리를 걷는것으로 된다고 말씀올리자 수령님께서는 《6만리라… 이것은 대단한 일입니다. 우리가 빨찌산투쟁을 해봤지만 그렇게 걷는것이 간단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혁명입니다!》라고 말씀하시며 칭찬을 아끼지 않으시였다.
리화순녀성은 수령님의 거듭되는 치하에 너무나 송구하여 어쩔바를 몰라하였다.
그날 오후회의가 시작되였을 때 리화순녀성은 첫 토론을 하게 되였다.
연단에 나선 그는 공장이 수령님의 수십차례에 걸치는 현지지도와 현명한 령도에 의하여 현대적설비를 갖춘 나라의 믿음직한 경공업기지의 하나로 전변된 사실을 개괄하면서 자신의 경험을 소개하였다.
바로 이때 이 동무에 대해서 내가 좀 이야기하겠다고 하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우렁우렁한 음성이 장내에 울려퍼졌다.
《당중앙위원회 비서국에서 이 동무에게 로력영웅칭호를 주기로 결정하였다는것을 여러 동무들에게 정식으로 알려드립니다. …녀성으로서 아주 큰일을 하였습니다. 이 동무는 남조선에서 인민군대의 배낭우에 업혀서 들어와 우리 당에 의해 자라난 동무입니다.》
순간 장내에서는 폭풍같은 박수소리가 터져나왔다.
평범한 한 직포공의 기특한 소행을 두고 그토록 기뻐하시며 높이 내세워주시는 그이의 말씀은 참가자들의 가슴을 세차게 격동시켰다.
수령님께서는 토론을 끝내고 내려가는 그를 대견하게 바라보시면서 참가자들을 향하여 또다시 《누구나 다 옷을 입을 때에는 이 동무를 생각하시오.》라고 말씀하시며 크게 박수를 쳐주시였다.
온 회의장에 축하의 박수소리가 메아리쳤다.
그날 대회참가자들은 영광스럽게도 위대한 수령님을 한자리에 모시고 기념사진을 찍게 되였다.
설레이는 마음안고 꿈같이 흘러간 대회의 나날들을 돌이켜본 리화순녀성은 앞으로 더 많이 일을 하여 위대한 수령님의 사랑에 보답하리라 마음다지고있었다. 수령님께서 촬영장에 들어서시자 그는 옷매무시를 살펴보며 정중한 자세로 서있었다.
그때였다. 수령님께서는 뒤줄로 시선을 보내시며 리화순녀성을 찾으시였다. 그를 보신 수령님께서는 반색을 지으시며 공장에 돌아가서 후비를 서너명 더 양성하고 학교에 가서 공부도 하고 시집도 가라고 말씀하시였다. 딸자식의 장래를 축복해주는 어버이의 사랑이 어린 말씀이였다.
대회를 마치고 돌아가는 그의 가슴에는 천리마휘장과 함께 영웅메달이 빛나고있었다.
남반부에 그냥 있었더라면 사람축에도 들지 못했을 평범한 녀성을 온 나라가 다 아는 위훈의 창조자로, 영웅으로 내세워주신 수령님께서는 그가 제9차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참가하도록 크나큰 은정을 거듭 안겨주시였다.
그후 그는 자애로운 수령님의 사랑과 믿음에 보답하기 위해 혼자서 80대의 기대를 맡아보면서 조국통일을 앞당기는 심정으로 매해 천생산계획을 몇배로 넘쳐 완수하였으며 모든 직포공들을 다기대공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함으로써 집단적혁신운동의 불길을 더욱 높이 지펴올리였다.
후날 리화순녀성은 나라의 정사를 의논하는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공장의 책임일군으로 자라났다.
그에 대해 생각하느라면 한해에 6만리를 걸으면 대단하다고 하시며 만족해하시던 수령님, 누구나 다 옷을 입을 때는 이 동무를 생각하라고 하시던 위대한 수령님의 그날의 음성이 금시 울려오는것만 같아 사람들의 가슴은 한없이 후더워오른다.
오늘도 우리 인민은 리화순과 같이 평범한 녀성들이 영웅으로, 인민의 사랑을 받는 일군으로 자라난 나날들을 돌이켜보며 버림받던 불행한 인생들을 한품에 안아 걸음걸음 이끌어주시던 위대한 김일성주석의 은혜로운 태양의 모습앞에 삼가 큰절을 올리군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