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분렬의 상처를 가셔주시려민족분렬의 아픔이 서린 개성땅을 찾으시여
남조선인민들의 1960년 4월인민봉기는 리승만《정권》을 뒤집어엎었으며 남조선에 대한 미제의 식민지통치를 밑뿌리채 뒤흔들어놓았다.
이 시기 공화국정부는 남조선에서 미군을 철거시키고 우리 민족자체의 힘으로 통일정부를 수립하기 위한 여러가지 제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미제는 새로운 주구로 《정권》을 갈아대면서 정세를 더욱더 악화시켜나갔다.
조성된 정세는 남조선의 청년학생들과 인민들이 4월인민봉기를 통하여 폭발시킨 민주주의적요구를 실현시키며 나라의 통일을 이룩하기 위한 결정적인 대책을 세울것을 요구하고있었다.
위대한 김일성장군님께서는 남조선에서의 이러한 사태발전의 요구를 예리하게 꿰뚫어보시고 이해 8월 14일에 진행된 8. 15해방 15돐 경축대회보고에서 4월인민봉기후 남조선에 조성된 사태를 분석하시고 남조선인민들이 나아갈 길을 밝히시였으며 조국의 평화적통일을 촉진하기 위한 새로운 획기적인 방안을 내놓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먼저 조국의 평화적통일은 반드시 자주적으로, 어떠한 외국의 간섭도 없이 민주주의적기초우에서 자유로운 남북총선거를 실시하는 방법으로 해결되여야 한다는것을 지적하시고 남조선당국자들이 아직은 자유로운 남북총선거를 받아들이지 못하겠으면 민족적으로 긴급하게 나서는 문제부터 해결하기 위한 과도적인 대책으로서 남북련방제를 실시하자는 통일방안을 제시하시였다.
이것은 남북련방제가 실시되면 북과 남사이의 오해와 불신을 없애고 리해와 신뢰, 협조와 합작을 가능케 할것이고 이러한 분위기가 조성되였을 때에 자유로운 북남총선거를 실시한다면 평화적통일을 실현할수 있다는 현실적이고 공명정대한 방안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남북련방제안을 내놓으시면서 북과 남사이의 경제적교류와 협조를 실현할데 대한 방안도 제시하시였다. 만일 남조선당국이 련방제까지도 아직 받아들일수 없다면 북남조선의 실업계대표들로 구성되는 순전한 경제위원회라도 조직하여 북남사이에 물자를 교역하며 경제건설에서 협조하고 원조하도록 하자는 제안이였다.
그이께서는 문화교류도 널리 실시하며 인민들이 자유롭게 오갈수 있게 할데 대한 제안과 함께 북과 남사이의 관계를 개선하며 특히 남조선의 경제생활을 정상화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문제의 하나인 군대축소제안도 내놓으시였다. 그리고 이상의 모든 문제를 풀기 위하여 평양이나 서울, 판문점에서 북남조선대표들이 모여앉을것을 남조선당국과 정당, 사회단체 및 개별적인사들에게 제의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내놓으신 이러한 조국통일방안들은 북과 남의 어느 일방에 리익을 주거나 손해를 줌이 없이 공정하게 문제를 해결할수 있게 하는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였으며 나라의 통일을 바라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접수될수 있는 합리적인 제안이였다.
그런것으로 하여 이 방안은 국내외에서 폭풍같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북과 남에서 련방제방안을 비롯한 조국통일방안들에 대한 지지열풍이 세차게 일어번지고있던 때인 주체49(1960)년 9월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또다시 분계연선지구인 개성시를 현지지도하시였다.
9월 21일 개성에 도착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먼길을 오신 피로를 푸실 사이도 없이 로동자들부터 만나보자고 하시며 먼저 개성직물공장(당시)을 찾으시였다.
공장을 다 돌아보신 수령님께서는 이제는 로동자들을 만나 이야기나 나누자고 하시면서 그들과 허물없이 자리를 같이하시였다. 그들속에는 남편과 자식들이 남으로 나간 사람들과 남반부에 고향을 둔 사람들도 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들을 정겹게 바라보시며 일하기가 힘들지 않은가, 아이들은 다 건강하며 공부를 잘하고있는가에 대하여 다정히 물으시였다.
그들은 너무 감격하여 인차 대답을 올리지 못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앞에 앉아있는 한 녀성에게 남편이 언제 남으로 나갔으며 소식은 알고있는가고 물으시였다.
그 녀성은 자리에서 일어나 눈물을 닦으며 남편은 전쟁시기에 나갔는데 소식을 모른다고 말씀올렸다.
《소식을 모른다…》
이렇게 되뇌이신 수령님께서는 주인없이 살아가기가 어렵지 않은가고 물으시였다.
그 녀성이 수령님의 은정속에 아무 근심걱정없이 생활하고있다고 말씀드리자 그이께서는 그래도 곤난한것이 많겠는데 어디 다 이야기해보라고 자애에 넘친 음성으로 재촉하시였다.
비로소 녀인은 자기의 생활경위를 상세히 이야기하였다.
미제통치시기 그는 개인직조공장에 다니고 남편은 막벌이를 하며 둘이 기를 쓰고 일해서 겨우 생계를 유지해왔다.
기둥같이 믿고 따르던 남편이 미국놈들의 위협에 못이겨 남으로 끌려나간 후 그는 살아갈 길이 막막하였다. 남편이 있을 때에도 생활이 어려웠는데 혼자서 어린 두 자식을 데리고 살아갈것을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하였다. 그런데 나라에서는 그에게 보람찬 일터를 주고 새 생활을 꾸려나가도록 보살펴주었다. 아이들도 남들과 같이 학교에 다니게 되고 남부럽지 않게 살게 되였다.
그는 생활이 행복해질수록 남녘땅 그 어디서 헤매고있을 남편에 대한 생각이 나고 더우기 아이들이 한살두살 나이가 들면서 아버지를 찾을 때면 가슴이 미여지듯 아팠다고 자기의 심정을 숨김없이 터놓았다.
그 녀성의 이야기를 다 듣고나신 수령님께서는 깊은 생각에 잠기신채 아무 말씀이 없으시였다.
지척인 남녘땅에 아버지를 두고도 철이 들도록 얼굴조차 모르는 자식들, 남편과 헤여져 10년이 되도록 소식조차 모르는 안해, 이런 집이 어찌 이 한가정뿐이겠는가.
방안은 물을 뿌린듯 조용한데 애써 참는 흐느낌소리가 들려왔다.
한참만에 수령님께서는 그 녀성에게 낮은 음성으로 아이들이 모두 여기에 있는가고 물으시였다.
아이들이 다 여기에 있으며 이제는 커서 중학교에 다닌다는 대답을 들으신 수령님께서는 아이들을 공부를 잘 시켜 훌륭히 키워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이윽고 수령님께서는 우리는 절대로 헤여져 살수 없으며 또 갈라져서는 안된다고 하시며 《조선은 하나입니다. 통일은 반드시 이루어지고야말것입니다.》라고 힘주어 말씀하시였다.
확신에 넘친 그이의 말씀에는 분렬의 비극을 끝장내고 겨레에게 통일된 조국을 안겨주시려는 견결한 의지와 깊은 뜻이 담겨져있었다.
시간은 퍼그나 흘렀다.
그러나 수령님께서는 자리를 뜨실 생각을 하지 않으시고 무슨 문제든지 애로되는것이 있으면 다 이야기하라고 하시며 참가자들을 둘러보시였다.
이번에는 한 작업반장(그도 전쟁때 오빠가 남으로 나간 녀성이였다.)이 일어나 자기 작업반의 나어린 한 처녀가 부모들이 다 남쪽으로 나간것으로 하여 고민을 하며 일을 제대로 하지 않고있는데 대하여 안타까이 말씀드렸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나신 수령님께서는 안색을 흐리신채 잠시 말씀이 없으시다가 일군들에게 잘 교양하지 않으니 그렇게 되였다고 하신 다음 개성에는 이런 사정, 저런 사정으로 하여 남으로 나간 사람들이 많기때문에 부모를 생각하는 사람, 남편을 생각하는 사람, 오빠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수 있다고 하시면서 이런 사람들을 다 교양개조하여 우리 당 주위에 튼튼히 묶어세워야 한다고 이르시였다.
이어 여러명의 녀성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지금껏 누구앞에서도 하지 못했던 자기 가정문제를 이야기하였다.
사회주의의 이 좋은 세상에서 인생의 가장 가까운 사람을 원망도 하고 그리기도 하면서 그 모든 사연을 남이 알세라 묻어두고 살아온 이들, 하많은 세월 눈물로 베개를 적시며 뜬눈으로 밝힌 밤인들 얼마나 많았으랴.
그들의 가슴속아픔을 풀어주고 남편을 안겨주고 형제자매의 정을 이어주는 길은 오로지 통일, 통일하는 길이였다.
통일이야말로 이 나라의 수많은 가정들에 비낀 인간적비극을 가시여주고 만복을 안겨주는 열쇠였다.
화제는 자연히 통일문제에로 옮겨졌다.
수령님께서는 8. 15해방 15돐 경축대회보고에서 남북련방제를 실시할데 대한 통일방안을 내놓으신데 대하여 언급하시면서 이것은 나라의 통일을 앞당기기 위한 가장 합리적인 방안이라고, 우리는 남북에 서로 다른 사회제도를 그대로 두고 련방하고 래왕하자고 하는데 놈들은 그것을 반대한다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렇게 새로 제시하신 조국통일방침과 남조선정세를 알기 쉽게 해설해주시고나서 우리는 통일의 문을 열기 위하여 사회주의건설을 더 잘해야 한다는 당부를 남기시고 공장을 떠나가시였다.
친부모앞인듯 수령님께 10여년동안 가슴속에 묻어두었던 아픔을 다 털어놓던 녀성이며 남편과 부모형제들을 그리며 살아온 모든 녀성들이 그이를 웃음속에, 감사의 눈물속에 뜨겁게 바래웠다.
위대한 수령님의 이날의 현지지도의 자욱은 개성시 판문군 봉동농업협동조합(당시)으로 이어졌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남쪽땅이 지척에 바라보이는 나지막한 언덕에서 발걸음을 멈추시였다.
봉동농업협동조합 관리위원장을 비롯하여 봉동리와 판문군의 일군들이 그이를 따르고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오래도록 숭엄한 눈길로 남쪽으로 트인 벌과 산들을 바라보시였다.
누렇게 익어가는 곡식들이 물결치는 마을앞 조두평벌과 이어진 도랍산과 국수봉 그리고 분계선너머 높고낮은 산들이 안개속에 잠겨 부옇게 보이였다.
《분계선이 어디쯤 되오?》
《바로 저 산어구입니다.》
수령님의 물으심에 곁에 섰던 한 일군이 지척에 바라보이는 도랍산을 가리키며 말씀드리였다.
《퍽 가깝구만.》
정말 소리치면 화답할만 한 가까운 거리였다.
시야에 안겨오는 점점이 솟은 산가운데서 높은것이 삼각산이고 그 너머에 서울이 있다. 마을앞으로 뻗은 철길을 따라 기차로 가면 한시간내에 가닿을 거리였다. 사천강물은 예나 다름없이 림진강으로 흘러들고있건만 이 강을 가로타고 군사분계선이 혈육들을 갈라놓고 우리 겨레를 갈라놓고있었다.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15년의 세월과 더불어 너무도 판이한 두 세계를 이룬 북과 남의 현실. 분계선패말밑둥까지 길이 넘게 자란 곡식들의 물결에 두둥실 떠오른듯 야산을 끼고 오붓이 들어앉은 봉동마을 기와집들의 대문가마다에서는 사회주의생활의 노래가 넘쳐흐르는듯싶었다.
수난당하고 고통받는 남녘인민들을 생각하시며 분계선이 한눈에 바라보이는 언덕에 오래도록 머물러계시는 수령님의 심중은 몹시 괴로우셨다. 분계선너머 남쪽에는 쑥대와 잡초가 엉킨 황페한 벌이 스산하게 펼쳐져있었다. 산기슭에 다닥다닥 붙어있던 오막살이들마저 언제인가부터 종적없이 사라져 해방직후에만 하여도 놈들의 눈을 피해가며 밤마다 노를 저어 다녀오고 다녀가군 하였다는 강건너 송산마을사람들의 행처도 묘연해진지가 오래다고 한다.
가을바람에 옷자락을 날리시며 멀리 남쪽하늘을 오래오래 바라보시는 그이의 심중에는 정녕 남녘인민들의 고통을 자신의 아픔으로 여기시며 하루빨리 통일을 이룩하실 신념과 의지가 힘있게 맥박치고있었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봉동농업협동조합의 관리일군들과 조합원들을 만나시여 그들이 더 잘살수 있는 방도를 의논하여주시고 하루빨리 조국통일을 이룩하기 위하여 농사를 더 잘 지을데 대하여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다음날인 9월 22일 개성시 당, 정권기관, 근로단체 및 경제기관 일군들의 협의회를 소집하시였다.
협의회에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8. 15해방 15돐 경축대회보고에서 제시하신 조국통일방안과 관련하여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우리 당은 갈라진 조국을 하루빨리 통일하기 위하여 여러차례에 걸쳐 합리적인 조국통일방안을 내놓았으며 특히 8.15해방 15돐 경축대회보고에서 조국을 평화적으로 통일할수 있는 가장 정당하고 현실적인 방안을 제시하였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가 이번에 8. 15해방 15돐 경축대회보고에서 천명한 조국통일방안은 누구에게나 다 접수될수 있는 공명정대한것이라고 강조하시면서 그러나 남조선당국은 《유엔의 감시밑에서 선거를 하자.》고 하면서 우리가 제기한 남북총선거를 반대하고있는데 이것은 남조선에 우리의 지지자들이 많기때문이라고 하시였다. 그러시면서 남조선당국자들은 련방제를 실시할데 대한 우리의 제의도 반대하고있다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만일 남조선당국이 우리의 정당한 방안을 무시하고 또다시 침략전쟁을 도발하는 길로 나간다면 우리는 적들과 끝까지 싸워 승리할것이라고, 물론 우리는 될수록 전쟁을 하지 않고 평화적으로 조국을 통일하려고 한다고, 그러자면 남조선에서 미제국주의자들을 몰아내야 한다고 언명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날 조국통일을 앞당기려면 공화국북반부에서 사회주의건설을 더 잘하여야 한다고, 우리가 사회주의건설을 잘하면 잘할수록 남조선인민들에게 더 큰 영향을 줄수 있으며 그들의 투쟁을 고무할수 있다고 말씀하시였다.
민족분렬의 아픔이 그 어느 지역보다도 짙게 서리여있는 개성이여서인가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늘 마음의 한끝을 이 고장에 두고계시였으니 그것은 지척에 바라보이는 남녘땅에 있는 겨레에 대한 사랑이고 통일에 대한 강렬한 지향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