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진 혈육들의 고통을 덜어주시려고

 

흐르는 세월은 망각을 불러온다는 말도 있고 세월이 약이라는 말도 있다. 하지만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잊혀지지 않고 그 아픔이 가셔지지 않는것이 있으니 그것은 한피줄을 나눈 혈육들의 리별인것이다. 그리운 사람은 며칠만 못 보아도 서로 찾게 되는것이 인지상정일진대 하물며 피를 나눈 혈육들이 반세기가 넘도록 한강토에서 살면서도 서로 생사조차 알수 없는 그 아픔이야 더 말해 무엇 하랴.

3년간의 전쟁과 미제의 분렬책동으로 산생된 수많은 흩어진 가족, 친척들의 설음과 마음속상처를 두고 가슴아파하시며 그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누구보다 마음쓰신분은 우리 민족의 자애로운 어버이이신 위대한 김일성장군님이시였다.

1957년 8월 24일 개성직물생산협동조합(당시)을 찾아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합의 여러곳을 돌아보신 다음 관리일군들이며 조합원들과 자리를 같이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직초기에 54명이던 생산협동조합이 불과 몇해사이에 1 300여명의 큰 집단으로 자라나 증산계획까지 초과수행하고있는데 대하여 높이 평가하시였다.

꿈결에도 그리던 위대한 수령님을 한자리에 모신 기쁨과 영광에 겨워 저저마다 자리에서 일어나 자랑도 하고 결의도 다지였다.

해사작업반장이 지난날 학교문전에도 가보지 못하였던 자기가 당과 정부의 믿음에 의하여 작업반장으로, 조합관리위원으로 되였다고 하면서 뒤떨어진 사람들을 교양개조하여 모범조합원으로 만든 성과를 이야기하자 직포공과 수리공, 해사공도 일어나 앞으로 조합을 발전시키기 위하여 일을 더 잘하겠다고 결의를 다지였다.

어제날 리승만도당의 통치하에서 인간이하의 천대를 받다가 전후 공화국의 새세상에서 행복한 생활을 창조하여나가는 이곳 인민들의 목소리를 들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기쁨을 금치 못하시며 조합원들모두가 생활에서 아무런 불편이 없다고 하지만 지금 우리 인민들의 생활이 그리 넉넉하지는 못하다고, 그러나 우리 나라에서는 누구나 다 행복한 생활을 누리고있다고, 우리의 사회제도는 좋은 제도이라고, 우리가 사회주의건설을 더 빨리, 더 잘하면 우리의 생활도 그만큼 더 좋아질것이며 조국통일도 앞당겨질것이라고 말씀하시였다.

바로 이때 그 자리에 참석했던 한 녀성이 선듯 일어서더니 지금껏 가슴속에 묻고 살아온 신상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그는 원래 평양에 살던 녀인으로서 본명은 신순덕이였다. 전쟁시기 미국놈들의 원자탄위협에 속아 남편과 아이와 함께 남쪽으로 가다가 혼잡속에서 갈라져 남편은 남쪽으로 나가고 자기는 변성명하고 자식과 함께 개성에 주저앉게 되였다. 생산협동조합이 조직되자 거기에 들어가 일을 열심히 하여 인차 작업반장도 되고 녀맹분초급단체 위원장의 직책도 맡게 되였다. 이렇게 되여 생활은 안착되였지만 변성명을 하고 사는 처지로 하여 마음은 어두웠다. 그래서 모든것을 툭 털어놓고 그 죄의식과 불안에서 벗어나려고 마음먹었지만 일단 그렇게 하자니 망설여져 실행하지 못하고 불안과 초조속에 나날을 보내고있었다.

그의 이야기를 다 들으시고 한동안 창밖을 내다보시며 깊은 생각에 잠기시였던 수령님께서는 그가 자기의 가정생활경위에 대하여 솔직하게 말한것은 아주 좋은 일이라고 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에 이 동무의 남편뿐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남으로 나갔습니다. 그들가운데는 적들의 기만선전에 속아넘어갔거나 강요에 못이겨 남으로 나간 사람들이 많으며 나쁜짓을 하고 적들을 따라간 사람들도 있습니다. 월남한 사람들이 어떻게 되여 남으로 나갔든지 그것은 다 미제국주의자들때문입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미제국주의자들은 조선사람들끼리 서로 싸우고 죽이게 하려고 책동하였다고, 미제국주의자들의 교활한 술책과 악선전에 속아넘어가지 말아야 한다고 하시면서 우리는 자기의 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치고 솔직히 자백하는 사람들에 대하여서는 용서해주고있다고, 우리 당은 자기의 죄과를 솔직히 내놓는 사람들에 대하여서는 앞으로도 관대하게 용서할것이라고 말씀하시였다.

이어 수령님께서는 공산주의자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공산주의자들은 인민을 제일 사랑하고 인민의 리익을 위하여서는 자기의 목숨도 아끼지 않는 진정한 애국자들이며 전체 인민이 잘사는 사회를 건설하기 위하여 투쟁하는 사람들이라고 하시였다. 그러시고는 신순덕녀성을 자애로운 눈길로 바라보시며 남으로 끌려간 부모처자들과 남편을 그리워하는것은 잘못이 아니라고, 남편이 남으로 나간 녀성들이 남편을 하루빨리 만나기 위하여서는 일을 더 많이 하여야 하며 우리 당 정책을 열심히 학습하여 자신을 정치사상적으로 튼튼히 준비하고 아이들을 잘 키워야 한다고, 그래야 남편이 돌아오면 조국과 인민을 위해 일을 많이 한데 대하여 떳떳하게 말할수 있고 남편을 바로 교양할수 있다고 따뜻이 일깨워주시였다.

그 자리에는 신순덕만이 아니라 남편이 남으로 나갔거나 기타 복잡한 사연을 갖고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이의 말씀은 마디마디 그들의 가슴속에 스며들어가 회오리바람을 불러일으켰다. 여기저기서 흐느낌소리가 나기 시작하였다.

신순덕녀성만이 아닌 모든 녀인들의 가슴을 짓누르던 검은구름은 산산이 흩어지고 밝은 빛이 비껴들었다.

그날 수령님께서 조합을 떠나실 때였다.

조합원들의 환송을 받으시며 차에 오르시던 수령님께서는 문득 걸음을 멈추시더니 군중들속에 있는 신순덕녀성을 알아보시고 그의 앞으로 걸어오시였다.

그러시고는 동무도 남편을 만날수 있다고, 안심하고 건강한 몸으로 일도 잘하고 아이들을 공부도 잘 시켜야 하겠다고 하시며 그의 손을 힘있게 잡아주시였다.

남으로 나간 남편때문에 겪는 한 녀성의 마음속설음을 두고 얼마나 마음쓰시였으면 가시던 걸음을 멈추시고 그를 다시 만나주시였으랴.

분계연선지역인것으로 하여 개성에는 남쪽에 나간 사람들의 가족들이 많이 살고있었다.

그로부터 3년전인 1954년 12월에 이곳을 찾으시였을 때에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남반부로 넘어간 사람들을 다 나쁜 사람으로 보아서는 안된다고 하시면서 그들가운데서 대부분은 적들의 기만선전에 속아서 넘어갔다고, 적들에게 속아서 남반부로 넘어간 사람들의 가족들을 잘 돌봐주고 생활을 안착시켜야 한다고 일군들에게 가르치시였다. 그리고 남으로 끌려간 사람들의 아들딸들이라고 해서 그들을 차별하여서는 안된다고, 아버지의 잘못을 자녀들이 책임질수 없다고, 그들도 잘 교육교양하여 훌륭한 사람으로 키워야 한다고 강조하시였었다.

이 모든 가르치심들은 그대로 조선로동당의 정책이였으며 광폭정치의 기틀이였다.

남조선으로 나간 사람들의 가족들때문에 언제나 마음쓰시는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분계연선지역에 대한 현지지도를 하실 때마다 그들을 만나주시고 마음속그늘을 가셔주시고 조국통일에 대한 신심과 희망을 안겨주시였다.

신록이 짙어가던 주체48(1959)년 5월 22일이였다.

신해방지구인 황해남도 연안군을 현지지도하시던 수령님께서는 남편이 남조선에 나간탓으로 홀로 사는 녀성들의 생활이 걱정되시여 그들을 부르시였다.

녀성들이 수령님께서 계시는 군당위원회청사 뜰앞에 있는 자그마한 련못가에 도착하자 그이께서는 만면에 환한 미소를 담으시고 그들을 반갑게 맞아주시였다.

남조선으로 나간 남편들때문에 항상 자책감에 모대기며 살아오다나니 그처럼 바라고바랐던 영광의 자리에서도 주눅이 들어있는 녀성들을 한동안 둘러보시던 수령님께서는 맨 앞줄에 앉아있는 녀성에게 시선을 멈추시고 어데서 일하며 식구는 몇명이나 되며 생활은 어렵지 않은가고 하나하나 물으시였다. 그의 대답을 다 들으시고는 또 다른 녀성들의 가정형편에 대하여 알아보시였다.

그이의 물으심에 어떤 녀성들은 남편과 헤여진 경위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기도 하였으며 어떤 녀성은 시동생을 장가보낸데 대하여 말씀드리기도 하였다.

수령님께서는 그들가운데서 한 녀성이 자기 동생들과 함께 살고있다는것을 아시고 어떻게 되여 친정에서 사는가고 물으시였다.

그로 말하면 원래 전쟁전에 이곳 연안에서 서울로 시집을 간 녀성이였다. 그런데 그후 해산하려고 이곳 자기 친정에 왔다가 길이 막혀서 더는 가지 못하고 그곳에서 그냥 살게 되였던것이다.

그의 대답을 들으신 수령님께서는 친정에 와서 해산한 그 아이가 학교에 다니게 될 때까지도 아버지의 얼굴을 모르고 살고있고 안해와 남편이 지척에 있으면서도 서로 소식조차 모르고 살아가야 하는 가슴아픈 현실을 놓고 한동안 아무 말씀이 없으시다가 자리에서 일어서시여 못가의 넓은잎정향나무꽃 한송이를 꺾어드시고는 그 꽃잎을 한잎한잎씩 못의 수면우에 떨구시였다.

이윽하여 어깨를 들먹이며 흐느끼고있는 녀성들쪽으로 시선을 돌리신 수령님께서는 낮으나 힘있는 어조로 참으로 조국의 평화적통일은 조선인민의 절실한 념원입니다, 지금 동무들은 한식구가 한자리에 모여앉지 못하고있습니다, 그러나 조국통일은 반드시 되고야맙니다, 시간이 어느때냐 하는 문제이지 우리의 뜻대로 조국은 통일되고야말것입니다라고 말씀하시였다.

확신에 넘쳐 하시는 그이의 말씀을 들으며 녀성들은 한없는 감사와 경모의 정을 안고 수령님을 우러렀다.

수령님께서는 우리 공화국정부는 조국의 평화적통일을 위하여 미제침략군을 남조선에서 몰아내고 전체 조선인민의 의사에 의하여 남북의 총선거를 하자고 수차 제기하였다고, 그러나 미제침략군은 의연히 남조선에 남아있다고 하시면서 분계선너머 교동도와 강화도가 있는쪽을 바라보시였다.

그들이 항상 마음속에 안고 사는 불안과 회의의 마음을 헤아려보시는듯 잠시 동안을 두시였던 수령님께서는 남으로 나간 사람들의 가족이라고 하여 다 나쁘다고 말할수 없다고, 우리 당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하시면서 말씀을 이으시였다.

지난 시기에 우리는 정령으로써 과거에 죄를 지은 사람도 자기 죄과를 뉘우치고 리승만도당을 반대하여 조국의 평화적통일을 위해 나선다면 손을 잡고 같이 나갈것이라는것을 선포하였습니다. 죄를 짓지 않고 몰라서 넘어간 사람들에 대해서는 더 말할 필요도 없거니와 여기서 죄를 짓고 갔다고 해서 다 나쁜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들중에는 좋은 일을 하고 돌아올 사람도 있을수 있는것입니다.

우리 당의 정책은 언제나 자기 죄과를 뉘우치고 우리와 같이 가겠다고 하는 사람은 다 용서하고 같이 데리고 가는것입니다.

순간 장내에서는 감동에 젖은 녀성들의 흐느낌소리가 터져나왔다.

예로부터 남자는 소리없이 울어도 녀자는 소리없이 울지 못한다고 하였다. 무럭무럭 자라나는 어린것들의 가슴에 못을 박는것 같아서 아버지가 남조선으로 간것자체까지 속이며 살아왔고 또 자기들에게는 남편이 남조선으로 나갔기때문에 전도가 없다고만 생각해오며 그 모든 설음을 가슴속에 깊이 묻고 살아온 그들이였다. 그런데 수령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속 생각까지도 다 헤아리시고 이토록 가슴후련한 말씀을 해주시니 그들이 어찌 격정의 눈물을 터치지 않을수 있으랴.

감격에 겨워 흐느끼는 녀성들을 바라보시던 그이께서는 동무들은 우리 당과 정부를 믿고 일을 잘하고 아이들의 공부를 잘 시키고 자기 운명을 자신들이 개척해야 한다고 간곡히 이르시였다.

그이께서 하시는 말씀은 마치 사랑하는 딸자식에게 하는 친아버지의 당부 같았다. 그들의 가슴은 재생의 희열로 한껏 부풀어올랐다.

그들은 수령님께서 가르쳐주신대로 자신이 로력혁신자가 되고 자식들을 잘 키우는것이 조국통일을 앞당기고 남편들과 만날 날을 앞당기는 길이라는것을 깊이 새겨안게 되였다.

이날 녀성들의 설음과 마음속고충을 다 들어주시며 그들에게 새 생활의 길을 환히 밝혀주신 수령님께서는 건강한 몸으로 일들을 잘하라고 거듭 당부하시고 자리를 뜨시였다.

수령님께서 타신 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녀성들은 오래도록 서있었다. 그들의 얼굴마다에는 새 생활의 길을 찾은 기쁨과 희열이 어려있었다.

못가의 넓은잎정향나무 꽃송이들도 그이의 뜨거운 사랑에 감동을 금치 못하는듯 유난히 빛나고있었다.

위대한 수령님의 친어버이사랑을 받아안고 새 생활의 길을 찾은 사람들이 어찌 이 녀성들뿐이랴.

정녕 자식들을 그 어느 하나도 차별하지 않는 어머니의 사랑과 같이 한없이 열렬하고 무한한 우리 수령님의 인간애와 포옹력이 있어 그들뿐만아니라 위대한 태양의 빛발을 받아안은 각이한 계층의 사람들이 지난날의 마음속고충을 털어버리고 새 삶의 희열에 넘쳐 나라의 부강번영과 조국통일을 위해 자기의 모든 힘과 열정을 다 바쳤으며 이 나날에 주권기관의 대의원으로, 나라의 민족간부로 자라날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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