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국회》의원을 만나주시고

 

해빛도 유난히 빛나던 주체44(1955)년 11월 20일이였다. 이날 위대한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인민경제대학을 찾으시였다.

그 어느 단위를 찾아가시여도 남반부에서 들어온 사람들을 몸가까이 부르시여 만나주시는 수령님께서는 대학의 여러곳을 돌아보시다가 전 남조선정객들중의 한사람인 김옥주가 이 대학에서 공부하고있다는것을 아시고 대학기숙사에서 그를 친히 만나주시였다.

수령님께서는 정중히 인사를 올리는 그의 두손을 꼭 잡아주시면서 오랜 지기를 만나신듯 반갑게 대해주시였다.

이어 수령님께서는 남반부에서 무슨 사업을 하였는가고 다정히 물으시였다.

그이께서 어찌나 따뜻이 대해주시는지 그는 마치 친어버이품에 안긴것 같은 마음이 되여 전라남도의 어느 한 시골에서 교편을 잡고있다가 《국회》의원으로 되였던 일, 수령님의 은정어린 조치에 의하여 전 남조선정객들과 함께 공화국북반부에 들어오게 된 사연까지 다 말씀드렸다.

그의 말을 주의깊게 다 들어주신 수령님께서는 자애로운 눈길로 그를 바라보시면서 남조선에서 《국회》의원생활을 하다나니 무슨 공부를 하였겠는가고 하시면서 이때까지 민주교육을 받지 못했을터이니까 더 많이 공부해야 한다고 간곡히 말씀하시였다.

잠시 동안을 두시였던 그이께서는 우리는 통일을 하자고 하는데 어떻게 하면 조국을 평화적으로 통일하겠는가 하는 조국통일방안들을 많이 생각하고 연구하여보라고 하시는것이였다.

그이의 말씀에 김옥주는 평범한 재북인사에 불과한 자기를 그토록 믿어주시는 그이의 사랑이 가슴속으로 뜨겁게 흘러드는것을 느끼며 평소에 생각하고있던대로 수령님께서 내놓으신 조국통일방안이 가장 정당한 방안이라고 말씀올리였다.

정말이지 수령님께서 내놓으신 조국통일방침들은 그 하나하나가 다 통일을 바라는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가장 공명정대하고 현실성있는 방안들이였다.

최근에만 하여도 1954년 10월에 있은 최고인민회의 제1기 제8차회의에서 호소문을 통하여 현실적이며 공명정대한 북남협상방침을 제시하신데 이어 다음해 8월 14일 조국해방 10돐경축대회에서 하신 보고에서도 조선의 통일문제는 조선사람자체의 의사에 의하여 해결되여야 한다고, 이를 위하여서는 조선에서 모든 외국군대가 철거하고 북남조선인민들이 한자리에 모여앉아 조선문제를 토의하며 자기들의 자유로운 의사에 기초하여 민주주의적통일정부를 수립하여야 한다는 원칙적립장을 천명하시여 삼천리강토를 북남협상열기로 뜨겁게 달아오르게 하신 우리 수령님이 아니시였던가.

갈라진 겨레의 고통을 한시바삐 가셔주시기 위해 그토록 마음쓰시는 조국통일의 구성이신 위대한 수령님을 우러르며 김옥주는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조국통일방침을 관철하는데 모든것을 다 바치겠다고 말씀올렸다.

그의 말에 만족한 미소를 지으시던 수령님께서는 왜서인지 한동안 그의 얼굴을 주의깊게 바라보시다가 다정한 음성으로 동무의 건강이 좋지 못한것 같은데 치료도 받고 공부도 잘해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는 후더워오르는 가슴을 진정할수 없었다. 그에게 있는 병이란 어렸을 때 생긴 대장출혈증과 륵막염이였는데 그리 심한것은 아니였다. 그런데 수령님께서는 그의 얼굴빛에서도 건강상태를 헤아려보시고 이렇듯 따뜻한 은정의 말씀을 하여주시는것이 아닌가.

이처럼 다심한 사랑을 그는 아직까지 그 누구에게서도 받아본적이 없었다. 그런데 온 민족이 그토록 흠모하여마지 않는 절세의 위인께서 이 세상 그 어디에도 비할수 없는 육친의 정을 베풀어주시니 그는 그만 두손으로 얼굴을 싸쥐고 흐느끼였다.

들먹이는 그의 어깨너머로 잠시 창밖을 바라보시던 수령님께서는 무슨 애로가 있으면 제기하라고 하시면서 동행한 일군들에게 이 동무의 가족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가족이 있으면 공부하는데는 좀 지장을 줄수 있지만 건강이 좋지 못하니까 가족을 다 데려오도록 하라고 하시는것이였다.

수령님께서는 떠나시기에 앞서 대학 총장에게 이 동무를 병치료도 받게 하고 공부도 잘 시켜야 한다고 거듭 당부하시였다.

그날 그는 지난날 나라와 민족을 위해 무엇 하나 해놓은 일도 없는 자기를 육친의 사랑과 정으로 보살펴주시는 수령님이 너무도 고마와 눈물로 베개잇을 적시며 온밤 잠들지 못하였다.

그로부터 얼마후 그는 현대적설비를 갖춘 중앙의 한 병원에 입원하여 고가약과 희귀한 보약까지 써가며 치료를 받게 되였다.

오랜 세월 고질적인 병으로 앓고있던 대장출혈증은 달포가 지나서부터 눈에 뜨이게 나아지게 되고 그의 건강은 날을 따라 회복되여갔다.

그러던 어느날 해빛밝은 방안의 침대에 앉아 신문을 보고있던 그에게 《아버지!》 하며 네살잡이 딸이 달려와 매여달렸다. 뒤따라 안해가 병실로 들어서는것이였다.

지방에서 병문안을 온것으로 생각하고있던 그는 안해로부터 위대한 수령님께서 그의 가족을 평양에 올라와 살도록 해주시고 중심거리에 여러칸짜리 살림집까지 마련해주시였다는 참으로 꿈같은 소식을 전해들었다.

더 묻지 않아도 그는 그 사연을 알수 있었다. 하지만 수령님께서 대학에 찾아오시여 하시던 그 사랑의 말씀이 이렇게 빨리 현실로 옮겨지리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하였던 그였다.

세상에 사랑이면 이보다 더한 사랑이 어디 있으며 은정이면 이보다 더 뜨거운 은정이 또 어디에 있으랴.

그는 북받치는 격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딸애를 부둥켜안고 감격의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였다.

그후 그는 병을 말끔히 털어버리고 대학에 돌아와 공부를 계속하였으며 수령님의 은정으로 마련된 새 집에서 가족과 함께 생활하게 되였다.

수령님께서는 그가 인민경제대학을 졸업하게 되자 그를 잊지 않으시고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가 창립되던 첫 시기에 벌써 그 회원의 높은 신임을 안겨주시였으며 그후에는 어느 한 기업소의 책임일군으로 사업하도록 하시는 크나큰 은정을 베풀어주시였다.

진정 위대한 김일성주석의 은혜로운 사랑의 품에 안겼기에 그뿐만이 아니라 남반부에서 들어온 모든 사람들이 나라의 기둥으로, 어엿한 통일의 역군들로 자라나 조국의 부강번영과 통일을 위한 사업에 자기의 모든것을 다 바쳐나갈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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