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녘의 부모들을 대신하시여

 

하늘이 푸르청청 맑게 개이였던 주체43(1954)년 12월 어느날이였다. 이날 정오가 좀 지날무렵 개성시의 만월동에 있는 송도정치경제대학에서 우렁찬 만세의 환호성이 터져올랐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대학에 찾아오신것이다.

이 대학은 정전직후인 1953년 10월에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와 정부의 결정에 의하여 신해방지구인 개성에 창설되였다. 송도정치경제대학은 지난날 남조선에서 인민항쟁 또는 지하운동에 참가하였거나 조국해방전쟁시기에 인민군대에 복무하면서 적들과 영용하게 싸운 많은 남반부출신일군들을 재교육하는것을 사명으로 하고있었다.

당시까지만 하여도 대학은 새 교사를 짓지 못하여 학생들은 만월동의 옛 건물에서 공부하고있었다.

차에서 내리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만면에 환한 미소를 지으시고 열광적으로 환호하는 교직원, 학생들에게 손을 들어 답례를 보내시였다.

정중히 인사를 드리는 정진석학장의 손을 잡으신 수령님께서는 매우 반가와하시면서 오래간만이라고, 건강이 어떤가고 따뜻이 물어주시였다.

그이께서 자기를 알아보시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였던 정진석학장은 감격을 금치 못하며 건강하다고 말씀올리였다.

그로 말하면 주체37(1948)년 4월 29일 위대한 수령님께서 남북련석회의에 참가한 남조선기자들과 담화를 하실 때와 북남 제 정당, 사회단체대표들의 쑥섬협의회때에 참석한바 있는 사람이였다. 그때로부터 여섯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그이께서는 그를 잊지 않고계시였던것이다.

수령님께서는 그를 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시며 선생이 맡은 책임이 대단히 무겁다고, 건강에 주의해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학장실에 들어가신 수령님께서는 교직원들을 둘러보시며 이 대학의 사명은 대단히 중요하다고, 대학에서는 학생들을 귀중히 여기고 잘 가르쳐주어야 하겠다고 간곡히 당부하시였다. 그러시고는 교사도 4층으로 훌륭하게 새로 지어주고 교복, 내의, 학용품 등도 무상으로 공급하며 장학금도 넉넉히 주어야 하겠다고 하시면서 크나큰 사랑을 부어주시였다.

수령님께서는 한없는 감사의 정을 금치 못해하는 그와 함께 학생들이 공부하는 교실로 향하시였다.

교실에 들어서신 그이께서는 학생들을 만나주시고 공부하는데 애로는 없는가, 기숙사는 춥지 않은가, 학용품은 모자라지 않는가를 세세히 알아보시였다.

학생들이 모두 《애로가 없습니다.》, 《만족합니다.》라고 대답올리자 그이께서는 웃으시며 왜 없겠는가고, 아직은 부족한것이 많을것이라고 하시면서 이후에라도 학장선생을 통해서 제기들 하라고, 해결하도록 하겠다고 말씀하시였다.

학생들은 그이를 한자리에 모신 감격으로 하여 몹시 흥분해있었다.

수령님께서는 앞줄에 서있는 한 녀학생의 어깨우에 손을 얹으시면서 이름은 무엇인가, 고향은 어디인가, 거기에 누가 있는가, 어머니가 보고싶지 않은가 등 세심히 물어주시였다.

인숙이라는 그 녀학생은 그만에야 북받쳐오르는 감격을 억제하지 못하여 그이의 품에 얼굴을 파묻은채 울음을 터뜨리고야말았다.

그이께서는 한손으로 울먹이는 그의 머리를 어루만지시며 유리창너머로 남쪽하늘을 바라보시였다.

교실에는 잠시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이윽하여 학생들에게로 눈길을 돌리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힘있는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우리는 조국의 절반땅인 남반부를 한시도 잊을수 없소. 또 잊어서는 안되오.

우리들은 반드시 미제를 물리치고 남반부의 부모형제들을 해방시켜야 하오. 그러기 위해서 동무들은 더 부지런히 공부를 해야 하오.》

그이의 가르치심을 받는 학생들은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있었다.

교실에서 나오신 수령님께서는 복도를 걸으시다가 걸음을 멈추시고 정진석학장을 돌아보시며 말씀하시였다.

학장선생, 이 학생들을 잘 돌보아주어야겠소. 북반부출신 학생들은 방학이 되면 집에 갈수도 있고 또 집에 가지 않더라도 부모들의 편지라도 받아볼수 있지 않소. 그렇지만 남반부출신 학생들은 그럴수가 없는것이 아니요. 그러므로 더 잘 보살펴줍시다.

그날 수령님께서는 대학의 여러곳을 돌아보시며 오랜 시간 학생들의 생활을 친어버이심정으로 보살펴주시고 이곳을 떠나시였다.

그이께서는 대학을 다녀가신 후에도 학생들의 학습조건과 생활조건을 더욱 개선해주시기 위해 여러모로 마음쓰시였다.

수령님께서는 전후복구건설을 위해 한장의 벽돌, 한쪼각의 강편도 매우 귀한 때였지만 많은 건설자재들을 보내주시여 대학교사와 기숙사를 짓도록 해주시였으며 학생들에게 내의와 의복들을 공급하도록 해주시였다. 그러시고도 마음이 놓이지 않으시여 수송수단이 곤난한 때였지만 신선한 수산물이 학생들의 식탁에 오르도록 은정어린 조치까지 취해주시였다.

그이께서는 고향을 떠난 학생들이 명절이면 쓸쓸해하고 외로워할세라 여름방학이면 경치좋은 산과 바다가에서 야영생활을 조직하게 하시고 명절때가 되면 떡쌀과 과일까지 차로 실어보내주도록 하시였다.

송도정치경제대학 학생들에 대한 수령님의 육친적사랑은 정녕 끝이 없었다.

1957년 여름 어느날이였다. 한낮의 무더위를 마다하지 않으시고 모란봉유보도공사장을 현지지도하시던 수령님께서는 송도정치경제대학 학생들이 이곳에서 일한다는것을 아시고 그들의 작업장을 친히 찾으시였다.

자애로운 어버이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 공사장에 오시였다는 소식을 들은 학생들은 만세를 부르면서 앞을 다투어 그이께서 계시는 곳으로 달려갔다.

그이께서는 학생들의 손을 하나하나 만져보시며 훌륭한 건설로동자들이 되였다고 하시면서 앓는 동무들은 없는가, 일이 힘들지 않는가고 따뜻이 물으시였다. 그러시고는 남조선정세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주시고 우리 나라 인민경제의 급속한 발전에 대해서도 말씀하시면서 승리의 신심을 안겨주시였다.

수령님께서는 한없는 자애가 비낀 안광으로 학생들을 둘러보시며 곧 동무들의 학교에도 가보겠다고 하시였다.

학생들은 너무도 기뻐 어린아이들처럼 서로 얼싸안고 환성을 올리였다.

그날 수령님께서는 동행한 일군들에게 이 학생들이 일을 끝내면 모두 휴양소에 보내서 휴식시킨 다음 학교에 돌아가도록 하라고, 이 학생들을 금싸래기와 같이 아껴야 한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그이의 크나큰 사랑과 믿음에 무한히 고무된 송도정치경제대학 학생들은 평양시건설에 참가한 각 대학들과의 경쟁에서 1등의 영예를 지니였으며 공사를 끝내고 수령님의 은정으로 동해의 명승 원산송도원휴양소에 가서 즐거운 휴양을 하고 학교로 돌아갔다.

그해 8월 25일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학생들과 평양에서 하신 약속을 잊지 않으시고 송도정치경제대학 제1회 졸업식에 참석하시기 위해 대학에 찾아오시였다.

어느 학교이든 졸업식날에는 학부형들이 모여와서 자기 아들딸들의 졸업을 축하해주군 한다. 그런데 부모형제들이 남조선에 있는 이 대학 학생들에게는 찾아올 학부형들이 없었다.

그런데 위대한 수령님께서 졸업식날에 찾아오실줄이야…

위대한 수령님을 모신 승용차가 학교앞에 나타나자 전체 교직원, 학생들의 폭풍같은 만세의 환호소리가 터져올랐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만면에 해빛같은 미소를 담으시고 학생들의 환호에 답례를 보내시며 현관으로 들어서시였다.

학생들앞을 지나시던 그이께서는 평양시건설에 동원되였던 송도정치경제대학대대를 책임졌던 학생을 알아보시고 모란봉공사장에서 만났던 동무로구만라고 하시며 그의 손을 뜨겁게 잡아주시였다.

얼마후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송도정치경제대학 제1회 졸업식이 진행되였다.

졸업증수여를 비롯한 졸업식이 진행되는 동안 만면에 자애로운 미소를 담으시고 친히 박수를 치시면서 졸업생들을 축하하여주신 수령님께서는 졸업식참가자들의 열광적인 환호와 박수소리가 장내를 뒤흔드는 가운데 연단에 나서시였다.

그이께서는 먼저 전체 졸업생들과 교직원들을 축하하신 다음 지난 시기의 통일운동의 경험과 교훈에 대하여 분석하신데 기초하여 조국통일을 앞당기기 위한 과업들을 제시하시였다.

당시 남조선에서는 민족의 대단결에 기초한 북남협상의 방법으로 조국을 평화적으로 통일할데 대한 공화국의 통일방안이 각계각층 인민들속에서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키고있었으며 미제와 리승만역도의 민족분렬책동과 식민지파쑈통치를 반대하는 인민대중의 투쟁이 날로 앙양되였다.

이런 속에서 조국통일을 강령으로 내세운 진보당이 출현한것은 남조선인민들속에 조국통일기운을 높이고 애국적민주력량을 확대강화하여 대중적인 반미반파쑈민주화운동을 불러일으키는데 큰 영향을 주었다. 미국이 해방자, 원조자가 아니며 모든 불행과 고통의 화근이라는것을 깨닫기 시작한 많은 남조선인민들은 1950년대 중엽에 진행된 《대통령선거》에서 평화통일을 선거강령으로 내든 진보당에 지지를 표시하였다.

비록 미제와 그 주구들의 반공모략에 의하여 후날 조봉암이 체포학살되고 진보당이 해산되는것과 같은 좌절을 겪었지만 외세를 배격하고 북남협상과 평화적통일을 념원하는 남조선인민들의 대중적인 진출은 더한층 강화되고있었다.

수령님께서는 우리 조국의 통일은 미제국주의자들이 남조선을 강점하고있는 조건에서 장기적이고 어려운 투쟁이기는 하지만 미제는 결코 남조선을 자기의 영원한 식민지로 만들수는 없을것이라고, 미제가 조선에서 물러가고 조국이 통일되리라는것은 력사발전의 필연성이라고, 그러나 언제 통일될것인가, 빨리 통일되는가 늦게 되는가 하는 문제는 우리에게 달려있다고 하시면서 조국의 통일문제는 남반부에서의 로동운동의 앙양과 북반부에서의 민주기지의 공고화에 달려있다고 천명하시였다. 북반부에서는 사회주의건설을 더욱더 성과적으로 진행하고 남반부에서는 로동운동을 더 힘있게 벌려 앙양된 두 힘이 합세되는 때에는 통일이 실현될수 있다는 취지의 가르치심이였다.

그것은 새로운 평화통일사상의 제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날 연설에서 조국통일과 관련한 공화국정부의 립장에 대하여 밝히시면서 우리는 조국통일을 앞당기기 위하여 먼저 남북의 접촉과 여러 정당, 사회단체 인사들의 호상왕래와 련석회의소집을 주장한다고 말씀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이어 우리는 남조선당국에 당신들은 북반부에 들어와서 마음대로 자기의 당을 조직하라, 사회단체도 조직하라, 얼마든지 자유로 활동하라, 우리도 남반부에 나가서 당과 사회단체를 조직하고 활동하게 하라, 당신들은 북반부에 들어와서 우리의 로동자, 농민들앞에서 연설하라, 그대신 우리도 남반부에 나가서 로동자, 농민들앞에서 연설하게 하라고 서슴지 않고 말한다고 하시였다. 그러시면서 그러나 남조선당국은 이것을 겁나한다고, 지어는 편지거래를 하는것조차 겁나서 반대하고있다고, 그들은 남북의 접촉을 위한 우리의 어떠한 제안에 대해서도 문을 꽉 닫고 들은척만척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는다고 하시면서 우리는 그들이 남반부인민들의 압력에 의하여 반드시 대답하지 않으면 안될 때가 오리라고 믿는다고 말씀하시였다.

그이의 간곡한 가르치심을 받아안으며 대학의 교원, 학생들은 조국통일을 위한 길에서 자기들이 맡고있는 임무의 중요성을 새삼 가슴뜨겁게 느끼였으며 통일의 그날을 앞당겨오기 위하여 자기의 모든 힘과 지혜를 다 바쳐 싸워나갈 결의를 굳게 다지였다.

이날 오후 4시경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졸업식을 축하하는 학생들의 예술공연이 있었다.

학생들의 공연은 불멸의 혁명송가 《김일성장군의 노래》합창으로부터 시작되였다.

그렇게도 흠모하여마지 않던 민족의 태양이시고 절세의 위인이신 수령님을 한자리에 모시고 심장의 송가를 부르는 학생들의 눈에서는 모두 감격의 눈물이 반짝이였다.

수령님께서는 매 종목이 끝날 때마다 만족해하시면서 제일먼저 박수를 보내군 하시였다.

사실 그들이 노래를 불렀으면 얼마나 잘 불렀으랴. 그런데도 수령님께서는 아무런 구김살도 없이 명랑하게 노래를 부르는 학생들의 모습이 대견하시여 그토록 기뻐하시는것이였다.

그이께서는 학장에게 앞으로도 써클을 이런 방향에서 더욱더 발전시키도록 당부하시였다.

그이께서는 공연이 끝난 다음 학생들과 담화를 하시였다.

학생들의 학습과 생활에 대하여 하나하나 물어보신 수령님께서는 생활에서 애로들이 있으면 제기하라고 다정히 말씀하시였다.

학생들이 애로되는것이 없다고 일제히 대답하자 그이께서는 왜 없겠는가고 하시면서 서슴지 말고 제기하라고, 나는 동무들의 학부형이라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순간 학생들은 이루 형언할수 없는 커다란 감격에 가슴이 뭉클해짐을 금할수 없었다. 녀학생들속에서는 감격의 흐느낌소리가 터져나왔다.

학부형! 아마 사랑하는 부모형제들을 지척에 두고도 만나볼수 없는 이들에게 있어서 이 말처럼 가슴을 울리는 말은 없을것이다. 그런데 수령님께서 자기들의 학부형이라고 말씀하시니 학생들의 가슴은 절세의 위인을 친어버이로 모신 한없는 긍지와 행복감으로 하여 세차게 설레이였다.

바로 이때 한 학생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모두의 한결같은 마음을 담아 수령님을 모시고 사진을 찍고싶은 간절한 청을 말씀드렸다.

수령님께서는 만면에 환한 미소를 담으시고 좋소, 같이 사진을 찍읍시다라고 하시며 학생들의 팔을 끼시고 현관앞으로 나가시였다.

그이께서는 8월의 폭양아래서 학생들의 청을 다 들어주시며 오래도록 사진을 찍어주시였다.

수령님께서는 통일조국의 앞날을 떠메고나갈 학생들과 함께 계시는것이 마냥 기쁘고 즐거우시여 귀중한 시간을 그들을 위해 아낌없이 바치시였다.

송도정치경제대학의 영광의 제1회 졸업식날은 이렇게 저물어갔다.

자애로운 어버이를 모시고 진행된 이날의 졸업식은 그 어느 학교의 졸업식과도 대비할수 없는 가장 의의깊고 환희에 찬 졸업식이였다.

그날 대학을 떠나가시는 그이의 두팔을 부여잡고 눈물을 흘리는 학생들과 그들을 달래시는 수령님의 모습에는 어버이와 자식의 끊을수 없는 혈연의 정이 비껴있었다.

오실 때에는 기쁨을 안고 오시고 가실 때에는 혈육의 정을 두고 가시는 위대한 수령님을 우러러 터치는 눈물에 젖은 학생들의 환호성은 저 멀리 하늘가로 오래도록 울려퍼졌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 다음해인 1958년 4월 23일에도 대동강호안공사에 참가한 송도정치경제대학 교직원, 학생들을 만나주시고 공화국북반부에서 사회주의건설을 잘하는것이 곧 조국통일을 앞당기는 길이고 남조선에 있는 부모형제들과 처자들을 빨리 만나는 길이라고 하시며 고무하여주시였다.

정녕 위대한 수령님은 언제나 그들의 걸음걸음을 자애로운 손길로 이끌어주고 조국통일의 역군으로 키워주신 친어버이이시였고 위대한 스승이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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