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거장병들을 통일의 역군으로
1954년 7월 어느날 함경북도의 어느 조용한 산간역에 특별렬차가 멈춰섰다. 이 역이 생긴이래 특별렬차가 정차하기는 처음이였다. 누구도 렬차가 왜 이 산간역에 멈춰섰는지 그 사연을 알수 없었다.
잠시후 위대한 김일성장군님께서 렬차의 승강대를 밟으시며 내려오시였다. 함경북도에 대한 현지지도의 길에 계시던 수령님이시였다. 그날 수령님께서 렬차를 멈추게 하신것은 자신께서 아시는 한 인민군지휘관을 만나보시기 위해서였다.
수령님께서는 한동안 그 인민군지휘관을 기다리시며 역홈을 거니시였다. 3년간의 전쟁으로 다 파괴된 나라의 경제를 일떠세우시려고 분초를 아껴가시며 불면불휴의 로고를 바쳐가시는 수령님의 모습에는 피로가 짙게 어려있었다. 그 바쁘신속에서도 사랑하는 전사가 얼마나 보고싶으시였으면 이 산간역에서 그를 기다리고계셨으랴.
수령님의 기다림을 받는 복받은 행운아는 1949년에 한개 대대를 데리고 공화국북반부로 의거하여온 괴뢰군대대장들중의 한사람인 강태무였다.
1949년 5월 초순, 남조선에서 괴뢰군대대장으로 복무하던 강태무, 표무원이 자기 대대를 이끌고 공화국북반부로 의거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의거입북한 괴뢰군 2개 대대의 장병들을 모두 평양으로 데려오도록 특별렬차까지 보내주시고 성대한 환영까지 친히 조직해주시였다.
미제와 리승만반역도당의 반동통치를 반대하여, 동족을 반대하는 침략책동에 반기를 들고 공화국의 품에 안긴 그들을 인민들은 열렬히 환영하였다.
그들이 인민들의 뜨거운 환대속에 평양에 머무르고있던 어느날 수령님께서는 대담하고 능숙하게 괴뢰군 2개 대대를 데리고 공화국북반부로 의거하여온것은 조선청년으로서 애국적인 소행이라고 하시며 그들이 단행한 거사는 조국통일을 위하여 투쟁하는 남북조선인민들을 크게 고무해주는 행동으로서 마땅히 높은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리고 의거하여온 병사들가운데 앓는 사람은 없는가, 생활에서 불편한 점은 없는가 일일이 알아보시고 대책을 취해주시였으며 조선인민군에 입대하고싶어하는 그들의 소망을 헤아리시여 그들모두를 입대시켜주시고 조선인민군의 새 군복과 장구류, 생활필수품들을 일식으로 보내주도록 하시였다.
조선청년으로서 응당 해야 할 일을 한 그들에게 그토록 분에 넘치는 치하의 말씀을 하여주시고 인민의 진정한 군대가 되고싶어하던 그들의 소원까지 풀어주신 수령님의 하늘같은 믿음과 사랑에 그들모두는 크나큰 감격을 금치 못해하며 그 은정에 꼭 보답할 맹세를 다지고 또 다지였다.
그이의 은정은 이에 그치지 않았다.
강태무, 표무원에게 모젤권총을 선물로 보내주신 수령님께서는 조국해방전쟁이 일어났을 때에는 의거입북했던 병사들로 독립련대를 뭇도록 하시고 강태무와 표무원을 각각 그 련대장으로 임명해주시는 크나큰 신임을 안겨주시였다. 그리고 의거한 장병들속에 홍천과 춘천방향에 고향을 둔 사람들이 많다는것을 헤아리시고 그들 련대의 공격방향을 홍천과 춘천방향으로 정해주시고 그들이 그곳을 해방한 후에는 며칠간 묵으면서 가족들과 친척들을 만나보도록 하시였다.
생사를 판가리하는 전쟁마당에서 공격을 멈추고 병사들이 가족, 친척들을 만나보게 하는것은 무비의 담력과 배짱을 지니신 위대한 령장, 의거병사들을 끝없이 아끼고 사랑하시는 우리 수령님께서만이 내리실수 있는 결단이였다.
그이의 말씀을 전달받은 의거병사들은 대해같은 사랑에 솟구쳐오르는 격정을 금치 못하며 비호같이 달려나가 원래 의거입북전에 주둔했던 춘천, 홍천 등지를 해방하였다.
적들의 모략선전에 의하여 북에 가서 다 죽은줄로만 알았던 자식들이 혈기왕성하고 름름한 조선인민군 장병이 되여 나타나자 부모형제들의 감격은 실로 그 어디에도 비길데가 없었다.
손자를 만나본 한 로인은 강태무련대장을 찾아와 김일성장군님의 안부를 정중히 묻고는 장군님을 뵈옵거든 손자를 이렇게 름름하게 내세워주셔서 고맙다고, 이남백성들은 그이의 정치를 받을 날을 일구월심 기다렸다고, 장군님께서 건강하실것을 삼가 축원한다고 말씀올려달라고 거듭 당부하였다.
그이의 크나큰 사랑과 은정을 심장속에 간직한 독립련대 전투원들은 전투마다에서 불사신의 용맹을 떨치였으며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시기에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과감히 적후투쟁을 벌리면서 온갖 시련을 박차고 끝끝내 최고사령부를 찾아갔다.
엄혹한 시련을 헤치며 련대를 이끌고 들어온 그들의 후퇴정형을 보고받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들의 소행을 높이 평가하시였다.
련대전투원들은 전쟁 전기간 부대앞에 맡겨진 전투임무를 훌륭히 수행하였으며 이 과정에 의거장병들속에서는 여러명의 공화국영웅들이 배출되였다.
의거장병들을 위하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해빛같은 사랑은 전후에도 따사롭게 안겨져 강태무, 표무원은 조선인민군 장령으로 성장하였으며 당과 조국을 위하여, 조국의 통일독립과 사회주의건설을 위하여 책임적으로 사업해주기를 바란다는 수령님의 크나큰 믿음과 기대가 담긴 축하문까지 받아안게 되였다.
공화국북반부로 의거해온 첫날부터 주실수 있는 사랑과 믿음을 다 안겨주시며 조국과 인민에게 충실한 군사일군으로 키워주신 그이께서는 이렇듯 달리던 특별렬차를 산간역에 세우시고 장령복을 입은 강태무려단장이 보고싶다고 하시며 그를 만나려고 기다리시는것이였다.
그이의 부르심을 받은 강태무는 너무도 감격하여 단숨에 위대한 수령님께서 계시는 곳으로 달려왔다.
멀리서부터 그를 알아보신 수령님께서는 두팔을 벌리시며 반갑게 맞아주시고는 거수경례를 붙인 그의 손을 내리우시며 뜨겁게 잡아주시였다.
얼마나 뵙고싶던 수령님이시였던가.
조선청년으로서 응당 해야 할 일을 한 자기를 그토록 믿어주시고 한량없는 은정을 베풀어주신 그이를 단 한번만이라도 뵙고싶었던 그였다. 그런데 이렇듯 산간역에까지 특별렬차를 세우시고 반갑게 맞아주시는 수령님의 한량없는 사랑앞에서 강태무는 그만 눈굽이 쩌릿이 젖어들었다.
수령님께서는 그의 가슴에 주런이 달린 략장들이며 어깨우의 금빛장령견장을 쓰다듬어보시며 못내 대견해하시였다.
이어 그의 건강상태를 물어주신 수령님께서는 가족들의 안부를 자세히 알아보시였다.
친어버이의 사랑이 넘치는 그이의 물으심에 강태무는 목이 꽉 메여왔다. 사실 그의 가족이 전쟁시기 북으로 들어오게 된것은 수령님의 사랑과 은정이 있었기때문이였다.
고향마을을 해방한 부대장병들이 부모형제들과 감격적인 상봉을 하고있을 때 강태무도 헤여진 후 한해나마 소식을 모르고있는 가족들을 찾아보았으나 그들의 행방을 찾을 길 없었다.
그는 서운한 마음을 금할수 없었으나 전쟁마당에서 사사로운 일에 더는 신경을 써서는 안된다는 자각을 안고 다시 남진의 길에 올랐다.
이 사실을 아시게 된 수령님께서는 전쟁의 중하를 한몸에 안으신 그 바쁘신 가운데서도 전선지구 경비사령부의 한 일군을 찾으시여 그의 가족이 서울에 있을수 있다고 하니 어떤 일이 있어도 그 동무의 가족을 꼭 찾아내여 보고하라고 하시였다.
그이의 높은 뜻을 받들고 인민군군인들과 인민위원회일군들이 20여일간 애쓰던 끝에 그의 가족을 찾아내게 되였다.
이 사실을 보고받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그의 가족을 잘 돌봐주어야 하겠습니다. 먼저 안전한 곳에 집을 정해주고 아무리 전선정황이 긴급하다 하더라도 전선에 나가있는 강태무동무에게 련락하여 그가 서울에 들어와 가족들과 며칠간 즐겁게 휴식하도록 하여야 하겠습니다.》
그이의 은정깊은 조치에 의하여 락동강계선에서 싸우던 강태무는 련대를 잠시 인계하고 후방에 있는 가족들과 감격적인 상봉을 하게 되였다.
그후 수령님께서는 그의 가족들이 안전한 지대인 평양에 들어와 살게 해야 하겠다고, 그의 안해는 적들의 눈을 피해다니며 고생을 많이 한 녀성인데 사고없이 평양으로 데려와야 하겠다고 하시면서 적기의 폭격을 피해 안전하게 오려면 마차 같은것이 좋을것이라고 하시며 친히 인민군군인들을 보내시여 호송조직까지 하도록 해주시였다.
그날의 감격과 흥분이 되살아나 격정을 금치 못하고있는 그를 다정한 눈길로 바라보시던 수령님께서는 친부모의 심정으로 부대관리정형을 하나하나 알아보시였다.
그이께서는 오랜 시간에 걸쳐 그에게 부대지휘관리에서 나서는 문제들에 대하여 강령적인 가르치심을 주시였으며 지휘관들이 전사들의 친어머니가 되여 친혈육처럼 돌보아줄데 대하여 간곡히 당부하시였다.
이윽고 그이께서 떠나실 시간이 되였다.
그이께서는 귀한 자식을 두고 떠나는 부모의 심정그대로 인차 발걸음을 떼지 못하시며 그에게 필요한것이 있으면 지방당과 정권기관들에서 도움을 받도록 하라고 당부하시면서 오래도록 그의 손을 흔들어주시였다.
그이께서 타신 렬차가 멀리 사라졌어도 거수경례를 붙인 강태무의 손은 내릴줄 몰랐다. 이 세상에 사랑에 대한 감동적인 이야기는 많고많지만 이처럼 평범한 의거장병에게 돌려주신 우리 수령님의 따뜻한 은정에 어찌 비길수 있으랴.
함경북도에 대한 현지지도를 마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평양으로 떠나시기에 앞서 함경북도당 일군들과 정권기관 일군들에게 강태무의 부대를 잘 방조해줄데 대하여 당부하시였으며 그에게 무엇인가 기념으로 남기고싶으시여 자신께서 현지지도의 나날에 사용하시던 승용차를 보내주시였다.
친어버이의 이 위대한 사랑은 강태무와 같은 시기에 자기 대대를 데리고 의거입북한 표무원에게도 따사롭게 미치였다.
주체43(1954)년 5월 중순 어느날 한 군사학교를 현지지도하시던 수령님께서는 표무원이 이 학교에서 공부하고있다는 사실을 아시고 그를 몸가까이 불러주시였다.
수령님께서는 그가 방에 들어서자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시고 포연을 뚫고온 동무가 보고싶어서 불렀다고 하시면서 그를 따뜻이 맞아주시였다. 그러시고는 그에게 자리를 권하시며 아프지는 않는가, 부상당한데는 없는가, 늦게 공부를 시작해서 힘들지는 않는가를 하나하나 알아보시였다.
고향에 두고 온 부모형제들의 소식을 물으시던 그이께서는 의용군으로 들어온 동생을 내놓고는 생사여부를 모르고있다는 사실을 아시자 몹시 안색을 흐리시며 한동안 묵묵히 창밖을 내다보시였다.
그이께서는 조국이 통일되지 못하였으니 가족들은 미국놈들에게 계속 고통을 당하고있겠군 하고 혼자말씀처럼 외우시였다.
길지 않은 그 말씀에는 갈라진 겨레의 아픔이 그대로 비껴있었다.
이윽고 그이께서는 남조선을 한시라도 잊어서는 안되겠다고, 분렬된 조국을 후대들에게 절대로 넘겨줄수 없다고, 앞으로 남반부에 나가서 일을 많이 해야 하므로 더 많이 배워야 한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가 군사학교과정을 마치는동안 생활에서 외로움을 느낄가봐 만경대삼촌댁분들을 자주 보내시여 그를 친혈육처럼 살뜰히 돌봐주도록 하시였다.
그는 수령님의 이렇듯 극진한 보살피심속에서 학교를 마치고 군사부문의 중요한 직책에서 사업하게 되였다.
그러던 그에게 제대명령이 내리였다. 준엄한 전쟁시기 해안포려단을 지휘하다가 작렬하는 적들의 함포탄에 고막을 상했는데 그것이 도지여 더는 군사복무를 할수 없게 되였던것이다.
김일성장군님께서 안겨주신 군복을 입고 조국이 통일될 때까지 군인으로 살려던 결심을 포기하지 않으면 안되게 된 그는 이 세상의 모든것을 다 잃어버린것 같았다.
번민과 고뇌속에서 허전한 나날을 보내고있던 그는 1959년 7월초 어느날 뜻밖에도 위대한 수령님을 또다시 만나뵙는 크나큰 영광을 지니였다.
만면에 부드러운 미소를 담으시고 그를 따뜻이 맞아주신 그이께서는 그의 건강상태며 그간의 생활형편에 대하여 일일이 알아보시고나서 한동안 생각을 깊이하시며 방안을 거니시였다.
그러시다가 동무가 군대에서 제대된것을 몹시 아수해한다는데 그 심정을 충분히 리해할수 있다고, 동무를 군대에 다시 복무시킬수도 있지만 이왕 제대되였으니 사회사업능력을 키워 조국이 통일되면 남반부에 나가서 더 큰일을 해야 하겠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처음에는 군인민위원회 부위원장직에서 일해보다가 점차 능력을 키운 다음에 더 높은 직무를 수행해보자고 하시며 그에게 힘과 고무를 안겨주시였다.
조국통일, 그것은 남반부에 고향을 둔 그에게 있어서 한시도 잊은적 없는 절절한 념원이였다.
그런데 수령님께서는 군대에서 제대되여 조국통일 일선에서 물러섰다고 락심하고있는 그의 심정을 헤아리시고 이렇듯 몸가까이 불러주시여 통일의 역군으로 더 잘 준비해나가도록 다심한 은정을 베풀어주시는것이 아닌가.
그날 표무원은 절세의 위인의 남다른 관심과 은정속에 사는 자신이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소리높이 웨치고싶은 충동을 억제할수 없었다.
그후 그가 어느 한 군에서 인민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사업하면서 일정한 경험을 쌓게 되자 수령님께서는 그때 하신 말씀을 잊지 않으시고 그에게 도인민위원회 책임일군의 중임을 맡겨주시였다.
그가 평양으로 갔을 때 한 일군이 위대한 수령님께서 그에 대하여 하신 말씀을 전해주었다.
수령님께서는 그 동무는 해방후 괴뢰군 한개 대대를 인솔하고 의거입북하였으며 전쟁시기에는 인민군련대장으로 용감히 잘 싸웠고 전후에도 당을 따라 성실하게 일한 동무라고 하시면서 그를 잘 돌봐주어야 한다고 간곡히 당부하시였다는것이였다.
갈수록 더해만지는 수령님의 크나큰 믿음과 사랑에 그는 감격을 금치 못하며 새 직무에서 수령님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열심히 배우고 일하여 조국통일위업에 이바지하리라 굳게 마음다지였다.
의거장병들을 극진히 보살펴주시는 그이의 사랑과 믿음은 정녕 끝이 없었다.
그 사랑, 그 믿음속에 강태무, 표무원은 김일성훈장수훈자, 조국통일상수상자로, 조선인민군 장령,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 강사로 한생을 보람있게 살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