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구를 막은 영웅이 다시 초소에 서기까지
조국해방전쟁시기 적의 화구를 막고 가슴에 11발의 중기관총탄알을 맞고도 기적적으로 소생한 김성진영웅에 대한 이야기는 아득한 세월이 흐른 오늘에도 사람들속에 전설처럼 전해지고있다.
김성진의 고향은 강원도 홍천이였다. 그는 남반부인민들을 미제의 식민지통치와 리승만도당의 학정밑에서 해방시켜 공장과 땅의 주인으로, 정권의 주인으로 내세워주는 고마운 세상을 지키기 위해 인민의용군에 탄원하여 영웅적위훈을 세워가고있던 수많은 애국적인 청년들중의 한사람이였다.
김성진영웅의 소생은 당시 우리 인민들뿐아니라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속에서 놀라움과 경탄을 자아내였던 기적적인 현실이였다.
사실 의학의 힘으로는 소생이 전혀 불가능한 그였다.
그런데 어떻게 삶과 죽음의 계선을 헤매이던 그가 건강을 회복하고 다시 대오에 서게 되였던것인가.
1953년 1월 김성진은 565. 고지의 적들을 소멸하기 위한 습격전투에 참가하게 되였다.
이 습격전투는 이 고지에 적들이 더 증강되여오기 전에 선손을 써서 적의 기도를 분쇄해버리기 위한 중요한 전투였다.
적들이 설치하여놓은 장애물들을 제거하여 아군의 진격로를 개척할데 대한 임무를 받은 김성진은 어둠을 타고 적진지로 은밀히 접근하였다. 어렴풋한 달빛에 고지릉선에 있는 적중기관총화점이 거뭇거뭇하게 그 륜곽을 드러내고있었다.
화점이 있는 곳까지 은밀히 접근하여 우선 적화점을 까부셔야 하였다. 그는 한손에는 반전차수류탄을 또 다른 한손에는 기관단총을 틀어쥐고 두팔꿈치로 배밀이를 하여 기여갔다.
적화점을 가까이 하느라니 미제침략자들에게 짓밟히고있는 남녘땅, 거기에서 신음하며 구원을 기다리는 부모형제들의 얼굴이 얼른거리였다.
그가 적의 화구앞 8m내외의 거리에 접근했을 때였다.
갑자기 적화구에서 불을 토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반전차수류탄을 적화구를 향하여 힘껏 던졌다.
불빛이 번쩍 일면서 꽝 하는 요란한 폭음과 함께 짖어대던 적의 화점은 죽은듯 잠잠해졌다.
그런데 중대장의 돌격구령에 따라 중대가 돌격에로 이전하려고 하였을 때 파괴된줄로만 알았던 적의 화점에서는 중기관총이 다시 미친듯이 불을 뿜어대는것이 아닌가.
순간 김성진의 눈에서는 불이 확 이는듯 하였다.
잠시라도 지체하면 전우들이 쓰러지고 돌격이 좌절된다고 생각한 그는 벌떡 몸을 일으키며 달려가 불을 토하는 적의 화구를 몸으로 막았다.
김성진의 영웅적위훈에 의하여 열려진 돌격로를 따라 고지에 오른 중대전사들은 적들을 모조리 소탕하고 적들의 측면공격기도를 완전히 분쇄하였다.
오래동안 의식을 잃었던 그가 정신을 차린것은 어느 야전병원에서였다. 사실 그가 처음 병원에 후송되여왔을 때 유능한 군의들도 왼쪽가슴에 11발의 중기관총탄알을 맞은 그가 다시 소생한다는것은 현대의학상식으로써는 도저히 생각할수 없는 일이라며 손맥을 놓았었다.
바로 그런 때에 김성진의 영웅적소행에 대하여 보고받으신 위대한 김일성장군님께서는 한밤중에 친히 야전병원에 전화를 거시여 환자의 병세를 일일이 알아보시고 영웅전사의 생명을 꼭 구원할데 대한 지시를 주시였다. 그러시고는 곧 중앙의 유능한 군의일군들을 파견하시는 한편 환자의 소생과 건강회복에 요긴한 약들과 보약을 보내주시였다.
군의들은 수령님께서 그렇듯 아끼고 사랑하시는 용감한 병사를 구원해내기 위한 전투를 벌려나갔다.
위대한 어버이의 다심하고 뜨거운 사랑이 불사약이 되고 생명수가 되여 그는 기적적으로 소생하였으며 그의 상처는 날이 갈수록 빨리 회복되여갔다. 그리하여 그는 치명상을 입고 입원한지 몇달만에 건강을 회복하고 야전병원에서 퇴원하여 평양의 군인숙소에 머물고있었다.
그러던 1953년 6월 어느날 김성진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자기를 부르신다는 감격적인 소식에 접하였다.
군인숙소에 있는 군인들의 열렬한 축하와 한없는 부러움의 눈길을 온몸에 받아안고 그가 한달음에 최고사령부에 도착하여 그이께서 계시는 방에 들어섰을 때였다.
한쪽손에 색연필을 쥐신 위대한 수령님께서 《성진이가 왔구만. 오느라고 수고했소.》라고 우렁우렁한 음성으로 말씀하시며 마주 나오시였다.
순간 김성진은 차렷자세로 거수경례를 하려고 하였다.
수령님께서는 그러는 그의 손을 잡아내리시며 그를 와락 그러안아주시였다. 그러시고는 잘 싸웠다고, 용감히 싸웠다고 거듭 뇌이시며 그의 등을 두드려주시고 머리와 어깨를 쓰다듬어주시였다.
그이께서는 그러시다가 그의 부상당했던 자리를 다정히 쓸어보시며 《이렇게 손을 대면 아직두 아프지. 숨쉬기두 괴롭구.》라고 물으시는것이였다.
한없이 다심하고 인자하신 친어버이사랑에 김성진은 무슨 말을 어떻게 여쭈어야 좋을지 몰라하다가 또다시 그이의 넓은 품에 와락 안기였다. 그리고는 아버지의 품에 안긴 어린애처럼 그이의 옷섶이 눈물에 얼룩지는것도 모르고 흐느껴울었다.
너무도 가슴뜨거운 화폭앞에서 방안에 있던 일군들도 전사를 만류할 생각을 못하고 눈굽을 적시였다.
수령님께서는 들먹이는 그의 어깨를 달래시듯 가볍게 다독여주시며 잠시 아무 말씀도 않으시다가 그의 손을 이끌어 의자에 앉히시였다.
그리고는 그의 얼굴을 찬찬히 보시다가 아직도 몸이 회복되지 않은것 같다고, 왜 우리가 성진이 몸을 이렇게밖에 회복시키지 못하겠는가고 나직이 말씀하시고는 괴로운 표정을 지으시고 방안을 거니시였다.
얼마후 자리에 돌아오신 수령님께서는 그의 얼굴을 바라보시다가 오늘은 이만 가서 몸을 더 안정하는게 좋겠다고, 몸이 건강해야 한다고, 앞으로 더 무거운 임무가 있고 더 어려운 싸움이 있다는것을 생각해야 한다고, 몸조리를 더 잘하고 건강해진 다음에 다시 만나서 이야기하자고 다정하게 말씀하시였다.
자기의 건강에 대하여 그처럼 깊고도 세심하게 관심을 돌려주시는 그이의 말씀에 김성진은 끓어오르는 감격을 금할수 없어 또다시 어깨를 들먹이였다.
수령님께서는 그를 데리고 문밖에까지 나가시여 몸이 건강해지면 또 련락을 할테니 어서 가서 안정을 잘하라고 거듭 당부하시면서 그가 탄 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어 바래워주시였다.
김성진이 하루속히 건강한 몸이 되여 위대한 수령님을 다시 만나뵈오리라 굳게 다짐하고 치료와 몸단련에 열중하고있던 어느날이였다.
수령님께서는 또다시 그를 몸가까이 불러주시였다.
김성진은 그이께서 보내주신 승용차를 타고 최고사령부로 갔다.
그가 차에서 내려서자 그이께서는 어느새 보셨는지 창문을 여시고 내다보시며 어서 들어오라고 손짓하여주시는것이였다.
그가 너무도 기뻐 그이께서 계시는 방으로 막 달려가 거수경례를 하고 보고하려고 하자 그이께서는 그의 손을 잡아 의자있는 곳으로 이끄시였다.
그러시고는 《그래, 몸은 좀 어때. 퍽 건강해보이는구만. 오늘은 좀 이야기해볼수 있겠지.》라고 하시며 만족한 웃음을 지으시였다.
그이께서는 김성진을 미소어린 얼굴로 한동안 바라보시더니 담배갑을 내놓으시며 담배를 피우라고 권하시였다.
그가 황송해하며 피우지 않는다고 말씀드리자 그이께서는 손수 담배 한대를 꺼내여 그의 손에 쥐여주시고 성냥까지 그어 그의 앞으로 내미시였다.
그가 당황하여 어쩔바를 몰라하며 뒤로 물러앉자 그이께서는 내앞에서 담배를 피운다고 나무랄 사람은 없다고, 서로 이렇게 앉아 이야기할 때야 허물할게 있는가고 하시며 끝내 담배불을 붙여주시였다.
그이께서 어찌나 친근하고 소탈하게 대해주시는지 그는 어느덧 고향집에 와있는듯 한 느낌이 들었다.
자애로운 눈길로 그를 바라보시던 수령님께서는 신문에서도 읽고 라지오에서도 성진이에 대한 이야기를 잘 들었다고, 참 용감히 잘 싸웠다고, 원쑤놈들의 숨통을 막아놓고 전우들의 돌격로를 열어주었다고, 참 용감하다고 치하의 말씀을 하시였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시여 색연필을 쥐시고 벽에 걸려있는 지도앞으로 다가가시더니 한 고지를 짚으시며 여기서 성진이가 싸웠다고 곁에 있는 일군들에게 말씀하시였다.
그이께서는 김성진의 곁으로 다가오시여 어깨에 손을 얹으시더니 고향이 어딘가고 물으시였다.
그가 강원도 홍천이라고 말씀드리자 그이께서는 과일이 많이 나는 곳이라고 하시고는 그와 그의 가정의 지나온 생활에 대하여 물으시였다.
김성진은 지주의 등살에 헐벗고 굶주리며 머슴살이, 소작살이를 하던 일, 녕월탄광에서 고역살이를 하던 일, 해방후에도 미국놈들의 압제밑에서 소작살이를 하던 일을 말씀드렸다.
수령님께서는 그의 말을 들으시고는 성진이두 고생많이 했구만, 우리 조선사람들이 다 그렇게 고생했소라고 하시며 인민군대가 고향을 해방한 후에 토지를 분여받았는가고 물으시였다.
그가 밭 1 700평과 논 300평을 분여받았다고 말씀드리자 그이께서는 그 땅은 지주의 땅이 아니라 동무네 땅이라고, 우린 그걸 찾아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잠시후 그이께서는 그에게 인민군대에 입대한 후 어떤 전투에 참가했는가고 물으시였다.
그가 기억을 더듬어가며 말씀드리자 수령님께서는 전투경험도 많다고, 그런 가렬한 투쟁속에서 단련된 사람은 의지가 강하고 어떤 어려운 환경에서도 항상 자기 임무를 충실히 수행할수 있다고 하시였다. 그러시고는 잠시 말씀을 끊으셨다가 그를 바라보시며 이제는 공부를 해야 한다고, 몸을 좀더 회복한 다음에 학교에 가라고 하시였다.
마디마디에 사랑과 믿음이 흘러넘치는 그이의 말씀에 커다란 감동을 금치 못하던 김성진은 중대에 돌아가서 더 싸우겠다고, 남녘땅이 완전히 해방되고 고향이 다시 해방되는 날까지 손에서 총을 놓지 않겠다고 말씀드리였다.
그러자 수령님께서는 훌륭한 생각이라고, 그러나 공부하는것도 혁명과업이며 앞으로 더 많이 일하자는것이라고 하시면서 성진이처럼 잘 싸운 사람들은 더 많이 배워야 한다고 친자식에게 이르듯이 차근차근 일깨워주시였다.
어느덧 시간이 퍼그나 흘러 점심시간이 되자 그이께서는 성진이 시장할것도 잊고 이야기만 할번 했소라고 웃음어린 어조로 말씀하시고는 그를 식당으로 데리고 가시였다.
식사가 끝난 후 식당에서 나오신 그이께서는 떠나가는 그에게 거듭 건강하여 공부 잘하라고 하시면서 귀중한 선물까지 안겨주시였다.
그이께서 안겨주신 선물을 가슴에 받아안은 그는 《최고사령관동지! …》 하고는 목이 메여 더 말을 잇지 못하였다.
정녕 우리 수령님은 탁월한 군사전략가이시기 전에 전사들의 친어버이이시였다.
적의 화구를 막고 다 죽었다고 하던 한 인민군전사가 소생하여 다시 초소에 서게 된것을 그리도 기뻐하시며 그에게 주실수 있는 사랑과 은정을 다 베풀어주신 수령님께서는 그의 영웅적위훈에 대하여 널리 소개선전하도록 하시여 그의 공적을 높이 내세워주시였다.
하기에 모스크바에서 열렸던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참가한 김성진영웅을 만난 이전 쏘련 붉은군대의 한 기자는 흥분하여 자기네 나라에서도 전쟁때 화구를 막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산 사람은 없다, 그때 누구도 그들을 살릴 생각을 못했다, 오직 김일성장군님께서만이 그런 기적을 창조하시였다고 하면서 엄지손가락을 높이 추켜들었다.
옳은 말이였다. 하지만 그는 한 남반부출신병사의 소생을 위해 기울이신 수령님의 로고에 대하여 또 그만이 아닌 우리의 모든 병사들을 친부모의 정으로 보살펴주시며 무적의 영웅으로 키워주시는 위대한 령장의 사랑의 세계에 대하여 다는 알수 없었다.
수령님께서는 김성진에게 공화국영웅칭호를 수여하도록 하시였으며 끊임없는 은정을 베풀어주시였다. 그 사랑이 있어 그는 죽음을 이겨냈을뿐아니라 오래동안 건강한 몸으로 나라의 부강번영과 조국통일을 위해 헌신할수 있었다.
력사에는 명장으로 이름을 남긴 위인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그 어느 전쟁사에도 이렇듯 병사들과 심장의 피를 나누고 숭고한 덕과 정으로 빛나는 승리를 안아오신 위대한 수령님과 같은 탁월한 령장, 자애로운 어버이는 일찌기 없었다.
정녕 백전백승의 강철의 령장이시며 전설적영웅이신 위대한 김일성장군님을 최고사령관으로, 민족의 어버이로 모시였기에 우리 인민은 세인을 놀래운 영웅인민으로 자라났으며 우리 조국은 력사상 처음으로 세계《최강》을 자랑하던 미제를 타승하고 놈들을 서산락일의 운명에 몰아넣은 영웅의 나라로 만방에 빛을 뿌리게 되였던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