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부부근의 한 농가를 찾으시여
미제와 리승만반동통치에서 해방된 기쁨으로 설레이던 남녘땅은 1950년 7월 4일 또 한번 충격과 환희에 휩싸였다. 공화국남반부지역에서 토지개혁을 실시한다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이 발표되였던것이다.
《제1조 미제국주의자와 리승만괴뢰정부의 악독한 통치로부터 해방된 공화국남반부농민들에게 자유와 행복을 주며 락후한 농촌경리를 급속히 발전시킬 목적으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헌법 제7조에 의거하여 공화국남반부에 토지개혁을 실시한다. 토지개혁은 무상몰수, 무상분여의 원칙에 의거한다. …》
제땅을 가지는것이 숙망이던 농민들은 더 말할것도 없고 온 남녘인민들이 토지개혁정령을 열광적으로 지지환영하였다.
《인민군대의 진격에 의하여 농민들의 숙망은 실현되였으며 그 숙망실현에 감격한 농민들이 토지개혁에 감사하다는 편지를 김일성장군님께 보낸것이 지난 2일간만 해도 3 000여통에 달한다.》
이것은 남반부에서의 토지개혁상황을 보도한 당시의 남조선출판물 《독립신문》에 실린 글의 일부이다.
이 짧은 글을 통해서도 당시 남반부인민들이 토지개혁을 얼마나 열렬히 지지환영하였고 땅을 주신 위대한 김일성장군님에 대한 흠모심이 얼마나 강렬하였는가를 잘 알수 있다.
봉건적착취관계가 남아있던 남조선의 당시 실정에서 토지개혁을 실시하는것은 땅의 주인이 되려는 농민들의 세기적념원을 풀어주는것은 물론 농민들을 비롯한 광범한 대중을 나라의 통일독립을 위한 투쟁에로 불러일으키는데서 매우 중요한 정치적문제였다.
해방된 남반부지역에서의 토지개혁의 중요성을 통찰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토지개혁을 실시할데 대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을 발표하도록 하신데 이어 토지개혁을 도와주기 위하여 농촌에 수많은 당원들과 핵심로동자들을 파견하시는 한편 토지개혁지도성원들도 파견하여 이 사업이 편향없이 진행되도록 하시였다.
토지개혁을 비롯한 제반 민주개혁을 성과적으로 수행할수 있는 방향과 방도를 환히 밝혀주시고 그 실천적조치까지 다 취해주신 수령님께서는 친히 해방된 남반부지역들에 나가시여 제반 민주개혁사업을 현명하게 령도하시였으며 남반부인민들을 만나주시고 그들의 생활을 친어버이심정으로 보살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39(1950)년 7월 16일 경기도 파주군 림진면 점원리를 찾으시였다. 그때는 새벽 2시가 되여오던 때였다.
수령님께서는 이곳에서 한 농민을 만나주시고 담화를 나누시면서 토지개혁실태에 대하여 료해하시였다.
농민과 허물없이 무릎을 마주하신 그이께서는 미제와 리승만괴뢰도당의 학정밑에서 살아온 농민들의 생활처지에 대하여 알아보시였으며 농사형편과 살림살이형편에 대하여 하나하나 료해하시였다. 그러신 다음 새로 분여받은 토지는 얼마인가, 식구수는 얼마인가 등을 구체적으로 알아보시고 지난날 땅이 없어 지지리 천대받고 억눌리우던 천덕꾸러기였던 자기에게 무상으로 땅을 준 공화국정권의 고마움에 감사의 정을 금치 못하는 그 농민에게 분여받은 토지에서 농사를 잘 지을데 대하여, 전선원호사업에 적극 떨쳐나설데 대하여 말씀하시면서 그에게 밝은 앞날에 대한 신심과 희망을 안겨주시였다.
그때로부터 근 한달이 지나 삼복더위가 한창이던 8월 14일이였다.
그날 수령님께서는 찌는듯 한 무더위도 무릅쓰시고 토지개혁정형을 알아보시려고 친히 경기도 의정부부근의 한 농가를 찾으시였다.
수령님께서는 집마당으로 들어서시며 토방에서 내려서는 녀주인에게 해방이 되니 살기가 어떠냐고 다정히 물으시였다.
녀인은 찾아오신분이 뉘신지도 모르고 김일성장군님은덕에 좋은 세상을 만났다고 하면서 어서 방으로 들어가시자고 말씀드렸다.
그러던 녀인은 한순간 오도카니 서서 무엇인가를 생각하더니 고개를 기웃거리였다. 어디선지 뵈온듯 한 낯익은분이심을 느꼈던것이다.
녀인은 몇번이나 그이의 얼굴을 살피더니 불현듯 방안으로 들어가서 해방된 날 남편과 함께 방안에 정중히 모셨던 수령님의 초상화를 찬찬히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다시 밖으로 달려나와 수령님을 우러러보다가 어찌나 놀라고 감동했던지 눈물이 글썽해지며 몸둘바를 몰라했다.
《장군님! 장군님을 이렇게 우리 집에서…》
이렇게 말하는 녀인의 눈에서는 행복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땅을 주신 장군님을 풍년농사를 지어가지고 우리들이 꼭 찾아뵙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녀인은 더 말을 잇지 못하였다.
한동안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던 녀인은 마음을 진정하고 인민군대에 의하여 의정부가 해방되고 또 토지개혁의 혜택으로 3 000평의 땅을 분여받은것이 꿈만 같다고 말씀드렸다.
녀인의 말을 들으신 수령님께서는 그것은 꿈이 아니라 현실이라고, 공화국북반부에서는 이미 1946년 3월에 토지개혁을 실시하였다고 하시면서 북반부농민들은 지금 토지개혁의 혜택으로 땅의 주인이 되고 지주의 착취에서 벗어나 잘살고있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원래 밭갈이하는 농민이 땅의 주인이 되는것은 응당한 일이라고, 공화국정부는 남반부농민들을 지주의 착취와 압박에서 해방하고 평생 제땅을 가지고 마음껏 농사를 지어보았으면 하는 그들의 소원을 풀어주기 위하여 토지개혁을 실시하고있다고, 토지개혁이 끝난 이 지방에서는 이제는 지주도 없고 빼앗아갈 사람도 없으니 마음놓고 농사를 지어도 된다고 따뜻한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난생처음 들어보는 희한한 말씀에 감동을 금치 못해하는 녀인을 다정한 눈길로 바라보시던 그이께서는 지금 해방된 남반부지역에서 토지개혁과 함께 군, 면, 리(동)인민위원회선거가 실시되고있다고 하시며 인민위원회선거가 가지는 의의에 대하여 알기 쉽게 설명해주시였다.
그러자 녀인은 자기 마을에서는 이 고장에서 머슴살이도 하고 영등포기계공장에서 로동을 하면서 미제와 리승만도당을 반대하여 용감히 싸운 사람을 리인민위원회 위원장으로 선거하였다고 자랑스럽게 말씀올렸다.
수령님께서는 그것은 잘한 일이라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어제날 천대와 멸시를 받으면서 죽지 못해 살아온 로동자, 농민들이 마땅히 나라의 주인으로 되여야 합니다. 로동자, 농민들이 나라의 진정한 주인이 되려면 공장과 땅의 주인이 되여야 하고 정권의 주인이 되여야 합니다.》
그러시면서 수령님께서는 우리 공화국정부는 남조선의 로동자, 농민들을 정권의 주인으로 만들기 위하여 지금 해방된 남반부지역에서 지방주권기관선거를 실시하고있다고, 우리는 이번 선거를 통하여 로동자, 농민을 비롯한 광범한 인민대중의 리익을 옹호하여 투쟁하는 진정한 인민의 정권을 세워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그이께서는 계속하여 미제와 리승만매국도당은 공화국북반부인민들이 주권의 주인으로서 행복하게 살고있는것을 눈에 든 가시처럼 여기면서 그것이 남반부인민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두려워 공화국북반부를 반대하는 전쟁을 일으켰다고 하시면서 우리 인민이 정권의 주인, 공장과 땅의 주인으로서의 권리를 빼앗기지 않기 위하여서는 어떻게 하나 이번 전쟁에서 이겨야 한다고, 우리가 전쟁에서 이기자면 남북조선의 전체 인민들이 한사람같이 떨쳐나서야 한다고 강조하시였다.
그 어떤 성인에도 비길수 없는 자애와 풍만한 인정미, 무한히 소탈하고 겸허하신 풍모, 래일에 대한 밝은 희망을 안겨주는 구수한 말씀, 한없이 숭고하고 자애로운 풍모에 매혹되여 그이를 하염없이 우러르던 녀인은 가슴속격정을 가까스로 누르며 장군님은덕을 잊지 않고 농사를 잘 지어 전쟁승리에 기여하겠다고 말씀올리였다.
그의 말을 들으신 수령님께서는 주인내외가 조국해방전쟁의 승리를 위하여 헌신적으로 투쟁하여 공화국공민의 본분과 도리를 다하리라고 믿는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바로 이때 그 집 아이들이 마당으로 달려들어왔다.
수령님께서는 그들을 품에 안아주시며 학교에 다니는가, 공부를 하니 좋은가 물어도 보시고 학교에서 배운 노래가운데서 제일 좋은 노래를 하나 부르라고 말씀하시였다.
아이들은 신이 나서 새로 배운 노래를 목청껏 불렀다.
그이께서는 아이들이 노래를 부르자 그 노래를 누가 배워주던가고 물으시였다. 아이들은 인민군대아저씨들이 배워주었다고 자랑하였다.
수령님께서는 참 잘 불렀다고 치하해주시였다. 그이께서 자기들을 허물없이 대해주시자 아이들은 어려움도 잊고 김일성장군님께서 나오신다고 하였는데 언제 나오시는가고 물었다.
수령님께서는 동행한 일군들을 둘러보시며 호탕하게 웃으신 다음 《응, 우리가 가서 빨리 오라고 해주지.》라고 말씀하시였다.
수령님께서 아이들과 이야기를 즐겁게 나누고계시는데 어느 사이에 자기들에게 땅을 주신 김일성장군님께서 마을에 오시였다는 반가운 소식을 듣고 마을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수령님께서 아이들과 말씀하시는 사이에 그 집 녀인이 마을사람들을 데리러 갔던것이였다.
수령님께서는 마을사람들과 함께 토방에 허물없이 앉으신채 이야기를 나누시였다.
농민들은 장군님께서 땅을 분여해주셨기에 제땅에서 농사를 지어봤으면 원이 없겠다던 평생소원이 풀렸다고 하면서 이 크나큰 은덕에 무엇으로 보답했으면 좋을지 모르겠다고 자기들의 심정을 스스럼없이 말씀올리였다.
수령님께서는 땅의 주인이 되여 기쁨과 행복에 휩싸여있는 그들의 얼굴을 바라보시며 만시름이 한꺼번에 놓이시는듯 만면에 환한 미소를 담으시였다.
평범한 농사군에 불과한 자기들에게 천금같은 시간을 바쳐가시며 한생 잊지 못할 귀중한 말씀을 해주시는 민족의 위대한 태양이시며 재생의 은인이신 김일성장군님을 우러르는 그들의 눈가에는 감격의 눈물이 고이였다.
그날 의정부의 농민들이 흘린 기쁨과 감격의 눈물속에는 전쟁의 불길속에서 남녘땅에 인민의 새세상을 안아오시고 그 밝은 미래를 펼쳐주시는 민족의 위대한 어버이에 대한 모든 남녘겨레들의 다함없는 감사의 정이 뜨겁게 어려있었다.
《… 저는 아비도 머슴이옵고 제 형도 머슴이옵고 또 두 동생놈도 머슴이옵니다. 저는 선키가 지게보다 조금 높을 때부터 지주에게 마소처럼 시달렸나이다. 지주는 저를 턱으로 부르고 매질로 부렸고 개와 마주앉아 밥먹게 했나이다. 우리 5부자가 한해에 짓는 농사가 2백섬도 더 된듯싶사오나 저희들은 모두 굶어 부황이 나옵고 설, 추석에도 조상앞에 밥 한사발 못 떠놓았나이다. 그러한 저에게 장군님이 땅을 주셨나이다. 익은 과일 쳐다보듯 오며가며 군침만 삼켜오던 그 탐스러운 문전옥답을 아름이 벌도록 주셨나이다. 이것이 꿈이오니까, 생시오니까. 우리 집 사람들은 밥을 안 먹어도 배가 부르옵고 밤을 새워도 좋기만 하옵니다. 살아생전에 이 은혜를 안 갚으면 너는 내 자식이 아니라고 하오며 저의 늙은 어미는 노래처럼 장군님은덕을 칭송하고있사옵니다. …》
이것은 땅을 분여받은 충청북도 보은의 한 농민이 위대한 수령님께 삼가 올린 감사편지의 일부이다.
토지개혁이 성과적으로 진행되도록 현명하게 이끌어주신 수령님께서는 그 성과를 공고히 하시기 위하여 8월 18일에는 공화국남반부지역에 농업현물세제를 실시함에 관한 내각결정을 채택하게 하시여 종래의 략탈적인 량곡매입과 토지에 대한 지세 및 기타 일체 세금이나 부담금을 페기하게 하시였으며 농민들로 하여금 북반부와 동일한 비률의 현물세를 국가에 납부하고 남은 여유농산물은 자유로이 처분할수 있게 하시였다. 뿐만아니라 령락된 남반부농촌경리를 급속히 복구하고 어려운 농민들의 생활을 개선향상시킬 목적으로 여름작물에 대한 현물세를 면제하며 가을작물에 대한 현물세를 현저히 덜게 하시였으며 전쟁피해를 입은 농작물에 대해서도 현물세를 덜어주거나 면제하도록 하시는 세심하고도 뜨거운 은정을 베풀어주시였다.
어찌 그뿐이랴.
수령님께서는 1950년 8월 19일에는 공화국남반부지역에서 로동법령을 실시할데 대한 내각결정을 발표하도록 하시였으며 민주주의적이며 인민적인 교육제도, 보건제도를 비롯한 여러가지 인민적시책들을 련이어 실시하도록 하시여 남조선인민들의 생활을 안정향상시켜주시고 그들을 진정한 나라의 주인, 자기 운명의 주인으로 내세워주시였다.
예로부터 민심은 천심이며 민심을 얻으면 천하를 얻는다고 하였다.
남조선인민들은 자기들에게 땅을 주시고 참다운 인간의 삶을 안겨주신 위대한 수령님을 해방의 은인으로, 민족의 어버이로 우러르며 절대적으로 믿고 따랐으며 그이의 령도따라 래일에 대한 신심과 확신에 넘쳐 전쟁승리를 위한 투쟁에 한사람같이 떨쳐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