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미제의 무력침공에 대처하여
평화통일실현의 앞장에 세워주시다
공화국의 평화적조국통일방책선언서는 우리 인민들속에서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북과 남의 온 겨레는 선언서를 절대적으로 지지하였으며 남조선에서 미제침략군과 유엔조선위원단을 철수시키고 북남조선 전지역에서의 민주주의적총선거를 실시하여 조국의 평화적통일을 이룩할 열망으로 끓어번졌다.
하지만 민족의 리익에는 관계없이 미제에게 명줄을 걸고 저들의 《정권》유지에 혈안이 되고있던 리승만도당은 미제의 사촉하에 북침전쟁준비를 더욱 다그쳐나갔다.
놈들은 《병역법》의 조작으로 괴뢰군병력을 대대적으로 늘이였으며 미국에서 수많은 무기와 전투기술기재들을 끌어들이는 한편 남조선사회의 민주주의적발전과 평화통일을 지향하는 애국적민주세력을 야수적으로 탄압해나섰다. 38°선일대에는 방대한 무력이 증강배치되였고 무장충돌과 대규모무장침범이 매일과 같이 감행되였다.
리승만역도는 《북벌》의 기회만을 노리고있었다.
조선반도정세는 일촉즉발의 전쟁국면에 놓이게 되였다. 만일 이 사태를 수수방관한다면 우리 민족은 전쟁의 참화를 면치 못하게 될것이였다.
많은 사람들이 미제와 리승만도당이 미친듯이 모는 전쟁마차를 더는 멈춰세울수 없다고 심각한 우려와 불안속에 잠겨있을 때 변함없이 평화통일의 기치, 민족대단합의 기치를 높이 드신 위대한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조국통일의 유일한 방도는 1949년 6월에 있은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결성대회에서 채택된 평화적조국통일방책선언서에 밝혀진대로 온 민족이 하나로 굳게 뭉쳐 평화적통일을 위한 투쟁을 과감히 벌려나가는데 있다고 보시고 이 사업을 현명하게 령도해나가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1950년 정초에 있은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와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중앙위원회 제4차회의, 북조선천도교청우당 제3차대회 그리고 1950년 5월에 소집된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위원회에서 북과 남의 전체 인민들에게 미제와 리승만도당의 새 전쟁도발책동을 짓부시기 위한 투쟁에 과감히 떨쳐나설것을 호소하는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편지, 호소문 등을 채택하도록 하시여 전쟁을 막고 평화적조국통일방책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에로 힘있게 불러일으키시였다.
그러던 주체39(1950)년 5월 27일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국의 평화적통일과 관련한 가르치심을 주시기 위하여 당시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산하 근로인민당 위원장 리영선생을 친히 만나주시였다.
파쟁으로 얼룩진 부끄러운 인생길을 걸어온 자신을 탓하지 않으시고 늘 가까이 불러주시며 신임을 베풀어주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고매한 은정에 송구스럽기만 한 그였다.
돌이켜보면 해방년의 9월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뵙고 귀중한 가르치심을 받은 리영선생은 그이의 뜻대로 살려고 장안당을 깨고 재건당에 들어가 미력이나마 공산주의대렬의 통일단결에 이바지해보려고 하였었다. 그러나 미제의 교활한 방해책동과 박헌영을 비롯한 종파분자들의 파벌싸움으로 하여 공산주의운동대렬내의 단결을 이룩할수 없었다.
그후 그는 려운형을 당수로 하는 근로인민당 창당에 참가하여 부위원장으로 되였으나 려운형이 암살된 후 당내 파벌투쟁이 로골화되여 우여곡절을 겪지 않으면 안되였다.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뵙고 가르치심을 받는 길만이 당을 구원하고 자기의 운명도 건질수 있다는것을 통감한 그는 1947년 12월초 또다시 북행길에 올랐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여러가지 난문제를 안고 다시 찾아온 리영선생을 만나주시고 근로인민당지도부가 자기 당이 나오게 된 취지를 옳게 리해하고 그에 맞게 사업하였더라면 오늘과 같이 당이 분렬되는것과 같은 일은 없었을것이라고 말씀하시고는 남조선로동당과의 제휴를 잘할데 대해서와 남조선의 중간, 우익정당들과의 사업을 잘하여 통일적인 민주주의정부를 수립하기 위한 투쟁에 힘을 넣을데 대하여 하나하나 가르쳐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후 리영선생이 미제와 리승만도당의 탄압을 피하여 공화국북반부로 들어왔을 때에는 선생을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선거를 위한 남조선선거지도위원회 부위원장,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부의장으로 내세워주시며 크나큰 사랑과 믿음을 베풀어주시였다.
1948년 11월 근로인민당 중앙위원회 위원장으로 선거되여 수령님의 조국통일방침과 민족대단결사상을 높이 받들고 그 관철을 위한 사업에 자기의 있는 힘과 열정을 다 바치고있던 그는 이날 또다시 그이의 부르심을 받는 크나큰 영광을 지니게 되였던것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를 반갑게 맞아주시며 건강부터 물어주시였다.
리영선생은 장군님덕분에 건강합니다라고 흥분어린 목소리로 말씀드렸다.
그의 대답을 들으신 수령님께서는 년세도 많은데 건강에 특별히 류의하여야 한다고, 건강하여야 앞으로 더 많은 일을 할수 있다고 따뜻한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그러시고는 오늘 선생과 조국의 평화적통일을 촉진하기 위한 문제를 가지고 의논해보려고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곡절많은 지난날의 상처를 가셔주고 새 인생을 찾아주신 수령님의 고마운 은정에 보답하고저 여생을 다 바쳐 그이의 숭고한 통일애국의 뜻을 잘 받들어나갈 굳은 결심을 안고 인생의 새 출발을 하였지만 수령님의 크나큰 기대에 보답 못하는 송구스러움이 늘 마음 한구석에 맺혀있는 선생이였다. 그런데 나라와 민족의 운명에 엄혹한 위기가 닥쳐오고있는 오늘 이렇듯 평화적통일을 위한 중대한 문제를 의논하시려고 불러주시였으니 그의 마음은 한껏 부풀어올랐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상기된 그의 얼굴을 바라보시면서 우리가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결성대회에서 평화적조국통일방책에 대한 선언서를 발표한 때로부터 1년이 가까와오고있다고 하시였다. 그러시고는 선언서에서 지적된 남북총선거를 통하여 최고립법기관을 창설하고 통일정부를 수립하는 방법으로 조국의 평화적통일을 실현할데 대한 방책은 미제국주의자들과 리승만도당의 민족분렬책동과 동족상쟁의 류혈적참화를 방지하고 조국을 평화적으로 통일하려는 전체 조선인민들의 절절한 념원을 반영한 가장 공명정대하고 합리적인 방안이라고 하시면서 그렇기때문에 지난 기간 근로인민당을 포함하여 남북조선의 모든 애국적정당, 사회단체들과 전체 인민들은 이 제안을 전폭적으로 지지환영하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하여 적극 투쟁하였다고 말씀하시였다.
그이께서는 그러나 미제와 리승만도당은 이 정당한 조국통일방책을 한사코 반대하고있으며 전체 인민이 그토록 갈망하는 조국의 평화적통일을 각방으로 방해하고있다고 하시면서 남반부의 애국적정당, 사회단체들을 비법화하고 민주주의적자유와 조국의 평화적통일을 요구하는 애국적인사들을 비롯한 무고한 인민들을 탄압하며 공화국북반부에 대한 군사적도발을 빈번히 감행하고있는 미제와 리승만도당의 죄행에 대하여 의분에 넘쳐 말씀하시였다.
이어 수령님께서는 남조선인민들의 비참한 생활상에 대하여 언급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남조선인민들이 오늘의 처지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하루속히 미제침략자들을 남조선에서 완전히 철거시키고 조국을 평화적으로 통일하는것이라고 하시면서 열정적인 음성으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나는 현시기 미제가 리승만괴뢰도당을 부추겨 우리 나라의 평화적통일을 반대하고 동족상쟁의 내란을 도발하려고 악랄하게 책동하고있는 조건에서 조국전선산하 모든 애국적정당, 사회단체들이 더욱 단결하고 협력하여야 하며 서로 보조를 맞추어 조국의 평화적통일을 위한 투쟁을 과감히 전개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러시고는 근로인민당이 지난 시기 남조선사회의 민주주의적발전과 조국의 평화적통일을 위하여 많은 노력을 하였다고 평가하시였다.
순간 그의 뇌리에는 려운형선생이 반동파들에 의하여 무참하게 희생된 어려운 속에서도 자기들이 미군정과 그 주구인 리승만, 김성수 등 친일친미반동분자들의 파쑈테로통치를 반대하여 투쟁하여온 나날들이 떠올랐다.
당시 근로인민당은 다른 애국적정당들과 함께 리승만도당의 단독정부수립책동을 민족분렬을 초래하는 반역행위로 규탄배격하였으며 조선에서 외국군대를 철거시키고 북남총선거를 통하여 조국의 통일을 실현할데 대한 북반부의 제의를 열렬히 지지하였다. 특히 미제의 침략책동으로 인하여 민족분렬의 위험이 닥쳐오는 엄중한 난국을 타개하기 위하여 남북조선 정당, 사회단체 대표자련석회의를 소집할데 대한 제의를 지지하고 그 실현을 위하여 적극 투쟁하였을뿐아니라 자기의 대표들을 남북련석회의에 참가시켜 회의가 성과적으로 진행되도록 하는데 기여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민족의 통일을 바라는 사람이라면 응당 해야 할 일을 두고 그토록 과찬의 말씀을 해주시니 선생은 송구스러움을 금치 못해하다가 그것은 전적으로 장군님께서 나아갈 앞길을 밝혀주시고 근로인민당의 인사들에게 신임을 안겨주시며 손잡아 이끌어주신 결과이라고 감격에 젖은 목소리로 말씀드렸다.
수령님께서는 근로인민당이 지난날과 마찬가지로 앞으로도 조국의 평화적통일을 위하여 커다란 역할을 수행하리라고 기대한다고 크나큰 믿음을 담아 말씀하시였다.
그이의 하늘같은 은총에 큰 감동을 받아안은 리영선생은 근로인민당의 명의로 조국의 평화적통일방책을 추진시키기 위한 거족적투쟁에 떨쳐나설것을 애국적정당, 사회단체들과 민주인사들에게 호소하겠다고 열정에 넘쳐 말씀드렸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의 결심을 적극 지지해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평화적조국통일방책을 추진시키기 위한 제의에서는 조국의 평화적통일을 악랄하게 반대하고 남조선인민들을 야수적으로 탄압하고있는 리승만괴뢰도당의 매국배족행위를 신랄히 폭로규탄하며 도탄속에서 신음하는 남녘의 동포들을 구원하고 하루빨리 조국을 통일하여야 할 긴박성을 천명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의 평화적조국통일방책을 추진시키기 위하여 남북조선의 애국적정당, 사회단체 지도자들과 그 성원들, 애국적인사들이 떨쳐나설것을 호소하는것이 좋겠습니다.》
그러시고는 평화적조국통일방책을 추진시킬데 대한 선생의 제의가 나가면 애국적정당, 사회단체들과 각계각층 인민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을것이며 그들을 크게 고무하여줄것이라고 하시면서 근로인민당에서 조국의 평화적통일방책을 하루속히 실현할데 대한 성명이나 담화를 발표하면 조국전선산하 각 정당, 사회단체들에서도 그에 호응하여 조국의 평화적통일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더욱 높일것이라고 크나큰 기대가 담긴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그이의 말씀을 받아안으며 선생은 조국통일을 위한 일이라면 미흡한 제의까지도 선뜻 지지해주시고 고무격려해주시며 그 방도까지 하나하나 밝혀주시는 수령님의 한없이 넓은 도량과 숭고한 통일의지앞에 머리가 숙어지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가슴속에 차오르는 격정을 금치 못하고있는 그를 다정히 바라보시던 수령님께서는 물론 미제와 리승만도당은 우리의 제의를 쉽게 받아들이지 않을것이지만 우리는 조국통일위업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에서 절대로 물러설수 없다고, 조국전선산하 정당, 사회단체들은 리승만도당의 동족상쟁의 내란도발책동을 저지시키고 조국의 평화적통일을 위하여 더욱 과감히 투쟁하여야 한다고 가르치시였다.
수령님께서는 이어 민주주의적 각 정당, 사회단체들은 남조선을 파쑈적테로통치가 란무하는 암흑의 천지로, 인간생지옥으로 전락시키고 동족상쟁의 류혈적인 전쟁도발책동에 광분하고있는 리승만도당의 범죄적행위를 더욱 신랄하게 폭로하여 놈들을 철저히 고립시키며 조국을 통일하고 남반부인민들을 구원하기 위한 투쟁에 전체 조선인민이 한결같이 떨쳐나서도록 하여야 한다고 힘주어 강조하시였다.
그이의 귀중한 가르치심을 받아안으며 가슴속에 차넘치는 신심과 열정을 억제할수 없었던 선생은 자리에서 일어나 비록 나이는 많지만 미제와 리승만괴뢰도당의 책동에 의하여 전쟁접경에로 번져가고있는 현정세를 완화시키며 조국의 평화적통일을 촉진하기 위한 투쟁에 한몸바치겠다고 결연한 어조로 말씀드렸다.
흥분에 휩싸여있는 그의 얼굴을 바라보시며 수령님께서는 사랑과 믿음이 흘러넘치는 음성으로 그 결의는 조국과 민족을 위한 높은 애국충정의 표시로 된다고, 나는 선생이 앞으로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을 강화하기 위한 사업과 조국의 평화적통일을 위한 사업에 크게 기여하기를 바란다고 뜨겁게 고무격려해주시였다.
수령님의 이 크나큰 믿음의 말씀은 그의 가슴에 격정의 파도를 일으켰다.
(아, 어제날 갈길 몰라 황야에서 방황하던 이 몸, 이제는 고목이 되여 쓸모없이 된 이 몸을 이다지도 중히 여기시다니… 장군님! 내 비록 늙어 기력도 부족하고 능력도 모자라지만 여생을 장군님만을 받들고 살겠습니다.)
리영선생은 그날의 맹세를 지켜 외세의 간섭이 없이 조선사람자신의 손으로 북남조선의 전지역에서 총선거를 실시하며 8.15해방 5돐기념일에 최고립법기관회의를 소집할것을 내용으로 하는 평화적조국통일방책추진에 관한 호소문을 채택발표하는 사업에 발벗고 나섰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전쟁을 배태한 엄중한 정세를 예리하게 통찰하시고 6월 19일 공화국의 최고인민회의와 남조선의 《국회》를 단일한 전조선립법기관으로 련합하는 방법으로 조국의 평화통일을 실현할데 대한 획기적인 통일방략을 제시하시였을 때에도 리영선생은 그것을 내외에 널리 선전하고 관철하는 사업에 자신의 모든 힘과 정열을 바쳐나갔다.
고목에 피는 꽃이 더욱 아름답다고 한다.
선생은 육체는 비록 로쇠하였어도 마음은 언제나 화창한 봄날에 살았으며 일을 하고 또 해도 힘든줄 몰랐다. 재생의 은인이신 수령님의 하해같은 믿음은 그대로 그의 심장이 청춘의 박동으로 뛰게 하는 활력의 원천으로 되였던것이다.
리영선생은 인생의 새봄을 안겨주신 민족의 태양 김일성장군님을 절대적으로 믿고 따랐다.
준엄했던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시기 그가 주저와 동요없이 수천리를 걸어 수령님께서 계시는 최고사령부를 찾아간것은 선생의 변함없는 충정과 신념의 표출이였다.
수령님께서는 이처럼 자기 령도자에 대한 신념이 투철하고 의리를 소중히 여기는 그를 조국의 평화적통일을 위한 사업의 제일선에 내세워주시였으며 1957년부터는 조국통일과 전민족적인 통일전선을 실현하는 사업에 전념할수 있도록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중앙위원회 전임의장으로 사업하도록 크나큰 믿음을 안겨주시였다.
그리고 그가 로환으로 사망하였을 때에는 못내 가슴아파하시면서 장례도 잘해주고 장지도 좋은 곳에 쓰도록 하여주시였으며 애국렬사로 그의 삶을 더욱 빛내여주시였다.
인생의 가치는 그 어떤 명예나 지위가 아니라 자기 조국과 민족을 위해 바쳐가는 삶의 자욱으로 하여 더욱 아름답게 빛나는것이다.
위대한 수령님의 품은 우리 민족모두를 참다운 인생의 길로 이끄시며 조국과 민족앞에 떳떳이 내세워주시는 자애로운 은인의 품이였다. 그 품이 있어 어지러운 파쟁의 바람속에 휘말려 인생의 귀중한 시절을 속절없이 방황해온 리영선생도 오늘 민족의 기억속에서 영생의 삶을 누리고있는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