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바로 이런 동무들을 사랑하오》
위대한 수령님의 한생은 조국에 대한 헌신의 한생이였다. 혁명의 첫 자욱도 일제의 발굽밑에 신음하는 조국을 구원하기 위해 떼시였고 걸음걸음 다가서는 험난한 시련도 조국의 자유를 위해, 행복을 위해 웃으며 헤쳐오신 수령님이시였다.
그 길에서 동지의 정을 주시며 한생을 사랑해오신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았던가. 하다면 위대한 김일성장군님의 한생에 제일 사랑하신 사람, 언제나 잊지 않으시고 키워주고 내세워주신 사람은 과연 어떤 사람들이였던가.
주체55(1966)년 3월 10일이였다. 어느 한 단위의 사업을 료해하고계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김춘옥녀성이 이곳에서 일하고있다는것을 아시고 일군들에게 그를 데려오도록 하시였다.
그이의 눈앞에는 수줍은 미소를 짓고 서있던 외태머리처녀의 모습이 떠오르고있었다. 스물세살의 애젊은 처녀의 모습이였다. 그때로부터 거의 20년이 가까와오는 세월속에 많이도 변했을 그의 모습을 그려보시던 수령님께서는 처음 그를 만나시던 때를 감회깊이 돌이켜보시였다.
공화국창건직후인 1948년 9월 24일이였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선거를 위한 남조선인민대표의 한사람으로 선출되여 공화국북반부에 들어온 후 희망대로 학원에서 공부하고있던 김숙희(김춘옥)녀성을 몸소 만나주시였다.
평양하늘을 우러르며 그토록 뵙고싶던 민족의 위대한 태양이신 김일성장군님을 몸가까이 만나뵈옵게 된 그의 감격과 기쁨은 이루 표현할수 없이 컸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김춘옥을 비롯한 그와 함께 온 사람들을 반갑게 맞아주시며 이렇게 만나니 기쁘다고, 남반부에서 고생하다가 들어온 동무들이여서 더 반갑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고는 사랑과 믿음에 넘친 어조로 동무들은 천금과도 바꿀수 없는 귀중한 보배들이라고, 동무들은 지난날에도 잘 싸웠지만 앞으로도 조국통일을 위하여 더 많은 일을 하여야 한다고 따뜻이 고무해주시였다.
이윽고 수령님께서는 자애의 미소를 지으시며 그럼 동무들이 싸우던 이야기를 들어보자고 하시였다.
그때 한 일군이 김춘옥을 가리키며 이 동무가 강원도안의 경찰지서 열두개를 까부신 동무이라고 말씀올리였다.
그러자 수령님께서는 바로 동무였구만라고 하시며 김춘옥을 정겹게 바라보시였다.
김춘옥녀성은 해방후 미제에 의하여 조국이 분렬될 위기에 처하게 되자 처녀의 몸으로 조국통일을 위한 투쟁의 길에 나섰다. 그는 강원도 강릉군당 부녀부장, 도당 부녀부장을 거쳐 태백산지구유격대에 들어가 싸우게 되였다. 그리고 미제의 단독선거책동을 반대하여 녕월탄광 로동자들과 련계를 가지고 폭약을 구해다가 경찰지서 열두개를 폭파하는 등 수많은 전투들에 참가하여 위훈을 세웠다.
미제의 남조선괴뢰정권조작으로 민족분렬의 위험이 더욱 짙어가던 그때에는 남북총선거를 실시하여 전조선최고립법기관을 내오고 통일적인 조선중앙정부를 세울데 대한 위대한 수령님의 방침을 높이 받들고 지하선거투쟁에 한몸바쳐 나섰다. 미제와 리승만도당의 탄압으로 합법적인 투표가 불가능했던 남조선에서는 유권자들이 서명의 방법으로 인민대표들을 선출하고 그 인민대표들이 대표자대회에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을 선출하게 되여있었다. 인민대표들을 선출할 때 김춘옥은 강릉지구 인민대표의 한사람으로 선출되였다. 통일조국을 갈망하는 남녘인민들의 념원과 뜨거운 피가 스민 선거참가자명단을 가슴에 소중히 품은 그는 녀승으로 가장하고 적들의 삼엄한 감시와 경계망을 뚫고 북반부로 들어왔다.
김춘옥녀성의 이야기를 들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용감하게 잘 싸웠다고 그를 높이 치하해주시였다.
잠시 생각에 잠겨계시던 그이께서는 그에게 결혼할 생각은 없는가고 물으시였다.
뜻밖의 물으심에 김춘옥은 얼굴을 붉히며 대답을 올리지 못하였다.
그러는 그를 바라보시며 수령님께서는 스물세살이라고 했지라고 나직이 외우시더니 지금은 그렇다 하고 몇해후에 나이가 되면 결혼을 해야 한다고, 그때는 동지결혼을 하면 된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우리도 빨찌산투쟁을 할 때 그렇게 하였다고, 생사고락을 같이하는 혁명전우와 동지결혼을 하는게 제일 좋다고 하시였다.
민족의 위대한 어버이를 만나뵙고 통일투쟁의 전구로 떠나간 김춘옥의 활동에서는 눈부신 성과들이 있었다. 녀성의 몸으로 당시 강원도당 선전부장, 강릉군당 위원장의 중책을 지닌 그는 유격투쟁에서 위대한 수령님께서 가르쳐주신 전법대로 용감히 싸웠다. 조국해방전쟁이 일어나자 그는 인민군대와 함께 강원도일대를 해방하는 전투를 진행하였으며 그후 유격투쟁을 진행하면서 춘천, 녕월 등 15개 시, 군을 해방하였고 춘천시당 위원장으로도 사업하였다.
수령님께서 오래전에 만나시였던 김춘옥과 그가 세운 위훈에 대해 추억하고계시는데 한 일군이 김춘옥녀성과 함께 그이앞에 다가섰다.
오매에도 그리던 위대한 수령님께 깊이 허리굽혀 인사를 올리는 김춘옥녀성의 두눈에서는 기쁨과 감격의 눈물이 반짝이였다.
어느덧 중년의 녀성이 되여 나타난 그에게서 스물세살 애젊은 시절의 모습을 찾아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다정히 손을 잡아주시며 참으로 오래간만이라고, 이렇게 다시 만나니 정말 반갑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고는 그동안 왜 찾아오지 않았는가고 나무람하시듯 말씀하시는것이였다. 그이의 모습에 가까이 있으면서도 아직까지 묵묵히 살아온 자기를 몹시 책망하시는 빛이 어린것을 보며 김춘옥녀성은 가슴이 뭉클 젖어들었다. 지나온 시절의 그 모든것을 이 땅에 사는 인간으로서 응당 해야 할 일이라고만 생각해온 그였다.
그날 오랜 시간에 걸쳐 그의 이야기를 주의깊게 들어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나는 바로 이런 동무들을 사랑하오. 당에 충실하고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혁명을 위하여 용감하게 싸우는 동무들을 좋아하오. …》라고 분에 넘치는 믿음과 평가를 주시였다.
다음날에도 그이께서는 그를 다시 부르시여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남조선동무들속에는 용감하게 싸운 동무들이 많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이틀동안 동무의 이야기를 아주 재미있게 들었습니다.
실지 동무가 한 일에 대한 이야기이니까 영화나 연극을 보는것보다 훨씬 더 재미나게 들었습니다.
5~6년동안 투쟁을 아주 격렬하고 용감하게 하였습니다.
투쟁을 많이 하고 혁명을 위하여 고생을 많이 하면 그 업적은 언제나 그대로 남아있는 법입니다.》
통일애국투사들의 업적을 값높이 내세워주시는 참으로 고귀한 말씀이였다.
수령님께서는 계속하여 동무는 젊었을 때 좋은 경험을 많이 쌓았으며 장래 투쟁을 위하여 큰 단련을 겪었다고 하시면서 동무는 공부를 하는것이 좋겠습니다, 중앙당학교에서 공부를 하여 리론적준비와 실무능력을 높이도록 하여야 합니다라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고개를 숙인채 어깨를 들먹이는 그를 이윽토록 바라보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다시 말씀을 이으시였다.
《…동무 나이가 지금 마흔한살이니 아주 좋습니다. 65살까지 혁명할수 있습니다.》
통일애국의 길에 한몸바쳐 나선 전사들의 삶을 값높이 빛내여주시려는 위대한 수령님의 한없이 자애로운 어버이사랑에 김춘옥녀성의 두볼로는 뜨거운 눈물이 줄지어 흘러내리고있었다.
그 눈물은 애젊은 시절을 조국통일을 위해 바쳐온 한 녀성의 삶을 혁명가의 삶으로, 애국의 삶으로 빛내여주시는 어버이수령님에 대한 감사의 눈물이였고 수령님을 따라 통일애국의 길을 끝까지 걸어갈 맹세의 눈물이였다.
김춘옥녀성은 그날 나는 바로 이런 동무들을 사랑한다고, 당에 충실하고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혁명을 위하여 용감하게 싸우는 동무들을 좋아한다고 하시던 수령님의 말씀을 잊지 않고 조국의 딸, 수령님의 사랑하는 딸답게 조국과 겨레를 위한 길에 한생을 다 바쳐갔다.
이렇듯 어버이수령님께서 한생에 제일 사랑하신 사람은 그 어떤 이름높고 뛰여난 인물들이 아니였다. 훌륭한 일을 하고도 자신을 나타내지 않는 사람, 당과 조국, 인민을 위해 진심을 바쳐 헌신한 바로 그런 소박한 사람들속에 우리 수령님 제일 사랑하신 사람들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