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편 빛나는 길
제 3 장
조선에서의 체류일정을 마치고 일본학자대표단이 도꾜로 돌아왔을 때 그들을 제일먼저 맞이한것은 보도진이였다.
마중나온 가족친지들과 인사도 변변히 나눌새없이 기자들은 비행기에서 내리는 학자들을 에워싸듯 하고 항공역사안의 회견장소로 인도하여갔다.
그들속에는 전에 평양으로 떠나는 야스이 가오루를 바래워주었던 하시모또 스스무도 있었다.
하시모또는 여느 기자들과는 달리 취재가 목적이 아니였다. 친우 야스이의 입에서 이제 어떤 말이 나올가 궁금하여 마중을 겸하여 나왔던것이다. 구로다 겐도 함께 나오기로 미리 약속되여있었는데 갑자기 일이 생겨 동행하지 못했다.
사진기의 조명빛이 무시로 번쩍이는 속에서 기자회견은 비교적 오래동안 진행되였다.
사회과학자대회의 실황을 이미 통신으로 접하고있는 기자들이여서 그들이 제기한 질문은 여러갈래였으며 단순하지 않았다.
더우기 아직까지 일본과는 국교관계가 없는 나라에 그것도 저명한 교수, 과학자들이 대거 려행하고 온 사실이 기자들의 관심을 크게 불러일으키는상싶었다.
그런 속에서도 대회의 연단에서 학자들을 대표하여 연설한 야스이 가오루에게 가장 초점이 쏠렸다.
그도 그럴것이 야스이가 일본학자대표단을 인솔한 책임자라는데도 있었지만 보다는 명망있고 지체높은 무소속 사회활동가이며 교수, 박사인 그의 평양연단에서의 연설내용이 기자들로 하여금 류달리 주목을 끌게 하였던것이다.
그나저나간에 이런 장소에서는 어차피 주역을 맡아온 사람이 그중 많이 발언하기마련이였다.
기자회견은 일문일답으로 진행되였다.
학자들을 상대로 한동안 이러저러한 문답이 오간다음 야스이 가오루에게 그중 질문의 화살이 많이 날아들었다.
한 기자의 질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적지 않은 나날을 보냈는데 어떤 인상을 받았는가?
야스이의 대답- 참으로 아름다운 나라였다. 순수 자연풍치만이 그런것이 아니였다. 내가 만난 사람들모두가 한결같이 마음이 아름답고 깨끗하고 겸손했다. 그런 인상을 강하게 느낀것은 일본에서 볼수 없었던 새형의 인간상을 대하게 된데서였다.
그 기자의 질문- 새형의 인간상이란 어떤 류형의 인간을 념두에 두고 하는 소리인가?
야스이의 대답- 그런 류형을 처음 보았기때문에 비교해서 말할수 없지만 한마디로 규정짓는다면 자기 운명을 자기자신이 틀어쥐고나가는 이를테면 자주적인 인간상이였다.
다른 기자의 질문- 김일성주석께서 창시하신 주체사상의 핵을 이루는것이 자주성이라고 일반적으로 말하고있는데 그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줄수 없는가?
야스이의 대답- 통속적으로 말해서 주체사상은 의사가 주는 처방이나 특효약과 같은것이 아니라 오직 인민스스로가 자기의 갈길을 선택하고 모든것을 창조하고 개척해나갈것을 요구하고있다.
바꾸어 말하면 남의 힘에 의존하지 않고 자기 힘을 믿고 자기 손으로 나라를 부강하게 건설한다는 사상이라고 생각한다.
여하튼 주체사상은 오늘날 인기잃은 이러저러한 사상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르게 세상사람들의 욕망을 부쩍 자아내는 보편적진리라고 믿는다.
이런 자리에서 그 진리성이나 생활력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말할수 없다. 나는 앞으로 일본국민들을 위해 그에 대하여 여러가지 수단과 방법으로 알려주려고 한다.
또 다른 기자의 질문- 조선인민들이 김일성주석에 대한 존경과 흠모의 감정이 대단히 높다고 하는데 그에 대하여 이야기해주면 좋겠다.
야스이의 대답- 여러분도 아다싶이 과거 조선은 일본제국주의통치밑에서 세계지도상에 빛을 잃었던 나라였다. 그런데 오늘은 《사회주의모범의 나라》, 《천리마조선》으로 그 이름을 세계만방에 떨치며 만민복락의 지상락원을 건설하고있다.
나는 조선에 체류기간 여러곳을 돌아다니며 사회주의혁명과 건설을 힘있게 다그치고있는 인민들의 생기발랄하고 희망에 넘쳐있는 모습을 보았다. 이처럼 약동하는 조선의 발전상이 마련된것은 오로지 김일성주석의 인민에 대한 사랑의 정치로 이루어진것이다.
나는 그런 발전상속에서 주석과 인민의 인간적인 정과 숨결, 피가 통하고있는것을 깊이 느꼈다.
실생활과 체험을 통하여 확증된 그 무엇으로도 끊을수 없는 주석의 인민에 대한 사랑, 인민들의 주석에 대한 뜨거운 존경심이 하나로 융합되여 줄기차게 맥박치고있는 조선의 사회상은 참으로 순결하였고 실로 나에게 커다란 감명을 안겨주었다.
나는 조선에서 어디 가나 사람들이 주석의 현지지도를 받은 영광과 기쁨에 대하여 이야기하는것을 수없이 들을수 있었다.
전에 《요미우리신붕》기자들이 제기한 질문에 김일성주석께서 주신 대답을 상기해보는것으로도 여러분은 인민의 수령으로서의 고매한 풍모를 잘 알수 있을것이다.
그 대답에서 주석께서는 자신의 현지지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우리는 지도라기보다도 배우기 위하여 군중속에 들어갑니다.
…
선생은 인민대중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그들에게서 배웁니다.》
오로지 인민만을 하늘처럼 믿고 아끼시는 이런 령도자를 왜 백성들이 경모하고 따르지 않을수 있겠는가.
또 다른 기자의 질문- 일본학자들이 조선의 사회과학자대회에 참가한것을 계기로 금후 어떤 사업을 할 계획이나 구상을 가지고있는것이 있는가?
야스이의 대답- 일본에는 아직 조선에 대한 오해와 편견이 가득차있다. 우리는 맑은 눈으로 《가깝고도 먼 나라》의 진실한 모습을 똑바로 보아야 한다.
우리 학자들은 우선 이런 비정상적인 상태를 하루속히 가시기 위하여 일본과 조선의 우호촉진에 적극 이바지할 결심이다.
또 다른 한 기자의 질문- 야스이선생은 원래 어떤 주의사상에 편중하여 따르지 않고 인간해방의 길을 모색하여 사회활동을 벌려왔는데 평양방문을 통하여 공산주의를 따르는 주체사상신봉자가 될 결심인가?
야스이의 대답- 나는 공산주의자가 되려고 평양을 방문하지 않았다. 방금 기자가 말한것처럼 인간해방의 길을 찾아 그 나라에 갔다.
주체사상, 거기에 내가 한생을 모색해온 진리가 있었다. 그래서 김일성주석을 존경하게 되였고 주석의 정치리념을 따르는 전사가 되려고 결심하게 되였다. 장차 그길이 공산주의로 가든 어디로 가든 나는 정의와 진리를 위함이라면 아무거나 가리지 않고 나갈것이다. 인류의 평화와 안녕, 복리가 바로 그길에 있다는것을 확신하고있기때문이다.
또 다른 기자의 질문- 야스이박사님이 평양연단에서 한 연설에 대하여 일부 정객들속에서 이러저러한 의견이 나오는 모양인데 그에 대처하여 금후 어떤 태도를 취할 작정인가?
야스이의 대답- 우리 나라 성구에 《너는 진리만을 추구하라, 진리는 너의 가슴속에 불타고있다.》라는것이 있는데 나의 심장에 일단 지펴진 불길은 그 누구도 어떤 힘도 끄지 못할것이다.…
기자회견은 대체로 이러한 문제들이 중점적으로 교환된 후 끝났다.
하시모또는 그 회견을 마지막까지 지켜보고나서 자리에서 일어나는 야스이의 곁으로 다가갔다.
《수고했네. 몹시 고달프겠구만.》
하시모또가 은근히 비치는 소리에 야스이는 아이들처럼 싱긋 웃어보이며 대꾸한다.
《원 무슨 소릴, 고달프기야…》
장시간의 려행끝에 기자회견까지 치르고 항공역사밖으로 나오는 야스이에게서는 정녕 어디서도 피로한 기색이란 찾아볼수 없었다. 그의 전에없이 활달한 걸음걸이만 봐도 알수 있었다.
하시모또와 함께 마중나와있던 다즈꼬부인도 그걸 똑같이 느꼈다.
그들 세사람은 한자동차에 올라 비행장을 떠났다.
하시모또는 달리는 차안에서 야스이를 돌아보며 먼저 말을 꺼냈다.
《자네가 평양에 갔다오더니 한층 고집이 세여진것 같아.》
《그건 무얼 보고 하는 소리요?》
《아까 한 성구를 인용하며 자기 신념을 표현한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렇게 말할수 있네.》
《허허… 기자들의 눈은 역시 속일수 없다니까.》
야스이 가오루는 가볍게 웃어넘겼다.
그래도 하시모또는 신중한 어조로 되뇌였다.
《방금전의 기자질문에도 나왔지만 어느 당파에도 말려들지 않던 자네가 주체사상에 홀딱 반한걸 두고 지금 구로다를 비롯한 일부 사람들속에서 이러쿵저러쿵 말이 있는가보네. 조심하라구. 그러다 아사누마의 신세가 되지 말고.》
이때 차의 앞좌석에 앉아있던 다즈꼬가 조용히 고개를 돌려 남편을 향해 무슨 말인가 하려다 그만두고말았다. 며칠전의 새벽에 구로다 겐으로부터 왔던 전화가 지금도 내내 마음에 걸려있는 다즈꼬였다. 그러나 방금 려행에서 돌아온 남편에게 차마 그 일을 알릴수 없었다.
다즈꼬는 시종 잠자코 있었다.
《아사누마의 신세라… 념려해주어 고맙소. 나도 그런 뒤소리가 나올줄 알았네. 허나 걱정말게. 무슨 신세가 된들 진리는 외면할수 없네. 그렇지만 가장 용감하게 행동하기 위해서는 가장 경계심을 갖는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네. 이것은 나의 행동준칙이요. 과거 원수협시절에도 나는 용감하게 행동할 때는 항상 경각성을 높였네.》
하시모또와 같은 경고를 야스이는 전에 언젠가 안해 다즈꼬에게서도 받은바 있었다.
사실 그 시절 야스이 가오루는 항상 신변의 위험을 느끼면서도 두려움없이 국민운동을 그렇게 용감히 이끌어나갔던것이다.
그런데 그 민중운동의 지도자가 이번에 새 사조를 따르게 되였으니 이러저러한 뒤소리가 나오지 않을수 없었고 한편 어떤 증상과 장애가 나타날는지 모를 일이였다.
야스이는 그 모든것을 각오하고있었다.
《내앞에 이제 어떤 장벽이 가로놓인다 할지라도 일단 택한 길을 나는 끝까지 갈 결심이네. 무엇이 두려워 물러서겠나. 다만 아쉽게 생각되는것은 인생의 황혼기에 와서야 비로소 뚜렷한 갈길을 찾게된것일세. 그게 참으로 유감일따름이지. 조금이라도 더 빨리 그길을 알았더라면 얼마나 보람이 더 컸겠나. 허지만 이제 와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나.》
차창밖으로 흘러가는 풍경을 서늘히 지켜보는 야스이 가오루의 얼굴에는 서운한 빛이 짙게 어려있었다.
진정 그는 요즘처럼 덧없이 먹은 나이가 한스럽게 여겨진적이 없었다.
하시모또는 생각이 깊어졌다. 전날 신쥬꾸의 료정에서 구로다와 마주앉았을 때에도 야스이에 대하여 평소 품고있던것을 이야기했지만 그는 워낙 고집이 여간만 센 사람이 아니였다. 방금 야스이가 말한것처럼 그는 어떤 일이 있어도 자기의 갈길을 동요없이 기어이 가고야말것이다.
하시모또는 조용히 물었다.
《언제 또 조선에 가려나?》
《글쎄, 아직은 모르겠네. 일조우호친선을 위한 일을 적극 추진시키다가 기회를 봐서… 이미 우리 학자들과도 말이 있었지만 앞으로 조선의 사회과학자들과 학술교류를 활발히 벌릴 작정이네. 자네도 이 일에 협력해주길 바라네.》
《그것 참 훌륭한 생각이구만! 돕고말고가 있나.》
하시모또는 선뜻 호응하다가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며 넌지시 떠보듯 하였다.
《나같은 사람도 그런 일에 한몫 끼울수 있을가?》
《무슨 소릴 하오? 그래 당신은 사회과학자가 아니란 말이요? 문제는 자네의 결심에 달려있다고 보네.》
《아무튼 고맙네. 그렇게 생각해주니…》 하고 하시모또는 혼자소리처럼 외우다가 문득 말머리를 돌려 물었다.
《인터뷰석상에서 하는 이야기를 듣고 대체로 납득이 가긴 했지만 실제로 북조선이 그처럼 훌륭한 나라였단 말이요?》
《자네는 자네대로 자기의 직분에서 나와 별도로 인터뷰를 할셈인가? 설사 그렇지 않더라도 나는 일부러 부디 말하고싶었는데…》
야스이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담담한 어조로 말하기 시작했다.
《우리의 조국 일본은 이른바 〈경제대국〉이고 〈물질적풍요〉속에 놓여있는것처럼 보이지. 그러나 정신적으로는 가장 극빈한 저개발국가의 하나로 남아있다는것을 자네도 알아야 하네. 나는 이러한 실황을 이번 조선에 가보고 한층 통절히 느꼈네. 정신적퇴페, 이것이 오늘날 일본의 좌절이고 만성적인 병페가 아닌가. 문제는 모든 사람이 인생의 옳은 가치관과 민족적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갈 때만이 사회가 밝고 아름다와지고 순결해지질 않겠나. 일본에는 이게 완전히 결핍되여있단 말이요. 그런데 이웃나라 조선은 어떠했는가? 하나의 지향, 하나의 대가정속에 사람들이 단합되여 모두가 부유한 정신생활을 누리고있었네.》
야스이는 어떤 신비경을 더듬어보듯 문득 고개를 돌려 달리는 자동차의 창너머 멀리를 바라보았다. 파아랗게 높이 트인 하늘이 그의 시야에 가득히 비끼였다.
하시모또는 등받이에 몸을 깊숙이 기댄채 그의 이야기를 묵묵히 듣고있었다.
야스이는 차창에서 천천히 머리를 돌리며 뒤말을 이어나갔다.
《나는 이 나이가 되도록 지구상의 숱한 나라들을 돌아다니며 보았지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처럼 미래에 대한 확신과 생기에 넘쳐있는 행복한 나라를 아직 보지 못했고 조선인민처럼 긍지높고 자랑스러운 인민이 세상에 있다는것을 알지 못하고있었소. 조선과 조선민족을 그처럼 세계력사무대우에 가장 존엄있고 빛나는 존재로 올려세운것은 김일성주석님이시오!
자네도 너무나 잘 아는 일이지만 막강한 군사력과 핵무기를 내두르며 뽐내는 대아메리카도 그분앞에서는 무릎을 꿇지 않았나 말이요.
참으로 주석님께서 창시하신 주체사상이야말로 조선을 그처럼 지구상의 거성으로 빛나게 한 추동력이였다는것을 나는 금번 똑똑히 깨닫게 되였소.》
야스이는 여기서 이제는 외우다싶이 된 수령의 로작 한구절을 인용하고나서 새삼스럽게 옆의 하시모또를 한번 돌아본 다음 자기 소신을 토로했다.
《얼마나 거대한 견인력으로 사람을 추세워주신 말씀이요. 허무와 상실, 정체와 퇴페에 물젖어 갈팡질팡하는 인간을 그 파국적인 구렁텅이에서 구원해주고 사람의 가치를 이토록 높이 규정해준 철학, 그것이 곧 주체사상이요. 세상에서 가장 귀중한것은 사람이며 가장 힘있는 존재도 사람이라고 하신 주석님의 그 말씀, 언제 물질적부의 창조자인 인간이 이처럼 무궁무진한 힘의 화신으로 불리운적이 있었소?》
야스이는 말을 끊었다. 구태여 자기 물음에 대답을 바라지 않았다. 하시모또라고 그것을 모를 위인이 아님을 알기때문이였다. 차안에는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하시모또는 두눈을 지그시 감고있었다. 평소에 《육안으로 보는 사상》만을 고집스레 믿는데 관습화되여온 하시모또였으나 이제까지 야스이가 한 이야기에 대해서는 조금도 의혹을 품게 되지 않았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라 언제나 야스이만은 깊이 신뢰하고있는데서였다. 이윽고 그는 눈을 떴다. 《다음번 조선방문시는 이 하시모또도 부디 함께 데려다주길 바라네.》
하시모또는 진지한 기색으로 야스이를 돌아보며 당부했다. 그것은 《육안으로 보는 사상》을 초월한 진정이였다.
그러는 사이에 그들이 탄 차가 야스이의 집앞에 당도하였다.
다즈꼬부인이 집안에 들려갈것을 거듭 권고했으나 하시모또는 후날 오겠노라고 하며 사양하고 문전에서 돌아섰다.
야스이로부터 더 많은 려행담을 듣고싶었으나 오래동안 객지에 나가있던 주인을 맞이한 가정의 단란한 분위기를 생각해서였다.
혼자 자동차에 흔들리우며 귀로에 오르는 하시모또의 뇌리에는 불현듯 신쥬꾸료정에서 구로다 겐이 하던 소리가 스쳐지났다.
《야스이는 전에부터 언제나 색이 불투명한 사람이였지. 이쪽도 저쪽도 아닌…》
그러나 구로다의 말처럼 야스이는 원래부터 색이 불투명한 사람이 결코 아니였다.
또한 이쪽도 저쪽도 아닌, 바람따라 흔들리우는 갈대와 같은 그런 사람은 더더욱 아니였다.
이제 와서 그 불투명이 벗겨진것이 아니라 그는 어떤 경우에나 자기의 똑똑한 색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고있었다.
야스이를 평하는 구로다 겐의 판단은 사뭇 어긋난것이였다.
하시모또에게는 오늘따라 그것이 한층 석연해졌다.
참답지 못한것은 그 무엇도 위대한것으로 될수 없다고 누가 말했듯이 그는 자기를 채색할줄을 조금도 모르는 사람이였다.
네거리의 교통신호등이 번뜩 빨간 빛을 내뿜는 순간에야 하시모또는 거리의 혼잡속에 들어있는것을 언뜻 깨닫고 몸을 바로잡으며 앞을 주시하게 되였다.
찾아올 때마다 언제나 하많은 추억과 정회를 불러일으키는 모교이자 그자신이 다년간 교단에도 선바 있는 도꾜대학이였다.
그날도 야스이 가오루는 그 학문의 전당을 방문하여 여러 교수들과 장시간 만나고나서 한낮도 퍽 기울어져서야 그곳을 떠났다.
도꾜대학의 아까몽앞을 지나 이계노하다쪽을 향해 걸어가는 야스이의 발걸음은 저으기 가벼웠다.
올봄 평양에서 열린 사회과학자대회에 참가하고 귀국한 후 줄창 추진시켜온 하나의 구상이 순조로이 착착 진척되여가고있어 요즘 그의 기분은 무척 좋았다.
방금전에 만나본 도꾜대학의 교수들도 그의 제안에 모두 쌍수를 들어 찬성해나서주었다.
야스이 가오루는 함께 평양에 다녀온 동료학자들과 이미 합의한데 따라 일본과 조선의 사회과학자들간에 호상 학술연구를 교환하기 위한 한 조직체를 무을 목적에서 려행의 피로도 풀사이 없이 그간 도꾜를 떠나 여러 지방을 찾아가 강연회와 좌담회를 벌리는 등 동분서주하여왔었다.
일조간의 우호친선과 관계개선에 이바지할수 있는 일을 모색하던 끝에 우선 학술교류부터 시작하자는 합의가 이루어졌던것이였다.
그러한 노력의 열매가 맺어져 드디여 그 조직의 발족의 날을 눈앞에 보게 되였던것이다.
흥겨운 마음으로 시노바즈못가를 따라 천천히 거닐던 야스이의 발걸음은 어느새 우에노공원쪽으로 쏠려있었다. 가을을 맞이하는 자연을 오랜만에 보고싶은 생각이 오늘따라 부쩍 동한 나머지였다.
아직은 여름더위가 말끔히 가시지 않았다 하지만 역시 계절의 생리는 숨길수 없는 모양이였다.
공원안은 선선한 기운을 머금은 훈풍에 갖가지 나무들과 화초들이 가벼이 살랑거리고 쌍쌍의 청춘들과 남녀로소들로 흥성거렸다. 매연과 소음으로 어지러운 번잡한 거리에 비해 공기 또한 한결 맑은것 같았다.
야스이의 발길이 이곳으로 미친것도 오염된 대기속에서 한때나마 벗어나고싶어서였는지 모른다.
그는 도꾜에 돌아와서야 《공원속의 도시》 평양의 맑고 아름다움이 더 한층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야스이 가오루는 이제 탄생하게 될 조직을 어떤 명칭으로 내올것인가를 생각하며 나무그늘이 우거진 포도길을 느릿느릿 걸어나갔다.
근간에 들어 오늘처럼 흐뭇한 산책의 시간이 차례져보기란 처음이였다.
마침 인적이 드문 조용한곳에 장의자 하나가 비여있는것이 눈에 띄였다.
야스이는 그 의자로 다가가 조용히 앉았다.
여기저기에 금빛으로 물들은 국화꽃송이들이 곱게 피여 하늘거리고있었다.
그는 담배를 피워물고 주변의 자연을 탐스럽게 둘러보았다.
불현듯 어디선가 《야스이박사님!》 하고 누군가의 부름이 울려왔다. 그는 소리나는쪽을 살펴보았다. 손에 가방을 든 후리후리한 몸에 회색빛 춘추옷차림의 허민우가 급히 다가오고있었다.
야스이는 벌떡 의자에서 일어났다.
《이거 허선생이… 언제 돌아왔소?》
《안녕하셨습니까! 보름전에 왔습니다. 지방에 나가 계신다더니…》
허민우는 이렇게 말하며 일본에 도착한 다음날 스승의 집으로 전화를 건 사실을 알렸다.
야스이는 그의 손을 잡아 의자에 함께 앉으며 오랜만의 상봉을 못내 기뻐하였다. 봄에 평양비행장에서 헤여진 후 오늘 처음 만나보는 허민우였다. 그때 허민우는 최학성과 함께 비행장에 나와 일본으로 떠나는 야스이를 바래워주면서 자기는 조선대학 학생들과 조국기행을 하게 되여있어 얼마간 더 머물러있어야 할것 같다고 하며 떨어졌었다.
《나도 얼마전에 왔소마는… 그간 조국땅을 많이 밟아봤겠소?》
야스이의 물음에 허민우는 벙글거리며 대답했다.
《예, 백두산을 비롯한 혁명전적지며 금강산, 묘향산 등 우리 나라의 명승지와 공장, 농촌들을 탐사하고 견학하였습니다.》
《아주 뜻있는 기행을 하였소. 나도 요다음엔 백두산을 찾아가 볼 생각이요. 주체의 시원이 열린 혁명성지를 몰라서야 어디 될말이요.… 헌데 도서관쪽에서 오는걸 보니 무슨 자료조사라도 하러 왔댔습니까?》
야스이는 허민우의 손에 들려있는 가방에 시선을 던지며 물었다.
《녜, 그렇습니다. 조국통일에 대한 론문을 하나 쓸가 해서 들렸지요.》
허민우는 우에노도서관에서 오는 걸음이였던것이다.
《음, 조국통일이라…》
야스이 가오루는 혼자소리처럼 뇌이며 말없이 생각에 잠겼다.
력사적인 7. 4북남공동성명이 발표된지 불과 한달남짓밖에 안되였다.
야스이는 그 성명이 공포되던 날의 감격이 되살아올랐다. 조선의 자주적평화통일의 밝은 전망을 안겨주는 공동성명을 그는 진심으로 지지환영해마지 않았다. 그날을 계기로 조선의 통일위업을 실현하는데 적극 이바지할 새로운 결의를 다지기도 했던 야스이였었다.
과거 일본제국주의가 조선인민에게 얼마나 엄중한 죄악을 저질렀던가. 조선에 분단을 가져온것도 역시 일본은 그 책임에서 결코 모면할수 없는 일이였다.
그는 일본인의 한사람으로서 그것을 일찍부터 깊이 반성하고있었다. 그리하여 자신의 죄책감을 여러 글에서 표명했고 또한 단가(일본의 전통적인 짧은 시가형식의 글)에도 담아 신문지상에 내군 하였었다.
말로써 사죄하는건 쓸데 없는것
오직 속죄를 하고 또 해나가야만 하리
야스이의 이런 심정은 조선방문 후 한층 절박한것으로 되였다. 그것을 더욱 조장시킨것이 공동성명이였다.
진정 조선인민에게 감행한 죄악을 말로써 사죄할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그 과거를 씻어내야만 하는것이다.
이는 일본인으로서의 한갖 도덕적책임에서만 아니라 기필코 다해야 할 의무이기도 한것이였다.
야스이 가오루는 무거운 기색으로 말했다.
《허선생, 나는 늘 당신들을 대할 면목이 없소.》
《박사님, 무슨 그런 말씀을…》
허민우는 이미부터 그의 마음을 헤아리고있는터여서 스승의 새삼스러운 말에 충동을 느끼며 일부러 명랑하게 대했다.
《조선이 비록 오늘은 분단상태에 있지만 머지 않아 꼭 통일이 될거요. 나는 김일성주석님의 로작을 연구할 때마다 그것을 강하게 느껴왔는데 조선을 방문하고나서 그런 확신을 더 깊이 가지게 되였소. 통일된 조선을 언제나 머리속에 그리며 그날을 위해 내 적은 힘이나마 아끼지 않으려오. 허선생, 훌륭한 론문을 기대합니다.》
야스이 가오루는 힘있는 어조로 말끝을 맺고나서 허민우의 어깨우에 다정히 한손을 얹으며 의자에서 일어났다.
두사람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가을빛이 짙어가는 공원의 포도길을 천천히 걸어갔다.
사방에서 참새떼가 짹짹거리고있었다.
예로부터 봄은 파종의 계절이고 가을은 수확의 계절로 일러왔다.
새싹이 파릇파릇 움트기 시작하던 어느 해의 이른 봄날, 도꾜대학의 한 강실에서는 소수의 교수, 사회과학자들로 《김일성주석저작연구회》가 무어졌었다.
그 연구회는 자주의 장엄한 격랑이 이 섬나라에 안아온 학술조직의 첫 탄생으로서 정녕 선구자적의의를 가지는것이였다.
무릇 새것은 언제나 생명력이 강하고 혁신적이였다. 변덕 심한 섬나라의 지꿎은 자연풍토하에서도 그 맹아는 맹렬히 자라오르더니 차츰 그 땅에 하나의 뚜렷한 존재로 자리를 틀면서 무럭무럭 성장하기 시작하였다.
그 《맹아》의 생활력이 어찌나 강렬했던지 풍요한 가을을 맞이한 어느날 벌써 실하고 큰 한 《아지》를 쳤다. 그것은 야스이 가오루를 비롯한 방조사회과학자들이 중심이 되여 자래우고 안아온 하나의 조직체로서 연구회의 테두리를 훨씬 초월하여 광범한 사람들로 이루어진 학술단체였다.
그 조직체를 《일조사회과학자련대위원회》, 일명 《일조과련》으로 명명하였다.
그의 탄생을 위하여 가장 크게 공헌한 야스이 가오루교수가 회원들의 일치한 의사에 따라 의장으로 천거되였다.
숲이 있는곳이면 새가 깃드는것처럼 진리의 기발이 휘날리는 광장에는 새시대를 갈망하는 지성과 량심이 모여드는 법이였다.
《일조과련》이 높이 추켜든 자주의 기발아래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근로청년, 학생, 지식인… 각계각층이였다.
근로하는 인간, 인민에 대한 사랑과 인민의 위력에 대한 학설에서 새 생활의 진로를 발견한 사람들이 밀려들었던것이다.
그사이 《일조과련》은 여러차례의 학술연구회를 가졌었다.
방조사회과학자들이 주동이 되여 그것을 조직하고 진척시켜왔다. 그들은 도꾜를 거점으로 하여 여러 지방도시들에 나가 자기들이 보고 온 조선의 현실을 소개하는 일방 주체사상을 해설선전하는 사업을 활발히 벌려나갔다.
야스이 가오루는 근간에처럼 인생의 보람을 크게 느낀적이 일찌기 한번도 없었다.
칠십고령을 지척에 두고도 온몸에는 기운이 솟구쳤고 청춘으로 되돌아온듯 갈수록 활기와 정열이 피여올랐다.
그는 《일조과련》의 방침을 실현하기 위하여 나라안의 그 어디에라도 찾아가 강연도 하고 연구회도 가지며 왕성한 의욕으로 일을 밀고나가는 한편 김일성주석의 로작학습에 한층 심혈을 기울였다. 한편 《요미우리신붕》, 《고메이》와 같은 출판물들에 《주체의 나라를 방문하여》, 《천리마조선은 나래쳐간다》, 《주체의 나라-조선의 사회주의의 특징》등 조선의 현실을 소개하는 글들을 수많이 발표하였다.
야스이 가오루의 이 모든 정력적이고도 눈부신 활동을 낳게 한것은 새로운 진리가 안겨준 활력소였다.
그간 그의 서재의 모습도 퍼그나 변하였다.
김일성주석의 로작들이 서가와 책상의 많은 자리를 차지하게 되였고 방안의 밝은 위치에는 수령님을 모시고 조선사회과학자대회에 참석한 각 나라 대표들과 찍은 기념사진이 빛났다.
야스이 가오루는 밤깊도록 로작학습에 몰두하다가도 무시로 머리를 들어 그 사진을 우러러 바라보군 하였다. 그러면 그날 인류의 진보와 자주를 위하여 서로 손을 잡고 나가자고 하시던 수령님의 말씀이 되살아오르면서 정신이 한층 맑아지고 피로따위는 조금도 범접해오지 못했다.
련달아 이어진 지방순회강연에서 돌아온 몸이였으나 야스이는 이밤에도 자정이 훨씬 넘은 시간이건만 줄창 책상머리에서 떠나지 못하고있었다.
그는 주체철학의 원리와 진수를 터득하면 할수록 그 심원한 세계에 한없이 심취되여 깊이 파고들게 되였다.
야스이 가오루는 주체사상을 접한 초시기 이를 제나름의 판단으로 《우리 시대의 맑스-레닌주의》로 인식하였었다. 헌데 지금에 와서는 그러한 판단이 너무도 단순한 견해에 불과했다는것을 깨닫게 되였다.
맑스와 그의 평생의 벗인 엥겔스에 의하여 맑스주의초석이 마련된 때로부터 어언 한세기가 지나갔다. 맑스의 사상형성과정에 대해서는 처음은 엥겔스의 《공상으로부터 과학에로》, 그 다음에는 레닌의 《맑스주의 세가지 원칙과 세가지 구성요소》나 《칼, 맑스》등에 륜곽적으로 밝혀졌다.
지금까지 이에 대해서는 도이췰란드의 고전철학과 영국의 경제학, 프랑스의 공상적사회주의와 련관시켜 설명되여왔다. 헌데 최근에 들어 다비드 마크레란의 《청년 헤겔파와 칼맑스》, 《맑스이전의 맑스》와 같은 저서들에 의하여 새로운 문제들이 나오게 되였다.
맑스의 사상 특히 그의 젊은 시절의 사상이 어떠한 력사적조건에서 형성되고 발전되였는가는 금후 명백해질것이다.
자본주의독점단계 즉 제국주의단계로 이행한 력사적조건에서 레닌이 맑스주의를 맑스-레닌주의로 발전시켰다. 그를 둘러싸고 지난날 얼마나 치렬하고 부단한 론쟁들이 벌어졌던것인가.
그런데 벌써 레닌의 시대로부터 반세기가 지나갔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후 지구상의 정세는 급속히 변하였다. 현세기는 맑스-레닌주의창시자들이 살고있던 시대와는 전혀 다른 시대에 직면하고있지 않는가.
시대만이 변한것이 아니였다. 같은 시대이면서도 나라마다 처한 환경도 서로 다르다.
이런 력사적변천은 선행고전리론들과 일반적원리를 매개 나라가 처하고있는 조건과 특성에 맞게 창조적으로 적용하여 발전시켜나갈것을 절박하게 요구하고있는것이다. 이 필연적요구를 심오하고 예리하게 분석판단한데 기초하여 창시된것이 바로 주체사상이였다. 그렇다고 주체사상은 진보적인 선행고전리론의 단순한 계승이 아니였다. 엄연한 독창성을 가지고있었다.
야스이 가오루는 근대에 그러한 진리를 똑똑히 인식하게 되였다. 그 자신만이 그것을 깨닫고있는것이 아니였다. 오늘날 수많은 사회과학자, 학자들이 현시대를 주체시대로 규정하고 부르는것만 봐도 그걸 충분히 설명할수 있는것이다.
이 독창성이 바로 현세기를 움직일수 있는 위력한 과학적학설인이상 그의 사상, 리론, 방법의 체계를 응당 김일성주의라고 부르는것이 당연한 리치가 아닌가.
그 어떤 사상리론이나 주의주장을 가진 사람 할것없이 주체사상을 중시하고 주목을 돌리며 그에 대한 립장과 인식을 옳게 가져야한다는것을 야스이 가오루는 김일성주석의 로작의 세계에 깊이 침투하면 할수록 한층 절감하게 되였다.
그러한 생각은 조선혁명의 현실을 연구분석하는 과정에 더욱 움직일수 없는것으로 되였다.
김일성주석께서는 주체를 세운다는것은 한마디로 말하여 자기 나라 혁명과 건설에 대한 주인다운 태도를 가진다는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남에 대한 의존심을 버리고 자기 머리로 사고하며 자기 힘을 믿고 자기 문제는 어디까지나 자신이 책임지고 풀어나가는 자주적인 립장이라고 가르치시면서 한편 맑스-레닌주의의 일반적원리와 다른 나라의 경험을 자기 나라의 력사적조건과 민족적특성에 맞게 적용하여나가는 창조적립장을 견지한다는것을 의미한다고 여러 로작과 담화문에서 거듭 말씀하고계신다.
여기에는 주체사상의 핵을 이루는 두가지 기본요구가 밝혀져있다. 그것은 자주적립장과 창조적립장이다. 이는 호상 밀접히 련관되여있는 불가분리적인 관계속에 놓여있다.
김일성주석께서는 이 두가지 기본요구를 구현하시여 맑스-레닌주의를 우리 시대의 력사적조건과 매개 나라의 구체적실정에 맞게 발전시키는 력사적위업을 이룩하시지 않았는가.
야스이 가오루는 사색이 여기까지 미쳤을 때 김일성주석께서 하신 다음과 같은 말씀의 구절구절들이 새삼스럽게 한층 의미심장한 뜻으로 되새겨졌다.
《나는 조국의 자유와 독립을 위하여 투쟁하는 과정에서 자기 운명은 자신이 개척해야 하며 또 할수 있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게 되였습니다. 우리의 투쟁은 어렵고도 복잡하였습니다. 우리는 모든것을 다 자체로 해결하며 투쟁로선과 투쟁방법도 다 자기 머리로 생각해내지 않으면 안되였습니다.
그러다보니 물론 우리는 형언할수 없는 곤난을 겪었으며 엄혹한 시련을 이겨내지 않으면 안되였습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우리는 그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귀중한 경험과 교훈을 얻었습니다. 우리는 소박하고 평범한 근로인민대중이 혁명적으로 각성되기만하면 참말로 큰 힘을 발휘할수 있으며 아무리 불리하고 어려운 조건에서도 능히 자체의 힘으로 혁명을 할수 있다는것을 깨닫게 되였습니다.》
이 말씀을 음미해보는 야스이 가오루의 머리에는 어느덧 강선제강소 직장장이 들려주던 이야기가 되살아올랐다.
미군의 폭격으로 페허가 된 제강소를 찾으신 김일성주석께서 허물어진 벽체우에 앉으시여 로동자들과 무릎을 같이 하시고 파괴된 제강소를 어떻게 하면 빨리 일떠세울수 있는가를 의논하셨다는 그날의 그이의 영상이 이밤따라 숭엄한 감정으로 안겨왔다.
령토와 사람과 당- 이 세가지가 있는 한 복구는 문제없다고 하신 김일성주석의 그 말씀에 큰 힘을 얻어 빈터우에서 오늘의 웅장한 야금기지를 건설한 로동자들의 열화같은 모습과 함께 평양에 창공높이 솟아있는 천리마동상의 위용이 새로운 감회를 불러일으키며 눈앞에 방불히 그려졌다.
참으로 로작의 구절구절은 살아움직이는 생명체처럼 되새겨볼수록 그 깊이와 폭의 심도를 가늠할수 없을만치 감화력이 컸다.
탐구와 사색에 온 심혼이 쏠린 나머지 로학자는 어느새 새날의 푸름한 려명이 유리창에 비껴있는것도 느끼지 못하고있었다.
그는 안해 다즈꼬가 서재에 조용히 들어와 차잔을 책상우에 올려 놓았을 때에야 비로소 아침이 찾아든것을 깨달았다.
《아니,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였소?》
야스이 가오루는 차를 한모금 마시고나서 의자에서 일어나더니 량팔을 벌려 가슴을 쭉 펴며 창가로 다가가 유리창문을 열었다.
밝아오는 노을속을 헤치며 신선한 새벽공기가 창문으로 밀려들면서 그의 얼굴을 애무하듯 감싸준다.
《당신은 간밤도 지새우셨군요.》
안해가 속삭이는 소리에 야스이는 창가에서 돌아서며 어리광피우듯 하였다.
《여보, 피아노를 좀 타주오. 한곡 부르고싶소.》
다즈꼬부인은 불깃하니 혈색이 피여있는 남편의 밝은 얼굴을 잠시 지켜보다가 미소를 머금으며 피아노앞으로 갔다. 오늘만이 아니였다. 요즘에 들어 남편은 곧잘 노래를 즐겨 부르게 되였다. 전에는 이런 일이 좀체로 없었다. 헌데 갑자기 그 무엇이 그에게 전에 없던 랑만과 노래를 안겨주었을가?
다즈꼬는 그 까닭을 모르지 않았다. 너무나도 잘 알고있었기에 그 녀인은 남편의 기분에 자기 마음도 합치여 피아노를 타면서 언제나 함께 노래를 부르군 하였었다.
밝고 깨끗하고 순직한 그의 마음처럼 야스이 가오루는 서정이 짙고 맑은 향토가요를 부르는것을 좋아했다.
다즈꼬는 숙연한 자세로 피아노를 마주하고 앉아 가만가만 손을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어려서부터 피아노와 익숙해온 그의 건반을 타는 손놀림은 여유있고 능란했다.
빨간 능금에 입술을 대고
말없이 올려다본 푸른 저 하늘
피아노의 은은한 울림에 맞추어 야스이부부의 노래소리는 랑만어린 하나의 화음을 이루며 실내에 흘러넘치였다.
언제 합세하였는지 그 노래에는 고음의 고운 다른 한 목청이 어울려있었다.
그 소리의 임자는 야스이 가오루의 출가한 외동딸 유우꼬였다. 새벽의 고요속에서 울려오는 노래에 유우꼬는 잠을 깨여 서재에 나타난것이였다.
능금은 아무 말 하지 않아도
능금의 마음은 너무 잘 알아
능금 고와라 고와라 능금
………
부부와 딸, 세 사람이 하나의 화음으로 어울려 아름답게 울리는 노래소리는 려명의 새 아침과 함께 집안에 행복한 정서를 한껏 펼쳐주고있었다.
이 가정이 생긴 이래 처음 있는 일이였다.
《아버지-》하고 부르며 유우꼬는 노래가 끝나자 아이들처럼 야스이 가오루의 품에 와락 안기였다. 딸의 두눈에는 뜨거운 이슬방울이 가랑거렸다. 전에 어머니로부터 원수폭금지대회장에서 아버지가 《고추잠자리》를 불렀다는 이야기를 들었을뿐 유우꼬자신이 그 아버지의 노래를 들어보기는 오늘이 난생 처음이였다. 그것이 너무나 신기하다기보다 큰 기쁨을 불러일으키는것이여서 유우꼬의 가슴은 환희로 부풀어올랐던것이다.
야스이 가오루는 딸의 등을 어루만져주었다.
엊그제 북단의 혹가이도에서 출판사에 일이 있어 왔다가 집에 머물러있는 딸이였다.
로씨아문학을 전공하는 유우꼬는 작품들을 번역도 하는터이라 출판관계로 가끔 도꾜에 올라온다.
그는 로어에 능통하여 야스이 가오루가 모스크바크레믈리궁전에서 있었던, 국제레닌평화상을 수여받는 식전에서 《대중과 과학의 승리를》이라는 연설을 하였는데 아버지의 그 연설을 바로 딸 유우꼬가 맡아 직접 통역했었다.
《아버지는 참으로 달라졌어요!》
이윽고 유우꼬는 머리를 들어 두눈을 깜박거리며 응석을 부리듯 말했다.
야스이 가오루는 벙글거렸다.
《내가 달라졌다구? 물론 그렇겠지. …이젠 할아버지가 되였으니까…》
《그런 뜻에서 아니구요.…》
유우꼬는 고개를 살래살래 저었다. 그리고 아버지의 손목을 잡고 쏘파로 이끌어 앉히고나서 의자모서리곁에 기대여섰다.
《그 변화는 우선 입밖에 노래를 내시지 않던 아버지가 갑자기 성악가가 된듯싶고 또 레브 똘쓰또이와 비슷해지신거예요. 전에는 도스또옙쓰끼를 닮았더랬는데…》
유우꼬의 음성은 사뭇 즐거웁게 울렸다.
《응, 그래서 하는 소리였구나. 허허…》
야스이 가오루는 가벼이 웃으며 안해를 돌아보았다.
부녀간이 주고받는 대화를 곁에서 조용히 듣고있던 다즈꼬는 딸의 말에 수긍하는듯 한 밝은 표정이였다. 그들의 이야기에 흥미를 느끼며 잠시 서성거리던 다즈꼬는 문득 무슨 생각이 났는지 《유우꼬, 아버지에게 차를 따라드려요.》하고 딸에게 일러놓고 서둘러 서재에서 나갔다.
《노래야 생활이 보람있고 흥겨우면 저절로 나오는것이고, 사람의 마음 또한 시대의 발전과 더불어 변하는것이 아니냐. 그런걸 너는 새삼스럽게 말하는구나.》
종발에 차를 따르는 딸을 향해 야스이 가오루는 공연한 소리를 한다는투로 일부러 어성을 톺으며 말했다. 그렇다고 그는 딸이 한 말을 부정하는것이 아니였다. 그것은 다 옳은 지적이였다.
방금 유우꼬가 이야기했듯이 그는 청년시절부터 레브 똘쓰또이보다 도스또옙쓰끼의 작품에 더 마음이 끌렸었다.
세상의 모순을 랭철한 눈으로 주시하며 인간의 내면세계를 집요하게 추구해나가는 도스또옙쓰끼의 문학정신에 공감하며 높이 사왔던것이였다. 그에 비하여 똘쓰또이는 세상을 다분히 락관적으로 대하면서 그 자신이 일단 정한 길이라면 끝까지 가보지 않고서는 못배기는 이를테면 정열적이고 행동적인 작가라 할수 있었다.
두 작가의 대조적인 림종의 죽음만 보아도 그것을 잘 설명할수 있다.
유우꼬는 이런 측면을 들어 자기 부친의 변화를 비유해 말한것이였다.
야스이 가오루는 딸의 그 판단에 조금도 의견을 달리하고싶지 않았다. 사실상 그는 자신도 모르게 그러한 인간이 되여가고있었던것이다.
유우꼬는 오늘의 아버지를 보는것이 더없이 기쁘고 행복스러웠다.
지난날의 정신적속박과 심뇌에서 벗어나 옛시절처럼 꿋꿋한 아버지의 락천적모습이 마냥 가슴을 후덥게 하여주었다.
그것이 어떻게 소행하였는가를 유우꼬는 알고있었다.
《아버지, 부디 언제까지나 젊음을 잃지 말아주세요. 부탁해요!》
유우꼬는 매달리듯 아버지의 두손을 뜨겁게 모두어쥐고 거듭 빌었다.
야스이 가오루는 말없는 미소로 딸의 진정에 대답했다.
사람마다 자기의 취미와 소질, 기호에 따라 소중히 지니고다니는 소장품이 있기마련이였다.
구로다 겐도 례외로 되지 않았다. 정치학자인 그로서는 그 방면에 대해서 무시로 사색하고 탐문하는것이 생존방식의 중요한 한 고리였다. 국내뿐만아니라 세계적판도에서 벌어지고 생겨나는 크고 작은 정치적문제들을 그는 하나도 놓치지 않고 제나름의 판단과 관찰로써 주목하고 관심했다.
하기에 구로다는 비망록만은 자기 살점의 한 부분처럼 항상 몸에 간직하고다녔다.
제 아무리 두뇌가 명석하고 비상한 기억력의 소유자일지라도 때로는 건망증으로 하여 망각상태에 빠지는 경우도 있는것이였다.
구로다 겐은 로년기에 들어서면서 때때로 건망증이 일군하여 교단에 서서 강의를 하다가도 왕청같은 소리를 발설하여 학생들의 웃음거리를 만들군 하였다. 하기에 근년에 와서 비망록이라는 하나의 작은 수첩이 얼마나 귀중한것인가를 새삼스럽게 느꼈다. 그날도 그는 자기 교수실에 들어서자 늘 하는 습관대로 신문지면의 곳곳을 훑어보다가 눈에 걸려드는 기사를 비망록을 꺼내들고 적어두는것을 잊지 않았다.
구로다가 요사이 신문, 출판물들에서 가장 주목하여 살피게 되는 점은 이 땅에 급격히 밀려드는 새 사조와 관련되는것이였다.
맑스학설이 온 세계를 풍미하던 전세기보다 한층 거세찬 기세로 주체철학이 사회전반에 뚜렷한 위치를 차지하며 크게 영향력을 행사하고있는 그 사실이 구로다의 사고반경에서 떨어지지 않는 중요한 문제의 하나로 되였다.
수첩을 벌컥벌컥 뒤지며 요소요소를 더듬어보던 구로다의 시선이 빨간 부호가 쳐있는 장에서 갑자기 멎었다.
- 《미라이샤》출판사, 《김일성저작집》전5권과 《김일성전》1, 2, 3부를 일어, 영어로 간행
- 《유잔가꾸》출판사, 《김일성주석 혁명활동략력》《김일성전》발행
- 《반쬬쇼보》출판사, 《령도의 예술가 김일성》발행
- 《일본도서관협회》에서 《김일성전》을 《협회선전도서》로 지정하고 전국 도서관들에 비치
- 《김일성전》에 대한 《출판기념회》, 《독자감상회》 광범한 지역에서 진행
- 김일성주석의 《아사히신붕》, 《요미우리신붕》, 《교도통신사》기자들이 제기한 질문에 대한 대답 90여개 나라들의 신문, 통신들이 보도…
여기서 구로다 겐은 비망록을 덮어버렸다.
알지 못할 위압감을 느끼며 책상머리에서 일어난 그는 쏘파에 가 몸을 털썩 내맡기였다. 지그시 눈을 감고 한동안 죽은듯이 앉아있었다.
구로다가 수첩을 더 이상 번지지 않고 덮어버린것은 다음에 적혀 있을 글을 보기가 두렵다기보다 보고싶지 않아서였다.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글줄이 있었던것이다.
- 야스이 가오루, 김일성주의를 제창
이것은 모두 1970년대에 들어서 시작되여 이 몇해어간에 생긴 일들이였다.
그 기간은 일본정국이 매우 소란하였다.
련 몇해째 광범한 대중이 미국의 예속화정책과 미일간의 침략적결탁, 군국주의재생을 반대하고 근로자들의 생존의 권리와 평화를 요구하여 파업, 시위 등 각종 형태의 적극적인 투쟁이 계속 줄기차게 벌어진 결과 마침내 사또내각은 붕괴되고 다나까정권이 새로 수립되였다.
그런데 다나까 새 내각은 대중의 의사와는 달리 정부시책을 조금도 시정하지 않고 도리여 전 정권보다 더 강경책으로 나왔다.
그들은 《일본의 안전보장은 일미 〈안보조약〉에 의해 확보》되여왔으므로 그것을 《개정할 의도가 없다》고 하며 일미관계를 한층 견지한다는것을 주장함으로써 또다시 사회의 큰 반발을 불러일으키고있었다.
이처럼 불안정한 시국으로 하여 우익정당들이 어지간히 두통을 앓고있는 형편인데 민중의 투쟁의식을 자극하듯 진보적인 사조까지 전파되고있으므로 구로다 겐의 신경이 예민해질수밖에 없었다.
동서고금의 철학학설에 조예가 깊은 구로다가 주체철학이 선행공산주의리론보다 그 생활력이나 영향력이 강하다는것을 모르지 않았다.
그는 방금 더듬어본, 자기 비망록에 수록해놓은 도서와 신문들을 거의나 다 읽고있었다.
정치학자로서의 학술연구상관계도 있었지만 대세의 흐름을 외면할수 없었던것이다.
구로다는 그 과정에 주체철학이 철두철미 사회주의, 공산주의혁명과 건설의 리론실천적문제들을 선행고전의 범위를 훨씬 뛰여넘어 새롭게 정립하고 천명한 학설이라는것을 인식하게 되였다.
바로 그 점이 소홀히 대할수 없는것이였다. 게다가 민중운동의 지도자인 야스이 가오루마저 거기에 공명하여 그 보급에 적극적으로 나서고있으므로 구로다로서는 더더욱 관심을 가지게 되였다.
과연 야스이가 북조선방문후 지난날의 불투명에서 벗어나 이제는 완전히 적색으로 자기를 치장하게 되였단말인가? 광범한 대중의 신망을 받고있는 야스이가 만약 그 방면으로 나간다면 장차 어떤 사태를 낳겠는가?
가뜩이나 국내정치정세가 불안정하고 복잡한 때여서 문제는 단순하지 않았다.
《일조과련》이 정치단체가 아니라 순수 학술연구를 위한 조직이라지만 결코 방관시할수 없었다.
비록 그것이 아직은 사회와 정국을 혼란케 하는 따위 일을 일으키지 않고있으나 장차 어떻게 나올지 모른다. 지난 《원수협》시기로 보아 야스이가 의장으로서 주관하고있는 《일조과련》인 만큼 이제 그것이 어떤 방향으로 나갈런지 경계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러지 않아도 이미 오래전부터 한 우익정당에서 야스이를 회유 설복하여 자기 당의 고문이 되도록 손을 써달라고 청탁을 받고있는 구로다였다.
구로다 겐은 그 당과 아무 련관이 없는, 순 학자의 신분으로 행세하고있으나 실상은 내막적으로 거기에 속해있는 몸이였다. 그가 책임적으로 관여하고있는 정치학회도 다분히 그 정당의 영향을 받고있었다.
야스이의 문제는 어제도 독촉을 받았었다.
그래서 구로다는 벌써부터 야스이와 대면할 기회를 노려왔으나 이래저래 그게 잘 마련되지 않았다. 며칠전에도 알아보았으나 야스이는 지방에 출장중이라고 하였다.
이런 뒤숭숭한 생각에 잠겨 궁싯거리던 구로다는 움씰 자리를 일어 전화통을 끌어당겨 호세이대학을 찾았다. 야스이가 강의에 들어가있다는것을 확인했다.
구로다는 서둘러 외출차비를 하고 교수실을 나섰다.
구로다는 자동차에서 내려 호세이대학의 복도로 들어서다가 마침 강의를 필하고 나오는 야스이 가오루와 맞다들렸다.
《참으로 자넬 한번 대하기가 대왕을 만나는것만치나 힘들구만!》
구로다는 너스레를 떨며 몹시 반색했다.
그의 돌연한 출현에 야스이는 잠시 주춤거리다가 넌지시 말을 건늬였다.
《무엇때문에 나를 그토록 보고팠나?》
《자네가 큰일을 새로 벌려놓았다기에 축하도 할겸…》
구로다는 허허 소리내여 웃으며 말꼬리를 사렸다.
두 사람은 야스이가 혼자 사용하는 교수실로 들어갔다.
야스이 가오루는 급사가 가지고 온 차종발 하나를 집어 구로다겐의 앞에 놓고나서 자기도 차잔을 들어 목을 추겼다. 강의끝에 입안에 감도는 차맛이란 각별한것이였다.
두 사람사이에는 한동안 이런저런 한담이 오고갔다. 야스이가 조선에 가서보고 느낀 이야기도 나왔다.
안락의자에 몸을 묻은 구로다가 갑자기 무슨 생각이 났는지 은근히 말머리를 돌렸다.
《나는 〈원수협〉리사장직에서 사임한 자네가 그후 골방샌님이 되여 여생을 편히 지내는가 생각했더니만 그게 잘못된 판단이였소.》
야스이는 입으로 가져가던 차잔을 탁자우에 놓았다. 방금 구로다가 발설한 소리가 그에게는 몹시 귀에 거슬렸다.
구로다는 마치나도 그 일에서 자기가 완전히 손을 뗀것처럼 여기는 모양이였다. 그게 야스이에게는 언짢게 들렸다.
그가 《원수협》리사장직을 자진하여 사임한것은 사실이였다. 그렇지만 결코 물러난것은 아니였다. 그 조직의 고문으로서 현재도 활동하는 몸이였다.
당파간의 의견상이로 《원수협》내부가 분렬와해되여 국민운동의 통일성을 보장할수 없게 된 사태앞에서 야스이 가오루는 리사장으로서의 책임감을 통절히 느끼며 스스로 사임하지 않으면 안되였던것이다.
당시 그의 마음은 어떠했던가.
십여년세월 아글타글 안아키워온 사랑하는 자식을 사나운 바람이 휘몰아치는 광야에 방치해둔채 돌아서지 않으면 안되는 어머니의 애절한 심사처럼 그의 가슴은 찢기우는듯 했었다.
야스이 가오루는 목마름을 느끼며 차고뿌에 손을 뻗치였다.
《자네는 참 별사람이라니까. 그만큼 사회와 민중을 위하여 공헌했으면 이젠 조용히 생을 지낼법한데 또다시 새 일을 붙잡고 극성을 부리거던.》
구로다는 마치 친구를 걱정하듯 동정어린 소리를 하였다.
그러나 그의 말이 시답지 않는듯 야스이는 건성으로 대했다.
《극성이랄게 있나. 사회과학도라면 응당 누구나 나서야 할 일이지.》
《물론 그럴수도 있지만… 그러나간에 장차 〈일조과련〉을 모체로 무슨 혁신정당이라도 하나 조직할 셈인가?》
《허, 별소릴 다 들어보는군. 애당초 그런 생각을 한적이 없네. 내가 언제 정치에 관여해봤다고 로년에 들어 그런데 머리를 쓰겠나. 나를 매혹시킨 진리에 접하고보니 새힘이 솟구쳐 그 탐구의 길에 뛰여들게 되였지.》
야스이는 담담하게 이야기해나가다가 피뜩 머리를 드는것이 있어 구로다를 정시하며 말을 바꾸었다.
《내 전에부터 하나 묻고싶은게 있었는데… 자네가 속해있는 정치학회는 일조관계개선을 위해 어떤 립장에 서 있나?》
별안간에 다닥친 물음이라 구로다는 다소 당황해졌으나 로숙한 정치인답게 그런 내색도 없이 대범하게 받았다.
《우리로서야 북조선에 대해 언제나 호의적으로 림하고있지. 흔히 항간에서는 우리가 남조선일변도를 취한다고 비평들을 하지만 그거야 일방적인 판단이라고 보네. 오늘날 일본의 처지로서 국제관계를 무시하고 어떻게 존립해나갈수 있겠나? 정치란게 다 그런것이 아닌가. 어쨌든 우리도 북조선을 알기 위해 노력하고있는것만은 사실일세.》
구로다는 장황이 설명했으나 야스이로서는 구김없이 받아들이게 되지 않았다. 그러나 야스이는 진지한 표정으로 나왔다.
《그 학회에서 북조선을 알기 위해 노력한다는데 나를 한번 당신네들앞에 나설수 있도록 청해주지 않겠나? 그러면 내가 직접 보고 온 현대조선의 실태를 사심없이 말하겠네.》
야스이는 진심이였다. 공화국에 대하여 그릇되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깨우쳐주고싶은 욕망을 항상 품고있었던것이다.
《나로서는 반대없네. 그런 좌석이 마련되도록 노력하겠네. … 헌데 자네가 또다시 북조선을 방문한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언제쯤 떠나려나?》
《사증이 나오는 차제로 갈 생각이네.》
《자네도 그렇지만 근래에 와서 학자들의 북조선 출입이 빈번해졌는데 무얼 보자고 그렇게 걸음들을 놓나?》
구로다는 그 까닭을 몰라서 묻는것이 아니였다. 번연히 알면서도 상대가 어떻게 나오는가를 떠보려는 심산에서 능청을 부리는것이였다. 그런걸 통해 야스이의 《색》도 가늠해볼수 있는것이다.
《정치학계에서 대가로 소문난 학자가 설마 그 내막을 몰라서 묻는 소리가 아니겠지?》
야스이는 중얼거리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늘 하는 버릇대로 허리를 꼿꼿이 세우며 말했다.
《맑스학설에 들어선 자네가 나보다 선생이니만치 이미 리해하고있으리라 믿지만 구태여 말한다면 그 학설을 현시대에 맞게 새롭게 발전시키고 올려세운 보편적사상이 바로 조선에서 나왔기때문에 그것을 배우자고 사람들이 그 나라에 가는거요.》
《그 사상이 주체철학이라는것을 나도 알지만 도대체 그것이 어떤 학설이기에 그토록 큰 견인력으로 사람들을 잡아끈단 말이요?》
《허허… 자네도 참, 공연히 또 물어보는 소리겠지. 웬만 한 사람들이 다 아는 그 진리를 정치대가인 당신이 모른다고 한들 누가 곧이 듣겠나?》
《아니, 대체로 짐작은 하고있으나 똑똑히 알고싶네.》
《그렇다면 우리 서로 인식을 새로이 다지는 의미에서 이야기하세.》
야스이는 이렇게 말머리를 떼여놓고 목소리에 억양을 높이며 뒤를 이어나갔다.
《그 견인력이란 한마디로 말해서 현세기를 진보에로 이끄는 진리의 힘이라고 보네. 이를테면 일본과 같은 나라들은 큰 나라의 눈치를 보지 말며 또 미국같은 나라들은 작은 나라를 지배하려 하거나 간섭하지 말라는 자주정신, 바로 그 사상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 잡았다고 할가…
내가 터득한데 의하면 주체사상의 생활력은 단순한 학술연구, 사상계몽과 같은 대중의 의식화활동에만 머물지 않고 창조와 변혁의 실천적무기로서 인류력사발전에 거대한 기여를 할수 있다는 그 위력이였네. 거기에 사람들이 매혹되여있는것이 아닐가 생각되는데 자네는 어떻게 보나?》
《글쎄…》
구로다는 대답을 피했다.
두 사람은 한동안 침묵을 지키고있었다.
야스이는 구로다가 어떤 사람인가 한것을 이미부터 잘 알고있었다. 지난날 《원수협》을 분렬와해시키는데 일익을 담당한것도 또한 오늘날에는 《일조과련》의 활동을 질시하면서 은밀히 감시의 손을 뻗치게 하고있는것도 다 구로다에 의한 소행임을 야스이는 모르지 않고있다. 그런 인간에게서 자기가 한 말의 반응을 애당초 기대하지 않았다. 도리여 지금 그는 경계심을 가지고 구로다를 대하고있었다. 이런 인간들에 의해 장차 자기에게 모해가 가해지지 않을가 하는 우려심도 없지 않아 있었다. 그러나 야스이는 불안감을 느끼거나 의기소침해지는 법을 몰랐다. 어떤 힘이 이토록 자기의 심장을 든든히 받들고있는지 그 자신으로서도 놀랍게 여겨졌다. 정의앞에 언제나 허심하고 결곡한 야스이 가오루였다.
하기에 상대가 비록 마음에 거슬리는 인간이라 할지라도 모든것을 초월하여 대상할줄 알았다. 진리앞에서 무엇을 가릴 필요가 있단 말인가.
구로다 겐은 이 시각 새삼스러운 감정으로 야스이 가오루에 대하여 생각하게 되였다.
량심과 신념만을 믿고 따르는 인간이란 자기를 위장하거나 채색할줄 모른다고 한다. 오직 의로운것을 위해 항상 온 정신력이 움직인다고 한다.
오랜 접촉을 통하여 야스이 가오루의 이러한 기질과 자세를 적지않게 체험하고있는 구로다 겐은 그를 지나치게 고정하고 괴벽한 사람으로 치부해왔다.
현대생활이란 때로는 시세에 편승할줄 아는 아량을 가지는것이 유익한데 그는 그야말로 뒤를 돌아볼줄 모르는 벽창호였다.
전에 신쥬꾸 료정에서 하시모또 스스무도 말한것이 있었다.
《야스이는 일단 자기가 택한 길은 어떤 일이 있어도 끝까지 가고야마는 옹고집쟁이요.》
구로다는 오늘의 대면에서 야스이의 《색》이 어떤것인가를 알아내게 된것같았다. 이제는 그가 지난날의 그 불투명을 걷어내고 뚜렷한 정체를 드러낸듯싶었다.
구로다는 그것을 느끼자 은연중에 두려운 심사가 갈마들었다. 그러고보면 언젠가 하시모또도 말했듯이 야스이는 애당초 미미한 인간이 아니라 원래부터 선명한 색을 지니고있었는지 모른다. 바로 그것이 지금에 와서야 표면에 나타나게 되였을 따름일것이다.
구로다는 뒤늦게나마 그것을 깨닫자 알지 못할 위구와 착잡한 기분으로 한층 머리가 무거워져 저도 모르게 맥락이 닿지 않는 소리가 입에서 나갔다.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라고 하던데… 정말이지 자넨 알다가도 모르겠다니까. 한생을 길을 찾아 헤매다 어슬막에야 자네는 갈길을 찾았다고 하지만 사실 길이란 끝도 기슭도 없거던. 그리고 합쳐지기도 하고 얽히고 갈라지기도 하는것이 세상길이 아니겠나. 하긴 세상만물은 다 시작이 있고 끝이 있다고 흔히들 말은 하지만 모를 소리야. 아무튼 가보게나. 이 친우가 앞을 막아나선다고 돌아설 자네겠나.》
구로다 겐은 달리는 할 소리가 없었다.
야스이 가오루는 그의 말을 듣는지 마는지 무표정한 기색으로 담배를 피워물고있었다.
그의 근엄한 모습은 마치나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 그러나 명확히 생각하는 사람은 명확히 말하고 행동하는 법이다.》라고 상대방을 가차없이 면박하는것 같았다.
진리에 대한 믿음, 진리에 대한 옹호, 그것이 강의한 의지와 량심에 의해서만 확고히 고수될수 있다는것을 학자적신념으로 깊이 간직하고있는 야스이 가오루였던것이다.
구로다 겐은 자기로서도 알수 없는 압박감에서 벗어나보려는듯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났으나 그의 입에서는 신음소리와 같은 외마디 탄식밖에 나오는것이 없었다. 이런 《옹고집》에게 자기가 찾아온 목적을 말해야 애당초 통할리 없다는것을 그는 뒤늦게나마 새삼스레 깨달았던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