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편   빛나는 길

 

제 2 장

다즈꼬는 마당가 덕대우에 가지런히 얹어있는 화분들에 물을 주고있었다.

남편이 하루도 번지지 않고 하던 일이였으나 그가 없을 때면 다즈꼬가 의례히 대신 맡아했다.

복슬개 유리가 그 녀인의 주위에서 한시도 떠나지 않고 꼬리치면서 졸졸 묻어다녔다.

남편이 조선에 려행을 떠나 없는데다 며느리마저 손자애를 데리고 친정에 나들이간 집안은 아침 정적에 싸여 전에 없이 조용했다.

다즈꼬부인은 물살을 머금고 생기가 싱싱히 피여난 가지각색의 꽃들을 즐거이 바라보다가 문득 고개를 쳐들어 선홍빛 노을이 찬연히 물들고있는 동녘하늘가 멀리를 우러렀다.

두귀를 쫑긋 세운 유리도 부인을 따라 흉내내듯 머리를 곧추 솟구고 그 하늘을 올려다본다. 그 짐승도 자기를 가장 아끼고 고와해주던 주인의 애무가 그리운듯싶었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실가? 그렇게도 크게 기대를 가지고 떠나시더니.…)

다즈꼬는 남편의 안부와 소식이 몹시 궁금하게 여겨졌다. 저 하늘가 멀리 바다너머에 조선이 있다. 그고장이 요즘 언제나 귀중하고 정다웁게 안겨오는 다즈꼬의 눈앞에는 즐거운 마음으로 비행기에 오르던 그날의 남편의 모습이 삼삼히 그려졌다.

그의 명상을 깨치듯 갑자기 전화종소리가 집안의 고요를 흔들며 마당에까지 울려왔다.

이른아침부터 웬 전화일가? 이런 시간에 흔히 없던 일이였다.

다즈꼬는 혹시 평양에서… 하는 생각에 손에 들었던 물통을 놓고 총총히 현관으로 들어갔다.

밤늦어 돌아와 잠들고있는 아들을 깨울가봐 저어하며 소리없는 걸음으로 복도를 지나 전화통앞에 다가서 수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야스이 가오루댁입니다.》

웬 사나이의 걸걸한 음성이 곧 진동판을 울리며 들려왔다.

《아, 아주머니군요. 그새 잘 계셨습니까? 새벽부터 실례합니다. 저는 구로다올시다.》

《예, 구로다선생님이세요. 안녕하세요?》

다즈꼬는 부지중 마음이 굳어지는것을 느꼈다.

《야스이군이 조선에 갔다더니 돌아왔습니까?》

《아직 안오셨어요.》

《언제쯤 귀국한답니까? 벌써 열흘나마 된것 같은데…》

《글쎄요. 그건 저도… 무슨 일이 있습니까?》

《아주머니에게 말하긴 좀… 실은 문제거리가 없지 않아 있기는 하지만…》

구로다는 웬일인지 갑자르며 말을 더듬거렸다.

《그게 무언데요? 제가 알면 안됩니까?》

다즈꼬는 마음이 부쩍 동한 나머지 다우쳐 묻게 되였다.

잠시 상대쪽에서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그럴수록 녀인은 한층 조바심이 났다.

《여보세요! 구로다선생님…》하고 먼저 녀인이 재촉하며 찾아서야 비로소 구로다 겐의 마지못해 하는듯 한 목청이 송화기를 울리며 들려왔다.

《공연한 소리같지만…》

구로다는 여전히 갑자르듯 하다가 느릿느릿한 억양으로 말을 이었다.

《실은 지금 일부 사람들속에서 야스이군의 공산국가방문을 두고 좋게 보지 않고있지요. 전에 〈원수협〉시기에도 야스이군의 신변에는 항상 모함이 따르지 않았습니까. 그때처럼 말입니다. 그래 걱정되여… 귀국하면 나도 말하겠지만 아주머니도 야스이군에게 조심하도록 일러주시오. 이거 안되였습니다.》

《주인을 걱정해주어 참 고마와요. 돌아오시면 꼭 전하겠어요.》

두 사람의 대화는 끝났다.

다즈꼬는 구로다의 말을 고스란히 받아들였다. 지난날에도 남편의 신변에 위험이 따랐을 때 사람들이 이러한 경고와 념려를 한두번만 한것이 아니였다.

방금 구로다가 말한것처럼 《원수협》이 박해를 당하던 그무렵에 남편에게는 별의별 모해가 가해졌었다.

그런 정치적테로가 가장 우심했던것은 기시집권당시였다.

사회당 서기장 아사누마 이네지로가 히비야공회당에서 안보반대투쟁연설을 하던중 우익의 한 깡패로부터 살해당한 사건도 바로 그 무렵에 있었다.

원수폭금지운동이 확산발전하면서 야스이 가오루의 명성이 높아지자 좌우익당파들에서는 그를 자기네의 파벌에 끌어당기려고 서로 암투를 벌렸었다.

야스이를 쟁취함으로써 그의 주위에 결속된 광범한 민중을 저네들의 수중에 넣으려는 타산에서였던것이다.

그러나 야스이 가오루는 그 어떤 유혹이나 회유도 다 물리치고 국민운동의 순결성을 견결히 지켜나갔다. 이렇게 완강하게 나오자 걸핏하면 전화협박으로, 편지공갈로 암해를 가해나섰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다즈꼬가 어슬막에 상점에서 돌아오던 길목에서였다. 두놈의 괴한이 불쑥 그의 앞에 나타나더니 시퍼런 단도를 손에 쥐고 휘둘러 보이며 다짜고짜로 악담을 퍼붓는것이였다.

《너의 남편보고 말해라. 〈원수협〉에서 당장 손을 떼라고 말이다. 그러지 않다간 아사누마의 신세를 면하지 못할줄 알라!》

다즈꼬는 어망결에 당한 일이라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듯 하여 땅바닥에 풀썩 주저앉았다.

눈앞이 아뜩하였다. 괴한들이 사라져간지 이윽토록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그날저녁 집으로 돌아온 남편에게 다즈꼬는 간절히 부탁했다.

《여보, 당분간 바깥출입을 제발 하지 마세요. 당신을 노리는 놈들이 있어요.》

그러나 다즈꼬는 《원수협》에서 손을 떼라는 말만은 차마 할수 없었다. 놈들의 위협이 두렵다고 어찌 그 의로운 일에서 물러서라고 할수 있으랴.

그 세월, 다즈꼬는 하루도 마음 편한 날이 없었다.

그런데 또다시 그 시절이 은연중에 밤안개처럼 스며들려 하고있다. 남편이 새 진리를 따르는것을 두고 무엇때문에 주위에서 소란을 피워야 하는가?

다즈꼬는 웬일인지 맑은 기분이 일시에 가셔지고 공연히 심사가 흐려지고말았다.

남편에게 어떤 알수 없는 검은 그림자가 항상 뒤따르는것 같은 위구심이 갈마들었던것이다.

도로 마당으로 나와 가꾸다 만 화분에 손을 대였으나 좀처럼 흥심이 일지 않았다.

유리도 무슨 기미를 알아차렸는지 멀찌감치에 떨어져 까딱 움직이지 않고 꿇어앉은채 눈알만 데룩거린다. 그러던 개가 갑자기 우뚝 일어서더니 대문쪽을 향해 짖어대기 시작했다.

이때였다. 《야스이상, 덴뽀! (전보)》하고 대문밖에서 누군가 웨치는 소리가 울려왔다.

다즈꼬는 유리를 얼리며 얼른 밖으로 뛰쳐나갔다.

《사모님, 국제전보입니다.》

우편배달원이 부인에게 전보를 넘겨주며 하는 말이였다.

그것을 받아드는 다즈꼬의 입에서는 무심결에 물음이 나갔다.

《어디서요?》

《평양에서 왔습니다.》

《뭘- 평양이라구요?!…》

다즈꼬는 배달원이 사라져간것도 모르고 가슴 울렁이며 전보문에 급급히 시선을 박고 더듬어나갔다.

- 아름다운 나라에서 매우 뜻깊은 나날을 보내고있다. 기뻐하라. 가오루-

다즈꼬는 보고 또 거듭 읽었다. 그 한자한자의 글발마다에서 녀인은 남편의 후더운 숨결과 함께 사뭇 흡족해하는 심정을 읽을수 있었다.

《기뻐하라》고 했다. 정녕 다즈꼬는 더없이 기뻤다. 금번 려행이 얼마나 보람이 크기에 남편은 그 짧은 글줄에 그토록 자신의 만족한 기분을 담아 전해주었으랴!

다즈꼬는 고마왔다. 남편의 기쁨이자 곧 자신의 기쁨이였다.

남편이 외국에 려행하는 일이 빈번했으나 이런 전보를 보내준적이란 여직 단 한번도 없었다.

다즈꼬는 방금전 구로다의 전화를 받고 흐렸던 기분따위는 가뭇없이 사라지고 저으기 마음이 맑아졌다. 그는 성급히 집안으로 들어갔다. 복도의 마루바닥을 쿵쿵 울리며 아들이 있는 방을 향해 부지런히 걸어갔다.

다즈꼬는 방문을 활짝 열어젖히며 소리쳤다.

《노부아끼, 아버지한테서 전보가 왔다!》

마침 아들은 깨여나있었다.

방바닥에 널려있는 사진들을 한창 뒤적이던 노부아끼는 갑자기 크게 울린 어머니의 목소리에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얼른 전보지를 받아든다.

순간 아버지의 모상을 닮은 그의 길쑴한 얼굴에는 환한 빛이 찰랑거렸다.

《어머니, 정말 다행이군요! 이번 려행이 아버지마음에 퍽 드신 모양이죠? 이런 전보를 치신것만 봐도…》

노부아끼는 명랑하게 외우며 어머니의 전에 없이 밝은 얼굴을 웃으며 바라보았다. 그도 어머니 못지 않게 기뻤다. 지난날 아버지의 일로 얼마나 마음고생해오신 어머니였던가. 그랬던 어머니의 무거운 심사를 한장의 짤막한 전보문이 삽시간에 날려보낸듯싶어 노부아끼의 가슴도 바다처럼 확 열리였다.

《글쎄말이다. 오죽하셨으면…》

다즈꼬는 아들이 기뻐하는것을 보자 한층 행복감에 젖어 맑고 아름다운 큰눈을 빛내며 중얼거렸다.

《저도 혼자 은근히 걱정하고있었는데… 정말 다행이군요!》

실은 노부아끼는 부친이 조선으로 떠나는것도 몰랐었다. 그때 그는 지방 출장중에 있었다. 그래서 부친이 평양으로 가게 된 사연도 며칠전 집에 돌아와서야 어머니에게서 듣고 알게 되였다.

노부아끼는 야스이 가오루의 두 남매중의 외아들이였다. 그는 대학졸업후 엔, 에취, 케이 방송협회에 취직하여 텔레비죤편집제작부문에서 일하고있었다.

그가 하는 일이란 야생생물의 생활을 연구관찰하고 그것을 방송과 출판물을 통하여 소개선전함으로써 사람들에게 조국의 자연을 리해하는데 도움을 주는것이였다. 그런 직업상관계로 자연과 동식물의 생태촬영차로 장기간 집을 떠나있는 경우가 빈번하였지만 자기 부친의 정신적동향이나 움직임을 모르는것은 아니였다. 더우기 아버지로 하여 그간 모친이 겪어온 고충을 곁에서 보아온 노부아끼였다. 그런데 이 아침 만시름을 놓은듯 한 어머니의 모습을 바라보는 그는 무척 마음이 흥겨웠다.

노부아끼는 이날과 같은 커다란 행복감을 몇년전에도 아버지로부터 뜨겁게 받아안았던 일이 있었다.

대학졸업을 앞둔무렵이였었다.

노부아끼는 어느날 부친에게 장차 사회에 진출후의 자기 희망을 비쳤다.

《저는 텔레비죤방송국에 입직할 생각인데 아버님의 의향이 어떠신지요?》

《거기서 무슨 일을 할셈이냐?》

아들의 난데없는 소리에 야스이 가오루는 다소 놀라며 조용히 되물었다.

평상시 부친앞에 언제나 솔직한 노부아끼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우리 나라의 자연과 풍토를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촬영기자가 되려고 합니다.》

《나라의 자연과 풍토라…》

부친은 호기심에 찬 시선으로 아들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노부아끼는 구구히 말하였다.

사람들에게 조국의 자연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을 심어주기 위해 나라안의 모든 동식물의 영상과 음향, 계절과 기상의 변화 등을 생태촬영하여 텔레비죤으로 소개하고 인식시키는 일을 하고싶다는 추지를 털어놓았다.

실은 그는 장래 부친의 뒤를 이을 포부를 안고 법정과목을 전공해왔다. 헌데 그것을 갑자기 변경하고 왕청같은 방면으로 전환할 결심을 품게 되였으므로 부친이 과연 어떻게 나오겠는가 노부아끼는 은근히 걱정되였던것이다.

야스이 가오루는 아들이 하는 소리를 묵묵히 끝까지 들었다.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쏘파에서 불쑥 일어난 그는 노부아끼를 향해 밝은 어조로 말했다.

《아주 좋은 생각을 했다. 네가 법정을 전공한것이 헛되지 않았구나. 대찬성이다!

사람들에게 조국의 자연을 잘 알려주고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심어준다는것, 그게 얼마나 뜻있고 의로운 일이냐. 부디 그 희망을 훌륭히 실현하기 바란다.》

부친이 매우 기뻐하는것을 보자 노부아끼는 코마루가 찡해났다. 그토록 자식의 심정을 선뜻 헤아려주고 고무해주는 아버지에 대한 커다란 긍지와 행복감으로 가슴이 마냥 뿌듯해올랐다.

그 아버지가 이국땅에서 희소식을 보내주었던것이다.

노부아끼는 희열에 넘쳐있는 어머니의 앞으로 다가서며 말하였다.

《누님도 이 소식을 알면 얼마나 기뻐하겠어요!》

《참, 유우꼬에게 어서 당장 전해주거라.》

다즈꼬는 아들의 등을 떠밀며 재촉했다.

아버지를 생각하여 그 먼 혹가이도에서 사흘이 멀다하게 전화를 걸어오는 출가해간 딸 유우꼬였다.

노부아끼는 급히 자리를 떠서 전화기가 있는곳으로 서둘러갔다.

다즈꼬는 아들의 방에서 나왔다. 그의 발길은 저절로 남편의 서재로 옮겨졌다.

언제나 그랬던것처럼 그는 조심스레 서재의 문을 열고 안을 들여다보게 되였다. 남편이 려행을 떠난 후 다즈꼬는 하루에도 몇번 지금처럼 서재안을 들여다보게 되는 일이 요즘 하나의 일과처럼 되고있었다. 그러면 비록 주인이 없는 빈 방이건만 다즈꼬의 눈에는 책상머리에 붙어 무엇엔가 골몰하는 남편의 진지한 모습이 밟혀오군 했다.

그러나 지금은 전에와는 다른 유별난 심사로 하여 그는 저도 모르는새 문턱을 넘어 몸이 안으로 끌려들었다.

다즈꼬는 남편의 의자에 가만히 앉아보았다.

그 순간 《기뻐하라》고 웃으며 말하는 남편의 창창한 음성이 또다시 녀인의 청각에 메아리쳐 울려왔다.

다즈꼬는 비상히 함축된 그 한마디 말속에 어떤 하많은 뜨거운 이야기가 새겨져있는가를 이때 불현듯 새삼스러운 감회속에서 돌이켜보게 되였다.

진정 거기에는 야스이 가오루의 지나온 생활로정이 의미심장하게 울리고있어 다즈꼬에게는 그 나날들이 단순한 추억으로만 생각되지 않았다.

《기뻐하라》고 한 남편의 전보를 손에서 놓지 못하고 언제까지나 쥐고있는 다즈꼬에게는 흘러간 그 나날의 일들이 오늘따라 류달리 생생하게 회상되면서 서재에서 떠나지 못했다.

생각하면 남편은 이 서재에서 모진 정신적신고를 겪었었고 또한 새 진리에 접하여 신생의 희열을 받아안기도 하였었다. 그리하여 커다란 기대와 랑만으로 가슴설레이며 이 서재를 떠난 걸음으로 곧장 평양으로 날아갔던것이다.

밖에서 누가 찾는 소리에 다즈꼬는 문득 회상에서 깨여나 몸을 일으켜 현관으로 나갔다.

최학성과 상봉하고 돌아온날 저녁, 야스이 가오루는 그사이 써오던 사회과학자대회연단에서 할 학술토론원고를 매듭짓기 위해 숙소의 탁상머리를 밤이 깊도록 떠나지 못하고있었다.

조선에 체류한지도 이제는 여러날째가 되였다.

그간 그가 숱한 참관지마다에서 만난 사람들은 로동자, 농민, 과학자, 의사, 어린이들에 이르기까지 수없이 많았다.

야스이는 이 모든 사람들의 면모와 태도, 작풍에 이르기까지 자세히 관찰하였다. 물론 사람의 개성에 따라 그들이 자기를 대하는 품은 비록 각이하였으나 정신도덕적면에서 발현되는 양상은 일치하였다. 그들은 한결같이 자기 수령에 대한 무한한 흠모와 신뢰감을 가지고 모두가 일에서는 근면하고 성실했으며 생활에서는 또한 소박하고 겸손하며 자기보다 먼저 남을 위하고 서로 돕고 존중하는 고상한 풍모를 보여주었다.

이것은 참으로 놀라운 현상이 아닐수 없었다. 한갖 《소비사회》의 탁류속에서 허덕이는 인간상만을 보아오던 야스이에게 이 나라 사람들의 모습은 놀라운 인상과 감동을 안겨주었다.

그것은 때묻지 않은 사람들의 순결한 모습이였다. 주체의 토양속에서 꽃펴난 아름다운 인간상이였다.

이 모든 현상은 한생을 참된 삶의 길, 인간해방의 길을 찾아 헤매온 그에게 있어 실로 크고 많은 시사를 주었다.

어느덧 밤도 자정이 훨씬 넘어섰다. 허나 야스이 가오루는 옹근 세상을 안은듯 한 희열과 랑만에 넘쳐 원고지우에 한자한자 글을 써나가고있었다.

최학성이 헤여지기 앞서 하던 말이 이 시각에도 귀전에서 떠나지 않고 그를 한없이 고무하며 부추겨준다.

《야스이선생님, 행복이란 무엇인가를 저는 조국의 품에 안겨서야 그 참뜻을 비로소 알게 되였습니다. 사람이 누려야 할 삶의 권리가 남김없이 발휘될 때야만 행복이 마련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백방으로 보장해주는 사회에서 저는 살면서 연구사업을 하고있습니다. 이 모든것을 안겨주신분은 우리 수령님이십니다. 하기에 우리 인민들은 한결같이 수령님을 한없이 자애로운 어버이로 높이 우러러모시고 따르며 그이의 가르치심이라면 물과 불속에도 뛰여들어 끝까지 관철하고야마는 오직 하나의 신념으로 가슴불태우고있는것입니다. 그렇게 사는 길만이 우리앞에 언제나 휘황하고 보람찬 생활이 열린다는것을 모두 철석같이 믿고있기때문입니다. 이런 확신속에서 살며 일한다는것, 그것이 곧 진정한 행복이 아니겠습니까.》

최학성의 말에 이어 개성인민병원을 찾아갔을 때 들은 이야기가 되살아올랐다.

그 병원의 중년의 한 외과의사는 환자를 수술할 때 겪게 되는 고통아닌 《고통》을 두고 솔직하게 터놓았었다.

《정말 난처한 경우가 빈번합니다. 큰 수술만 제기되면 병원의 의사와 간호원들, 환자의 친척들과 친우들은 더 말할것 없고 생판 모르는 사람들까지도 몸을 내대면서 피를 뽑아주고 살과 뼈를 떼주겠다고 떼질을 하니 말입니다.》

야스이 가오루는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함흥에서도 들었고 원산에 가서도 들었었다.

참으로 얼마나 뜨겁고 고결한 혈연적뉴대로 충만된 사회인가.

자연과 사회의 주인이라는것을 자각한, 행복의 진가를 심장으로 체득한 이들이야말로 자기밖에 모르는 개인본위에서 완전히 벗어난 해방된 참인간의 전형이 아닌가!

그는 생각이 깊어짐에 따라 종이우를 달리는 펜대에 한층 힘이 뚝뚝 내뻗치였다.

전국사회과학자대회가 열리는 평양대극장은 아침부터 성황을 이루고있었다.

개막시간이 다가옴에 따라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그들속에는 머나먼 대양과 대륙을 넘어온 여러 나라 대표들도 적지 않게 있어 대회가 국제적인 큰 규모의 행사임을 짐작하게 하였다.

야스이 가오루가 인솔하는 일본학자대표단은 강민석부장의 안내하에 회의장에 들어섰다.

대회가 열리기전이여서 대극장의 넓은 홀에는 사람들로 흥성거렸다.

야스이 가오루는 홀에서 자기네처럼 초청을 받고 온, 이미 국제회의들에서 면식을 익힌 여러 사람들과 만나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그들은 모두 저명한 과학자, 학자들이였다. 그속에는 야스이 가오루와 이전부터 친분관계를 맺고있는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종합대학의 교수 박사인 한스 클레카츠키와 뻬루기자련맹위원장인 헤나로 까르네로 체까도 있었다. 야스이는 엊그제 그들과는 이미 호텔에서 만났었다.

이토록 진보적이고 량심적인 사회활동가들이 수많이 참가하고있는것으로 미루어 금번 이 대회가 얼마나 중요한 의의를 띠고있는가를 야스이는 충분히 알수 있었다.

대회는 학구적인 열정이 넘치는 분위기속에서 개최되였다.

더우기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탄생 60돐을 맞이하는 경사스러운 시기에 열린 행사였으므로 참가자들의 얼굴마다에는 그이에 대한 다함없는 존경과 경모의 정이 뜨겁게 어려있었다.

야스이 가오루는 아까부터 온 정신을 기울여 대회의 기본보고를 주의깊게 듣고있었다.

보고자는 주체사상의 진리성과 생활력을 깊이있고 폭넓게 력설한 다음 조선의 전체 사회과학자들의 진정을 대변하여 다음과 같이 열렬히 토로하였다.

《한 나라 과학발전의 력사를 놓고볼 때 한순간에 지나지 않는 짧은 기간에 우리 나라 사회과학이 이룩한 모든 성과는 오직 우리 시대의 위대한 사상리론가이시며 혁명과 건설의 영재이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현명한 령도와 크나큰 배려에 의해서만 이룩될수 있었습니다.…

우리 나라 사회과학의 발전력사는 우리 사회과학자들을 한품에 안아 키워주시고 가르쳐주신 자애로운 어버이수령님의 뜨거운 사랑과 두터운 육친적배려의 력사이며 수령님에 대한 우리 전체 사회과학자들의 다함없는 충성의 력사입니다.…》

조선의 사회과학발전을 수령의 사랑과 배려의 력사, 그 수령에 대한 전체 과학자들의 충성의 력사로 규정하며 김일성주석을 충심으로 위대한 스승, 자애로운 어버이로 높이 칭송하며 받드는 이 나라 지성인들의 열화같은 목소리를 들을 때 야스이 가오루는 이름할수 없는 커다란 격정으로 온몸이 달아올랐다.

그는 그 목소리에서 주체조선의 모습, 조선과학자들의 행복한 모습을 볼수 있었고 주체사상의 광휘로운 빛발이 온 세상에 빛발칠 래일을 확신성있게 내다볼수 있었다. 그것은 정녕 하나의 의지, 하나의 신념에서 울려나오는 자주와 창조의 장엄한 메아리였다.

야스이 가오루는 생각할수록 이 나라 과학자들이 그지없이 부러웠다.

자기 수령의 정치리념을 하나의 확고한 정신적지주로 깊이 간직하고 탐구의 나래를 활짝 펴고있는 이들이야말로 얼마나 행복한 사람들인가!

야스이는 자기 나라 학자들에 대하여 새삼스럽게 생각하지 않을수 없었다.

일본학계에서는 오늘날에도 사회과학의 《무당성》, 《초계급성》을 주장하는 세력이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하고있었다. 그들은 리론을 위한 리론만이 학구적인 태도라고 하면서 스스로 《살창없는 감옥》에 들어박혀 실천과 완전히 리탈되여 똑똑한 내용도 없는 론쟁만을 일삼고있었다. 그러한 론쟁이 설사 학계를 일시 흥성거리게 할수 있다 할지라도 력사를 전진시키는데는 아무러한 가치도 없는 한갖 공리공담에 지나지 않을뿐이였다.

회의장이 떠나갈듯 한 박수소리에 야스이 가오루는 문득 현실로 돌아와 주위사람들의 기세에 저절로 휘말려들었다.

토론들이 련이어 계속되였다.

여러 나라 대표들이 엇바꾸어 연단에 나섰다.

그들은 일치하게 조선에서의 사회주의 혁명과 건설에서 이룩한 거대한 성과에 대하여 지적하며 축복해마지 않았다.

벨지끄의 대표는 동방의 나라 조선에서 비쳐오는 주체의 빛발은 오늘날 세상의 어지러운 탁류를 쓸어버리며 도도히 흐르는 《시대의 대하》이며 사상과 철학이 《황페화된 사막》에서 인류가 발견한 《오아시스》였다고 선언하듯 하였다.

프랑스의 한 대표는 주체, 그것은 《20세기의 새로운 지동설》이라고 의미심장하게 전제하고나서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께서는 주체사상의 지레대로 지구를, 아니 온 우주를 들었습니다. 이 지레대로 인류를 자주의 높은 언덕에 올려세우신 위인중의 위인, 영웅중의 영웅, 인류여, 이분을 우러르자! 숭상하시라!》라고 청중을 향해 손을 높이 들어 휘두르며 격조높이 부르짖었다.

인디아의 대표는 자기 토론의 마감에 열정을 담아 시 한수를 읊었다.

        일찌기 아시아의 황금시대에

        빛나던 등불의 하나인 조선

        그 등불 다시한번 켜지는 날에

        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

        …

야스이 가오루는 그것이 인디아의 유명한 시인 라빈드라 나트 타고르가 1928년에 창작한 시 《조선》이라는것을 쉽사리 알수 있었다.

놀라운 일이였다. 일찌기 조선민족의 슬기와 재능을 인정하고 미래를 예언한 시인의 비상한 통찰력에 새삼스럽게 감복을 금할수 없었다. 진정 시인의 예측은 조금도 틀리지 않았다.

타고르는 벌써 그때 《자주의 홰불, 동방의 밝은 빛》이 타오를 오늘의 조선을 내다보았던것이 아닌가!

대회장은 시간이 흐를수록 한층 비등된 열기로 넘치였다.

이윽고 야스이 가오루는 자기 차례가 와서 연단으로 나섰다.

그는 먼저 조선에 체류기간 자신이 직접 보고 체험한것을 피력하였다. 그런 다음 현시기 5대륙에 찬연히 전파되여 있는 주체의 해발은 사회발전을 힘있게 촉진시키면서 인류의 앞길을 휘황히 밝혀주며 일본 사회과학자들을 한없이 고무추동하고있다고 힘주어 말하고 나서 주체사상이야말로 맑스-레닌주의자들이 당대의 조건과 제한성으로 말미암아 예견조차 할수 없었던 새로운 문제들을 현시대적요구에 맞게 해결할수 있게 하는 독창적인 사상리론적무기라는것을 사리정연하게 론증해나갔다.

고음에 가까운 그의 목소리는 박력있고 창창하게 장내에 울려퍼졌다.

야스이 가오루는 한층 힘있는 언변으로 토론의 마감부분을 장식하였다.

김일성주석께서 창시하신 위대한 주체사상은 휘황찬란한 미래에로의 길을 개척하는 모든 인민, 싸우는 혁명가, 싸우는 과학자들에게 승리에 대한 확신과 정열, 용기와 지혜를 안겨주는 원동력입니다!》

이렇게 부르짖듯 열변을 토하고난 야스이는 은발의 허연 대머리를 번쩍 들더니 청중을 향해 두손을 높이 쳐들어 목청껏 웨쳤다.

《불멸의 주체사상 만세!》

삽시에 대회장은 만세의 환호성으로 진감하였다.

순간 야스이 가오루의 두눈에는 허연것이 번뜩이였다. 한 과학자의 티없이 정화된 심장의 목소리에 모두가 한결같이 뜨겁게 화답해주는것을 보자 불식간 감격의 눈물이 솟구쳤던것이다.

《대단히 감사합니다.》하고 마지막으로 한마디 남겨놓고 연단을 내려서는 그는 웬일인지 두다리가 후들거리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사십여년을 교단에 서온 그로서 이런 일을 겪어보기는 처음이였다.…

그날 휴식시간이였다.

조선사회과학원 리중엽부원장과 함께 한 대기실에 들어선 야스이 가오루는 거기서 담배를 피우며 한담하는 헤나로 까르네로 체까와 한스 클레카츠키를 만났다. 호텔과 대회개막전에 홀에서 잠간 만났을뿐 아직까지 그들과는 이런 조용한 자리를 같이하지 못하였었다.

체까와 클레카츠키는 쏘파에서 일어나 야스이의 손을 새삼스럽게 뜨거이 잡으며 그가 연단에서 한 토론에 대하여 가식없는 공감과 함께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야스이선생은 륙순이 지났는데도 예전이나 조금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의연 젊고 혈기왕성하시니말입니다. 하하…》

클레카츠키가 허물없는 어조로 말하며 소리내여 웃었다.

옆에서 체까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한마디 하였다.

《정말 그래요! 클레카츠키선생 말마따나 야스이박사님은 언제나 청청하시구만요. 매우 기쁜 일입니다.》

야스이는 활기에 넘쳐있는 그들을 정겨이 둘러보며 소탈한 어조로 대꾸했다.

《무슨 소릴 합니까. 그때야 머리에 서리가 덮여있지 않았는데… 어쨌든 젊었다니 고맙습니다. 하기야 겉만 보고 사람을 평한다는건 편견이라 하겠지요. 허허…》

세 사람은 모두 한바탕 유쾌히 웃었다.

야스이 가오루가 방금 말한 그때라는것은 10년도 더 전의 일을 두고 한 소리였다. 당시 야스이는 클레카츠키의 조국, 오스트리아의 수도 윈에서 열렸던 세계평화회의에 참가하여 불같은 연설로 청중들에게서 대단한 인기를 끌었는데 그것은 그가 혈기왕성한 장년기의 일이였었다. 바로 그 회의를 통해서 야스이는 클레카츠키와 체까를 처음으로 알게 되였다.

그날 클레카츠키는 연단에서 내려오는 야스이를 두팔을 벌려 열광적으로 포옹한 뒤 자기 집으로 초대하는 등 초면의 그에게 각별한 친절과 환대를 베풀어주었다.

법학자인 한스 클레카츠키교수는 후날 오스트리아 사법상으로서 나라의 법을 개정완성하는데 크게 공헌한바도 있는데 그의 고명한 학식과 활동력으로 하여 정부고위급 관료들까지도 몹시 따를만치 유력한 인물이였다.

클레카츠키가 처음으로 대하는 야스이에게 그토록 특별한 친근감을 가지고 접근하게 된것은 같은 법학자라는데도 있었으나 보다는 야스이가 그날 연단에서 성토한 평화에 대한 주장이 자기 견해와 일치한데서였다.

평소에 클레카츠키는 지구상의 평화는 오직 전쟁이라는 살륙행위가 종식될 때에만 담보될수 있다고 강력히 주장해온 반전투사였다.

야스이가 헤나로 까르네로 체까를 사귀게 된것은 클레카츠키의 경우와는 사정이 좀 달랐다.

일찍부터 평화옹호운동에 투신해온 체까는 당시 기자의 직분으로써 그 회의에 참석했었다.

체까는 회의가 끝난 후 항공편으로 윈을 떠나 귀로에 올랐다. 그가 탄 항공기가 알프스산맥의 상공을 비행하고있을 때였다. 도수높은 안경을 낀 후리후리한 키의 한 동양사람이 승객들을 향해 류창한 영어로 원수폭을 반대하는 연설을 하였다.

체까는 어딘가 낯이 익어보여 그를 유심히 살폈다. 아닐세라 그 동양인은 금번 열렸던 회의연단에서 열변을 토하여 청중들로부터 열렬한 호응을 받은바 있는 일본의 대학교수였다.

하늘을 날으는 기체안에서도 쉬임없이 적극적으로 평화운동을 전개하는 그 교수를 체까는 존경어린 시선으로 줄곧 바라보게 되였다.

일본인 교수는 연설을 끝낸 다음 용지를 펼쳐들고 승객들에게 서명을 받기 시작하였다.

체까는 얼른 좌석에서 일어나 그의 앞으로 다가서서 제꺽 서명하였다.

용지에 활달한 필치로 적혀진 이름을 눈여겨보던 교수는 얼굴을 들어 체까에게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했다.

《당신이 체까선생이였군요. 성함만은 이미부터 익히고있었는데… 반갑습니다! 저는 일본의 야스이 가오루라고 합니다.》

《녜, 알고있습니다. 이번 회의연단에서 한 야스이선생의 연설을 감동깊게 들었습니다. 게다가 이처럼 비행기안에서도 수고를 하시니…》

두사람은 뜨겁게 손을 잡은채 오래도록 놓지 못하였다. 그들은 이렇게 서로 알게 되였다.

체까는 일본에서의 원수폭금지운동에 대하여 알고싶었던터이라 그에게 구체적으로 물었다.

그후 뻬루에 돌아온 체까는 그날 야스이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내용으로 한 기사를 내여 라틴미주에 큰 파문을 일으켰는데 그것이 계기가 되여 두사람간에는 자주 서신이 오가게 되면서 그들의 친교는 날이 갈수록 두터워지게 되였다.

세사람은 이처럼 인류의 평화와 진보를 위한 길에서 싸우는 과정에 인연을 맺었고 오늘날에도 그길우에서 뜻깊은 상봉을 하게 되였던것이다.

《나는 당신들을 평양에서 꼭 만나게 되리라고 믿었지요.》

야스이가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하는 소리에 클레카츠키와 체까는 승벽을 다투듯해나섰다.

《나도 그런 기대를 품고왔었는데 아닐세라… 이렇게.》

《그러고보면 우린 다 한마음이였군요!》

세사람은 자리에 앉는것도 잊은듯 그냥 선채로 서로 얼굴을 바라보며 또다시 소리내여 웃었다.

하나의 지향속에서 맺어진 우정이 영원히 변하지 않고있는것을 다같이 뜨겁게 느낀 기쁨이였던것이다.

곁에서 이제까지 말없이 세사람의 감격적인 해후를 즐겁게 지켜보던 리중엽이 명랑한 어조로 권고하였다.

《선생들, 자 이젠 편히 자리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십시오. 회의가 열리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충분히 남아있으니까요.》

그제서야 모두 웃음을 거두고 쏘파에 앉았다.

우아한 민족옷차림의 한 젊은 녀성이 쟁반을 손에 받쳐들고 나타나더니 그들앞 탁자우에 차잔을 하나하나 내려놓았다.

금시 실내에는 감미롭다기보다 청신하고 가슴후련케 하는 향취가 감돌았다.

체까가 먼저 차잔에 입을 대고나서 큰눈을 슴벅이며 말했다.

《이건 조선의 유명한 인삼차가 아닙니까?》

《용케 알아맞추십니다. 체까선생은 이미 인삼차를 맛들였나보군요?》

리중엽이 이렇게 응대하자 체까는 좌중을 둘러보며 인차 대답한다.

《맛들이다마다요! 저는 이 차를 한해나마 장복하고있는데 건강에 아주 좋더란말입니다. 솔직한 말로 이젠 커피를 제쳐놓다싶이하고 인삼차를 즐기지요.》

사실 체까는 조선에 처음으로 오지 않았다. 이번까지 여러번째였다.

체까는 뻬루조선친선문화협회 서기장이며 한편 뻬루기자련맹위원장으로서 기자생활을 하는 일방 사회활동에도 헌신하고있었다. 그래서 벌써부터 조선과의 우호친선을 위하여 이 나라를 자주 방문하게 되였는데 그러는 사이에 자연히 인삼차의 진미나 가치를 알게 되였던것이다.

야스이는 전날 최학성의 가정에서 오갈피차를 대접받았었다. 그차도 좋았다.

그런데 인삼차는 오갈피차와는 다른 혀에 감겨드는 맛이 유난했다.

조선인삼이 불로장생약으로서 유명하다는것은 예로부터 알려져있다. 야스이는 전에 일본에서 총련의 연회에 초대받은적이 있었다. 그 자리에 인삼주가 나왔다. 평상시 그는 술을 별로 즐겨하지 않았으나 어인 일인지 인삼주는 그 향기만으로도 저절로 구미가 동하여 흔연히 한잔 들었었다.

헌데 과연 인삼차도 첫모금에 그 술 못지 않는 기분을 안겨주었다.

조선은 삼천리가 금수강산이라더니 실로 사람도 자연도 모든것이 세상에 자랑떨칠수 있는 살기 좋은 나라라는 생각이 갈수록 한층 깊이 느껴졌다.

야스이는 차를 음미하듯 천천히 마셨다.

《아까 야스이선생이 연단에서 한 연설은 저에게 큰 감명을 주었습니다.》

체까가 차잔을 탁상에 놓으며 불쑥 말을 꺼내였다. 그 목소리는 그의 길숨하고 단단하게 생긴 얼굴과 조화를 이룬 눈, 코, 입이 다 큰것처럼 굵고 웅글은 바스음이였다.

체까는 그 굵은 음성으로 계속하였다.

《특히 힘주어 하신 〈주체사상은 싸우는 우리들에게 승리에 대한 확신, 정열, 용기, 지혜를 안겨주는 원동력〉이라는 그 훌륭한 말씀, 그건 우리의 마음을 잘 대변해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지당합니다. 저도 체까선생과 동감입니다.…》하고 되뇌인 클레카츠키는 오스트리아사람다운 감정이 풍부하고 침착한 몸가짐으로 천천히 입을 열어나갔다.

《진정 조선을 알고 주체사상을 아는 사람들은 그가 어느 민족에 속하고 어떤 정견을 가지고있든지 누구나 참된 삶과 진리, 정의의 길로 나가게 될것입니다. 바로 여기에 19세기 유럽에 배회했던 〈공산당선언〉처럼 20세기에 인류의 심장을 틀어잡으며 전파되는 주체사상의 거대한 견인력, 매혹력이 있는게 아닙니까.

저는 동료들에게 늘 이렇게 이르군하지요.

〈조선의 진면모에 외면하는것은 곧 정의와 진리, 평화를 외면하는것이다.〉라고 말입니다.》

이때 어떤 사람이 방으로 조심스레 들어와 리중엽에게로 다가가더니 몇마디 전하고는 그를 데리고 함께 밖으로 나갔다.

좌중에 잠시 침묵이 흐른뒤 또다시 체까의 굵은 바스음이 울렸다.

《그렇습니다. 주체사상은 오늘날 라틴아메리카에도 거대한 힘으로 휩쓸고있지요. 정녕 주체사상은 피부색이나 민족적관습을 초월하여 누구나가 받아들일수 있는 위대한 사랑의 대교향악이라 생각합니다.》

《〈위대한 사랑의 대교향악〉이라… 매우 훌륭한 명언입니다. 참으로 그 교향악은 자주와 자유, 창조와 미래를 구가하고있는 대서사시라고도 할수 있지요. 그 송가는 날을 따라 지구상에 더 아름답고 장엄하게 울려퍼지리라 확신합니다.》

야스이 가오루가 한 말이였다. 그것은 그가 이 나라에서 체험한 생활에서 얻어진 스스로의 확고한 결론이며 신념이였다.

이러한 그의 마음을 더욱 굳건히 가다듬게 한것은 엊그제 목격한 일로 해서인지 모른다.

그날 모란봉경기장에서는 김일성주석 탄생 60돐을 맞으며 재일조선동포들이 수령님께 올리는 편지전달모임이 있었다.

야스이 가오루는 여러 나라 대표들과 함께 그 의식에 참석했었다.

총련대표들이 주석단에 올라가 위대한 수령님께 삼가 편지를 올리고 만수무강을 축원하였다. 그속에는 조선대학의 허민우도 있었다.

김일성주석께서는 그들 한사람한사람을 뜨겁게 안아주시였다. 오매에도 뵙고싶던 경애하는 수령님의 품에 안기는 그들은 끓어오르는 격정을 누를길 없어 《어버이수령님!》하고 목이 메여 더 말을 잇지 못했고 수령님께서는 흐느끼는 그들의 잔등을 쓸어주시며 자신께서도 뜨거움을 금치 못해하시였다.

그것은 수령과 전사라기보다 아버지와 자식들의 만남이였고 아름다움이 승화된 사랑의 고결한 세계였다.

야스이는 비록 멀리서 그 광경을 바라보면서도 어쩔수 없는 크나큰 감동으로 눈시울을 태웠다.

김일성주석의 저 눈물! 이역의 하늘아래서도 공화국기발을 높이 휘날리며 저들이 수령님을 친어버이로 그처럼 따르고 흠모하게됨은 바로 저 뜨거운 눈물, 사상에 앞서 무한한 인간애가 담긴 저 눈물이 있기때문이라는 생각이 그 시각 야스이의 가슴을 충만시켰었다. 저 무한히 따사로운 사랑속에 주체가 있고 신념이 있고 의리가 있으며 만민을 한품에 안으시는 인간사랑의 포옹력이 있다는것을 야스이는 더더욱 깨닫게 된듯싶었다.

그때 야스이는 리중엽부원장이 들려주는 이야기에서 위대한 수령님의 그 눈물의 광채가 보다 큰 서사적화폭으로 시야에 파고들었다.

1957년 1월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그해 국가예산초안을 심의하는 내각회의가 진행되였었다. 회의가 끝나갈무렵 수령님께서는 일군들에게 재일동포자녀들에 대한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은 어느 부문에 넣었는가고 물으시였다.

그들은 올해 재정형편이 긴장해서 국가예산안에 반영하지 못하고 별도로 림시 외화계획에 포함시키려 한다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수령님께서는 한동안 무거운 안색으로 눈오는 창밖을 바라보시며 묵묵히 계시다가 돌아서시더니 우리가 공장을 한두개 못짓는 한이 있더라도 《재일동포자녀들을 위한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이라는 항목을 설정하여 항구적인 사업으로 틀어쥐고나가야 한다고 하시며 재일동포들의 민족교육사업은 단순한 교육사업이 아니라 우리가 민족을 되찾고 민족을 지켜가는 애국사업이라고 절절하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또한 수령님께서는 3년간의 전쟁으로 재더미속에 파묻혔던 조선이 방금 허리를 펴고 복구건설에 달라붙던 그 어려운 형편에서도 이국땅의 아이들을 공부시킬 돈을 보내주어야 한다고, 그것이 우리의 민족적의무이라고 하시며 일군들을 깨우치시였다고 한다.

위대한 수령님의 그 다함없는 사랑에 저들은 눈물을 흘리는것이며 이역의 동포들을 한없이 아끼고 품어주시는 수령님이시기에 그들의 건강한 모습과 인사에 접하여 못내 대견해하시며 뜨거움을 금치 못하시는것이 아닌가!

천황의 행차앞에서 머리조차 들지 못하던 자기 나라 사람들의 처지가 불현듯 머리에 떠오르자 로학자의 심정은 한없이 설레이였다. 실로 그것은 상상조차 할수 없는 일이였다.

그날의 격동적인 광경이 이 시각 눈앞에 되살아올라 야스이의 음성이 그렇듯 신심에 넘쳐있는지 모른다.

야스이의 그 흥분이 옮겨진듯 클레카츠키는 오지리사람다운 침착성을 잃고 격하게 말하였다.

《그 사랑의 송가는 바야흐로 온 유럽땅에 울려퍼질것입니다. 알프스산맥을 넘어 히말라야산맥으로 크게 메아리쳐가리라 굳게 믿습니다.》

잠시 자리를 떴던 리중엽이 나타나는바람에 그들의 대화는 일시 중단되였다.

리중엽은 방안에 들어선 그 자세로 우뚝 선채 세사람을 돌아보며 전했다.

《선생님들, 우리 수령님께서 대회에 참가한 여러 과학자들을 만나시겠다고 곧 여기로 오십니다. 이제 저와 함께 모두 가십시다.》

《녜! 김일성주석님께서요?!》

《아니, 주석님께서 우릴…》

세사람은 눈을 빛내며 약속이나 한듯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야스이 가오루는 체까와 클레카츠키의 뒤를 따라 대기실에서 나와 넓은 응접실로 향했다.

그는 이렇게 쉬이 그이를 몸가까이에서 만나뵈옵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못했었다.

경기장의 먼곳에서 김일성주석의 모습을 한번 우러렀을뿐 그이께 직접 한마디 말씀이나마 올리고싶은 소망을 내내 흉중에 고이 간직해온 야스이였다.

헌데 그 꿈이 이룩될 시각이 눈앞에 닥쳐온것이다!

야스이 가오루는 어떤 경우에나 자제력을 잃은적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 진정할길 없는 마음 설레임으로 그는 응접실에 모인 사람들의 얼굴조차 잘 가려보질 못했다.

야스이는 사도미를 비롯한 일본학자들과 나란히 서서 기다렸다.

별안간 요란한 박수갈채가 터져올랐다.

그 소리에 야스이는 이제껏 긴장했던 자신을 수습하며 시선을 똑바로 모아 나들문쪽을 바라보았다.

경애하는 김일성주석께서 활달한 걸음걸이로 응접실에 들어서고 계시였다.

후리후리한 키, 열정에 넘친 름름하신 기상… 만면에 환한 미소를 지으시며 환호하는 사람들을 향해 한손을 들어 답례하시는 수령님의 안광에는 바다와 같이 확 트인 자애와 예지가 빛나고있었다.

(아, 저이가 바로 백만일제관동군의 간담을 서늘케 한 항일의 백전로장이시고 미국의 강대성의 신화를 짓부셔버린 희세의 위인이시구나! 바로 저이가 세계 자주화의 길을 개척하신 철인이시구나!)

야스이 가오루는 솟구쳐오르는 감격에 못이겨 이렇게 부르짖으며 그이를 우러러보았다.

김일성주석께서는 정연히 서서 영접하는 각국 대표들의 손을 차례로 하나하나 따뜻이 잡아주시며 그들의 건강에 대하여 물으시기도 하고 그들이 올리는 말씀에 귀를 기울이시다가 가벼이 웃으시기도 하였다.

그러시는 수령님의 모습을 우러르는 야스이의 안경에는 자꾸만 안개가 서리였다. 그는 얼른 손수건을 꺼내여 안경을 닦고 또 닦으며 그이의 인자하신 자태에서 한시도 시선을 떼지 못했다.

어느덧 경애하는 수령님께서는 야스이 가오루의 앞으로 다가오시였다.

리중엽부원장이 그를 소개해드리였다.

《존경하는 주석각하의 만수무강을 축원합니다.》

야스이는 흥분을 억제하며 허리를 깊숙이 굽혀 인사를 올렸다.

그러는 그의 손을 다정히 잡아주시며 수령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감사합니다. 세계평화를 위해 기여한 야스이선생의 노력을 우리는 잊지 않을것입니다.

년로한 몸에 건강이 어떻습니까? 낯선 땅에서 여러모로 불편이 많으리라 생각합니다.》

김일성주석의 너무나도 자애깊고 살뜰한 말씀에 야스이는 한순간 뜨거운것이 울컥 치받쳐올라 그만 말문이 막히고말았다.

그는 경황없이 그저 두손을 모두어쥔채 겨우 한두마디밖에 대답을 드리지 못했다.

《별로 아무 불편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안심됩니다.》

그이께서는 환히 웃으시며 말씀을 이으셨다.

《금번 대회에서 한 선생의 연설을 잘 들었습니다. 고무하여주어 고맙습니다.

우리 앞으로도 서로 손을 굳게 잡고 인류의 진보와 자주를 위하여 함께 나갑시다.》

김일성주석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며 야스이 가오루의 손을 다시 한번 따뜻이 잡아주시고나서 옆의 대표에게로 천천히 돌아서시였다.

창졸간의 일이라 야스이는 끝내 심중의 말씀 한마디 똑똑히 드리지 못한채 뜨거워오르는 눈을 들어 그이를 우러르기만 하였다.

얼마나 겸허하고 크나큰 정애에 넘치신분이신가.

랭담하고 무표정한 서방세계의 정치지도자들의 자세와는 얼마나 대조를 이루는 참다운 령도자의 품격을 지니신 위인이신가!

저렇듯 걸출한 수령의 품이 있기에 이 나라 인민들이 한결같이 그이를 어버이로 모시고 따르는것이리라.

야스이는 주체의 힘의 원동력이 어디에 있는가를 오늘에야 더 한층 깊이 깨달았다.

곡절많은 자기의 지난 생애가 이날을 위해 흘러온듯싶었다.

야스이 가오루는 바라마지 않던 소원이 풀린 행복감에 휩싸여 눈시울이 뜨거워오르는것을 막을길없이 수령님을 우러르고 또 우러르며 마음속깊이 다짐하였다.

(내 이제 무엇을 바라겠는가.

이날의 이 영광을 소중히 간직하고 주체의 홰불을 높이 들어 온 누리를 태우며 여생을 빛나게 살리라!)

그해의 4월, 그것은 로학자 야스이 가오루에게 있어 영원히 잊을수 없는, 다시 찾은 인생의 아름다운 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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