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편 안개서린 도표
제 1 장
련 몇해째 사나운 기세로 휘몰아치던 동란의 어마어마한 폭풍이 사라지자 지구상에는 평온이 깃든상싶었다. 사람들은 실로 오랜만에 아지랑이 피여오르는 고요한 정원과 꽃동산을 바라보게 되였다.
허나 그것은 한갖 일장춘몽에 지나지 않았다. 전쟁의 검은구름은 의연히 가셔지지 않고 어느 난바다우에서 회오리를 마련하며 배회하고있었다.
세상앞에 커다란 수치를 당한 조선전쟁에서의 참패를 모면하고 저락된 《대아메리카의 위신》을 만회할 심산에서인지 미국은 판문점에서의 《정전협정》에 조인하고 돌아선지 불과 반년밖에 안되였는데 급급히 수소폭탄시험을 단행하였다.
평화에 대한 엄중한 도전이였다.
극동재판소의 정문밖으로 나온 야스이 가오루는 외출시면 늘 쓰고다니는 베레모를 머리에 얹으며 천천히 거리로 나섰다.
이른봄이였다.
벗꽃이 피려면 아직도 보름은 실히 있어야 할 절기여서 바깥날씨가 쌀쌀하였다.
야스이는 스프링코트깃을 세워 두손을 주머니에 찌른채 자동차들이 분주히 래왕하는 길을 더듬으며 걸어나갔다. 택시가 달려오는것이 눈에 띄였다. 그는 도로변으로 나서며 손을 들었다. 급정거한 택시에서는 운전사가 차문을 열며 손님을 친절히 맞이한다. 야스이는 차안으로 올라타며 K신문사까지 갈것을 부탁했다. 하시모또 스스무를 만나 금후 자신의 행동에 대하여 의논하고싶었다. 무작정 더는 그대로 있을수 없었다. 무슨 다른 수를 써야만 했다.
택시는 방향을 바꾸어 신바시쪽으로 달리기 시작하였다.
《봄이라는데 추위가 좀체로 풀리지 않는군요.》
어깨가 실한 몸에 밤색 잠바를 걸친 운전사가 후사경에 비친 손님의 모습을 바라보며 인사치레로 말을 건네왔다.
야스이는 건성 응대했다.
《이제 따뜻해지겠죠.》
《하긴 춘삼월이니까 겨울이 물러난 셈이지요.》
《…》
야스이는 더는 운전사와 상대하지 않고 차창으로 흘러가는 시가지의 풍경을 묵묵히 지켜본다.
기분이 언짢았다.
그간 극동재판소에 숱한 걸음을 놓았다. 그토록 품을 들여 작성한 《원폭고소장》은 제출한지 퍼그나 날자가 지났으나 이제까지 아무런 반응이 없다. 매번 심의중이라는 답변뿐이였다. 오늘도 마찬가지로 헛걸음만 쳤다.
도꾜대학에서 나온후 얼마 안있어 야스이 가오루는 사립인 호세이대학으로 자리를 옮겨 국제법강좌를 담당하여 교단에 서는 일방 원폭문제를 늦추지 않고 계속 추궁해오지만 재판소측은 여전히 받아물지 않고 지연책만 쓰고있다.
여기에 미점령군당국의 제동이 있는게 분명했다.
구로다 겐이 언젠가 찾아와서 하던 소리가 떠올랐다.
《나는 자네가 정치성을 띠는 원폭문제를 들고 나서는것이 매우 우려되네. 하물며 〈공직추방령〉을 당한 처지로서…》
그때도 야스이는 그 말을 귀등으로 흘려보냈지만 지금 역시 일단 결심하고나선 일에서 물러설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손님, K신문사앞입니다.》
차를 세우며 하는 운전사의 말에 야스이는 비로소 목적지에 당도한것을 깨달았다.
《수고했소.》
그는 운전사에게 료금을 물어주고 차에서 내려 곧장 신문사안으로 들어갔다.
마침 하시모또가 자기 방에 있었다.
그는 야스이가 방안에 들어서는것도 모르는듯 책상머리에 붙어 한창 원고지우에 펜을 달리기에 여념이 없었다.
너렁청한 실내의 커다란 탁상우에는 여러 대의 전화통이 주런이 놓여있고 한 모퉁이에서는 곱살하게 생긴 묘령의 처녀가 피아노의 건반을 타듯 부지런히 타자를 치고있었다.
야스이는 실내의 팽팽한 공기에 접하자 저절로 주밋거려졌다.
우뚝 버티여 서있는 베레모의 사나이를 처음 발견한것은 타자수였다. 그 처녀는 소리없이 불쑥 나타난 래방자를 보자 치던 타자를 멈추고 공손히 물었다.
《누굴 찾아오셨는지요?》
《론설주간님을…》
야스이는 가벼이 대꾸하며 하시모또의 책상앞으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인기척을 느낀듯 하시모또는 갈겨쓰던 펜을 멈추며 문득 머리를 들었다.
《아, 자네가 왔나!》
하시모또는 친구의 출현을 반기며 움씰 장대한 체구를 일으키더니 그를 데리고 응접실로 가 자리를 마주하고 쏘파에 앉았다. 그리고 담배갑을 내놓으며 돌연히 방문한 상대의 기색을 살피며 물었다.
《어디서 오는 걸음인가?》
《재판소에서》
야스이는 시들히 대답한다.
《그 상소건으로 말이지…》
하시모또는 담배를 붙여물며 혼자소리처럼 중얼거렸다.
야스이는 찾아온 사연을 은근히 비쳤다.
녀서기가 두 사람앞에 차잔을 갖다놓고 조용히 물러났다.
하시모또는 뜨거운 차를 한모금 마시고나서 그의 말에 마지 못해 하듯 대답하기 시작했다.
《글쎄 미국이 이 땅에서 주인행세를 하는 판국이라 그자들을 상대로 고소한다는것이 그래 보통 문제겠나. 〈주검의 거리〉를 두고봐도 알수 있거든. 작가가 그 소설을 탈고한게 언제였소? 헌데 미점령군당국의 출판검열에 통과되지 않아 질질 끌어오다가 5년이 지나서야 겨우 세상에 나오지 않았소. 자네의 경우는 그 소설과는 또 사정이 좀 달라. 원폭의 죄악상을 메스와 같이 날카롭게 해부하고있는데 그자들이 왜 접수하려고 하겠나?》
하시모또의 음성은 의분에 떨려 거칠게 울렸다.
중편소설 《주검의 거리》가 겪은 곡절에 대해서는 야스이자신도 잘 알고있었다. 또 이미 그 작품을 읽었다. 그것은 전후 일본문학에서 미국을 고발한 첫 작품으로서 녀류작가 오따 요꼬가 쓴것이였다. 그는 공습을 피해 도꾜에서 고향인 히로시마로 갔다가 원자탄에 의한 참상을 직접 목격하고 체험했었다.
집이 폭격중심지에서 떨어져있었으므로 목숨만은 부지하였으나 그자신도 《원자폭탄증》으로 현재 고통받고있는 피해자의 한사람이다. 그런 속에서도 작가는 완강한 투지로 붓을 들고 당시 실상들을 《인간누데기》, 《반인간》 등의 중장편소설로 련달아 창작하였다.
야스이는 《주검의 거리》속에 있는 대목들을 언제나 기억하고있다.
단떼는 《신곡》에서 공상적인 지옥을 펼쳐보였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는 현실에 재현된 그날의 지옥도를 《껍질을 벗긴 감자알처럼 뭉청 드러난 살점에 매달린 피부》, 《눈도 입도 부어서 붙고 팔다리도 부울대로 부어서 고무인형처럼 되여버린 보기 흉한 모습…》이라는 생동한 형상으로 전하면서 《원자폭탄을 우리의 머리우에 떨군것은 미국놈》이라는것을 서리발같은 저주로 폭로하고있다.
야스이는 오래전 히로시마에 갔을 때 이를 쓴 작가와 만나 그 창작동기를 알게 되였다.
그는 이런 말을 했었다.
《그날, 8월 6일을 저는 사람의 눈과 작가의 눈, 두개의 눈으로 보았어요. 이것을 본 작가의 책임감에서 쓰지 않고서는 견딜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쓴 글도 미점령군당국에 의해 오래동안 해빛을 보지 못하고있었던것이다.
야스이의 침묵에 하시모또는 어지간히 답답해난듯 두덜거렸다.
《어느 한 시인도 읊은바이지만 〈조국안에 다른 나라〉가 있는 한 언론이나 인권이 침해당할수밖에… 그렇다고 움츠러들수야 없지. 정의는 언젠가 꼭 승리하는 법이니까. 우리 인내성있게 래일을 바라보며 살아가세나.》
하시모또는 의기소침해있는듯 한 야스이를 보기가 딱해서 한 소리였으나 제딴에도 자기 말에서 공허한것을 느꼈다.
야스이는 비로소 얼굴을 들어 입을 떼였다.
《아니야. 오늘이 있고야 래일도 있지. 오늘의 량심이 박해를 입는것을 그대로 묻어둔다면 세상에 의로움이란 영원히 존재하지 못할걸세. 내 아무래도 사람들을 발동해야 하겠소. 이대로 속수무책으로 더는 있을수 없네.》
《사람들을 불러일으키자》, 이것은 야스이가 오래전부터 생각해오는 문제였다. 그것을 위해 그는 이미 자기가 사는 스기나미지역에서 《부인간담회》, 《청년독서회》 등을 무어 대중계몽사업을 벌려왔다. 그는 자기 장서속에서 수천권이나 되는 책을 도서관에 기증하기도 하였고 한편 지역 주민들의 권고에 따라 구립공민관과 도서관의 관장직까지도 기꺼이 맡아나섰다. 이러는 과정에 자연히 수많은 사람들과 접촉하게 되였다.
이렇듯 민중속으로 들어간 야스이는 작은 불씨가 점차 자라서 《타는 홰불》이 되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활동해온것이였다.
《사람들을 불러일으키는것, 그것이 가장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네. 그것이 사회여론을 환기시키는데서도 은을 낼수 있지. 그렇게만 되면 우리 신문도 떠들수 있는 일거리가 생길게 아닌가.》
하시모또는 이렇게 야스이의 말에 선뜻 호응해나섰다.
이때 녀서기가 급급히 하시모또의 앞으로 다가와 전했다.
《주간님, 긴급전화가 왔습니다.》
《그래, 알겠소.》
하시모또는 자리를 뜨면서 야스이에게 일렀다.
《내 갔다올테니 잠간 기다려주게.》
잠시후 옆방에서 전화를 받는 하시모또의 걸걸한 바스음이 간단없이 울려왔다.
야스이는 그 전화내용이 장차 자기 운명에 어떤 영향력을 행사하는 계기가 되겠는지 이 시각 조금도 알지 못하고 조용히 쏘파에 몸을 기댄채 혼자 생각에 골몰하고있었다.
하시모또는 한참만에야 돌아왔다.
《야스이, 큰 일이 생겼네!》
느닷없이 하는 소리에 야스이는 눈길을 들었다.
웬만해서 흥분을 나타내지 않고 만사에 대범한 성미인 하시모또가 얼굴에 피대를 세우며 소란을 피우는것이 사뭇 이상해보였다.
《무슨 일이기에?》
《양키가 또 일을 저질러놓았소. 무서운 세기가 닥쳐왔군.》
하시모또는 앉을념도 하지 않고 실내를 오락가락하며 방금 남방지대의 특파기자로부터 받은 전화내용을 이야기했다.
어제 미국이 태평양상에 있는 마샬군도의 비끼니섬에서 수소폭탄시험을 감행했다고 한다. 그때 그 섬의 가까운 공해상에서 일본어선 《제5후꾸류마루》가 어로작업중이였는데 그 핵시험에 의해 무전수가 치명상을 입어 사망경각에 놓였으며 어부 전원이 방사능을 받아 중태에 빠져있다는것이였다.
하시모또는 분개한 어조로 두서없이 이런 전말을 전하고나서 녀서기를 찾더니 급히 출장준비를 갖추라고 지시한 다음 야스이를 향해 돌아섰다.
《자네도 나와 함께 현지에 가보지 않겠나? 그 어선이 지금 ㅂ항구에 저항중에 있다고 하네.》
야스이의 희멀쑥한 안색이 어느새 꺼멓게 변하였고 두눈이 타는듯 이글거렸다.
《같이 가세!》
그는 분연히 쏘파에서 일어나 급히 전화통이 있는 탁자앞으로 갔다. 송수화기를 들어 대학과 집에 자기가 가는 행선지와 용건을 간단히 알렸다.
잠시후 두사람을 태운 승용차가 번화가의 대도로를 꿰지르며 쾌속으로 달리고있었다.
미국이 비끼니섬에서 감행한 대량살륙무기시험은 삽시간 온 지구상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 특히는 일본 민중속에서의 충격이 이를데 없이 컸다. 첫 열핵참화를 당했던 백성들인만큼 사람들의 격노는 이만저만이 아니였다.
하시모또와 함께 《제5후꾸류마루》의 선원들을 만나 그 실태를 알아보고 돌아온 야스이 가오루는 미리부터 착상해오던대로 사람들의 이 원한과 저주를 한데 모아 반핵투쟁을 광범한 국민운동으로 조직전개할 결심을 단단히 품게 되였다.
그는 그 첫사업으로 자기가 사는 거주지역의 주민들을 먼저 불러일으켜 원수폭반대서명운동을 벌리기로 작정하고 곧 그 일에 착수하였다.
야스이의 호소에 따라 주민들이 거리로 떨쳐나섰다. 모두가 어깨에 원수폭반대의 구호가 새겨진 천단을 두르고 고성기로 행인들을 불러 서명을 받았다.
야스이 가오루자신도 대학에서 돌아오면 의례히 그 운동의 앞장에 서군 하였다. 다즈꼬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남편의 일을 조금이나마 돕고싶었다.
어느날, 신쥬꾸의 번화가에서 서명을 받고있던 야스이는 가까이에서 울려오는 몹시 귀에 익은 목소리에 문득 고개를 들어 살펴보았다.
아닐세라 안해 다즈꼬의 음성이였다.
《아이들의 행복을 지키기 위해 원수폭을 반대하여 모두 서명하여 주십시오!》
맑은 목청으로 사람들을 향해 절절히 호소하는 안해의 모습에서 야스이는 그 녀인의 아름다운 일면을 새롭게 보는듯싶어 저절로 미소가 피여올랐다.
그날로부터 사람들은 가두에 언제나 함께 서있는 그들 부부를 자주 바라보게 되였다.
야스이 가오루는 그 운동을 적극적으로 밀고나가는 한편 미국이 비끼니섬에서 저지른 죄악상을 세상에 폭로할 고발장을 쓰느라 련일 밤깊도록 책상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는 그것을 세가지 론거를 들어 단죄하였다.
수소폭탄실험이 미국의 통상령역에서가 아니라 국제법상의 신탁통치구역인 마샬군도의 비끼니수역에서 진행되였으며 광활한 바다에 위험을 조성함으로써 공해자유의 원칙을 심히 침해하였다. 한편 그 실험에 의한 방사능이 바다와 대기를 오염시켜 일본령역까지 재해를 들씌워 막대한 인적, 물적 손실을 주었다.
통털어 그것은 국제법의 기본원칙들을 란폭하게 위반한 엄중범죄행위라는것을 까밝혔다.
야스이는 이러한 과학적인 법적근거들을 일본국회연단과 함께 윈, 헬싱키 등의 국제평화회의들에서 준절히 폭로단죄하였다.
그의 이렇듯 과감하고 정력적인 활동에 의해 《반전, 반핵 평화》운동은 후날 그것이 세계적인 거창한 흐름으로 발전하는데 커다란 기여를 하게 되였다.
야스이가 도꾜의 한 지역 스기나미에서 지펴올린 그 한점의 불씨는 점차 료원의 불길처럼 타번져 온 나라안에 급격히 파급되였으며 일년남짓한 기간에 3천 5백만명의 사람들이 원수폭을 반대하여 서명하였다.
이는 실로 일본국민운동사상사 처음으로 생겨난 경이적인 현상이였다. 그 불길은 또한 세계적인 판도에로 타번져 수억의 대서명을 받는 국제적운동으로 확산하는데 이르렀다.
이처럼 광범한 인민들의 열렬한 지지성원속에서 《원수폭금지서명운동 전국협의회》라는 초당파적인 대중조직체가 무어졌으며 그것은 후일에 국제적인 성격을 띤 평화단체인 《원수폭금지일본협의회》를 낳는것으로 되였다.
야스이 가오루는 대중의 의사에 따라 그 조직의 첫 의장으로 선출되였다.
그는 이 조직체의 힘에 의거하여 자기 활동을 한층 맹렬하게 진행해나갔다.
미국은 윁남전쟁에서 핵무기를 사용하려고 하였다.
이 흉악한 기도를 사전에 간파한 야스이 가오루는 그 만행을 저지파탄시키기 위하여 온 세상에 고발하여 세계적여론을 불러일으킴으로써 윁남을 《제2의 히로시마, 나가사끼》의 운명에서 구원하는데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1963년 도꾜지방재판소에서는 《원폭재판》이라는것이 열렸었다. 그 공판정에서는 《히로시마, 나가사끼의 원자탄투하는 국제법에 심히 위반된다》라는 판결문이 채택되였는데 그 판결문의 기초를 이루는 골자는 야스이 가오루가 이미 제소한바 있는 《원폭고소장》에 의하여 작성된것이였다. 그것은 일명 《야스이감정서》라고 했다.
그 《야스이감정서》는 일본정부로 하여금 원폭피해자들에 대한 《원호법》을 제정승인하게 하였고 한편 미국의 핵실험에 협력할 태세를 취하려던 정부시책을 변경케 하였으며 핵무기를 만들지 않고 소유하지 않고 반입하지 않는다는 《비핵3원칙》을 고수하는데 큰 작용을 놀았다.
그러나 야스이 가오루의 이 모든 활동이 결코 순조롭게 진행된것은 아니였다.
《원수협》(원수폭금지일본협의회의 략칭)의 운동이 날이 갈수록 확산발전함에 따라 정부당국의 핵정책과 자연히 날카롭게 대립되게 되였다.
평소에 《원수협》을 눈에 가시처럼 여기던 세력들의 공격이 음으로 양으로 가해지기 시작하였다. 공공연한 박해도 교묘한 모략과 비방중상도 있었다. 일본군국주의의 부활과 대미추종정책에 매달리고있는 극우익세력은 갖은 수단과 방법으로 이 조직을 분렬와해시키려고 혈안이 되여 날뛰였다.
이러한 암해파괴책동앞에서 조직내의 일부 지도성원들속에서는 동요가 일어났으며 또한 의견상이가 나타나게 되였다.
광범한 민중의 힘에 의하여 발족후 10년의 의로운 투쟁행로를 걸어온 《원수협》앞에는 엄혹한 난국이 닥쳐들었다.
야스이 다즈꼬는 원수폭반대서명운동의 봉화를 지핀 첫시기부터 남편의 투쟁을 도와 적극 나섰었는데 그는 그 나날들에 남편과 함께 언제나 어깨겯고 고락을 나누며 살아왔다.
언제나 사회적인 존경과 신망속에서 사는 훌륭한 인간의 배후에는 항용 현숙한 안해가 후광처럼 빛을 뿜으며 도와나서고있듯이 다즈꼬부인은 남편의 일이라면 언제 어떤 환경속에서도 자기의 모든 지성을 다 바칠줄 아는 충실한 반려자였다.
야스이 가오루에게는 고뇌와 좌절감에 싸여 헤여나지 못하고 모대기던 한때가 있었다.
그것은 《원수협》의 운동로상에 난관이 조성되였던 시기였었다.
그날은 8월의 태양이 아침부터 열을 뿜었다.
그러나 원수폭금지세계대회가 열린 도꾜 다이또체육관은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사람들로 꽉 차있었다. 국제적행사여서 그속에는 피부색이 다른 각이한 나라 대표들도 수많이 참석하였다.
다즈꼬는 의장단석이 가까이 바라보이는 앞자리에 앉아 대회의 진행 전과정을 주의깊게 지켜보고있었다.
의장단의 석상에는 대회의 성과적보장을 위하여 선출된 각 나라 인사들과 일본의 각당, 각파 대표들이 긴 탁상을 앞에 하고 주런이 앉아있었다.
오늘의 행사를 야스이 가오루의장이 주관하였다. 그는 대회를 사회하는 일방 의장단측과 토론자들에게서 제기되는 의사와 언권을 접수조정처리하면서 회의를 진척시켜나갔다.
동서렬강들간에 핵시험이 그 어느 시기보다 경쟁적으로 우심하게 진행되던 때에 소집된 국제회의여서 연단에서 마이크를 통하여 쏟아져나오는 열변들이 사방에 설치된 확성기를 크게 울리며 회의장의 공기를 팽팽하게 하였다.
- 지구상의 영원한 평화와 안전을 마련하기 위하여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 핵위협에서 인류의 생명과 행복을 지켜내기 위하여 현시기 제기되는 과업은 무엇인가?
연설자들이 중요하게 들고나온 문제점은 대체로 이런것이였다.
그에 대한 대답 또한 거의 일치한 론점에서 귀착되여나왔다.
…오늘날 핵전쟁을 기도하는 정부가 있다. 인류를 전멸시키려는 이 위험한 대량살륙무기의 사용을 절대로 허용해서는 안된다.
전세계인민의 이 의사를 무시하고 원자전쟁을 일으키는 정부는 인류의 준엄한 심판을 면치 못할것이다.
우리는 단호히 선언한다.
《어떤 나라이건 핵무기를 페기하고 그 제작을 중지할것을 전체 대회참가자들의 명의로 강력히 요구한다.》
그런데 대회도중 의장단에 앉아있던 일부 대표들속에서 서로 의견이 대립되여 옥신각신하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어떤 나라의 핵무기도 반대한다》는 그 선언의 주장이 그들의 의견상이를 촉발시켰던것이다.
그바람에 이제껏 엄숙하게 진행되고있던 대회장의 분위기는 일시에 헝클어지고말았다.
갑론을박의 론쟁마당으로 변한 의장단석을 향해 군중들속에서 항의와 불만의 목소리가 비발치듯 날아왔다.
대회장은 삽시간 수라장으로 화했다.
야스이 가오루는 의장단석에 앉아 소요로 들끓는 집회장을 무거운 시선으로 둘러보고있었다.
수습할길 없이 뒤번져진 정황앞에서 그는 저으기 당황해하며 안타까와하였다.
전혀 예상치 않던 일은 아니였으나 국제회의마당에서까지 설마 이런 사태가 벌어지리라고는 생각 못했었다.
《원수협》은 초당파적인 평화단체였다. 어떤 정당이나 정치파벌에도 속하지 않는, 그 누구나가 자유로이 참가할수 있는 순수한 대중조직체였다. 그것이 인민들속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난것으로 하여, 일본력사상 처음 일어난 국민운동이라는데서 그 의의가 자못 컸다.
《원수폭을 반대한다》는 그 인도주의적지향과 념원에서 태여났으므로 그만치 뭇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컸던것이다. 어느 정당도 어떤 정객도 이 운동의 탄생을 위해 아무러한 기여를 한것이 없었다.
헌데 날이 갈수록 거세차게 굽이쳐흐르는 대중운동의 위력에 압도된 나머지 뒤늦게나마 정치세력이 여기에 합류해나서게 되였었다.
이를테면 민심이 달리는 《뻐스》를 놓칠가봐 헤덤비며 올라탄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남이 공들여 마련한 《뻐스》에 탔으면 응당 고맙게 여기고 대중이 《운전》하는데로 점잖게 타고가면 될노릇이지 그들은 마치나도 자기들이 주인이나 되는듯이 《운전사》더러 이리 가라, 저리 가라 명령하면서 갈 방향을 두고 서로 싸움을 벌리고있는것이 아닌가.
그자들은 자기네 당파가 추종하는 나라의 핵정책에 저촉되는 선언과 주장들이 나오자 국제회의에 참석한 체면마저도 잊고 서로 반기를 휘두르며 론쟁을 벌려놓았던것이다.
뿐만아니였다. 그자들은 또한 이번 기회에 《원수협》두리에 뭉친 대중을 저마다 자기 당파의 영향속에 끌어넣으려고 피대를 세우며 나서기까지 했다.
야스이 가오루는 그들의 파렴치한 행위에 격분을 금할수 없었다.
대중운동을 저네들의 정치적야망을 실현하는 한갖 수단으로 리용하려는 그 처사가 생각할수록 참을수 없었다. 당장 뛰쳐일어나 그자들의 멱살을 틀어잡고 주먹으로 상판을 후려갈기고싶은 충동에 가슴이 후둑거렸다. 그러나 그는 어떤 경우에도 감정을 앞세우지 않았다. 리성적으로 자신을 랭철하게 자중할줄 알았다. 오늘의 행사를 주관하는 의장인 자신마저 그 란장판에 끼여든다면 대회의 결과가 어떻게 되겠는가.
야스이 가오루는 머리를 푹 떨구었다.
찌는듯 한 폭양은 허울이 큰 머리우에 사정없이 내리쪼이였다. 하건만 그는 더위도 모르는듯 까딱 움직일줄 몰랐다.
모진 번뇌속에 허덕이는듯 한 남편의 그 모습에서 안타까이 한시도 시선을 떼지 못하는 다즈꼬의 마음은 몹시 쓰리고 아팠다.
남편 야스이 가오루가 어떻게 자래워온 국민운동이였던가.
온갖 박해와 간난신고를 물리치며 자신의 모든 지혜와 정력을 거기에 깡그리 쏟아부어온 남편이였다.
그는 평화를 파괴하는 행위와는 비타협적으로 싸울 비상한 각오로 이제까지 살며 투쟁해왔었다.
야스이 가오루는 어느해던가 국제어머니대회앞으로 다음과 같은 글을 보낸적이 있었다.
《…전세계의 어머니들이여!
당신들의 힘을 믿어주십시오. 아이들의 행복을 바라는 어머니의 다함없는 깊은 사랑은 세계의 평화를 수호할수 있는 가장 큰 힘인것입니다.
한사람한사람의 어머니들이 추켜든 홰불은 비록 작지만 그것을 하나로 합치게 되면 온 세계가 밝아질것입니다.
부디 그런 믿음을 간직하고 평화를 위하여 분발하여주십시오.》
야스이 가오루는 《밝은 사회》라는 말을 즐겨 사용했다. 핵위협에서 오는 불안감보다 그 위협을 막아내고 밀어버리는데서 오는 광명은 사람들을 무한히 고무하고 힘을 크게 불러일으킬수 있다는 확신에서였던것이다.
이토록 순수한 인도주의적민중투쟁이 불순한 정치적야욕에 롱락당하는것을 그가 어찌 수수방관할수 있으며 격분하지 않을수 있겠는가.
다즈꼬는 지금 남편이 어떤 심사에 잠겨있는가를 십분 짐작하면서도 그의 침묵을 보는것이 괴로왔다.
대회장안은 갈수록 공기가 험악해졌다.
우익도 좌익도 그리고 중립파 할것없이 어느쪽도 서로 자기 고집을 굽히지 않고 아웅다웅하였다.
그렇게 한동안이 흐른뒤였다.
이때까지 바위처럼 묵묵히 앉아있던 야스이 가오루가 문득 머리를 쳐들더니 결연히 자리에서 일어나는것이였다. 그는 연탁앞으로 천천히 다가서서 소란속에 흔들리는 장내를 한번 휘 돌아본 다음 한손에 마이크를 잡고 입으로 가져갔다.
불시에 확성기에서는 노래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저녁노을 아기노을
고추잠자리
쫓기여 날던 때는
언제였던가
…
동요 《고추잠자리》였다. 느닷없이 튀여나온 티없이 맑고 깨끗한 동심을 구가한 그 노래소리는 장내의 소요속에 한줄기 밝은 빛을 던지였다.
사람들의 시선은 일제히 연탁의 야스이 가오루에게로 쏠리였다. 이제까지 의견상이로 분분하던 의장석의 사람들이 난데없는 노래에 모두 눈들이 퀭해졌다.
참으로 돌발적으로 일어난 일이였다.
그런 속에서도 다즈꼬의 놀라움은 남달리 컸다.
야스이 가오루는 평상시 노래를 입밖에 소리내여 부르는것을 몰랐다.
다즈꼬는 이때까지 그가 부르는 노래를 단 한번밖에 듣지 못했다.
그마저도 서로가 련정에 불타던 청춘시절의 일이였다.
그날 둘은 오사까교외로 들놀이를 갔다.
가을이 무르녹은 풍요한 계절이였다. 논과 밭머리들에 해빛을 받아 유난히 빨간 빛을 뿌리는 고추잠자리가 수없이 날아예고있었다.
도시에서는 볼수 없는 정서짙은 그 광경에 황홀해진 나머지 다즈꼬의 입에서는 저절로 탄성이 새여나왔다.
《저것 보라요! 곱죠, 잠자리가…》
그 소리에 처녀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들길을 걸어가던 야스이는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다즈꼬가 손을 들어 가리키는쪽을 바라보았다.
누런 벼이삭이 설레이는 황금빛파도우에 잠자리떼가 불꽃처럼 반짝거리며 하늘거리고있었다.
야스이는 잠시 벙글거리다가 처녀의 손을 다정히 잡으며 천천히 발길을 떼였다. 그리고 아이들처럼 팔을 흔들며 조용한 가락으로 동요를 부르기 시작했다.
처녀는 놀랐다. 이 청년과 함께 이미 여러차례 산책을 하여왔으나 처음 들어보는 소리였던것이다.
음치인가싶었는데 그렇지 않았다. 청신한 전원의 대기속으로 잔잔히 울려가는 그의 노래소리는 처녀로 하여금 천진란만한 정서를 한껏 불러일으켰다. 다즈꼬는 그의 손을 뜨겁게 잡으며 함께 소리합쳐 부르며 걸어나갔다.…
잊을수 없는 행복한 그날의 그 노래를 지금 남편은 수많은 군중앞에서 부르고있지 않는가.
멀리로 흘러간 아름다운 추억속에서 다즈꼬는 뜨거운 안개가 자꾸만 눈앞에 서리여 마이크를 쥐고 서있는 남편의 모습이 잘 가려보이지 않았다. 당장 연단으로 뛰여올라 그의 노래에 자기 목소리도 합치고싶은 충동이 무럭무럭 솟아올랐다.
장내의 여기저기서 갑자기 박수갈채가 터져나왔다. 때를 같이하여 연탁에서 울려오는 《고추잠자리》에 합세하여 수없는 목청이 한데 어울려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대회장은 차츰 그 동요의 대합창으로 설레이면서 이제껏 무겁게 드리웠던 장내의 공기를 삽시에 날려보냈다.
《고추잠자리》가 끝나자 이번에는 저마다 제고장의 향토가요들을 겨끔내기로 불렀다. 그러자 외국인들도 가만히 있지 못했다. 그들은 그들대로 자기 나라 민요들을 자랑하듯 목청을 뽑았다.
급기야 평화를 위한 대회장이 노래경연마당으로 변한듯싶었다.
누군가가 연단으로 뛰여올라 시를 읊었다.
아이들에게 일러주자
사랑을 길러내는 지혜를
그리하여 그날의 히로시마를
나가사끼에서 있었던 일을 잊지 않도록
숯덩이처럼 타버린 얼굴들이
웨치고 부르짖고있다
두번다시 지옥의 고통을
안겨서는 안된다고
…
어느덧 장시간 침체속에 휩싸여있던 장내에는 화기가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야스이 가오루의 그 노래는 확실히 사람들의 기분을 전환시키는데 커다란 작용을 하였던것이다.
활기를 회복한 대회장을 물기어린 눈길로 둘러보는 다즈꼬의 심정은 뜨겁게 달아있었다. 그는 남편이 취한 행동이 너무나 잘 리해되였다.
대회가 순조롭게 진행되기를 바라는 그 한마음이 남편으로 하여금 그런 용단을 낳게 하였으리라. 《밝은 사회》, 세계 평화를 념원하는 민중의 소망에 어두운 그림자를 비끼게 하여서는 안된다는 그 욕망에서일것이다.
이렇게 하여 대회는 그럭저럭 장애를 극복하며 막을 내릴수 있었으나 야스이 가오루의 정신적타격은 컸다. 모처럼 마련한 국제행사가 응당한 성과를 거둘수 없었고 더우기는 《원수협》조직내의 내부분렬을 조장하는 결과를 가져왔기때문이였다.
내부분렬, 이는 곧 조직의 통일전선이 튼튼히 형성되지 못하고있다는것을 말해주고있는것이였다.
야스이 가오루는 지도성원의 한 사람으로 커다란 책임감을 느꼈고 또한 자신의 조직적수완과 능력에 대해 깊이 돌이켜보며 자책하지 않을수 없었다.
조성된 난국을 극복하고 조직을 되살릴 방책을 시급히 강구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이무렵에 윈에서 열리는 세계평화대회로부터 야스이 가오루에게 《원수협》일본협의회 대표로 참석할것을 알리는 통첩이 날아들었다.
그는 그 회의에 적지 않는 기대를 걸게 되였다. 거기서 난관에 처한 조직의 타개책이라도 생기지 않을가 하는 일종의 희망이 보였던것이다.
야스이는 려행을 떠날 준비를 서둘렀다. 그러느라니 어느덧 겨울이 접어들었고 세밑도 가까왔다.
그해도 저물어가던 어느날, 야스이 가오루가 야간부 강의를 필하고 교단을 내려서는데 한 학생이 그의 앞으로 불쑥 다가서며 물었다.
《선생님, 새해정초에 윈에서 열리는 세계평화대회에 참석하신다지요?》
퇴색한 잠바를 몸에 걸친 그 학생은 남달리 머리가 큰것이 야스이교수에게는 평소에 인상적이였는데 그는 최학성이라는 조선청년이였다. 언제 보나 학업성적이 우수하고 수재형의 총명한 학생이였다.
자기가 그 회의에 간다는것이 벌써 학생들속에 소문이 도는 모양이였다.
《실은 출발을 앞두고 알리려 했는데…》
교수의 이 말이 떨어지자 최학성은 학급동무들을 향해 큰소리로 호소했다.
《학우들! 세계의 평화와 원수폭금지를 위하여 먼길을 떠나시는 야스이교수님의 로고에 우리의 소박한 지성이나마 보이는것이 어떻습니까?》
《좋습니다!》
《대찬성이요!》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그의 발기를 지지해나섰다. 그러자 최학성은 서둘러 자기의 얇은 잠바를 벗어 책상우에 펼쳐놓았다.
너무나 돌발적으로 벌어진 사태여서 야스이는 만류할 경황도 없이 어쩔바를 모르고 서성거리였다.
순식간에 잠바우에는 지페장이 한장, 두장 덧쌓여갔다.
야간부학생이란 거의가 다 어려운 생활속에서 근근히 학업을 지탱해나가고있는 고학생들이였다.
그런 그들이 저마다 서슴없이 빈약한 주머니를 털며 앞을 다투어 나서고있었다. 그 돈이 어떻게 생겨난것인가. 학비에 보태려고 낮에 고역에 시달리며 피땀으로 이루어진것이 아닌가.
야스이 가오루는 뜨거운것을 삼키며 한동안 묵묵히 서있다가 강의실을 뛰쳐나왔다.
다음날이였다. 야스이교수는 례사로운 날처럼 야간학부강의를 위해 일찌감치 대학으로 향했다.
그가 학교근방에 있는 《피를 팝니다》라는 커다란 광고판이 붙어있는 혈액은행앞을 지날 때였다.
그 혈액은행문밖으로 비칠거리며 나오는 한 청년이 있었다. 야스이는 어딘가 낯이 익어 우뚝 걸음을 멈추고 살펴보았다. 순간 놀랐다. 간밤 강의실에서 기금운동을 호소했던 그 머리 큰 최학성이였다. 야스이는 금시 가슴이 묵직해왔다.
얼른 그의 앞으로 다가섰다.
유별난곳에서 교수와 우연히 맞다들리게 되여 몹시 당황해난듯 최학성은 한순간 자라목이 되였으나 이어 태연하게 나왔다.
《선생님, 언제 윈으로 떠나십니까? 우리 학우들은 그날에 환송사업을 크게 벌리기로 하였습니다.》
《…》
야스이는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 피를 뽑아 낯색이 창백한 그 학생의 모습이 눈을 아프게 찔렀다. 그런데도 최학성은 심상하다는듯 일부러 빙긋 웃음까지 지어보이며 교수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것이 야스이의 마음을 한층 무겁게 하였다.
아- 언제 가야 이런 성실한 청년들이 기를 펴고 학업에 정진할수 있는 밝은 세상이 올가. 이 어두운 현실을 어떻게 해야 밀어낼수 있을가.…
《몸을 아껴야 합니다.》
야스이는 빈소리와 같은 말을 한마디 던지고나서 최학성의 손목을 와락 끄당겨 그를 가까이에 있는 식당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피를 뽑아 허기져있는 청년의 정상을 보고 그대로 돌아설수 없었던것이다.
최학성은 말없이 그가 이끄는대로 따랐다.
평소에 깊이 존경해오는 교수였다. 지금도 최학성의 뇌리에는 석양빛이 붉게 타는 가두에 서서 사람들을 향해 원수폭금지를 열렬히 웨치던 스승의 모습이 생생하게 새겨져있다.
최학성은 공장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거리에서 여러차례나 그런 교수의 행동을 목격했었다.
도꾜에서도 가장 번화가로 꼽히는 유라꾸죠, 해질머리의 가두에 서서 원자탄으로 인한 참상을 형상한 대형화판을 가리키며 하는 교수의 창창한 호소는 행인들의 발걸음을 멈추어세우고도 남았다.
베레모의 귀밑머리가 저녁노을에 은빛으로 유난히 눈부시는 야스이교수의 모습은 인간의 고결한 자태와 면모를 드러내고있는 숭엄한 화폭이였다.
그러나 최학성이 그 교수를 보다 깊이 알게 된것은 한 화가가 쓴 글을 어느 잡지에서 읽고나서였다.
그 화가는 이런 사연을 전하고있었다.
《〈원폭의 그림〉을 가지고 미국에 가서 그 나라 민중을 깨우쳐야 하겠는데 로자가 딸려 어쩔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야스이 가오루선생을 찾아가 의논하게 되였습니다. 헌데 선생은 〈그래요, 알았습니다.〉하고 선선히 대답하며 즉석에서 외출복을 갈아입고 넥타이를 매더니 모금함을 들고 다즈꼬부인까지 동반하여 유라꾸죠의 번화가로 나가는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리곤 가두에 서서 사람들을 향해 큰 소리로 호소하는것이였습니다.
선생의 그 사심없는 행동을 바라보며 나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선생의 노력에 의해 우리는 〈원폭의 그림〉을 미국에 가져갈수 있었던것입니다.…》
인류의 평화를 위한 일이라면 자신을 서슴없이 바칠줄 아는 로교수의 마음을 최학성은 화가의 글에서 뜨겁게 느꼈다.…
독방으로 안내된 두 사람은 식탁을 마주하고앉아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며 가벼운 대화를 나누었다.
《그러지 않아도 저는 벌써부터 선생님을 한번 만나뵙고싶었습니다.…》
최학성은 이렇게 말하다 말고 갑자기 고개를 떨구었다.
야스이교수는 담배를 붙여물며 그의 다음 말을 조용히 기다렸다.
한동안이 지난뒤 최학성은 머리를 들었다.
《선생님, 우리 조국은 현재 어려운 형편에 놓여있습니다. 미군의 남조선강점으로 나라가 분렬되고 한피줄의 민족이 서로 헤여져 사는 고통과 불행을 겪고있습니다. 이러한 비극이 어찌하여 생겨났습니까?》
최학성은 가슴이 답답한듯 잠시 말을 끊고 숨을 한번 몰아쉰 다음 한층 어성을 높여 분개한 소리로 토설했다.
《다 양키때문입니다! 놈들은 저의 부모와 동생들을 학살한 원쑤입니다.》
《뭐라구? 군의 부모형제들을…》
야스이는 놀라움에 못이겨 다우쳐물었다.
《그놈들의 원자탄이…》
최학성은 말을 잇지 못하고 가슴 들먹이였다.
그의 두눈이 급기야 불타듯 이글거렸다.
청년은 의분에 떠는 목청으로 이야기하였다.
…최학성은 소학교에서 집단학동소개로 나가사끼를 떠나있어서 요행 원폭의 세례를 면할수 있었으나 도시에 남아있던 부모와 두 동생을 단꺼번에 잃고말았다. 그때로부터 소년은 의지가지 없는 혈혈단신의 고아가 되였다. 그래도 인정많은 동포들의 도움으로 그럭저럭 중학과 고등학교 과정을 마칠수 있었다. 향학열에 불타던 청년은 고학으로 학업을 계속할 결심을 하고 도꾜로 나왔다. 원래 리수과에 소질이 있었던 그가 법학을 택한데는 그럴만 한 사정이 있었다.
사회과학부문에 비해 자연과학은 실습비 등으로 학비가 엄청나게 들므로 그 방면으로 갈 엄두조차 낼수 없었다. 그럴바에는 장래 법학자라도 되여 자기 집안이 당한것 같은 참사가 다시는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하리라는 심산에서였던것이다.
《아- 그랬었구만.…》
야스이는 개탄하듯 중얼거리며 최학성을 무거이 주시했다.
나가사끼는 히로시마 다음으로 원자탄의 피해를 입은 항구도시였다. 당시 19만여의 인구를 가졌던 이 도시에서 6만 4천의 사람들이 한순간에 목숨을 잃었다. 바로 그 희생자들속에 최학성의 가족도 있었던것이다.
야스이는 청년을 보기가 괴로와 얼굴을 숙이였다. 흥분이 되살아올랐다. 악마의 버섯구름이 하늘을 뒤덮였던 그날의 지옥도가 눈앞을 가리웠다. 두 도시에서 10만의 조선사람이 그 재난을 입었다는것을 야스이는 알고있었다.
세계평화회의로 가는 이 교수를 위해 자기 육신의 피를 팔아가면서까지 기금운동을 발기해나섰던 강의실에서의 최학성의 행동이 지금에 와서야 한층 뜨거운 마음으로 헤아려졌다.
방금전에 최학성은 조선을 분단시킨 장본인도 자기 가정을 몰살시킨 인간살륙의 범죄자도 미국이라고 증오에 차서 부르짖었다. 어찌 그런 감정을 품지 않을수 있으랴. 너무나 당연했다.
그러나 야스이는 머리를 들수 없었다. 두눈을 지그시 감은채 애꿎은 담배를 피우며 한동안 침묵만을 지켰다. 그는 지금 심장에 비수가 박힌듯 하였다. 자신을 비롯한 일본제국이 조선민족에게 저지른 죄악감이 가슴을 옥죄이게 하였던것이다.
야스이는 미국만이 아니라 일본도 조선의 분단과 이 청년이 겪은 피어린 수난에 대한 죄행이나 책임에서 결코 모면할수 없음을 느꼈을 때 더더욱 최학성앞에서 낯을 들수 없었다. 그래서 청년을 대하기가 두려워 눈을 감고있는지 모른다.
야스이는 무슨 말로 청년에게 사죄할바를 몰라 오래도록 갑자르다가 번거로운 심사를 다잡지 못한채 마침내 무거운 머리를 들었다.
《학성군, 면목이 없소. 나를 책망하기 바라오. 일본도 조선에 대하여 범한 죄가 크오. 헌데도 그 엄중한 과거를 청산하는 일에 소위 법학자라는 자신이 아무런 기여도 못하고있으니 부끄럽기 그지없소.》
절절하게 외우는 야스이의 말에는 진정이 어려있었다.
스승의 그 소리에 최학성은 당황한듯 고개를 번쩍 들었다.
《선생님, 미안합니다. 공연한 말을 하여…》
《공연한 말이 아니요. 다 옳은 소리요.》
야스이는 가슴을 저며드는 생각을 쫓다가 문득 머리를 드는것이 있어 최학성에게 물었다.
《김사량이라는 소설가를 아오?》
《녜, 압니다》
《왜 내가 그걸 새삼스럽게 묻는가 하면 그 작가의 높은 기개가 오늘까지도 잊혀지지 않고 회상되기때문이요.》
야스이의 음성은 차츰 흥분에 실려나왔다.
그가 도꾜제대의 교단에 서있던 시절 김사량은 그 대학의 도이췰란드문학과 학생이였다.
1936년, 대학에서 발간하는 《제방》이라는 동인잡지에 김사량의 단편소설 《토성랑》이 실렸다.
《토성랑》은 학대받는 자기 나라 민족에 대한 깊은 동정과 작가의 울분이 한데 어울려 형상된 조선사람의 체취가 강하게 풍기는 력작이였다.
김사량은 대학을 졸업하자 련달아 우수한 단편들을 발표함으로써 신인등용의 좁은 문이라 일컬으는 《아꾸다가와문학상》후보자로 두차례나 추천을 받는 등 일본문단의 주목을 끌었었다.
야스이는 그의 작품을 다 애착을 가지고 읽었다.
일본제국이 《내선일체》, 《동조동근》을 고창하며 조선사람의 민족성을 말살하고 한편 창씨개명을 강요하면서 그 성마저 빼앗던 시기인데도 불구하고 김사량은 민족적지조를 꿋꿋이 지켜 자기 본명으로 뻐젓이 작품들을 세상에 내놓았다.
그의 매 작품마다에는 흔히 식민지인테리들이 지니게 되는 비탄이나 절망이란 어디에도 비껴있지 않고 빼앗긴 조국, 짓밟힌 향토를 부둥켜안고 몸부림치는 작가의 열화같은 웨침과 항거정신이 슴배여있었다.
야스이는 이러한 김사량의 강한 정의감과 조국애에 크게 감복되였던것이다.
그토록 불같은 작가였기에 그는 해방된 조국땅에 미제가 침략해 들어오자 용약 종군하여 싸우다가 사랑하는 향토에 피를 뿌리며 쓰러진것이 아닌가.
야스이는 오늘의 최학성의 견결한 모습과 불같은 항변에서 김사량을 보는듯싶어 조선의 지성을 새삼스러운 감정으로 느끼게 되였다.
이윽고 접대원이 음식을 날라왔다.
야스이는 어서 들라고 최학성에게 권했다.
얼마후 식당문을 나서 대학을 향해 어깨나란히 걸어가며 야스이는 자기 심정을 최학성에게 말하였다.
《오늘은 비록 조선이 분렬되여있지만 머지 않아 통일이 꼭 될거요. 최군, 그날의 확신속에서 굳건히 살아가길 바라오. 부탁하오.》
어딘가 공허한 소리같았으나 그는 어떻게 해서라도 청년을 고무하여주고싶은 열망에 싸여있었다.
《선생님, 명심하겠습니다.》
교문에 들어설 때 최학성은 한마디 하고는 교실쪽으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혹한의 계절에 퇴색하고 얄팍한 잠바가 몸에 걸쳐있는것으로 미루어 그 청년의 생활형편을 야스이는 짐작할수 있었다. 아니, 보다는 혈액은행을 출입하는 그 하나의 사실만으로도 그것을 알기에는 족했다.
야스이는 련민의 정을 금할수 없이 우두커니 선채 최학성이 사라져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혼자 속으로 외우고있었다.
(앞으로 어떻게 해서라도 도와주어야 하겠는데…)
그러나 그날이 최학성과의 첫 대화좌석이 마련된 날이자 또한 서로가 오랜 리별의 날로 되리라는것을 야스이는 전혀 알지 못했다.
야스이는 자기 책상우에 학생들에게서 보내온 기금함이 놓여있는것을 보았다.
그는 그것을 펼치였다. 1원, 5원, 10원… 그중 1원짜리가 제일 많았다. 꾸겨진 지페의 주름을 하나하나 펴는 그의 손은 떨려났다. 아까 혈액은행앞에서의 최학성의 파릿한 모습이 눈앞에 떠올라 또다시 가슴을 마구 허비면서 부지중 뜨거운것이 목젖을 적시였다.…
그후 해외에 나가있던 야스이 가오루는 달포나마 되여서야 일본으로 돌아왔다.
오지리 윈에서의 세계평화협의회를 비롯하여 인디아의 뉴델리, 칼커타에서의 아시아법률가회의 등 그는 그간 무려 세 지역에서 열렸던 국제회의들에 참가했었다.
그러다보니 야스이가 다시 대학의 교단에 섰을 때는 학생들의 겨울방학도 지나 새 학기에 들어간지 이미 여러날이 흐른뒤였다.
야간부강의실에 들어선 그는 먼저 최학성부터 찾았다. 헌데 그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다음, 다음날도 그는 계속 결석했다. 학생들에게 물어봐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야스이는 이상하게 생각되여 교무부에 알아보았다.
자진 중퇴하였다고 하였다. 학비를 충당할수 없어서 학업을 중단하게 되였다고 한다. 수재생이 그런 처지에 놓이다니, 아까운 학생인데… 야스이는 몹시 아수하게 생각되였다.
인류의 평화를 위해 자기몸의 피까지도 아낌없이 바친 청년이였다.
어떻게 해서라도 그 청년을 다시 대학으로 데려와서 학업을 계속 할수 있도록 도와주고싶었다.
야스이교수는 사방에 수소문하여 최학성을 찾아보았다. 헌데 그의 행처는 좀체로 알길이 없었다.
다만 일부 학생들에게서 그가 어느 한 지방의 토목공사장에 가있을것이라는 막연한 소리만을 전해들었을뿐이였다.
그 소문에 접하자 교수는 그 제자에 대한 련민의 정이 한층 부풀어올랐다.
야스이교수는 그 제자의 처절한 운명에 동정을 초월한 아픔을 느꼈다. 그를 도저히 방심할수 없었다.
야스이는 생각던끝에 하시모또에게 신문을 통하여 찾아줄것을 부탁했다.
그런터였는데 어느날 돌연히 최학성으로부터 편지가 왔다.
야스이는 서둘러 개봉하여 읽었다.
존경하는 야스이 가오루선생님,
인사조차 하지 못하고 떠나왔습니다. 그후 오래동안 문안의 글마저 변변히 드리지 못했습니다.
이 불손한 소행을 너그러이 대해주신다면 다행이겠습니다.
민중의 복리와 밝은 사회를 위하여 헌신하시는 선생님의 값높은 로고에서 저는 언제나 큰 고무를 받고있습니다.
야스이선생님! 저에게도 세상에 긍지높이 자랑할수 있는 조국이 있습니다.
조국이 우리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있습니다.
래일 저는 그 어머니공화국의 품을 찾아 떠나갑니다. 진리탐구를 위하여 온 정력을 다하겠습니다.
호세이시절의 스승의 모습과 가르침을 영원히 잊지 않을것입니다.
부디 건강하시고 세계평화를 위한 고귀한 사업에서 커다란 공헌이 있기를 바라옵니다.
일본을 떠나기 앞서- 제자, 최학성 올림
야스이교수는 편지에서 머리를 들었다. 조용히 실내를 거닐었다. 어쩐지 마음이 후련하였다.
최학성이 전해준 사연은 비록 길지 않았으나 그속에는 많은것을 이야기해주고있었다.
여태껏 안타까이 찾던 제자였다. 그 소식을 마침내 접한 지금 교수의 기분은 저으기 가벼워졌다. 그중에도 그의 감동을 크게 불러일으킨것은 편지의 글줄에서 그동안 청년의 생활에 무언가 새로운 변혁이 일어났음을 읽게 된것이였다.
최학성은 새삼스럽게 자기에게도 조국이 있다고 하였다. 이국땅에서 갖은 고역에 시달리면서도 종시 배움의 푸른 꿈을 이룰수 없었던 청년이였다. 부모형제를 빼앗아갔으며 조선분렬의 비운을 들씌운 미국을 치솟는 분노로 단죄하며 통탄하던 청년이였다.
그 최학성이 그처럼 긍지높이 자기 조국을 자랑하고있지 않는가. 그 무엇이 이 젊은이로 하여금 그런 신심을 안겨주었단말인가.
이때 야스이는 근간에 재일조선인의 민족적권리와 생활을 지키기 위하여 《총련》이라는 단체가 무어진 사실이 상기되였다. 북조선의 시책을 따르는 사람들의 민주주의적조직체라고 한다.
헌데 이상한것은 일본에 살고있는 조선사람의 태반이 남조선출신임에도 불구하고 그들 거의나가 다 《총련》에 망라되고있는것이다.
최학성도 공화국으로 간다고 했다.
민심이란 어떤 경우이건 정의의 편으로 쏠리는 법이다. 북조선에 대하여 아직은 충분한 터득이 없는 야스이로서는 이런 동향에 대하여 오늘따라 새삼스레 생각되는바가 많았다.
그 견인력이 어디에 있는가?
그 나라는 독립된지 얼마 안되는 청소한 몸으로 3년간의 전쟁을 겪게 되였다. 그러나 미국을 괴수로 하는 16개 나라의 방대한 침략무력을 물리치고 영예롭게 자기 조국을 지켜내였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였다. 어떤 힘을 가졌기에 세계《최강》을 자랑하는 횡포하고 오만무례한 미제를 타승하고 굴복시킬수 있었겠는가.
야스이의 이 의문은 이미 얼마전에 적지 않게 풀렸었다. 《요미우리신붕》의 옛 장춘특파기자였던 다가끼 다께오가 그것을 한마디로 알려주었다.
《백만관동군의 간담을 서늘케 한 〈백두산의 호랑이〉 김일성장군님이 계시기때문이요.》
그날의 바로 그분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령수로서 인민을 위한 정치를 펴고있다고 한다.
그런 걸출한 인민의 령도자가 이끄는 나라이기에 민심이 북으로만 쏠리는것인지 모른다. 하기에 최학성이 그토록 신심에 차있는것이 십분 리해되였다. 하면서도 야스이의 마음 한구석에 석연치 못한것이 있었다. 전쟁으로 인해 모든것이 파괴되고 페허로 화했다는 그 나라에서 과연 최학성의 꿈이 얼마만큼이나 피여날수 있을는지 그게 은근히 마음에 걸렸던것이다.
교수는 청년의 앞길이 활짝 열리기만을 간절히 바라며 가벼운 걸음으로 방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