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편   타지 않는 불

 

제 2 장

대학의 교문을 나서 퇴근길에 오른 야스이 가오루의 발걸음은 가볍지 않았다.

초여름의 해가 기울어져가는 거리에는 가로수의 그림자가 길게 비껴있었다.

오늘따라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표정이 무거워보였다. 모두가 이미 악화일로를 내닫는 전쟁상황을 알고있는듯 했다.

야스이는 오늘 대학에서 한 동료교수로부터 놀라운 소식을 접하였다.

일본과 《3각군사동맹》을 맺고있는 도이췰란드, 이딸리아가 패망한것이 치명적이였는지 황군의 남방전선과 아시아대륙의 전황이 급기야 험악해졌다고 한다. 해상의 강력한 보루로 위용을 떨치던 제국태평양함대가 섬멸격침되였으며 한편 황군은 전전선에서 퇴각을 하지 않으면 안될 엄중한 국면에 처해있다고 하였다.

날마다 련전련승의 전과만을 날리던 《대본영발표》의 보도와는 너무나 엄청나게 상반된것이였다. 사실이 그렇다면 전쟁의 종말이 경각에 다달았다는것을 짐작할수 있었다.

참으로 래일을 기약하기 어려운 세월이였다.

교수는 번거로운 생각에 잠겨 길을 걸어가다가 《아빠야-》하고 부르는 아이의 부름소리에 흠칫 놀라 머리를 들어 앞을 살펴보았다. 어느새 집근처에 와있었다. 안해가 어린 두 남매와 함께 담장문밖에 나와있는것이 눈에 띄였다. 석양의 이무렵이면 그 녀인은 언제나 저렇게 아이들을 데리고 귀가하는 남편을 맞아들이군 한다.

올봄에 소학교에 입학한 딸애가 아버지를 향해 돌돌 구을듯이 달려온다.

《유우꼬야, 천천히… 넘어질라.》

교수는 얼른 몸을 솟구며 그애앞으로 마주 달려가 다정히 그러안았다. 어머니품에서 성급히 떨어져나온 아들애 노부아끼 또한 갓 배우기 시작한 말로 응석을 부리며 그의 몸에 덥석 매달린다.

어린것들과 접촉한 순간에 야스이는 금시 흐렸던 마음이 개이고 저절로 얼굴이 밝아졌다.

안해가 말없이 다가와 손가방을 받아들자 교수는 아들애를 두팔로 담쑥 안아 높이 쳐들어주었다.

《노부아끼, 저길 봐라. 저녁노을이 곱지?》

《야, 빨갛구나!》

서켠하늘가가 붉게 물들었다. 전쟁의 불구름이란 어디에도 찾아볼수 없는 선홍빛의 아름답고 잔잔한 노을이 련련히 펼쳐져있었다.

교수는 미소를 띠우며 안해를 돌아보았다. 단란하고 행복한 가정의 이 한때를 그는 언제나 소중히 여겼다. 하기에 자기의 어두운 그림자를 집안에까지 달고오지 않으려고 노상 마음을 써온다. 어떤 역경속에서도 밝게 살고싶었다.

연한 곤청색 몸빼 (일본녀자들이 입는 바지의 일종)에다 가벼운 하오리(덧저고리)를 산뜻하게 받쳐입은 부인의 자태는 청청하고 단아했다. 두 남매의 어머니라지만 아직도 젊고 건강미가 흘렀다. 살갗이 반드럽고 동그스름한 얼굴에 순하게 삼시울진 안해의 맑은 눈은 언제나 야스이의 마음을 안정시켜주었고 흥겹게 하였다. 명랑하고 끼끗한 처녀시절의 순결미를 조금도 잃지 않고 모성이 된 오늘에도 고이 간직하고있는 녀인이였다.

《여보, 피곤하시겠는데 어서 들어가요.》

부인은 속삭이듯 뇌이며 몸을 돌리더니 저 먼저 조용히 대문안으로 사라져갔다.

야스이는 문득 안해의 거동이 오늘따라 어딘가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다. 그의 얼굴에 전에 없던 수심이 어려있는듯싶었다. 그와 결혼한지 이제는 십년이 되여오지만 이제까지 이런 일이란 별로 없었다. 어떤 경우나 살뜰하고 온화한 표정으로 남편을 따뜻이 마중하던 안해였다.

교수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안해도 급변하는 정세로 하여 불안해하고있는것일가, 그것이 아니라면 이 남편의 그 저술이 사람들속에서 어떤 비난의 대상으로 되고있는지를 어디서 엿듣기라도 했단말인가?

야스이는 종잡지 못할 위구심에 사로잡힌채 어린것들을 앞세우고 서둘러 집안으로 들어갔다.

안해는 남편이 양복을 벗고 실내옷으로 갈아입는것을 거들어주었다. 그리고나서 방안에서 나가려다 무슨 말을 하려는듯 주춤 머물러섰다.

야스이는 그런 안해를 대하자 한층 야릇한 기분에 갈마들어 마침내 물어보았다.

《무슨 일이라도 있었소?》

《아니요. 별로…》

부인은 저으기 당황해하였다. 그러는 그의 얼굴에는 근심의 빛이 력력했다.

《헌데 왜 그리 낯색이 어둡소?》

《그-래요.》

흐리마리 대답하는 부인의 태도는 아무래도 심상치가 않았다.

다즈꼬는 어찌할바를 모르고 망설이기만 하였다. 가뜩이나 요즘 한 책자로 하여 심뇌를 겪고있는 남편에게 돌연히 생겨난 일을 차마 전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것을 알면 더욱 상심할 남편을 생각하니 다즈꼬는 마음이 자꾸 움츠러들었다.

다즈꼬는 방금전까지만 해도 오늘 집에 날아든 《경고장》을 남편에게는 전하지 않고 자기 혼자만이 아는것으로 묻어두려 하였다.

그리고 남편의 안전을 위해 그것을 경찰에 신고할 생각을 했다. 량심껏 살아가는 남편의 신상이 무사하기만을 바라던 나머지였다. 헌데 애초의 그 결심과는 달리 동요가 일어났다. 막상 남편을 대하고보니 금시 위험이 덮쳐들듯 한 불안감에 못이겨 그는 자제력을 잃고 그만 불쑥 실토하게 되였다.

《여보, 이 일을 어쩌면 좋아요!》

부인은 부르짖듯 하며 남편앞에 한 종이장을 내놓았다.

별안간에 울린 안해의 겁질린 소리에 야스이교수는 볼편을 실룩거리며 그 종이장을 받아쥐고 펼쳐보았다. 순간 교수의 두눈에는 활달하게 갈겨쓴 큼직큼직한 글발이 날카로운 비수처럼 박혀왔다.

야스이 가오루, 너는 인도주의의 가면을 쓴 어용학자다. 《대동아공영권》의 나팔수, 제국전쟁정책의 협력자다. 이제 머지 않아 너의 머리우에 벼락이 떨어질것이다. 징벌자

무기명투서의 경고장이였다.

낮에 그것을 우편함에서 발견했노라고 띠염띠염 전하는 안해를 외면한채 교수는 쏘파에 털썩 몸을 맡기고 두손으로 머리를 움켜잡았다.

그의 뇌리에는 최근 자기 주위에서 벌어졌던 일들이 신경을 자극하며 스쳐갔다.

《대동아공영권과 국제법》이 세상에 나가자 외계는 확실히 달라졌다.

엊그제 구로다 겐교수는 전날에 한 소리를 거듭 되풀이하며 야스이의 번민을 위로하려들었다.

《야스이군, 누가 뭐라든 상관하지 말게. 국시에 역행되지 않고 제국에 도움이 된이상 자네의 저술은 매우 가치있는것으로 봐야 할거네.》

보수적인 구로다로서는 할법한 소리였다. 물론 그만이 아니라 몇몇 국수주의자들은 그 책을 높이 찬양해마지 않았다. 허나 태반의 사람들은 일치하게 지탄해나섰다. 한 큰 신문사의 정치론설기자로 있는 친우 하시모도 스스무에게 그것을 기증하자 그는 독후감을 어떻게 보내왔던가.

《의도는 좋으나 그속에서 울려오는 음향은 국책과 합창하는듯 한 인상을 주었네.》

도서관, 교수안토의, 강의… 그 어디에 가건 누구와 만나건 야스이는 그전과 다른 감촉을 받군 하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서 경원시 당하고있다는것을 느꼈다. 바로 그것으로 하여 그는 요즘 울적한 심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있었다.

어떤 사람이 한 투서인지 그걸 구태여 생각하고싶지 않았다. 그 책을 읽은 사람이 한둘이라고 가려볼수 있겠는가.

《징벌자》가 아무이건 좋았다. 그 저술의 집필의도는 어떻든간에 《국책과 합창》한것으로 된다면 응당 민중의 징벌을 받아야 할것이다.

하면서도 교수는 한편 서운한 생각이 들었다. 자기로서는 조국과 아시아의 평화와 안녕을 위하여 한 일이 아니였던가. 그러나 여론은 그것이 제국침략정책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있다며 지탄하고있으니 교수의 심사가 평온할수 없었다.

《여보, 당장 경찰에 신고해야 하지 않을가요?》

안해의 목소리는 떨려나왔다.

야스이교수는 비로소 머리를 들었다. 안해의 낯이 파랗게 질려있었다.

《경찰에 신고?… 그만두오!》

그는 안해의 말을 일축하며 움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해는 남편의 너무나도 단호한 태도에 어쩔바를 모르고 입술만 깨물었다.

교수는 마음을 다잡지 못한채 방안을 오락가락하였다.

그무렵 이상하게도 하늘이 며칠째 조용했다. 은연중에 경보싸이렌도 폭음도 사라진 파아란 여름하늘에는 함정과 같은 고요가 깃들어 마치 지긋지긋한 전쟁이 하루아침에 종적을 감추고 갑자기 평화가 찾아온상싶었다.

허지만 그것은 폭풍전야의 정적에 지나지 않았다.

그날은 1945년 8월 6일이였다. 눈부신 태양의 해살을 례사로운 날처럼 맞이하던 새 아침, 히로시마의 상공에 은밀히 날아든 비행기 한대가 구름 한점없이 맑고 푸른 하늘우에서 어떤 물체를 슬쩍 떨어뜨리고 고속으로 사라졌다.

그 찰나였다. 작렬하는 태양광선에 비길수 없는 거대하고 찬란한 광채가 펀끗 빛을 발산하며 온 누리를 백광으로 뒤덮었다. 이어 《꽈-앙》 하는 요란하고 어마어마한 굉음이 천지를 진감하며 울리더니 한순간 땅우의 모든것을 마구 뒤흔들어놓았다. 때를 같이하여 하늘중천에 버섯모양의 장엄한 구름발이 솟아오르면서 돌연 사나운 회오리가 지상의 모든것을 일격에 날려보낼듯한 무서운 기세로 휘몰아쳐왔다.

참으로 미증유의 청천벽력이였다.

삽시간에 히로시마는 거세찬 불바다로 변했다. 맹렬히 타번지는 화광속에서 건물들이 물먹은 토담처럼 일시에 소리치며 허물어졌고 거리의 이르는곳마다에는 사람들의 주검으로 뒤덮였다. 간신히 목숨을 지탱한 생령들이 온 육신을 태우는 숨막힐듯 한 모진 갈증에 몸부림치며 물을 찾아 산지사방으로 미친듯이 내달리며 돌아쳤다. 길가의 도랑창에도 방화수통에도 사람들은 머리를 구겨박고 정신없이 물을 들이켰다. 별안간에 도시의 크고작은 일곱개 강이 사나운 파도인양 인산인해를 이루고 끓어번지면서 아비규환으로 화했다.

그것이 어떤 간악한 마귀에 의하여 빚어진 행위인지 사람들은 너무나 무자비하고 간악한 살륙을 피할길도 없이 절망에 몸서리치며 무엇을 의식하고 판단할 기력조차 완전히 상실하고말았다. 화광에 뒤덮여 아우성천지로 변한 누리에는 공포와 전률만이 팽배하게 드리웠다.

정녕 그것은 《노아의 홍수》를 엄청나게 릉가한 현대판 지옥도였다.

한순간에 한개 도시를 삼켜버리고 헤아릴수 없는 살상자를 낸 정체불명의 그 대량살륙무기가 무엇인지 누구도 처음은 몰랐다. 다만 그것을 두고 사람들은 《비까 덩》으로 통했다. 펀끗 하는 광채와 함께 《꽈-앙》하는 폭발음을 냈다고 하여 《번쩍, 꽝 (비까 덩)》이라고 부른것이다.

그 《악마》의 정체가 비로소 세상에 알려지게 된것은 남쪽섬 규슈의 해안도시 나가사끼가 히로시마와 똑같은 《악마》에 의하여 참화를 당한 이후에 와서였다.

두개 도시에서 한순간에 40여만의 살상자를 낸 살륙무기를 일명 《원자폭탄》이라 한다고 하였다. 지구상에 처음으로 나타난 원자폭탄, 그것은 그해 7월 16일 미국 서남부에 위치하고있는 뉴멕시코사막에서의 1차실험을 통해 세상에 잔악무도한 악마의 모습을 드러냈다고 한다. 일본의 두 도시 히로시마, 나가사끼가 그의 2차, 3차 실험대상의 제물로 섬겨졌다는것이 알려진것도 다 세월이 퍽 흐른뒤였다.

단 하나의 원자폭탄에 의한 피해가 얼마만 한것인가를 조사하기 위하여 당시 히로시마에 파견되였던 미국물리학자 휠립모리송은 자기의 저서 《하나의 세계냐, 세계의 파멸이냐》에서 그 진상을 이렇게 밝혔다.

《원자폭탄은 그야말로 〈괴멸무기〉이다. 그것은 비상히 넓은 지역을 비상히 철저하게 비상히 돌발적으로 파괴하였기때문에 방어를 한다는것은 도저히 불가능하다.

히로시마에는 현대장비를 갖춘 33개의 소방대가 있었으나 폭격에 의해 6개만 남고 나머지는 다 자기 능력을 상실해버렸다. 소방대원 4분의 3이 죽거나 중상을 입었다. 헌데 수백, 수천의 불이 한시에 폭발적으로 일어났으므로 설사 소방대들이 자기 기능을 행사했단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한순간에 약 25만명의 부상자가 생겼다. 시내에 있는 병원은 하나만을 남겨놓고 다 큰 손상을 당했다. 관영의료기관에 종사하던 의사들은 허물어진 벽체밑에 깔려있었다. 그들의 조수도 죽었고 또 간호원들도 죽었다. 등록된 근 300명의 의사중에 30명만이 부상자들의 치료에 림할수 있었다.

약 2 400명의 간호원중에서 살아남은것은 600명에 불과했다. 이런 형편에서 어떻게 부상자들을 치료하고 안전한곳으로 옮길수 있단말인가.

…군대의 지휘관도 그의 부관도 또한 참모장교모두가 목숨을 잃었다.

…도시에 전력을 공급하던 변전소가 파괴되고 철길이 끊어졌으며 정거장들이 불타고 날아나버렸다. 전신전화국도 허물어졌다.…》

두 도시가 입은 대참상에 대한 소식은 뒤늦게나마 세상에 파다히 전해졌다.

야스이 가오루가 그것을 접한것은 가족들과 함께 소개해있던 한 농촌의 출근길에서였다.

야스이의 눈에서는 불이 일었다. 갑자기 경풍이나 온듯 다리가 후들거렸다.

이윽고 그는 거칠어지는 마음을 간신히 억제하며 가던 길을 허둥지둥 되돌아섰다.

집에 들려 간편한 려행차비를 하고 부랴부랴 밖으로 나왔다.

먼저 히로시마로 갈 작정이였다. 벌어진 사태를 자기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세상에 고발하지 않고서는 견딜수 없었다. 그렇지않다간 장차 어떤 일이 또다시 생길런지 모를 일이였다.

그러나 어디로도 갈수 없었다. 철길과 교량이 온통 파괴되여 교통이 마비상태에 있었다.

야스이는 허물어진 역두에 서서 내리쪼이는 폭양을 받으며 넋 나간 사람처럼 굳어져버렸다. 얼굴이 땀으로 질벅하니 젖어있었으나 닦을념도 하지 않았다.…

준엄하고 처절한 나날에는 격동적인 사변이 뒤를 바싹 조이며 따르는 모양이였다. 그것이 예상하던것보다 일찌기 찾아들어 사람들을 한층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도이췰란드, 이딸리아 동맹국들의 참혹한 붕괴, 전전선에서 일본군대의 련달은 참패와 괴멸, 쏘련의 대일선전포고, 조선인민혁명군의 파죽지세와 같은 총공세…

이 모든 급격한 전황이 력대로 기고만장하여 전승고만을 울려온 《무적황군》을 사면초가의 운명에 몰아넣고 마침내 일본제국으로 하여금 《무조건항복》을 고하게 하였던것이다.

그날 한낮이였다. 천황 히로히도의 중대방송이 있다고 전해졌다.

도꾜의 가두와 거리마다에는 사람들이 라지오를 둘러싸고 구름처럼 모여있었다.

야스이는 대학의 야스다강당에서 동료교수들과 함께 그 방송을 청취했다.

전류에 실려 흐느끼듯 흘러나오는 천황의 몹시 갈린 음성이 깊어가는 가을밤의 구슬픈 만가처럼 강당안에 비장히 울려퍼졌다. 《무조건항복》한다는 그 말의 울림만은 야스이의 감각속에 뚜렷한 여운을 끌며 파고들었다. 일본제국이 도발한 《대동아전쟁》이 드디여 종말을 고했다는것이였다. 일청전쟁에서 대만을, 일로전쟁에서 남부싸할린을, 그후 련이어 조선과 만저우를 병탐강탈하며 승승장구의 《영광찬란》한 길만을 줄달음쳐온 일본제국이였다.

그것이 곧 이제까지 제국의 《화려한 륭성번영》을 장식해주지 않았던가.

오랜 세월 오로지 승리에만 도취되여있던 사람들에게 있어서 《무조건항복》이란 소리가 쉽사리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꿈결의 잠꼬대처럼 들렸다. 선뜻 믿기에는 가슴이 터질듯 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였다. 다시는 되돌려세울수 없는 엄연한 현실이였다.

무거운 침묵속에서 방송을 청취하는 교수들의 모습은 각이했다. 소리없이 눈을 적시는 교수가 있는가 하면 손으로 얼굴을 싸쥔채 가벼이 어깨를 들먹이는 교수도 있었다.

허나 야스이 가오루의 얼굴에는 눈물이 흔적조차 어려있지 않았다. 그는 고요한 표정으로 두눈을 지그시 감고있었다. 오늘의 무참한 종말을 이미 예감하고있었던 그로서는 그 《선포》가 별로 이상하게 들리지도 느껴지지도 않았다.

응당한 귀결이라 생각되였다. 종당에 올것이 왔다는 폭풍뒤의 정적같은것이 온몸을 감싸주고있을 따름이였다.

방송이 끝난지도 이윽했으나 누구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삽시간 모든것이 철추에 짓눌리운듯 강당안에는 싸늘한 정적만이 팽팽하니 드리워있었다.

그런속에서 야스이만이 홀로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얼마전 집에 날아들었던 경고장의 구절들이 법정의 론고처럼 마구 가슴을 허비며 되살아올라 그냥 앉아있을수 없었다.

아- 그의 입에서는 신음소리가 새여나왔다.

그날부터 야스이는 서재에 붙박힌채 여러날이나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공존공영의 《동양리상사회》의 꿈이 하루아침 허공에 흩날린 연기처럼 꺼져버린뒤 그에게 찾아든것은 더한층 심한 회의와 번민이였다. 그는 가슴옥죄이게 하는 압박감과 불면증에 시달려 때로는 의식이 몽롱해지기도 하였다.

그날밤도 야스이는 서재안에 묻혀있었다. 초저녁인데도 주변에는 적막이 깃들고 집안은 인적없는 절간처럼 쓸쓸했다. 숨을 죽인 대형의 축음기와 가지런히 놓인 여러단의 큼직한 레코드판함을 제외하고는 방안은 책이 꽉 들어찬 서가로 온통 간벽을 가리우고있다.

수천권이나 되는 장서속에는 사회과학만이 아니라 문학과 예술, 자연과학에 이르기까지 여러 분야의 책자들이 자기 특유의 세계를 과시하듯 각양각색의 음영을 던지며 정연히 꽂혀있었다.

실상 야스이 가오루가 평소에 추구해온 학문의 범위는 무척 넓었다. 그는 전공하는 국제법학이나 사회과목 말고도 예술방면에도 조예가 매우 깊고 해박하였다. 그것은 취미나 통속적인 한계를 훨씬 초월한 경지에 이르고있었는데 특히 문학과 음악은 다감하던 유년기부터 남다른 애착을 가지고 대해왔으며 한때는 소설가가 될것을 꿈꾸어본 일도 있었다.

음악은 그의 생활에서 없어서는 안될 귀중한 마음의 량식의 하나였다. 과학탐구의 나날에 음악은 언제나 사색을 정화시켜주었으며 정서적랑만으로 활력을 부어주었다. 아무리 분망한속에서도 하루 몇곡은 꼭꼭 감상했다.

헌데 근간에 와서 그 모든 생활의 절도가 완전히 파괴되고말았다. 축음기가 잠잠한지 오래되였고 소설책을 손에 들어본지가 옛일로 되였다.

의자에 깊숙이 몸을 파묻고있던 야스이는 급기야 뭔가 심장을 떠박지르는것같아 머리를 쳐들어 서재를 둘러보았다.

문득 시선이 한 서가에 못박히였다. 야스이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그 서가앞으로 다가가 책자들속에서 세권을 골라 손에 들었다. 우묵하게 패여들어간 눈확을 들어 책의 표제들을 하나하나 살폈다. 《국제법》, 《조약집》, 《대동아공영권과 국제법》…

그것들은 이 몇해어간에 출판된, 그의 사색과 탐구의 진통을 거쳐 생겨난 산아였다.

글이 곧 사람이라고 그 저서들은 이를데 없이 그가 이제까지 축적해온 사상정신적결정체였다.

사고와 판단, 관찰과 론증, 그 모든것이 비록 이름없는 과학도의 빈약한 소산에 불과하나 그는 세상을 향해 자기 의사를 가식없이 솔직하게 내놓았던것이다.

탐구자에게 있어서 허위와 기만은 죽음일진대 이제 와서 어찌 자신을 숨기거나 변명할수 있으랴.

지금에 와서 볼 때 그 저술들이 사회앞에 한푼어치의 기여는커녕 도리여 유해로운 작용을 하였다는것을 야스이는 다시금 뼈저린 회오속에 느끼지 않을수 없었다.

하시모도를 비롯한 동료교수며 지어 사도미와 같은 제자들까지 자기를 《전쟁협력자》, 《어용학자》로 락인한것이 지극히 옳은 일이였다.

지난날 제국주의침략정책에 타협하고 편승하다가 그런 인간으로 전락된 사람들이 얼마나 되였던가.

《일억일심》, 《멸사봉공》, 《팔광일우》의 전쟁구호에 조금이라도 저촉되는 행위를 할 경우 가차없이 국적으로, 적색분자로 몰아 《치안유지법》과 《전시특별취채법》으로 처단하던 무시무시한 공포정치시대가 있었다. 이에 위축되여 국책에 맹목적으로 추종하다가 사회의 버림을 받은 나약한 지성인들이 어찌 한두명이였으랴.

그런속에서도 야스이자신은 그런 추악한 인간들을 타매하며 오직 인류를 위한 일에 량심을 바치노라 자부해왔었다. 그러나 오늘날에 와서 볼 때 그것이 의식적이건 아니건 그들과 조금도 다를바 없는 행위였음을 그는 차츰 통절히 깨닫게 되였다.

야스이는 그것으로 하여 가슴허비여주는 세권의 책자를 두손으로 꽉 거머쥔채 머리를 떨구었다. 투철한 지론이 없는 학문, 유물과 관념의 세계를 오락가락하며 《인간해방》의 길을 추구해온 학구적태도… 이러한 량면타협성으로 하여 일본제국의 침략적본성을 철저하게 폭로하지 못하였으며 지어는 《참전불가피성》을 낳는 결과를 가져오지 않았던가.

야스이 가오루는 생각할수록 지난날의 자신이 가슴아프게 돌이켜졌다.

실상 그의 학술연구에서는 적지 않은 모순이 있었다.

야스이 가오루가 한 출판물에 기고한 글속에는 이러한 대목이 있다.

《나의 생을 돌이켜볼 때 일찍부터 종교에 끌리는 마음과 문학에 끌리는 마음이 하나로 어울려있었던것 같다. 내 기억이 어설피기는 하지만 모친이 생전에 들려준데 의하면 코흘리개시절 나의 희망은 〈크면 절간의 중이 되겠다〉는것이였다고 한다. 완고한 불교가정의 영향에서였을것이다. 세살적버릇이 백살까지라고 하듯이 사회과학자의 길을 걷게 되면서도 종교의 그림자는 항상 나의 주위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야스이 가오루의 가문은 력대로 불교를 숭상하였다. 그도 래력을 따라 그에 입문하였으나 후에는 가문의 계률을 파계하여 한때는 유교에로, 다음은 기독교에로 전전하는 신앙의 편력과정을 밟아왔다.

불교나 유교, 예수교 할것 없이 모든 종교의 경전과 성서들은 인간사회에서 벌어지는 온갖 현상들이 신의 의사에 따라 이루어진다는 사상으로 일관되여있다.

그리하여 종교철학은 례외없이 신을 절대적이고 모든것을 결정하는 《전지전능》한 존재로 내세우면서 신이 사람을 창조하고 그의 생활을 좌지우지한다고 설교하고있다. 이를테면 사람들이 신을 잘 섬기고 숭배하여야 그의 혜택과 은총을 받아 살아갈수 있고 자기의 모든 념원과 목적도 실현할수 있으며 죽은 다음 《천당》이나 《극락세계》에 가서 영원한 복락을 누릴수 있다는것이다.

이것은 뭇종교들이 인간관이나 인생문제 등을 다 신을 중심에 놓고 론의를 일삼고있다는것을 말해주고있다.

이렇듯 사람에게 숙명론과 무저항주의를 고취하고 주입하려는 종교의 그 모든 교리가 사회과학자인 야스이 가오루의 정신세계에 응분의 영향력을 불러일으키지 못한것은 당연한 일이였으나 그는 홍안의 중학시절부터 애독해온 《신약성서》를 지금도 서재의 한 책가속에 비장해두고있었다.

그러나 야스이 가오루는 생의 마지막까지 독실한 신자로는 되지 못했다.

워낙 량심적인 지성은 세상의 모순을 언제나 외면하지 않고 그것을 파헤치려고 심혼을 기울이는 법이다. 불합리하고 공정치 못한 사회로 하여 사람이 겪는 불행과 고통을 방관시하지 않고 인간을 온갖 불의에서 벗어나게 하려고 사색하고 행동한다.

그는 반전사상이 매우 강하고 평화를 사랑했다.

인간의 본성을 상실한 폭력과 살륙행위란 곧 동물적행위이다. 사람의 생명을 위협하고 행복을 파괴하는 전쟁을 그는 추호도 용납할수 없었다.

비인도적만행이 없는 세상, 그 터전우에 사회적진보와 광명을 마련하리라는것이 야스이 가오루가 추구하는 리념이였다.

그 길을 모색하는 과정이 그로 하여금 여러 류파의 철학을 섭렵하게 하였으며 종교와도 접촉하게 하였던것이다.

무릇 사람이란 자기의 정신생활을 지탱해주는 마음의 기둥을 가지고있기마련이다.

야스이 가오루의 경우에도 그러한 지주가 있었는데 그의 정신력을 받들어주고있는 기둥이 셋 있었다.

그 하나는 학문이였다. 학문이라 할 때 그가 전공하는 국제법학만이 아니라 사회과학을 비롯한 철학이였다. 다른 하나는 예술이였다. 특히 그중에도 문학과 음악이였다. 이것은 물론 전문적이라 할수는 없지만 그의 생활속에 깊이 파고들어 단단히 도사리고있었다. 음악은 베토벤이나 바하 류의 곡을 몹시 즐겼는데 그는 그것들을 《마음의 노래》, 《넋의 울림》이라고 곧잘 표현하군 하였다. 문학은 레브 똘스또이나 도스또옙스끼와 같이 인간의 내면을 깊이 파헤쳐주는 작품들을 주로 애독하였다.

다른 또 하나의 기둥은 종교에 대한 신앙이였다.

이 세 《기둥》으로 그는 자기자신을 지탱하며 세상을 랭철한 눈과 감각으로 투시하면서 인간해방의 길을 찾아 한걸음한걸음 힘겨웁게 걸어왔다. 하건만 오늘날 그가 도달한 지점은 어떤곳인가. 가시덤불 뒤엉킨 깊은 나락의 세계였다.

그는 그 함정속에서 상처투성이가 되여 허우적거리는 몸이 되고 말았다.…

야스이 가오루는 생각할수록 눈앞이 아뜩했다.

한동안이 지난후 그는 악몽에서 깨여난 사람처럼 부르르 몸을 떨며 불쑥 머리를 쳐들었다. 그리고는 좁은 집울타리를 벗어나 밖으로 뛰쳐나갔다.

밤하늘에 별이 총총했다.

야스이는 향방없이 걸었다.

그전날 오색화광에 싸여 찬란하던 도시가 무덤속같은 어둠에 싸여 빛을 잃었고 어디를 둘러보아도 무너진 잔해만이 나딩굴고있었다.

야스이는 눈에 아프게 마쳐드는 전쟁의 상처를 바라보며 길을 걷느라니 한층 심사가 번거롭고 생각이 깊어졌다.

학문의 상아탑, 《살창없는 감옥》속에서 하나의 뚜렷한 철학적신념도 없이 온갖 류파의 학설의 바다, 그 혼돈한 탁상세계에서 국제법학을 순수 사회과학으로 대하며 진리를 탐구해온 어제날의 무맥했던 자신에 대하여 뼈저린 회오를 불러일으켰다.

바로 확고한 지론도 행동도 없는 지성, 그것이 《제국정책과 합창》하는데 이르게 하였던것이다.

사람에게 있어 가장 위력한것은 사색의 힘이라고 한다. 허나 그것이 단순히 사색에만 머물고 아무런 실현성도 없다면…

사회와 민중의 지향과 욕구를 깊이 리해하지 못한 공리공담의 탁상인식, 이른바 실천이 동반되지 않는 리론, 그것은 《타지 않는 불》, 《비치지 않는 빛》과 다를바 무엇이겠는가.

바로 그러한 학구적태도가 일본제국의 정체를 날카롭게 폭로하고 깊이 파헤치지 못하는 결과를 낳았으며 종당에 가서는 그자들의 리용물로 롱락당하는 몸으로까지 되였다.

야스이 가오루는 사색이 여기에 미쳤을 때 가슴이 갈기갈기 찢기우는듯 한 아픔을 다시한번 느꼈다. 통곡이라도 하고싶었다.

망두석처럼 길가에 굳어져있던 그는 한동안이 지나서야 마음의 안정이 다소 돌이켜졌다. 그러자 불현듯 사도미 아즈시의 생사여부가 번개처럼 머리를 쳐들었다.

패전의 혼란과 자책의 심뇌속에 휘말려 자신을 수습할수 없던 나머지 사랑하는 제자의 안부를 까마득히 잊고있던 일이 놀랍게 여겨졌다.

(과연 그 젊은이가 어떻게 되였을가?)

야스이는 문득 몸을 돌리더니 어딘가로 부지런히 걸음을 놓아나갔다.

사도미 아즈시의 고향은 도꾜와 린접해있는 이바라기현의 한 궁벽한 산촌이였다.

야스이가 그 고장을 찾아갔을 때는 이른아침이였다. 혼잡한 밤기차에 시달리며 역에서 내려 목적지까지 사십리길을 꼬박 걸어왔다.

전선에서 살아남은 군인들이 날마다 돌아오는 때여서 혹시 그 제자도 귀환하지 않았을가 하는 기대를 가지고 찾아온 걸음이였다.

그는 산탁에 홀로 오붓이 들어앉아있는 사도미의 추녀높은 초가집에 당도하여 주인을 찾았다. 한동안 기다렸으나 안에서는 아무런 응대도 기척도 없었다.

주위가 호젓한게 빈집과도 같았다.

야스이는 문앞에 서서 잠시 안의 동정을 살피다가 조심스레 문을 열고 마당으로 들어섰다.

뜻밖에도 집안에는 사람이 있었다. 머리허연 자그마한 녀인이 마루방의 향내 피여오르는 불단앞에서 무릎을 꿇고앉아 한창 불공에 열중이였다.

손에 쥔 념주를 굴리며 불경을 외우는데 온 정신이 팔려있는 녀인은 밖에 사람이 와있는것조차 전혀 느끼지 못하는것 같았다.

무슨 소망을 기원하는것인지 연방 념주를 헤아리며 《나무아미타불》을 외우는 녀인의 모습은 자못 경건해보였다.

야스이는 저절로 숭엄한 기분에 젖어들었다.

유년시절에 흔히 보아온 일이지만 자기 어머니도 할머니도 저렇게 아침저녁이면 불상앞에 앉아있군 했었다. 이 나라 백성의 태반 가정들이 대대로 내려오며 부처를 섬겨왔다. 그런 집들에선 례외없이 불단을 차려놓고 거기에 정성을 다하는것을 신성불가침의 엄격한 가풍으로 정하고있다.

야스이는 불공이 끝나기를 기다리며 마당가를 서성거렸다.

남정의 손이 없는 불우한 집안이건만 울담장안에는 제법 모양을 갖춘 낟가리가 쌓여있었다. 그 주변에 참새떼가 내려앉아 푸르릉거리며 짹짹거린다. 참새들의 움직임을 한적한 농가뜨락에서 조용히 바라보느라니 그는 불현듯 옛일이 회상되였다.

유년시절 야스이는 할머니의 손에 끌리여 절간에 간적이 있었다.

할머니는 해마다 번지지 않고 벗꽃이 망울을 터칠무렵이면 검은 머리수건에 새 짚으로 엮은 죠리(짚신의 일종)로 소복단장하고 아라시야마에 있는 절을 찾아가 참례하군 했다. 그 절간으로 가는 산길에는 참새가 많았다. 도회지에서 볼수 없는 엄청난 날새무리의 정경에 코흘리개 소년은 눈이 퀭해져 할머니와 함께 가던 발길을 멈추고 소리질렀다.

《할매, 저것 봐, 굉장하네!》

할머니는 꼬불사한 허리를 펴고 손자녀석의 중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빙긋이 웃었다.

《저들은 부처님이 귀히 여기는 날짐승이란다.》

할머니는 무슨 념불이나 하듯 띠염띠염 말했다.

《참새는 석가님이 성불했을 때 선참 날아온 충효자였지.… 그 갸륵함에 감심하신 석가님이 그들에게 버러지같은 어지러운걸 입에 대지 말고 이제부터 낟알만 먹으라고 은총을 베푸셨단다. 그러나 신주님의 하사도 모르고 뒤늦게 날아든 제비와 까마귀따위들은 벌거지같은것만 먹어야 할 신세로 되고말았지.》

이런 시각에 동화같은 생뚱한 소리가 되살아난것이 스스로도 어처구니없는듯 야스이는 허거픈 미소를 지었다.

얼마나 지났을가.… 집안을 살피던 그는 사도미의 모친이 불단앞에서 일어나는것을 발견하고 대청마루로 다가섰다.

《어머님, 안녕하십니까?》

마당에서 갑자기 울려오는 목소리에 녀인은 흠칫 놀라며 홱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두눈을 끔벅거리며 소리의 임자를 재빨리 훑어본다.

《거 누구시오?》

그는 서둘러 대청마루로 나서며 물었다. 몸도 작고 얼굴도 작은 중늙은이였다. 유순하고 진지한 빛이 비껴있는 두눈만이 사도미와 닮아보였다.

《아즈시군의 대학교원이올시다.》

《아니, 우리 애의 선생님이라구요?!》

어머니는 서둘러 대청마루를 내려서더니 작은 몸을 구부려 깍듯이 인사를 차리고나서 성급히 아들의 소식부터 물었다.

《우리 아즈시가 어떻게 되였소이까?》

어머니의 안타까운 시선에 부딪치자 야스이는 당황한 나머지 슬며시 얼굴을 돌렸다.

그자신이 바로 그의 안부가 몹시 마음에 걸려 먼길을 일부러 찾아온것이 아니였던가. 헌데 어머니가 먼저 그것을 묻는다.

야스이는 난감한 립장에 처했다.

《이젠 전쟁도 끝났으니 돌아오겠지요.》

야스이는 그런 말로나마 아들을 기다리는 어머니를 달랠수밖에 없었다.

《글쎄 살아있기나 한지?…》

어머니는 땅이 꺼지게 한숨을 내쉬고나서 잠시 망연히 서있다가 별안간 정신이 든듯 손님을 집안으로 모셔들였다. 그리고 김이 모락모락 피여오르는 차를 권했다.

《선생님도 모르는걸 보니…》

어머니는 서글피 중얼거렸다. 매일과 같이 기다리는 아들이였다. 그자식이 살아서 돌아오기를 애오라지 바라며 하루에도 몇번씩이나 부처에게 빌고빌면서 줄창 가슴조이며 살아오는 어머니였다. 만저우사변에서 남편을 잃은 녀인에게는 슬하에 단 하나인 그 아들이 세상의 모든것이였고 유일한 삶의 언덕이였다. 조상대대로 물려온 부침땅마저 그자식의 뒤바라지로 다 떠밀면서도 하나도 아쉽게 여기지 않았다. 큰 공부를 한다는 그것이 무엇에 비길수 없는 기쁨이며 행복이였던것이다.

그렇듯 소중한 아들의 생사를 교원마저도 모르고있으니 어머니의 실망은 이를데 없이 컸다.

《선생, 세상이 왜 갈수록 험해져만 간다오? 우리네 백성들이 전생에 무슨 죄를 졌다고 재앙만을 들씌우니… 남편을 빼앗아갔지… 나중엔 자식마저도…

갖은 정성을 다해 불공을 한들 무슨 소용이겠소. 대자대비하신 부처님이 어째 그렇게도 무심하단말이웨까?》

어머니는 심중의 의분을 흐느끼듯 하소연하였다. 청순한 마음의 응어리를 터치지 않고서는 참을수 없는 모양이였다.

《어머님, 너무 걱정마십시오. 요즘 군인들이 한창 귀환중이니까 이제 아즈시군도 꼭 돌아올겁니다. 기다립시다.》

야스이는 애타하는 녀인을 달리는 위로할 길이 없었다. 그자신도 그런 희망과 기대를 가지고있었다. 무모히 죽지 않겠노라고 하던 제자의 그 말을 믿고싶었던것이다.

《아무렴, 부처님이 그렇게도 무정하겠소이까.》

이렇게 중얼거리며 어머니는 숙연히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또다시 불단앞에 가 정좌하여 념주를 한알한알 헤아리며 중언부언 불공을 시작한다.

야스이는 사뭇 애처롭게 생각되였다.

방금 녀인은 전세에 무슨 죄를 졌기에 불행만을 겪어야 하는가고 신세를 개탄하며 부처를 원망하였다. 그것은 신앙에 대한 회의와 반발에서 일어난 감정이리라. 대자대비의 자비를 설교하며 인간의 머리우에 군림하여 어진 백성들을 희롱하는 허상, 죄많은 인간을 열반의 기슭에로 불러 수난과 범죄를 해탈한다며 수수천년 내려오며 사람들을 몽롱한 세계에로 유혹해온 《인과응보설》의 교리나 《천인감응설》경전, 그 모든것이 다 자비를 가상한 터무니없는 허울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들은 무지와 몽매의 틈새에 기생하여 솟아나 허위와 기만으로 사람들을 희롱하는것이 아닌가.

가난과 굴욕, 환멸과 랭담만이 살아 독을 뿜는 세상의 그 악순환의 혼돈속에서 광명과 행복을 애타게 찾아 헤매는 사람들을 사슬로 얽매여놓고 사물의 가치도 판단의 기준도 상실케 하고있는 이 허망한 인습에서 어떻게 하면 사람들을 탈피케 하고 구출할수 있단말인가?

야스이는 나무아미타불의 념불삼매속에 몸도 마음도 띄워놓고있는 녀인을 당장 불단앞에서 일떠세울 충동으로 마구 가슴이 달아올랐다. 헌데 웬일인지 선뜻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는 울끓는 심사에 못이겨 대청마루앞을 오락가락하며 한동안 떠나지 못하고 헤매였다.

비가 억수로 쏟아져내렸다. 전장에서 쓰러진 원혼의 피웨침인듯 비는 한대중으로 소리치며 땅바닥을 질펀하니 적셨다. 사방 어디나 우중충한 검은 음영으로 뒤덮였다.

사도미 아즈시는 어느 집 처마밑에서 비를 그을념도 하지 않고 나무지팽이에 몸을 의지하여 다리를 절룩거리며 걸어가고있었다. 군복퇴물이 걸레짝처럼 되여 이미 온몸이 물참봉이였으나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더럽혀진 육신을 자연의 정화수가 말끔히 가시여주는것 같아 차라리 좋았다.

륙군형무소에서의 반년나마의 옥살이에서 해방되여 오랜만에 바깥세상과 접하게 된 그로서는 입안으로 자꾸만 빨려드는 비물조차 신선한 감로수인양 느껴졌다. 정녕 패전의 행운이 차례지지 않았던들 그는 철창속에 청춘을 고스란히 묻어버릴번 했다.

눈으로 말려드는 물기를 연방 손으로 뿌리치며 진창길을 터벅터벅 걸어가노라니 사도미는 암담한 나날에 겪었던 일들이 환영처럼 자꾸만 갈마들었다.

징모된 학도병들속에서 사도미는 우수한 병정감으로 선발되여 비행사훈련을 받았다. 속성으로 조정법만을 필한 후 황군의 정예비행대에 배속되였다.

그 비행대는 일명 《가미가제(신풍)특공대》라고도 불렀다.

어느날 그들의 특공대에 적함선을 격침할 전투명령이 내렸다. 단독비행으로 공격대상물에 접근한후 급강하하여 적함선을 격파침몰하라고 했다. 비행기와 함께 육탄이 되여 결사로써 명령을 수행하라고 하였다. 《옥쇄》하라는것이였다. 목적지까지 가는 연유만을 급유하고 돌아올 몫은 애당초 주지 않았다.

출동태세를 갖춘 대원들은 지휘관이 부어주는 《온시노 사께(천황이 돌격선에 나서는 군인에게 마지막으로 주는 술)》를 마신후 장송가와 같은 《우미유까바》라는 선창의 노래로 천황에게 충성다할것을 소리합쳐 불렀다.

모두 다시는 돌아올수 없는 세상과 마지막으로 작별하여 죽음에로 이어진 항로를 묵묵히 날아갔다.

사도미 아즈시는 무모히 생명을 던지고싶지 않았다. 죽음이 두렵거나 비겁해서가 아니였다. 불의의 전쟁마당에서 헛되이 목숨을 잃은 부친의 전철을 절대로 밟을수 없었다. 평소에 제국침략정책에 강한 반발의식을 품어온 사도미였다. 허지만 명령을 거역하면 어떤 대가가 차례진다는것을 아는터여서 부득이 하늘로 날아오르지 않으면 안되였다.

지옥의 함정과 같은 검은 바다가 눈앞에 펼쳐졌다. 조향간을 틀어잡고 전방을 직시하는 사도미의 뇌리에는 이때 대학의 륜리학시간에 받은 옛 철인의 말이 상기되였다.

스피노자(17세기 네데를란드의 유물론자)는 자유인은 죽음을 무엇보다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그의 현명성은 죽음이 아니라 삶에 대하여 생각하는데 있다고 하였다. 또한 에피쿠로스(고대그리스의 유물론자)도 역시 《죽음의 현존론》을 부인하였다.

《…모든 나쁜것들중에서 가장 무섭다고 하는 죽음은 우리에게는 아무 상관도 없다. 왜냐하면 우리가 살아있을 때에는 죽음은 아직 존재하지 않으며 한편 죽음이 닥쳐왔을 때에는 우리가 존재하지 않기때문이다. 하기에 죽음은 산 사람들에게도 죽은 사람들에게도 상관이 없다. 그 리유는 전자에 대하여서는 죽음은 현존하지 않으며 후자에 대해서는 이미 존재하지 않기때문이다.》

그들의 말을 단순히 궤변이라고만 할수 없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지금 자기앞에 무엇이 기다리고있는가. 운명의 종말이 시시각각 닥쳐오고있다.

모든 생명체는 자기를 보존하려는 본능적인 욕망을 가지고있기 마련이다.

사도미는 그 철인들의 말을 따라서라기보다 이 시각 오직 삶만을 생각하였고 애당초 죽음에 대해선 념두에조차 두지 않았다. 사람으로 태여난바에는 무엇인가 뜻있는 일을 하다가 세상을 하직하고 싶었다.

그는 바다우를 몇차례 헛되이 선회하다가 결단끝에 기수를 역전시켜 도로 기지로 되돌아오고말았다. 불시착륙의 충격으로 작은 비행기는 지상에 곤두박혔다. 그 서슬에 그는 피투성이가 되여 의식을 잃었다.

전투명령을 수행하지 않고 살아서 돌아온 사도미는 헌병대에서 여러날 심문을 당했다. 모진 고문앞에서 그는 방향계기판의 고장으로 항로를 미실하였다는 그 한가지 구실만을 되풀이하며 완강히 내뻗치였다. 그리하여 다행히도 총살은 면하고 형살이의 몸이 되였다.…

사도미는 련 사흘을 지친 몸을 끌고 걸었다.

도꾜를 거쳐 고향으로 가는 길은 아직도 멀었다. 그는 가는 걸음에 야스이교수집에 들리기로 결심했다. 과연 스승이 전란속을 무사히 헤여나왔는지 몹시 궁금하였다.

사도미는 걸음을 재촉했으나 좀처럼 길은 축나지 않았다.

비가 멎자 찌는듯 한 무더위가 확확 내뿜기 시작했다. 허나 그는 광명의 천지에서 숨쉬고있다는 그 황홀감에 취해 더위도 피로도 몰랐다.

열흘만에야 도꾜에 닿을수 있었다.

어슬막이였다. 교수댁의 울밖에 당도한 사도미는 성큼 안으로 들어서지 못하고 잠시 밖에서 서성거렸다. 감회가 새로왔다. 징병소집령장을 들고 이 집을 찾아왔던 지난날의 삭풍 휘몰아치던 그밤이 회상되였다.

그러나 그 회상은 이때 어디선가 은은히 들려오는 피아노소리에 흩어지고말았다.

사도미는 저절로 가슴이 달아올랐다. 얼마만에 접하는 음악인가. 정서와 랑만의 세계와 일체 격페된 생활을 해온 그에게는 그 음향이 안겨주는 감흥이 너무나 강렬하였다.

그는 못박힌채 주린듯 피아노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분명 교수의 집에서 울려오는 선률이였다.

교수의 부인이 타는것 같았다. 평화롭던 학창시절 사도미는 교수의 지도를 받기 위해 학우들과 함께 이 집을 자주 찾아왔었다. 그런 날이면 스승의 안해는 기꺼이 학생들을 맞아주었으며 때로는 손님들을 즐겁게 해주려고 피아노앞에 앉는것도 서슴지 않았었다.

사도미는 그 행복한 나날의 회억속에 잠기여 들려오는 곡의 흐름을 조용히 음미해보았다.

그것은 모짜르트의 《진혼곡》이였다. 원한 품고 쓰러진 누구의 넋을 달래는것인지 저녁대기속으로 고요히 스며드는 울림은 그의 심장을 고동치게 하였다. 비행기와 함께 《옥쇄》한 전우들이 그 얼마였던가.

이윽고 피아노소리가 멎었다.

사도미는 손에 들었던 지팽이를 내던지고 교수의 집울안으로 들어갔다.

현관머리에 서서 주인을 찾았다.

누군가가 복도의 마루바닥을 조심히 울리며 다가왔다.

현관에 나타난것은 교수의 부인이였다.

사도미는 반가움에 못이겨 큰소리로 인사했다.

《사모님, 안녕하십니까! 저올시다.》

《아니, 이거?! 돌아왔군요.…》

예나 다름없이 용모가 단아한 부인의 아름답고 커다란 두눈이 금시 번쩍 빛을 뿜었다.

훤칠한 키와 번듯한 이마만으로도 상대가 누구라는것을 대번에 알아본 부인이였으나 험상궂게 변한 청년의 모습앞에서 그는 놀라움을 금치 못해하였다.

그동안 이 젊은이로 하여 남편이 얼마나 마음 드달려왔던가.

《참으로 다행이예요! 어서 안으로…》

부인은 경황없이 청년의 손목을 잡아 집안으로 이끌며 성급히 남편을 찾았다.

그 부름에 미닫이문이 스르릉 열리더니 이어 야스이 가오루가 얼굴을 내밀었다. 순간 두 사나이의 시선이 부딪쳤다.

《선생님!…》

《오- 사도미군, 왔구만, 왔어!…》

야스이는 격하게 부르짖으며 방안에서 뛰쳐나왔다. 그리고 두팔을 벌려 말없이 그를 뜨겁게 포옹했다. 이 제자의 생사가 마음에 걸려 얼마나 안절부절해왔던가. 헌데 이처럼 불쑥 나타났으니 야스이의 기쁨은 이만저만이 아니였다.

그들의 이 해후를 옆에서 지켜보던 다즈꼬부인은 한손을 얼굴로 가져가며 조용히 돌아서더니 얼른 방안으로 들어갔다.

부인은 남편의 제자를 위해 온갖 정성을 다하였다. 목욕물을 끓인다, 남편의 옷가지에서 그가 입을만 한것을 찾는다 하며 부지런히 돌아쳤다.

살아서 돌아온 그 제자를 부둥켜안고 그토록 기뻐하는 남편을 볼 때 부인은 지루했던 장마끝에 푸른 하늘을 대한듯 저으기 마음이 맑아졌다. 근간에 언제한번 오늘과 같이 집안에 밝은 빛이 스며든적이 있었던가.

정녕 사도미의 출현은 그간 이 가정에 드리워있던 검은구름을 말끔히 가시여준듯싶었다.

《…저는 비행기에 몸을 싣고 하늘로 날아오른 순간 죽음에 대하여 론한 스피노자와 에피쿠로스의 말이 생각되였습니다.》

사도미가 스승앞에서 그간 자신이 겪은 자초지종을 말하던끝에 하는 소리였다.

야스이는 모진 시련을 겪은 그의 이야기를 들어서야 전에 헌병대위가 찾아왔던 사연을 비로소 알게 되였다. 《참전의 불가피성》을 학생들에게 설유했던 강의시간의 일이 돌이켜졌다. 그때 이 청년은 어떤 태도로 나왔던가. 야스이는 그의 앞에 얼굴을 들수 없었다.

《물론 죽음은 그 누구도 피할수 없는 숙명적인것이지요. 헌데 그 철인들은 사람이 인생의 마무리를 어떻게 장식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선 일언반구도 안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자기 결심대로 행동하고 각오를 다지게 되였습니다. 기어이 살아서 헛된 희생을 강요하는 이 무지막지한 사회와 대결하리라고말입니다. 군벌들은 〈제국을 위하여 벗꽃처럼 피고 지라〉고 걸핏하면 떠벌이군 했는데 인간을 우롱해도 분수가 있지 얼마나 황당무계한 소리입니까.》

사도미는 기가 찬듯 허거프게 웃었다.

야스이는 고개를 숙인채 묵묵히 그의 말을 듣고있었다.

그것은 웃음으로 스쳐버릴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였다. 그가 그 준엄한 생사운명의 기로에서 얼마나 처절한 체험을 하였기에 옛 철인이 한 소리까지 더듬어보게 되였으며 한편 이 사회에 대하여 날카로운 눈초리를 돌리게 되였으랴.

야스이는 그의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한층 자책이 컸고 생각이 깊어졌다.

방금 사도미도 말했듯이 그 철인들은 죽음의 자연성과 보편성을 론하였을뿐 어떤 죽음이 값있고 깨끗한 죽음인가 하는데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들만이 아니였다. 예로부터 숱한 철인성자들이 인간의 유한성문제를 둘러싸고 별의별 력설을 하여왔으나 값있는 삶의 마무리에 대해서 아직까지 이렇다 할 대답을 주지 못했다. 헌데 이 제자는 그에 대하여 무언가 깊이 시사해주고있지 않는가.

야스이는 오늘따라 새삼스럽게 자신의 인생관을 심각히 돌이켜보지 않을수 없었다.

그는 마침내 머리를 들고 입을 열었다.

《어쨌든 장하오. 그 지옥같은 속에서도 지조를 굽히지 않고 꿋꿋이 삶을 이겨냈으니… 방금 군도 말했지만 우리는 헛되이 죽을수 없소. 하루를 살아도 값있게 살아야 하지. 헌데 나는 그렇게 못했소. 사회과학도로서의 투철한 세계관을 가지지 못했던탓으로 민중앞에 옳은 방향각을 내놓을수 없었고 도리여 죄악만을 범했소.… 기둥이 튼튼치 못한 이지러진 학문, 이른바 절름발이 정신력이 바로 사태를 조장시켰지. 참으로 군들을 대할 면목이 없소.…》

야스이교수의 묵직한 얼굴에는 죄책감이 짙게 어려있었다.

사도미는 저으기 당황하였다. 평소에 학생들로부터 량심적인 학자로 존경받아온 교수가 스스로 자기자신을 준절히 힐난하며 채찍질하고있는것이다.

그는 스승의 심정을 헤아리고도 남았다. 불의에 가차없는 교수로서는 그 가책이 어찌 크지 않으랴.

《선생님, 무슨 그런 말씀을… 너무 자신을 괴롭히지 마십시오. 그러지 않아도 전쟁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입혔습니까. 저는 이번 전쟁을 통하여 실로 많은것을 체험하였습니다.…》

사도미는 절절하게 외웠다. 그 지긋지긋한 전쟁터에서 그가 살아난것은 오직 제국에 대한 강한 저항의식때문이였다. 그것이 곧 고통도 죽음도 물리칠수 있는 힘이 되였던것이다. 그러나 사도미는 구태여 그것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선생님, 우리 가슴마다에 깊이 새겨져있는 그 상처를 장차 어떻게 해야 가셔낼수 있겠는지요?》

야스이는 그 물음에 한층 생각이 깊어졌으나 곧 머리를 들어 대답했다.

《과학만이 절대적인것으로 인정해온 낡은 관념을 버리고 〈살창없는 감옥〉에서 뛰쳐나오는것이요. 지난날 과학자들의 피어린 열매가 누구의 손에 쥐여졌소? 제국침략전쟁수단으로, 자본가의 치부를 더해주는것으로 리용당해오지 않았나말이요. 이렇듯 롱락을 받으면서도 진리와 량심을 운운해왔으니…》

교수는 갑자기 목이 막힌듯 기침을 톺았다.

사도미는 더는 말하지 못했다. 스승의 심중을 충분히 알수 있을것 같았다.

허나 그는 야스이교수가 지금 어떤 전환점에 서서 지난날의 그 자신의 학문과 생활의 모든 령역을 랭혹히 돌이키고있는가를 다는 모르고있었다.

다난했던 그 해, 야스이 가오루의 나이는 사십을 바라보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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