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편   타지 않는 불

 

제 1 장

시간이 삼경도 훨씬 넘어선 깊은 밤이였다.

원고의 마감을 매듭짓고난 야스이 가오루교수는 펜을 놓고나서 일단 달아놓았던 제명을 다시한번 음미해보았다.

《대동아공영권과 국제법》

어지간히 마음에 들었다. 달리는 할수 없었다. 그대로 앉히기로 했다.

새 저술에 림할 때마다 매번 그 제목을 정하는데 적지 않게 신경을 쓰게 된다. 한 책자의 눈이라고도 할수 있는것을 절대로 소홀히 할수 없었다. 눈이란 언제나 명료한 빛으로 사물을 투시해야 한다.

《됐어!》

야스이 가오루는 흥겨이 중얼거리며 책상머리를 떠나 서재의 한복판으로 나가 우뚝 섰다. 량팔을 크게 벌려 가슴을 쭉 폈다. 온 육신의 피로가 삽시에 봄눈 녹듯 스르르 풀리는듯 했다.

고심참담 품을 들여온 하나의 저술이 드디여 완성되였다는 쾌감으로 저으기 기분이 맑아졌다.

그간 그것을 위해 바쳐온 사색과 탐구의 나날들이 새삼스러운 감회속에서 돌이켜졌다. 교단에 서는 일방 여러 달이나 집필을 계속하여온, 분량이 적지 않은 글이였다. 그 원고와 씨름하며 지새운 밤인들 얼마였던가.

한동안 감흥에 젖어있던 야스이교수는 천천히 콜럼비아축음기 앞으로 다가섰다.

천매도 넘는 소리판속에서 한장을 골라 음반에 올려놓았다. 잠자는 가족들을 생각하여 음량을 조절했다.

음반이 돌아갔다.

교수는 안락의자에 편히 몸을 맡기고 음악에 귀를 기울였다.

고요가 짙은 깊어가는 가을밤, 집필에 열중하다 휴식짬에 홀로 조용히 감상하는 음악가운데 슈벨트의 현악4중주곡 《죽음과 처녀》가 유별히 좋았다. 평소에 교수는 이 곡을 즐겨 들었다. 이 시각에도 그것이 작은 시내의 잔잔한 흐름처럼 실내의 정숙을 조심스레 흔들며 울리고있다. 그는 비장하고 숭엄한 음악의 선률에 조금이나마 손상이 갈세라 저어하듯 숨마저 죽이고 그 흐름에 온 마음을 모으고있었다.

음악은 랑만과 환상을 낳는 어머니였다. 교수의 뇌리에는 어느덧 상상의 바다가 출렁이였다.

중국과 인디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 아시아의 광활한 대륙과 아름다운 섬나라들이 미, 영, 프랑스 등 악착하고 탐욕에 눈이 뻘개진 이리떼에게 물어뜯기고 찢기워 날로 피투성이가 되여가고있다. 그 이방의 사나운 맹수들에 의해 무참히 살해당한 부모의 주검을 붙안고 몸부림치며 통곡하는 처녀들… 그 모든 참상을 《강건너 불보듯 할수 없다》는 구실하에 총칼을 들고 그 나라들에 진출하는 일본제국… 하긴 그렇다, 서양인들의 강도적발길이 장차 자기의 조국 일본땅을 짓밟으며 밀려들지 않으리라고 장담할수도 없는것이다.

그가 방금 탈고한 글줄마다에는 바로 이러한 사태에 대한 분노와 경계심이 새겨져있었다.

야스이 가오루는 지구상에 련속적으로 지펴진 전쟁의 년대속에서 학문의 길을 걸어왔다.

그가 대학을 졸업한 이듬해인 1931년에는 만저우(만주)사변이 일어났고 뒤이어 중일전쟁과 제2차 세계대전에로 전쟁의 불길은 련달아 지펴졌다.

이처럼 이어진 전란속에서 살아온 야스이 가오루는 근간에 와서 국제법학자로서의 자기 자세를 랭철히 돌이켜보게 되였다. 그리하여 학자적량심과 사명감에서 출발하여 붓을 들어 시도한것이 곧 《대동아공영권과 국제법》이라는 저술이였다.

그는 이 글에서 20세기에 들어 더욱 우심해지는 서구자본주의렬강의 침략과 략탈로부터 《동양을 수호》하고 평화롭고 번영하는 아시아를 건설하자는것을 제창하였다. 이를테면 일본을 포함한 아시아나라들은 호상 존중, 협조하는 정치공동체에 의한 《대동아공영권》의 련방제를 실시하여 서구의 침략을 막아내고 착취와 압박이 없는 《공존공영》의 리상사회를 세우자는것이였다.

그것이 실현되는 날이면 동양에는 전쟁이 영원히 종식될것이고 오직 진보와 번영만이 있는 광명한 세상이 마련되리라는것을 력설하였다.

야스이 가오루는 이러한 립장과 관점에 서서 그것을 집필하였던것이다.

《죽음과 처녀》의 현악기의 중주곡은 아름다움에 대한 동경과 악에 대한 타매의 감정이 서로 어울려 울리면서 교수의 심장에 무시로 파동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흡족했다. 제딴으로는 이번의 저술이 아시아에 새로운 질서와 평화의 경지를 열어놓고 인류의 복리증진에 적지 않게 기여하게 되리라 생각되였다.

차츰 장중히 고조되여가는 음악의 흐름속에 몸도 마음도 말려든 교수는 새벽의 려명이 소리없이 유리창문에 비껴드는것조차 느끼지 못하고있었다.

그 원고를 출판사에 보낸지 두달나마 된 어느날이였다.

밤이 깊어 자정도 가까운 시각에 야스이교수의 저택에 한 래방자가 있었다.

미군폭격기의 공습을 알리는 경보싸이렌이 울린 뒤여서 주변은 어디나 할것없이 불빛 한점 보이지 않고 캄캄한데다 삭풍까지 휘몰아치여 도시는 온통 을씨년스러웠다.

야스이교수는 어두운 정원에서 래방자를 맞이하여 서재로 안내하였다.

객은 사도미 아즈시학생이였다.

서재는 창문마다 차광막이 묵직이 드리워져있는데 탁상등의 불빛이 서가에 꽂혀있는 수많은 책들을 어슴푸레 비쳐주고있었다.

책과 자료무지들이 절반나마 차지한 책상우에는 이제까지 교수가 무슨 집필을 하고있었던듯 뚜껑이 열린채로 있는 만년필이 쓰다만 원고지우에 놓여있었다.

사도미는 교수가 권하는대로 의자에 앉았다.

다리에 각반을 칭칭 동인 그 학생은 까만 교복차림이였다.

야스이는 밝은 방안에 들어와서야 사도미학생의 전에 없이 무거운 기색을 알아봤다. 평소에 명랑하고 락천적인 학생이였다. 그렇지 않아도 야밤의 방문이여서 심상치 않게 여겼는데 그의 어두운 모습에 접하자 야스이는 저절로 야릇한 기분이 들었다.

불안하고 뒤숭숭한 세월이였다.

황군에 의한 하와이섬의 진주만공격을 서막으로 일본이 미국에 선전포고를 한 때로부터 어느덧 세번째의 겨울을 맞이하고있는 도꾜였다.

제2차 세계대전의 불길은 날이 갈수록 광활한 지역에로 타번져 《대본영발표》를 알리는 방송원의 목소리가 열을 띠고 울리는속에서 공습경보의 회수가 부쩍 증가되여가고있었으며 한편 《국가총동원령》이 그 어느 시기보다 광기를 뿜으면서 나라안의 인적, 물적 자원을 모조리 전쟁에로 내몰고있었다.

참으로 준엄하고 암담한 시국이였다. 사람들은 너나없이 자기 운명을 기약할수 없었다.

야스이교수는 담배를 붙여물며 사도미와 자리를 마주하고 앉았다. 그제서야 학생의 입에서 술내가 풍기는것을 비로소 느끼고 한층 의혹에 잠겨 눈살을 실룩거렸다. 지난날 교수의 지도를 받기 위해 자주 집에 들리군 했지만 아직껏 이런 일이란 한번도 없었던 사도미였다. 그는 교수들과 학우들속에서 장래가 크게 촉망되는 학생으로 지목되고있었다. 두뇌가 명석하고 학구열이 남달리 강해 대학 2학년에서 벌써 4개 나라 외국어를 습득해냈었다.

다른 교수들과 달리 야스이가 그를 각별히 대하게 되는것은 이 학생이 지니고있는 일본제국에 대한 저항의식으로 해서였다.

사도미 또한 야스이교수를 무척 따르고 존경하였다. 그는 교수의 강의시간을 귀중히 여겼고 열심히 청강하였다. 고결하고 풍부한 학식의 발현인듯 기품있고 사리정연한 언변으로 인도주의사상을 고취하는 교수의 그 열정적인 강의는 학생들에게 열렬한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커다란 감화력을 안겨주었다.

사도미가 인간의 가치관에 대하여 인식을 새롭게 가지게 된것도 야스이교수의 강의를 받게 되면서부터였다.

《선생님, 용서하십시오. 실은 학우들과 헤여지게 되여 한잔 나누었습니다.》

사도미는 마침내 이렇게 말하고나서 고개를 푹 수그렸다.

야스이교수는 점점 이상한 생각이 들어 성급히 물었다.

《헤여지다니, 그게 무슨 소리요?》

사도미는 천천히 머리를 들어 주머니에서 빨간 종이장을 꺼내여 말없이 교수앞에 내놓았다.

야스이는 얼른 그것을 집어들고 보았다. 징병소집령장이였다. 교수의 두눈에는 금시 놀라움이 비꼈다. 뜻밖이였다.

전쟁의 불구름이 점차 일본본토에로 몰려오기 시작하는 이즈막에 와서는 관립대학의 학생들도 징모대상으로 되고있는것만은 사실이였다. 가장 일류급으로 꼽히는 도꾜제대라고 례외로 되지 않았다. 그사이 숱한 학생들이 학업을 중단하고 전선으로 나갔다. 그런속에서도 학교당국은 정부와 절충하여 일부 우수한 학생들만은 그 대상에서 보류시키는 조치를 취해왔다. 국가의 장래를 위해서였다. 사도미가 이제까지 학교에 남아있은것도 그런 사정에서였다.

헌데 그의 앞으로도 징병령장이 날아든것이다.

야스이는 남방전선에서의 전황이 악화일로를 걷고있다는것을 모르지 않았으나 사도미에게까지 빨간 딱지가 온것을 보자 정세의 긴박성을 더욱 느끼지 않을수 없었다. 장차 국가의 귀중한 재목이 될 학생들마저도 싸움터에 보내지 않으면 안될만큼 전쟁이 위기에 처해있단말인가?

야스이는 번거로운 심사에 잠긴채 무겁게 입을 열었다.

《그래, 어떻게 할 작정이요?》

피할길 없는 길, 공연한 물음같았으나 달리는 할 말이 없었다.

사도미는 낯을 들고 교수를 주시했다.

《결심했습니다.》

《결심이라니?》

《징병에 응할… 그래서 선생님께 작별인사를 하러 왔습니다.》

야스이는 시선을 떨구고 한동안 침묵을 지켰다. 사도미의 그 결심이 미타하게 여겨졌다.

야스이는 전에 언젠가 학생들앞에서 일본의 《동아정책의 비극적인 2중성》에 대하여 피력한 일이 있었다.

《…이를테면 그 정책의 일면은 일본제국이 동아를 수호한다는 미명하에 아시아를 침략하는것이고 다른 한 측면은 오래동안 서구제국주의렬강으로부터 침략과 략탈을 당해온 아시아를 해방하는것입니다. 일본이 아시아를 해방한다는 후자의 경우, 이는 분명 력사의 흐름에 합류하는것으로서 선진국 일본이 마땅히 취해야 할 사명이라 할수 있는것입니다. 그러나 〈동아수호〉라는 구실로 침략을 미화하며 방편삼는다는 전자의 경우, 그것은 일본으로서 만회할수 없는 죄악을 범하는것으로밖에 안될것입니다. 우리는 이 비극적 2중성에서 벗어나 진정한 아시아의 해방자가 되여야 할것입니다.》

당시 태반의 지성세대들은 이런 나라의 정책에 대하여 말없는 항거로써 침묵을 지켰으나 야스이는 교단에서나마 자기 견해를 발설했던것이다.

헌데 교수의 그 발언이 수긍되지 않는듯 그때 사도미학생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질문을 하였다.

《그런 비극적 2중성을 범하지 않기 위해 일본이 전쟁을 일으키는것도 불가피하다는것입니까?》

응당 품을수 있는 의문이였으나 야스이는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망설이였다.

실상 서구렬강의 침략으로부터 《동아수호》를 한다는것으로 참전의 불가피성을 요란하게 선전하는 일본제국정책에 어느 정도 긍정하는 립장에 서있던 야스이였다. 그렇게라도 하여 아시아를 지켜야 하지 않는가. 물론 제국의 이런 행위에 대하여 경계심을 가지고 대했다. 얼마전 출판에 넘긴 그의 저술에도 그것이 반영되여있었다. 그러나 그 저술에서 야스이가 내놓은 진의도는 제국이 추구하고있는 《대동아공영권》의 본성과는 엄연히 달랐다. 제딴으로는 학자의 량심에서 솔직한 의사를 표명하였다. 헌데 사도미학생은 그것이 잘 납득되지 않는 모양이다. 뿐더러 매우 심각한 물음을 던졌다.

야스이는 한동안 궁싯거리다가 얼굴을 들었다.

《사도미군의 질문은 좀 연구해보고 후날에 대답을 주겠습니다.》

이렇게 그자리를 모면하려고 하였다.

교수의 두리뭉실한 태도에 사도미는 저으기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잠시 서있다가 의자를 삐걱거리며 자리에 앉았다. 그는 뭔가 말하고싶었으나 자기 지식이나 판단으로써는 교수를 납득시킬수 없다는것을 깨닫고 더는 입을 열지 못하였던것이다.

야스이교수의 《2중적비극성》에는 얼핏 보건대 긍정점도 있는것처럼 들리나 일본과 아시아를 지킨다는 명분하에 참전을 시사하는 그 론조가 사도미의 비위에 몹시 거슬렸다. 이랬거나 저랬거나간에 일본의 참전이란 곧 다른 나라에 대한 침략을 의미하는것이며 그것은 엄연한 범죄의 길인것이다.

평소에 존경해마지 않던 교수의 입에서 그처럼 모호한 소리가 나온것이 사도미로서는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되였다.

야스이교수는 어떤 경우를 막론하고 자기 의사를 언제나 명확하게 표명해왔다. 허나 그것을 남에게 강요하거나 상대방의 사소한 자유를 구속하는따위 행동을 하는것은 아주 질색하였다. 그만치 교수는 일거일동이 절제있고 겸허했다. 그의 이 모든 기질은 선량한 성품과 완고한 고집에 의하여 한층 보충되였다. 풍부한 학식과 예민한 분석력을 지닌 재사들이 대체로 그러하듯 그도 남달리 고집이 센것으로 하여 수다한 문제들을 낳게 하였다.

사도미는 스승과의 오랜 접촉을 통하여 그의 인간됨됨을 깊이 체험했었다.

1930년 봄, 야스이 가오루는 도꾜제국대학 법학부 정치학과를 졸업하였다.

교수들의 절대적인 신임과 기대, 재학중의 최고성적점수, 그것으로 하여 야스이는 스물네살의 새파란 청년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졸업하자 일약 모교인 제국대학의 교단에 서는 몸이 되였다.

동료들의 선망속에서 야스이가 그 대학에서 교편을 잡은지는 그리 오래지 않았으나 그간 그를 둘러싼 일화들이 사람들의 입에 적지 않게 올랐다.

사도미가 대학에 들어가 얼마 안되여서였다.

학기말시험을 앞둔 어느날 그는 교수의 조언을 받으려고 야스이를 찾아갔다.

《선생님, 저로서는 열심히 청강하고 자습하느라 하지만 난점이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어떤 방법으로 학습을 해야 능률이 나겠는지요?》

《시험이 걱정되여 그럽니까?》

《…》

정통을 찌르는 교수의 물음앞에서 사도미는 낯을 붉히며 우물쭈물했다.

야스이교수는 학생의 그런 기분같은것은 안중에 없는듯 범상한 어조로 일렀다.

《시험이란 뇌수를 정화시켜주는 즐거운 오락이나 같습니다. 머리를 아끼지 마시오. 사고하고 탐구하기 위해 사람에게 뇌수가 있다는걸 명심하면 됩니다. 그러면 시험에서 〈우〉를 얻는것쯤은 수월합니다.》

사도미는 아연했다. 시험을 한갖 《즐거운 오락》이라고 선선히 규정하는 교수의 그 말을 어떻게 새겨들었으면 좋을지 몰랐다. 세상에 시험을 락으로 여기는 학생이란 아마 하나도 없을것이다. 그것을 위해 너나없이 얼마나 피어린 대가를 치르고있는가.

사도미는 지나치게 완곡되고 과장한듯 한 교수의 말에 언짢은 생각마저 들었다.

허나 결코 그런것이 아니였다.

후날 선배들이 들려준데 의하면 야스이교수는 학생시절 전과목 《우》를 한번도 놓아본적이 없었다고 한다. 전국의 수재생들이 거의 모여있다는, 명문의 《최고교육전당》이라는 그 대학에서조차 그토록 우수한 성적의 소유자가 나기는 한해에 한 사람이 있을가말가했는데 야스이 가오루는 그처럼 출중한 존재였던것이다. 과연 그는 시험을 《즐거운 오락》으로 대했던것이 분명했다.

설사 그 자신은 그렇더라도 교육자의 립장에서 그런 소리를 함부로 토설한다는것은 좀 신중치 못한 처사가 아닐가?

그러나 야스이는 원래가 그런 사람이였다.

그는 자기 의사나 감정을 표명하는데 언제나 린색하지 않았으며 솔직하고 명료하였다. 채색하거나 과장할줄을 조금도 몰랐다. 그것이 높은 지성과 순결무구한 성품에서 발현되는것이라고 동료들은 이야기하군 했다.

야스이 가오루는 언젠가 학생들앞에서 자신의 학구적태도를 은근히 내비친바 있었다.

《우리는 민중의 힘을 소중히 여기고 그 힘이 헛되이 소비되지 않도록 하여야 할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 지성세대들은 사회의 력사적제조건을 정확히 판단하여 민중으로 하여금 진보와 번영의 길로 나갈수 있도록 선도하여야 합니다. 그것이 곧 우리 과학도의 의무가 아니겠습니까. 여러분도 아다싶이 학문의 목적이란 진리를 추구하는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더러 왜 진리를 추구하는가를 묻는다면 그것은 민중에게 행복을 마련해주기 위해서라고 대답할것입니다.》

지난날의 교수의 학문에 대한 자세와 립장을 생각하면 할수록 사도미는 무언가 배반당하는듯 한 기분에서 벗어날수 없었다.

사도미학생의 매우 못마땅해하는 기색을 보자 야스이는 불만을 초월한 어떤 저항의식이 청년의 가슴에 뿌리내려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황군이였던 부친을 만저우사변에서 잃은 사도미였다. 전쟁이 인간에게 들씌우는 재난과 불행을 너무나 일찍부터 체험하고있는 학생으로서는 벌써부터 반전사상이 자라올라있었는지 모른다.…

그런 일이 있은지가 퍼그나 되도록 사도미가 그때 질문한 문제에 대답을 주지 못했던 야스이였다.

그러했던 사도미학생이 징병에 순순히 응할 결심을 했다니 야스이로서는 미타하게 여길수밖에 없는 일이였다.

그는 생사를 기약할수 없는 전쟁마당으로 나가는 사랑하는 제자의 운명이 걱정되면서도 그의 앞을 막아나설수 없는것이 괴로왔다. 그리고 이들을 떠나보내며 흔히 항간에서 하는 《동양평화를 위해 잘 싸우다 돌아오라》고 하는 그 말조차 무슨 욕된 소리같아 차마 입밖에 낼수 없었다.

이윽고 사도미는 의자에서 일어나며 불쑥 말했다.

《선생님, 저는 제국을 위해 헛된 죽음을 한 부친처럼 자신을 절대로 희생시키지 않겠습니다.》

《…》

야스이는 말없이 사도미를 쳐다보았다. 그의 두눈은 뻘겋게 충혈되여있었다.

그는 숨을 한번 몰아쉰 다음 한층 거센 어조로 내쏘듯 말했다.

《무엇때문에 그처럼 무모히 목숨을 버린단말입니까? 선생님도 말한바 있는 〈대동아공영〉을 위해서란말입니까? 아시아를 위해서 피를 흘리라… 저는 그렇게는 하고싶지 않습니다.》

학생이 방금 한 소리는 교수의 가슴을 허비였다. 그것은 전날의 강의시간에 한 자기 발언을 두고 하는 신랄한 론박이며 비판이였다. 무슨 말이건 그의 물음에 반응을 보여야 하겠으나 혼란된 감정때문인지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야스이는 슬며시 고개를 돌려 제자를 외면하였다.…그는 떠나갔다. 어수선한 리별이였다.…

그토록 어설핀 상태로 서로 헤여진후 사도미 아즈시에게서는 아무 소식이 없었다.

포연탄우가 작렬하는 전장에 있는 사람의 안부를 기다린다는것은 맹랑한 일이였으나 야스이교수는 그 제자의 무사함을 바라며 한시도 기대를 버리지 못하였다.

사도미학생과 헤여진지도 어느덧 한해가 지났으나 그 제자의 소식은 의연히 알길이 없었다.

거의 모든 학생이 징모되여간 대학은 이젠 수업을 중단하다싶이 되였다.

어느 교사나 조용했다. 교정에는 사람의 그림자조차 찾아보기 어려웠다. 배움의 숨결로 항상 충만되여있던 학문의 전당이 이토록 한산한 공기에 휩싸여보기는 오랜 전통을 지닌 이 대학의 창설이래 처음이였다.

그날도 야스이교수는 자기곁에 없는 제자들의 모습을 그려보며 대학으로 나왔다.

자기 방에 들어선 그는 실내가 사뭇 답답하게 느껴져 소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았다.

이른봄이였으나 아직은 바람새가 쌀쌀했다. 그러나 하늘만은 파릿하게 맑았다. 그 푸른 창공에는 전쟁의 흔적조차 비껴있지 않았다. 반면에 인적이 없는 교정은 어디를 보나 쓸쓸했으며 담장가에 서있는 나무들은 바람에 앙상한 가지들을 마구 뒤채며 몸부림치고있었다.

야스이는 열어놓은 소창문으로 찬기운이 휩쓸어드는데도 의연 실내의 답답함에서 벗어나질 못하였다.

근간에 들어와 그는 무시로 밀려드는 중압감으로 하여 하루도 마음이 안정되지 않았다. 가정에서나 학교에서나 마찬가지였다. 일이 통 손에 잡히지 않고 노상 우울했다. 전쟁의 회오리속에 말려들어 갈팡질팡하는 혼돈된 세월처럼 안절부절 못하고 소일하고있었다. 이토록 알수 없는 심한 회의감에 싸여 자신을 걷잡지 못하고 지낸적이란 여태 없었던 일이였다.

갈수록 그를 괴롭히기 시작한 그 회의감이 처음 싹텄던것이 《동양수호》의 강의시간, 사도미학생의 반발을 산 그때부터인지 아니면 구로다 겐교수와의 불유쾌한 대면이 있었던 그날 이후인지 모른다.

달포전의 어느날이였다.

체격이 우람하고 부한 정치학교수 구로다 겐이 싱글거리며 야스이를 찾아왔었다.

구로다는 책상곁으로 의자를 끄당겨놓고 야스이와 마주하고 허물없는 자세로 앉았다.

《이 책을 잘 보았소. 매우 뜻있고 시사적인것을 안겨주더군.》

이렇게 먼저 입을 연 구로다는 손에 들고온 한 책자를 흔들어보였다.

야스이는 그것이 최근에 출판된 자기의 저서 《대동아공영권과 국제법》이라는것을 알았다.

《이게 자네의 몇번째의 저작이던가? 어쨌든 축하하네!》

소란을 피우듯 연방 떠들어대는 구로다를 야스이는 흥심없이 대했다.

살결이 두텁고 넙적한 얼굴의 구로다는 언제보나 틀거지있고 매사에 《처신》할줄 아는 사람이였다. 지금도 그가 말은 진정인듯 야단스럽게 하지만 웬일인지 야스이는 별로 감심되지 않았다.

구로다가 방금 찬탄하듯 말한것처럼 실상 야스이는 근년에 들어 장년기의 정력적인 학구심으로 하여 신진학자로서 현저히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였다.

대학의 교단에 선지 십년남짓밖에 안되였으나 그간 그는 여러 편의 학술론문을 지상에 발표하였고 한편 국제법에 관한 저서도 소박하게나마 몇권 출판했다.

야스이 가오루의 이렇듯 왕성한 저술활동을 보며 주위에서 은근히 속앓이하는 축도 있었으나 워낙 사심이 없고 결곡한 그는 거기엔 별로 관심하지 않고 자기 지향을 따라 조용히 나가고있었다. 학술연구에서는 학자들간에 론쟁과 시기가 항용 따르기 일쑤이다. 그것이 서로의 분발을 부추기는것으로 될지는 모르나 야스이는 신성한 학문의 세계에서 그따위 감정을 조금이나마 품는것을 엄격히 경계했다.

《뭘, 그리 떠들거리가 못되는 글이네. 이른바 저술이란 새것의 창조를 지향하는것이 아니겠나.》

야스이는 부끄럽다는 말을 하려다 그만두었다. 스스로도 구차스럽게 생각되여서였다.

두 사람은 고등학교와 대학에 이르는 전과정 내내 동창간으로서 피차 수재생으로 평판이 있었다. 그러한 학벌관계로 얽혀져있는 탓인지 둘은 매우 가까이 지냈다. 간혹 학술문제로 서로 론적이 되는 일도 있었으나 그것이 그들의 교우에 별로 손상을 주지 못했다.

잠시 입을 다물고 허공을 바라보던 구로다 겐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하긴 그렇지. 새것의 지향이 학자가 소중히 지녀야 할 태도라 하겠지.》

진중한 어조로 외우고난 구로다는 다시 의자에 걸터앉더니 야스이를 주시하며 비밀이야기나 하듯 속삭였다.

《〈공존공영〉의 대동아를 건설한다는 그 사상이 과연 당신의 창의에서 나온것인지?… 지금 일부 학자들속에서는 그것이 제국의 동아정책과 별로 구별되는것이 없다면서 당신더러 〈전쟁협력자〉라고 비난을 하고있네.》

《〈전쟁협력자〉라고?!… 그럼 내가 어용학자란말이요?》

야스이는 기가 찬듯 다소 어성을 높였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소리였다.

《나로서는 그렇게까지 생각되지는 않지만… 그래도 여론을 참작할 필요가 있다고 보네. 솔직한 말로 내가 보건대도 〈동양수호론〉의 제국정책과 비슷한 점도 있는것 같이 느껴지니말이요. 리해하게. 나의 로파심에서 생긴 부질없는 의혹이기를 바라며 해보는 소릴세.》

한다는 소리가 차츰 엄청난 방향으로 흘러가자 야스이는 눈살이 꼿꼿해지면서 심장의 압박감까지 느꼈다. 그러나 그는 리성을 잃지 않으려고 두터운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애써 흥분을 억제하면서 구로다를 생소한 사람을 대하듯 새삼스러운 눈길로 돌아보았다. 구로다는 덤덤한 표정으로 담배를 피워물고있었다. 그의 진지하고 태연자약한 모습을 보자 야스이는 은연중 구로다가 이제껏 남을 빗대고 한 소리들이 죄다 그 자신의 속심이 아닐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구로다 겐은 비교적 솔직한 사람이였다. 그는 관념철학의 거장들인 쇼펭 하우에르와 프리드리흐 니체를 숭배하면서도 《세계 그 자체는 지옥》이며 《불행과 비극의 무대》라는 그들의 비관주의적철리와는 달리 언제나 락관적으로 세상을 대할줄 알았다. 그리하여 그 《지옥과 비극의 무대》를 떠나서 생활을 실용적으로 설계하는 이른바 현실주의자라고 할수 있었다. 그의 이 모순된 성격의 발현은 리성의 힘과 의의를 강조한 헤겔(도이췰란드의 관념철학자)의 합리주의에 한때 젖어있던 영향에서 오는것인지 몰랐다.

방금 한 말이 구로다의 속심이건 아니건 아무래도 좋았다.

학자란 허심해야 한다. 설사 상대방의 말이 좀 지나치더라도 야스이는 순수한 기분으로 그의 의견을 접하려고 마음을 가다듬었다.

야스이 가오루는 자기 저술의 어디에 구로다가 지적한 허점들이 있는가를 혼자 속으로 따져보았다.

야스이가 제창한 《대동아공영권》의 리상사회, 그것은 일본제국이 아시아나라들에 대한 침략도상에서 《련전련승》하던 그 시절에 정부와 군부가 자기들의 음흉한 침략목적을 가리우고 민심을 기만하기 위하여 세상에 요란하게 선전하던것과 일맥상통한 점이 없지 않았다. 구로다 겐의 시비의 대상으로 된것도 바로 이러한 문제들이였다.

그러나 야스이는 결코 일본제국의 그따위 선전에 동조하고 편승해나서서 그런 저술을 할 사이비어용학자가 아니였다. 제딴으로는 국제법학자로서의 본분과 의무감에서 전쟁의 불길에 휩싸여있는 아시아의 운명을 우려하던 나머지 평소에 품어온 소신을 피력한데 불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침략정책에 추종하는 소위 《전쟁협력자》로 락인하여 지탄하고있으니 야스이는 생각할수록 속이 괴여올랐다.

그는 그러한 루명을 들씌우는자들을 단죄하듯 마침내 분통을 터치고야말았다.

《나의 량심을 함부로 우롱하지들 말라고 하시오. 앞으로 진실이 밝혀질 날이 꼭 있을거요.》

의연히 꿋꿋한 야스이의 거동에 부딪치자 구로다는 어지간히 당황해난듯 은근히 동조해나섰다.

《아무렴, 진실이야 밝혀지게 마련이지. 나도 그렇게 되길 바라네.》

이렇게 선선히 맞장구치고난 구로다는 인차 목소리를 낮추며 말을 이었다.

《야스이군, 내 언젠가도 한번 비친적이 있었지? 자기 정체를 똑똑히 드러내야 한다고… 백색이냐? 적색이냐? 우도 좌도 아닌 무당성, 당신의 그 불투명한 색조때문에 사람들의 그런 비난과 오해를 사게 되는게 아닐가? 이젠 자네도 자기 색을 밝힐 때가 되지 않았나? 여하간에 이 저술이 제국정책과 우연한 일치를 보았단들 나무랄데 없는 일이지. 전시하의 우리 지성인들이 나라를 위해 응당히 취해야 할 자세라고 생각하네. 남의 뒤소리에 신경을 쓰지 말라구. 찬양을 받아 마땅할 노릇이 아니겠나.》

구로다 겐은 이렇게 장황설을 늘어놓으며 자기 의사까지 실토하고나서 천천히 자리를 일어 나들문을 향해 걸어갔다.

사라지는 구로다의 모습을 바라보는 야스이의 심사는 복잡했다. 별안간 뒤통수를 얻어맞은듯 한 기분이였다.

그는 한동안 못박힌채 움직일줄 몰랐다.

구로다가 방금 말했듯이 야스이는 어느 한 사상적조류나 철학류파를 편중하여 따르지 않았다. 또한 어떤 당파나 정치적파벌에도 속하지 않고 순수한 학자로서의 립장에서 모든 학술적문제들을 철두철미 객관적으로 대하고 받아들였다. 그렇게 하는것이 곧 학자가 지녀야 할 본연의 자세라고 생각하고있었다.

야스이가 국제법학을 필생의 탐구분야로 택한것은 그의 인도주의적지향과 량심에 따른것이였다. 국제법학, 그것은 국가간의 관계를 규정한 총체적인 규범들과 공법을 인류발전에 기여할수 있도록 하는 그 추동력과 정신도덕적힘을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했다. 그가 인류의 운명, 지구와 누리의 운명이라는 이 한없이 광대하고 변화무쌍한 세계를 필생의 탐구무대로 삼고 그 어려운 길에 뛰여든것은 세상에 명성을 떨쳐보자는 야심에서가 아니였다. 당대의 력사적흐름이 그를 그 길로 떠밀었던것이다.

세계적판도에서 나날이 우심해져가는 제국주의, 식민주의의 침략과 지배, 착취속에서 불행과 고통을 당하는 약소국가민족들의 처지와 참상을 그는 외면할수 없었다. 그리하여 현존국제법들을 랭철한 눈으로 해부하게 되였으며 인류를 낡은 국제법의 구속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하여 국제법학을 인간해방에 이바지하는 참다운 사회과학으로 발전시키리라 결심하였던것이다.

야스이는 자기의 지향과 리념을 실현할 목적으로 전공하는 국제법학에 시대의 선진사상을 반영하기 위하여 맑스와 엥겔스, 레닌의 저서들을 탐독하였고 한편 실증주의사회과학방법론도 진지하게 연구하였다. 당시 그의 학자적립장은 객관적합법칙성을 중시하는 유물변증법의 철학적방법론과 19세기 도이췰란드의 현대부르죠아사회학의 거장인 막스 웨버의 주관주의적방법론도 다같이 인정하는 관점에 서있었다. 이는 그가 세계를 인식함에 있어서 서로 엄격히 상반되여있는 두 철학사상을 하나의 위치에 놓고 학문을 추구하여온데서부터 생긴것이였다. 요컨대 변증법적유물론과 주관주의적관념론을 인류사회발전에 다같이 기여할수 있는 유력한 과학으로 인정한데서였다.

이러한 량면타협성, 모순성은 온갖 사조가 뒤섞여 붐비는 일본의 사회풍토하에서 진리를 탐구하는 지성인들이 흔히 갖게 되는것인지 모르나 야스이는 그것으로 하여 《대동아공영권과 국제법》이 제국정책과 어깨를 같이하고있다는 빈축을 사게 되였으며 지어 불투명한 무당성적인 인간이라는 딱지까지 받게 되였던것이다. 전에 강의시간에 있었던 사도미학생의 반발 역시 다 그런데서 일어났을것이다. 그러나 야스이가 그것을 똑똑히 깨닫게 된것은 퍽 뒤에 가서였다.…

가벼이 나들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야스이는 비로소 무거운 생각에서 깨여나 창문가에서 돌아섰다.

대학의 배속장교가 교수실로 들어서고있었다.

그 장교는 야스이의 앞에 다가서더니 한손을 들어 경례를 붙이며 알렸다.

《교수님, 헌병대에서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헌병대에서 날요?》

야스이는 중얼거리며 배속장교를 잠시 무거이 바라보았다.

《무슨 용건이랍니까?》

《글쎄, 그건 본인도…》

배속장교는 두리뭉실한 표정을 지었다.

원래 학자들은 군인일반에 대하여 호감을 안가지지만 헌병의 경우에는 더하였다. 전시하에서는 더욱 무제한한 권력을 행사하는 헌병이였다. 그런 인간의 래방이 교수에게는 시답지 않게 여겨졌다.

잠시후 배속장교의 뒤를 따라 헌병완장을 팔에 두른 한 대위가 가죽장화로 마루바닥을 울리며 나타났다. 긴 군도를 허리에 찬 헌병대위는 눈매가 날카롭고 몸이 오동통한 삼십안팎의 사나이였다.

그는 군인답게 절도있는 자세로 교수를 향해 깍듯이 인사를 차렸다.

두 사람은 소탁을 마주하고 앉았다.

헌병은 매우 침착한 거동으로 손에 낀 하얀 수갑을 벗어 탁상에 올려놓고나서 다망한분을 찾아와 실례한다고 먼저 정중히 량해를 구한 다음 찾아온 용건부터 내놓았다.

《교수님, 이 대학 학도병출신 사도미 아즈시에 대해 몇가지 문의할게 있어 그럽니다.》

헌병의 우묵하고 날카롭게 생긴 작은 눈에 비해 목소리만은 어딘가 부드럽게 들렸다. 그런데 그의 입에 사랑하는 제자의 이름이 오르자 야스이는 삽시간에 이런 인상마저 싹 가셔지고말았다.

그는 저절로 긴장해졌다.

헌병은 심문하듯 말을 번지기 시작했다.

《사도미의 지도교수님이였다죠?》

《그렇습니다.》

《그래서 좀 도움을 받자고…》

《…》

야스이의 희멀쑥한 이마에 알릴듯말듯 주름이 잡혔다.

《그 학도병의 재학중 사상동향이라 할가… 그런 점들에 대해 말해주었으면 합니다.》

상대가 최고학부의 교수라는것으로 하여 헌병의 태도는 시종 정중하였으나 말하는품은 역시 군인답게 단도직입적이였다.

야스이는 사상동향을 운운하는 헌병장교의 말에서 제자의 신상에 무슨 심상치 않은 일이 생겼음을 예감하며 한동안 무거운 심사에 젖었다가 나직이 물었다.

《어째서 그런걸 알려고 합니까?》

《그걸 조사해야 할 일이 생겨서입니다.》

헌병의 표정은 차츰 뻣뻣해졌으나 거동만은 여전히 침착했다.

《나는 자기가 지도하는 학생의 일신상 문제에 대해선 일체 남에게 말하는걸 삼가하는 사람입니다. 교육자란 대체로 그들 한사람 한사람의 자유로운 발전을 위해 개성을 귀중히 여기기때문이지요. … 헌데 사도미군에게 혹 무슨 일이라도 생겼습니까?》

야스이는 비록 담담하게 말했으나 심중은 복잡했다. 제자의 신변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어서 알고싶어 조바심이 일었다. 헌병장교는 교수의 말이 저으기 언짢은듯 별안간 엄엄한 기색으로 변하더니 위압적인 언사로 나왔다.

《그자가 제국군법에 저촉되는 행위를 저질러 지금 영창에 구속되여있소.》

《무어요?!》

야스이는 신음하듯 중얼거렸다.

징병령장을 들고 작별하러 왔던 그밤의 사도미의 모습이 눈앞에 얼른거렸다.

만저우사변에서 전사한 부친처럼 자기는 제국을 위해 희생되지 않겠노라고 하던 그의 고집스러운 목소리가 귀전에 되살아났다. 헌병이 전하는 다음 사연은 야스이를 한층 심란하게 했다.

《현재 심문중이라 다는 말할수 없지만… 어쨌든 그자가 제국군인으로서 도저히 용납될수 없는 죄악을 범했소. 한마디로 말해서 군사명령에 불복했단말이요. 헌데도 취조관의 심문에 잘 응하지 않을뿐더러 함구로 도전해나서기까지 하니…》

헌병대위는 스스로도 억이 막힌듯 여기서 말을 끊고 담배를 붙여 물더니 한모금 빨아 길게 내뿜었다.

어마어마하게 뇌까리는 그 말에 야스이는 오금이 쑤셔나 앉음새를 고쳤다.

사도미가 군사명령을 거역했다는것이 과연 무엇을 뜻하는것일가? 게다가 심문에 함구무언으로 대한다고 한다.

헌병이 한 말이 사실이라면 전시하의 비상시국인지라 사태는 매우 엄중했다.

그 진상의 여부가 의심스러웠으나 사회와 일체 격페된, 일거일동이 군규의 엄격한 통제밑에서만 움직이는 군대에서 벌어진 일이므로 야스이로서는 사뭇 충격적이였고 커다란 우려를 자아내게 하였다.

《교수님, 기탄없이 말해주길 바랍니다. 그래야 사도미에게도 응분의 조치가 취해질것이고 또 개준의 방도같은것도 생길것이고…》

묻는 말에 선선히 대하지 않는 교수의 도고한 자세에 헌병대위는 로골적으로 불쾌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야스이는 한동안 입을 다물고있었다.

사도미가 어떤 성질의 군사명령에 불복하였는지 그것이 군사기밀에 속하는것이여서 헌병은 좀체로 발설하지 않을 모양이였으나 어쨌든간에 지금 야스이는 무작정 자기 제자를 옹호할 심산으로 마음을 가다듬고있었다.

《그가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가늠이 안가오만…》

야스이는 마침내 이렇게 말머리를 뗀 다음 천천히 이었다.

《사도미군은 장래가 크게 기대되는 우수한 학생이였지요. 재학시 사상생활이 건전했고 교우관계도 좋았지요. 교수들의 사랑을 받은것은 말할것 없고…

그처럼 모범적인 학생이였던 청년이 어째서 군부의 취조대상이 되였는지 참으로 모를 일이요. 유감스럽소.》

야스이는 포악한 제국헌병들의 손에 상처입고 신음하고있을 제자의 처절한 정상이 눈속에 파고들어 울분이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자제력을 잃지 않고 말했다.

《그 청년이 설사 군법에 저촉되는 행동을 했다 할지라도 관대히 조처해주길 바랍니다. 혈기찬 시절에는 본의아니게 과격한 나머지 실책을 범할수도 있지 않겠소. 거듭 부탁합니다. 장차 국가발전에 대단한 몫을 담당할 역군이 될 그 청년을 부디 도와주시오.》

야스이의 음성은 간절하게 울렸다.

군사명령에 대한 절대복종만이 신성불가침의 계률로 엄격히 훈련된 군인앞에서 그 계률을 거역한 제자를 두둔하는 소리가 통할리 없다는것을 모르지 않았으나 그래도 그는 진정을 터놓지 않고서는 못배기였다.

아닐세라 헌병장교의 눈찌는 대번 날카로와졌다. 대학교수라는 사람의 입에서 나온 언사가 가소롭다기보다 지나치게 순진한데 놀랍던 나머지 헌병은 상대를 쏘아볼뿐 한마디의 반발조차 못하고 랭소만을 짓고있었다.

실내에는 얼마간 무거운 공기가 흘렀다.

이윽고 헌병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교수님, 후에 다시 만나도록 합시다.》

오늘은 더 상대했자 아무 소득도 없으리라는걸 알아차린것 같았다. 하나도 걷어쥔것 없이 돌아서는게 몹시 불만인듯 헌병의 기상은 표표했다.

헌병이 나들문을 향해 몸을 돌렸을 때 야스이는 그에게 한가지 청을 했다.

《사도미군을 한번 만나게 해줄수 없겠는지요?》

《면회를 시켜달라?… 그건 차후에 봅시다.》

헌병대위는 이렇게 한마디 남겨놓고 자리를 떴다.

긴 복도를 뚜벅뚜벅 울리는 헌병의 가죽장화소리가 점점 멀리로 사라져갔으나 야스이는 마음을 다잡을수 없어 한동안 방에서 나오지 못했다.

그날부터 야스이는 행여나 하고 사도미와의 면회통지가 오기를 기다렸으나 열흘이 지나도록 헌병대에서는 아무 기별이 없었다.

헌병도 다시는 찾아오지 않았다.

그는 기다리다 못해 사도미가 구속되여있는곳이라도 알아내려고 군부와 안면이 있는 사람들을 내세워 탐문해보았지만 그것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나중에는 야스이자신이 사방으로 수소문하며 찾아 다녀보았으나 매번 헛걸음만 쳤다.

그토록 동분서주하느라 겨울이 가고 봄이 찾아드는것도 느끼지 못했다.

일본본토에 대한 공습이 날이 갈수록 우심해져갔다.

대편대의 비행기폭음이 울려오고 사방에서 폭탄이 터지는 소리가 자주 일었다.

그해 4월 10일 도꾜가 혹심한 맹습을 당했다.

도시는 순식간에 불바다로 변하고 단꺼번에 만명이 넘는 시체가 길바닥에 나딩굴었다.

그후 대대적인 소개가 벌어졌다. 관청과 군부만이 아니라 민간인들까지도 도시를 떠나 안전한 고장으로 밀려갔다.

공습은 련일 계속되였다. 미군비행대들은 아무런 반격도 저항도 받는 일없이 하늘을 제 세상인양 자유로이 돌아치며 지상의 모든것을 살상파괴하였다.

《황군》은 이미 제공권만이 아니라 제해권마저 완전히 잃은듯싶었다. 이제는 전쟁의 종말이 불보듯 하여 사람들모두가 허탈상태에 빠져있었다.

그런속에서도 야스이는 공습이 없는 기회를 타서 헌병사령부를 찾아가보았으나 그 기관 역시 이미 다른곳으로 옮겨간 뒤였다. 종시 아무것도 알아낼 길이 없었다. 그러나 그의 정신생활에서 중대한 전환점이 된 사변은 그후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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