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고 복잡한 때일수록 학습을 강화해야 한다》
전 문 섭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간부들과 당원들속에서 우리 당의 로선과 정책에 대한 학습을 강화하여야 하겠습니다. 우리 당의 모든 로선과 정책은 우리 나라의 구체적현실을 반영하여 나온것이며 그것은 매 시기 우리 인민이 나아갈 길을 밝혀주고있습니다. 간부들과 당원들이 당의 로선과 정책을 잘 알아야 그에 맞게 일을 잘해나갈수 있으며 그것을 철저히 관철할수 있습니다.》
위대한 수령님의 이 말씀을 거듭 연구할수록 나는 일제를 반대하는 무장투쟁시기의 간고한 나날에 사령관동지의 가르치심을 받고 학습하던 일을 돌이켜보게 된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항일무장투쟁의 전기간을 통하여 우리 유격대원들의 학습에 깊은 관심을 돌리시였다.
그이께서는 특히 정세가 어려워지고 투쟁이 복잡해질수록 유격대원들의 학습을 더욱 세차게 밀고나가시면서 몸소 그 모범을 우리에게 보여주시였다.
나는 지금도 1940년 1월 상순부터 2월 하순까지 무송현 백석탄밀영에서 전체 부대가 집중적인 동기군정학습을 진행하던 일이 잊혀지지 않는다.
그때의 정세란 참으로 복잡하고 날카롭게 얽혀있었다.
유럽에서는 제2차세계대전의 불길이 보다 넓은 지역에로 확대되여갔고 동방에서는 일제가 중국의 넓은 지역을 강점하고 태평양지역에까지 손을 뻗쳐 《대동아공영권》을 한창 떠벌이던 시기였다.
그때 일제는 저들의 후방을 튼튼히 한다는 구실밑에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하여 우리 유격대 특히 사령관동지께서 친솔하신 주력부대에 대한 집중《토벌》에 광분하고있었다.
이 결과 백두산을 중심으로 압록강, 두만강연안의 국경지대는 물론 특히 우리 부대가 활동하던 백두산동북부일대의 산과 들, 골짜기마다에는 적 《토벌대》가 누렇게 들어차있었고 가는 곳마다에 귀순과 투항을 강요하는 삐라가 깔려있었다.
놈들은 무력적위협과 회유로써 우리의 투지를 꺾어보려 하였으며 우리의 마음을 흔들어보려고 발광했다.
그러나 놈들이 발광하면 할수록 수령과 혁명을 위해 하나로 뭉친 우리의 힘, 우리의 의지는 더욱 반석같이 굳어져갔다.
혁명이 승승장구하여 거침없이 전진할 때에는 혁명을 한다고 자처하며 따라나서는 《혁명가》도 있다. 그런데 곤난하고 긴박한 혁명의 시련기에 부닥치면 평소에 비겁하거나 신념이 부족했던 이런 《혁명가》는 락오자가 되거나 놈들의 개가 되고만다.
한마디로 말해서 준엄한 혁명투쟁의 대오에 서있다 해도 자기자신을 부단히 혁명화하기 위해 수양하지 않으며 오직 혁명을 위해 몸바치려는 혁명정신을 소유하지 않거나 부단한 학습을 통하여 혁명승리의 굳은 신념으로 무장하지 않는다면 례외없이 혁명의 길에서 락오자로 되고마는 법이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그때의 대세가 혁명에 불리한것처럼 생각되고 하늘아래 모든 땅이 일제와 도이췰란드, 이딸리아 파쑈무리들의 세상으로 변한것 같이 생각되였던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추호의 동요도 없이 사령관동지의 두리에 하나로 굳게 뭉쳐 혁명의 기발을 더욱 높이 추켜들었다.
이러한 힘, 이러한 의지가 어데서 생겼는가?
그것은 오직 사령관동지께서 이러한 어려운 때일수록 우리들을 혁명사상으로 교양해주시고 우리들을 혁명화하기 위해 온갖 정력을 쏟아부어주셨기때문이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우리들에게 혁명에 대한 필승의 신념을 안겨주시고 우리들을 불굴의 혁명투사로 키워주며 우리의 안목을 넓혀주시기 위하여 혁명의 길에서 어렵고 복잡한 시기에 부닥칠 때마다 혹은 그러한 시기를 예견하시게 될 때마다 그에 대처할수 있도록 대대적인 군정학습을 조직지도하군 하시였다.
그 시기처럼 정세가 어려울 때에 군정학습을 폭넓게 조직한다는것은 우리가 지금 어떤 강습회나 한번 조직하듯이 강의실이나 준비하고 제강이나 짜고 강사나 동원시키면 다되는것처럼 생각하는 그런 간단한 문제가 아니였다.
그것은 완전한 한시기의 피어린 투쟁을 거쳐서 비로소 이루어질수 있는 어렵고도 복잡한 혁명과업이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백두산동북쪽에 몰킨 적의 《토벌》력량을 멀리 끌어다 헤쳐놓기 위한 여러차례의 힘겨운 작전과 수백리 어려운 행군을 조직하시여 백석탄밀영군정학습에 필요한 조건을 마련하시였던것이다.
물론 그이께서 이와 같이 긴장된 정황속에서 혁명적인 투쟁을 통하여 학습을 조직하신것은 그때가 처음이 아니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가장 어렵고 복잡할 때마다 집중적인 군정학습을 조직하시여 부대를 정치군사적으로 단련함으로써 닥쳐온 난관을 뚫고나가군 하시였다.
1930년대 초시기에 이미 왕청유격근거지에서 밖으로는 일제의 집중적인 포위공격이 련일 계속되고 안으로는 반《민생단》투쟁이 그릇되게 벌어져서 조선혁명앞에 커다란 위험이 닥쳐왔을 때에도 사령관동지께서는 군정간부들의 단기강습과 한중대씩 집중학습을 조직하시여 부닥친 시련을 과감히 뚫고나갈수 있는 강의한 투사들로 키워주시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북만에서 백두산서남부 국경지대에 진출하시여 새로운 형태의 백두산근거지를 창설하시고 이 지역에 조국광복회의 조직망을 전면적으로 확대할 위대한 구상을 실현하시기 위하여 1937년에도 적의 대대적인 공세를 물리치고 동강밀영에서 부대의 집중적인 군정학습을 조직하시였다.
그이께서는 1937년 여름부터 마당거우밀영 군정학습을 준비하시여 가장 규모가 크고 가장 내용이 풍부한 군정학습을 조직지도하시였다.
이밖에도 올기강밀영에서, 곰의골밀영에서, 8도강에서, 이르는 곳마다에서 중대 혹은 련대단위의 군정학습을 몸소 꾸준히 조직지도하시였다.
《만일 군대에서 중대장, 대대장, 련대장 기타 상급지휘관들이 전략전술상 무식하다면 그 군대가 전투에서 승리할수 없는것처럼 근로인민의 선봉대인 우리 당이 혁명리론으로 무장하지 못한다면 인민대중의 투쟁을 옳게 향도하지 못할것입니다. 특히 우리앞에 나선 과업이 어렵고 복잡한 실정에 비추어 라침판과 같이 방향을 가리켜주고 등대와 같이 앞길을 환히 비쳐주는 리론이 우리에게 더욱 절실히 필요합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해방후에도 이와 같이 강조하시였지만 지난 항일무장투쟁시기에도 바로 이 사상을 강조하시면서 《어렵고 복잡한 때일수록 학습을 강화해야 한다.》고 우리에게 간곡히 가르치시였다.
나는 유격대원들이 지난날 련일 적과 싸우며 제대로 먹지도 쉬지도 못하면서도 학습을 하고 글을 쓰고 정세를 론하던 그때를 생각하면서 사령관동지의 혁명적인 학습기풍을 감회깊이 회상하게 된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오늘도 그러하시지만 지난 항일무장투쟁시기에도 항상 이신작칙하시여 어느때 어떤 조건에서도 중단하시지 않고 꾸준히 학습하심으로써 우리에게 산 모범을 보여주시였다.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것은 고난의 행군시기에도 사령관동지께서 꼭꼭 일기를 쓰시고 책을 읽으시던 일이다.
하루에도 여라문번이상씩 원쑤들과 싸우면서 허리를 치는 생눈길을 헤치고 행군하고나면 아무리 기운이 장사같은 사람도 솜처럼 맥이 풀리고 눈을 뜰 기력조차 없어지건만 일단 숙영지만 택하면 사령관동지께서는 초불을 마주하고 앉으시여 그날의 일기를 쓰시고 책을 읽군 하시였다.
이러한 모습을 뵈올 때마다 기운을 돋구어 우리들도 배낭속에서 책을 꺼내들고 읽군 하였다.
그리하여 우리는 밥을 굶는 날은 있어도 책을 손에서 뗀 날은 거의 없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마당거우밀영에서의 학습때에도 날마다 강의를 하시고 출판물에 실을 글을 쓰시는 한편 여러곳에 널려있는 부대들을 지도하시는 바쁜 속에서도 학습을 절대로 중단하지 않으시였다.
마당거우밀영에서 우리 전령병들은 사령관동지께서 언제 주무시고 일어나시는지를 잘 몰랐었다.
사령관동지께서 자리에 누우시기를 아무리 늦게까지 기다리다가도 결국에는 우리가 먼저 잠들게 되였고 아무리 일찍 일어나보아도 어느새에 벌써 일어나시여 책을 읽고계시군 하였던것이다.
어떠한 상상력을 가지고도 일찌기 그려볼수 없었던 그 어려운 조건, 비바람, 눈서리와 시시각각으로 목숨을 노리는 총검의 위험을 헤치며 하루이틀도 아니요, 오랜 기간 싸우자니 어찌 사령관동지이신들 지치고 힘에 겨운 때가 한두번뿐이였겠는가.
사령관동지께서는 고요한 서재나 따뜻한 방에서가 아니라 이슬내리는 나무밑에서 조선의 혁명로선을 세우시였고 우등불가에서 조국해방의 방략을 짜시였던것이다.
이렇듯 조선혁명을 승리에로 령도하시는 그이의 위대한 지략은 바로 눈보라가 기승을 부리고 적탄이 비발치듯 하는 포화속에서 쌓아졌고 조선의 앞길을 밝히는 위대한 혁명로선은 바로 밀림의 우등불가에서 한자한자 아로새겨졌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아무리 어려운 정황속에서라도 우리의 학습조건을 될수록이면 잘 갖추어주시기 위하여 세심한 관심을 돌리군 하시였다.
이미 알려진바이지만 마당거우밀영에 있을 때 학습조건은 잘 갖추어졌었다.
강의와 토론을 할수 있는 따뜻하고 아담한 병실을 꾸려놓았고 학습에 참고할 각종 출판물과 종이, 연필도 갖추어져있었다.
그러기에 우리들은 등사기로 찍은 《조국광복회10대강령》, 《조선공산주의자들의 임무》, 《레닌주의제문제》, 《사회주의대의》 등 많은 소책자들을 가지고 공부할수 있었으며 그리고 비서처에서 출판해내는 《서광》, 《3. 1월간》, 대내신문 《종소리》 같은 우리의 출판물은 물론 지어는 《동아일보》, 《조선일보》까지도 참고할수 있었다.
당시 비서처에서 출판하던 《조국광복회10대강령》, 《조선공산주의자들의 임무》, 《조국광복회창립선언》, 《3. 1월간》, 《서광》과 같은 혁명적출판물들은 우리 대원들을 교양하는데 있어서 큰 의의가 있었던것이다.
한두대의 등사기와 적을 치고 로획한 많지 않은 종이를 가지고 이와 같이 큰일을 할수 있었던 무장투쟁시기를 생각할수록 나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오늘 우리가 현대적인 설비로 꾸려진 인쇄공장과 수십만t의 종이 그리고 전문출판일군들을 가지고 수많은 책들과 수십만부의 각종 신문, 잡지들을 발행하고있지만 그때는 한두대의 등사기로 몇백권의 소책자를 찍어내야 했다.
사실에 있어서 학습조건이란 사람들이 갖추기에 달린것이다.
마당거우밀영에서의 학습조건도 그때 정세가 좋고 모든것이 척척 들어맞아서 저절로 이루어진것은 결코 아니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마당거우밀영에서 학습을 위한 필요한 준비사업을 진행하도록 7련대와 비서처를 미리 보내시여 활동하게 하시였다.
이리하여 7련대는 림강, 무송일대에서 군정학습기간에 요구되는 식량을 마련하였고 비서처는 몽강현의 깊은 밀림속에 들어가서 학습자료로 각종 소책자들을 찍어내였던것이다.
사령관동지께서는 백석탄밀영에서의 군정학습도 역시 이처럼 예견성있게 준비하시였던것이다.
물론 백석탄밀영에서 군정학습을 할 때는 정황이 더욱 어렵고 모든것이 곤난하던 때인지라 마당거우밀영에서처럼 대규모적인 출판사업은 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여전히 국내출판물들과 많은 참고서적들이 준비되였었고 대내신문 《철혈》이 발간되여 대원들의 학습에 많은 도움을 주었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백석탄에 도착하시자 그해 겨울 군정학습이 가지는 의의와 중요성을 강조하시면서 장차 국내깊이 다시금 진군하여 조국인민들에게 해방의 서광과 승리의 신심을 안겨주고 조선혁명을 다시 추켜세울 힘과 밑천을 길러내야 한다고 하시였다.
우리들은 그이의 높은 뜻을 받들고 동기군정학습을 잘하기 위하여 중대단위로 당세포회의와 청년동맹회의를 열고 토론하였다.
이미 쓴 회상기 《혁명의 기치를 끝까지 고수하시여》에서 대체로 이야기하였지만 백석탄밀영에서의 군정학습은 아주 전투적으로 진행되였었다.
그때 우리 부대의 종적을 찾아 돌아치는 일제놈들이 언제 달려들지 모르는 정황속에서 늦잡아 숙영이나 하고있을수는 없었던것이다.
그러기에 사령관동지께서는 집중적인 학습기간을 2기로 나누어 우선 1기에 필요한 과목을 빠른 속도로 학습하고 2기에는 그것을 파고들어 익히는 방향에서 학습하도록 계획을 짜시였었다.
이것은 정황이 급히 변하여 2기를 채 끝내지 못하는 경우에도 1기만 가지고도 능히 적을 타승하는데 필요한 군사정치지식과 훈련을 쌓도록 하는 예견성있는 조치였다.
학습방법도 역시 그 어느때보다도 전투적이였다. 모든것이 경쟁적으로 긴장해서 학습을 할수 있도록 조직되였다. 중대와 중대사이, 매 대원사이에 경쟁이 무어지고 그중 우수한 동무들을 뽑아서 1, 2, 3등의 상을 주기로 하였다.
강의를 하고 토론과 론쟁을 하는 방법, 개별적으로 담당하여 가르쳐주고 일깨워주는 방법, 글을 씌여서 배운것을 굳건히 하는 방법, 정치시사내용을 노래로 지어서 부르는 사이에 내용을 자연히 외우게 하는 방법, 우등불가에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리해시키는 방법 등 여러가지 창발적인 방법이 적용되였다.
백석탄밀영에서의 정치학습은 주로 중대별로 진행되였는데 중대정치지도원이 강의를 하고 토론제목을 내여주고 그것을 가지고 론쟁을 벌리도록 하였다.
아직 국어와 산수를 모르는 동무들은 당원들과 구대원들이 맡아가지고 개별지도를 하였고 리해력이 빠르지 못한 동무들에게는 《조국광복회10대강령가》를 비롯하여 조선혁명문제, 유격전술에 대한 문제, 군중규률에 대한 문제들을 10진가형식으로 가사로 만들어 부르는 사이에 쉽게 리해하도록 하였다.
국제국내시사문제, 유격전술문제들은 우등불가에서 문답식담화의 방법으로도 많이 해설하였었다.
강의와 론쟁방법에 대하여서는 이미 다른 동지들이 쓴 회상기에서 자세히 이야기되였으므로 여기에 더 적으려 하지 않는다.
다만 백석탄밀영학습에서 특히 많이 적용한 방법 즉 글을 씌우는 방법과 우등불가의 문답식방법에 대하여 좀 이야기하려 한다.
사령관동지께서는 동강, 마당거우, 올기강 등지에서 조직하신 모든 군정학습기간마다 이 방법을 많이 적용하시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강의와 토론을 거쳐 학습한 내용을 가지고 제목을 달아서 글을 쓰게 하시였다.
우리는 그때 《규률은 왜 지켜야 하는가?》, 《국내인민들을 어떻게 일떠세울것인가?》, 《제국주의전쟁의 원인》, 《나는 백발백중의 명사수가 되겠다》 는 등 제목으로 자기가 배운 지식과 자신의 경험이나 자기의 희망 등을 글로 써서 정치지도원들에게 바치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그 바쁘신 가운데서도 대원들이 쓴 글을 꼭꼭 읽으시고는 그것을 고치시여 대내신문 《철혈》에도 발표하도록 하시였었다.
나자신은 물론 모든 대원들이 이 과정을 통하여 큰 고무를 받았다.
글을 쓰는 방법은 배운것을 익히고 써먹는데 있어서 제일 효과있는 방법이였다.
우리들은 자기의 머리를 짜내여 글을 쓰는 과정에 배운 지식이 완전히 공고해지는것을 느끼였으며 또 배운것을 실지 경험에 비추어 주체적으로 리해하고 써먹을수 있게 되였다.
그래서 한번 글을 쓴 문제에 대하여서는 자신있게 말할수도 있었고 일단 필요한 경우에 맞다들어 제꺽 써먹을수 있는 신심도 생기였었다.
마당거우밀영학습때 한번은 대내신문 《종소리》 에 실릴 원고를 쓰라는 과업을 받고 글을 짓느라고 애쓰는데 사령관동지께서 나오시여 무엇을 하는가고 물으신 일이 있었다.
신문에 실릴 원고를 쓴다는것을 아시자 사령관동지께서는 무엇이든지 그렇게 열성스레 달라붙어 하면 못해낼 일이 없다고 고무해주시고는 원고내용을 보시고 일일이 잘못된것을 고쳐주시면서 앞으로 모르는것은 지휘관들과 동지들에게 자주 물어서 잘 학습하라고 말씀하시였었다.
우리는 이렇게 글을 쓰는 과정을 통하여 자신의 정치리론수준을 더욱 높이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백석탄밀영 군정학습때에도 밤마다 대원들이 둘러앉은 우등불가에 나가시여 그들과 이야기를 주고받는 방법으로 우리를 많이 교양하시였다. 이 방법은 자연스러우면서도 잘 일깨워지고 머리에 쏙쏙 들어오게 하는 방법이였다.
이런 때는 그이께서 주로 조국에 대하여, 국제국내정세에 대하여, 선렬들의 애국적투쟁에 대하여 많이 말씀하시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언제나 아름다운 조국의 산천과 근면한 인민들에 대하여, 을지문덕, 강감찬, 리순신 등 우리 나라의 명장, 명인들과 의병들의 애국투쟁에 대하여 옛이야기식으로 말씀하기도 하시고 때로는 대원들이 이야기할 때에 간간이 애국주의사상으로 교양하기도 하시고 혁명사상으로 안받침하시면서 그들에게 질문도 하시고 물음에 대답도 하시면서 담화하시였다.
이것은 우리의 심장이 조국에 대한 사랑으로 끓어번지게 하였고 제 나라, 제 력사에 대한 자랑으로 가슴벅차오르게 하였던것이다.
우등불가에서 문답식으로 일깨워주면서 잘못 안것은 바로잡아주고 알듯모를듯 하던것은 튕겨주어 본질을 바로 알고 넘어가게 하는 이 방법은 가장 흥미있고 효과적인 학습방법이였다.
아직 수준이 어린 신입대원들에게 있어서는 학습내용을 노래로 지어 알게 하는 방법이 또한 효과가 컸다.
이천만의 조선동포 총동원하여
반일혁명통일전선 굳게 다지고
왜놈의 야만통치 어서 때려부시여
인민정부건설함이 제1조로다
…
이렇게 노래부르는 사이에 스스로 조국광복회강령의 10개 항목의 기본사상을 아주 쉽게 알수 있었던것이다.
글자를 모르는 신입대원들에게는 하루에 구호나 어떤 문장 한구절의 글자를 골라주어 따로외우게 하였다. 례를 들어 《조선민족의 총동원으로 광범한 반일통일전선 실현하자.》 라든가 《강도 일본제국주의의 통치를 전복하고 진정한 조선인민정부를 수립하자.》와 같은 문장이나 구호의 글자를 배우고 익히느라면 저절로 조국광복회강령 제1조의 내용을 납득하게 되는것이다.
이렇게 대상과 수준에 맞는 학습방법에다 토론과 론쟁의 방법을 섞어가며 진행하면 리해한것을 발표하는 능력이 커져서 한가지한가지 똑똑히 알고 넘어갈수 있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이렇게 정치학습을 강화하시는 한편 군사리론과 전술학습, 군사훈련도 힘있게 내밀며 지도하시였다.
매해 진행되는 군정훈련때마다 군사훈련은 정치학습과 거의 같은 비중으로 취급되였지만 백석탄밀영에서는 군사리론에 더욱 중점을 둔것이 특징이였다.
물론 정치리론문제도 간부들에게는 사령관동지께서 직접 강의하시고 토론을 지도하시였지만 군사문제에 대한 상학은 특별히 사령관동지께서 몸소 맡아 가르치시고 시범동작을 해보이시며 훈련을 시키시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매일 련대간부들과 중대장들에게 전술강의를 하시고 실제동작을 통하여 훈련시키군 하시였다.
여기서는 유격전술뿐만아니라 적들의 전투규정이 서술되여있는 책을 빼앗아다가 그에 대응할 전술문제를 가르치시였다.
그때 배운 적의 전술중에서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것은 일본군의 《새벽공격전술》이였다.
이것은 놈들이 로일전쟁때의 려순만봉쇄나 중일전쟁때의 로구교사건, 태평양전쟁때의 진주만공격 등 모두 남이 깊이 잠든 일요일새벽 같은 때 불의에 친것처럼 작은 전투때도 새벽에 달려드는 전술을 쓴다는것이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이러한 적의 전술을 쳐이기기 위하여서는 아군이 어떻게 하여야 하며 이 전술의 약점이 어디에 있다는것까지 자세히 가르쳐주시였다.
이때 사령관동지께서는 지형과 거리판정법에 이르기까지 실제적인 전투경험을 놓고 분석하며 가르쳐주시였다.
거리판정법을 배울 때 그이께서 말씀하시던 몇가지의 특징적인 규정은 지금도 나의 실천활동에서 지침으로 되고있다.
그때 사령관동지께서는 크지 않은 독립가옥이 보이는 곳은 5㎞, 나무줄기와 리정표, 전선대가 보이는 곳은 1㎞, 뛰여가거나 걸어가는 사람의 팔다리가 보이면 700m, 사람이 입은 옷과 색갈의 세부분을 가려낼수 있다면 그것은 200~300m정도라고 가르쳐주시였다.
사격술에 대하여도 강의하시였는데 아직도 올리쏘는 법과 내리쏘는 법에 대한 그이의 말씀은 기억에 생생하다.
경사가 심한 산우의 적을 쏠 때에는 머리보다 훨씬 우를 겨냥해야 하고 아래에 있는 적을 산우에서 쏠 때는 발끝을 겨누면 정통에 들어가맞는다고 하시면서 그 리치를 알기 쉽게 설명하시였다.
우리 유격대란 언제나 산에서 싸우는것만큼 이것은 아주 중요한것이였다.
물론 오랜 유격대생활을 한 동무들은 실전경험을 통하여 적을 맞히자면 어느 정도로 겨누고 쏘아야 한다는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어째서 그런지 그 리치는 잘 모르고있었던것이다.
사령관동지께서는 매복전, 습격전을 비롯한 전투행동에 대한 전술강의를 우리 부대가 실지로 진행한 전투들을 사판우에 그려가면서 가르치시였다.
이렇게 하신 결과 지난 전투장면이 눈앞에 선히 떠오르면서 《그때 내가 이렇게 했더라면 적을 더 잡았을걸.…》, 《돌격때 그렇게 달려나간것은 잘한것이군.…》 하고 자신으로도 새롭게 실전경험을 총화해보게 되였다.
그것은 일반적전술원칙을 백번 듣는것보다 더 힘이 있고 빨리 전술적원리를 리해할수 있게 하였다.
각종 무기의 구조성능과 작용원리에 대해서도 사령관동지께서 직접 강의하시였고 조준, 사격훈련도 시범동작을 해보이며 지도하시였었다.
그때 우리는 적들이 사용하고있는 여러가지 무기를 다루는 방법을 다 배웠었다.
경기관총만 하여도 일제의 경기관총, 체스꼬식경기관총 등 여러가지가 있었고 보총도 일제의 38식, 99식, 중국제의 13년식 등 별의별것이 다 있었다.
권총은 더욱 복잡했다. 도이췰란드제 모젤만 해도 1, 2, 3, 4호에 브로닝, 단모폴, 나간에다가 일본제권총 등 이루 헤아리기조차 힘들었다.
그러나 사령관동지께서는 어떤 무기이건 능숙하게 분해결합을 하시며 구조와 작용원리를 가르쳐주시였고 각종 무기의 사격술에도 아주 능하시였다.
우리 유격대는 적의 무기를 빼앗아 무장하고 썼던것만큼 이렇게 여러가지 무기에 정통하지 않으면 빼앗은 무기도 그 즉시로 효과있게 써먹을수 없었다.
바로 그러기에 사령관동지께서는 각종 무기에 다 정통하도록 하는 학습을 조직하시고 사격술을 련마하게 하시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매개 무기들을 뜯었다가 도로 맞추시며 하나하나 명칭과 작용원리를 설명하신 다음 모든 지휘관들이 그대로 하도록 하시면서 부족한 점을 고쳐주군 하시였다.
이렇게 하여 지휘관들이 먼저 무기에 정통한 다음에는 시범동작을 하면서 사격규정과 사격방법을 가르쳐주었다.
특히 사령관동지께서는 사격에서 목표를 정확히 쏘지 못하는것은 적을 아직 덜 미워하기때문이라고 하시면서 엄격히 비판하군 하시였다.
유격대지휘관치고 총을 잘 쏠줄 모르는 사람이란 사실상 없었지만 사령관동지의 백발백중하는 사격술에는 그 누구도 따를수가 없었던것이다.
그이께서는 지휘관들이 먼저 전술훈련을 받은 다음에 그대로 대원들에게 가르쳐주도록 하기 위하여 지휘관들이 전술훈련을 하는 시간에 대원들은 정치학습을 하고 반대로 지휘관들이 정치학습을 하는 동안에 대원들은 군사훈련을 하도록 시간을 짜시였다.
그때 대원들의 학습열의는 대단하였다.
강의와 토론, 군사훈련시간은 말할것도 없고 자는 시간외의 모든 시간은 전부 학습에 바치였다. 나무밑에서도, 우등불가에서도 그리고 잠자리에 들어서까지도 조국의 앞날을 론하고 국제정세문제를 주고받았으며 배운것을 익히느라고 속으로 중얼거리고 10진가를 부르며 리론의 본질을 파악하려고 애썼다.
등사기로 찍은 《조국광복회10대강령》이나 《사회주의대의》같은 책은 어찌나 손에 닳고 손때가 올랐는지 글자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되였다.
그러나 그우에다 다시 그려가지고 읽기를 되풀이하였다.
《철혈》은 어찌나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쳤는지 나중에는 접은데가 닳아서 몇동강이 나고 종이에 보풀이 일어 글자가 보이지 않게까지 되였다.
그러나 그래도 그것을 버리지 않고 풀로 또 붙이고 글자획을 먹으로 덧그어서 계속 돌려읽군 하였다.
우리들은 학습자료에 담겨진 사령관동지의 위대한 혁명사상을 빠짐없이 완전히 체득하지 않고는 물러서지 않는 혁명적학풍을 수립하였다.
백석탄밀영에서 군정학습할 때는 그래도 한자리에 숙영하고있었으니 유격대생활치고 비교적 학습하기 가장 좋은 시기였다고 말할수 있다. 사실 유격대생활이란 밀림을 집으로 삼고 눈비와 서리, 이슬을 맞으며 걷고 또 걷는 행군과 싸우고 또 싸우는 전투의 련속인것이다.
그렇지만 유격대원들은 걸으면서도 공부하였고 우등불과 달빛아래서 책을 읽으며 조국을 되찾을 진리와 원쑤를 칠 전술을 배웠다.
그러나 그것이 아무리 어렵고 힘들다 하여도 혁명을 위하여 무엇보다도 먼저 필요한것은 그이의 위대한 혁명사상을 자기들의 뼈와 살로 만드는것이였기때문에 유격대원들은 그 모진 고난을 이겨내며 학습하였던것이다.
백석탄밀영학습은 실천과 밀접히 결부된 점에서도 그 특색이 있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무장투쟁의 전행정을 통하여 학습을 실천과 밀접히 결부시켜 항상 써먹을수 있는 지식을 쌓을것을 강조하시였고 해방후에도 《글뒤주》가 되여서는 안된다고 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혁명리론은 우리의 구체적인 혁명실천과 결합되여야만 생활력을 발휘하게 되며 또한 우리의 실천은 반드시 혁명리론에 의하여 지도될 때에야만 승리할수 있습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지난 항일무장투쟁의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이 사상을 항상 강조하시면서 조선혁명의 현실적인 문제들로부터 맑스-레닌주의원리들을 풀어나가시였고 실천적인 전투과업을 놓고 전술적원리를 해석해주군 하시였다.
해마다 진행된 우리 부대의 집중적인 군정학습자체가 매번 다음해에 벌어지게 될 활동을 보장하기 위한 목적에서 조직되였던것이다. 동강밀영에서의 군정학습만 보더라도 국내 보천보진군을 앞두고 대원들을 정치군사적으로 준비시키기 위하여 진행되였던것이며 마당거우밀영 학습도 조선혁명앞에 닥쳐온 위기를 극복하고 일제를 반대하는 혁명투쟁의 불길을 계속 세차게 타오르게 하기 위하여 지휘관들과 대원들의 수준을 한계단 높이자는 목적에서 조직되였던것이다.
백석탄밀영에서의 군정학습 역시 다시금 국내깊이 진군하여 조선혁명을 한층 더 추켜세우고 다가오는 조국해방의 대사변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로서 조직되였던것이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이와 같이 혁명앞에 제기된 실천적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하여 먼저 부대를 정치사상적으로, 군사전술적으로 준비시키는 군정학습을 몸소 조직하시였다. 그런것만큼 군정학습의 전반적인 학습제강자체가 절박한 실천적문제를 푸는데 중점을 두고 짜졌으며 학습내용도 실천적인 문제가 중점적으로 취급되지 않을수 없었던것이다.
사령관동지께서는 백석탄밀영에서 군정학습할 때에 학습총화자체를 실천문제에 중점을 두고 진행하시였다.
제1기 군정학습이 끝나던 날 사령관동지께서는 전체 지휘관들과 대원들에게 문제들을 주어 일제히 시험을 치게 하시였다.
그리하여 개별적인 지휘관과 전사들중에서 1, 2, 3등의 성적을 매기여 1등에는 손목시계, 2, 3등에는 만년필을 상으로 주시였다.
그날 밤 우리들은 군정학습을 성과적으로 끝마친 기쁨속에서 단잠에 들었다.
그런데 새벽녘에 난데없는 총소리가 우리의 귀전을 흔들어놓았다.
총탄이 바로 천막우로 새된 소리를 내며 지나가는것이였다. 전체 중대에서는 적이 쳐들어온것으로 알고 재빨리 천막을 걷고 장구류들을 정리하여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정말로 적이 온줄만 알고 모두 긴장되여 번개같이 동작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대원들과 중대들의 훈련성과를 실전에 근사한 분위기속에서 검열해보기 위하여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새벽에 내린 사령부의 비상소집의 신호였던것이다.
비상소집의 신호가 난지 불과 몇분사이에 경위중대, 7련대, 8련대의 순서로 지휘관들이 달려와서 사령관동지께 전투준비가 끝난것을 보고하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각 중대의 대렬을 검열하시고 천막자리를 일일이 돌아보시였다.
어느 대원 하나 무기, 복장, 장구류에 조그마한 흠도 내지 않았고 천막자리들에도 종이 한장, 발싸개 하나 흘리지 않았다.
그것은 정말 철저하고도 빈틈이 없는 태세였다.
비상소집의 결과 각 중대들과 대원들 특히 륙과송, 쟈신즈전투가 있은 후에 새로 입대한 신입대원들이 아주 전투적으로 훈련되였다는것이 증명되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비상소집의 결과에 대하여 대단히 만족해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불과 한달동안에 신입대원들이 이렇게 질서정연하게 훈련되였다는것은 대단한 성과요. 이만하면 지금이라도 조국으로 진군할수 있소.
사령관동지께서는 비상소집의 결과를 총화하시고 지휘관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다음 제2기 군정학습을 더욱 성과적으로 진행할 과업을 제시하시였다.
물론 제2기 군정학습은 적들의 공격으로 말미암아 끝까지 진행할수는 없었지만 이미 배운것을 더 깊이있게 인식하고 익히는데서 성과가 컸었다.
지금 돌이켜보아도 백석탄밀영군정학습은 참으로 조국해방을 주동적으로 맞이하기 위한 정치군사적준비를 갖추는데서 실로 거대한 의의가 있었다.
적들의 발악이 심하고 정황이 급할수록, 우리앞에 나선 혁명과업이 어렵고 복잡할수록 정치군사학습을 강화하는 이와 같은 혁명적인 학습기풍은 그 어느때보다도 오늘 우리가 반드시 거울삼아 배워야 할 점이라고 생각한다.
조선로동당대표자회에서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공산주의자들이 로동계급의 혁명위업을 승리에로 이끌고가는가 못가는가 하는것은 그들이 자기 활동에서 맑스-레닌주의원칙을 고수하고 그것을 옳게 적용하는가 못하는가에 달려있습니다. 조선의 공산주의자들과 인민들이 조선혁명을 성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맑스-레닌주의원리를 조선의 현실에 창조적으로 적용한 우리 당의 로선과 정책을 고수하고 관철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을 높이 받들고 어떤 바람이 불거나 어떤 역경속에 처하더라도 추호의 동요도 없이 오직 수령님의 혁명사상과 그 구현인 당의 로선과 정책을 옹호하고 관철할수 있도록 자신을 철저히 무장하기 위하여 꾸준히 배우고 또 배워야 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