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밭의 할아버지
김 룡 연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조직령도하신 항일무장투쟁시기를 회상할 때마다 나의 눈앞에는 미더운 전우들의 모습과 함께 우리 조선인민혁명군을 성심성의로 원호해주던 수많은 인민들의 모습도 삼삼히 떠오르군 한다.
1941년 음력 7월 녕안현에서 있은 일이였다.
녕안현일대의 적 배치정형을 정찰할 임무를 받고 떠난 나와 심동무는 어느날 새벽 중국인마을을 지나게 되였다.
그런데 우리는 이곳에서 경찰대놈들을 보았다. 놈들은 안개자욱한 길을 서로 주절대면서 맞받아오고있었다. 우리는 재빨리 길옆으로 몸을 피했다. 놈들은 우리를 발견하지 못하고 지나갔다. 그러나 우리는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놈들이 무슨 냄새를 맡았는지 이 부근을 경계하기 시작하는 눈치를 우리는 느꼈기때문이다.
우리는 짙은 안개를 리용하여 더 가려던 길을 중지하고 밤이 될 때까지 은신해있기로 했다. 그런데 근방에는 몸을 숨길만 한 곳이 없었다.
우리는 부락에서 4마장가량 떨어진 야산기슭의 오이밭에 은신하기로 하였다. 마땅한 은신처는 아니였으나 부근에는 그보다 더 좋은 곳이 없었고 안개가 곧 걷힐것을 생각하니 더 갈수도 없었다.
나와 심동무는 무릎걸음으로 오이밭에 들어갔다. 버팀대에 올린 오이덩굴밑에 몸을 숨기고났을 때 우리는 피로를 느꼈고 졸음이 왔다.
그러나 우리는 조금도 마음을 늦출수 없어서 졸음을 물리치며 주위를 경계했다.
잠시후에 안개가 걷히고 볕이 들기 시작했다. 그때 우리들은 밭고랑 한쪽에서 우리를 바라보고 서있는 한 처녀를 발견하였다. 15~16살 돼보이는 중국처녀였는데 그는 오이광주리를 든채 놀란 눈초리로 우리를 지켜보고있었다.
나는 그만 가슴이 선뜩했다. 어떻게 할것인가.… 그러자 곁에 있던 심동무는 나에게 안심하라는 시늉을 했다. 심동무는 얼마전에도 이곳에 와본 일이 있었기때문에 이곳 주민들의 심정을 잘 알고있었던것이다.
《꾸냥!》(처녀라는 뜻) 하고 심동무는 중국말로 다정스럽게 처녀를 불렀다. 처녀가 조심스럽게 가까이 오자 심동무는 우리들이 오이밭에 들게 된 사유와 우리들은 조선인민혁명군이라는것을 간단히 이야기해주었다.
심동무의 말을 들은 처녀의 얼굴에서는 금시 놀란 기색이 사라지고 미소가 떠올랐다.
《아! 능즈다오(아, 잘 압니다.)》
처녀는 그대로 잠간만 숨어있어달라고 몸시늉을 해보이고 주위를 살피면서 총총히 오이밭고랑을 걸어나갔다. 우리는 처녀의 행동에 안심할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만일의 경우를 생각하여 오이덩굴사이로 처녀가 걸어가는 곳을 살폈다. 처녀가 걸어나간 밭머리에는 그의 아버지인듯 한 중국로인이 허리를 굽히고 서서 밭을 가꾸고있었는데 처녀는 로인곁으로 다가서서 무어라고 귀띔을 했다.
놀란듯이 허리를 펴며 일어선 로인은 처녀를 돌아보고 나서 부산하게 우리가 있는 곳으로 왔다. 로인은 연신 주위를 돌아보면서 우리앞에 쭈크리고앉았다.
《얼마나 수고들 하시오.》
그러면서 로인은 심동무와 나의 손을 번갈아잡고 흔들었다.
나는 로인에게 주인의 승낙도 없이 밭에 뛰여들게 되여 죄송하다는것과 놈들의 감시가 심하므로 낮동안 부득이 로인장의 신세를 져야 되겠다는것을 말했다.
《신세랄게 있소. 당신들은 내가 기다리던 사람들이요. 당신들은 왜놈을 반대해서 싸우는 혁명군이 아닙니까. 축축한 밭에 있지 말고 어서 우리 집으로 내려갑시다.》
로인은 우리들의 손을 잡아끌었다.
비록 거칠기는 하나 두툼하고 따뜻한 로인의 손길에서 나는 친아버지다운 자애를 느꼈다.
《어서들 갑시다. 아무것도 사양할게 없소. 비록 루추한 집이고 대접할것도 별로 없으나 제집이라고 생각하면 좋을것이니까.》
그러면서 로인은 거듭 우리의 손을 잡아 이끌었다.
그러나 우리가 따라가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나를 사로잡았다. 심동무 역시 한두걸음 끌리다가 발을 멈췄다.
《어째서들 이러오. 미안해할게 없다는데…》
《아닙니다. 저희들도 댁으로 가고는싶지만… 그냥 여기서 잠시 쉬게 해주십시오.》
우리는 로인을 믿지 못하거나 단순히 신세를 지지 않으려는것이 아니였다. 유격대원들이 만일 인민의 집에 들려서 물 한모금만 마시고 가도 적들은 그 집 사람들에게 갖은 악행을 다하는 형편이므로 우리가 로인의 집에 가기만 한다면 그 로인이 후일에라도 적들에게서 어떠한 행패를 당하리라는것은 뻔한 일이기때문이였다.
《그래… 정 안들 가시려우?!…》
로인은 약간 언성을 높이며 이렇게 물었다.
《로인님, 섭섭히 생각지 마십시오.…》하고 나는 로인의 뜨거운 성의를 공손히 사양하면서 오이밭에서 잠시만 머물게 해달라고 하였다.
내 말에 로인은 우리의 심정을 충분히 짐작할수 있다고 하면서 더 권하지 않고 담배를 붙여물었다.
그리고 딸을 시켜 노루가죽을 가져오게 하더니 그것을 깔아주며 안심하고 푹 쉬라는것이였다.
그다음에 로인은 밭일을 보는척 하며 오이밭머리에 나가서 망을 보아주었다.
우리는 뜨거워지는 눈시울을 슴벅이면서 로인이 하라는대로 노루가죽자리우에 피곤한 다리를 쭉 폈다.
로인은 딸을 시켜서 더운 점심을 지어왔다. 이 지방에 흔치 않은 찹쌀을 섞어서 지은 밥을 보자 나는 더욱 머리가 숙어졌다.
나는 더욱더 잘 싸워서 이들이 하루빨리 좋은 세상을 보게 해야겠다고 생각하였다.
저녁때가 되여 우리가 떠날 차비를 하는데 처녀가 급히 만든 떡을 오이광주리에 넣어가지고 달려왔다.
로인은 떡을 싸서 우리에게 주며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다.
《가지고 가시우. 변변치 못하지만 시장할 때 요기나 하시우. 그리고 내 비록 나이많아서 따라는 못가도 마음은 당신네와 함께 있다는것을 잊지만 마시우. 왜놈들을 쓸어눕힐 때마다 더욱더 장수같은 기운을 내주시우.…》하면서도 로인은 차마 우리와 헤여지기 서운한듯 똑같은 부탁을 두세번 거듭하였다.
이러는 사이에 어린 처녀는 날쌔게 바늘을 꺼내들고 심동무와 나의 꿰진 바지무릎을 기워주었다.
로인은 오이밭을 떠나는 우리의 손을 붙들고 거듭 간곡히 부탁했다.
《꼭 왜놈들을 이겨주시오. 중국사람과 조선사람이 다같이 잘살수 있는 세월이 오게 하는것은 당신들의 힘에 달렸소. 나도 내 힘껏 당신들을 돕겠소.》
그곳을 떠난 우리는 정찰임무를 무사히 끝내고 대오를 찾아갔다.
나에게는 그때 오이밭에서 만났던 그 중국로인과 처녀의 얼굴모습과 따뜻한 심정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된다.
바로 이러한 인민들이 우리에겐 얼마나 많았으며 또 오늘은 얼마나 행복한가. 그리고 우리들의 투쟁은 끝내 그들이 바라던 세상을 가져왔으며 그들도 오늘 행복한 살림의 주인이 되였다.
그러나 그들의 더 큰 행복을 위해 싸우자면 나는 아직도 젊었고 그들을 위해 내가 해야 할 더 보람있는 일은 이제부터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