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무선통신병의 영예를 안겨주시고
박 경 숙
우리 혁명의 만년재보가 깃들어있는 조선혁명박물관에는 색날은 한대의 무전기가 진렬되여있다.
이 무전기는 항일무장투쟁시기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품속에서 조선인민혁명군의 첫 녀성무선통신병으로 자라난 내가 그이의 가르치심을 받으며 적후정찰활동과 사령부의 지휘통신을 보장하던 뜻깊은 사연을 담고있는 무전기이다.
때때로 나는 어버이수령님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을 안고 사연깊은 그 무전기를 찾아 발걸음을 옮기군 한다.
지금도 그 무전기앞에 서면 복잡다단했던 1940년대 전반기의 전파음들과 함께 사령부를 찾는 소부대들의 호출신호가 들려오는듯 하고 온몸에 희열이 차넘치면서 전신수마냥 오른손이 저절로 오르내리군 한다.
내가 조선인민혁명군의 첫 녀성무선통신병으로 된것은 1941년 겨울이였다.
그 당시 훈련기지에서 군정훈련을 받고있던 나는 부대에서 조직하는 무전단기훈련강습에 참가하라는 지시를 받고 강습소로 갔다.
간단한 신체검사와 개별담화를 거쳐 무전수로 선출된 우리들은 드디여 첫 상학날을 맞이하게 되였다.
모두 30명정도 되였는데 둘러보니 녀성은 나혼자뿐이였다.
교원은 이날 강의에 앞서 사령관동지께서는 이번에 무전수로 선발된 동무들은 능히 해낼수 있으니 그들을 대담하게 믿고 단기강습을 조직해보자고, 무전수도 우리자체의 힘으로 키우자고 절절하게 말씀하시였다고 하면서 사령관동지의 크나큰 신임과 배려에 꼭 보답해야 하겠다고 강조하였다.
강습생들은 모두 흥분된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더구나 첫 녀성무선통신병이 되게 된 나의 기쁨은 남달리 컸다.
그러나 그 기쁨은 오래 가지 못하였다.
강습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수학, 물리를 비롯한 기초지식과목과 무선공학과 같은 기술과목은 물론 적의 통신을 도청하기 위하여 외국어까지 배우게 되자 그만 저도 모르는 사이에 나같이 무식쟁이가 따라갈수 있겠는가 하는 위구심까지 생기는것이였다.
그때 우리들의 지식수준이라는것은 보잘것 없었다.
우리 글이나 깨친 정도의 밭은 지식을 가지고 무전기술을 소유한다는것은 사실 아름찬 일이 아닐수 없었다.
그래서 강습을 조직할 때 일부 사람들은 최소한 중학정도의 기초지식이라도 있어야 무선통신을 배울수 있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들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우리 혁명군대원들이 얼마든지 해낼수 있다고 하신 그 믿음과 기대에 보답할 일념을 안고 이악하게 달라붙었다. 어려운 기술문제에 부닥칠 때마다 나라를 빼앗긴 탓에 배울래야 배울수 없었던 자기의 처지를 돌이켜보게 되였고 그럴수록 일제놈들에 대한 불타는 증오심을 안고 더욱 분발하였다.
그때 강습에 뽑힌 동무들은 비록 일반지식수준은 낮으나 배우려는 의욕이 한결같이 높았고 또 총기가 빠른 사람들이여서 이를 사려물고 달라붙으니 수학과 외국어같은 과목들은 물론 전문기술지식과목들에 대한 파악도 점차 깊어지게 되였다. 밤마다 직관물과 실물을 놓고 송수화기의 원리와 발진기, 전신기 등 전자회로들의 동작원리를 해득하느라고 진땀을 빼던 일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공부도 그랬지만 전문기술훈련 또한 간단치 않았다.
무전수에게 있어서 중요한것은 예민한 청각과 민첩하고 재빠른 전건두드리기이다. 이것은 송수신의 정확성과 속도보장을 위한 선결조건이였다.
하지만 우리들의 손은 어려서부터 여러가지 고된 일에 시달리고 싸움판에서 굳어져 생각대로 잘 움직여지질 않았다. 여기서는 남동무들이 더 애를 먹었다. 그래서 손목의 유연성을 보장하는 훈련을 하느라고 짬시간은 물론 밤시간에도 자지 않고 애를 썼다.
그때 우리들이 전신부호송수신을 익히기에 얼마나 열중했는지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어느날 점심식사시간에 있은 일이였다. 우리들이 식탁에 마주앉아 식사가 나오기를 기다리고있는데 여기저기에서 숟가락끝으로 식탁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너무도 전건을 두드리는데 습관된 나머지 그 짬시간에조차 저도 모르게 전신부호를 쳐대는것이였다.
그런데 이것을 알리없는 배식당번은 꽤나 시장들 한모양이라고 생각하고 이마에 땀이 흐르도록 분주히 뛰여다니며 식사를 날라왔다.
드디여 식사가 시작되였다. 그런데 얼마후 한 동무가 저가락으로 찬을 집다말고 《또독, 또독…》하고 접시를 두드리는것이였다.
이것을 본 배식당번은 말은 하지 않고 자꾸 두드리기만 하는것이 부아가 치밀어나 《동무, 뭐가 더 요구되는지 말로 하라구.》하고 꽥 소리를 쳤다. 순간 식당안에는 폭소가 터지고 접시를 두드리던 동무는 얼굴이 벌개져 어쩔바를 몰라하였다.
그제야 그것이 하나의 손놀림훈련이였음을 알게 된 배식당번은 어처구니가 없어 《거참…》하고는 함께 웃고말았다.
우리들의 훈련과정에는 이러한 일화들이 종종 생기군 하였다.
이런 벅찬 나날속에 우리들은 아름찼던 훈련강령을 성과적으로 돌파하고 마침내 무전수들로 자라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렇게 짧은 기간에 우리들을 무전수로 키워주시였을뿐아니라 혁명군에 정연한 무선통신망체계를 세워주시여 조국해방작전에 적극 기여할수 있도록 손잡아 이끌어주시였다.
내가 무전기를 메고 적후에 파견되는 한 소부대와 함께 첫 적후정찰활동을 마치고 돌아온지 얼마후인 1942년 7월 어느날이였다.
훈련기지사업을 지도하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 우리들의 병실을 찾아주시였다.
적후활동의 나날 그처럼 그리며 뵙고싶던 위대한 수령님을 몸가까이 모시게 된 우리들의 기쁨은 이루 말할수 없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감격에 목메여하는 우리들의 손을 일일이 잡아주시면서 동무들이 정말 수고했다고 치하해주시였다. 그러시면서 훈련기지에 돌아와 불편한 점은 없는가, 건강은 어떤가고 따뜻이 물으시였다.
이윽고 우리들과 자리를 같이하시고 소부대책임자로부터 적후활동정형을 알아보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잠시 좌중을 둘러보시더니 나의 이름을 부르시는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내가 자리에서 일어서자 앉아서 이야기하라고 하시면서 무전을 배운 후 정찰활동에 몇번 참가했는가고 물으시였다.
나는 이번에 소부대를 따라나갔던것이 처음이라고 대답올렸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녀성동무가 무전기를 메고 행군하느라 수고많았겠다고 하시면서 무전기의 성능상태를 알아보시고 교신시 제기되는것은 없는가고 물으시였다.
나는 무전기의 성능과 기술적제원에 대한 말씀을 올린 다음 교신시 특별히 제기되는것은 없다고 말씀드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적후에서 무전기가 고장이 나면 어떻게 하는가고 물으시였다.
그 순간 나의 머리속에는 적후활동시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두번째 교신시간때였다. 시간은 다되여오는데 웬일인지 무전기의 전원이 켜지지 않는것이였다. 나는 몹시 당황해났다. 그러나 인차 마음을 진정하고 전원회로를 찬찬히 검열해보니 안개로 하여 축전지와 기재와의 련결부위가 부식되여 접점불량이 생긴것이였다. 그것을 퇴치하고 그날 통신을 보장한 후 나는 이것을 교훈삼아 사전에 점검을 잘하여 교신을 정상적으로 보장하였었다.
그때 일을 생각하면서 나는 위대한 수령님께 《무전기에 정통하니 웬만한 고장은 자체로 얼마든지 퇴치할수 있습니다.》라고 자신만만하게 대답하였다.
옆에 있던 소부대책임자도 적후에서 있었던 사실을 그대로 보고드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아주 대단하다고 나의 등을 두드려주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무전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나는 집중적인 군정훈련을 시작하기 전부터 무전기에 의한 통신망체계를 빨리 세워야 하겠다는것을 깊이 생각하게 되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우리가 훈련기지에 새로운 밀영을 한창 건설할 때 모든 부대들에 적들의 무전기를 빼앗아내는 한편 우리의 힘으로 무전기술을 빨리 배워야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시고는 그때가 엊그제 같은데 동무들이 이렇게 무전기술을 배워 적후에 들어가 정치활동도 하고 부대들간의 련계도 맺으며 정세장악도 하게 되였다고 못내 대견해하시는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으로부터 과분한 치하를 받으면서 우리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영예롭고 중대한 임무를 감당하고있는가 하는것을 다시금 깊이 느끼게 되였다.
새로운 훈련기지가 꾸려지기 전까지 조선인민혁명군 부대들의 통신은 도보로 진행되여왔었다. 그러니 천고밀림과 사나운 눈비속을 헤치며 때로는 적들과의 혈전도 각오해야 하는 통신원들의 수고를 이루 말할수 없는것은 물론이거니와 통신의 신속성과 정확성도 원만히 보장될수 없었다.
사령부의 의도와 지시가 광활한 지대에서 활동하는 각 부대들에 즉시에 전달되고 적정자료와 부대들의 행동들이 그시그시 사령부에 보고되게 하자면 통신을 반드시 현대화하여야만 하였다. 더구나 최정예를 자랑하는 일제침략군과 맞서 최후결전을 벌리자면 유격전법과 함께 현대전법을 령활하게 활용하여야 하는만큼 조국해방의 대사변을 앞두고 통신의 현대화는 필수적인 요구로 제기되였다.
이 모든것을 통찰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찍부터 조선인민혁명군의 무선통신체계를 구상하시고 이 사업을 예견성있게 준비하여오시였다.
그리하여 이 무렵에 와서는 집중적인 정규강습을 통하여 육성된 수많은 전문무전수들이 각 부대들에 파견되여 사령부의 지휘통신을 원만히 보장할수 있게 되였던것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감회깊은 생각에 잠겨있는 우리들을 둘러보시면서 물론 동무들이 거둔 성과는 시작에 지나지 않지만 정연한 무선통신망체계를 세우기 위해 우리가 취한 혁명적조치가 얼마나 정당하며 위력한 생활력을 가지고있는가를 실천활동으로 증명하였다고 지적하시였다.
그러시면서 무전기술의 발전정도는 그 나라의 과학기술과 문화수준정도를 보여주는 하나의 기준으로도 된다고, 그런데 우리 조국을 강점한 일제가 조선사람들은 무전기술도 제대로 배우지 못하게 하고있다고 말씀하시였다.
그 말씀을 들으니 무전강습을 받을 때 위대한 수령님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그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무전강습의 목적과 의의에 대하여 말씀하시면서 현대적인 통신수단을 가지지 못했던 탓에 나라의 중대한 외교적통신까지 일제에게 의탁하게 되고 결국 헤그밀사사건과 같은 비참한 일까지 연출하지 않으면 안되였던 사실에 대하여 이야기하시였다.
우리는 그때 그 말씀을 들으면서 한 나라의 외교대표들이 진행한 외교전이 자기의 현대적통신수단이 없어 본국과의 정확하고 신속한 련계를 가지지 못하여 일을 성사시키지 못한데 대하여 가슴을 치며 통탄하였으며 더욱 높은 열의로 훈련을 다그쳤던것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는 멀지 않아 일제를 격멸하고 조국에 나가게 되는데 그때에는 당과 인민정권, 정규무력을 건설할뿐아니라 무선을 리용하는 전문통신기관도 꾸려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이 중요한 사업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동무들이 주인이 되고 골간이 되여 수행해야 한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동무들에 대한 우리의 기대가 대단히 큽니다.
동무들은 앞으로도 정찰활동을 계속하여야 하며 급변하는 정세에 대처하여 그시그시 새로운 로선과 전략전술을 작성할수 있도록 적정자료와 정세자료들을 수집제공해야 합니다. 그리고 조국해방을 위한 총공격명령이 내릴 때에는 각 부대들에 대한 사령부의 통일적인 군사작전지휘를 보장해야 합니다.
이렇듯 천리혜안의 예지로 조국해방작전과 해방된 조국땅에서 무선통신이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에 대하여 밝혀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날 오랜 시간 우리들과 함께 계시면서 무전수들의 책임성을 높일데 대한 문제, 무전기술을 배우는것을 신비하게 생각하지 말고 광범히 보급할데 대한 문제, 혁명동지들의 고귀한 피가 스며있는 무전기를 애호관리할데 대한 문제, 혁명적경각성을 높여 통신사업에서 비밀을 철저히 지킬데 대한 문제 등 우리들의 활동에서 지침으로 삼아야 할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고 병실을 떠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을 받들고 우리들은 더욱 분발하여 낮에 밤을 이어 배가의 노력을 기울였다. 그리하여 무전송수신에서 모두가 높은 급의 수준에 이른 전문기술을 소유할수 있게 되였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또다시 위대한 수령님의 명령을 받고 무전수로서 소부대활동을 나가게 되였다.
그때 소부대책임자는 김책동지였다.
위대한 수령님과 항일의 녀성영웅이신 김정숙동지께서 우리 소부대의 출발준비정형을 직접 검열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과 김정숙동지께서는 무전기와 축전지를 비롯한 무기장구류들을 휴대하고 선 나를 특별히 부르시여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나에게 동무는 무전기를 메고 수천리를 행군하게 된다고 하시면서 무기장구류와 무전기를 메고 적후에 들어가 정찰활동을 하는것이 얼마나 어렵다는것을 동무는 실지체험을 통해 잘 알고있을것이라고 따뜻이 념려해주시였다. 그러시고나서 적후정찰활동은 예민한 관찰력과 판단력, 대담성을 요구한다고 하시면서 동무의 임무는 적정자료를 무전으로 신속히 사령부에 보고하는것이라고, 무전결속후에는 인차 자리를 옮기라고 당부하시였다.
그리고 김정숙동지께서는 나의 무전기 멜끈을 조절해주시며 녀성으로서 소부대활동에서 불편한점이 많을테지만 동무는 맡은 일을 능히 해낼수 있을것이라고 하시면서 부디 건강하여 성공하고 돌아오라고 나의 손을 꼭 잡아주시는것이였다.
한없이 뜨거운 그 믿음과 사랑에 목이 꽉 메여 나는 장군님의 명령을 무조건 수행하고 돌아오겠다고 말씀드렸다.
바로 이 믿음, 이 사랑을 안고 나는 소부대활동의 어려운 고비들을 이겨나갔다.
우리 소부대는 첫시작부터 간고한 시련에 부닥치게 되였다.
어려운 행군과정에 지휘관이 의식을 잃고 앓게 되였고 행군방향까지 잘못 잡아 무척 고생을 하였다.
안타까이 헤매이던 우리는 사령부와의 교신을 통해서 정확한 행동좌표지시를 받고서야 비로소 자기 로정을 따라 행군할수 있었다.
갖은 고생끝에 우리는 석달이 지나서야 목적지에 도착하게 되였다.
사령부를 멀리 떠나있을 때 제일 그리운것은 사령부의 호출신호였다. 그래서 우리 소부대성원들은 내가 사령부와 교신을 할 때면 빙 둘러앉아 기다리다가 호출신호가 나오면 너무 기뻐 환성을 올리군 하였다.
그때문인지 소부대성원들은 사령부의 지시를 전달해주는 나를 보배덩이로 떠받들어주군 하였다.
그런 과정을 통하여 나는 자기 임무의 중요성을 더욱 깊이 자각하게 되였으며 자기 임무를 더 책임적으로 수행하게 되였다.
우리 소부대는 3일에 한번씩 교신하여 사령부의 지시를 받으면서 자기의 임무를 원만히 수행하고 그해 초겨울 부대에 돌아왔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차디찬 날씨도 아랑곳 않으시고 몸소 멀리까지 나오시여 우리를 뜨겁게 맞아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특히 이번에 무전수동무가 수고를 많이 했다고 나의 등을 두드려주시며 다시금 무선통신망체계를 더욱 철저히 세울데 대한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그러시면서 앞으로 부대적으로 진행되는 큰 규모의 무선통신강습에 녀성들을 많이 망라시키게 되는데 동무도 자만하지 말고 여기에 참가하여 자기 기술을 최상급의 수준으로 끌어올리라고 말씀하시였다.
이처럼 나는 위대한 수령님의 세심한 보살피심속에서 적후정찰과정을 거쳐 당당한 무전수로 자라나게 되였으며 그후에는 첫 녀성무선분대장으로 임명되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국해방작전을 준비하시던 시기 우리 무전수들이 현대전에 대처한 지휘통신을 원만히 보장할수 있도록 깊은 관심을 돌려주시였다.
그중에서도 1943년 6월에 있었던 일을 잊을수가 없다.
어느날 조선인민혁명군 부대들의 군정훈련을 지도하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친히 우리 무선소대에 나오시여 사령부의 전투지휘통신보장을 위한 야외훈련을 지도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날 우리 소대가 비상소집발령을 받고 신속정확히 무전기를 비롯한 무기장구류들을 휴대하고 정렬한것을 보시고 매우 만족해하시며 신심이 생긴다고 고무해주시였다.
그러시고는 이번 훈련을 실전의 분위기속에서 진행해야 한다고 하시면서 야외 산지에서의 안테나의 방향선정, 설치방법, 교신시에 변동되는 정황처리방법 등 있을수 있는 조건들을 일일이 찍어서 지적해주시였다.
소대는 지정된 시간에 지정된 장소에 정확히 도착하여 곧 무전기들을 전개하였다.
우리는 린접들간의 거리를 2~3㎞로 하여 총 40~50㎞의 구간을 차지하고 1주일간에 걸쳐 야외훈련을 진행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훈련기간 매 무선대들을 찾으시여 안테나의 설치로부터 교신신호절차, 송수신속도와 변신자료의 정확성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지도해주시였다.
그런데 어느 한 무선대에서 교신을 못하는 사고가 발생하였다. 한 대원이 덤벼치던 나머지 송수신기를 바꿔메고 나왔던것이다.
그날 훈련전투지휘용으로는 단파송수신기를 써야 하는데 그만 장파송수신기를 휴대하고 나왔으니 그것으로 교신이 될리 없었다.
울상이 된 그 대원의 보고를 받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의 굳어진 마음을 풀어주시려고 호탕하게 웃으시면서 장파와 단파무전기의 성능과 차이점을 하나하나 가르쳐주시였다.
그러신 후 심각한 어조로 보라, 만약 동무가 장파무전기를 메고 적들과의 싸움에 나섰다면 어떻게 되였겠는가, 부대의 지휘통신을 보장할수 없는것은 물론 돌이킬수 없는 엄중한 후과를 초래했을것이다, 그러므로 훈련도 실전의 분위기속에서 진행해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그 대원의 과오를 있을수 있는 실수로 생각하고 웃음으로 넘기려던 우리들은 이 말씀을 들으면서 훈련에 대한 자신들의 그릇된 관점을 두고 다시금 심각히 반성해보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들의 야외훈련을 총화해주실 때에도 모든 동무들이 무전기의 성능과 구조작용을 똑바로 정확히 배우며 실전에 써먹을수 있는 산지식으로 되게 할데 대하여 강조하시였다.
조선인민혁명군의 현대적무선통신체계를 세워주시던 나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 무전수들을 극진히 아끼고 사랑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늘 지휘관들에게 우리 무전수들의 손은 유연해야 한다고 하시며 험한 일에 상하지 않도록 주의를 돌리게 하시였으며 발달된 청각을 가져야 무선통신을 보장할수 있다고 하시며 잠을 충분히 재우도록 하시였다.
그리고 소부대활동을 나갈 때면 사령부와의 통신을 직접 보장하는 무전수들은 귀중한 동무들인데 비록 다른 동무들은 굶더라도 이들에게는 식사를 보장해주며 무기도 가벼운 기병총으로 바꾸어주라고 일일이 당부하군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이런 사랑과 보살피심속에서 우리 무전수들은 언제나 사소한 불편도 없이 자기 임무를 원만히 수행할수 있었다.
위대한 수령님의 이렇듯 현명한 령도와 극진한 보살피심에 의하여 조선인민혁명군안에는 현대적인 무선통신체계가 정연하게 세워지게 되였으며 수령님의 총공격명령을 받들고 진행된 조국해방을 위한 최후공격작전 지휘통신을 원만히 보장하여 조국해방을 이룩하는데 크게 이바지하게 되였다.
항일무장투쟁의 불길속에서 첫 전파를 날렸던 우리의 혁명무력이 오늘은 최첨단군사기술과 현대적군사장비를 갖춘 백전백승의 혁명군대로 자라났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무어주시고 경애하는 김정일장군님께서 이끄시는 사상에서도 제일이고 전략전술에서도 제일이며 군사기술장비에서도 으뜸인 영웅적조선인민군을 당할자 이 세상에 없다는것을 조선인민혁명군의 첫 녀성무선통신병이였던 나는 확신성있게 말하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