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스러운 조선인민혁명군을 창건하시는 길에서
오 백 룡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1932년 4월 25일 안도에서 조선인민혁명군을 창건하신 때로부터 수십년 세월이 흘러갔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영광스러운 조선인민혁명군을 창건하시기 위하여 걸으신 길은 헤아릴수 없이 복잡하고 어려운 길이였다. 참으로 이 간고하고도 험난한 길은 오직 절세의 애국자이시며 전설적영웅이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에 의하여서만 처음으로 개척될수 있었고 그이에 의해서만 이 영광의 대오는 곤난속에서도 창건될수 있었다.
실로 이 길은 그 누구도 가보지 못한 생소하고 험난한 초행길이였던것만큼 력사에 없는 가장 엄혹한 시련을 이겨내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나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조선인민혁명군을 창건하시기 위하여 어떻게 그 복잡하고 어려운 혁명의 길을 개척하여오시였는가에 대하여 다는 알지 못하고있다.
다만 나는 항일무장투쟁시기에 내가 알고있던 몇가지 사실만을 여기에 적으려고 한다.
1931년 9월 18일, 일제침략자들이 만주사변을 일으킨 직후에 있은 일이다.
당시 일제침략자들은 만주침공을 감행하면서 조선인민에 대한 야수적탄압을 그 어느때보다도 더욱 강화하였다. 놈들은 무고한 조선사람들을 닥치는대로 잡아가두고 학살하였으며 거리와 마을을 불바다, 피바다에 잠기게 하였다.
이러한 때 일제의 야수적탄압에 격분한 인민들은 적앞에 무릎을 꿇고 죽느냐 아니면 일떠서 끝까지 싸우느냐 하는 갈림길에서 한결같이 원쑤들의 류혈적탄압에 폭력적진출로써 대답하였다. 특히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밑에 혁명조직이 있는 곳에서는 그 어디를 막론하고 일제와 그 주구를 반대하는 대중투쟁이 줄기차게 벌어지게 되였으며 점차 그것은 폭력적성격을 띠고 급속히 확대되여갔다.
바로 이 투쟁이 추수투쟁이였다.
당시 위대한 수령님의 령도밑에 조직전개된 추수투쟁은 우리가 살고있던 왕청땅에서도 치렬히 벌어졌다.
그때 나는 왕청현 골방골에서 소년선봉대 대원으로 활동하면서 추수투쟁에 참가하였다. 여기에는 백초구와 소왕청, 대왕청, 영창동, 봉오골, 석현지구 등 그 주변일대의 2만여명의 군중이 참가하였다.
그때 우리는 소작료를 3, 7제로 할것을 요구조건으로 내걸고 《반동지주를 타도하자!》, 《일본제국주의를 타도하자!》 등의 구호를 웨치며 완강한 투쟁을 벌렸다.
혁명조직들에서는 이때 투쟁위원회를 조직하고 적위대원들과 소년선봉대원들로는 규찰대를 조직하였다.
이때 나는 나무단속에 선전문을 넣어가지고 골방골에서 한 30리 떨어져있는 석현장에 날라가기도 하고 때로는 하루에 수십리길을 뛰여다니며 통신도 날랐다.
혁명적군중들은 일제의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3, 7제의 요구를 관철하기 위하여 치렬한 투쟁을 벌리였다.
일제의 류혈적인 탄압과 야수적인 만행에 격분하여 일떠선 인민들의 이 투쟁은 일제와 반동적인 지주놈들에게 커다란 타격을 주었으며 대중의 혁명적기세를 더한층 앙양시켰다.
인민들의 혁명적기세가 더욱 높아감에 따라 일제침략자들은 대중의 혁명적진출을 막아보려고 갖은 만행을 다하였다.
이리하여 우리가 살던 왕청땅에서만이 아니라 동만의 농촌은 그 어디라 할것없이 적들이 질러놓은 불에 불바다로 되고 피땀으로 가꾼 곡식이 재가 되였다. 수많은 군중들이 놈들에게 집과 가장집물들을 잃고 갈바를 몰라 헤매였고 부모처자를 잃은 수많은 사람들이 피눈물을 흘리며 치를 떨었다.
그때의 정세는 전에없이 험악하고 긴장하였으며 우리의 투쟁은 더욱 간고해졌다. 바로 이러한 때인 1931년 12월 어느날이였다.
그날 내가 조직에서 임무를 받고 정찰을 갔다오니 급히 오라는 련락이 왔다.
그리하여 나는 골방골의 한 조직원의 집으로 급히 달려갔다. 거기에는 내가 이미 잘 알고있는 김철, 오중화동지를 비롯한 여러명의 조직원들이 와있었다.
나는 무슨 일이 생긴줄로만 알고 사람들의 얼굴부터 살폈다. 이때 김철동지가 조직원들의 참가정형을 알아보더니 며칠전에 연길현 명월구에서 위대한 수령님의 지도밑에 당 및 공청간부들의 회의가 있었다고 하면서 우리들에게 수령님께서 내놓으신 명월구회의방침들에 대하여 이야기해주는것이였다.
그때 우리 왕청지방에서는 김철, 리광, 김중권, 오중화동지들을 비롯한 혁명조직대표들이 참가하였는데 여기에는 안도현과 연길, 훈춘, 화룡 등 동만의 각 현과 돈화, 화전, 길림 등 여러 지방에서 온 혁명조직책임자들 4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회의는 여러날동안이나 계속되였다.
이 회의에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제를 반대하는 무장투쟁을 조직전개할데 대하여》라는 제목으로 력사적인 연설을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 연설에서 일제의 만주강점에 의하여 조성된 긴박한 혁명정세를 분석하시고 조국광복의 민족적숙원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조직적인 무장투쟁을 벌려야 한다고 가르치시였다.
그이께서는 일제의 류혈적인 식민지폭압정책이 전례없이 강화된 조건에서 유격전의 형식을 기본으로 하여 항일무장투쟁을 조직전개할데 대한 전략적방침을 제시하시였다. 그리고 그이께서는 무장투쟁을 조직전개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도들을 제시하시였다.
김철동지는 수령님께서 연설을 마치시자 회의장은 세찬 감동과 감격의 물결로 휩싸였다고 하면서 그이께서 내놓으신 방침을 한결같이 지지해나선 회의참가자들은 모두가 끓어넘치는 격정을 억제하지 못하여 서로 억세게 팔들을 끼고 회의장이 떠나갈듯 《혁명가》 와 《인터나쇼날》의 노래를 부르며 영원히 위대한 수령님의 두리에 굳게 뭉쳐 강도 일제를 때려부시고 기어이 조국을 찾으리라 굳은 맹세를 다지고 또 다지였다고 하였다.
내가 이미 쓴 회상기 《배움의 첫걸음》에서도 이야기한바 있지만 극빈한 가정에서 글 한자 배우지 못하고 자란 나는 그때 자기 이름조차 쓸줄 몰랐으나 위대한 수령님께서 명월구회의에서 하신 력사적인 연설내용을 전달받으면서 얼마나 기뻐하고 환성을 올리며 감격했었는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이날 회의에 참가한 사람들도 흥분하여 모두 얼싸안고 돌아갔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명월구회의방침들은 참으로 투쟁의 앞길을 찾지 못하여 애타하던 우리들에게 혁명이 아무리 간고하고 복잡하여도 능히 조선인민자체의 힘으로 일제침략자들을 물리치고 나라를 해방할수 있다는 확고한 신심을 안겨주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명월구회의에서 제시하신 독창적인 방침들은 당시 조성된 혁명정세와 적아간의 력량관계를 과학적으로 분석하신데 기초하여 내놓으신 유일하게 정당한 방침이였으며 조선인민의 반일민족해방운동을 무장투쟁에로 발전시켜 자기자신의 힘으로 반혁명적폭력을 혁명적폭력으로 타승하고 조국의 광복을 이룩할수 있게 한 가장 혁명적인 방침이였다.
참으로 명월구회의는 영광스러운 항일무장투쟁의 시초를 열어놓고 우리 나라 반일민족해방운동과 혁명운동을 새로운 높은 단계에로 발전시킴에 있어서 위대한 전환을 가져오게 한 력사적인 회의였다.
후에 안 일이지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명월구회의에서 내놓으신 방침을 관철하기 위하여 항일무장투쟁의 대중적지반을 닦으시는 한편 무장대오를 조직하기 위하여 무기획득을 위한 투쟁과 무장성원들을 키우기 위한 사업을 힘있게 밀고나가시였다. 이 시기 그이께서는 안도를 중심으로 활동하시면서 무장대오를 꾸리기 위하여 먼저 조선혁명군 성원들과 지하공작원들을 동만각지에 파견하시여 반일대중투쟁을 강화하고 실천투쟁속에서 검열되고 단련된 선진적인 로동자, 농민, 청년학생들을 무장성원으로 받아들이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각지에 파견하신 지하공작원들에 대한 지도를 강화하시는 한편 안도현 흥륭촌, 소사하, 대사하를 비롯한 여러 지역의 혁명조직들에 몸소 나가시여 불면불휴의 정력적인 활동으로 인민대중을 반일투쟁에로 조직동원하시면서 우수한 청년공산주의자들을 무장성원으로 묶어세우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또한 혁명조직들을 확대강화하고 인민대중속에서 정치사업을 힘있게 벌리시여 무장투쟁의 대중적지반을 닦기 위한 사업을 적극적으로 밀고나가시였다.
그이께서는 이 시기 각지 혁명조직들과 지하공작원들의 사업을 지도하시기에 몹시 분망하시였으나 앞으로 유격활동의 중요지점으로 될수 있는 지역들가운데서 혁명화하기에 매우 어려운 지대들에 몸소 나가시여 그곳을 혁명화하는 빛나는 모범을 보여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 시기 푸르허의 농촌마을에 나가시여 한 조직원의 집 머슴으로 가장하시고 이곳을 혁명화하시였다.
이 마을은 적들의 감시가 심하여 수많은 지하공작원들이 들어갔다가 실패하군 하여 혁명동지들은 그이의 신변을 념려하여 굳이 만류하였으나 자신의 모든것을 오직 혁명에 바쳐 싸우시는 그이께서는 한 조직원의 집 머슴군으로 이 마을에 들어가시여 무시로 닥쳐오는 위험을 물리치시며 비범한 수완과 능숙한 솜씨로 불과 한달 남짓한 사이에 온 마을을 혁명화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이와 같은 불면불휴의 활동에 의하여 조선인민혁명군을 창건하기 위한 사업은 동만의 여러 지방들에서 급속히 추진되여갔으며 항일무장투쟁의 대중적지반이 날을 따라 더욱 튼튼히 다져지게 되였던것이다.
그러나 무장대오를 결성하자면 무장이 있어야 하였다. 무장을 해결하는 문제는 당시 국가적후방이나 민족군대의 토대도 없었던 형편에서 여간만 어려운 일이 아니였다.
항일유격대를 결성하는데서 무장적기초로 된것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아버님으로부터 넘겨받으신 두자루의 권총과 조선혁명군을 조직하신 이후 간고한 투쟁을 통하여 마련하신 무장들이였다.
그이께서는 이것을 밑천으로 하여 조선혁명군 성원들과 지하투쟁에서 단련된 선진청년들로써 무기탈취를 위한 투쟁을 직접 조직하시는 한편 각지의 지하혁명조직들과 혁명군중을 무기를 얻기 위한 투쟁에로 불러일으키시였다.
이리하여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방침에 따라 각지 혁명조직들에서는 무기를 얻기 위한 투쟁을 힘있게 벌려나갔다. 이 투쟁에는 당원들과 공청원들 그리고 소년선봉대원들과 적위대원, 부녀회원들 지어 로인들과 어린이들까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일떠섰다. 우리는 한자루의 총을 위하여 귀중한 생명을 서슴없이 바쳐싸웠다. 우리는 그때 두만강연안의 세관에까지 나와 그곳을 습격하고 무기를 빼앗았으며 소년선봉대와 적위대의 협동으로 반동적인 지주집을 습격하여 많은 무기를 빼앗았다.
김철동지를 비롯한 10여명의 공산주의자들은 1932년 1월에 왕청현 대감자공안국을 기습하여 7정의 보총과 많은 탄알을 로획하였다.
한편 조직군중들은 위대한 수령님의 가르치심대로 곳곳에서 창과 칼을 벼려가지고 무기를 획득하기 위해 투쟁하였다.
이러한 과감한 투쟁은 왕청에서만이 아니라 동만 각 지방들에서 줄기차게 벌어졌다.
혁명조직들에서는 무기획득을 위한 투쟁을 비롯하여 실천투쟁속에서 단련되고 검열된 우수한 청년들을 무장성원으로 선발하였다.
이리하여 일제의 백색테로가 감행되는 그 어려운 조건에서도 무장대오를 결성하고 적극적인 무장활동을 벌릴수 있는 튼튼한 기초를 마련하여나갈수 있었다.
그러나 위대한 수령님께서 조선인민혁명군을 창건하시던 그 험난한 길우에는 참으로 많은 난관이 앞을 막아나서군 하였다. 하나의 난관을 뚫으면 또 다른 난관이 앞을 가로막았다.
하지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 모든 난관을 불굴의 의지와 비상한 혁명적전개력, 희생적인 투쟁으로 하나하나 풀어나가시였다.
내가 이러한 사실을 구체적으로 알게 된것은 안도에서 반일인민유격대를 창건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 1933년초에 왕청에 오신 때였다. 나는 이때부터 오매에도 그리던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뵈옵고 그이의 몸가까이에서 가르치심을 받으며 활동하게 되였다.
그때 우리 중대에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안도에서부터 거느리고 다니시던 대원들이 적지 않았다. 나는 그들과 함께 생활하는 과정에 위대한 수령님께서 항일유격대를 창건하시는 그처럼 어려운 투쟁을 어떻게 전개해나가시였는가에 대하여 자세히 들을수 있었다.
당시 조선인민혁명군을 창건하며 항일무장투쟁을 본격적으로 벌리기 위한 투쟁에서 또 하나의 커다란 장애로 된것은 조선공산주의자들에 대한 중국인반일부대(구국군)들의 적대적인 행동이였다.
구국군이란 일제가 만주를 강점한 이후 항일의 기치를 들고 구동북군에서 떨어져나온 군대였다. 그들은 일제가 아직 강점하지 못한 만주의 중소도시들과 농촌들에 수많이 집결되여있었다. 그들은 항일구국의 기치를 들기는 하였으나 그 상층이 자산계급의 출신들로 이루어진 민족주의군대로서 일제와의 투쟁에서 불철저하였다.
더우기 그들은 일제의 반공선전과 교활한 민족리간책동에 속아넘어가 조선공산주의자들과 조선사람들을 로골적으로 적대시하였다. 그들은 조선공산주의자들을 《일본의 만주진출의 선봉》이라느니, 《만주를 적색화하려는자들》이라느니 하면서 보기만 하면 무조건 체포학살하였다.
그때 우리가 활동하고있던 왕청현일대에도 오의성, 사충항 등이 지휘하는 항일구국군부대들이 많이 주둔해있었는데 그들의 행동은 포악하기 그지없었다.
그들은 일제도 반대하고 조선공산주의자들도 반대하는 정치적으로 암둔한자들이였다.
유격투쟁을 하자면 유격활동에 유리한 산악지대를 리용하여야 하겠는데 산에는 반일부대들이 깔려있었고 도시에는 일제놈들이 틀고앉아있기때문에 공개적인 활동을 하기가 어려웠다.
이런 형편에서 항일유격대가 자유롭게 활동하며 무장투쟁을 크게 벌리기 위하여서는 무엇보다먼저 조선공산주의자들과 혁명군중들에 대한 반일부대들의 적대행위를 저지시키고 그들과 반일련합전선을 이룩하여야만 하였다. 그러나 당시 그들과 접촉하는것조차도 희생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되였던 형편에서 이 난관을 해결한다는것은 여간만 어려운 일이 아니였다.
이러한 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혁명의 길우에 가로놓인 이 난관을 타개하시기 위하여 한몸의 위험을 무릅쓰고 나서시였다.
그때 안도에는 우사령이 지휘하는 반일부대가 있었는데 그들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창건하시는 항일유격대에 입대하기 위하여 여러 곳에서 찾아오는 선진적인 조선청년들을 닥치는대로 체포학살하기까지 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포악하기로 이름난 이 우사령부대를 찾아가 그 두령과 직접 담판할것을 결심하시였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동지들은 모두 어찌할바를 몰라하였다.
그것은 완고하고 무지막지한 반일부대들이 무슨 행동을 할지 알수 없는 형편에서 그속으로 들어간다는것은 위험한 일이였기때문이였다. 동지들은 모두 그이를 한결같이 만류하였다.
동지들의 심중을 헤아려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현재의 형편에서 조선공산주의자들에 대한 반일구국군부대들의 적대행위를 저지시키고 그들과의 련합전선을 형성하는것은 물론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부닥친 난관이 아무리 크다고 하여도 이 문제는 꼭 해결하여야 합니다.
반일구국군과의 련합전선을 형성하는것은 항일유격대를 창건하고 무장투쟁을 벌리는데 유리한 조건을 마련하고 반제력량을 튼튼히 결속함으로써 우리 혁명과 린접국가의 혁명승리를 보장하는데서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가집니다.
동지들은 그이의 말씀을 들으면서 혁명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위험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서슴없이 한몸을 바쳐나가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고결하신 혁명가적품성에 깊이 감동되여 더는 만류하지 못하였다.
이리하여 1932년 4월 상순 그이께서는 불과 서너명의 동지들을 데리시고 안도현성에 자리잡고있는 구국군 우사령부대를 찾아 길을 떠나시였다.
그리로 가는 길은 순탄하지 않았다.
대사하를 지척에 둔 산마루에 이르시였을 때였다. 여기저기에서 총과 창을 든 구국군병사들이 다짜고짜로 앞을 막아서며 일행을 체포하려고 하였다.
우리도 당신들처럼 항일을 하는데 왜 붙잡으려고 하는가.
그이께서는 위엄있게 말씀하시였다.
그러자 이번에는 조선사람이 아닌가고 따져물었다. 이들은 조선사람이라면 그 어떤 횡포한 행위도 서슴지 않고 감행하는자들이였다.
하지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태연하게 대답하시였다.
《그렇다. 조선사람이다!》
그러시고는 병사들에게 사령이 있는데로 안내하라고 엄하게 말씀하시였다.
그이의 너무나도 태연자약한 대답에 위압을 느낀 그들은 가까이에 있는 저들의 참모장에게 그이를 안내해드리였다.
그런데 우사령부대의 참모장이라는 사람은 뜻밖에도 그전에 위대한 수령님께서 길림에서 중학교에 다니실 때 그곳에서 교편을 잡고있던 류본초라는 사람이였다.
참모장은 그이를 보자 깜짝 놀라는것이였다.
수령님께서 일찍부터 높은 정치적식견과 고상한 인품을 지니시고 청년학생운동의 걸출한 지도자로 눈부신 혁명활동을 벌려오신 사실을 잘 알고있던 그는 기쁨을 금치 못하면서 자기 부하들에게 손님들과 같이 식사를 하겠으니 잘 준비하라고 지시까지 하였다.
전설적영웅이신 김일성동지께서 우사령을 만나러 가신다는것을 알게 되자 그는 량강구에 있는 자기 두령이 오늘 안도성시로 들어간다는것을 알려주면서 자기도 함께 갈것을 약속하였다.
대사하에서 안도성시까지는 80리나 되는 먼길이였다. 그러나 그는 이때까지 타고다니던 말도 타지 않고 그이를 안내하며 함께 걸어갔다.
이것을 본 구국군병사들은 자기들의 상관이 20살안팎인 젊은 조선청년앞에서 취하는 태도를 보고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하여 머리만 기웃거렸다.
우사령은 자기의 참모장을 통하여 그이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그런지 처음부터 그이를 정중히 대하였다. 그러나 조선공산주의자들에 대한 그의 오해와 편견은 매우 뿌리깊다는것을 느낄수 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다음날부터 우사령과 담판을 벌리시였다.
담판에 나온 우사령의 태도는 랭랭하고 거만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사리를 따져가면서 우사령을 설복하시였다.
그이의 당당한 위풍과 사리정연한 론리앞에 저으기 위압을 느끼면서도 우사령은 딴전을 부리였다.
이리하여 담판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여 난관에 부닥치게 되였다.
그런데 담판과정에 또 하나의 일이 생겼다. 명월구회의소식을 듣고 위대한 수령님의 지도를 받기 위해 안도로 떠나오던 약 80명가량의 조선청년들을 우사령부대의 병사들이 《공산당》이라고 체포해온 사건이 발생하였다.
우사령은 이전처럼 이 청년들을 무작정 푸르허강에 넣어 죽이려고 하였다.
이 사실을 아시게 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사령의 무분별한 행동을 단호히 저지하고 그를 옳은 길로 돌려세우기 위하여 결정적인 담판을 시작하시였다.
그이께서 반일력량을 단합시킬 대신 덮어놓고 조선사람을 학살하려는 처사가 잘못되였다고 말씀하시자 우사령은 《공산당이 폭동을 일으키고 땅을 다 빼앗으려다가 나중에는 일본놈들을 끌어들였는데 그것이 일본놈의 〈앞잡이〉가 아닌가.》고 하면서 그때문에 자기는 조선공산주의자들을 좋지 않게 보고있다고 말하였다. 그가 말하는 폭동은 5. 30폭동을 두고 말하는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에게 5. 30폭동이 일어나게 된 동기를 해설해주시면서 조중인민사이의 단결을 무엇보다 두려워하고있는 일제의 간교한 민족리간책동의 본질과 조선공산주의자들의 투쟁목적, 반일련합전선의 의의 등을 사리정연하게 분석하여 해설해주시였다. 그리고 그이께서는 조선사람이나 공산당이 원쑤인것이 아니라 바로 일제침략자들이 조중인민의 공동의 원쑤라는것을 차근차근 해설하여주시면서 구국군들이 조선사람들에게 가하고있는 횡포한 행위는 일제의 민족리간책동에 롱락당하는것이라고 깨우쳐주시였다.
그이께서는 이러한 사태의 지속은 중국인민들의 반일투쟁에 큰 손실만을 가져다줄뿐이라고 하시면서 한 부대를 책임지고 큰일을 하는 사령이 사태의 진상을 잘못 리해함으로써 반일투쟁에 보다 엄중한 후과를 빚어낼수 있다는것을 알기 쉽게 해설해주시였다.
그이께서는 계속하여 각계각층의 광범한 반일력량을 묶어세워 공동의 적인 일제를 반대하여 싸울 필요성에 대하여 강조하시였다.
그러나 우사령은 속으로는 위대한 수령님의 말씀이 옳다는것을 인정하면서도 자기의 완고한 립장을 좀처럼 버리려 하지 않았다.
담판은 다음날에도 계속되였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구국군병사들에 의하여 체포구금된 조선청년들을 먼저 만나보신 다음 우사령과 다시 담판하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지금은 반일하겠다는 사람은 단 한사람이라도 더 묶어세워야 할 때이다.
당신들이 체포한 조선사람들은 모두다 일제를 반대하여 싸우겠다고 나선 사람들이다. 일제에 대한 원한이야 나라를 빼앗긴 조선사람이 더할터인데 어째서 그들이 《친일파》로 될수 있겠는가. 일제를 반대하여 싸우겠다고 나선 사람들을 덮어놓고 죽이는것은 그릇된 처사이라고 생각한다. 공산당이건, 조선사람이건, 중국사람이건 모든 반일세력을 다 단결시켜 일제와 싸우게 하는것이 좋지 그들을 자꾸 잡아죽여서 좋을것이 무엇인가.
그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체포한 조선청년 80여명을 죽일것이 아니라 그들이 일제를 반대하여 싸울수 있도록 부대를 따로 만들어주자고 하시였다.
그이께서는 계속하여 이렇게 부대를 하나 만들어놓고 어떻게 싸우는가를 검열해보고 잘 싸우면 그이상 좋은 일이 없겠는데 그들을 무작정하고 죽일 필요야 없지 않은가고 말씀하시였다.
처음에는 고개만 기웃거리고있던 우사령은 그이의 론박할수 없는 정당한 주장과 높으신 인품앞에서 차츰 머리를 수그리게 되였다. 그러면서도 그는 의심이 풀리지 않는 모양인지 《만일 그들을 싸움판에 내보냈다가 총을 돌려댈 때에는 어떻게 하겠는가?》 또 《부대를 조직하는 경우에 무장문제는 어떻게 하겠는가?》고 하면서 주저하였다.
그러나 위대한 수령님의 견결한 반일사상과 복잡한 정세를 예리하게 분석판단하시는 비범한 정치적안목, 그이의 진지하고 참을성있는 설복에 감화된 우사령은 마침내 반일공동투쟁에 동의해나섰으며 조선청년들로 별동대를 조직하는데 찬성하게 되였다.
그처럼 완고하고 포악하기 그지없던 우사령과의 담판에서 거둔 성과, 이것은 전설적영웅이신 김일성동지의 위대한 주체사상의 빛나는 승리였으며 반일련합전선을 이룩하는데서 얻은 크나큰 열매였다.
이리하여 반일인민유격대창건의 길우에 가로놓였던 또 하나의 커다란 난관이 극복되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정확한 지도와 그이께서 제시하신 전략전술적방침을 높이 받들고 일떠선 인민들의 적극적인 투쟁에 의하여 혁명무력을 창건할수 있는 튼튼한 기초가 하나하나 마련되여갔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바로 이와 같은 간고한 길을 거쳐 1932년 4월 25일 장기간에 걸쳐 육성하신 조선혁명군 대원들과 공청 및 반제청년동맹의 핵심들을 골간으로 하여 선진적인 로동자, 농민, 애국청년들로써 반일인민유격대(조선인민혁명군)의 창건을 온 세상에 선포하시였다.
우리 인민이 그처럼 념원하고 바라던 조선인민혁명군창건의 력사적인 날은 이렇게 밝아왔다.
조선인민혁명군의 창건! 이는 철천지원쑤 일제침략자들에 대한 우리 인민의 단호한 선전포고였으며 일제의 패망을 예고하는 력사적인 사변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조선인민혁명군을 창건하신것은 실로 우리 나라 공산주의운동과 민족해방운동의 발전에서 새로운 전환을 가져온 위대한 사변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창건하신 조선인민혁명군은 5월 1일에 붉은기를 높이 들고 나팔을 불면서 안도시가를 보무당당히 행진하였다. 혁명의 붉은기를 높이 날리며 위풍당당히 행진하는 조선의 아들딸들의 우람찬 발구름소리는 안도의 거치른 들판과 천고의 밀림을 뒤흔들며 시들어가던 조선인민의 가슴마다에 생기를 불어넣으며 하늘땅에 메아리쳐갔다.
전설적영웅이신 김일성동지께서 안도에서 창건하신 조선인민혁명군의 첫 대오를 친솔하시고 남만의 통화를 거쳐 적들을 족치며 눈보라 사납게 울부짖던 로흑산의 밀림속을 넘고넘어 왕청땅에 들어서실 때까지의 걸음걸음은 그대로 혁명의 폭풍우속에서 단련되고 간고한 시련속에서 성장한 혁명대오의 불굴의 의지와 신념을 시위하는 영광의 자욱자욱이였다.
안도에서 온 동지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들은 감격적인 이야기를 여기에 다 적을수는 없다. 우리는 그때 이런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전설적영웅이신 김일성동지를 조선혁명의 위대한 수령으로 모시고 혁명하는 크나큰 자부심과 드높은 긍지를 가슴뜨겁게 느꼈으며 영원히 그이께 충정다할 불같은 결의를 다지였다.
지난날에도 그러했지만 오늘 우리들에게 있어서 가장 큰 영광과 행복은 오직 위대한 김일성동지를 조선혁명의 수령으로 모시고 대를 이어 혁명을 하는것이다.
우리들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이끄시는 혁명의 한길에서 그이의 높으신 뜻을 이 땅우에 더욱 빛나게 구현하며 수령님께서 개척하신 혁명위업을 끝까지 완성하여 나아가야 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