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동지를 추모하시여
전 문 섭
1938년 1월 어느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최경화동무가 희생된것을 애도하여 추도문을 손수 쓰시였다.
아, 최경화동무!
영원히 다시 돌아오지 못할 동무여! 동무는 일본제국주의를 타도하기 위하여 용약 항일무장투쟁에 뛰여나와 영용하게 싸우다가 애석하게도 희생되였다.
그리운 고향과 사랑하는 부모형제를 리별하고 먼 국경을 넘어 항일무장투쟁에 참가한 첫날부터 동무는 한몸, 한목숨을 혁명과 동지들을 위하여 바쳐싸웠다.
동무는 언제나 싸움에서는 선두에 서서 용감하였고 고난속에서는 어려움을 스스로 맡아나섰다.
비내리는 여름이나 눈보라 사나운 겨울에 풍찬로숙하고 설한풍을 헤가르며 고난의 길인들 몇천만리를 걸었던가!
그러나 동무는 언제나 웃음으로 괴로움을 이겨내였고 자신을 돌보지 않고 헌신하여 동지들을 도왔다.
넓고넓은 동북광야, 가는 곳마다에서 수십배의 원쑤들과의 힘겨운 혈전으로 앞길을 뚫으며 악전고투인들 몇천백번이였던가!
그러나 동무는 조금도 동요함이 없이 항상 견결하였으며 불굴의 투지로 용감히 싸워이겼었다.
동무는 조국의 해방과 독립, 인민의 자유와 해방을 위하여 불철주야로 투쟁하였었다.
…
애석하고나, 최경화동무여!
가슴에 품은 그 큰뜻 다 이루지 못하고 불굴의 혁명정신 가슴에 품은채 그만 적의 흉탄에 맞아 중로에서 돌아갔구나. …
원쑤에 대한 불타는 적개심 다 풀지 못한채 원한에 사무쳐 쓰러졌구나.
…
그러나 동무가 흘린 피는 헛되지 않았다.
동무의 뜨거운 피는 우리의 가슴속에서 거세찬 혁명의 불길로 길이 타번질것이고 열렬한 혁명정신은 우리 심장속에 영원히 살아있을것이다.
동무가 세운 혁명위훈은 조국의 청사에 길이 빛날것이요. 동무의 불같은 조국애는 삼천만 조선인민의 가슴가슴을 불태워 마침내는 강도 왜적을 구축하는 결전에로 불러일으키리라!
동무가 평생 두고 싸우며 그려보던 조국해방의 날은 기어코 오고야말것이다!
동무여!
동무의 뼈에 사무친 원한은 우리가 천백배 복수하리라. 동무가 다하지 못한 혁명위업은 우리가 끝까지 완수하리라!
조국강토에 자유와 독립의 기발이 휘날리고 인민의 행복이 꽃피는 그날까지 우리는 굴함없이 싸워이길것이다.
동무여! 안심하고 고이 잠들라!
나는 이 추도문의 한구절한구절을 회상하면서 혁명동지에 대한 위대한 수령님의 뜨거운 사랑을 다시한번 가슴깊이 느낀다.
최경화동무는 우리모두의 각별한 사랑과 존경을 받은 유격대원이였다.
그는 《대학생》이란 별명으로 불리운 지식있는 동무였지만 건방진데가 없이 소탈하고 동지들과의 접촉성도 좋았다.
그는 언제나 어려운 일에서 누구보다 먼저 나서고 동무들이 곤난해할 때는 제몸을 아끼지 않고 도와주는 성미였다.
마당거우밀영에서 우리가 동기군정학습을 하고있던 그해 겨울에도 최경화동무는 부대와 동지들을 위하여 밤낮을 가리지 않고 노력하였다.
그는 대내 주간신문 《종소리》발간을 담당한 후에는 자신이 시를 짓고 삽화를 그렸으며 불비한 모든것을 극복하면서 그 임무를 훌륭히 수행하였다.
그는 이런 바쁜 일을 하면서도 동무들의 학습을 돕기 위하여 심혈을 기울였다.
어떻게 하면 모르는 사람을 가르쳐줄것인가를 항상 생각하였고 짬만 있으면 그는 모르는 사람들을 따라다니며 가르쳐주군 하였다.
그리하여 그해 동기군정학습기간에 그에게서 글읽기와 쓰기를 배운 대원이 적지 않았다.
최경화동무는 훌륭한 선동원이기도 하였다.
그는 행군할 때는 구수하게 이야기를 잘하여 사람들에게 힘을 주었고 휴식할 때에도 선동사업을 잊지 않았다.
그는 일상 사업에서 이처럼 책임성이 강하고 성실하였을뿐만아니라 적과의 전투에서는 대담무쌍했고 용감했다.
그리고 그는 어느 싸움에서나 앞장에 나서서 가장 어려운 고비에 뛰여들어 용맹스럽게 원쑤들을 쓸어눕히군 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위대한 수령님의 극진한 사랑을 받았고 동지들의 두터운 존경을 받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지휘밑에 1938년 1월 어느날 야간에 정안툰습격전투가 있었다.
그는 이날도 자진하여 부대의 진격로를 개척하는 돌격대의 앞장에 서서 공격해들어갔다.
위대한 수령님의 친솔밑에 그날밤 우리는 무송현 정안툰기습작전을 위하여 은밀히 성밑에 다가들어 숨을 죽이고 전투명령을 기다리고있었다.
최경화동무를 비롯한 돌격대원들이 은밀히 담을 넘어들어가서 보초를 제끼고 성문을 여는 순간이였다. 바로 그때에 적순찰병들이 알고 그들에게 집중사격을 퍼부었다.
최경화동무는 다른 동무들이 성문을 여는것을 엄호하기 위하여 단신 적을 향하여 돌격해들어갔다. 그러다가 그만 복부에 적의 흉탄을 맞았다.
최경화동무는 부상당한 몸도 돌보지 않고 성문이 활짝 열리고 우리 부대가 성난 사자처럼 성내로 밀려들어갈 때까지 계속 사격하면서 적들을 견제했다.
전투는 우리의 대승리로 끝나고 정안툰은 해방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투가 끝나서야 최경화동무가 부상당한 사실을 아시고 무척 가슴아파하시며 최경화동무에게로 가시여 그의 상처를 살펴보시고 응급처치를 더욱 철저히 하게 하시였다.
밀영으로 돌아가는 길에서도 그이께서는 줄곧 최경화동무를 눕힌 담가옆에서 걸으시며 그를 위로하시였다.
《경화동무, 마음을 단단히 먹으라구. 이제 곧 밀영에 도착하게 될터이니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렇게 그에게 힘을 북돋아주시며 자신의 외투를 벗어서 그를 덮어주시였다.
최경화동무의 옆을 지켜 걸어가시는 그이의 얼굴에는 깊이 상심하시는 빛이 어리여있었다.
우리들은 가슴이 무거워지는것을 억누르며 최경화동무의 담가뒤를 묵묵히 따랐다.
최경화동무의 얼굴에서는 점점 피기가 사라져갔다.
이윽하여 최경화동무는 간신히 눈을 뜨더니 누군가를 찾는듯 둘러보았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말없이 그의 손을 잡아주시였다.
《사령관동지, 끝까지 싸우지 못하고 죽는것이 원통합니다. … 사령관동지!…》
최경화동무는 이렇게 한마디 말을 남기고 그만 눈을 감고말았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경화동무를 흔들며 떨리는 목소리로 그를 다급히 부르시였다.
《경화, 경화동무!…》
그러나 그는 아무 응답도 없었다.
우리는 더는 눈물을 참을래야 참을수 없었다. 동지의 시체앞에 머리를 숙이고 선 우리들의 가슴마다에는 원쑤에 대한 적개심과 최경화동무가 마지막으로 남긴 그 울분을 풀어 복수하리라는 투지가 활활 타올랐다.
《우리는 또 귀중한 전우를 잃었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비분에 찬 한마디 말씀을 하시고는 머리숙여 그 자리에 오래 서계시였다.
그날밤 밀영에 돌아온 우리는 밤깊도록 고깔불앞에 홀로 묵묵히 앉아계시는 수령님의 모습을 뵈왔다.
대원들앞에서는 슬픔을 참아가며 비통해하시던 그이께서 대원들이 잠든 야밤중에 희생된 동지를 추모하시며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계시였다.
그러나 그이의 눈에서는 원쑤에 대한 증오와 복수의 불빛이 번득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무엇인가 쓰시다가는 깊은 생각에 잠기군 하시였다.
그이께서 이끌어오신 장구한 혁명의 길, 곡절과 시련많은 간고하고 험난한 투쟁행정에 어찌 희생인들 없었으랴!
어린 대원들이 배불리 먹지도 못하고 간고한 행군을 할 때마다 돌을 먹어도 삭일 나이에 배를 곯으니 얼마나 견디기 어렵겠는가고 속으로 애달파하시던 그이, 눈보라 휘몰아치는 한지에서 잠들 때면 하나밖에 없는 자신의 모포를 대원들에게 덮어주시고 눈우에 앉으시여 밤을 새우시던 그이, 엄하고 규률있게 가르치시면서도 적후에 나간 한 대원을 생각하시여 식사를 그만두시던 그이께서 엄혹한 전투속에서 불굴의 투사로 몸소 키워주신 혁명동지들을 잃을 때마다 오죽 가슴이 아프셨으랴!
갖은 풍상 다 겪은 투쟁의 길에서 이런 일이 한두번만 있지 않았다. …
한 자식을 잃은 부모의 설음도 당대 간다거늘 그이의 마음속에야 얼마나 아픈 추억이 쌓이고쌓여 차고넘쳤으랴!
내 눈앞에는 불현듯 동지들이 희생될 때마다 그이께서 애통함과 비분에 못견디여 하시던 일들이 삼삼히 떠올랐다.
한번은 리명수근방에서 전투정황이 너무도 급해서 전사한 동지의 시체를 묻지도 못한채 빠져나왔던 일이 있었다. 추격하여온 적들을 소탕하고 전투가 끝난 뒤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동무들, 우리 할 일이 한가지 더 남아있소. 우리는 전사한 동지의 시체를 묻지도 못하고 왔소. 다시 돌아가서 그를 묻어줍시다.》
우리는 그곳에서 벌써 100여리나 떨어진 곳에 와있었고 그사이에는 허리를 치는 깊은 눈길이 가로막고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위대한 수령님의 이 말씀에 수백리 눈길도 두려움 없었고 전투에서 지친 몸이였건만 조금도 괴로움을 몰랐다.
우리는 그 길로 어려운 행군을 시작하여 다시 동지가 전사한 곳으로 돌아갔다.
이 행군의 이틀동안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변변히 식사도 안하시고 주무시지도 않으며 길을 다그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동지의 시체를 안장하고나서야 안심되시는듯 길게 한숨을 내쉬시며 눈물을 삼키시였다.
혁명동지를 사랑하시는 마음이 오죽 지극하시면 침식도 안하시고 100여리 길을 되돌아가시여 동지를 안장하시였으랴!
전우들에 대한 위대한 수령님의 지극한 사랑, 그 고귀한 지성에 감동되여 그때에도 우리는 더욱 목메여 흐느껴울었던것이다.
…
한참후에 돌아보니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여전히 고깔불앞에 그대로 앉아계시였다.
다 꺼져버린 고깔불에 나무를 두는것도 잊으시고 무엇을 쓰다가는 멈추시고 한참씩 한곳을 주시하며 앉아계시다가는 다시 쓰기를 계속하시였다.
가만히 머리를 들어 그이께서 쓰시는 종이를 넘겨다본 나는 그곳에서 《추도문》이란 세 글자를 읽었다.
가슴이 금시에 미여지는것만 같아 나는 얼른 고개를 돌렸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비분에 넘치는 마음을 담아 전사한 최경화동무의 추도문을 쓰고계시지 않는가.
한자를 쓰시고는 생각하시고 다시 한자를 쓰시고는 비통한 눈물을 훔치시면서 이미 자신의 곁을 떠난 최경화동무의 이름을 부르고 또 부르고계시는것이였다.
나는 위대한 수령님의 심중을 나대로 상상하여보았다.
(생전에 그와 함께 고생하며 싸우던 일도, 숙영때마다 행군때마다 동무들을 일깨워주던 최경화동무의 키 큰 모습도 그려보시겠지. 그리고 장래를 바라보시며 사랑과 믿음으로 아끼며 키우시던 그 모든 나날도, 해방된 조국에서 최동무가 훌륭한 교육가로 된 모습을 보자고 하시던 일도 회상하시리라!)
먼동이 터오건만, 고깔불도 이미 꺼진지 오래건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한구절한구절 애도의 글줄기를 더듬어가시였다.
나는 혁명동지들에 대한 그이의 크고 뜨거운 사랑과 지극한 정성에 다시금 가슴이 뜨거워졌다.
위대한 수령님의 이 사랑속에 살아서 싸우는것이 얼마나 행복하며 그이의 이 지극한 사랑속에 죽은들 무슨 한이 있으랴.
(그리운 동무여, 영광속에 잠들라! 사령관동지의 그토록 지극한 사랑을 안고 우리는 반드시 동무의 원쑤, 3천만 인민의 원쑤를 갚으리라!)
나는 희생된 최경화동무를 향하여 고동치는 심장과 함께 속으로 이렇게 부르짖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