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풍동마을에서
전 문 욱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조선인민혁명군의 일부 대오를 친솔하시고 장백현 17도구 상풍동마을에 들리신것은 1936년 12월 말경 함박눈이 내린 어느날 밤이였다.
사령관동지께서 파견하신 정치공작원들이 장백지구에 나와 활동한 때부터 이 고장 사람들은 환희와 흥분으로 나날을 보냈다. 주경동에도 조국광복회 지부가 조직되였으며 반일청년동맹과 아동단이 조직되였다. 반일청년동맹 주경동지부의 상풍동분조책임을 진 나는 이날밤 분조원들을 만나고 늦게 집에 돌아왔던만큼 자리에 눕자마자 깊이 잠들었다.
그런데 한밤중에 잠에서 깨여났다.
《사각사각 빠지직빠지직 …》 하는 소리가 점점 크게 들리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눈길을 밟고 가까이 접근해오는 소리였다.
(웬 사람들일가?)
나는 벌떡 자리를 차고일어났다.
그리고 뛰여나갔다. 어느새 깨여났는지 수많은 마을사람들도 달려나왔다.
정연하게 늘어선 긴 대렬이 밝은 달빛아래 환히 보였다. 그 수는 200명이 넘는것 같았다.
조선인민혁명군이였다. 얼마나 마음속에 그리며 기다리던 우리의 군대인가!
마을사람들은 모두들 혁명군대원들을 얼싸안았고 서로서로 두손을 마주잡고 힘껏 흔들었다.
우리들은 경애하는 수령님의 친솔하에 조선인민혁명군이 압록강연안에 진출한 후 대덕수와 소덕수에서 그리고 반절구와 이도강전투들에서 달성한 승리의 기쁜 소식을 들을 때마다 사령관동지께서 령도하시는 조선인민혁명군을 만날 그날을 얼마나 마음조이며 기다렸던가.
혁명군대원들과 만난 우리들의 흥분과 감격은 비할바없이 컸다.
마을사람들이 제각기 이끄는 손길에 안내되여 혁명군대원들은 마을농가들에 분숙하게 되였다. 이날밤 우리 청년들은 감격과 흥분으로 가슴이 울렁거리여 꼬박 뜬눈으로 새웠다.
(김일성장군님께서도 오셨겠지. … 날이 밝으면 그이를 만나뵈오러 가자.)
나는 이렇게 생각하면서 새날이 밝기만 기다렸다.
이튿날 새벽이 되자 혁명군대원들은 어느새 일어났는지 마당을 쓸고 넘어진 바자도 손질하면서 분주히 돌아갔다.
나는 우리 집 뜨락을 쓰는 한 혁명군대원옆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그의 손에서 비자루를 빼앗아쥐고는 슬그머니 어느 부대냐고 물어보았다. 그 대원은 웃으면서 그저 조선인민혁명군이라고 하면서 어느 부대라고는 밝히지 않았다.
《김일성장군님께서 오셨지요?》
하도 내가 끈끈히 캐묻자 그제서야 그 대원은 그렇다고 대답하였다.
《김일성장군님께서 오셨다!》는 소식은 마을사람들의 입과 입을 거쳐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삽시간에 쫙 퍼지였다.
그러자 로인들이나 젊은이들이나 할것없이 이른새벽부터 밖에 나와 서성거리였다. 마을의 어린이들은 홑바지저고리를 입고 짚신에 벌겋게 언 발을 해가지고 골목길을 뛰여다니며 부산을 피웠다. 실로 모든 사람들의 얼굴마다에는 행복한 웃음꽃이 활짝 피여있었다.
그런데 이날아침 우리는 뜻밖에도 사령관동지께서 반일청년동맹원들을 부르신다는 련락을 받게 되였다.
(그처럼 마음속에 흠모하여오던 그이를 이제야 만나뵈옵게 되누나.)
나의 가슴은 흥분으로 하여 막 울렁거리였다.
그러나 한편 그이의 앞에 가서 어떻게 처신할것인가를 생각하니 은근히 근심도 생겼다.
(아마 김일성장군님께서는 나이도 지긋하시고 엄엄한분이시겠지?)
그이의 모습에 대하여 나는 나대로 이렇게 상상해보았다.
우리는 그이께서 계시는 집으로 다가갔다.
한 대원이 우리가 왔다는것을 알리자 건장한 체구의 젊으신 지휘관이 문을 열고 《동무들, 들어오시오.》 하고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시였다.
(이분이 김일성장군님이시구나.)
나이도 지긋하신분일것이라고 상상하던것과는 달리 얼핏 보기에 25살안팎의 젊으신 장군님이시였다.
그이께서는 외투를 벗어 옆에 놓고 앉으시며 우리들에게 편히 앉으라고 말씀하시였다. 우리는 구름노전을 깐 방안에 그이를 중심으로 주런이 앉았다.
(장군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무엇을 물으실가?) 하고 생각하니 마음이 조마조마하였다. 나는 필경 상풍동마을에서의 반일청년동맹조직사업정형에 대하여 물으실것으로 생각하고있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이께서는 우리 한사람한사람에게 어떻게 되여 이곳에 오게 되였는가, 전에 살던 고장은 어디인가, 식구는 몇인가, 살림형편은 어떤가를 차근차근 물으시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우리들이 자기의 속을 툭 털어놓을수 있도록 어찌나 허심하게 대해주시였던지 처음에는 그이의 앞에서 대답도 제대로 못하던 일부 동무들도 몇마디 말씀드린 뒤부터는 제각기 신이 나서 자기들이 고초를 겪은 가지가지의 사실들과 특히 지주의 가혹한 착취상에 대하여 울분을 터뜨리며 말하는것이였다.
그이께서는 인민들의 고통을 뼈아프게 느끼시는듯 우리의 이야기를 주의깊이 들으시였다.
나는 지난 시기 내가 보고 체험한 일들중에서 일제의 주구인 악질지주와 관리들을 반대하여 싸운 사실을 말씀드리였다.
우리가 살고있던 반절구에는 악귀같은 지주놈이 있었다.
이 지주놈은 경찰놈들을 등에 업고 피땀으로 개간한 농민들의 땅을 사기와 협잡으로 모조리 빼앗고 온갖 구실을 붙여 농민들의 쌀독에서 마지막 한되의 쌀까지 다 긁어냈었다.
격분한 농민들은 토벽으로 둘러싼 그놈의 집에 달려들어 지주놈을 끌어내왔다.
그리고 그놈을 땅바닥에 눕혀 도끼모태로 삼아 그우에다 장작개비를 놓고 도끼로 그것을 빠갰다. 시퍼런 도끼날이 내리찍힐 때마다 지주놈은 금시 숨이 지는듯 한 비명을 지르면서 제발 목숨만 살려달라고 두손을 싹싹 비볐다.
그리하여 그때부터 이 지주에게는 《도끼모태》라는 별명이 붙게 되였다.
나는 상풍동마을에 오기 전에 함남 대진평에서 겪은 사실에 대하여서도 말씀드리였다.
두메산골 대진평마을에는 가끔 시꺼먼 제복을 입고 칼을 찬 산림간수놈이 와서 이것저것 트집을 걸며 사람들을 함부로 때리고 벌금을 받아내군 하였다.
한번은 농민들이 먹을것이 없어 소나무껍질을 벗겨먹었다 하여 로인들에게 반말질을 하며 벌금을 내지 않으면 잡아간다고 땅땅 을러멨다.
이 광경을 지켜보고있던 마을젊은이들은 그놈의 거동을 그냥 볼수 없었다. 격분한 마을젊은이들과 함께 나는 그놈을 붙잡아서 집채같은 진대나무를 지레대로 뜨고 그밑에 집어넣었다.
나는 이런 사실을 자랑삼아 말씀드리면서 사령관동지께서 나의 이 행동을 치하하여주시리라고 은근히 생각하였다.
나의 이야기를 끝까지 다 들으신 사령관동지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이곳 반일청년동맹원들은 모두 강도 일제와 그 주구들을 증오하는 마음이 강하고 놈들을 반대하여 싸우려는 각오가 대단히 높습니다. 이것은 아주 좋은 일입니다.
동무들이 구국항전을 잘해나가자면 타도할 대상이 누구인가 하는 과녁을 똑똑히 알아야 합니다.
지금 농민들이 피땀을 흘려 지은 곡식을 빼앗아가는것은 지주놈들입니다. 그놈들은 일제침략자들에게는 아부굴종하고 우리 농민들에게는 온갖 못된짓을 다하고있습니다. 이러한 지주놈들뒤에는 우리 민족의 철천지원쑤인 일제침략자들이 있습니다. 강도 일제는 우리 나라를 강점하고 인민들을 억압착취하고있습니다. 그러므로 동무들이 싸워야 할 첫째 투쟁대상은 강도 일제침략자들과 그 주구 지주, 자본가놈들입니다.
조국광복을 이룩하기 위한 성스러운 투쟁은 주먹다짐으로써는 수행할수 없습니다.
동무들이 이야기한것처럼 개별적방법으로 악질적인 지주를 도끼모태로 만들어 혼쌀내고 악독한 산림간수 한놈을 진대나무밑에 밀어넣는다고 우리의 처지가 달라질수 없습니다.
우리가 발톱까지 무장한 포악한 일제침략군과 싸워 이기려면 정확한 투쟁구호와 옳은 전략전술을 가져야 하며 광범한 군중의 힘에 의거하여야 합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고나서 나를 보고 웃으시며 그후 《도끼모태》라는 지주가 어떻게 되였는가를 물으시는것이였다.
나는 잠시 아무 말도 못하고 주저하였다. 그것은 그이께서 말씀하신것처럼 그런 일이 있은 다음 우리의 처지에는 달라진것이 아무것도 없었을뿐더러 오히려 일제의 폭압과 행패가 더 심하여진것이 틀림없었기때문이였다.
《도끼모태》는 일제관헌에 의지하여 우리를 보복하였다. 그리하여 할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그 고장을 떠났다.
우리도 바로 그때 밤중에 세간살이를 꿍져지고 함남 대진평이라는 깊은 산골로 옮겨가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러나 대진평에서도 산림간수를 진대나무밑에 밀어넣은 후부터 일제의 경계가 심하여 인민들이 다시 그곳을 떠나지 않으면 안되였던것이다.
나의 이런 이야기를 들으신 사령관동지께서는 보라, 그런 방법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놈들과 싸우는 방법이 달라야 한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광범한 인민대중이 굳게 뭉쳐 일제와 그 주구들을 반대하여 투쟁한다면 그 힘은 무엇으로써도 막을수 없을것입니다. 광범한 군중이 일치단결하여 싸운다면 강도 일제는 반드시 멸망하고야말것입니다.
지금 조선인민혁명군의 위력은 날을 따라 강화되고있으며 국내에서 우리 인민의 반일기세는 전례없이 높아지고있습니다.
1930년대 중엽에 들어서면서 국내 로동자, 농민들의 반일투쟁이 그전시기에 비하여 광범한 범위에서 벌어지고있습니다.
1936년에만도 놈들의 학정을 반대하여 부산항만 로동자들이 대중적인 파업을 일으켰으며 신흥탄광 로동자들도 또다시 일제와 착취자들을 반대하여 힘찬 투쟁을 벌리였습니다.
로동자들의 파업투쟁과 함께 농민들의 투쟁도 여러가지 형태로 일어나고있습니다.
전국각지에서 농민들은 소작권박탈과 고리대, 량곡수집과 가렴잡세, 강제부역 등을 반대하여 투쟁에 나서고있습니다.
국제정세도 우리 혁명에 유리하게 전변되여가고있습니다.
이러한 정세는 동무들로 하여금 혁명조직을 튼튼히 꾸리며 일제와 그 주구를 반대하는 각계각층 군중들을 한사람이라도 더 많이 조직에 묶어세울것을 요구하고있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사령관동지의 어조에는 혁명적열정과 확고한 신념이 불타고있었다.
광범한 대중을 조직동원하자면 동무들자신이 누구를 위하여 어떻게 싸워야 하는가를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아는것이 힘입니다. 동무들은 우리 조국의 력사와 지리, 민족문화전통에 대해서와 국내에서 일어나는 로동자, 농민들의 투쟁, 청년학생운동에 대하여서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세계혁명에 대하여서도 알아야 합니다.
동무들이 옳은 방법론이 없이 그저 싸우겠다는 욕망만 가지고서는 투쟁을 잘해나갈수 없습니다.
그러시면서 사령관동지께서는 우리들에게 학습을 많이 해서 지식을 넓힐데 대하여 중요하게 강조하시였다.
학습에서는 우선 아는것을 가지고 토론을 많이 하는것이 좋습니다. 먼저 한사람이 조선혁명의 성격과 사명 같은것을 토론할수 있으며 다른 사람은 우리 혁명의 동력과 투쟁대상 같은것을 가지고 발표하게 해서 모두가 알게 하여야 하겠습니다. 모르는것은 호상 토론에 붙이여 론쟁의 방법으로 학습하면 지식이 깊어지고 모든것이 명백해질것입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우리들에게 등사한 《3. 1월간》을 주시고 매 개인에게 혁명가요집 한권씩을 나누어주신 다음 국내외정세와 조선인민혁명군의 사명 그리고 앞으로 청년들이 해야 할 과업에 대하여 말씀하시였다.
그이의 말씀은 조선혁명의 성격으로부터 출발하여 혁명의 동력과 투쟁대상 그리고 투쟁방법에 대한 어려운 리론적문제들을 포괄하는것이였으나 책에 쓰인것처럼 힘들지도 않고 딱딱하지도 않았다.
우리들의 의식수준에 맞추어 쉬운 말로 풀어서 해설하시는 사령관동지의 말씀에 나는 지난날 사업에서 무엇이 잘못되였는가를 스스로 깊이 뉘우칠수 있었다.
궁벽한 벽촌에서 나서자라고 어려운 생활에 쪼들리면서 우리는 일제와 지주놈이 미운줄은 알았어도 아직 혁명적인 리론과 투쟁방법을 알지 못하였다.
우리는 사령관동지의 말씀을 듣고서 비로소 눈이 트이고 앞이 환해지는것을 느꼈다. 이날 사령관동지께서는 조국광복회 회원들도 만나시여 장시간 담화하시였다.
담화가 끝난 후 이어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과 마을사람들이 한자리에 앉아 즐거운 한때를 보내였다.
유격대원들은 노래도 부르고 노래와 손벽장단에 맞추어 빙글빙글 돌며 춤을 추었으며 하모니카합주도 하였다.
그리고 우리 청년들에게 《인민주권가》, 《녀성해방가》 등 여러가지 혁명가요도 배워주었다.
이날저녁 사령관동지께서는 마을사람들의 열렬한 환송을 받으시며 부대를 거느리시고 우리 마을을 떠나시였다.
우리는 사령관동지를 만나뵙고나서야 이때까지 전설로 들어오던 《하늘이 낸 장군》, 《산을 주름잡아 다니시는 장군》이 바로 진정 착취받고 억압받는 우리 인민이 나아갈 길을 뚜렷이 밝혀주시는 위대한 장군님이시라는것을 더욱 똑똑히 알수 있었다.
사령관동지를 만나뵈온 사람들은 모두다 그이의 깊고 넓은 정치적식견에 감탄하였다.
그러기에 상풍동마을 전체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조선사람도 이제는 살길을 만났다!》, 《김일성장군님께서 국경가까이에 나오시였으니 일제놈의 세상도 얼마 남지 않았다!》라고 말하면서 그이께서 다녀가신 이후 반일혁명조직에 더욱 굳게 뭉치였으며 조선인민혁명군을 원호하는 사업에 모든것을 아끼지 않았다.
특히 우리 청년들은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의 가르치심대로 반일혁명조직에 대중을 묶어세우며 조선인민혁명군을 원호하는 사업에 자기의 심혈을 다 기울이였다. 그리고 조직을 통하여 수많은 청년들이 앞을 다투어 경애하는 김일성장군님께서 다녀가신 그 길을 밟으며 조선인민혁명군을 찾아떠났다.
1937년 4월에는 나도 우리 마을의 다른 몇몇 동무들과 함께 조선인민혁명군에 입대하였으며 항일무장투쟁의 길에 나섰던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