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원들과 고락을 같이하시며
김 룡 연
내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를 처음으로 만나뵈온것은 1936년 12월이였다.
위대한 수령님을 뵙기 전까지 나는 그이의 옷차림도 보통대원과는 다르고 대하기도 엄엄하신분이시리라 생각하였다.
《백두산정기를 타고나신분》으로 《산을 주름잡아 다니시며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왜놈을 치신다.》고 전설적으로 이야기되는분이시니 어찌 평범하실수 있으랴 하는 생각이였다.
그런데 내가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뵙고 아주 감동된것은 여태껏 생각하던바와는 전혀 다른 소탈하신 풍모였다.
지금도 홍두산밀영에서 그이를 처음 만나뵈옵던 일이 눈에 선하다.
나는 그때 주경동의 두 청년과 함께 혁명군에 입대하려고 홍두산밀영을 찾아갔었다. 그런데 중대장동무는 나에게 군인으로서 반드시 알아야 할 사항을 쓴 《군인수지》라는 책을 주면서 그것을 읽으며 사령관동지께서 오실 때까지 기다리라고 하였다.
그래서 나는 그곳에 있는 20명의 대원들과 함께 쉬면서 빨리 그이께서 오시여 나의 입대문제를 결정해주시기를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리고있었다.
마침 점심때쯤 되여 위대한 수령님께서 오신다는 련락이 왔었다. 나는 가슴이 막 뛰는것을 느꼈다.
《김일성장군님께서 오신다!》
이윽하여 밀영어귀 눈덮인 숲사이길로 걸어오는 일행이 보였다. 나는 일행중 어느분이 그이이실가 하고 알아맞춰보려고 애썼다. 우선 복장이 다른분을 찾아보았다. 그러나 특별한 옷차림을 한분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아마 선발대가 먼저 오고 그뒤로 위대한 수령님께서 오시는가보다 하고 그 일행에 대해서는 그리 주의를 돌리지 않고 그 뒤켠만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 일행중에서 키가 후리후리하고 체구가 름름하신 한 젊은 지휘관이 나의 마음을 끌었다.
그 젊은 지휘관은 보통대원들과 같이 보위색군복에 행전을 치고 지하족을 신으시였지만 어딘가 모르게 일행의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보이였다.
눈에서는 영채가 돌고 얼굴에는 서글서글한 미소가 떠도는데 어딘가 위엄이 있어보이면서도 너그러우신 그이의 풍모에 나의 마음이 끌리는것이였다.
그분께서는 일행과 웃으시는 얼굴로 이야기를 하시며 걸어오시는데 모든 사람이 그분의 말씀을 신중히 듣고있었다.
나는 중대장과 다른 대원들의 시선이 바로 그 젊은 지휘관에게로 쏠리고있는것을 깨달았다.
슬며시 한 대원에게 물었더니 바로 그 젊은 지휘관이 위대한 김일성장군님이시라는것이였다.
나는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고 가슴이 울렁거려 어쩔바를 몰랐고 시선을 그이에게서 뗄수 없었다.
중대장은 정렬한 대렬 우측에서 구령을 치고는 가까이 오신 그이의 앞으로 나가서 보고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손을 들어 답례하시고 대오를 휴식시키도록 이르신 다음 일일이 대원들의 손을 따뜻이 잡아주시였다.
건강상태와 학습정형에 대하여 물어보시며 한사람한사람과 인사를 나누시였다. 간혹 얼굴빛이 나쁜 동무들을 발견하시면 어디 편치 않은가를 물어보기도 하시고 어떤 대원의 어깨를 두드리시며 격려하여주기도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모습을 바라보던 우리 세 사람은 자기자신들도 이미 그이의 전사가 된것처럼 행복스럽고 따사로운 기분에 휩싸여 황홀하여졌다.
(우리도 빨리 입대하여 저렇게 장군님의 깊은 사랑을 받으며 힘껏 싸우자!)
우리 세 사람은 이렇게 속으로 다짐하고있었다.
그런데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대렬과 떨어져 뒤에 서있는 우리를 보시더니 가까이 오시여 일일이 힘있게 손을 잡아주시면서 《주경동에서 온 동무들이구만. 동무가 아마 룡연동무지?》 하고 이미 우리가 이곳에 와있다는 보고를 받으시고 오신듯 이렇게 물으시였다.
《예, 제가 김룡연입니다.》 하고 대답한 나는 (어떻게 내 이름까지 아실가?) 하고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알길이 없었다.
그후 나는 입대하여 위대한 수령님의 지도밑에 혁명군생활을 하면서부터 비로소 그이께서 장백지구 반일청년동맹의 한 보통회원의 이름까지도 기억하여두시였다는것을 알았다.
혁명군생활에서 날이 갈수록 나는 대원들에 대한 위대한 수령님의 깊은 사랑을 더욱 느꼈고 우리 보통대원들과 고락을 같이하시며 우리를 친자식처럼 허물없이 대해주시는 수령님의 소박한 풍모에 더욱 감동되였다.
우리 부대가 백두산밀영을 떠나 무송으로 행군할 때에 나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기운 신발을 신고계시는것을 보고 놀랐다.
(보통대원이라면 또 모르겠는데 사령관동지께서 어떻게 꿰맨 신발을 신으셨을가?)
이렇게 생각한 나는 전령병동무를 만나 위대한 수령님께 드릴 새 신발이 없는가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전령병동무는 《그이께서는 예비로 가지고다니시던 단 한컬레의 신발을 대원에게 내여주셨소. … 참 야단났소. 신발도 내의도 내다주라고만 하시니 인제 어떻게 구할지 모르겠소. …》라고 몹시 걱정하는것이였다.
그 얼마후에 나는 불무지곁에서 손수 신발을 깁고계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모습을 목격하였다. 새 신발을 대원들에게 내주시고 밤잠도 주무시지 않고 신발을 기우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나는 대원들에 대한 그이의 지극한 사랑을 다시한번 깊이 느꼈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무송가까이에서 식량이 떨어져서 우리 대원들은 시래기를 끓여먹고 그이께만은 비상용미시가루로 죽을 쑤어 올렸다.
그런데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 죽을 잡수시지 않고 우리들에게로 들고나오시였다.
《구수한 시래기국이 맛있는데 왜 미시가루죽을 쒔소? 자, 이걸 시래기국에다 섞어 먹읍시다.》
이렇게 말씀하시며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미시가루죽을 우리 국그릇에 섞으시더니 우리들더러 그것을 같이 먹자고 권하시였다. 미처 그이를 만류할 사이도 없어 우리는 어쩔바를 몰랐다. 일이 이렇게 되고보니 우리의 마음은 여간만 아수하지 않았다.
(모처럼 그이께 대접하려던 미시가루죽이 없어졌으니 사령관동지의 식사를 어떻게 하겠는가.)
이런 생각이 든 우리는 어찌할바를 모르고 멍하니 앉아만 있었다.
그러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먼저 시래기국을 뜨시여 맛있게 드시며 가난한 조선농민들에게 있어서는 시래기국이 소고기국에 못지 않다는 말씀을 하시였다.
우리도 위대한 수령님을 따라 식사를 하며 그 말씀을 듣는 사이에 정말 시래기국이 별미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위대한 수령님을 한자리에 모시고 서로 허물없이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유쾌하게 식사를 하였다.
나는 자신들은 헐벗고 굶주리면서도 자식들은 헐벗고 배고프지 않게 하기 위하여 애쓰던 고향부모들의 한량없는 사랑, 바로 그보다도 더 뜨거운 사랑이 밀림속 이 자리에 깃들어있다는것을 생각할 때 끝없이 행복함을 느꼈다.
사령관동지와 평대원사이에는 그 지위로 보면 얼마나 큰 간격이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언제나 지극한 사랑을 베풀어주심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허물없이 대할수 있게 하시였다.
1938년 정월, 우리가 마당거우밀영에서 군정학습을 할 때였다.
우리들은 낮에는 정치, 군사학습을 하고 밤에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하시는 국제국내정세에 대한 말씀도 듣고 그이를 모시고 때로는 오락회도 열었다.
한번은 오락회때에 위대한 수령님께서 우리와 함께 혁명가요도 부르시고 같이 춤도 추시였다. 사실 전투시에는 수많은 대원들을 거느리시고 일제놈들을 가는 곳마다에서 쳐부시는 그처럼 위대하신 수령님께서 이렇게까지 대원들과 같이 유쾌하게 즐기시리라고 나는 전혀 생각지도 못하였다.
지휘관들과 대원들이 완전히 한마음, 한기분으로 목청껏 노래부르고 유쾌하게 춤추는 이런 오락회는 우리들을 한없이 즐겁게 하였다.
우리는 날이 갈수록 위대한 수령님을 더욱 친근하게 대할수 있게 되였다.
한편 그이께서 우리의 잘못을 깨우쳐주실 때는 여간 엄하시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때에도 자기 부모가 자식 잘되기를 바라며 꾸지람하듯이 마음에 사랑을 담아 타일러주시였으므로 누구나 다 정치사상적으로 단련되고 의지적단결을 더욱 굳게 할수 있었던것이다.
나는 혁명군생활을 오래할수록 경애하는 수령님의 너그럽고 소박하고 평범한 인민적인 풍모속에 위대한 힘이 깃들어있다는것을 실지체험을 통하여 더욱 깊이 느끼였다.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의 이 소탈하고 평범한 인민적인 풍모는 지난날 조선인민혁명군을 하나의 강철의 대오로 결속되게 하였으며 혁명군과 인민들간의 끊을수 없는 긴밀한 련계를 보장하여 승리를 이룩할수 있게 하였다. 이것은 또한 오늘 우리 당을 강철같이 단결시킨 힘-당주위에 굳게 뭉친 전체 인민을 이끌고나아가는 위대한 힘으로 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