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중대에 대한 이야기
김 익 현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령도하시는 항일유격대에 입대하기 위하여 나는 1937년 여름 백두산지구의 어느 한 밀영에 찾아갔었다.
당시 내 나이는 17살이였다. 그곳에는 때마침 15살안팎의 소년들이 20여명이나 와있었다. 그들도 나처럼 일제의 《토벌》에 의하여 사랑하는 부모형제를 잃은 유자녀들로서 유격대에 입대하자고 온것이였다.
그들은 모두 나이는 비록 어렸지만 일제에 대한 적개심만은 대단히 높았다. 그러기에 그들은 직접 손에 무기를 잡고 원쑤들에게 무리죽음을 주겠다는 일념으로 불타고있었다.
그런데 유격대에서는 좀처럼 우리의 입대청원을 들어주지 않았다. 아직 나이가 어리니 일단 집에 돌아가 유격대원호사업과 지방공작을 하다가 좀더 자란 다음에 오라는것이였다. 그러면서 일제의 군대나 경찰들이 모르게 적통치구역으로 내려보내주겠다고까지 하였다. 그것은 나어린 소년들이 매일과 같이 계속되는 치렬한 전투와 간고한 행군, 때에 따라서는 며칠씩 굶으면서 원쑤와 싸우지 않으면 안되는 그러한 유격대의 생활을 감당해낼수 있겠는가 하는데서였다.
사실 우리들은 그때만 하여도 철부지였다. 유격대에 입대하겠다고는 하면서 집생각을 하는 동무가 있는가 하면 돌아치며 장난질을 하여 말썽을 부리면서도 입대시켜달라고 생떼질을 하여 유격대지휘관들을 딱하게 하였었다.
바로 이런 때에 사령관동지께서 우리가 와있던 밀영으로 찾아오시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우리를 둘러보시며 며칠간 부대생활을 해보니 힘들지 않느냐고 인자하게 물으시였다.
《힘들지 않습니다!》라고 우리는 목소리를 합쳐 힘있게 말씀드렸다.
그리고 저마다 어떤 곤난이라도 참을수 있으며 사령관동지의 명령이라면 그 어떤 일이라도 어김없이 실행하겠으니 꼭 입대시켜달라고 그이께 매여달리다싶이 하면서 말씀드렸다.
사령관동지께서는 다시한번 우리를 둘러보시면서 《정말 견딜수 있는가?》 하고 물으시였다.
우리가 소리를 합하여 《예!》 하고 힘있게 대답하자 그이께서는 매우 만족해하시면서 《좋아, 그럼 너희들은 왜 유격대에 입대하려고 하며 또 유격대에 입대하면 어떻게 싸우겠는가 하는 결의문을 써서 나에게 가져오너라. 자, 그럼 모두 이것을 쓸수 있겠느냐?》 하고 우리에게 물으시였다.
《예, 쓸수 있습니다!》
우리는 너무도 기뻐서 어쩔줄 몰라했다. 우리는 신바람이 나서 저마다 결의문을 쓰느라고 서둘렀다.
유격대원들과 지휘관들은 《사령관동지께서 정말 저 철부지들을 입대시키려 하시는가?》 하고 생각하였다.
그들이 이러한 생각을 하는것도 사실 무리가 아니였다.
그것은 난관이 중첩되는 유격대생활에서 무거운 부담이 될 철부지들이란것을 생각하고있었기때문이였다.
소년들을 입대시킨다면 유격대는 고생을 사서 하는 격이고 또 아이들의 처지를 생각해보아도 그 고생을 시키느니보다는 오히려 싸울수 있을 나이까지 집에서 자라게 하는편이 더 유리할수 있다고 생각할수도 있었다.
그러나 사령관동지의 심정은 일반대원들의 생각과는 다르시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비할바없이 넓고 먼데까지 생각하고계시였다.
그러기에 사령관동지께서는 소년들을 받아들이는것을 의아해하는 유격대원들앞에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공산주의자들은 항상 미래를 사랑할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자기의 일생을 오직 혁명위업을 위하여 정력을 바쳐 싸우는것도 우리 인민의 행복한 미래를 앞당기기 위해서가 아닙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총을 쥐고 일제와 싸우는것만이 혁명과업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저 소년들을 훌륭한 혁명투사로, 장차 조국건설의 담당자로 키우는것도 우리의 혁명과업입니다.
어린이들은 미래의 주인공이며 혁명선렬들의 뜻을 이어나아갈 꽃봉오리들입니다. 우리가 저 소년들을 키우자면 물론 한동안은 애를 먹을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어떤 애로와 난관을 극복하면서라도 그들을 훌륭한 공산주의자로 키워야 합니다.
우리가 친부모의 마음으로 그들을 사랑해주고 잘 가르쳐준다면 그들은 모두다 훌륭한 혁명투사로, 우리의 위업을 계승할 열렬한 공산주의자로 될것입니다.
그렇게까지 원대하게 생각하시는 사령관동지의 높은 뜻을 알게 된 유격대원들은 자기들의 생각이 너무도 협소하였다는데 대하여 부끄러워들 하였다.
사령관동지의 이 따뜻한 사랑과 깊은 배려에 의하여 그 즉시로 소년중대가 조직되였던것이다.
사실 우리 소년중대는 조직된 첫 시기부터 유격대에 있어서 큰 부담으로 되였고 전투활동에 많은 지장을 주게 되였다.
그러나 사령관동지께서는 우리 소년들을 위하여 모든것을 아끼지 않으시였다.
당시 유격대의 형편은 매우 어려웠다.
식량도 부족하였고 군복도 여분이 없었다. 그렇지만 그이께서는 재봉대에 지시를 주시여 련일 밤을 새워가면서 군복과 군모를 비롯한 우리의 장구류를 만들어내게 하시였으며 각 련대에서도 신발을 비롯한 필수품을 마련하도록 사업을 포치하시였다.
나는 지금도 새로 만든 깨끗한 군복과 필수품을 가득 넣은 배낭을 지고 나섰을 때의 기쁨과 그때 소년중대동무들이 모두 어찌나 기뻤던지 막 뛰며 좋아하던 일이 눈앞에 선하다.
우리가 새 장구류를 갖추고 정렬하였을 때 사령관동지께서는 친히 우리들에게 기병총을 내주시였다.
사령관동지께서 주시는 무기를 받아든 우리의 가슴은 부풀어오르는 감격으로 하여 높뛰였다.
우리는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전사로 된 영예를 간직하고 그이의 가르치심을 받들고 용감히 싸우리라고 굳게굳게 맹세하였다.
우리들은 사기충천해서 첫 행군에 나섰다. 그러나 아직 단련되지 못한 우리에게 있어서는 밀림속의 행군이 매우 힘겨웠다.
더우기 이때 나는 눈을 앓아서 두눈에 피발이 서고 부어올라 앞을 잘 가려볼수 없었다. 게다가 엎친데 덮치는격으로 우등불곁에서 잘못 자다가 다리에 화상까지 입어 도저히 걸을수가 없었다.
나는 무엇이라 말할 면목이 없었다. 앞을 잘못 보아서 남의 신세만 지는것만 해도 면구스러운데 다리에 화상까지 당하고보니 자신이 민망스러웠다.
나는 다리에 화상을 입었다는 사실을 동무들에게 숨기고 그런 기색을 나타내지 않으려고 애썼다.
나뿐이 아니라 많은 소년중대동무들이 대렬을 미처 따라가지 못하는가 하면 발이 부르터서 절룩거리며 애를 먹이고있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매우 걱정하시면서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를 비롯한 녀대원들에게 소년중대를 잘 도와주라고 지시하시였으며 몸소 대렬의 앞뒤로 오가시면서 우리를 보살펴주시였다.
《앞에 나무가 있으니 주의하여라.》, 《웅뎅이가 있으니 건너뛰여라.》
사령관동지께서는 이렇게 우리를 이끌어주시였고 강을 건늘 때면 제일 나어린 동무들을 업어 건늬여주기까지 하시였다.
우리들에 대한 사령관동지의 이 뜨거운 사랑과 배려를 가슴뜨겁게 느낄수록 나는 다리의 상처를 더욱 숨기려고 하였다.
그런데 사령관동지께서 어떻게 아시였는지 전령병을 시켜 약을 보내주시였다.
그 약을 받아들고 나는 마음속으로 (사령관동지께서는 우리 한사람한사람의 고충과 아픔뿐만아니라 마음까지 꿰뚫어보시누나!…) 하고 깊이 생각하였다. 나는 사령관동지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열렬한 공산주의자로 되리라는 다짐을 몇번이고 되풀이하였었다.
사령관동지의 지극한 보살피심속에서 나의 눈병과 화상입은 다리는 점차 나아졌다.
사령관동지께서는 매일 식사때에도 우선 우리 소년중대원들이 식사를 제대로 했는가부터 념려하군 하시였다.
먼 행군길에 식량을 넉넉히 가지고 다닐수는 없는 일이였다. 그러기에 그때 우리 부대의 식량형편은 아주 빠듯한 사정이여서 하루 죽 두끼를 먹고 행군하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우리 소년중대원들이 배고파할것을 념려하시였으며 식량이 떨어지는 경우에도 각 련대에 남아있는것을 모두 걷어다가 우리들의 식사부터 우선 보장하게 하여주시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식사때마다 자신의 죽그릇을 들고 우리에게로 오시여 우리들이 식사하는것을 돌아보시면서 식성이 좋아서 얼른 먹고난 동무들의 그릇에 자신의 죽을 덜어주군 하시였다.
어떤 날은 사령관동지께서 죽을 한술도 뜨지 않으시고 다 덜어주기까지 하시였다.
아직 철이 없던 우리들은 그런 날에는 그이께서 굶으시게 된다는것도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그것을 좋아라 받아먹군 하였었다.
그러나 당시 작식대공작을 하면서 소년중대일을 맡아보고있던 전희동무는 이 사정을 알고 가슴이 뜨거워 말은 못하고 걱정만 하고있었다.
하루이틀도 아니고 날마다, 끼니마다 얼마 안되는 죽마저 소년중대원들에게 덜어주시였으므로 사령관동지께서는 얼마나 시장하시였겠는가.
전희동무는 걱정하던 끝에 하루는 식사차비가 다된 후에 깨끗한 그릇에 죽을 담아들고 그이께서 계시는 천막에 가서 그이앞에 죽그릇을 놓아드리고는 나오지 않고 서있었다.
이제부터는 사령관동지께서 식사를 다 끝마치실 때까지 기다리고 서서 어떻게 해서라도 다 드시는것을 지켜보고 물러나자는 생각에서였다.
지도를 보고계시던 사령관동지께서는 전희동무가 서있는것을 보시자 《소년중대식사준비는 다 되였소?》 하고 물으시였다.
《예, 지금 한창 모두 식사를 하고있는중입니다.》
전희동무는 이렇게 말씀드리고도 속으로는 (또 죽그릇을 드시고 소년중대로 가시지 않도록 해야 할텐데…) 하고 조마조마해하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그러는 그에게 누나다운 심정으로 그들을 잘 돌봐주어야 한다고, 소년중대원들이야 지금 한창때가 아닌가, 돌을 삼켜도 삭일 팔팔한 나이인데 요새는 끼니마다 죽만 먹으니 얼마나 배고프겠는가고 말씀하시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이윽고 《어디 소년중대원들이 식사하는걸 좀 나가봅시다.》라고 하시며 자리에서 일어나시였다.
전희동무는 사령관동지의 건강을 념려하여 서슴없이 이렇게 말씀드렸다.
《사령관동지께서도 자신의 몸을 돌보셔야 하시지 않겠습니까. 소년중대의 식사는 저희들이 더 정성껏 돌보기로 하겠습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잠시동안 전희동무를 바라보시다가 이윽고 타이르시듯 말씀하시였다.
우리는 무송에만 가면 얼마든지 식량을 구해올수 있소. 그러니 며칠만 참으면 되오. 로대원들이야 하루이틀 굶는다고 무슨 큰일이 생기겠소. 그러나 소년중대원들은 아직 단련이 부족해서 배고픈것을 무척 참기 힘들어하는거요. 이런 때 우리가 돌봐주지 않으면 누가 돌봐주겠소.
전희동무는 더 말씀드릴수 없었다.
눈시울이 뜨거워져서 그만 머리를 숙인채 그이를 따라 소년중대원들이 있는데로 갔다.
아직 철부지였던 우리들은 그런 깊은 내막도 눈치채지 못하고 그날도 사령관동지께서 덜어주시는 죽을 받아먹었던것이다.
그리고 식사를 마치고는 의례히 그러하듯 사령관동지를 우등불곁에 모시고 저마다 그이의 옆에 가까이 앉으려고 애쓰며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여주시기를 졸랐다.
뭇별이 깜박이는 밤, 우등불곁에서 사령관동지께서 들려주신 가지가지의 일화, 줄기차고도 용맹스러운 전투이야기들은 우리의 가슴속에 깊은 인상을 남겨놓았다.
사령관동지께서 평양의 모란봉과 대동강의 경치를 말씀해주실 때면 우리의 눈앞에는 불현듯 아름다운 조국산천이 그립게 안겨왔고 왜적을 물리쳐 용맹하게 싸운 선조들의 이야기를 하실 때는 우리도 일제를 무찔러 용감히 싸우리라 굳게 결의를 다지군 하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그처럼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어느때나 우리를 한품에 안아 뜨거운 사랑으로 보살피시며 키워주시였다.
식량이 곤난할 때는 자신의 몫을 우리에게 덜어주시였고 가파롭고 험한 벼랑턱에서는 우리의 손을 잡아 이끌어주시였으며 물결사나운 강에서는 우리를 업어 건늬여주시던 그이의 뜨거운 사랑-이것은 나어린 우리들이 열렬한 혁명투사로, 정치활동가로 성장할수 있게 한 강력한 힘의 원천으로 되였다.
그러나 사령관동지께서는 우리를 무원칙하게 사랑하고 아끼지는 않으시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우리를 혁명을 끝까지 완수하고야말 강철같은 의지와 백절불굴의 혁명정신을 가진 강철의 투사로, 언제든지 군중과 현실에 발을 붙이고 어려운 일에 앞장서서 이신작칙하는 세련된 정치활동가로, 곤난할 때일수록 의기충천하여 곤난을 맞받아나아가는 강의한 전사로, 규률에 엄격하고 사업과 생활에서 규칙적이고 조직적인 일군으로 키워주시였다.
바로 이렇게 우리를 키우시기 위하여 사령관동지께서는 엄한 아버지처럼 때로는 나무라기도 하시였고 처벌도 하시였다.
아무리 사령관동지의 책망과 처벌이 엄격하다 하더라도 그속에는 자식 잘되기를 바라는 어버이의 깊고도 뜨거운 정이 깃들어있었기에 우리는 그것이 아픈줄 몰랐고 오히려 가슴이 뜨거워지기만 하였다.
언젠가 한번은 우리가 사령관동지의 이런 깊은 심정을 알고 몹시 감격한 일이 있었다.
몇몇 소년중대원들이 항상 전투준비태세에 있어야 한다는 유격대의 규률을 엄수하지 않고 그전에 자기 집에서 살던 버릇대로 신을 벗은채 자고있었다.
숙영지를 돌아보시다가 이러한 정황을 발견하신 사령관동지께서는 소년중대 사무장동무를 불러 《왜 저 애들이 신을 벗고 자오?》라고 엄격히 물으시였다.
사무장동무는 우리가 발벗고 자는것을 묵인하군 한것만큼 당황하여 얼굴을 붉히며 자기가 미처 돌보지 못했다고 말씀올리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엄하시면서도 조용히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그런 얕은 인정으로는 소년들을 투사로 키워내지 못한다. 만일 이 순간에라도 적들이 달려든다면 신발을 벗고 자는 저 소년들이 어떻게 되겠는가? 그들은 발을 상할수도 있고 얼굴수도 있다. 저 소년들의 부모들은 자식들을 우리에게 맡긴셈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친부모나 친형, 친누이의 심정으로 저 어린것들을 돌봐주어야 한다. 당장은 가슴이 아프고 인정에 그늘이 지더라도 장래를 위해서 소년들을 원칙적으로 키워야 한다.》
그때까지 자지 않고 눈만 감고있던 우리들은 사령관동지의 이런 말씀을 들으며 가슴이 후더워지고 그렇게도 깊은 그이의 의도에 어긋나게 신을 벗고 자군 하던 자신들을 강하게 질책하였다.
힘겨운 전투와 극복하기 어려운 고난에 부닥치는 준엄한 그 환경속에서도 한두사람도 아닌 우리 소년중대원모두를 이렇게 뜨거운 정으로 키워주신 위대한 수령님의 뜨거운 사랑, 멀리 미래를 내다보시고 고난속에서도 행복한 미래를 그토록 열망하시던 수령님의 높은 뜻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지금도 가슴이 뜨거워지고 목이 메군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위대한 수령님께 보다 충직한 혁명전사로서 조국의 번영과 인민의 행복을 위하여, 그렇듯 귀중한 우리 어린이들의 미래를 위하여 모든것을 바쳐싸울 결의를 더욱 굳게 다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