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적출판물에 대한 그이의 지도
림 춘 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항일무장투쟁의 초시기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혁명군대가 무기를 가져야만 적과 싸워 이길수 있는것처럼 혁명조직은 출판물과 같은 그러한 예리하고도 전투적인 사상적무기를 가져야 대중을 승리에로 이끌수 있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어려운 전투의 나날에도 손수 전투적인 혁명적출판물을 만들어내시기에 힘쓰시였다.
그이께서는 우리 혁명의 전반적문제를 취급한 신문인 《서광》, 잡지 《3. 1월간》 등 출판물과 함께 대내신문인 《종소리》와 각종 소책자를 발간하는 사업을 조직지도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1936년 2월 남호두회의에서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를 국경지대에로 진출시키며 투쟁무대를 점차 국내에로 확대하고 반일민족통일전선운동을 더욱 확대발전시키며 당창건준비사업을 적극 추진시킬데 대한 방침을 제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 전략적방침을 실천하는 방도의 하나로서 정치신문을 비롯한 일련의 정기간행물들을 발간할것을 계획하시였다. 남호두에서 무송, 동강을 거쳐 압록강연안 장백지구로 나오시는 간고한 행군도상에서 그이께서는 줄곧 우리 혁명의 성격과 임무, 공산주의자들의 과업을 리론적으로 해명하는 저작사업에 전념하시였고 정치신문 및 조국광복회기관지 등 정기간행물출판을 준비하시였다.
이리하여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각이한 계층의 인민들을 반일민족통일전선에 광범히 참가시키기 위하여 1936년 12월 1일 조국광복회 기관지로서 월간잡지 《3. 1월간》을 발간하시였으며 1937년 5월에는 조선인민혁명군의 대내기관지인 신문 《서광》을 발간하시였다.
이와 동시에 조선국내에서 박달동지를 통하여 조선민족해방동맹기관지로서 《화전민》을 발간하게 하시였다.
지금 이 신문, 잡지들의 개개의 내용을 다는 기억할수 없지만 기억에 뚜렷이 남아있는것들만 꼽아보아도 그 성격들을 정확히 리해할수 있다.
오늘까지도 나의 기억에 생생한것은 《서광》에 실린 위대한 수령님의 불후의 고전적로작 《조선공산주의자들의 임무》이다.
이 론문은 우리 혁명발전의 전도와 당시의 정세를 가장 명철하게 분석하고 그로부터 흘러나오는 조선공산주의자들의 임무를 명시한 강령적문헌이였다.
이 론문은 조선공산주의운동에서 극복청산하여야 할 파쟁과 기회주의에 대하여 결정적인 타격을 주고 우리 혁명운동의 새로운 발전단계를 명시하였다.
이밖에도 《서광》에는 반파쑈인민전선로선과 조선에서의 반일민족통일전선문제, 조선혁명의 전도와 그를 주동적으로 맞이할데 대한 문제, 조선혁명의 성격과 동력, 장차 수립될 조선인민혁명정부의 성격, 로농동맹에 대한 문제, 국제공산주의운동과 조선공산주의운동의 호상관계에 대한 문제, 조국광복회의 활동방향에 대한 문제, 조선민족해방동맹의 활동방향에 대한 문제 등 조선혁명발전과 당창건준비에 대한 방향과 사상적기초를 주는 위대한 수령님의 론설이 많이 실렸다.
《서광》에서는 조선인민의 절박한 생활적요구와 투쟁구호를 제기한 지방통신기사, 부대들의 활동에 대한 군사통신기사들도 적지 않게 취급되였는데 이러한 통신기사의 대부분도 그때그때 인민들과 지방조직들과 혁명군중앞에 제기된 투쟁과업을 제시하는것들이였다.
《3. 1월간》은 《서광》과는 다른 특성을 가진 혁명적출판물이였다.
《3. 1월간》에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친히 작성하신 《조국광복회10대강령》을 해설하는 론설들이 련속적으로 실렸다. 이것은 강령의 조목들을 구체적실례를 들어가며 알기 쉽게 해석한것이였는데 리론수준이 높지 못한 사람도 그것을 쉽사리 리해할수 있었다. 이 《조국광복회10대강령》에 대한 해설론문도 주로 위대한 수령님께서 쓰시였다.
당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날마다 우리에게 이 문제에 대하여 2~3시간씩 강의를 하여주시였을뿐만아니라 그날밤으로 그것을 글로 쓰군 하시였다.
이 론문들은 그야말로 수십만의 조국광복회 회원들과 비조직군중을 교양하는 사상적량식으로 되였다.
《3. 1운동실패의 원인》, 《독립군의 실패원인》, 《광주학생사건의 교훈》 등 과거 조선혁명의 경험, 교훈을 분석한 론문들이 《3. 1월간》의 중요내용을 이루었다.
이밖에 《국내외정세》, 《혁명군의 전과와 인민들의 혁명군원호사업》 등 다양한 내용을 실었다.
《화전민》은 국내인민들의 절실한 문제들을 반영하는것이 특색이였다.
《강도 왜놈들의 통치에 신음하는 소년들에게 격함》, 《일본의 대전준비》, 《산림보호구를 반대하자!》 등 그때그때 정세로 보아 인민들앞에 절박하게 제기되는 투쟁구호들을 제기하는 기사들이 많이 실렸다.
《화전민》의 중요론설들은 《서광》, 《3. 1월간》 등에 실린 위대한 수령님의 론설을 전재한것이였다.
《종소리》는 대내 주간신문이였던만큼 많은 경우에 부대내 생활을 반영하는것이 특색이였다.
여기에는 주로 우리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과 통신원들이 쓴 보초근무, 정치학습에서의 모범적인 사실과 부족점에 대한 자기비판을 내용으로 한 기사들이 실렸으며 《사회주의란 무엇인가?》, 《자본주의란 무엇인가?》라는 해설문들도 게재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 모든 출판물의 내용을 검토하시고 편집방향과 형식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지도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언제나 출판물에서 당성, 로동계급성, 인민성, 전투성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하시였고 글자는 비록 몇자 안되더라도 인민대중이 리해하기 쉽고 그들에게 커다란 감동과 고무를 줄수 있도록 글을 써야 한다고 우리를 가르치시였다.
한번은 《종소리》에 《나는 왜 유격대에 입대하였는가?》, 《다시는 전투에서 당황하지 않겠다》는 등의 제목으로 된 글이 실리였었다. 이 글들은 국문을 겨우 해득한 대원들이 썼던만큼 사실 내용이나 문장에 있어서 부족한 점들이 적지 않았다.
그런데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러한 원고를 다 읽어보시고 아주 만족해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동무들의 글을 읽고 가장 강하게 받는 인상은 글이 모두 솔직하다는것입니다. 동무들의 글은 받침이 틀린 글자도 더러 있고 문맥이 잘 통하지 않는데도 있지만 그것은 더 배우면 됩니다. 대중들에게 평범하면서도 친근감을 주는 솔직한 감정, 이것은 지어낼수도 꾸며낼수도 없습니다. 항상 이렇게 솔직한 감정으로 글을 써야 합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며 대원들의 글을 직접 수정가필하신 후 신문에 실어주시였던것이다.
한번은 비서처에 있는 어느 한 동무가 《종소리》에 게재하기 위하여 《관내의 종소리》라는 제목으로 글을 썼는데 그 내용은 적지 않게 조선공산주의자로서의 주견이 없이 문제를 분석한 점이 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 원고를 검토하시고 제목을 《중국인민의 아들딸 팔로군의 투쟁》이라고 고치시고 그 내용도 팔로군이 북상한다는것만 소개할것이 아니라 조중인민의 혁명의 목적과 우리의 과업을 첨가하고 우리 인민을 더욱 혁명에로 부르는 호소성이 강한 기사로 고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손수 가필하신 원고를 필자인 그 대원에게 읽히우고 의견을 물어보신 후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우리는 현실에 맞게 글을 써야 합니다. 조선공산주의자로서의 주견을 가지고 매개 문제를 분석하여야 합니다. 동무가 단 제목과 일부 내용은 독자들에게 자주성을 약화시킬수 있습니다. 그것보다는 《중국인민의 아들딸 팔로군의 투쟁》이라고 하는것이 더 알기 쉽고 좋지 않습니까.
위대한 수령님의 이러한 섬세하고 정확한 지도에 의하여 우리의 혁명적출판물들은 항상 높은 당성과 로동계급성, 인민성과 함께 전투성을 가진 예리한 혁명의 무기로 되였던것이다.
지금도 기억에 생생한것은 우리 출판물들이 항상 제때에 인민들에게 전투적구호를 주는 그런 기사를 많이 실은 사실이다.
중일전쟁이 일어난 직후에는 《징병, 징용을 반대하여 나서라!》, 《강제공출을 반대하고 3, 7제를 요구하여 싸우라!》, 《조선농민을 착취하는 동척을 반대하라!》 등 전투적인 글이 《서광》과 《3. 1월간》에 련속 실리였고 《화전민》에서는 《아마강제재배를 반대하자!》를 비롯한 많은 론설들을 게재함으로써 대중을 투쟁에로 불러일으키는데 기여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아무리 어려운 정황과 행군과정에서도 항상 많은 글을 쓰시였고 또한 글을 어떻게 쓸것인가에 대한 훌륭한 모범을 보여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마당거우에서 그야말로 불철주야 집필과 편집사업에 열중하시였다. 이 밀영에서 그이께서는 하루시간의 많은 부분을 우리들의 교양사업에 돌리시고도 우리가 다 잠든 깊은 밤과 누구도 아직 깨지 않은 이른 새벽에 《서광》과 《3. 1월간》, 《종소리》에 실을 글을 쓰시였고 또 손수 편집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자신이 이렇게 많은 글을 쓰시였을뿐만아니라 꾸준히 대원들을 양성하여 훌륭한 필진을 갖추기에 항상 힘쓰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항상 비서처에 있는 동무들과 그외 여러 정치일군들에게 일정한 제목과 구체적인 방향을 주시고 글을 쓰도록 과업을 주신 다음 한번에 안되면 두세번씩 근기있게 지도하시여 그 글을 완성하도록 도와주시였다.
그리하여 마당거우밀영에 있을 당시에 여러 동무들이 《광주학생사건의 교훈》, 《독립군의 실패원인》 등 우리 나라의 반일투쟁경험과 교훈을 분석하여 《3. 1월간》, 《서광》 등에 게재하는 글들을 쓰게까지 되였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보통대원들도 글을 쓰도록 계획적으로 지도하시였다.
당시 매 중대에는 선동원 겸 통신원사업을 담당하고있는 동무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모이는 회의에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글쓰는것을 어렵게 생각하여서는 안됩니다. 먼데를 보지 말고 우선 가까운 자기 중대내 생활에 대하여 쓰도록 대원들을 도와주어야 합니다. 보초근무, 무기관리, 학습등에서 모범적인 자기 동무들에 대하여 쓰자면 누구든지 쓸수 있을것입니다. 이런 가까운 문제부터 쓰라고 과업을 주고 계속 도와주면 훌륭한 글을 쓸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여 그 당시 《종소리》는 거의 각 중대의 통신원들과 보통대원들이 쓴 글로 편집되였다.
또한 그 당시 속보사업이 아주 전투적으로 기동성있게 진행되였었다. 실례로 어느날 경위중대의 한 동무는 다른 동무가 총을 바꾸어가지고 나간것을 모르고 새벽부터 총을 잃었다고 떠들어댄 일이 있었는데 이 사실을 풍자한 속보가 즉시 발간되였다. 나는 지금도 그 속보에 《이른아침부터 잃어버린 자기 무기를 찾느라고 돌아다니는 소리가 귀전에 들린다》고 쓴 제목이 잊혀지지 않는다.
이렇게 속보는 그 즉시에 발간되여 대원들을 교양하는데 도움이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집필, 편집사업뿐만아니라 인쇄를 보장하는데도 깊은 주의를 돌리시였다.
그이께서는 출판일군들의 사업조건을 언제나 우선적으로 보장하여주시였다.
당시 마당거우밀영에 있던 출판소에는 좋은 등사판 2대와 원지, 종이, 등사잉크 등 일체 필요한 기구와 자재들이 갖추어져있었다. 그리하여 정기간행물은 물론 소책자, 선전문, 표어 등 많은것을 출판할수 있게 하였다.
밀림속에 꾸려진 이 출판소야말로 그이께서 심혈을 기울여서 마련하신것이였다.
등사판만 보더라도 그중의 한대는 일본 도꾜에서 사들여온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박달동지에게 그것을 마련해보내도록 과업을 주시였다. 그는 등사기를 가까운데서 마련할수도 있었으나 혜산지방의 적들의 주목을 피하기 위하여 우정 일본에 가있는 사람편에 부탁하여 도꾜에서 그것을 구입하여 조선인민혁명군에 보내여왔던것이다.
이렇게 놈들의 심장부인 도꾜에서 끌어내온 이 등사판은 원쑤들의 침략성과 그 죄악성을 폭로규탄하는 예리한 혁명의 무기로 되였던것이다.
그러기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어떠한 역경에서도 등사기를 비롯한 출판기자재를 생명과 같이 사수할것을 강조하시였을뿐만아니라 몸소 그 모범을 보이신 때가 한두번이 아니였다.
1940년 8월 안도현 스팡린즈에서 있은 일이다.
당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출판소일군들과 경위중대만 데리고 그곳에 계시였다. 하루는 숙영지를 옮기기 위하여 출판소일군들에게 짐을 꾸리라고 지시하시고 몸소 먼저 보초소에 나가시였다.
여기에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적들이 은밀히 밀영을 포위하고 접근하는것을 발견하시였다.
짙은 아침안개때문에 우리 보초들은 아직 놈들이 턱밑에 접근하고있다는것을 모르고있었다.
분초를 다투는 위급한 순간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재빨리 진대나무뒤에 의지하여 적을 쏘아넘기시고는 급히 출판소동무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시였다.
출판소에서는 아직도 짐을 다 꾸리지 못하고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대원들에게 《삐라 한장이라도 흘리지 말고 다 걷어가지고 북쪽으로 빠지시오.》라고 하시였다. 그리고 그 위급한 순간에도 자신께서 등사판 1대를 메시고 덤벼드는 적들을 싸창으로 쓸어눕히시였다. 이 정황을 알게 된 경위중대동무들은 달려와 그이의 어깨에서 등사판을 빼앗다싶이하여 메였다.
경위중대동무들은 위대한 수령님을 보위하며 출판소짐들을 멘 동무들을 엄호하면서 적의 포위망을 뚫고나갔다.
우리는 이를 통하여 위대한 수령님께서 우리의 혁명적출판물과 출판소를 얼마나 귀중히 여기시는가를 더욱 깊이 느끼게 되였다.
출판소에 있는 원지 한장, 종이 한장, 등사잉크 한통 그 어느것이나 할것없이 모두 원쑤들의 무시무시한 경계를 뚫고 전우들이 피로써 구해온것들이였다. 때로는 원지 한장과 등사잉크 한통을 위하여 혁명동지들이 피를 흘렸으며 지어는 생명까지 바친 일이 있었다.
그러기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언제나 출판소동무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한장의 종이, 한g의 먹에도 혁명동지들의 피가 스며있소. 이 한장의 종이, 한g의 먹은 동지들이 목숨을 걸고 바꾸어온것이요. 그렇기때문에 동무들은 한장의 종이라 할지라도 절약하여 이를 가장 효과적으로 쓰도록 강한 투쟁을 하여야 하오.
그때 가장 구하기 어려운것이 원지와 등사잉크였다.
일본제국주의자들은 우리 유격대에 한장의 원지, 한통의 잉크라도 들어오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절대로 일반판매를 못하게 하였다. 등사기를 등록해가지고있는 공공기관에만 팔게 하였다.
그렇기때문에 조국광복회원들의 자녀들, 아동단원들은 이 상점에 가서 《선생님이 사오라고 해요.》 하고 몇장 사고 저 상점에 가서 또 그렇게 몇장 사군 하였다. 그러다가 만일 들키는 날이면 원쑤놈들에게 무서운 고문을 당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적기관에 있는 사람들을 리용하여 출판자재를 구하여오도록 하는 방법도 취하게 하시였다.
이러한 어려운 정황에 비추어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자체로 잉크나 로라를 만들어쓸 연구를 하도록 출판소일군들에게 과업을 주기도 하시였다.
그이로부터 과업을 받은 출판소동무들은 짬만 있으면 잉크를 만드는 방법을 연구하였다. 그것이 그리 간단히 될수는 없었다. 그러나 수십번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그들은 기어코 등사잉크를 만들어내고야말았다.
솔광을 때면서 그우에 양철로 고깔을 해씌워놓고 거기에 붙은 그을음을 받아모은 다음 거기에다 백반과 석유를 섞어쓰면 등사가 잘되였다.
로라가 못쓰게 되면 그것을 아교(갖풀)와 섞어서 끓여가지고 일정한 틀에 부어서 쓰는 방법을 발견해내였다.
만일 어떤 시가지진공전투가 있을 때에는 분공을 주어 전문적으로 일부 대원들은 인쇄기재를 해결하게 하였다.
다른것보다 결코 못지 않게 어려운것은 출판사업에서 중요자료로 되는 적들의 신문을 계통적으로 수집하는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지방조직을 통하여 신문들을 받아들이시였을뿐만아니라 한 대원에게 전문적으로 이 사업을 담당하도록 분공하시였다.
그 대원은 지방공작을 통하여 적들의 신문과 자료부터 모았으며 조국광복회원인 정동철동지도 신갈파에 가서 신문을 정상적으로 (한달전의것) 사들이여 유격대에 보내군 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렇게 모은 신문으로 부문별자료집을 만들게 하시고 적의 자료들을 리용하여 놈들을 폭로규탄하는 예리하고 전투적인 글들을 쓰시였으며 대원들도 이것을 리용하게 하시였다.
이리하여 유격대에서는 어떤 어려운 조건에서도 계속 혁명적출판물을 발간하였다.
주간, 월간에 한번 혹은 두번씩 상당한 부수로 발간되는 정기간행물외에도 많은 소책자, 선전문, 삐라들이 나왔다.
지금 기억나는것만 하여도 《조선공산주의자들의 임무》, 《조국광복회10대강령》, 《레닌주의 제문제》, 《공산당선언》,《혁명가요집》(1, 2, 3집), 《반파쑈인민전선》, 《좌경모험주의와 우경기회주의》, 《농민독본》 기타 많은 서적들과 선전물들이 출판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출판물들을 배포하는 사업에도 커다란 주의를 돌리시였다.
출판된 이 신문, 잡지, 책자들은 유격대내에는 물론 조국광복회조직들과 조선민족해방동맹조직을 통하여 서간도일대와 국내의 넓은 지역에 배포되였을뿐만아니라 린접유격부대들과 남만에 있던 독립군부대, 구국군부대들에까지 광범히 침투되였다.
우리 부대내에서도 그러했지만 조직을 통하여 배포된 이 출판물들은 이 사람에게서 저 사람에게로 넘어가면서 애독되였다.
사람들은 신문이나 잡지, 책자들을 받으면 목마른 사람이 물을 마시듯이 그것을 빨리 습득하기에 모든 노력을 다하였으며 서로 독촉해가면서 글자가 닳아 보이지 않을 때까지 돌려보다가 정 보이지 않으면 글자우에 먹으로 덧그어가면서 읽었다.
이렇게 위대한 수령님의 깊은 관심과 정열을 담은 출판물들은 그 하나하나가 당원들과 대중들의 심금을 틀어잡고 커다란 사상정신적힘을 자아내였다.
특히 부대내에서 출판물은 우리 대원들의 마음의 량식으로, 사상개조의 무기로 되였다.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것은 한 신입대원이 신문을 통하여 자기 과오를 시정하고 모범적인 전투원으로 성장된 이야기이다.
한 신입대원이 보초를 서다가 존 사실이 있었다. 중대정치지도원이 그와 담화할 때까지만 하여도 그는 자기 잘못을 잘 깨닫지 못하고있었다.
그래서 중대정치지도원은 사령관동지의 가르치심대로 그를 잘 타일러준 다음 통신원을 보고 그 동무의 소감을 《종소리》에 써서 발표하도록 도와주라고 하였다.
그 신입대원은 《왜 보초를 서다가 졸았는가?》라는 기사를 쓰는 과정에 자기 잘못을 뉘우치게 되였다. 그리하여 그는 자기가 존것은 《일제놈들에게 부대를 내맡긴것과 같다.》고 자기비판적견지에서 기사를 써서 《종소리》에 발표하였다. 이 기사는 그 신입대원자신에게 깊은 충격을 주었을뿐만아니라 여러 대원들에게도 큰 자극을 주었다. 그후 그 신입대원은 모든 일에서 모범이 되였으며 보초근무에서도 열성을 발휘하게 되였다.
하루는 좀 몸이 약한 동무가 보초설 차례였는데 그 신입대원은 자기가 대신 보초를 서고 약한 동무를 쉬게 하였다. 중대통신원은 이 사실을 가지고 그 신입대원의 모범을 찬양하는 기사를 써서 《종소리》에 발표하였다.
신입대원은 여간 긍지를 가지지 않았다. 그는 점차 동무들과 중대를 위하여 모든 힘을 아끼지 않고 노력하는 훌륭한 대원이 되여갔다.
이처럼 《서광》, 《종소리》의 매 호, 매 호는 우리들을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의 위대한 혁명사상으로 무장시켰을뿐만아니라 동지들의 모범에서 배워 자신의 결함을 고치도록 도와주었다.
특히 《서광》, 《3. 1월간》과 소책자들이 인민대중속에서 수행한 역할은 더욱 컸다. 그것은 나아갈바를 몰라 헤매던 인민들에게 그야말로 밝아오는 조국해방의 서광을 안겨주었으며 투쟁에 일떠서게 한 종소리로 되였던것이다.
이렇듯 혁명적출판물들은 유격대원들은 물론 조국광복회에 망라된 혁명군중에게 투쟁방향과 방법을 가르쳐주었으며 승리의 신심을 안겨주었다.
그것은 또한 오랜 종파의 여독과 기회주의적영향하에서 헤매던 일부 사람들을 바른 길에 확고히 서게 하였으며 혁명의 새롭고 강력한 핵심대렬이 자라날 튼튼한 사상적지반을 닦아주었다.
출판물들은 당시 우리 나라 혁명의 정확한 수행방도들을 똑똑히 인식하지 못하고 분산되여 활동하고있었던 수많은 혁명가들을 경애하는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위대한 혁명로선과 과학적인 전략전술로 무장시키였으며 수령님의 령도밑에 통일적인 조직체계에 결속시키였다.
우리의 혁명적출판물이 수행한 역할은 이에만 그치지 않았다.
이 신문과 잡지들에 실린 위대한 수령님의 정확한 전략전술적방침과 고매한 애국주의사상은 완고한 민족주의자들과 종교인들의 굳게 닫긴 가슴도 열어주게 하였으며 그들을 잘못 들어선 길에서 혁명의 길로 돌아서게 하였다.
서간도 여러 현과 령북지방 천도교도들의 우두머리였던 한 로인이 《조국광복회10대강령》과 우리의 혁명적출판물을 받아보는 과정에 사상적전환을 일으켜 자기 영향하에 있던 모든 교인들을 조국광복회에 가입시키고 우리 유격대를 적극 도와나섰던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져있다.
남만독립군의 한 부대가 우리 유격대에 합류하게 된 사실도 바로 경애하는 수령님의 위대한 혁명사상으로 일관된 혁명적출판물들이 그들에게 준 영향의 한 실례로 된다.
당시 남만독립군의 책임적직위에 있던 한 두령은 그전까지만 하여도 《공산당은 조국을 찾자는것이 아니라 공산(재산도 처자도 모두 공동으로 소유한다는 원쑤들의 악선전을 곧이들은 표현이다.)하려는 고약한 무리다.》라고 하며 우리를 적대시하던 완고한 민족주의자였다.
그러나 《조선공산주의자들의 임무》에 대한 위대한 수령님의 론문과 《조국광복회10대강령》 등이 게재된 우리의 혁명적출판물을 연구한 후부터는 자기 생각이 완전히 잘못되였다는것을 깨닫게 되였다.
《김일성장군님이시야말로 진실로 조국을 찾고 인민을 해방하는 옳은 방향을 제시하고 나아가시는 민족의 영웅이시다!》
그는 이러한 결론에 도달하게 되자 주저없이 자기 부대를 이끌고 조선인민혁명군에 합류하였던것이다.
이와 같이 위대한 수령님에 의하여 항일무장투쟁시기에 발간된 혁명적출판물은 우리 혁명전도에 광활한 발전의 지반을 닦아놓았던것이다.
그것은 위대한 수령님의 주위에 공산주의자들을 결속하고 육성함으로써 당창건의 조직사상적준비를 이룩하였고 광범한 로동자, 농민대중에게 뚜렷한 투쟁방향과 무기를 주었으며 일체 반일적인 각계각층 인사들을 결속시키는 반일통일전선의 튼튼한 기초를 축성하였던것이다.
오늘 우리 나라에서는 수십수백종의 정기간행물과 다종다양한 서적들이 수십, 수백만부씩 발간되여 당의 예리한 사상적무기로, 우리 당원들과 근로자들을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의 위대한 혁명사상으로 무장시키는데 있어서 강위력한 수단으로 되고있다.
이것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해방직후부터 당기관지《정로》(《로동신문》의 전신)를 직접 창간하시고 발전시켰을뿐만아니라 출판보도일군들을 양성하고 그들의 사업조건을 보장하며 출판인쇄의 물질기술적토대를 튼튼히 꾸리는데 이르기까지 각 방면으로 깊은 관심을 돌리시였으며 출판물의 편집방향을 직접 제시하여주시는 등 우리 출판사업을 구체적으로 지도하여주시였기때문이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현명한 령도에 의하여 오늘 우리 출판물들은 항일무장투쟁시기의 혁명적출판물의 빛나는 전통을 이어 당성, 로동계급성, 인민성이 뚜렷한 전투적출판물로서 독자대중의 사랑을 받고있다.
그러기에 나는 《로동신문》을 비롯한 우리 출판물들을 읽을 때마다 무한한 기쁨과 긍지를 느끼군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