림강현 바위산전투
주 도 일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령도밑에 진행된 항일무장투쟁시기를 회상할 때면 나에게는 류달리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전투가 있다.
1938년 1월 3일 점심때였다.
림강부근밀영 (림강 동북쪽 50리 지점)에서 겨울을 지내려던 우리는 식량난과 적들의 심한 《토벌》을 피하기 위하여 류하방향으로 이동하게 되였다.
당시 이 지대에는 바위산동쪽을 통하는 팔도강과 류하사이의 대도로가 있었고 그 도로 중간지점인 산마루턱에는 적(위만군)1개 대대가 주둔하고있었다.
그런데 이 바위산을 벗어나자면 적들의 대대부부근에 있는 대도로를 넘어서야만 했다. 밀영에서 그곳까지는 60리가량 되였다.
그리고 적 대대부가 있는 대도로까지는 무인지경이였다. 때문에 우리는 낮에 출발하여 어둡기 전에 도로부근밀림에 도착하였다가 적의 동정을 살펴가며 밤에 길을 건늘 작정이였다.
그런데 우리가 바위산골짜기어귀에 들어섰을 때에 난데없는 일본헌병들이 눈보라속으로 산등을 타고 쓸어내려오다가 우리를 발견하고 측면공격을 시도했다.
이때 우리 부대의 한개 구분대는 약 4㎞앞에서 행군하고있었고 또 다른 한개 구분대는 4㎞가량 뒤에서 오고있었다. 때문에 적들과 직접 조우하게 된것은 지휘부를 호위하고있던 경기관총분대의 17명뿐이였다. 기타 20여명이 우리와 함께 행군하고있었으나 그들은 작식대원이거나 부상자들이였다. 때문에 우리는 앞뒤에서 행군하고있는 구분대에 급히 련락병을 띄우는 한편 적들의 측면공격을 극력 피하면서 벼랑아래로 민첩히 은신했다. 그리고 계속 적정을 살폈다.
사나운 눈보라때문에 정확히는 알수 없었으나 깎아세운듯 한 바위산절벽 (약 70~80m높이에 60°가량의 급한 경사이다.)우에서 고아대는 적들은 100명을 훨씬 넘었다. (후에 안 일이지만 우리와 맞다든 적들은 림강에 있는 일본 헌병들이였는데 류하쪽으로 이동하던 길이였다.)
적들은 절벽우에다 기관총을 걸어놓고 급히 총탄을 발사하기 시작했다.
지척을 분간하기 어려운 눈보라속에서 놈들이 어방치기로 퍼붓는 총탄이지만 수량상으로 워낙 많은 놈들의 화력이라 우리는 퍽 위험하게 되였다.
우리는 벼랑밑에 오래 지체할수 없었다. 급히 딴데로 피해야 하였다.
그러나 되돌아서서 골짜기로 내려가자니 그앞은 번번한 개활지대이고 맞은편 벼랑으로 기여오르자니 그곳은 적들의 과녁으로 들어가는셈이였다.
그렇다고 절벽우에서 기여내려오는 적들을 그냥 두고 10리씩이나 앞뒤에 떨어져있는 아군 구분대들이 달려와서 적의 배후를 공격해주기를 기다릴수도 없었다.
적들의 총탄은 절벽아래에 있는 우리에게로 집중되기 시작했다. 놈들은 《투항하라!》고 악을 쓰기도 하고 금시 달려내려올듯이 《돌격!》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그러나 놈들은 감히 우리들에게 접근하지 못하였다.
적들이 우리를 발견은 했으나 눈보라속에서 갑자기 나타난 우리의 력량을 정확히 모르고있으며 벼랑아래의 지형도 잘 모르고있다는것을 우리는 알게 되였다.
더는 시간을 끌수 없었다. 만약 적들이 우리의 력량을 알아내기만 하면 수적우세를 믿고 벼랑아래로 기여내려와 우리들에게 달려들것이였다. 그렇게만 되면 예상외의 난관에 맞다들게 될것이였다.
적들의 약점을 재빨리 포착한 부대의 지휘관은 마침내 공격명령을 내렸다. 그것은 적들이 우리를 정확히 알아내기 전에 급히 절벽을 기여올라가서 적들에게 타격을 주자는것이였다.
지휘관이 목갑총을 뽑아들고 선두에 서자 그의 련락병인 김택만동무가 전투원 4명을 데리고 그의 좌측에 나섰으며 뒤이어 윤태홍동무가 경기관총분대원 5명을 인솔하고 그의 우측에 위치하여 절벽을 기여오르기 시작했다.
바위산절벽을 기여오르기란 쉬운 일이 아니였다.
절벽은 급한 경사인데다가 얼음과 눈이 뒤덮여서 발붙일 곳이 없었고 사격을 하자니 몸을 의지할 자리가 없었다.
게다가 적들은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고 내리쏘기를 하고있는데 우리는 올리쏘기를 하자니 매우 불리할뿐만아니라 총을 쏴도 적을 잡기 어려운 터이라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이렇게 약 30~40분이 지났다. 그러나 앞뒤에서 행군하고있던 아군구분대에서는 아무러한 소식도 없었다.
우리는 계속 기여오르면서 총구만 내리밀고 사격을 하는 적들을 겨누며 반격을 가하였다. 그러다가 발을 잘못디디면 두세길씩 뒤로 미끄러져내리기도 하고 눈구뎅이속에 딩굴기도 하였다.
이렇게 여러 시간을 계속 싸우느라니 총신이 뜨거워진데다 눈이 녹아 들어가서 총의 명중률이 보장되지 못하고 고장나는 총들이 점차 늘어갔다. 윤동무는 자기가 인솔하는 대원들에게서 사격을 하지 못하게 되였다는 보고를 들을 때마다 이를 악물었다. 그리하여 기관총을 맹렬히 쏘아댔다.
허나 기관총사격도 자유롭지 못하였다. 기관총을 두손으로 받쳐들고 쏘자니 몸은 절벽아래로 자꾸만 미끄러지고 한손으로 절벽을 짚고 쏘자면 기관총이 눈속에 묻혀버리군 했다. 그렇다고 잠시라도 사격을 멈추면 적들이 대가리를 내미는 판이였다. 이런 가운데서도 그는 계속 사격을 하였다.
그러나 마침내는 그의 기관총마저 탄알이 떨어지고말았다.
이제는 부대를 책임진 지휘관의 예비권총과 김택만련락병의 싸창 그리고 윤동무가 차고있는 싸창(기관총수는 싸창을 한자루씩 더 차고있었다.) 등 3정의 무기만이 사격을 할수 있었다.
이때였다. 적뒤면에서 총소리가 나더니 적들의 화력이 점차 약해지는듯 한 기색이 보였다. 순간 우리는 더욱 세차게 기여올랐다.
그러나 눈속에서 머리를 들면 적의 탄알이 귀가를 스쳐지나갔고 머리를 절벽에 붙이면 눈이 뒤집어씌워져서 앞을 분간할수 없었다. 윤동무도 탄알이 다 떨어진 기관총을 한손에 잡은채 마구 기여올라갔다. 그는 앞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조차 분간하지 못하였다. 다만 바위우의 적을 소멸해야겠다는 일념뿐이였고 지휘관과 전우들이 한사람한사람 부상당하고 귀중한 무기들이 고장나는 안타까움으로 하여 그의 몸은 불덩이같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참으로 눈앞의 위험도 돌볼 사이가 없었다.
이렇게 얼마쯤 기여오르고있을 때에 련락병동무가 다급히 소리를 질렀다.
《윤동무, 머리우를 조심하오. 적의 기관총구가 있소.》
그제야 윤태홍동무는 몸을 멈춰세우고 우를 쳐다보았다. 적의 기관총구가 바로 머리우에 있었다.
긴장된 윤태홍동무는 재빨리 자기 기관총을 왼쪽겨드랑이에 받쳐안고 오른손에 싸창을 뽑아들고서 적의 기관총알을 피하여 옆으로 기여올라갔다. 바위꼭대기에 손이 닿자마자 눈보라가 기승을 부리며 세차게 그의 얼굴을 때렸다. 그는 눈속에 몸을 감추고 재빨리 적정을 살폈다. 순간 그의 눈앞에는 팔없는 개털등거리를 입고 털모자를 눌러쓴 적들이 눈보라속에 엎드려있는것이 얼핏 보였다. 그리고 기관총뒤에서 제정신없이 방아쇠를 당기는 왜놈의 대가리가 바로 지척에 있었다. 그놈은 윤동무가 옆에 기여올라온줄도 모르고있었다.
분초를 다투는 위급한 순간이였다. 적들을 단꺼번에 쓸어눕히지 못하면 여러개의 총구가 일시에 그를 겨누어 불을 뿜을것이였다. 그는 더 오래 생각할 겨를도 없이 눈속에서 적 기관총수놈과 그옆에 있는 놈들을 쏴갈기였다. 이 바람에 5~6놈이나 뛰여일어났으나 그중 3놈은 연거퍼 쓰러지고 그 다음 놈들은 총을 쥔채 급히 눈속에 숨는것이였다.
윤동무는 옆에 있는 왜놈의 기관총을 급히 잡아들자 그 주변에 있는 놈들을 닥치는대로 쓸어눕혔다.
이때 련락병도 벼랑우에 뛰여올라와서 적의 기관총 1정을 빼앗아가지고 놈들을 쓸어눕히기 시작했다. 뒤이어 다른 동무들도 벼랑우로 올라왔다. 이리뛰고 저리뛰는 적들에게 우리들은 맹렬한 사격을 퍼부었다. 그리고 계속하여 적들의 주력이 자리잡은 언덕우로 달려올라갔다.
이때에 앞에서 행군하던 일부 동무들과 경위련대의 일부 동무들이 좌우측 릉선에서 나타났다. (후에 안 일이지만 그들은 련락이 잘못되여 약 15리가량이나 전진하였다가 요란한 총소리를 듣고 되돌아왔던것이다.)그들은 우리가 절벽중턱을 기여올라갈 때에 적들의 배후를 타격하면서 고지로 올라오다가 벼랑앞쪽에서 우리가 적기관총들을 빼앗아 적을 타격할 때에 그들도 돌격하였던것이다.
이리하여 우리는 단숨에 적의 기본주력을 무찌를수 있었다. 살아남은 적들은 벼랑아래로 내리굴다가 죽기도 하고 산밑에 있는 늪을 모르고 뛰다가 얼음구멍에 빠져죽기도 하였다. 이리하여 근 6시간동안에 걸쳐 진행된 전투는 끝났다.
이 전투에서 우리는 적의 헌병 1개 중대(120명)를 완전히 소멸하였다. 그리고 경기관총 3정, 척탄통 2문, 보병총 80여정, 권총 13정을 로획하였다. 나머지무기들은 깊은 눈속에 파묻혀서 찾을수 없었다.
전장수색이 끝났을 때에는 이미 날이 어두워졌으므로 우리는 불을 피우고 잠시 휴식한 후 류하방향으로 행군을 계속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