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남현성전투
윤 태 홍
중일전쟁을 도발한 일제침략자들은 자기들의 후방기지인 남만지방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하여 이 지대에 대병력을 집중하여 우리 조선인민혁명군에 대한 《토벌》에 미쳐날뛰였다. 한편 놈들은 《만주국은 왕도락토》니, 《국방은 동장철벽》이니, 《남만의 공비는 완전히 숙청되고 치안은 확보되였다.》느니 등 허위선전을 하면서 인민대중을 기만하며 유격대에 의하여 해방될것을 념원하는 이곳 인민들의 열렬한 지향을 꺾으려고 발악하였다.
바로 이러한 때에 우리 부대는 남만일대에서 적들의 기만정책을 폭로파탄시키며 인민혁명군의 위력을 널리 시위하기 위하여 휘남현성전투를 계획하였다.
이것은 중일전쟁의 발발과 관련하여 조선인민혁명군부대들이 중국인부대들과의 긴밀한 협동밑에 일제의 후방에서 대대적인 교란작전을 진행할데 대한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전략적방침에 근거한것이였다.
그런데 휘남현성을 공격한다는것은 쉬운 일이 아니였다.
휘남현성은 산과 수림지대에서 멀리 떨어진 벌판 한가운데에 위치한 도시이다. 그런데다가 이 도시로부터 왜놈군대와 위만군부대들이 대량 주둔한 몽강, 조양진, 류하, 휘북, 화전 등의 현시들로 통하는 대도로와 통신시설들이 매우 발달되여있었다.
뿐만아니라 적들이 이 도시에 중무기를 가진 병력을 배치하고 방어시설들을 강화하고있었는데 놈들은 휘남현성을 가리켜 《난공불락의 요새》라고 떠벌이였다.
그러나 우리들앞에는 극복못할 요새란 있을수 없었다.
우리는 휘남현성을 공격할 만단의 준비를 갖추고있었다. 여러차례에 걸치는 정찰결과에 우리는 이 도시의 적들이 지리적유리성과 수적우세를 믿고 주위의 도로경비를 어느 정도 늦추고있다는 사실을 알수 있었다.
우리는 적들의 이러한 약점을 리용하여 감쪽같이 현성에 접근만 한다면 그속에 있는 적들을 능히 소탕해버릴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였다.
지휘부에서는 휘남현성을 공격할 구체적인 전투계획을 작성하였다.
1937년 9월 25일 오후 3시경에 우리들 약 400명은 룡청진근방에서 120리가량 떨어진 휘남현성을 향하여 출발하였다.
이렇듯 먼거리를 행군해가서 그날밤으로 전투를 끝마치고 다시 돌아서자면 강행군을 하여야 하였다. 해질무렵까지 우리는 산길 60리를 행군하였고 그 다음부터는 어둠을 리용하여 벌판을 지나게 되였다.
어둠속으로 적들을 감시하면서 대부대가 행군한다는것은 쉬운 일이 아니였다. 게다가 이때 우리 부대에는 반일부대에서 넘어온 병사들도 함께 행군하게 되였는데 그들은 이 어려운 강행군에서 자주 뒤떨어졌다.
우리는 어떻게 하나 그들을 도와주면서 휘남현성전투에서 승리해야 할뿐만아니라 혁명적단련이 부족한 그들을 이 전투를 통하여 교양해야 하였다.
우리가 휘남현성부근에 도착하였을 때에는 이미 먼저 도착한 동무들이 적정을 거듭 정찰한 뒤였다.
휘남현성은 높이 약 2. 5m의 성벽으로 둘러싸였고 성벽우에는 두겹으로 된 철조망이 늘어져있었을뿐만아니라 성벽밖에는 너비 약 4m, 깊이 3m가량의 물홈(수로)이 있는 요새였다. 그리고 성안에는 일본《지도관》놈이 지휘하는 위만군과 경찰대, 자위단 등을 합하여 약 250명가량의 적들이 있었으며 부근에 있는 화전, 금천, 몽강, 조양진 등에도 적《토벌대》가 있었다. 성안 네귀에는 포대가 있고 또 군수품창고(현공서창고와 위만군창고) 두개를 경비하는 감시초소들이 있었다.
아군부대들이 공격을 개시한것은 새벽 2시경이였다.
최춘국련대장은 일부 동무들을 휘남으로부터 해룡, 반석으로 가는 큰길과 휘남으로부터 몽강 등지로 가는 큰길에 각각 4㎞쯤 나가서 방차대로 배치하였다. 동시에 적들의 통신선도 절단하였다.
내가 속한 경위련대동무들이 정문으로 들어가게 되였다. 깊은 잠에 들었던 적들은 불의에 공격을 받자 당황하였다.
시내로 들어선 우리 중대동무들이 군수품창고 경비대놈들을 소멸하였을 때에는 이미 다른 중대동무들이 동쪽포대를 점령하고 일부 발악하는 적들을 계속 공격하고있었다.
전투개시후 약 20분만에 우리 일부 동무들은 적들의 창고와 공급소(군사상점)에서 로획한 물품을 성밖으로 운반하였고 지병학동무를 비롯한 정치일군들과 지휘관들은 성내주민들에게 해설선전사업을 하였다. 그들은 일제침략자들의 죄악과 그놈들의 허장성세와 기만선전을 폭로하였으며 우리 조선인민혁명군의 력량이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정확한 령도와 조중인민들의 지극한 사랑속에서 나날이 성장발전하고있다는것을 구체적인 실례를 들어가며 강조하였다.
이날밤에 모여온 수많은 군중들은 김일성장군님의 존함을 듣자 《그분이 지금 어디 계십니까!》, 《그분을 한번 만나뵈올수 없습니까!》 하고 저마다 물으며 앞으로 나섰다.
바로 내곁에 다가온 중국로인 한분은 우리들의 지휘관 한동무를 가리키며 《아마 저분이 당신들을 인솔하시나분데… 저분이 김일성장군님이시지요. 말씀해주시우. 나는 그분의 성함을 그전부터 알고있었다우. 나는 누구보다도 그분을 뵙고싶었수다!》 하고 나에게 졸라댔다.
《아닙니다. 그는 김일성장군님의 부하의 한사람입니다.》하고 내가 대답하자 중국로인은 놀라면서 나의 손을 잡고 《아니?! 여보시우, 그럼 당신들과 같은 이런 군대들이 또 다른데도 있단 말입니까?!》하며 나의 얼굴을 쳐다보는것이였다.
로인의 얼굴에는 기쁨이 담뿍 어려있었다.
《로인님! 또 있구말구요! 일본놈들은 인민들앞에서 저들이 약하다는것을 숨기기 위하여 마치 우리 유격대가 얼마 되지 않는것처럼 떠벌이지만 지금 보시는바와 같이 우리는 이렇게 왜놈들과 위만군놈들을 도처에서 쳐부시고있습니다.》하고 말을 하자 로인은 우리들이 휘남현성에서 떠나지 말고 함께 있으면서 왜놈들이 다시는 오지 못하게 해달라고 하였다.
우리 역시 이러한 인민들을 남겨두고 떠나는것이 가슴아픈 일이였다. 우리가 길을 떠날 때에 성안에서는 수천명의 주민들이 우리를 따라나오며 가지 말라고 만류하기도 하고 꼭 다시 와달라고 당부하기도 하면서 목메인 말로 전송을 하여주었다.
우리가 휘남현성에서 철수하기 시작한것은 날밝을무렵이였다. 이때 성안의 주민 약 300명이 자진하여 적들에게서 로획한 물품을 지고 대렬을 따라섰다.
날이 밝아오고 적들이 추격해올것을 예견한 우리들은 따라서는 주민들을 돌려보내려 하였으나 그들은 끝내 듣지 않았다. 그들은 저마다 《혁명군과 함께 가면 어떠한 왜놈들도 두렵지 않다.》는것이였다. 이리하여 그들은 우리와 함께 식량, 피복, 약품 등 로획물자를 운반하게 되였다.
그런데 우리들이 동쪽구릉지대를 넘어서 약 5리가량 행군하였을 때에 수백명의 적들이 휘남-몽강간의 대도로와 휘남-조양진쪽의 도로로부터 추격해왔다. 그리고 우리들이 넘어서려는 구릉앞으로도 반석방향과 화전방향에서 약 250명가량의 적들이 자동차를 타고 달려와서 포위태세를 취하였다. 내가 속한 경위련대 일부 동무들이 추격해온 적을 방어하기로 하고 기타 동무들은 반일부대출신병사들과 함께 짐을 운반하는 주민들을 보호하면서 먼저 철수하게 되였다.
제일먼저 추격해온 적은 조양진방향으로부터 자동차를 타고 달려온 왜놈들과 위만군놈들이였다. 나는 기관총을 걸어놓고 적들의 자동차가 구릉아래까지 도착하기를 기다렸다가 차에서 내리는 장교놈부터 사살하였다. 놈들은 자기의 지휘관이 쓰러지자 싸우기도 전에 사기를 잃어버리고 당황해하였다.
이 순간에 나는 끓어오르는 적개심을 참지 못하여 기관총을 들고 《저놈들을 몽땅 잡으라!》고 웨치면서 적들에게 련발사격을 퍼부었다.
다른 보총수들도 기세드높이 함성을 올리면서 자동차에서 뛰여내리는 적들에게 집중사격을 가하였다.
그러나 수적우세를 믿는 적들은 쓰러지면서도 계속 집요하게 달려들었다. 뿐만아니라 우리가 방어하는 좌측과 우측으로부터는 증강해온 적들이 바라오르고있었다.
나는 기관총사격을 계속하면서 좌우에 있는 보총수들을 퇴각시켰다. 그 다음에 나는 연거퍼 수류탄을 던지고나서 뒤고지로 올랐다.
그런데 이때 또다시 몽강쪽에서 증강해온 적들과 화전쪽에서 증강해온 적들이 우리들이 건너가야 할 뒤쪽도로를 차단하기 시작하였다.
아군부대의 후위를 담당했던 우리는 포위상태에 들게 되였다. 낮은 지대인데다가 은페할만 한 지형이 별로 없어서 우리들은 방어하기에 불리하게 되였다.
그러나 망설일 때는 아니였다. 보총수들의 전체화력을 몽강방향으로부터 먼저 달려든 적들에게 집중시키면서 나는 기관총으로 적들의 뒤쪽을 겨누고 련발사격을 퍼부었다. 이바람에 앞뒤에서 화력을 받게 된 적들은 당황하기 시작하였다. 이틈을 리용하여 우리는 적들에게로 육박하여 내려갔고 마침내 퇴각하기 시작한 적들의 뒤를 추격하면서 도로를 건너섰다.
이러는 사이에 아군주력으로부터 운반조를 호위하던 동무들과 방차대로 나갔던 일부 동무들이 달려와서 화전쪽에서 달려오는 적들을 반격하였다.
이리하여 도로상에 나타났던 적들은 수많은 시체를 남긴채 도로 좌우측 홈타기를 리용하면서 황급히 물러갔다. 우리는 패주하는 적들에게 맹렬한 화력을 퍼붓는 한편 일부 력량으로 우리의 뒤에서 달려드는 (몽강방향과 조양진방향으로부터 달려온)적들에게 반격을 가하였다.
이렇게 하여 적들을 물리치게 된 우리는 계속 아군주력의 후위를 보장하면서 전원 무사히 철수하였다.
이날 우리가 진행한 휘남현성전투는 적들의 허장성세와 기만선전을 분쇄하였으며 그 어떠한 침략자들의 성시나 요새도 정의로운 우리 혁명무력의 대담한 공격앞에서는 결코 《동장철벽》이 될수 없다는것을 똑똑히 보여주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전투에서 수많은 식량, 피복, 의약품 등을 로획하였는데 이것은 우리 부대의 겨울기간의 피복과 식량을 해결할수 있게 하였다. 우리가 휘남현성에서 철수할 때에 수많은 인민들의 지성어린 환송을 받았다.
인민들은 더욱 우리를 신뢰하면서 《나도 김장군부대에 입대시켜달라.》고 하였다. 지어 40살이 훨씬 넘은 사람도 그 다음날까지 우리들의 곁을 떠나지 않으면서 입대를 탄원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30여명의 청년들만 입대시키고 나머지 인민들은 잘 설복하여 집으로 돌려보냈다. 우리는 몽강, 휘남사이에 있는 정회향에서 3일간 휴식한 다음 사령관동지께서 지시하신 몽강 남패자방향으로 출발하였다.
휘남현성전투가 있은 이후 이 지방의 조중인민들의 반일기세는 더욱 높아졌다. 그들은 적들의 경계망을 뚫고 각종 방법으로 우리 혁명군을 원호하여주었다. 농민들은 심지어 강냉이밭에 강냉이이삭을 파묻은 다음 그 지점을 우리에게 상세히 통지해줌으로써 우리들의 식량문제해결에 적지 않은 방조를 주었던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