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품속에서

                             

                                                                         리 두 익

 

1937년 11월초였다.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의 친솔밑에 마당거우를 향해 행군하던 우리 부대는 어느 산중에 이르러 휴식하게 되였다. 계속 놈들의 추격을 물리치며 험한 산길을 걸어온 대원들은 몹시 지쳤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날도 저물었으므로 하루밤 쉬여갈것을 대원들에게 명령하시였다.

사령부에서는 울창한 수림에 둘러싸인 좁은 평지에 자리를 잡도록 한 후에 경계근무를 강화할 대책을 취했다. 그것은 추격해오던 《토벌대》놈들이 멀지 않은 곳에서 계속 우리를 찾아 헤매고있었기때문이였다.

사령부가 취한 대책에 따라 보초소가 증가되였으므로 경위중대 기관총분대에 속해있던 나도 여태껏 서보지 않던 보초를 서게 되였다.

나는 기병총을 받아가지고 휴식장소에서 얼마간 떨어진 산마루에 올라갔다. 나는 커다란 나무에 몸을 숨기고 총을 든든히 틀어쥐였다. 아직 초겨울이였으나 밀림속은 퍽 쌀쌀하였고 흐린 하늘에서는 눈송이가 날리기 시작하였다.

보초를 서본 경험이 없는 나는 처음에는 추운줄도 모르고 끝없는 수림속을 주시하고있었다. 산속은 쥐죽은듯 고요하였다.

당시 나는 아직 부대생활에서 단련되지 못했었다. 소년중대에 있다가 부대에 배속된지 한달밖에 안되는무렵이였다.

날이 점점 더 어두워짐에 따라 나는 아직 시간도 되기 전부터 교대보초가 올라오기를 초조하게 기다리면서 서성거리고있었다.

바로 이때 맞은편 수풀속에서 무엇인가 얼른거리는것이 눈에 띄였다.

(적이다!)

대뜸 이렇게 단정한 순간 나의 머리칼은 일어서는듯 했다. 나는 나무에 바싹 기대여 서서 신경을 도사리고 재빨리 총을 추켜들었다.

그러나 한동안 뚫어지게 그곳을 쏘아보던 나는 긴숨을 내쉬였다. 눈송이가 날리는 저녁의 산마루에 훤히 떠오른 그림자는 사람이 아니라 노루였기때문이다.

노루는 내가 서있는쪽으로 껑충껑충 몇발자국 뛰여나왔다. 나는 서너걸음 앞으로 마주나갔다. 그러자 노루는 뚝 멈추어섰다. 그리고는 신기한듯 멍청히 나의 쪽을 바라보는것이였다. 나는 쿵쿵 발을 굴러보았다. 그러나 그놈은 꿈쩍도 하지 않고 한자리에 서있었다. 50m 좀 넘을가말가한 거리였다.

이따금 부대가 숙영지에서 휴식할 때 구대원들이 커다란 산돼지나 노루를 사냥해오는것을 보고 여간만 부러워하지 않던 나는 부쩍 호기심이 일어났다.

나는 그만 노루에만 정신이 끌리여 보초병으로서의 자기 임무를 깜빡 잊어버리고말았다. 노루를 잡자는 단 한가지 생각에만 사로잡힌 나는 그놈에게 총구를 돌리고 방아쇠를 당겼다.

《땅!》

밀림에 메아리치는 총성과 함께 노루는 후닥닥 수풀속으로 사라져버렸다. 나는 자신이 쏜 총소리에 비로소 제정신이 들었다.

(아차! 규률을 위반했구나.)

번개같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그리고 적이 나를 발견하지나 않았나 하는 생각으로 주위를 휘둘러 살펴보았다. 그러나 아무런 인기척도 없었다.

그런데 잠시후에 누군가 숨가삐 산으로 뛰여올라오고있었다. 그는 경위중대의 강위룡소대장이였다.

《어찌된 일이요?…》

그는 총을 틀어쥐고 다급히 물었다.

일순간에 저질러놓은 나의 실수가 부대에 큰 혼란을 주었다는것을 나는 알아차렸다. 아무 말도 못하고 그 자리에 서있다가 나는 《그만 노루란 놈이…》 하고 말끝을 채맺지 못했다.

그제야 소대장동무는 영문을 알아차리고 되돌아서서 급히 아래쪽으로 내리뛰였다.

한참후에 나는 보초교대를 하고 내려오라는 사령관동지의 지시를 받고 숙영지에 내려갔다. 이때 소대장동무가 송아지만 한 노루를 끌고왔다. 직통 얻어맞은 그놈은 몇발자국 달아나다가 수풀속에 꺼꾸러진것이였다.

일을 저지른 죄로 하여 마음을 조이고있던 나는 노루를 보자 속으로는 그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면서 한숨을 길게 내쉬였다.

이때 사령관동지께서는 나를 불러 조용히 말씀하시였다.

《두익동무는 언제 그처럼 명사수가 되였소? 단방에 쏘아맞히다니… 노루쏘기가 여간 힘든것이 아닌데…》

나는 그이앞에 고개를 숙인채 서있었다.

이윽고 그이께서는 다시 말씀을 이으시였다.

《동무가 훌륭히 사격할수 있게 된것은 참 기쁜 일이요. 그런데 동무가 낸 총소리가 부대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알고있소?》

나는 그이께 자기 잘못을 무엇이라고 말씀드려야 할지 몰랐다.

이때 사령관동지께서는 나의 과오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휴식하는 전체 부대가 동무를 믿고있었소. 그런데 동무는 오히려 부대의 휴식을 보장하기는커녕 그것을 방해하였소. 보초규정에 대한 엄중한 위반행위요. 적에게 발견되지 않은것은 다행이지만 만일 놈들이 알아차리고 불의에 습격해왔다면 부대가 어떻게 될번 했소?

그때에는 동무가 아무리 사죄하더라도 부대에 엄중한 손실을 끼친 자기 잘못을 돌이킬수는 없을것이요. 동무의 행동이 적을 도와주었다 하여 전우들이 동무를 대렬밖으로 내보낸다고 하여도 동무는 아무런 변명도 할수 없을것이요.

그런데 동무는 지나온 교훈도, 입대할 때의 맹세도 벌써 다 잊었소?

부드러우면서도 엄격한 그이의 말씀을 들으면서 나는 자기 과오의 엄중성을 다시금 가슴속깊이 뉘우치지 않을수 없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나에게 군사규률위반이 얼마나 엄중한가를 거듭 타이르신 후 대원들한테 돌아다니면서 그들을 놀래우고 휴식을 방해한 잘못을 사과하라고 하시였다. 이것은 그이께서 나에게 주신 첫번째 처벌이였다.

나는 감히 그 자리에서 한마디의 변명도 할수 없었다. 다행히도 그때 근방에 적이 없었기때문에 무사하긴 했으나 그후 부대는 인원을 증가하여 보초근무를 더욱 강화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총성이 났을 때 부대에서는 식사준비까지 중지하고 황급히 전투준비를 서둘렀던것이다.

나는 소대장과 함께 돌아다니며 지휘관과 대원들에게 자기 잘못을 사과했다. 그런데 8련대에 들렸을 때 대원들은 내가 얼굴을 붉히고 말을 더듬는 모양에 그만 웃음을 터뜨리였다. 나의 얼굴은 더욱 화끈해졌다.

얼마후에 저녁식사가 시작되였다. 오래간만에 먹는 노루고기는 대원들의 구미를 돋구었다. 그런데 그들은 그것을 먹으면서도 《이게 바로 두익이 책벌맞은 고기라네. 맛이 어떤가.…》하고 들으라는듯이 수군거렸다.

나는 더 참을수가 없었다.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선 나는 저녁도 안먹고 외따로 빠져나와 뿌루퉁해있었다.

그때까지도 나는 아직 어릴 때의 기분과 버릇을 완전히 떼버리지 못하고있었다. 전우들도 계속 나를 애숭이대원으로 여기면서 사랑해주었다. 더우기 나는 소년중대에 있을 때부터 사령관동지의 극진한 사랑을 받아왔으므로 대원들에게는 물론 그이한테까지 일종의 응석을 부리군 하던 지난날의 습성이 남아있었던것이다.

동무들은 따라와 손을 끌어당기면서 저녁을 먹으라고 거듭 권했다. 그러나 나는 계속 시무룩해서 동무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사이에 이일을 아시였는지 사령관동지께서는 대원을 시켜 나를 부르시였다. 그이께서는 어째서 식사를 하지 않는가, 받은 책벌에 대해서 무슨 의견이 있는가고 캐여물으시였다.

나는 처음 사령관동지의 말씀을 들었을 때에는 자기 잘못을 진정으로 뉘우쳤으나 동무들이 놀려주는바람에 성이 났던것이라고 숨김없이 말씀드렸다.

알만 하오. 아직 동무는 당당한 유격대원이라고 말할수 없소. 유격대에서 규률은 생명이요. 그런데 동무는 규률을 위반하여 전체 부대를 위험에 빠뜨릴번 하고도 그 엄중한 잘못을 용서해준 부대와 전우들의 관대한 조치를 아직 깨닫지 못한단 말이요.

규률도, 부대도, 동지의 사랑도 알아보지 못하니 동무는 아직 떳떳한 유격대원이 되기엔 멀었나보오.

사령관동지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나를 똑바로 지켜보시였다.

나는 그때까지 그이의 이처럼 엄한 비판을 받아본적이 없었다. 나는 한마디의 말도 하지 못하고 한동안 못박힌듯 서있었다.

이때 그이께서는 《다시한번 돌아가서 깊이 생각해보오.》하시고 일어나시면서 한 대원을 가까이 부르시더니 나를 데려가게 하시였다.

내가 자리에서 물러나와 대원을 따라가니 그곳에는 덮개를 씌워놓은 밥그릇과 국그릇이 놓여있었다. 나를 데리고간 대원은 그것을 사령관동지께서 남겨두게 하시였다고 알려주었다.

아직 더운 김이 오르는 그릇을 보자 나의 눈시울은 뜨거워났고 가슴속에 그 무엇인가 치밀어오르는 충동을 느끼였다. 사실 그날에 나는 하루종일 행군하고 추운 산마루에서 보초까지 서다나니 속이 비고 몸까지 떨렸던것이다.

나는 조금전에 나에게 엄하게 타일러주시던 그이의 말씀을 다시한번 생각하면서 숟가락을 들었으나 목이 메여 그만 그 자리에서 고개를 수그리고말았다.

순간 나의 머리에는 소년중대에서 생활하던 때의 일이 회상되였다.

나는 다른 소년중대원들과 마찬가지로 사령관동지의 지극한 사랑을 받았다. 먹을것이 다 떨어졌을 때 그이께서는 자신이 잡수셔야 할 식사를 우리들 모르게 나눠주시였으며 신발 깁는법까지 가르쳐주시였다.

한번은 유격대를 오래동안 따라다닌 내가 아직 밥도 지을줄 몰라 애쓰고있을 때 일제를 무찌르기 위해서는 어떤 일도 다할줄 알아야 한다고 하시면서 손수 밥짓는 방법을 가르쳐주신 일도 있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이렇게 친부모와 같이 우리 대원들을 돌보아주시는 한편 우리들이 튼튼하고 억세게 자라나도록 밤이나 낮이나 걱정하시면서 따뜻하고도 원칙적인 교양을 주시였던것이다.

지나온 생활을 회상하면서 나는 아직까지 그이께 충직한 전사가 되지 못한것이 한없이 부끄러웠다. 나는 그후부터 훌륭한 유격대원이 되여 그이의 기대에 보답해야겠다고 굳게 결심하고 있는 힘을 다하였다. 전투기능을 하루속히 높이기 위한 노력과 함께 부대생활의 모든 면에서 구대원들의 모범을 본받기 위해 노력하였다. 특히 나는 부대내규률과 조직생활에 충실하며 강철의 의지로 자기를 단련하기에 전력을 다하였다.

그때로부터 1년 남짓하여 우리앞에는 커다란 시련기가 닥쳐왔다. 1939년 3월 고난의 행군이 한창 계속되던 때였다.

13도구전투를 진행한 후 부대는 가재수치기에 이르렀다. 깊은 눈속을 헤치면서 행군을 계속해온 우리는 극심한 식량난에 빠졌다. 모진 추위와 굶주림으로 더 발을 옮겨놓기조차 힘들었다. 더우기 방금 설명절이 지난 후여서 사령관동지께서는 대원들을 생각하시여 여간 마음을 쓰지 않으시였다.

그러던중 그이께서는 대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동무들! 힘을 내시오. 식량을 해결할 길이 생겼소.》

우리는 그이의 말씀에 번쩍 정신이 들었다. 얼마 떨어진 산속으로 가면 몇해전에 있은 전투때에 묻어둔 식량을 얻어낼수 있다는것이였다.

대원들은 저마다 자기를 그곳에 보내달라고 간청하였다. 나도 빠지지 않고 따라나섰다.

사령관동지께서는 대원들중에서 몇동무를 지명하시였다. 그속에는 나도 들어있었다.

《임무는 매우 어렵고도 중하오. 그런데 두익동무는 갔다올만 하오?》

나의 심정을 살피시며 따뜻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시는 그이앞에서 나는 서슴지 않고 《예! 능히 갔다올수 있습니다.》라고 힘있게 말씀드렸다. 사실 눈보라치는 험한길을 걸어 그곳까지 갔다오자면 보통때에도 5~6일은 걸려야 할것이였다. 그런데 우리들은 모두 몸이 지칠대로 지쳤었다. 게다가 그 일대로는 놈들이 쉴새없이 싸다니고있다는것을 고려해야 하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그곳 지리와 형편들을 낱낱이 가르쳐주시고 부대의 행군을 보장하기 위하여 늦어도 3일을 더 넘겨서는 안되겠다고 말씀하시였다.

나는 모든것을 돌보지 않고 그 어려운 임무를 맡아 나섬으로써 실지 투쟁을 통하여 우리를 더욱 단련시키며 교양하시려는 그이의 두터운 기대에 보답할것을 굳게 다짐하였다.

우리는 종일토록 행군을 계속했다. 조금 가지고 떠난 비상용말고기를 구워먹을수도 없어서 땅땅 얼어굳어진것을 날채로 조금씩 씹어삼키면서 행군해갔다.

목적지까지 겨우 찾아갔을 때 우리는 더 움직이지 못할 형편이였다. 그러나 우리는 있는 힘을 다 내여 파묻은 장소에서 곰이 절반이나 헤쳐먹고난 강냉이를 꺼내여 짊어지고 곧바로 오던 길로 되돌아섰다.

간삼봉부근까지 돌아오는 동안 우리는 하루에 10여차례나 적들과 조우하였다. 뒤에서 일제놈들이 따라오는데 앞에서는 위만군이 나타났다. 우리는 방차대를 세우고 쉴새없이 전투를 하면서 한발자국 두발자국 전진하였다.

나는 이때 놈들의 탄알에 그만 팔에 부상을 입었다.

짊어진 강냉이포대가 천근 쇠덩이같이 어깨를 짓누르고 앞은 캄캄해졌다. 나의 머리에는 부대를 떠날 때 손저어주시던 사령관동지의 모습이 불현듯 되살아났다.

(그이께서 얼마나 기다리실가?… 반드시 돌아가야 한다. 날자를 어기지 말아야 한다. 이것은 그이께서 주신 명령이다.)

오직 이 한가지 생각으로 나는 이를 악물고 식량을 짊어진채 허리까지 치는 눈길을 헤쳐나갔다.

이리하여 우리는 날이 훤히 밝아올 때에야 부대로 돌아왔다. 그날은 임무를 받고 떠난지 사흘째 되는 날 아침이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무사히 돌아온 우리들을 치하하시면서 손수 우리들의 어깨에서 짐을 벗겨주시였다. 나는 지나간 온갖 곤난이 순식간에 사라짐을 느꼈다. 임무를 완수한 다음에 느끼는 기쁨이란 한량없이 컸다.

그때로부터 얼마후에 기나긴 고난의 행군은 끝나고 북대정자에서 행군기간에 대한 총화가 있었다.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사변을 보다 승리적으로 맞이하기 위하여 부대와 대원들은 자기가 걸어온 지난 길을 엄숙히 돌이켜보았다. 심중한 교훈을 찾아내며 발로된 결함들을 분석하였다.

그처럼 엄숙하고 모든 대원들을 흥분시켰던 이 력사적인 모임을 나는 지금도 감명깊이 회상한다.

수많은 부대 지휘관과 대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대원들에 대한 영예의 표창이 있었던것이다. 이때 사령관동지께서는 고난의 행군과정에 자기에게 부과된 전투임무를 훌륭히 수행한 지휘관들과 유격대원들을 높이 치하하시면서 친히 나에게도 분에 넘치는 치하의 말씀을 하여주시였다.

얼마전까지만 하여도 규률을 위반하여 처벌을 받았던 내가 그이의 치하의 말씀을 받는것을 보고 전우들도 기뻐하며 나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그때에 주신 사령관동지의 치하의 말씀을 나는 가슴깊이 간직하고 어렵고 힘겨운 전투와 행군때에 항상 그이의 말씀에서 큰 힘을 얻었다.

나는 이렇게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따뜻한 품속에서 자라났고 그이의 세심한 보살피심과 가르치심을 받아 혁명전사로 단련되여 간고한 투쟁의 길에서 더욱 힘차게 싸울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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