녀대원들과의 담화에서
김 명 화
1936년 여름 조선인민혁명군부대가 무송현의 어느 한 지방에서 활동하고있을 때였다.
나는 그때 몇몇 동무들과 함께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동지를 모시고 한 오막살이집에 들려서 잠시 휴식한 일이 있었다. 우리가 찾아들어간 그 집에는 젊은 중국인부부가 살고있었다. 그들은 나지막한 방안으로 우리를 반가이 맞아들였다.
우리들은 이곳에서 휴식하면서 지방공작을 나간 대원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기로 하였다.
저녁때가 되자 바깥일을 보고있던 집주인은 부엌안팎으로 드나들면서 음식도 마련하고 물도 길어오면서 분주히 돌아가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그의 안해는 방 한구석에 앉은채 헌 누데기쪼박을 널어놓고 바느질만 하고있었다. 바깥출입이라야 방문이나 여닫고 마당안에서 어정거릴 정도이고 대문밖으로는 거의 나가는 일이 없었다.
녀인의 얼굴은 창백하였고 인두끝같이 꽉 죄여맨 자그마한 발로 인하여 걸음을 걸을 때마다 몸을 기우뚱거리였다.
넓은 중국 동북땅에서 이런 모습을 보는것은 물론 처음이 아니였다. 그러나 이날 아늑한 방안에 앉아 쉬면서 중국녀인의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나에게는 새삼스럽게 측은한 생각이 떠올랐다.
(저렇게 발을 꽁꽁 동여맸으니 아프긴들 얼마나 아프고 남과 같이 훨훨 뛰여다니고싶은 생각인들 또 얼마나 많으랴.)
나는 녀인의 부자연스러운 모습에서 봉건적유습에 얽매여 고통받고있는 모든 녀성들의 가엾은 운명을 보는듯 하여 저도 모르게 마음이 아팠다.
《그래 동무들은 저 녀성을 보고 어떻게 생각하오? 얼마나 모순되고 불행한 일이요.》
사령관동지의 이 말씀에 나는 갑자기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그러자 사령관동지께서는 우리를 바라보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바깥출입도 마음대로 하지 못하니 거기에 무슨 자유가 있으며 생활의 기쁨과 보람이 있겠소. 이것은 한 중국녀인의 비참한 운명을 말해주는 현상으로만 볼수 없소.
고향에 있는 우리의 어머니와 자매들도 일제통치와 봉건유습에 시달려 이만 못지 않은 무권리와 굴욕속에 얽매여있소.
이것은 낡아빠진 사회의 커다란 병집이요. 녀성의 권리에 대한 모독은 전체 인류사회와 인간에 대한 모독이요.
낡은 사회제도하에서 전체 인민이 행복하게 살수는 도저히 없소. 전체 인민의 행복과 녀성들의 사회적해방을 위해서는 새 사회를 건설하여야 하며 녀성들을 봉건적질곡에서 해방하여야 하오.
사령관동지께서는 곤난에 시달려 몇푼 안되는 돈에 팔려 집을 떠나야 하며 어려서부터 남의 집 민며느리나 부자집 종신세가 되여 갖은 구박과 천대를 받는 수많은 조선녀성들의 비참한 생활에 대하여 이야기하시였다.
나의 머리에는 어느덧 어린시절에 보고 느낀 가지가지의 일들이 떠올랐다. 내가 자라난 마을에서도 봉건적유습으로 말미암아 녀자들이 바깥출입조차 마음대로 하지 못하고 구속당하여있었다.
나는 무권리하고 가난한 생활에 얽매여오던 고향마을과 이웃동리 처녀들이 돈에 팔려 눈물을 흘리면서 낯선 고장으로 떠나가는것을 가끔 보았다.
나는 이런 불행을 빚어내는 권세자들의 악법과 착취자들의 비인간적인 폭행에 대한 저주를 금할수 없었다.
한자리에 둘러앉았던 다른 동무들도 제각기 깊은 생각에 잠겨있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당시 아동단원이였던 연숙동무의 머리를 쓰다듬으시며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자, 그러니 동무들은 얼마나 행복하오. 어깨에 총을 메고 남자들과 함께 투쟁의 길에 나섰으니 … 그이상 보람있는 일이 또 어디 있소.
사령관동지의 말씀을 듣는 우리들은 저마다 더 보람있게 투쟁해야겠다는 높은 책임감과 크나큰 긍지를 느끼였다.
나의 머리에는 저주로운 일제의 만행으로 남편을 잃고 집을 불태우고 고향을 떠나오던 지난날이 어제일처럼 떠올랐다. 그때 나는 똑똑히는 몰랐으나 나라가 해방되고 녀성들도 행복하게 살수 있는 새 사회를 머리속에 그렸다.
그러나 유격대에 입대하여 적과 싸우면서 훈련되고 교양받는 과정에 나는 비로소 녀성해방문제에 대한 옳은 인식을 가지게 되였다.
사령관동지께서는 그동안 우리 녀성대원들이 참으로 훌륭히 싸워왔다고 치하해주신 다음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물론 녀성들이 자신의 해방과 권리를 쟁취하기 위하여 투쟁하는것은 중요한 일이요. 우리가 지금 투쟁하고있는 목적의 하나도 바로 여기에 있소.
그러나 녀성들은 자신의 해방과 권리, 평등만을 생각하는 나머지 조선녀성들이 예로부터 가지고있는 고유하고 아름다운 품성을 잊어버려서는 안되오.
녀성은 녀성다와야 하오. 례절있고 검박한 언행과 몸가짐은 사람의 품위를 높여주며 존경과 신망을 받을수 있게 하여주는것이요.
이런 점에서도 녀성대원들은 지방인민들에게 훌륭한 모범을 보여주어야 하오.
사령관동지께서는 계속하여 예로부터 《동방례의지국》으로 불리워온 조선의 녀성들이 얼마나 아름다운 도덕적품성을 간직하고있었는가에 대하여 재미있게 말씀하여주시였다.
잠시 휴식하는 동안에 시작된 그이의 말씀은 녀성들의 생활에 대한 일반적인 이야기로부터 유격대생활에서 우리 녀대원들이 지켜야 할 구체적인 문제에 대한 이야기로 계속 옮겨졌다.
사령관동지께서는 녀성들의 품성과 례절, 몸가짐에 대하여 그리고 재봉대, 작식대에서 일하는 녀대원들이 명심하여야 할 문제들에 대하여 간곡하게 가르쳐주시였다.
나는 오래동안 작식대와 재봉대에서 사업하였다.
그이께서는 작식대와 재봉대에서 사업하는 우리들에게 항상 전투원들의 살뜰한 어머니가 되여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우리는 사령관동지의 말씀을 명심하고 자기 사업을 중요한 전투임무로 간주하고 온갖 정력을 다하였다.
우리 작식대원들은 낟알이 떨어지면 비록 풀죽을 쑬지언정 그속에 자기의 온갖 성의를 다 기울였으며 식사시간을 어기는 일이 없도록 노력하였다. 식량이 떨어져 며칠씩 낟알구경을 못할 때에도 우리는 다음날 식사를 보장하기 위하여 전날밤에 풀을 뜯고 나물을 캐여서라도 식사준비를 해놓고야 눈을 붙이군 했다.
사령관동지께서는 우리 녀대원들이 하는 일을 중요하게 여기시고 항상 높은 요구성을 제기하시였으며 위생과 몸가짐에 각별한 주의를 돌릴것을 가르치시였다.
우리는 사령관동지의 말씀을 가슴깊이 명심하고 그대로 실천하기에 힘썼다. 그러나 때로는 뜻대로 되지 않아 애먹은 일이 한두번이 아니였다. 지금은 수도물이 좔좔 나오고 모든것이 갖추어진 문화주택에서 무엇 하나 부족한것을 모르고 살고있지만 그때에는 물조차 귀한 때가 많았다.
엄동설한 깊은 산속에서 밥을 지을 물도 부족한 형편에서 눈으로 세수할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부지런하지 못하면 밤에 우등불곁에서 잘 때에 묻은 검댕이도 씻지 못하는수가 있었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한 녀동무가 찬바람에 손이 얼어터져서 대원들에게 식사를 내여놓기 거북해했다.
이때 사령관동지께서는 우리를 따로 모여놓고 추운 날씨에 수고한다고 치하와 위로의 말씀을 하신 후 몸가짐에 더욱 주의할데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좀더 부지런하면 손도 얼구지 않을수 있습니다. 손을 깨끗이 하느냐 못하느냐 하는것은 결코 사소한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대원들에게 더 기분좋게 식사를 대접할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것과도 관련되는 일이며 결국 대원들의 전투사기에 영향을 주게 되는것입니다.
그러니 먼저 사상적준비부터 바로 갖추는것이 중요합니다. 군복을 제때에 손질하거나 아침에 세수하고 머리를 깨끗이 빗는것도 소홀히 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생활의 질서이며 그속에 대원들의 정신상태가 반영되기때문입니다.
외모가 단정한 군대는 규률도 서고 전투력도 강한 법입니다.
사령관동지의 이 말씀은 우리를 크게 뉘우치게 하였다. 그이께서는 물이 없어 매우 곤난할 때에도 일찌기 일어나시여 눈을 헤치고 꼭 세수하시였으며 대원들에게도 제때에 머리를 깎고 면도를 하도록 엄격히 타이르시였다.
우리는 그후부터 아침동이 트기 전에 일어나 눈을 녹여서 먼저 세수하고 손을 씻은 후 식사를 짓군 했다.
식사후에는 눈을 녹인 물로 반드시 그릇을 씻고 닦아놓았다. 당시 우리는 커다란 소랭이로 밥도 짓고 국도 끓였다. 그러니 소랭이바닥은 언제나 불에 그슬리군 하였다. 단 하루라도 게을리하여 닦지 않으면 시꺼멓게 얼룩이 갔다.
그러나 우리 작식대원들은 소랭이를 쓰고난 후에는 재로 반드시 깨끗이 닦아놓군 했기때문에 소랭이와 그릇은 언제나 반들거렸다. 그러므로 행군시에 화식도구와 그릇들을 지고다닐 때에도 동무들은 《참 깨끗하군. 그릇만 보아도 구미가 당기는걸.》 하고 감탄하였다.
그후에도 사령관동지께서는 항상 우리 녀대원들의 생활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돌려주시였다. 특히 그이께서는 녀성들은 주민들속에 들어가도 더 눈에 띈다고 하시면서 치마도 늘 여벌을 가지고다니게 하시였으며 전투에서 로획한 물품중에 요행 고약이나 크림같은것이 있으면 그것을 반드시 녀대원들에게 나눠주도록 하시였다.
우리는 그이의 이러한 지성어린 보살피심에 고무되여 혁명임무에 더욱 충실할것을 다짐하군 하였다.
사령관동지의 깊은 관심과 보살피심은 이에만 그치지 않았다. 전투와 행군, 숙영지생활, 이 모든 나날에 그이께서는 우리 녀대원들을 위하여 항상 따뜻한 사랑을 돌려주시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령관동지와 함께 있으면 찬바람부는 산속에서 밤을 새울 때에도 친부모를 모시고 따뜻한 가정에 있을 때와 같이 언제나 마음이 아늑하였다.
우리들은 그날도 이와 같은 심정에서 경애하는 김일성동지를 사령관으로 모시고있는 크나큰 행복을 안고 그이의 한마디한마디 말씀을 새겨들었다.
저녁무렵이 되여 우리들이 떠날 때 중국인부부는 동경어린 눈길로 배웅하였다.
우리는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그들이 하루속히 무권리하고 고통스러운 생활에서 벗어나 새 사회에서 행복을 누릴수 있도록 그들의 몫까지 싸워야 하겠다고 굳게 결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