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화를 향해 몸부림치는 피지공화국

 

남태평양에는 22개국이 산재해있다. 남태평양의 총면적은 지구넓이의 3분의 1이나 되는 광활한 해양지역이다. 오스트랄리아와 뉴질랜드를 제외하고 모든 나라들은 자그마한 섬나라들이다.

그런데 미국의 앞바다 남태평양에 산재해있는 자그마한 나라들에서 쿠데타와 폭동이 자주 일어나고있으며 미국의 영향권에서 탈피하여 자주화를 실현하려고 몸부림치고있는 추세이다.

현재 《태평양섬나라공회》(Pacific Island Forum)에 속해있는 14개국가운데 중국과 외교관계를 맺은 나라는 8개 국가이며 타이완과 외교관계를 맺고있는 나라는 6개 국가라고 한다.

력사적으로 남태평양의 전역에서 200여년전부터 식민지개척에 앞장섰던 영국, 프랑스, 미국 등 서방국가들의 손아귀에서부터 서서히 벗어나면서 동방의 중국의 영향권으로 편입되고있는 움직임을 보이고있다.

워싱톤 AP통신에 의하면 힐러리 클린톤 미국무장관은 2010년 1월11일-19일에 오세안주지역 순방에서 미국의 앞바다 남태평양에 있는 나라들의 동향에 대하여 지대한 념려를 표명하면서 오스트랄리아와 뉴질랜드 그리고 파푸아 뉴기니아의 총리와 국방장관들과 회담을 하면서 남태평양 섬나라들의 문제를 론의했다.

보다 더 놀라운것은 남태평양국가의 지도자들이 대통령으로 혹은 수상으로 취임을 한 후에 첫해의 순방지로 미국이나 영국, 오스트랄리아를 찾아가던 상례가 점차 사라져가는것이다.

이와 같은 분위기속에서 남태평양국가들에 대한 관심은 막대하다. 제3세계민족해방력사에 있어서 남태평양에 산재해있는 작은 섬나라들의 반영, 반미, 반제국주의적투쟁의 력사는 결코 소홀히 여길수 없다.

 

피지공화국의 간추린 과거의 력사

 

200만년전에 사람들이 피지에 정착하여 살았다고 한다. B.C. 1500~B.C. 1300년경에 멜라네시아인들이 피지로 이동하여 오스트랄로이드와 혼혈하여 살았으며 그후에 폴리네시아혼혈인으로서 현재의 피지민족을 형성하여 살고있다.

일설에 의하면 고대피지인들은 일부다처제를 통한 족장의 통치사회가 오래 지속되였으며 그러한 속에서 부족간의 분쟁 그리고 도자기제작을 비롯한 생활창조가 진행되였다고 한다.

B.C. 50년경 해변가에서 어업으로 살아가던 피지인들의 경제중심이 어업에서 농경사회로 옮겨가면서 인구의 증가와 부족중심의 봉건제도가 정착되였다.

피지공화국의 위치는 미국과 오스트랄리아를 련결하는 사이에 위치하여있기때문에 《남태평양의 십자로》라고 불리운다. 피지는 두개의 큰 섬인 비티레부와 바누아레부를 중심으로 하여 840개의 크고 작은 섬들로 이루어져있다.

총면적은 1만 8 270㎢로서 조선반도 남녘의 경상남북도크기의 령토이며 인구는 약 93만 5 000명으로 추산한다. 피지는 태평양에서 폴리네시아지역에 속해있는 나라이며 이웃나라들은 오스트랄리아를 비롯하여 통가, 바누아투, 뉴질랜드, 투발루, 솔로몬 그리고 사모아 등 섬나라들이 있다. 피지의 수도는 수바이며 제일 큰 섬 비티레부섬에 있다.

1643년에 네데를란드의 항해탐험가 아벨 터즈먼이 처음 피지를 발견하였다. 하지만 그는 피지바다에 암초가 있는것을 발견하고 경고를 내렸으므로 아무도 접근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후 130년이 지난 후 1774년에 영국인탐험가 제임스 쿠크가 피지를 또다시 발견하였으며 15년후에 윌리암 블라이가 피지의 가장 큰 섬 비티레부섬을 비롯하여 39개 섬들을 확인하고 이를 기반으로 하여 피지지도를 처음 만들었다.

1800년대에 들어서서 영국의 상인들이 들어와 피지의 희귀한 과일들을 거래하면서 서유럽의 문명이 피지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철제도구, 담배, 의복, 총기들이 급작스럽게 영국인들에 의하여 피지에 류입되였다.

바다에서 폭풍으로 난파된 배의 생존자들과 선원들, 영국에서 도망쳐온 죄수들이 피지사회에 급작스럽게 류입되여 사회구성원의 주요부분을 차지하고있었다. 이들은 피지족 상류계급에 파고들어 족장의 통역, 중개인, 목수, 무기전문가 등으로 둔갑하여 안전한 사회적위치로 자리를 잡아나가고있었다.

또한 피지추장들은 영국과 미국에서 모여드는 선박들의 난파선에서 찾아낸 무기들을 원주민부족들간의 전투에서 사용하기도 했다.

1835년에 이르러서 피지를 공략하는 또 다른 침략집단이 등장했는데 그것은 영국의 선교사들 특히 영국 감리교 선교사들이 피지의 토속종교를 개종하려는 노력이 극에 달하고있었다. 1854년에 세력이 강한 추장들이 그리스도교로 개종됨으로써 선교사들은 힘을 얻고있었다.

한편 이때 피지에서 영국, 미국, 프랑스 등 침략자들이 서로 주도권을 잡기 위한 다툼으로 피지는 무법천지가 되고말았다. 그 당시 피지는 6개의 왕국으로 나누어져있었는데 외국침략자들의 권력싸움에 공연히 원주민왕국들이 말려들어 외국인들이 가지고 들어온 총을 소유하게 되여 왕국들간의 싸움에서 1847년에 희생자들이 대량 발생하고있었다.

1874년 10월 10일에 피지는 결국 영국의 식민지로 병합되고말았다. 앞으로 96년간 억압과 착취의 식민통치를 받아야 하는 비운의 력사가 시작되였던것이다.

피지를 식민지로 만든 영국은 이때부터 사탕수수산업을 시작하였으며 1879년에 인디아에서 최초로 사탕수수농장의 로동자들을 대량 피지로 데려왔다. 그때 인디아는 역시 영국의 식민지로 있었으므로 가난에서 벗어날수 있는 막연한 희망을 안고 많은 사람들이 40~50년간의 계약로동자로 되여 피지로 들어오게 되였던것이다.

인디아인계약로동자들이 해마다 증가하여 결국 그때 당시 피지의 원주민 총인구의 절반정도를 차지하고있었다. 1919년에 이르러서는 계약로동자의 수가 최소 6만명이상이였다고 한다.

계약로동자신분에서 자유인이 된 인디아인들은 땅을 소유하고있는 원주민들과 자연히 심리적으로 갈등이 생길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계약에서 해방된 인디아인들은 서로 긴밀한 련계속에 상업에 투신하여 관광사업, 무역, 제조업, 소매상 등에서 대성공을 거두었다.

피지원주민보다 교육열이 높았던 인디아인계약로동자출신공동체는 토지는 없다 하지만 저축자금은 원주민들보다 많은 기이한 현상이 피지사회에서 발생하고있었다. 이와 같은 기이한 현상을 두고 《땅을 가진 원주민과 돈을 가진 인디아인》이라는 말이 생겨나 류행어가 되고있었다. 또 토지소유공동체와 산업공동체의 량분으로 기이한 현상이 피지사회를 지배하고있었다.

이런 류행어의 기이한 현상이 피지독립후에 반복되고있는 쿠데타의 배경을 잘 설명해주고있다.

2011년당시 피지원주민 51%와 인디아계피지인 44%가 정치적으로 팽팽히 맞서고있다. 하지만 해마다 년간 40만명의 관광객을 유치하고있는 피지의 관광업은 인디아계가 완전히 헤게모니를 장악하고있다.

영국과 미국이 제3세계 어디에서나 마찬가지이기는 하지만 역시 피지에 뿌려놓은 민족분렬, 인종갈등 그리고 빈부격차의 사회악뿌리는 오늘의 피지에서도 제국주의가 남긴 결과로 분석되고있다.

 

피지공화국의 간추린 오늘의 력사

 

1970년 4월 런던에서 영국의회는 피지를 영국련방에 묶어놓는 조건하에서 독립을 허용한다는 결의를 했다. 이 결의에 의하여 피지는 1970년 10월 10일에 드디여 영국식민통치 96년을 마감하고 독립을 성취했으며 유엔에 가입하였다.

피지공화국은 영국식의회정치제도를 따라 1972년 5월에 처음으로 총선을 실시했다. 첫 총선에 피지원주민의 동맹당이 승리하였으며 초대총리로 마라가 취임했다.

마라는 원주민부족추장회의의 대표자이며 후날 원주민부족회의를 대표하여 명목상 대통령이 되기도 했다.

독립초창기부터 원주민계동맹당이 단독정권을 수립한데 대하여 인디아계피지인들은 마음속에 불만을 품고있었다.

1977년에 실시한 두번째 총선에서 역시 원주민계동맹당은 또다시 승리하였다. 하지만 동맹당 마라총리는 총선에서 또다시 승리했음에도 불구하고 인디아계의 련합당을 포섭하여 련합정권을 창출하는 정치과정에서는 극히 소극적인것으로 하여 인디아계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는데서는 항상 실패하고있었다.

그런데 1987년 4월에 실시한 총선에서는 놀라운 큰 이변이 발생했다. 원주민계동맹당이 총선에서 패배하고 인디아계의 련합당이 1987년 총선에서 승리하여 피지의 집권당으로 등장하게 되였다.

집권당이 된 인디아계련합당은 바바드라를 총리로 선출하고 집권을 시작하게 되였다. 피지의 인디아계민중들에게는 지난날의 비운과 피눈물의 슬픔을 위로해줄뿐만아니라 새로운 희망을 안겨주는 새로운 출발의 기회가 되였다.

하지만 이게 웬 일인가? 인디아계의 집권을 반대하는 원주민들이 인디아인상점이나 사업장에 침입하여 화염병을 던지고 인디아인을 구타하고 랍치하는 사건이 벌어지고있었다.

영국이 뿌려놓은 뿌리깊은 민족갈등의 씨앗은 이렇게 로출되기 시작하고있었다. 바바드라총리가 집권을 새로 시작한지 한달도 채 되기 전인 1987년 5월 14일에 원주민계의 륙군중령 라부카가 일으킨 무혈쿠데타가 발생했다.

피지인디아계민중들이 총선에 승리하여 기적처럼 바바드라총리정권이 등장하여 새로운 출발을 하고있었는데 한달도 채 되기 전에 인디아계민중들의 꿈은 와르르 무너지고말았다.

피지공화국의 력사에 있어서 제1차 쿠데타로 기록된 라부카중령이 일으킨 쿠데타에 대하여 여러가지 해석들이 란무하다. 그 첫번째 해석은 미중앙정보국이 관여했다는 공작설이다.

미국은 남태평양에서도 핵시험을 계획하고있는데 미국에 추종하는 피지원주민정권이 흔들림없이 확립되기를 원하고있었던것이다. 그래야만 계획된 핵시험을 차질없이 계속할수 있는것이다.

그런데 만일 인디아계련합당이 집권하게 되면 그 배후에는 분명히 인디아가 있으므로 미국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하게 될것을 미국은 념려하고있었다. 그래서 미중앙정보국의 공작설이 설득력을 가지고있다.

두번째 해석은 영국 감리교가 배후에서 작용한 라부카중령의 쿠데타라는것이다. 영국 감리교는 심혈을 기울여 피지원주민왕국들에게 성공적으로 선교의 기반을 성취해놓았다. 그런데 만일 인디아계정권이 수립되면 그동안 성취해놓은 선교의 기반이 붕괴될것을 념려하여 원주민계의 라부카중령의 쿠데타를 지원했다는것이다.

영국 감리교 선교사들의 피지원주민계 라부카중령의 쿠데타관련설은 매우 설득력이 있는 해석이다. 왜냐하면 코리아반도에서 1919년에 3. 1독립운동에 대하여 그때 당시 미국선교사들은 일본편에 서서 일본을 지원한 력사적사실이 있기때문이다.

미국선교사들은 정교분리리론을 주장하면서 조선그리스도교인들이 3. 1독립운동에 적극 나서는것은 그리스도교선교에 방해를 초래한다고 주장하면서 로골적으로 3. 1독립운동에 그리스도교인들이 나서는것을 반대했다.

미국선교사들은 현세를 체념하고 오직 래세지향적인 그리스도교 신앙만을 가지도록 조선반도에서 미국과 일본에게 유리한 선교정책을 강조하고있었다.

무혈쿠데타에 성공한 라부카중령은 곧 대령으로 진급하여 정권을 잡았다. 하지만 인디아계정치세력은 만만치 않게 뒤로 물러가지 않고 라부카정권에 대하여 항쟁을 계속했다.

인디아계정치세력은 라부카대령이 주도하고있는 정권에 동참하여 두 종족의 진영이 서로 50대 50으로 공동정부조직을 구성할것을 결사적으로 주장했다. 하지만 라부카대령은 인디아계정치세력의 강력한 요구에 대하여 분개하여 1987년 9월 25일에 제2차 쿠데타를 또다시 일으켰다.

제2차 쿠데타를 일으킨 라부카대령은 자기자신이 군사정부수반과 총리가 되여 헌법을 페지하는 긴급통치를 절대로 허용하지 않는 원천봉쇄의 강력한 정책을 주장하고있었다.

군사령관으로서 군사정권의 실권을 확보하고 안심하게 된 라부카사령관은 정치적으로 눈가리고 아웅한다는 식으로 1987년 12월 7일에 림시정부대통령으로 간닐라우를 임명하고 총리로 마라를 임명하였다.

그런데 쥐구멍에도 해빛이 비치는 날이 있었던가? 1999년 5월에 실시한 총선에서 인디아계피지로동당이 선거에서 놀라운 승리를 거두었다.

12년동안 친미독재자로서 무서운 군사정권을 이끌어온 라부카군사독재정권을 총선의 선거로 물리치고 천신만고끝에 인디아계피지로동당이 정권을 장악하게 되였던것이다.

피지로동당은 챠우드리당수를 총리로 선출하여 피지의 력사상 처음으로 인디아계총리가 집권을 하게 되는 기쁨을 가지게 되였다.

챠우드리총리는 1942년생으로 인디아계약로동자의 혈통이며 그의 종교는 힌두교이다.

챠우드리는 1991년에 피지로동당을 창설하여 8년동안 로동당을 이끌어왔는데 1999년 5월 총선에서 승리하여 로동당집권의 총리가 되였다.

피지의회 71석중에 인디아계국민련합당이 58석을 획득했으며 그 58석중에서 피지로동당이 37석을 차지하는 대승리를 거두었다.

하지만 이게 웬 일인가?

피지로동당정권이 집권을 시작하여 단 1년간의 집권을 아직 다 끝내기도 전에 피지원주민계의 반정부쿠데타가 또다시 일어났다.

피지원주민들이 인디아계로동당이 집권을 하게 된것을 그냥 앉아서 보고만 있지 않았다.

또한 미국도 역시 피지에서 좌파정권이 등장하는것을 그냥 보고만 있지 않았다.

2000년 5월에 로동당이 집권을 시작한지 꼭 1년만에 총칼로 무장한 소수의 괴한들이 의회를 습격하여 로동당 챠우드리총리를 비롯하여 로동당계의원들을 다수 체포하여 투옥함으로써 피지공화국력사에서 제3차 쿠데타가 발생했던것이다.

그런데 제3차 쿠데타의 주동자는 누구인가?

제3차 쿠데타의 주동자는 피지원주민정당중의 하나인 피지정치당 의원의 아들인 죠지 스페이트였다.

사실에 있어서 스페이트는 군부출신이 아니다. 그는 사업가이며 또한 자칭으로 엉뚱하게 《나는 그리스도교 테로지도자》라고 주장하는 정체불명의 사람이였다. 이러한 소수의 무장한 괴한들이 쿠데타를 일으켜 일시적으로 성공하였던것이다.

그러나 8주후에 피지군부의 바이니마라마총사령관은 정국수습에 등장하여 헌법을 페지시키고 림시총리로 2000년 7월에 콰라세를 임명하여 콰라세림시정부를 출범시켜 정국을 수습했다.

바이니마라마군사령관은 피지원주민들로부터 영웅대접을 받게 됐다.

하지만 숨겨진 비밀을 어찌하랴.

바이니마라마군사령관은 인디아계로동이민의 제3세대에 해당하는 피지인군사령관이였다.

바이니마라마군사령관은 원주민공동체로부터 영웅대접을 받고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태생적으로 인디아계3세이기때문에 내면적비밀로는 원주민계의 콰라세정권으로부터 암살의 위협을 항상 받고있었다고 한다.

콰라세정권은 쿠데타를 일으킨 스페이트에게 2002년 2월에 종신징역을 선고했다. 하지만 종신징역선고는 일종의 정치쇼에 불과했고 그후에 자유인이 되였다.

왜냐하면 스페이트의 무장한 일당이 일으킨 쿠데타는 8주동안에 로동당정권인 챠우드리정권만을 붕괴시킨 일등공신이기때문에 원주민정권인 콰라세총리는 스페이트에게 관용을 베풀어주었던것이다.

콰라세정권은 2001년 8월에 총선을 실시하였다. 결과 콰라세의 피지통합당이 승리하여 의회 32석을 획득하고 집권당이 되였다. 피지로동당은 27석을 차지하여 제2정당으로서 야당이 되여 인디아계를 위한 정치세력으로 여전히 존속하고있다.

2006년 5월에 콰라세정권하에서 두번째 총선을 실시했다. 이 선거에서도 역시 콰라세총리의 피지통합당이 36석을 획득하여 집권당이 되였고 피지로동당이 31석을 차지했다.

이와 같은 2001년과 2006년의 총선의 승리로 인하여 콰라세 피지통합당이 계속하여 집권을 하고있었다.

하지만 제2당이 되고있는 피지로동당은 콰라세총리의 정권과 집권당에 대항하여 줄기차게 투쟁을 계속했다.

제2의 당이 된 피지로동당은 《국민생활수준향상문제》와 《화해단합단결문제》에 대한 두가지 의제를 의회에 제출하였다. 의회는 찬성과 반대로 극렬대립을 하고있었다.

이 극렬대립문제를 다음의 두가지 의제로 요약할수 있다.

1) 여당과 야당이 함께 련립내각을 편성하자.

2) 불법적으로 쿠데타를 일으킨 자칭 Christian Terrorist Leader라고 주장한 정체불명의 쿠데타주동자 스페이트에 대한 사면을 곧 취소하고 법적으로 공정한 처리를 단행하라.

두말할 필요도 없이 보수적인 피지원주민들과 피지대추장회의 그리고 피지의 최대 그리스도교교단인 감리교단 등이 적극적으로 선동하여 피지로동당이 의회에 제출한 두가지 의제에 대한 통과를 절대로 반대하고있었다.

콰라세총리의 정권은 량손에 떡을 쥐고있는 형국으로 매사에 있어서 우유부단하고 무결정상태에서 피지의 정국은 원주민계에 항상 유리하고 인디아계종족에게는 매사에 불리하여 두 공동체사이에 혼란과 충돌이 계속되고있을뿐이였다.

 

독립후 4번째 쿠데타를 일으킨 바이니마라마

 

2006년 12월 5일에 바이니마라마군사령관이 피지독립후에 4번째 무혈쿠데타를 일으켜 원주민계의 콰라세총리를 축출하고 조세파 일로일로를 대통령권한대행자로 추대했다.

조세파 일로일로대통령권한대행자는 콰라세 전 총리의 정권이 그동안 피지에서 종족분렬만을 조장해왔다고 비난하면서 무혈쿠데타에 성공한 바이니마라마군사령관을 과도정부의 림시총리로 임명했다.

1970년에 피지공화국이 출범한 후에 4번째 쿠데타에 대하여 《희한한 쿠데타》의 성공이라고 세계외신 뉴스들은 일제히 보도했다.

왜 희한한 쿠데타인가?

쿠데타를 주도한 바이니마라마장군은 4일전에 미리 쿠데타설을 발설했다는것이다. 또 뿐만아니라 그때 피지에서는 국가적인 행사인 럭비경기가 예정되여있었다고 한다.

바이니마라마장군은 럭비경기때문에 쿠데타를 하루 연기한다라고 미리 발표를 했다는것이다. 세상에 이런 쿠데타야말로 정말 희한한 쿠데타가 아닌가?

이런 상황에서 콰라세 현직국무총리는 오스트랄리아 등 이웃나라들에 호소하여 군대를 피지에 파송해 바이니마라마의 쿠데타를 미리 방지해달라고 전화로 요청했다. 하지만 그의 호소는 응답을 받지 못했다.

바이니마라마장군의 쿠데타성공에 대하여 인디아계민중들은 환영하고 기뻐하고있지만 피지원주민계공동체에서는 검은 옷을 착용하고 항의를 표시했다.

2007년 1월 4일에 조세파 일로일로대통령권한대행자는 군부쿠데타에 성공한 바이니마라마장군을 국무총리로 공식 임명하고 국가재건을 위하여 정권을 완전히 장악하도록 조치를 취하였다.

바이니마라마총리는 군사령관과 총리직을 겸임하여 막강한 권한과 무거운 책임을 량어깨에 지고있었다.

그런데 바이니마라마장군의 쿠데타성공에 대하여 기이한 배경이야기가 있다.

바이니마라마총리는 태생적으로 분명히 인디아계혈통의 후손인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한때 바이니마라마장군에 대하여 그는 원주민계의 혈통의 후손이라고 하는 소문이 있기도 했다.

언론들도 바이니마라마장군의 혈통에 대하여 혼란을 일으키는 기사들을 람발했다. 어떤 언론은 원주민계의 바이니마라마장군이 인디아계를 위해서 쿠데타를 일으켰다는 보도를 하기도 했다. 즉 토착민이 인디아계립장을 대변해 쿠데타를 일으킨셈이다. 어쨌든 토착민들이 바이니마라마의 쿠데타에 대하여 불만이 큰것은 분명한 사실이였다.

필자의 견해로는 인디아계 바이니마라마장군이 혹시 원주민계녀성과 결혼을 했기때문에 두 종족사이에서 이런 혼란이 발생했는가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와 결혼한 녀성은 Maria Makitalena이며 6명의 자녀가 있다.

어쨌든 바이니마라마장군은 원주민추장중에서 가장 유력한 추장이며 또한 전직총리와 전직대통령이였던 마라추장과는 매우 가까우며 절친한 정치적관계를 서로 맺고있는것만은 틀림이 없는 사실이였다.

그러므로 바이니마라마장군의 쿠데타계획에 대하여 원주민추장 마라가 다 알고있었을것이라는 추측소문도 퍼져있었다고 한다.

리유는 어쨌든 96년동안 영국의 로동계약으로 인하여 흘린 눈물과 또 독립후에 원주민과의 종족분렬과 갈등으로 인하여 인디아계민중들이 흘린 피눈물을 가히 닦아줄수 있는 바이니마라마장군이 일으킨 쿠데타는 성공한 쿠데타였다.

피지의 두 종족간의 끝이 없는 비극적인 투쟁을 영국과 미국은 부추기고있었다. 이로 인하여 계속되고있는 비극적인 현실을 바이니마라마장군의 쿠데타는 새로운 자주적인 정권을 창출하여 눈부신 성과를 거두고있다.

오랜 력사에서 피지를 지배해온 서유럽의 외세가 완전히 종식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그런데 2009년 4월 9일에 피지원주민계가 장악하고있는 피지의 대법원은 바이니마라마장군이 일으킨 쿠데타를 불법적, 반국가적쿠데타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조세파 일로일로과도정부 대통령은 바로 그 다음날인 4월10일에 대법원의 발표를 일절 무효화하고 오히려 대법원의 법관들을 파면할뿐만아니라 모든 은행장들을 새로 교체하는 적극적조치를 감행했다.

조세파 일로일로대통령은 바이니마라마장군에 대한 국무총리임명을 다시 재확인시키고 국가재건비상조치로서 지금까지 원주민계위주의 언론들을 통제하기 위하여 강력한 법령을 발포했다.

《피지는 당분간 피지식민주주의를 할수밖에 없다.》라고 비상조치를 발표했다.

조세파 일로일로과도정부 대통령은 나일라티카우를 부대통령으로 2009년 4월 17일에 임명했다.

조세파 일로일로과도정부 대통령은 2006년에 바이니마라마장군이 일으킨 쿠데타정권에 동참하여 3년 7개월동안 정권의 수반으로 정권의 안전과 정착을 위하여 큰 공헌을 했다.

조세파 일로일로대통령은 2009년 7월 30일에 자기가 부대통령으로 추천한 나일라티카우부대통령에게 과도정부의 대통령직을 계승하게 하고 퇴임했다. 그는 1920년생으로 89살의 고령으로서 후임자를 선택하고 퇴임했다.

2009년 11월 3일에 나일라티카우정권은 피지에 주둔하고있는 오스트랄리아와 뉴질랜드대사관을 봉쇄하고 24시간내에 두 나라 대사들이 피지를 떠날것을 통고했다.

이와 같은 피지과도정권이 취한 강경대외정책에 대하여 그때 당시 ABC기자인 Philippa McDonald는 바이니마라마총리와 특별기자회견을 했다.

문: 오스트랄리아와 뉴질랜드 등 외교관들을 추방한 리유는?

답: 그들이 주장하고 선전하고있는 일들은 우리 피지에서 전혀 없는 일들이다. 그런 허위적언론들을 추방할수밖에 없다.

문: 당신은 군인이고 군부독재자라고 하는데?

답: 독재자라는 말의 뜻이 무엇인가? 내가 독재자라면 강대국의 지도자들은 독재자들중에서 더 지독한 독재자들 아닌가?

문: 당신이 추구하는 피지의 개혁은 무엇인가?

답: 피지독립당시 처음에 채택된 헌법 등은 영국련방제도하에서 제정된 헌법이기때문에 오늘의 피지는 그런 헌법제도에서 탈피해야 한다. 과감한 개혁없이는 불가능하다.

문: 당신이 뜻하는 개혁적헌법은?

답: 피지의 낡은 헌법은 전적으로 종족분규를 조장하는 헌법이다. 개혁의 골자는 바로 이러한 종족분규를 조장하는 내용들을 헌법에서 제거하는데 있다.

문: 당신이 원하는 개혁은 언제 완성하고 성취하는가?

답: 개혁의 완성과 성취는 군이 총칼로 성취하는것이 아니다. 민중과 젊은 세대가 해야 한다. 지금까지 민중과 젊은 세대에게 기회를 주지 못했다. 그들의 힘으로는 반드시 성취할것이다.

문: 당신은 2014년에 총선에서 민주적정권의 창출과 민주적정부를 수립할것이라고 주장하고있는데 그때까지 너무 길지 않은가?

답: 과도정권이 언제까지 정권을 장악하고있는가 하는 문제는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은 민중의 뜻이 언제 성숙해지는가에 달려있다. 절대로 2014년까지 법적으로 기다리는 그런 시간표는 없다.

문: 당신은 강력한 지도사상을 과시하고있다. 당신이 원하는 피지의 미래에 대한 전망은?

답: 군과 인민이 하나로 굳건히 단결된 조건하에서 나는 강력한 지도자가 될수 있다. 피지의 오래된 종족갈등이 사라져 없어지고 외세가 부추기는 세력도 없어져야만 한다. 토착민은 지금까지 늘 인디아계를 구박했다. 종족분쟁을 끌어오는것은 항상 외래의존적정치제도이다. 내가 개혁하려는것은 이런 정신구조를 없애야 하는것이다.

그때에 모든 민중들은 개인의 특권을 평등하게 행사할수 있는 평화로운 삶을 살게 될것이다. 피지는 세계적인 관광명승지로 해마다 40만명을 유치할수 있는 나라가 반드시 될것이다.

장시간의 ABC기자와의 회견을 여기서 지면상관계로 생략한다.

한편 남태평양의 나라들은 피지의 쿠데타불씨가 자국에 미칠 영향에 대하여 긴장하고있다. 뉴질랜드는 피지와의 관계를 완전히 단절하지는 못하지만 당분간 피지인들의 뉴질랜드입국을 금지하겠다고 발표했다.

오스트랄리아도 역시 피지의 군사쿠데타에 대하여 대응하지는 않겠지만 량국인들의 왕래를 당분간 제한하겠다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오스트랄리아의 리드총리는 피지군부의 쿠데타를 비난하면서 《피지의 쿠데타문화가 남태평양나라들에게 확산되는것을 경계해야한다.》라고 경고했다.

그러면 미국은 어떠한가?

미국의 반응은 상상을 초월한 악의적이며 비렬한 반응을 나타내보이고있었다.

다음은 위킬릭스가 폭로한 미중앙정보국과 US Cables 등이 피지에 대하여 미국정부에 발송한 비밀문건들을 간추려 소개한다.

ㄱ. 피지쿠데타군부는 무차별구속과 구타를 계속하고있다. 만일 미국을 비롯한 유럽련합의 교관들이 피지사태를 비방하고 외곡보도를 한다면 피지군부는 그들을 체포하고 구타를 하겠다고 위협하고있다. 피지군부는 비리성적으로 행동하고있다.

ㄴ. US Cables는 수없이 많은 매일매일의 현장사진들을 미국에 전송했는데 주로 피지군인들의 만행과 략탈, 녀성학대에 대한 악의적인 선전자료들만을 수집하여 미국으로 전송했다.

ㄷ. 미국 Lary Dinger대사의 보고에는 쿠데타주동자 바이니마라마장군에 대한 심리분석과 정신과 의사의 분석자료가 있다. 그 자료에 의하면 바이니마라마장군의 판단력에는 문제가 있다. 그는 국제적반응에 대하여 무지하며 미국과 오스트랄리아 등 나라에서 받을 막대한 경제적손실에 대하여 무감각하다.

ㄹ. 또 다른 바이니마라마장군에 대한 분석보고는 바이니마라마는 군인으로서 실제로 충돌지역에서 치렬한 전투에 참가한 경험과 지휘를 한 경험이 전혀 없기때문에 다만 리상적으로 평화와 평등사회를 꿈꾸는 명예추궁자이라고 분석한 보고를 미국에 했다.

ㅁ. 미중앙정보국은 조세파 일로일로과도정부 대통령을 비밀로 수차 접촉하여 그로 하여금 바이니마라마쿠데타정권에서 손을 떼고 물러날것을 공작했다. 하지만 미중앙정보국의 공작은 실패했으며 결론은 그가 너무 늙은 로인이기때문에 실패했다고 결론을 내렸다.

ㅂ. 오스트랄리아와 미국간의 비밀Cables교신에 의하면 미국과 오스트랄리아는 피지의 쿠데타정권에 대하여 보다 강경한 정책을 세우는 강경책을 다짐했으며 특히 남태평양에서 증가하고있는 중국의 영향을 차단하기 위한 공동정략을 강조했다.

ㅅ. 2009년 9월에 힐러리 클린톤국무장관은 뉴욕에서 피지의 유엔대표와 회담을 요청했다. 이 회담요청은 사전에 오스트랄리아와 뉴질랜드가 미국과 결합하여 요청을 했다. 하지만 피지의 유엔대표는 힐러리 클린톤의 회담요청을 거부하여 무시되고말았다.

그런데 2010년 9월에 미국은 또다시 피지의 유엔대표와의 회담을 요청했다. 이번에는 피지 유엔대표 Ratu Kubuabola가 순순히 응하여 힐러리 클린톤과 그외의 남태평양 지도급인사들과 공동회의를 한시간동안 진행했다.

미국은 피지의 바이니마라마군사정권과 정식 외교관계를 맺을것을 제안했다. 미국의 제안에 대하여 피지의 외무장관은 《피지군사정권의 2014년 총선계획》을 미국이 외교정책으로 정식 승인할것을 요청했다.

미국과 피지는 량국의 요청을 서로 수용하기로 합의했다. 미국은 이 합의로 인하여 오스트랄리아와의 약속을 배반하는 립장이 됐다. 하지만 미국은 피지에 대한 봉쇄는 여전하다고 강조하면서 오스트랄리아를 달래고있다. 미국의 이중자대의 량면성정책은 언제 어디서나 여전하다.

그리고 미중앙정보국의 가장 중요한 과업은 피지군사정권과 중국과의 관계개선에 대하여 비밀정보를 획득하여 미국에 보고하는것이였다.

피지에 대한 위킬릭스의 폭로문건들과 US Cables의 폭로기사들은 수십가지가 더 있다. 하지만 지면상제한으로 이것으로 그친다.

 

이 글을 맺으며

 

피지의 군사쿠데타를 2006년 12월 5일에 일으켜 과도림시정권을 종식하고 피지의 고질적인 종족분쟁이 없는 민주주의정권을 창출하겠다고 바이니마라마 국가수반은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에 분명히 밝히고있다.

그런데 또 놀라운것은 바이니마라마 피지국가수반은 Catholic학교에서 교육을 받았고 영국 감리교계통의 피지그리스도교 감리교의 신자로서 꾸준히 교회에 출석하는 진실한 감리교회의 교인이라고 한다.

그런데 2011년 8월 23일 BBC태평양지역 보도에 의하면 바이니마라마총리는 피지 감리교가 2011년 8월에 개최하는 제160차 감리교 전국총회를 금지하는 비상명령을 내렸다. 뿐만아니라 피지 감리교의 주요지도자, 목사들의 해외려행을 금지까지 했다.

영국 감리교는 1850년대에 피지원주민 부족왕들에게 성공적으로 선교하여 그들을 그리스도교로 개종시켰다.

피지의 감리교교단의 비리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피지 감리교는 영국을 종주국으로 여기는 피지 우익보수정치의 수호자이다. 또한 인디아계와 종족분쟁에 있어서 화해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오히려 종교의 리유로 분쟁과 분렬을 부추기는 역할만 했다.

어쨌든 진실한 감리교의 교인이라고 자타가 공인하는 바이니마라마총리가 감리교의 제160차 전국총회를 계엄령으로 금지시킬뿐만아니라 감리교 지도급목사들의 해외려행까지 금지시키는 조치는 매우 놀라운 일이였다.

그러면서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우리 조선반도 남녘의 리명박《대통령》에 대한 생각이다.

리명박《대통령》은 진실한 보수주의적그리스도교신자이며 꾸준히 교회에 출석하는것이 피지의 바이니마라마총리와 너무나도 류사한 점이 많이 있다.

그런데 피지의 바이니마라마총리는 본인이 속한 감리교이지만 피지력사를 망치는 반민족적이며 비신앙적인 교단에 대하여 분개하여 용맹스러운 지도력을 발휘했다. 참 놀라운, 정의로운 감리교회의 신자인 바이니마라마총리이다.

하지만 조선반도 남녘의 리명박《대통령》은 어떠한가? 리명박《대통령》이 과시하고 자랑하고있는 보수주의교회들의 오늘의 부패상에 대하여 리명박《대통령》은 분개하지 않을뿐만아니라 아무 말이 없다.

리명박《대통령》이 장로라고 하는 S교회의 목회자들의 추태스러운 망동에 대하여 또는 리명박《대통령》이 크게 선전하는 보수주의 S복 그리고 대형교회의 비리에 대하여 그는 남태평양의 섬나라 피지의 바이니마라마총리처럼 분개할수 있는 참된 신앙심과 용기가 전혀 없어보인다.

오죽하면 보수 늙은 거장인 김동길씨가 리명박《대통령》에 대하여 뿔났을가?

2014년에 실시될 피지공화국의 총선이 외세의 방해와 간섭없이 성공할것을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이전페지  차례  다음페지 
되돌이 목록
감 상 글 쓰 기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를 하려면 여기를 눌러주십시오
Copyright © 2003 - 2022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
辽ICP备15008236号-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