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태평양의 《지상락원》 파푸아 뉴기니아에 외세가 끼친 비극
뉴기니아섬은 이 지구상에서 그린랜드섬 다음가는 두번째로 큰 섬이다. 공룡처럼 생긴 뉴기니아섬은 조선반도의 4배에 달하는 큰 섬이다. 하지만 뉴기니아섬은 일찌기 서유럽식민주의자들의 탐욕적인 각축전의 희생물로 되여왔다.
그로부터 뉴기니아섬이 인도네시아와 파푸아 뉴기니아 두 나라로 분렬되는 비극의 력사가 시작되였다.
뉴기니아섬에 사람이 최초로 정착한것은 5만년전일것이라고 추측하며 이곳에 석기인들이 살고있었다고 한다. 동남아시아에서 이주한 사람들이 약 9 000년전부터 뉴기니아섬의 고원지역에서 농업을 발전시킨것으로 본다. 그후 약 2 500년전에는 돼지를 사육하고 고기잡는 기술을 뉴기니아섬에 도입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15세기까지 뉴기니아섬이 서유럽의 렬강들에게 알려진것은 별로 없었다.
16세기초에 뉴기니아섬에 침입한 뽀르뚜갈식민주의자들은 이 섬의 원주민들의 머리가 곱슬머리라고 하여 《파푸아》(말라이어로 곱슬머리)라고 불렀으며 그후 에스빠냐식민주의자들은 원주민들이 아프리카의 기네지방 흑인과 비슷하다고 하여 이 섬을 《뉴기니아》(새로운 기네)라고 불렀다. 여기로부터 파푸아 뉴기니아라는 나라이름이 유래되였다.
17세기에 들어서면서 뉴기니아섬에 대한 네데를란드, 영국, 프랑스, 도이췰란드식민주의자들의 쟁탈전은 더욱 치렬해졌다. 그런 끝에 서부뉴기니아(서부이리안)는 1816년에 네데를란드식민지로, 동부뉴기니아의 북부지역(뉴기니아)은 1884년에 도이췰란드식민지로, 동부뉴기니아의 남부지역(파푸아)은 1888년에 영국식민지로 각각 분할되였다.
서유럽렬강들은 1500년대-1900년대에 이르는 400년동안 뉴기니아섬을 침략하여 동서남북 사방에서 서로 뜯어먹기경쟁을 했는데 이에 대하여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서부: 네데를란드(Dutch New Guinea)
동부북쪽: 도이췰란드(German New Guinea)
동부남쪽: 영국(British New Guinea)
영국은 1906년에 파푸아를 오스트랄리아에 넘겨주었다. 왜냐하면 쌈지돈이나 주머니돈이나 마찬가지인것처럼 오스트랄리아는 이미 영국의 주머니속에 들어있는 처지의 나라이기때문이였다. 또한 오스트랄리아는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도이췰란드가 패망한 후인 1921년 도이췰란드가 차지하였던 뉴기니아를 저들의 위임통치령으로 만들었다.
그때부터 오스트랄리아는 파푸아 뉴기니아의 식민지종주국으로 되여갔으며 남태평양전역에서 영국을 위한 골목대장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때 일본이 뉴기니아섬을 몇년동안 점령했다. 하지만 1945년에 일본은 패전하여 뉴기니아섬에서 완전히 떠나갔다.
그런데 일본이 떠나간 후에 뉴기니아섬의 서쪽에서는 수카르노가 지휘하는 게릴라투쟁이 5년동안 맹렬히 전개되고있었다.
수카르노의 게릴라독립투쟁의 대상은 첫째가 네데를란드이며 그 다음이 영국과 오스트랄리아였다. 네데를란드는 수카르노를 체포하여 3년간 투옥했다. 하지만 결국 수카르노는 투쟁을 멈추지 않고 승리하여 뉴기니아섬의 서쪽에서 독립을 쟁취했던것이다.
수카르노의 게릴라독립투쟁이 승리하여 1963년 뉴기니아섬의 서쪽절반은 인도네시아의 령토로 되였다.
그러면 뉴기니아섬의 동쪽 절반지역에서는 무엇이 어떻게 전개되고있었는가?
오스트랄리아는 1946년에 뉴기니아섬의 동쪽 절반인 뉴기니아와 파푸아를 통합하고 오스트랄리아에 합병시켜놓았다.
그리하여 뉴기니아섬의 동쪽 절반은 오스트랄리아의 령토가 되고 말았던것이다.
이것은 일본이 조선반도를 강압적으로 합병하여 이른바 《내선일체》를 주장했던것과 같은 침략의 방법인데 조선반도는 일본의 령토가 되여 《창씨개명》까지 강요당했다.
오스트랄리아는 뉴기니아섬의 동쪽 절반을 강제로 합병시켰지만 뉴기니아섬민중들의 불만을 잠재울수는 없었다. 그리하여 오스트랄리아는 뉴기니아섬의 동쪽 절반에 대해 이번에는 자치주로 승격시키는 특별법을 제정했다.
자치주로 승격시킴으로써 뉴기니아섬의 민중들의 불만을 무마시키려 했다. 하지만 이것으로 독립을 요구하는 민중들의 거센 불만과 항의를 잠재우며 무마시킬수는 도저히 없었다.
그리하여 오스트랄리아는 2년후인 1975년 9월 16일에 할수없이 뉴기니아섬의 동쪽 절반을 드디여 《파푸아 뉴기니아》독립국으로 승인을 했다. 독립국이 된 파푸아 뉴기니아는 영국의 련방제도밑에서 독립국이 되였다.
세계에서 지하자원이 무진장 풍부한 뉴기니아섬은 서유럽렬강들의 침략의 대상이 되여 400년동안 몸살을 앓았다. 그런데 제2차 세계대전종식후에는 랭전시대로 인하여 결국 뉴기니아섬은 영원히 되돌아갈수 없는 영구분단인 두개의 독립국으로 된것이다.
독립국이 된 파푸아 뉴기니아의 파란만장한 발자취
1975년에 독립국이 된 파푸아 뉴기니아는 면적이 46만 2 840㎢로서 조선반도의 2배가량 되며 인구는 670만명정도로서 15%가 도시에서 거주하고있다.
파푸아 뉴기니아는 독립을 했지만 영국의 련방국으로 독립을 했기때문에 공식적인 국가원수는 영국의 엘리자베스2세녀왕이다. 엘리자베스2세녀왕밑에는 파푸아 뉴기니아의 총독이 있다. 총독은 의전적기능과 내각의 결의사항에 대하여 형식적인 추인을 하는 기능만 가지고있을뿐이다.
파푸아 뉴기니아는 600개의 많은 섬들로 이루어졌으며 다양한 부족들이 자기 고유의 언어와 독자적인 전통문화속에 그것을 고수하면서 제각기 살아가고있는 나라이다. 파푸아 뉴기니아의 행정구역은 19개의 주로 분할되여있으며 각 주마다 독자적인 립법체제를 가지고있다. 파푸아 뉴기니아의 중앙정부정당의 수는 현재 18개로서 정당들이 란립해있다.
파푸아 뉴기니아의 중앙정부는 총선을 통하여 103명의 국회의원을 선출하고 선출된 국회의원들은 국가의 최고지도자인 수상을 선출한다. 총선때마다 정당들사이에 충돌과 총격사건이 항상 발생하여 정국의 불안을 일으키고있다.
1975년에 독립한 파푸아 뉴기니아는 국가창건이후 2011년까지 36년동안 총선을 8번 치르었다. 그리고 36년동안에 최고지도자로 등장한 수상들은 모두 12명이다. 그런데 파푸아 뉴기니아에서 국가의 최고통치자인 수상들의 정치적수명은 평균으로 따지면 2년 7개월정도로서 단명수상들로 모두 끝났다. 하지만 12명의 단명수상들중에서 유일하게 3차의 재선을 통하여 17년동안 장기집권을 계속한 수상이 한사람 있었다.
파푸아 뉴기니아의 국민동맹당(Nation Alliance)의 당수인 미챠엘 쏘마레수상은 이른바 건국의 아버지로서 초대수상으로 5년간 집권을 한 후에 또다시 3번이나 수상으로 재선되여 4차집권을 하면서 17년간 통치했다.
17년간 통치를 한 미챠엘 쏘마레수상은 2011년 8월 2일에 75살의 로인으로서 심장병중환자가 되여 모든 권한과 직책을 후임자 피터 오네일 신임수상에게 넘겨주고 퇴임했다.
사실 미챠엘수상은 2011년 6월에 싱가포르에서 병원에 입원하여 심장수술을 세번이나 받았으며 회복이 불투명한 중환자였다.
미챠엘 쏘마레는 36년간 국회의원의 자리를 보존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17년간 수상으로서 화려한 정치적경력을 과시하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챠엘 쏘마레수상의 정치적장기집권경력에 대한 평가는 국내에서는 물론이고 국제적으로도 긍정적평가보다는 부정적평가의 요소들이 너무나도 많이 나타나고있다.
미챠엘 쏘마레의 국회의원과 수상으로서의 36년의 긴 세월동안 정치적경력과 통치행태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들을 살펴보고 그 내용을 간단히 요약한다.
1. 미챠엘 쏘마레수상이 2011년 6월이후 싱가포르에서 심장수술을 받고 치료와 투병을 하고있는 와중에 파푸아 뉴기니아의회는 미챠엘 쏘마레수상의 재임직위권을 전격적으로 종결시키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쏘마레수상에 대한 수상직의 직위종결결의안을 전격적으로 채택한 리유는 그가 심장병으로 입원하여 수상의 직무수행이 불가능했기때문이 아니였다.
파푸아 뉴기니아의회가 미챠엘 쏘마레수상에 대하여 수상직위종결안을 전격적으로 결의한 리유는 무엇인가?
그 리유는 1990년-2010년사이에 미챠엘 쏘마레수상이 의회에 제출한 재정보고문건들이 모두다 허위문건들이며 조작된 가짜재정보고였다는 사실이 분명히 밝혀졌기때문이였다.
2. 미챠엘 쏘마레수상이 싱가포르에서 심장병치료를 받는데 지출된 국고금이 370만US$로 밝혀졌다. 하지만 이와 같은 거액의 국고금을 싱가포르병원에 지출한데 대한 책임소재가 전혀 밝혀지지 않았다. 이로 인하여 국민들은 분통을 터뜨리고있는 실정이다.
《아니 수상이 의료보험도 없었단 말인가?》, 《어린이와 녀성들, 빈곤한 국민들은 정부의 도움을 한푼도 받지 못하고 병원의 문간에도 갈수 없는데…》, 《미챠엘 쏘마레수상을 당장 감옥에 보내라.》
이와 같이 쏟아져나오는 분노의 소리들이 세계의 언론에 계속 보도되고있다.
3. 오스트랄리아와 미국은 미챠엘 쏘마레수상의 부패정권에 대하여 모든것을 확실히 다 알고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오스트랄리아는 계속하여 파푸아 뉴기니아의 미챠엘 쏘마레정권에게 막대한 원조를 주었다.
그 리유가 무엇인가? 남태평양지역의 군소국가들을 친미세력권안에 튼튼히 묶어놓기 위한 미국의 정책에 파푸아 뉴기니아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있기때문이다.
미국은 울며 겨자먹기로 할수없이 부패정권의 괴수인 미챠엘 쏘마레수상에게 막대한 원조를 해마다 계속하여 제공해주었다.
2007년-2008년 파푸아 뉴기니아에 대한 오스트랄리아의 경제지원은 4억 8 000만US$이상이였다고 한다. 하지만 이 막대한 원조는 한푼도 가난한 민중들에게 혜택으로 이어지지 않았을뿐만아니라 파푸아 뉴기니아는 남태평양지역에서 민중들의 생활수준이 제일 빈곤한 나라로 항상 기록되고있다.
4. 위킬릭스가 폭로한 파푸아 뉴기니아에 주둔하고있는 미국대사관의 보고내용에 의하면 《오스트랄리아가 미챠엘 쏘마레정권에게 제공한 막대한 자금은 민중을 위한 원조가 아니라 소수의 정치적권력을 가진 특권층 사람들에게만 주어진다.》라고 되여있다.
《미챠엘 쏘마레수상의 정권은 하잘것없는 독재자들의 집단이다.》라는 평가로 미국대사가 항상 미국정부에 보고를 했다고 위킬릭스는 폭로했다.
5. 파푸아 뉴기니아에서 미챠엘 쏘마레수상이 36년동안 권좌에서 정권을 유지하도록 도와준 리유는 미국이 강요하는 이른바 민주주의선거제도를 실시하도록 하기 위함이였다.
하지만 미챠엘 쏘마레수상의 정권하에서 실행하고있는 이른바 민주주의선거제도는 미챠엘 쏘마레수상을 옹호하는 옛 보수집단들에게 《권력명세표》를 제공해주는 행사에 불과하다고 미국대사가 미국정부에 비밀로 보고한 내용을 위킬릭스는 또 폭로했다.
뿐만아니라 파푸아 뉴기니아의 미챠엘 쏘마레정권의 미래에 대한 오스트랄리아정부의 전망과 평가서를 미국대사가 보고한 비밀문건에 의하면 파푸아 뉴기니아에서 미챠엘 쏘마레수상이 통치하는 한 《세대교체희망은 절망이다.》라고 보고했다.
그런데 미챠엘 쏘마레는 누구?
파푸아 뉴기니아에서 36년동안 국회의원과 17년간 수상으로 독재를 계속한 미챠엘 쏘마레는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
1936년생인 쏘마레는 일본이 파푸아 뉴기니아를 점령하고있을 때 일본인과 가까이 지내며 교육을 받은 기록이 있다고 하여 일부에서는 친일파인사로 알려지기도 했다.
어쨌든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 쏘마레는 오스트랄리아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파푸아 뉴기니아에 돌아와 교사와 방송국의 아나운서로 일한 경력을 가지고있다.
1964년부터 쏘마레는 오스트랄리아의 식민지통치하에서 공직에 종사하기 시작하였으며 점차 사회봉사와 정치적그룹을 조직하는데 관여하기 시작했다.
미챠엘 쏘마레는 1972년 파푸아 뉴기니아의 독립을 미리 예견하면서 적극적으로 정당조직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여러 정당조직들과 련대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고있었다.
1975년 9월 16일에 드디여 파푸아 뉴기니아가 70년에 이르는 오스트랄리아의 식민지통치에서부터 해방되여 독립을 쟁취했다.
미챠엘 쏘마레는 39살의 젊은 나이로 신생독립국 파푸아 뉴기니아의 초대수상이 됐다. 미챠엘 쏘마레는 《건국의 아버지》라고 하는 명예를 획득하고 75살이 될 때까지 그의 명예를 보존하고있었다. 미챠엘 쏘마레가 수상으로 집권한 기간은 다음과 같다.
1975년-1980년, 1982년-1985년, 2002년-2010년, 2011년 1월-6월.
모두 16년 6개월동안 미챠엘 쏘마레는 수상으로서 무서운 독재자가 되여 장기집권을 했다.
미챠엘 쏘마레수상은 파푸아 뉴기니아에서뿐만아니라 남태평양의 넓은 지역의 여러 섬나라에까지 지독한 독재자로 명성이 알려졌다.
미챠엘 쏘마레를 로마의 Caesar와 비슷한 독재자라고 했다. 하지만 로마의 Caesar와 다른 점이 있다. 그 다른 점은 Caesar는 암살을 당해 죽었지만 미챠엘 쏘마레는 심장병으로 죽게 된것이라는것이다. 쏘마레수상은 식민지종주국인 오스트랄리아와의 관계에 대하여 태줄의 관계라고 하면서 오스트랄리아를 극구 찬양했다. 파푸아 뉴기니아는 오스트랄리아에 종속된 국가임을 스스로 자인하면서 오스트랄리아와 미국이 해마다 제공해주는 막대한 무상원조를 특권으로 여기면서 스스로 만족해하고있었다.
오스트랄리아와 미국은 미챠엘 쏘마레수상의 무지막지한 독재정치에 대하여 골머리를 앓고있으면서도 해마다 원조를 계속해주었다. 오스트랄리아와 미국이 미챠엘 쏘마레독재정권에게 무상원조를 계속하여 제공해준데는 적어도 두가지 리유가 있다.
첫째는 남태평양 여러 군소국가들이 반미와 반오스트랄리아로 전향하는것을 발견했기때문이다. 그래서 미챠엘 쏘마레독재정권을 절대로 포기할수 없었으며 오히려 튼튼히 오스트랄리아와 미국편으로 묶어놓기 위함이였다.
둘째는 파푸아 뉴기니아에 액화천연가스가 무진장 매장되여있는것을 발견했기때문이다. 파푸아 뉴기니아에 천연가스개발바람이 불자 미국은 이를 독차지하기 위하여 미국의 석유업체들을 벌떼처럼 들이밀었다.
사실에 있어서 오스트랄리아와 미국은 미챠엘 쏘마레정권에게 제공해주는 원조액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파푸아 뉴기니아에서 착취와 광업을 통하여 벌어들이고있었다.
파푸아 뉴기니아민중들이 하루에 1. 25US$로 겨우 살아가고있는데 대하여 오스트랄리아와 미국은 아무 관심이 없다. 미국과 오스트랄리아의 석유재벌들은 앞으로 30년간 수천억US$의 수익을 계산하고있을뿐이다.
파푸아 뉴기니아의 막대한 천연자원이 축복일것인가, 아니면 저주가 될것인가?
분명한 사실은 오스트랄리아와 미국은 파푸아 뉴기니아에서 절대로 손을 떼지 않을것이 분명하다. 동시에 미국은 미챠엘 쏘마레수상의 독재정권을 계속 지원하고있는것이다.
하지만 2007년에 미챠엘 쏘마레독재정권과 오스트랄리아와의 관계에 있어서 기이한 마찰현상이 돌발했다. 미챠엘 쏘마레수상은 《미국과 오스트랄리아가 무상원조를 제공해주는 대가로 파푸아 뉴기니아에 대하여 지나치게 내정간섭을 한다.》라고 오히려 분통을 터뜨린것이다.
미챠엘 쏘마레수상은 오스트랄리아와의 관계에 대하여 말하기를 《오스트랄리아와 련결된 <태줄>을 끊길 원한다.》라고 놀랍고 충격적인 발언을 망발했다.
오스트랄리아는 미챠엘 쏘마레수상의 이와 같은 돌발적인 오만한 발언을 망발한데 대하여 즉각적으로 강경한 반응을 보이면서 《아멘》으로 대응을 했다.
오스트랄리아는 2007년 3월에 오스트랄리아의 브리즈번공항검색대에서 오스트랄리아를 방문하는 미챠엘 쏘마레수상에게 《신발을 벗으라.》고 요구했다. 이 사건으로 인하여 두 나라사이의 관계는 최대로 경색되였다.
파푸아 뉴기니아는 오스트랄리아에게 공식사과를 요구했다. 하지만 오스트랄리아는 일부 공무원들의 실수라고 핑게하고 공식사과요구를 묵살했다. 파푸아 뉴기니아의 미챠엘 쏘마레수상의 위상이 이와 같이 극도로 손상을 당했다.
특히 1990년대이후부터 미챠엘 쏘마레정권의 재정관리에 대한 의혹이 불거지기 시작하면서 국내와 해외에서 혼란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스트랄리아와 미국의 유일한 관심은 파푸아 뉴기니아에 대한 력사적관련성과 리해관계를 강조하면서 파푸아 뉴기니아를 독차지하는데만 주력하였다.
오스트랄리아와 미국은 식민지이후에 줄곧 생존하고있는 파푸아 뉴기니아민중들의 분노에 대하여 깊은 리해심을 가지고 폭넓게 대응해야 한다. 만일 미국과 오스트랄리아가 그렇게 대응하지 못한다면 파푸아 뉴기니아는 미국과 오스트랄리아의 원조이상의것들을 미국과 오스트랄리아가 아닌 다른 나라에서 추구하게 될는지도 모를 일이다.
국제사회의 파푸아 뉴기니아에 대한 관심이 최근에 지대하다. 미국과 오스트랄리아의 독점의 시대는 이미 지나가고있다.
중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관심이 파푸아 뉴기니아에 매장되여있는 막대한 천연액화가스를 향해 투자의 바람으로 솔솔 불어오고있는것을 부인할수는 없는것이다.
부겐빌섬의 폭동에 대하여
부겐빌섬은 파푸아 뉴기니아에 부속되여있는 600여개의 많은 섬들중에서 제일 큰 섬이다. 섬의 면적은 9 318㎢로서 타이완섬의 4분의 1정도이며 인구는 19만명으로 추산한다. 그런데 이 작은 부겐빌섬에서 세계최대규모의 동광이 발견됐다. 세계2위의 광산업체인 리오틴토(Rio Tinto)가 1973년부터 불도젤을 끌고 부겐빌섬에 상륙했다.
리오틴토는 오스트랄리아의 다국적광산업체이며 현재 런던과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되여있으며 두 회사는 일원화된 위원회에 의하여 단일경제체제로 운영되고있다.
리오틴토는 2006년에 련결회전 254억US$에 대한 순리익 102억US$를 낸 세계최대의 광산업체중의 하나다. 이와 같은 거대한 광산업체가 부겐빌섬에 들어와서 큰 굴을 뚫고 동과 금, 다이야몬드 등 기타 광물들을 채굴하면서 엄청난 환경파괴를 일으켰다.
뿐만아니라 동광채굴을 위해 광산근처에 살고있는 원주민들을 강제로 이주시키는 폭행을 저지르기까지 했다.
부겐빌원주민들의 항의는 폭발하여 광산업체의 불도젤 맨앞에서 결사적인 저항을 벌리였다. 원주민들은 벌목을 하지 못하도록 나무를 끌어안고 밤을 새웠다.
하지만 파푸아 뉴기니아중앙정부는 부겐빌원주민들의 결사적인 저항운동에 대하여 원천적으로 랭담할뿐이고 오히려 오스트랄리아의 리오틴토광산업체와 협조하여 리익배당을 취하는데만 관심을 가지고있었다.
파푸아 뉴기니아중앙정부가 리오틴토광산업체로부터 받는 리익배당은 총리익의 19%의 배당금을 받는다. 하지만 19%의 리익배당금은 전부 파푸아 뉴기니아의 중앙정부에게 지불되고 부겐빌원주민에게는 그림의 떡이 될뿐이였다.
파푸아 뉴기니아중앙정부와 리오틴토광산업체는 부겐빌민중들에게 환경의 파괴와 생활에 막대한 피해만 줄뿐이고 또한 인종차별의 뿌리깊은 원한만 안겨주고있었다.
부겐빌원주민들은 중앙정부에게 리익배당금의 일부를 돌려달라고 정당한 요구를 강력히 제안했다. 하지만 중앙정부는 부겐빌원주민들의 강력한 요구를 총칼로 대응하며 무력으로 진압하려 했다.
결국 1987년에 분노한 부겐빌원주민들의 테로가 발생했으며 테로는 결국 내전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내전은 13년동안 지속되다가 2000년 3월 23일에 량측이 부겐빌평화정착에 대하여 조인한 후에 림시로 중단되였다.
내전으로 인하여 동광산채굴이 중단되여 경제적손실이 막대했으며 량측에서 1 500명이 사망했고 4만명의 난민이 발생했다.
내전이 격화되자 파푸아 뉴기니아중앙정부는 영국이 지원하는 아프리카출신 용병 수백명을 끌어들였으나 문제가 복잡해져 얼마후에 철수시키고말았다.
내전과정에 부겐빌민중들은 부겐빌반군(BRA)을 1990년에 창설했으며 부겐빌반군은 파푸아 뉴기니아로부터의 독립을 선포하기까지 했다.
파푸아 뉴기니아중앙정부는 2 000명 군인을 급파했으며 심지어 용병을 끌어들이기까지 했다. 파푸아 뉴기니아중앙정부는 부겐빌섬을 완전히 봉쇄하여 식량과 의료품과 사람들의 왕래를 완전히 차단했다. 그리고 오스트랄리아의 적극적인 개입과 지원으로 정세를 유리하게 전개시킴으로써 본격적인 내전이 지속되였다. 뿐만아니라 미국과 영국의 배경을 가지고있는 오스트랄리아의 리오틴토광산업체도 파푸아 뉴기니아군을 뒤에서 지원해주었는데 전투용직승기, 운송차량과 연료 등을 지원해주었다고 한다.
결국 1994년에 부겐빌섬의 80%를 파푸아 뉴기니아중앙정부군이 점령하였다. 하지만 《병주고 약도 주는 유엔》은 1994년에 파푸아 뉴기니아의 부겐빌내전에 대하여 그저 못 본척 할수는 없었다. 부겐빌에서의 살해와 인권침해에 대하여 조사를 함으로써 문제의 심각함을 발견하고 량측의 평화회담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한편 1995년에 도이췰란드의 그리스도교아까데미는 세계의 사회정의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있다는 조직단체로서 유럽대표단을 파푸아 뉴기니아에 파견하여 부겐빌반군과의 협상을 통하여 평화를 회복하도록 독촉했다.
1997년 7월에는 뉴질랜드가 량편의 평화회담을 주선했다. 그리하여 량측대표와 뉴질랜드, 솔로몬, 아일랜드의 수상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른바 서명을 하기까지에 이르렀다.
그리고 량측은 1998년 4월에 《내전영구종전》에 합의하는데 공동서명을 했으며 또 2000년 3월에는 량측이 서명함으로써 부겐빌내전은 종전이 되였다.
부겐빌섬은 완전한 자주독립국을 쟁취하지는 못했지만 13년동안의 내전의 결과로 중앙정부의 헌법에 따라 부겐빌섬은 전면적인 자치권을 가지는 자치주가 되였던것이다.
2002년 3월 27일에 파푸아 뉴기니아중앙정부의 국회는 부겐빌섬을 자치주로 승격시켜 자치권을 부여하는 헌법개정안을 국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부겐빌섬은 1975년에 파푸아 뉴기니아가 독립한 후 27년만에 자치주로 승격됐다.
하지만 부겐빌섬의 민중들이 그토록 갈망하고있는 외세의 지배가 없는 독립국이 어느때 완전히 성취될지는 아직 아무도 말할수 없는 처지에 있다.
피터 오네일수상의 등장으로 새시대의 문 열리는가?
친서방독재부패정권의 마이클 쏘마레수상이 75살의 고령과 심장병의 중환자로서 16년 6개월간 집권한 수상직에서 퇴임을 하게 되였다. 그는 퇴임을 앞두고 긴급대행자로 Sam Abal을 임명하여 그에게 정권을 넘겨주기를 원했다.
하지만 2011년 8월 2일에 실시한 의회의 투표에서 Sam Abal을 물리치고 피터 오네일이 당선되여 파푸아 뉴기니아의 신임수상으로 취임했다.
피터 오네일이 수상으로 취임한데 대하여 오스트랄리아는 즉각 환영의 뜻을 발표했다. 왜냐하면 전임 마이클 쏘마레수상의 부패정권에 대하여 오스트랄리아는 골치를 앓고있었기때문이다.
오스트랄리아가 마이클 쏘마레수상의 부패에 대하여 잔소리를 하면 마이클 쏘마레수상은 오스트랄리아에 대하여 《왜 내정간섭을 하느냐?》라고 대응하고있었던것이다.
파푸아 뉴기니아는 오스트랄리아와 긴밀한 종주국과 종속국의 관계속에서 한세기를 살아왔다. 하지만 두 나라사이에는 서로 불편함을 내포하고있는 《동상이몽》의 관계와 《동문서답》의 우방국이라는 모순이 존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스트랄리아는 마이클 쏘마레의 부패한 정권에게 막대한 원조제공을 끊지 못하고 계속하여 지원을 해주고있는 실정이다.
밝혀진 기록에 의하면 오스트랄리아는 파푸아 뉴기니아에 독립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150억US$를 제공했다고 한다. 하지만 파푸아 뉴기니아는 세계에서 최빈국으로 여전히 남아있으며 학교와 병원이 전혀 없는 도시가 여전히 많이 방치되고있다.
파푸아 뉴기니아의 신임수상으로 2011년 8월에 취임한 피터 오네일수상은 1965년생이다.
그의 아버지는 Irish혈통의 후손이며 어머니는 파푸아 뉴기니아의 원주민출신이다. 피터 오네일수상은 초등학교교육과 대학교육을 모두다 파푸아 뉴기니아에서 받았다.
하지만 그는 런던, 샹강, 도꾜 등지에서 금융기관과 자본투자회사의 관리자로 다양한 직책에서 종사한 경력도 가지고있다. 국내에서도 역시 개발업체와 국가강철기술회사, 강철기업은행 등 다양한 직종에서 고위급관리업무에 종사를 했다.
그가 다양한 국가적 중요기관에서 관리급공직자로 청렴한 개인적평판을 받고있었으므로 부패로 얼룩진 파푸아 뉴기니아의 새로운 희망의 상징으로 발탁되여 신임수상으로 취임을 하게 되였다고 평가한다.
2011년 8월에 취임한 피터 오네일수상이 바로 한달후에 있은 파푸아 뉴기니아의 주요상공인회의석상에서 한 연설을 소개한다. 지면상 제한으로 연설문중에서 중요한 요점만을 간추려 소개한다.
ㄱ. 우리 나라에서 풍부한 광물과 석유자원을 발굴하게 된것으로 하여 여러분과 나는 자랑스럽다. 신임수상으로 취임한지 38일째가 되는 오늘 나는 우리 나라에서 매우 중요한 여러 상공인들에게 분명히 밝히려 하는것은 우리 나라 과거의 고질적인 부패정치를 척결하자는것이다.
ㄴ. 파푸아 뉴기니아는 독립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소수의 관료주의적정치인들의 그룹에 의하여 통치됐으며 막대한 재정이 민중들의 복지향상을 위하여 전혀 사용되지 않았고 빈부의 격차가 국가운영을 위기에 빠지게 했다.
ㄷ. 나의 행정부는 참신한 14명의 과도내각을 조직임명했으며 부총리와 재무장관, 석유에너지부의 책임장관도 새로 선출됐다. 전체 명단을 참고하기 바란다.
나의 행정부는 과거의 부패와 부정에 대하여 대대적인 조사를 하여 수억US$의 행방불명과 횡령을 반드시 밝혀낼것이다.
ㄹ. 외국투자자본유치에 대하여 과감한 개방이 요구된다. 하지만 과거에 잘못한 《일방통행》외국투자도입은 절대로 허용하지 않을것이며 반드시 주고받는 《쌍방 통행》의 외국자본유치를 확대해나아갈것이다.
우리 나라는 석유외에 금, 동, 백동 등이 풍부하게 매장되여있다. 나의 행정부는 외국자본유치에 대하여 문을 활짝 열어놓고 그 어느 나라든지 공정한 투자원칙하에서 상호 리익을 위한 투자라면 차별없이 수용할것이다.
피터 오네일 신임수상의 연설중에서 《과거의 부패부정척결》을 강조한것은 전임자 마이클 쏘마레수상에 대하여 1990년-2010년까지 기간의 의회재정보고가 허위와 거짓으로 판명되여 의회가 재조사를 요구하는 사건이 발생하고있는데 대한것을 암시하는것으로 여겨진다.
피터 오네일 신임수상이 연설에서 외국자본유치원칙을 강조한데 대하여 필자는 한가지 질문을 한다. 오네일수상이 참신한 내각 14명을 새로 임명하고 석유장관도 새로 교체했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전임 마이클 쏘마레수상정권하에서 Tienstain장관, Pruaitch장관 그리고 쏘마레수상의 아들 등 3인이 2014년을 만기해로 정해놓고 엑쏜모빌과 130억US$의 자금류통계약을 이미 맺고있는데 대하여 피터 오네일 신임수상은 이 사실을 알고있는지 또 어떻게 처리를 할것인지를 질문한다.
파푸아 뉴기니아민중들의 비참한 빈곤과 비극은 부패한 지도자들이 국가자본의 막대한 수익을 불법적으로 삼켜버림으로써 지금까지도 계속되고있는것이다.
파푸아 뉴기니아는 독립이후 36년동안 내전체제속에서 친서방친미독재정권의 깊숙한 곳까지 부패가 침투해들어가있다.
새로운 피터 오네일수상의 정권이 등장하여 만일 낡은 부패를 깨끗하게 척결하지 못한다면 외국자본의 개발수익을 또다시 그 누가 훔쳐갈지 아직은 아무도 모른다.
마이클 쏘마레의 17년간 독재정권을 물리치고 새로 등장한 피터 오네일수상정권의 새 출발에 대하여 우리모두의 기대와 관심은 지대하다.
이 글을 끝맺으며
남태평양의 아름다운 섬나라의 순박한 사람들이 자연의 경치속에서 지상락원의 삶을 살아가고있었다. 그런데 그곳에 서방의 침략자들이 마구 침입해들어와서 300년동안이나 순박한 사람들을 노예로 삼고 착취를 했다.
섬사람들이 독립을 쟁취한지 겨우 반세기도 되기 전에 이번에는 그곳에 천연가스바람이 세차게 불어닥침으로써 땅밑에서 불이 활활 타오르고있다. 그런데 그 불이 수백억US$가 되여 미국의 지배자들의 배만 불리게 하고있다는 사실을 섬사람들은 미처 알지 못했다.
엑쏜모빌은 파푸아 뉴기니아에 150억US$의 투자계획을 승인받았으며 30년후쯤에는 지금의 3배로 늘어날것을 예견하고있다고 한다.
이러한 세상 돌아가는 환경과 조건하에서 순진한 토박이원주민들은 말하기를 《정부와는 더이상 거래하고싶지 않고 차라리 엑쏜모빌과 땅소유자인 우리가 직접 협상하겠다.》라고 주장하는 요지경에 이르고있다.
지난날에 오스트랄리아와 영국이 지원해준 마이클 쏘마레정권이 그 얼마나 부패했는가를 그대로 말해주고있다. 부패라는 말을 많이 하지만 부패의 실례를 하나 직접 들어보자.
파푸아 뉴기니아의 어느 한 지방책임자에게 외국기업의 보상금으로 12만US$를 지불했다. 보상금의 조건은 경찰서건축과 지방도로포장용이였다.
하지만 이 지방책임자는 12만US$를 10명의 부인들에게 나누어주고 그들의 돼지 48마리를 샀다. 그리고 또 이 책임자는 15살 소녀를 11번째 신부로 데려오기 위하여 돼지 30마리 값을 소녀의 부모에게 지불했다.
그런데 12만US$ 사용에 대하여 정부는 일절 관여하지 않고 모든것을 불문에 붙이는것이 제도화되고있다는것이다. 마이클 쏘마레수상이 20년간 의회에 제출한 재정보고가 완전히 허위문서이며 거짓이였다는 사실을 가히 알수 있다.
2010년 3월에 힐러리 클린톤 미국무장관이 파푸아 뉴기니아를 방문하였는데 마이클 쏘마레수상이 이끄는 정부의 부패에 대하여 우려하는 발언을 했다. 그녀는 말하기를 《미국은 파푸아 뉴기니아의 부정척결과 인권향상을 위하여 도와줄 준비가 되여있다.》라고 헛소리 같은 발언만 하고 파푸아 뉴기니아를 떠나갔다.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파푸아 뉴기니아에 대하여 실낱같은 희망을 가져본다. 그것은 피터 오네일 신임수상이 집권을 시작한지 한달만에 행한 연설에서 긍정적인 발언들을 시사했기때문이다.
《오늘 나는 우리 나라의 고질적인 부패정치척결이 첫번째 과제임을 밝힌다.》, 《외국투자는 과거의 <일방통행>이 아니라 반드시 주고받는 <쌍방 통행>이 돼야 한다.》, 《나의 행정부는 외국투자의 문을 활짝 열어놓고 어느 나라든지 정직한 투자를 하는 나라들을 수용하겠다.》
피터 오네일수상이 연설에서 밝힌것은 과거에 미국에만 예속된 일방통행의 외교정책을 과감히 탈피하여 중국을 비롯한 동방외교의 문도 활짝 열것으로 예상된다. 아무튼 파푸아 뉴기니아도 이제는 렬강들의 간섭과 지배에서 벗어나 자주독립국가로서 진실로 국민을 위하여 복무하는 정부가 굳건히 세워지리라고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