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르끼예의 미래를 전망한다
미국과의 동상이몽을 넘어 반미감정으로 약진
뛰르끼예는 세계7대기적에 속하는 아르테미스신전, 노아의 방주가 묻혔다고 하는 아라라트산 등 신화와 고대유적들이 많은 나라이다. 그리고 인류문화의 발상지의 하나인 푸라트강, 디쥴라강의 발원지도 바로 뛰르끼예에 있다.
력사를 보면 고대의 그리스가 뛰르끼예를 지배했고 B.C. 6세기-B.C. 3세기에 페르샤가 뛰르끼예를 지배했으며 그후 로마, 비잔틴 그리고 오스만제국이 뛰르끼예를 지배했다.
뛰르끼예는 많은 문화적유산뿐만아니라 아름다운 자연을 갖고있는 나라로서 에게해, 지중해, 흑해 등 아름다운 바다를 끼고있고 울창한 산림지대와 호수들이 있으며 기후까지 온화하여 관광지로도 유명하다.
이러한 뛰르끼예가 유럽나라인가, 아시아나라인가에 대하여 확실한 대답을 하기는 매우 애매하다.
령토의 서북쪽을 로씨야 등 유럽국가들과 접경하고있는것을 보면 유럽나라라고 할수 있지만 뛰르끼예는 대부분의 령토와 대다수의 인구가 동남쪽에 있고 수도 앙까라도 아시아쪽에 있다.
뛰르끼예의 최대도시인 이스딴불이 본래 유럽쪽에 있기는 하지만 지금은 해협을 사이에 두고 동쪽으로 신도시가 크게 발달되여 도시자체가 유럽과 아시아에 위치하고있다.
이러한 특성을 가지고있는 뛰르끼예는 1923년에 공화국이 선이래 줄곧 유럽동맹(EU)의 회원국이 되려고 무척 애쓰고있다.
그래서 뛰르끼예가 너무 성급하게 유럽식으로 변화되여 뛰르끼예의 고유한 정체성을 손상시키는것이 아닌가 하고 자아비판의 소리가 크게 들려오고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서방주의적인 군부세력들은 뛰르끼예가 유럽동맹에 가입하는것과 친서방로선을 선택하는 길만이 오직 뛰르끼예의 유일한 희망이라고 주장하고있다.
그러나 유럽은 뛰르끼예가 단독으로 머리를 숙이고 유럽동맹의 회원국이 되는것을 반대하며 받아들이지 않고있다. 유럽은 뛰르끼예가 단독으로 유럽동맹에 가입하는것보다는 이슬람권전체가 머리숙이고 유럽의 그리스도교권에 편입되는것을 요구하고있다.
한편 1952년에 군사적목적으로 뛰르끼예를 북대서양조약기구 (NATO)의 성원국으로 서둘러 가입시킨 미국은 뛰르끼예의 유럽공동체가입문제를 이중자대로 저울질하고있다.
1923년에 급진적인 친서방국가로 독립을 한 뛰르끼예에서는 그후 여러차례의 정권교체와 쿠데타가 일어났다.
그때마다 미국은 친미군부세력이 여전히 권력을 행사할수 있도록 막뒤에서 막강한 힘으로 지원해주었다. 때문에 뛰르끼예에서 정부수반들이 여러차례 교체되였지만 친미군부의 상층부가 완전히 탈바꿈한적은 거의 없다.
하지만 줄기찬 뛰르끼예민중의 항쟁은 친미군부세력의 독재를 허용하지 않았다. 뛰르끼예는 전통적인 이슬람교의 나라이다. 뿐만아니라 전세계의 아랍권에서는 뛰르끼예의 군부세력을 미국의 원조를 집어삼키면서 살찌고있는 《얄미운 고양이》로, 《더러운 박쥐》로 여기고있다.
그런가 하면 2008년초에 뛰르끼예에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놀라운 결과가 나타났다.
뛰르끼예인 83%가 미국을 증오하는것으로 나타난것이다. 이것은 8년전의 조사보다 뛰르끼예인들의 반미정서가 20%나 증가하였다는것을 보여주었다.
뛰르끼예인들의 반미정서의 원인은 첫째가 이라크전이며, 둘째는 이슬람교에 대한 문화적침해이고, 세번째는 미국인들의 오만과 위선이였다.
친서방군부와 대결하는 이슬람민족주의
오스만제국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전국이 되였다. 패전한 오스만제국은 1920년에 협상국과 쎄브르강화조약을 맺고 그동안 침략으로 차지한 모든 령토들을 포기해야 할 운명에 처하게 되였다. 1922년-1923년에 오스만정권은 협상국과 체결한 로잔조약에 따라 오늘의 뛰르끼예공화국령토를 확정받았다.
1923년 10월에 오스만제국은 공식 해체되고 케말 파샤가 뛰르끼예공화국의 초대대통령으로 선출되였다.
1924년에 케말대통령은 뛰르끼예의 수도를 앙까라로 정하여 과거 비잔틴과 오스만에 대한 향수를 깨끗이 청산하고 새로운 뛰르끼예공화국을 건설하는데 관심을 집중하도록 했다.
케말대통령은 뛰르끼예공화국을 현대적으로 건설한 《건국의 아버지》로 추앙받고있다. 그는 1923년부터 1938년까지 15년동안 집권했는데 그동안에 오스만 600여년력사의 어두운 그림자들을 깨끗이 지워버리고 새로운 개혁을 주장했다.
그 개혁은 7가지로 요약된다.
그것을 내용별로 보면 다음과 같다.
어려운 아랍문자를 페지하고 로마문자를 도입하여 뛰르끼예 알파베트를 만들고 수자도 라틴글자를 도입했다.
이전까지 뛰르끼예인은 성씨가 없었는데 모든 사람들이 다 자기의 성씨를 가지도록 했다.
일부다처제를 법으로 페지하여 녀성에게도 리혼의 권리를 부여했다.
종교법을 개정하여 국교제도를 페지하고 모든 종교의 자유를 선포했다.
전국에 도로망을 새로 건설했다.
달력을 양력으로 통일하여 현대화를 강조했다.
m(메터)법을 사용하도록 법으로 정했다.
녀성의 참정권을 허용하고 녀성들에게 강제적으로 머리에 스카프를 쓰도록 하는 제도를 페지했다.
하지만 케말대통령의 사회개혁에 대한 반영은 찬반으로 엇갈리고있었다.
이를테면 페쇄된 사회를 개방하여 개인의 자유를 허용한것과 낡은 문화의 옷을 새로운 문화의 옷으로 갈아입게 한것 등은 케말대통령의 공적으로 찬양하지만 케말대통령의 개혁은 력사적인 안목으로 볼때 많은 문제점이 있다고 지적하고있다.
케말대통령의 개혁에 대한 비판의 소리는 다음과 같다.
케말대통령의 개혁은 뛰르끼예를 서유럽문화에 종속된 나라로 만들려는가 하는 위구심을 일으킨다.
케말대통령의 개혁은 《민족주의사상》에 바탕을 두지 않고 무조건 서유럽문명을 따르도록 함으로써 부작용을 일으켰다.
사회개혁운동은 사회의 기반이며 기본인 민중과 함께 민중을 위하여, 민중에 의하여서만 반드시 추진되고 진행되여야 한다. 하지만 케말대통령의 개혁운동은 오직 군부와 사회엘리뜨들을 중심으로 하여 진행됨으로써 민중은 오히려 개혁으로부터 소외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개혁으로 인한 혜택은 친미적군부에게 돌아갔으며 기득권자들에게 더 큰 리득을 안겨주었다.
서유럽문명화를 목표로 한 무방비적개혁운동은 서유럽세력이 마음놓고 침입해들어오도록 하는 위험성이 내포되여있다.
그런데 군부가 민중을 마구 무시하고 깔보면서 열성적으로 개혁을 지지하는 리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미국이 의도하고있는 각본에 지나지 않는다.
미국은 뛰르끼예의 친미군부세력에 뛰르끼예의 주권을 사실상 의탁했기때문이다.
케말대통령의 개혁에 대한 찬반론의는 대체로 이러하다.
그러면 케말대통령이 1938년에 사망한 후에 뛰르끼예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어디로 가고있는가?
뛰르끼예군부는 시종 친서방, 친미주의로선을 추구하면서 민중을 위한 정권이 등장하기만 하면 계엄령을 선포하든가 아니면 직접 쿠데타를 일으켜 민주화정권을 짓누르고 군부가 주동하는 정권을 세워왔다.
례를 들어 뛰르끼예군부의 행태를 알아보자.
2007년 8월 28일 민중의 지지를 받고있는 대통령후보자 압둘라 굴이 3차투표에서 대통령으로 당선되였다. 뛰르끼예민중은 오래전부터 친미적군부정권을 적대시하고있었다.
그런데 민선대통령인 압둘라 굴대통령의 취임식이 진행되는 날 군부는 이에 참가하기를 거부하고 보이코트하였다.
그러나 정부는 군부의 막가판식행패에 대하여 속수무책이다.
미국과 뛰르끼예군부사이에서는 미묘한 불협화음의 소리가 들려오고있다.
원래 뛰르끼예군부는 미국의 요청에 의하여 85억US$를 받고 1만명의 군대를 이라크에 파병할것을 결정하고 공식발표까지 하였으나 민중의 거센 반대에 부딪쳐 다음날 전격 취소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런데 1만명 군인을 파병하여 미국을 지원해주기로 했던 뛰르끼예군부가 이를 취소함으로써 서로 상당한 마찰이 있었다. 더우기 쿠르드족처리문제로 하여 미국과 뛰르끼예군부와의 불편한 관계는 정면충돌을 할 가능성도 보였다.
뛰르끼예에서 민중의 항쟁은 계속 일어났지만 미국이 지원하는 군부로 인하여 오래동안 민중은 수난을 당하여왔다.
2007년 8월에 친이슬람성향의 대통령이 취임한데 대하여 군부는 대통령취임식참가를 거부할뿐만아니라 사사건건 시비를 걸었다.
하지만 군부가 이를 막지 못하고 친이슬람계의 대통령이 취임한것은 뛰르끼예의 력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이러한 사태발전을 두고 뛰르끼예군부의 부유카니트참모총장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국가의 체제를 좀먹으려는〈악의 중심〉이 등장했다.》
새로 출현한 정권을 또다시 눌러보려는 심산이 담긴 발언이였다.
그러나 서방언론들까지도 이구동성으로 다음과 같은 론평을 하고있다.
《압둘라 굴대통령을 지지하는 민중의 힘과 그의 경제발전정책에 대한 국민의 지원이 강하게 있는것만큼 군부가 아무리 방해를 해도 군부가 정치에 개입하기에는 이제는 쉽지 않아보인다.》
오늘 뛰르끼예는 빈부의 격차가 날이 갈수록 더욱더 심해지고있으며 소시민들은 큰 빚더미속에 살아가고있다. 지속적으로 뛰르끼예에 침투하는 외국자본은 이 나라의 미래를 더욱더 위기로 몰아넣고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뛰르끼예군부세력은 이미 한물간 미국식신자유주의전도사를 자임하고있다.
그렇지만 뛰르끼예의 진보성향의 정당과 정치세력들의 출현은 이제는 부인할수 없는 현실로 나타나고있으며 이런 현상은 세계적관심으로 떠오르고있다.
압둘라 굴대통령의 승리가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