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사우디 아라비아동맹은 어디로

 

9. 11사건이 있은 후 사우디 아라비아왕실이 그 관련자들에게 자금을 지원했다는 주장이 제기되여 미국과 사우디 아라비아사이에 미묘한 신경전이 전개되였다.

뉴스위크인터네트판에 의하면 주미 사우디 아라비아대사 술탄왕자의 부인인 파이잘왕자비의 은행계좌의 돈이 9. 11사건당시 미국방부에 타격을 가한 려객기랍치범 2명에게 간접전달됐다는것이였다.

그러면서 보고서는 미련방수사국과 미중앙정보국이 테로범들과 사우디 아라비아왕실과의 련계가능성을 집중적으로 조사하지 않은데 대하여 지적했다.

한편 미하원의회의 합동위원회의 조사보고서에 의하면 9. 11사건 관련자 19명중의 15명이 사우디 아라비아출신인것으로 나타났는데 이것은 사우디 아라비아사람들의 반미감정을 반영한것이라고도 볼수 있다.

9. 11사건발생후 2년만인 2003년 8월 2일 미의회는 《9. 11조사보고서》라는것을 발표하였는데 보고서의 28페지분량에 달하는 부분이 극비문서로 구분되여 아무도 그 내용을 알수 없었다. 리유는 대통령만이 볼수 있는 극비에 속하는 사건의 내용이 그속에 들어있다는것이다.

이 28페지 극비문건속에는 《이스라엘이 9. 11사건을 사전에 알고있었다.》는것을 보여주는 내용이 들어있다고 한다. 여기에서는 쌍둥이건물붕괴로 인하여 수천명이상이 죽었는데도 이스라엘인속에서는 단 한사람의 사망자도 없는 리유를 잘 설명해주고있다고 한다.

극비문건은 또한 당시 미국대통령이였던 부쉬가 9. 11사건을 사전에 미리 알고있었다는것도 분명히 말해주고있다고 한다.

9. 11사건후 미련방수사국은 사건관계자들이 비행기조종기술훈련을 미국에서 받는데 직접 관련된 인물로 알려진 오마 알 베요우미를 체포하였지만 사우디 아라비아외무장관과 미국무장관과의 비밀협약이 있은지 얼마 안 있어 그를 석방하여 사우디 아라비아로 무사히 귀국하도록 했다.

뿐만아니라 9. 11사건의 주모자로 알려진 오사마 빈 라덴의 직계 가족식구들이 사건당시 미국에 체류하고있었는데 그들은 사건발생 3~4일후에 미련방수사국이 제공하는 비행기로 유유히 미국을 떠나 유럽으로 무사히 피신을 했다.

우에서 언급한 내용들은 9. 11사건이 우연히 어느 한 테로집단에 의하여 단독적으로 일어난 사건이 결코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말해주고있다.

9. 11사건은 분명히 미국과 사우디 아라비아왕정 그리고 이스라엘 세 나라가 사전에 치밀하게 상호 깊숙이 모의했고 서로 관련된 국제적음모사건이였던것이 분명하다.

필자가 이 글을 쓰고있는 날은 2010년 5월 18일이다.

지금으로부터 30년전 5월 18일에 그 비극적인 5. 18광주학살사건이 발생했다. 우리는 5. 18의 원흉을 오직 전두환으로만 알고있었다. 하지만 30년이 지난 오늘에 있어서 《한국》민중은 전두환의 배후에서 치밀하게 계획하고 후원해준 막강한 세력이 《한국》군부가 아니라 미국이였다는 사실을 알고있다.

오늘 미국은 《천안》호사건도 저들이 원하는대로 몰아가려는것이 분명하다. 미국은 이 사건의 진상을 강권으로 무마시키고있을뿐아니라 결국 북에 책임을 전가시키기 위해 리명박《정권》을 로골적으로 조종하고있다.

그리고 미국은 6자회담과정도 미국이 원하는 방향으로 전개하려고 일정표를 정해놓고 남북관계를 파국으로 몰아가고있다.

이와 같은 시점에서 미국이 방대한 량의 석유가 매장되여있는 아라비아반도에서 어떠한 음모를 꾸미여오고있는가를 사우디 아라비아 왕국을 비롯하여 아라비아반도에 위치하고있는 여러 나라들의 실정을 통하여 살펴보려고 한다.

 

아라비아반도의 간추린 고대력사

 

아라비아반도에는 사우디 아라비아왕국을 비롯하여 이라크, 요르단, 쿠웨이트, 오만, 까타르, 아랍추장국련방 그리고 예멘공화국 등 여러 아랍나라들이 있다.

아라비아반도전체의 크기는 약 300만㎢이고 사우디 아라비아왕국의 면적은 아라비아반도의 4분의 3정도인 214만 9 690㎢이며 인구는 2 572만여명이다.

B.C. 9세기무렵부터 아라비아반도에서는 많은 나라들이 흥망성쇠를 기록하며 존재하고있었는데 그중에서 사바왕국이 기원전후 수백년동안에 걸쳐 북부지방에서 메소포타미아문명을 받아 전성기를 이루었고 고도의 농업사회를 발전시켰다.

A.D. 4세기무렵에는 힘야르왕국이 등장하여 강대해지면서 사우디 아라비아의 북부와 남쪽전역에서 락타를 사육하는 유목민의 전통을 세우고 《황야의 백성》이라는 뜻으로 《아랍인》으로 불리워지게 되였다.

A.D. 5~6세기무렵 100년동안을 나바테아왕국과 팔미라왕국의 시대, 자힐리아시대라고도 한다.

당시 메카는 상업도시로 한때 번창하였으며 우상을 숭배하는 카바신전에 많은 순례자들이 몰려드는 화려한 도시이기도 했다.

사우디 아라비아에 유태교와 그리스도교가 1세기부터 전파되기는 했지만 당시 아랍세계를 지배하고있던 부족의 종교가 우세하여 외래종교가 정착되지 못했다.

 

사우디 아라비아왕실과 미국

 

오스만제국이 붕괴된 후에 뛰르끼예에서 케말의 주도하에 뛰르끼예공화국이 설립된것처럼 사우디 아라비아반도에서도 1926년 1월 이븐 사우드가 여러 부족들을 평정하여 사우디 아라비아에 단일왕국을 세웠다.

최초로 통일된 군주제국가였던 이 왕국의 명칭은 1932년 9월에 오늘의 사우디 아라비아왕국으로 공식 개칭되였다.

1926년에 세워진 사우디 아라비아왕국은 오늘에 이르는 기간 6명의 왕들이 집권했고 2005년에 제6대의 압둘라국왕이 즉위하여 현재에 이르고있다.

그동안 5명의 국왕들의 재임기간은 평균 14년으로 나타났다.

사우디 아라비아국왕들의 재임기간이 이렇게 짧다는것은 사우디 아라비아왕실이 정상적으로 평온하지 못했다는것을 말해주고있다.

사우디 아라비아왕실의 문제점을 대략 적어보면 이러하다.

ㄱ. 사우디 아라비아왕국을 처음 세운 아지즈왕은 왕비가 17명 있었으며 생전에 80명의 왕세자와 딸들을 보았다. 물론 이 80명 왕세자들은 17명의 왕비에게서 낳은 이복형제들이였다.

제2대 사우드왕, 제3대 라이잘왕, 제4대 칼리드왕, 제5대 파드왕들이 모두다 하나같이 10여명이상의 왕비와 결혼을 했으며 수십명의 왕자들과 딸들을 낳았다.

2005년에 즉위하여 현재 제6대왕으로 재임하고있는 압둘라왕은 왕비 30명과 결혼하여 15명의 왕세자와 20명의 딸들을 낳았다.

그러니 사우디 아라비아에 3만명의 왕족과 6 000명의 왕세자들이 있다고 하는 말은 결코 과장된 말이 아니다.

사우디 아라비아는 초창기부터 왕자들의 집단통치제도를 정착시켰다.

그동안 2명의 국왕이 이복동생 또는 조카에 의해 암살당했다. 후임문제를 놓고 왕자들사이에 암투와 쿠데타가 왕실내부에서 계속 일어나고있다.

사실 사우디 아라비아왕가는 수다한 왕비들이 낳은 제각기 다른 이복형제들이 통치하는 방대한 권력의 집단이라고 말할수 있다.

사우디 아라비아정부의 조직은 100% 왕자들로 구성된 왕권정부이다. 국방장관, 내무장관, 재무장관 그리고 외무장관을 비롯하여 모든 정부의 요직을 왕세자들이 독차지하고있다.

ㄴ. 1938년에 사우디 아라비아왕실은 미국에 석유생산권을 무상으로 허락했다. 이때부터 사우디 아라비아는 미국의 가까운 동맹국으로서의 대접을 받기 시작했다.

하나의 실례로 레간의 뒤를 이어 집권했던 부쉬는 사우디 아라비아왕을 대통령별장에 초청하고는 《당신은 우리의 사촌형제이다.》라고 하면서 극력 추어주었다. 그런데 미국의 력대 대통령들은 지금도 그러한 매수방법을 여전히 계속 사용하고있다.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생산되는 석유의 60%를 미국과 영국의 석유재벌들이 소유하고있으며 40%는 3만명이 넘는 왕족과 6 000명의 왕자들을 비롯하여 특권층이 독점하고있다.

사우디 아라비아의 일반서민층국민들이 얻는 소득은 최하이며 실업자와 빈민의 수는 최고에 이르고있다. 이로 인하여 사우디 아라비아민중들의 반왕정, 반미감정은 날이 갈수록 치솟고있다.

사우디 아라비아왕정은 이 문제를 처리하고 잠재우기 위하여 다음의 두가지 방법을 리용하고있다.

첫째로, 잘 훈련된 3만 5 000명의 국가경비대를 왕자들이 통솔하고 지휘하면서 왕실과 왕정을 보호하고있다. 한편 미국과 영국은 최신무기를 사우디 아라비아왕정에 판매하고있다.

둘째로, 사우디 아라비아왕국은 이슬람종교국가이기때문에 코란의 지배이데올로기를 강화하여 우매한 민중들의 종교적복종심이 일상생활속에서 나타나도록 세뇌공작정치로 민중을 통치하고있다.

ㄷ. 미국은 사우디 아라비아 딜레마에 빠져있다.

미국은 다른 나라에 대하여서는 입버릇처럼 부르짖고있는 《민주화》를 사우디 아라비아에서는 《미국은 내정간섭을 하지 않는다.》라는 구실로 사우디 아라비아왕정의 독재를 묵인하고있을뿐아니라 오히려 뒤에서 왕정을 유지하도록 지원해주고있다.

미국은 사우디 아라비아의 민중들이 당하고있는 비극을 그저 못 본체 하면서 저들의 석유에 대한 리권을 위해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헤여나올수 없는 딜레마에 빠져있다.

ㄹ. 왕족들의 호화로운 생활에 탕진되는 막대한 석유돈은 가난한 민중들에게 그림의 떡일뿐이다.

전세계의 석유매장량의 24%를 사우디 아라비아가 차지하고있지만 사우디 아라비아민중들은 문맹과 질병, 기아에 대대손손 시달리고있다.

오늘 사우디 아라비아왕정은 민중들에게는 《와하비원리주의》를 주장하면서 근본주의적인 엄격한 종교생활을 강요하고있다.

그런데 사우디 아라비아정권을 독차지하고있는 왕족들은 제멋대로 생활하면서 오직 말로만 옛날의 이슬람전통인 《와하비원리주의》를 고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있다.

만일 사우디 아라비아왕정이 《와하비원리주의》를 사우디 아라비아민중들에게 강요한다면 왕정은 우선 사우디 아라비아왕실에서부터 반서유럽적이며, 반자본주의적이며 또 반미적인 정치로선을 분명히 밝혀야 할것이 아닌가?

하지만 사우디 아라비아왕정은 전혀 그렇게 하지 않았으며 미국이 이라크를 침략할 때 사우디 아라비아땅을 군사기지로 사용하는것을 허락했다. 이것은 분명히 이슬람종교의 원리를 어기는 처사이며 《와하비원리주의》를 배반하는 처사였다.

오사마 빈 라덴은 사우디 아라비아왕가의 많은 왕자들중의 하나이다. 그러한 오사마 빈 라덴이 사우디 아라비아왕정에 대하여 반기를 들고 궐기한것은 미국에 리용당하며 끌려가고있는 사우디 아라비아를 악마 미국으로부터 구출해내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사우디 아라비아왕정이 《와하비원리주의》를 민중들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하여 고통을 주면서 왕실내부에서는 극도로 부패타락하여 권력쟁탈전으로 국력을 소모하는데 대하여 분개했던것이다.

《와하비원리주의》이데올로기를 리용하여 보수주의왕정을 유지하고있는 사우디 아라비아왕정은 1991년 제1차 페르샤만전쟁부터 지금까지 미군에 협조하면서 군사기지사용을 허용하고있다.

이로 인하여 사우디 아라비아왕정은 이슬람성직자들의 반발을 사고있으며 드디여 오사마 빈 라덴이 주도하는 알 카에다항전에 직면하였다.

뿐만아니라 빈곤층의 왕정에 대한 적개심과 반발도 날로 심화되고있다.

왕정내부에서도 왕세자들이 강경파와 온건파로 팽팽히 대립되여 권력다툼을 일삼고있다.

사우디 아라비아왕정은 내부적갈등뿐아니라 미국과의 관계 그리고 이웃아랍나라들과의 관계에서도 극히 어려운 문제에 직면하고있다.

그 주요한 문제들을 지적하면 다음과 같다.

ㄱ. 지금까지 왕정유지는 미국의 힘때문이였다. 하지만 이제는 왕권보호를 위하여 민중의 감정을 의식하여 비록 수사학적의미일뿐이기는 하지만 사우디 아라비아왕정이 《반미적발언》을 할수밖에 없는 처지에 있다.

동시에 미중앙정보국도 속에 없는 소리이기는 하지만 사우디 아라비아왕정의 교체설을 자주 내놓고있다. 미국이 국제회의석상에서 중동의 《민주화구상》을 가끔 언급할 때마다 사우디 아라비아왕정은 이에 신경을 곤두세우고있다.

ㄴ. 하지만 사우디 아라비아왕정은 현상유지를 하면서 친미로선의 큰 틀을 유지할 전망이다.

ㄷ. 미국 또한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민중들의 이슬람원리주의혁명보다는 왕실의 현상유지를 더 원하고있다.

ㄹ. 이란과 수리아는 시아파국가이고 반면에 사우디 아라비아는 순니파국가이다. 《시아》와 《순니》 량종파의 진영은 서로 대립되여 만지역에서의 헤게모니쟁탈전을 벌리고있다.

만일 사우디 아라비아왕실내부에서 과격개혁파가 승리한다면 그때는 이란, 수리아, 사우디 아라비아 세 나라가 모두 함께 뭉쳐서 시아파, 순니파의 구별없이 모두 단합하여 반미전선을 구축하게 될것이 분명하다. 이때 미국은 당황하게 될것이다.

지금도 사우디 아라비아왕정을 반대하는 순니파테로조직이 매월 이라크를 비롯한 아랍국가들로 밀입국하여 반미행동을 벌리고있다. 그래서 미국은 사우디 아라비아왕정에 테로를 수출한다고 맹비난을 퍼붓고있다.

그리고보면 사우디 아라비아는 미국의 대테로전쟁을 협력해주는 한편 또 다른 한편으로는 반미테로를 수출하고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여하튼 지난 60여년간 지속된 미국과 사우디 아라비아의 동맹관계는 점차 균렬이 가고있는것만은 분명하다.

이 균렬이 언젠가는 미국과 사우디 아라비아의 친미동맹관계의 전면파탄으로 이어질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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