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멘사태가 우리 민족에게 주는 교훈

 

예멘은 아라비아반도 서남단에 위치한 나라로서 총면적이 조선반도의 약 2. 4배 되지만 국토의 대부분이 사막지대이고 서쪽해안지역에 농경지가 있다. 지하자원으로는 석유, 대리석, 금과 납 등이 있다. 인구는 2 400만명이며 절대다수가 이슬람교를 믿는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솔로몬왕에게 사바의 녀왕이 희귀하고 값진 선물을 가져왔던 왕국이 바로 예멘이였다고 고고학자들은 말한다.

옛날의 예멘은 《홍해의 흑진주》로 불리우는 보물의 나라였지만 식민주의자들의 오랜 통치로 인하여 오늘 아랍권에서 가장 락후한 나라로, 세계에서 최빈국중의 하나로 되고있다.

뿐만아니라 예멘은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나라들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국제무기조사기관의 발표에 의하면 예멘 전체 국민이 소유하고있는 총기의 수는 1 700만정으로 성인 1인당 평균 3정의 총기를 보유하고있다고 한다.

최근 4년간의 통계에 의하더라도 2만 3 000건의 총기사용으로 인한 사고가 발생했다. 이 작은 나라에서 하루 평균 16건의 총기사고가 매일 발생하고있는것이다.

 

예멘의 간추린 력사

 

예멘은 3 000년이상 된 고대의 풍부하고 긴 력사를 자랑하는 나라이다. 전설에 의하면 예멘의 선조는 구약성경에 나오는 노아의 아들 셈의 후손인 욕단의 후손들로서 부족왕국을 이루고 비옥한 계곡들사이에서 오랜 세월 살았다고 한다.

B.C. 12세기부터 A.D. 6세기에 이르기까지 미나왕국과 사바왕국이 예멘을 통치했는데 에짚트, 그리스, 로마와 향료 등을 거래하는 무역국으로서 풍부한 농업적부를 누리고있었다.

특히 사바녀왕이 솔로몬을 방문하여 향료와 보석을 선물하고 지혜를 배웠다는 옛 력사이야기는 오래동안 전해지고있다.

사바왕국이후에 여러 왕조시대를 거쳐오다가 약 7세기에 이르러서 예멘은 이슬람시대에 들어서게 되였다.

이슬람 순니파는 예멘의 남부평야지대를 통치했고 시아파계의 자이드파는 예멘의 북부고원지대에 자리를 잡고 통치했다. 그러다가 9세기에 이르러 북부의 자이드파의 이맘이 라지드왕조를 세우고 예멘의 전지역을 통치했다.

그러던 예멘은 오스만제국에 의하여 두차례 걸쳐 정복되였으며 1839년에 영국에 의하여 남부지역을 강점당하게 되였다.

이때부터 예멘의 분단력사가 시작되였으며 영국은 예멘을 남과 북으로 분리시킨 장본인이 되였다.

영국이 예멘의 남부지역을 강점한 사건이 예멘이 남과 북으로 분단되는 비극적력사의 시발점이 되였던것처럼 조선반도분단의 비극적력사는 바로 1945년에 미국에 의하여 조선반도에 38˚선이 그어진 사건과 꼭같은 맥락에서 발생했다.

 

북예멘의 독립운동

 

북예멘을 지배하던 오스만제국은 제1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이 되여 1918년에 예멘에서 완전히 철수했다.

오스만제국이 철수함으로 인하여 북예멘은 옛날 이맘왕정으로 복귀하였으며 이슬람의 신정정치가 다시 부활되여 혼합정치제도가 실시되게 되였다.

하지만 남예멘은 여전히 영국의 지배를 받고있었다.

북예멘에 세워진 이맘이슬람왕정의 정치적행로는 결코 순탄하지 못했고 항상 위기에 봉착해있었다.

그 리유는 예멘이 남과 북으로 분단된데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구시대적이슬람왕정에 대한 반발로 생겨난 왕당파와 개혁파사이의 대결이 기본이였다. 이와 함께 개혁을 원하는 시대적요구도 날로 커갔다.

이러한 가운데 1962년 9월 북예멘에서는 륙군장교 살레흐중령이 주도하는 군부쿠데타가 발생하여 예멘아랍공화국이 출현하였다.

새로 출현한 예멘아랍공화국 역시 정치행정이 결코 순탄치 못하여 16년동안에 4명의 대통령이 등장했고 쿠데타 혹은 암살사건들이 계속 일어났다. 이전에 있은 쿠데타의 주동자로서 대통령이 된 살레흐중령자신도 두번이나 암살될번 했으나 요행 살아났다.

이렇게 혼란속에서 생겨났고 복잡한 정치적행로를 밟아온 예멘아랍공화국은 두말할 필요없이 친미보수적인 군부정권이였으며 미국의 조종과 간섭밑에 나라를 통치하였다.

그런가 하면 서방세력은 예멘의 분단에 대하여 병주고 약준다는 옛 격언대로 저들의 침략적정체를 그대로 드러내였다.

 

남예멘의 독립운동과 예멘의 통일

 

1839년부터 128년동안 영국의 식민지통치를 받고있던 남예멘에서도 독립운동이 싹트기 시작했다.

하여 남예멘은 1967년 11월에 독립을 달성하였으며 1970년에는 예멘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선포되게 되였다.

예멘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미국과 외교관계를 끊는 한편 사회주의나라들과의 련계를 맺었으며 사회주의를 지향해나갔다.

이렇게 되여 예멘의 북과 남에는 서로 다른 성격을 띤 두 제도가 존재하게 되였다.

그러던 1990년 5월 22일 남예멘과 북예멘의 두 제도가 하나로 통합되는 극적인 일이 벌어졌다.

통합된 예멘공화국은 북쪽에 있는 사나를 사나행정수도로, 아덴을 아덴경제수도로 명명하였으며 대통령으로는 북예멘의 살레흐대통령이, 부대통령으로는 남예멘의 알 베이드 사회당 서기장이 취임했다.

이와 같은 전격적인 예멘의 제도적통합에 대하여 세계의 정치평론가들은 극히 부정적인 시각으로 분석하였다.

왜냐하면 예멘의 전격적인 제도적통합이 불안정한 통합이였기때문이다.

분단된 나라의 통합은 각기 그 지역의 전통과 특수성이 다르기때문에 통합의 방정식은 없지만 일반적으로 민족화해와 협력정신에 의한 민족통일, 외세의 간섭과 지배가 배제된 자주적통일, 경제적상부상조원칙에 립각한 자립경제의 통일이 되여야 그 통합이나 통일이 어느 정도 공고해질수가 있었는데 예멘의 경우는 그렇게 진행되지 못한것으로 평가되고있다.

그런 면에서 예멘의 통합은 졸속으로 이루어졌던것이다.

단순히 급박한 경제문제해결과 석유자원개발의 시급함때문에 급조된 상태에서 통합이 이루어졌기때문에 그 후유증을 안게 되였다. 뿐만아니라 북예멘에서는 이전 쏘련을 비롯한 동유럽권의 붕괴를 리유삼아 강자의 론리를 적용하여 무조건 밀어붙이기식으로 통합을 강행했다. 또 남예멘에서는 급변하고있는 국제정세속에서 통합을 피동적으로 진행했던것으로 분석되고있다.

남예멘에서 석유가 처음 발견된것은 1982년이였다.

그후 네곳에서 많은 석유매장량이 또 발견되였다. 이렇게 발견된 남부예멘의 석유매장량은 북부예멘보다 3배나 더 많았다. 하지만 예멘은 남과 북으로 분단된 조건으로 하여 다른 아랍석유보유국에 비하여 석유개발능력이 매우 뒤떨어져있었다.

그래서 북부예멘과 남부예멘은 통합된 정부가 속히 들어서기만 하면 예멘의 석유산업개발이 촉진되여 국가경제가 발전될것이라는데만 신경썼을뿐 통합을 위해서 어떤 점들이 보완되여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량측모두가 소홀히 여기였던것으로 평가된다.

결국 량측 통합을 위한 기본적원칙이 그 통합을 뒤받침해주지 못하였기때문에 그 후유증은 또 다른 국면을 잉태하게 되였다.

 

오늘 예멘공화국은 어디로 가는가

 

1990년 5월 22일에 제도적통합을 이루었던 예멘공화국은 그후 또다시 붕괴되는 상황에 빠져 전면적내전이 일어났다.

외세에 대한 량측의 서로 다른 립장과 자세, 민족정서에 대한 차이점, 계층간, 지역간의 갈등문제 그리고 경제적불균형으로 인한 문제들이 붕괴의 요인들로 작용하였다고 본다. 외세에 의한 강자의 론리로 밀어붙이기식으로 이루어진 통합은 붕괴될수밖에 없었던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방언론들은 예멘통합후에 살레흐대통령의 정치적립지가 공고해졌고 미국의 《지원》으로 장기집권체제의 기반이 조성되였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미국의 이른바 지원은 친미정권을 유지하는데 소모되였을뿐 예멘의 일반국민들에게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실지 예멘에서는 서방언론들의 일방적보도와는 다른 양상들만 일어나고있었다. 남북갈등은 심화되기만 했고 민중들의 항거는 매일과 같이 일어났으며 이에 대한 군경의 무차별적탄압으로 정세는 그야말로 악순환속에 빠져들었다.

어찌나 예멘내부의 정세가 혼잡스러운지 최근에는 미국을 포함한 서방언론들까지도 《예멘 3개의 내전화약고, 미국의 선전포고로 악화일로》와 같은 기사를 낼 정도이다.

그러면서 서방언론들은 《미국이 예멘을 상대로 대대적인 대테로전을 확산시킬 조짐이 보인다.》고 보도했으며 미국당국은 그들대로 이러한 조짐에 대하여 미국의 개입이 오히려 예멘에서 알 카에다의 힘만 키운다고 우려하는 목소리를 내면서 《미국은 지금 예멘에서 실제로 3개의 전쟁을 치르고있는데 북서부에서는 시아파반군과 남부에서는 부닐운동세력이 살레흐정부군과 싸우고있고 그 틈을 타 동부에서는 알 카에다가 기승을 부리면서 정세를 확장하고있다.》고 비명을 지르고있다.

부쉬미행정부가 예멘에서 일으킨 대테로전쟁은 오바마정부가 들어서면서 더욱 장기화되고있다. 그런데 이 전쟁이 장기화될수록 알 카에다의 힘을 키워주는 결과만을 낳을뿐이다.

지금 미국은 《이라크는 어제의 전쟁이였고 아프가니스탄은 오늘의 전쟁이라면, 예멘은 바로 래일의 전쟁이 될것이다.》라고 하면서 예멘에 대한 공습과 포격을 걸핏하면 감행하고있다.

그 하나의 실례로 미국이 2009년 12월 17일에 예멘의 아비안주 마잘라마을에 대한 공습을 감행한것을 들수 있는데 이 공습으로 인하여 녀성들과 어린이들을 포함한 수십명의 민간인이 살해되였다.

이렇게 예멘은 1990년에 통합한지 불과 몇년만에 붕괴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 남북간 대립이 위험수위를 넘어 내란과 전쟁으로 치닫고있다.

 

그 리유와 원인은 무엇일가?

 

량심적인 국제평론가들은 《제국주의와 신자유주의가 오늘 예멘을 이렇게 만들었다.》고 지적하지만 보다는 예멘통합에 림하는 예멘지도자들과 예멘국민들의 립장과 자세와 관련된다고 생각한다.

예멘사태를 고찰할 때 우리 민족의 통일도 그 원칙들과 방도가 확고하고 명확해야 한다고 본다. 어떤 사람들은 도이췰란드식통일에 대하여 말하는데 우리는 그런 식으로 통일할수 없는 특수성을 갖고있다. 그렇다고 한쪽이 다른 한쪽을 먹는 식의 통일도 불가능하다는것을 깨달아야 한다. 다시말하면 《흡수통일》도 《적화통일》도 그것은 곧 전쟁을 의미하기때문에 그런 식으로 통일이 되여서는 안된다.

우리의 통일은 량측이 서로의 제도나 리념을 모두 인정한 기초우에서 련방제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할것이라고 생각한다.

다행스럽게도 6. 15공동선언과 10. 4선언은 바로 그런 통일로 가기 위한 수순을 합리적으로 마련하여놓았기때문에 우리 동포들모두가 이를 리정표로 삼고 노력해야 할것이다.

왜냐하면 이 력사적인 선언들에 유일무이한 통일방도인 우리 민족끼리가 있지 않는가.

우리 민족끼리는 조선반도의 력사적사실에 립각한 현실적이며 최선의 통일방도로서 그 어떤 외세가 방해를 한다 할지라도 절대로 포기해서는 안될 자주번영의 리정표이다.

 이전페지  차례  다음페지 
되돌이 목록
감 상 글 쓰 기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를 하려면 여기를 눌러주십시오
Copyright © 2003 - 2022 《조선륙일오편집사》 All Rights Reserved
辽ICP备15008236号-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