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자주통일열풍

 

3) 혈육의 정, 동포의 정, 민족적뉴대

1

 

흩어진 가족, 친척상봉 마련

 

외세에 의한 민족의 분렬은 부모처자와 형제자매들을 갈라놓고 수십년간이나 생사여부도 알수 없는 비극을 강요하였다.

흩어진 가족, 친척들의 아픔은 그대로 민족분렬의 비애였다.

6. 15자주통일시대는 이러한 인위적인 리별의 아픔을 안고 사는 흩어진 가족, 친척들의 소원을 풀어주는 경이적인 사변도 안아왔다.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력사적인 6. 15공동선언에 흩어진 가족, 친척방문단교환문제를 명기하도록 하시고 공동선언리행을 위한 첫 사업으로 북남적십자회담을 주동적으로 발기하도록 하시였다.

6. 15공동선언채택이후 2000년 7월의 제1차 북남상급회담, 6월과 9월에 진행된 여러차례의 적십자회담들에서 북과 남으로 흩어진 가족, 친척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인도주의사업을 폭넓게 추진할데 대한 문제들이 토의되였다.

북과 남으로 흩어진 가족, 친척들의 상봉을 위한 실천적조치들이 취해지고 2000년 8월 15일 조국해방 55돐을 계기로 각기 100명씩의 흩어진 가족, 친척들이 혈육들을 만나는 감동적인 화폭이 펼쳐진 이후 2007년 10월까지 16차례에 걸쳐 북과 남으로 갈라져 생사여부조차 모르던 수많은 흩어진 가족, 친척들이 평양과 서울, 금강산에서 만나 혈육의 정을 나누게 되였다.

상봉을 통하여 북측 상봉자들은 안아주고 키워주고 나라의 주인으로 내세워준 고마운 품에 대하여, 온 나라가 화목한 대가정을 이루고 살아가는 사회주의제도의 참모습에 대하여 이야기하면서 하루빨리 분렬의 비극을 가시고 통일을 이룩하자고 호소하였다.

남측의 상봉자들은 상봉과정을 통하여 반공선전으로 가리워졌던 공화국의 실상을 알게 되였으며 자기들의 아들딸들과 형제들, 친척들을 인민군장령으로, 영웅으로, 교수, 박사로, 로력혁신자로 어엿하게 내세워준 고마운 품에 감사의 정을 표시하면서 자기들의 적은 힘이나마 우리 민족끼리의 기치밑에 통일을 이룩하는데 바쳐갈 결의들을 표명하였다.

오래동안 생사도 모르고 헤여져 살던 혈육들사이의 감격적인 상봉을 계기로 우리 민족은 헤여져 살수 없는 하나의 민족임을 확인하였다.

6. 15자주통일시대의 갈피에는 흩어진 가족, 친척들의 화상상봉이라는 가슴뜨거운 실록도 새겨져있다.

수십년간이나 갈라져 생사조차 알수 없었던 혈육들이 북과 남으로 떨어져있어도 화상으로 만나 감격에 울고 기쁨에 웃는 그 모습은 갈라진 겨레의 아픔을 두고 그 누구보다 마음쓰시며 정보산업시대의 요구에 맞게 흩어진 가족, 친척화상상봉사업을 현명하게 이끌어주신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의 숭고한 애족애민의 뜻이 낳은 6. 15통일시대의 자랑스러운 화폭이다.

주체94(2005)년 6월 17일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6. 15북남공동선언발표 5돐을 기념하기 위하여 평양을 방문한 남조선통일부 장관일행을 접견해주신 자리에서 단절되였던 흩어진 가족, 친척방문을 재개하는 문제들을 즉석에서 풀어주시였다.

당시 2기 부쉬행정부의 악랄한 반공화국고립압살책동과 그에 추종한 남조선의 분렬주의세력의 책동에 의하여 북남관계는 얼어붙고 인도주의사업도 중단된 상태였다.

김정일장군님께서는 8. 15를 맞으며 금강산에서 흩어진 가족, 친척상봉행사를 진행할데 대하여서와 화상상봉을 개시할데 대하여 이르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해방 60돐을 맞이하는 민족에게 큰 선물이 될것입니다.》

비록 그립고그립던 그 얼굴을 서로 마주 비비며 체온을 감각할수는 없어도 꿈에도 그려보던 혈육의 모습을 화면으로 마주보며 감격에 울고 기쁨에 웃을 화상상봉, 남조선의 통일부 장관일행은 민족에게 안겨줄 또 하나의 선물이 마련된것을 그토록 기뻐하시는 김정일장군님의 모습에서 분렬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여기시고 겨레의 기쁨에서 자신의 락을 찾으시는 민족의 어버이의 웅심깊은 자애를 력력히 읽을수 있었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화상상봉과 관련한 기술적문제들이 적지 않았고 화상에 의한 상봉을 처음으로 실시해보는 조건에서 8. 15까지 불과 두달도 남지 않은 때에 그런 용단을 내린다는것은 누구나 쉽게 할수 있는 일이 아니였다.

조국해방 60돐을 계기로 흩어진 가족, 친척화상상봉의 설계도를 펼쳐주신 김정일장군님께서는 그 실현에서 나서는 문제들을 풀어주시였다.

조국해방 60돐이 되는 2005년 8월 15일, 이날 온 민족의 커다란 관심과 기대속에 분렬이후 처음으로 흩어진 가족, 친척시범화상상봉이 진행되였다.

조국해방 60돐을 맞으며 진행된 시범화상상봉은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6. 15시대의 요구에 맞게 북남사이의 인도주의적문제해결의 새로운 길을 열어놓은 또 하나의 사변으로 되였다.

조국해방 60돐을 계기로 진행된 흩어진 가족, 친척시범화상상봉은 온 민족의 지지와 환영을 받았으며 바로 이러한 때에 평양에서는 제16차 북남상급회담이 진행되고 여기에서 2005년에 두차례의 화상상봉을 더 진행할데 대한 합의가 이루어졌다.

2005년 8월 15일 시범화상상봉으로 시작되여 2007년 11월까지 7차례에 걸쳐 진행된 화상상봉을 통하여 북과 남으로 갈라진 수많은 가족, 친척들이 만나 혈육의 정을 나누었다.

흩어진 가족, 친척들의 상봉과정은 김정일장군님께서 애국애족의 해빛으로 갈라진 겨레의 마음속상처를 따뜻이 감싸주신 사랑과 은정의 나날이였으며 한편 인도주의의 너울을 쓰고 혈육들의 상봉마저도 저들의 불순한 당리당략에 리용하려는 반통일세력의 불순한 흉계를 짓부셔버리는 과정이기도 하였다.

온 겨레의 관심속에 평양과 서울, 금강산에서 진행되던 흩어진 가족, 친척들의 상봉과 화상상봉은 2008년에 들어서면서 완전중단되게 되였다.

2008년 《정권》의 자리에 들어앉은 리명박역도는 력사적인 북남공동선언들을 전면부정하고 북남관계를 되돌려세울수 없는 파국에로 몰아넣고 흩어진 가족, 친척들의 상봉도 가로막아나섰다.

겨레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여기시고 그를 위하여 취할수 있는 조치들을 다 취해주신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2009년 8월 현대그룹 현정은회장을 만나주신 자리에서 추석을 계기로 북과 남의 흩어진 가족, 친척들의 상봉을 진행하는 문제들을 통이 크게 풀어주시였다. 그리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사망과 관련하여 파견하신 특사조의방문단의 서울방문기간 이 문제를 실현시키도록 하심으로써 9월 26일부터 10월 1일까지 금강산에서 흩어진 가족, 친척들의 상봉이 이루어지게 되였다.

김정일장군님께서는 그 다음해에도 주동적으로 흩어진 가족, 친척상봉문제를 제기하고 실현되도록 이끄심으로써 2010년 추석을 계기로 10월 30일부터 11월 5일까지 금강산에서 상봉이 진행되게 되였다.

흩어진 가족, 친척들의 상봉과정을 통하여 온 겨레는 6. 15자주통일시대, 우리 민족끼리 통일시대야말로 민족성원 개개인의 운명도 꽃펴주고 민족의 혈맥을 더욱 굳게 이어주며 분렬의 고통도 끝장낼 격동의 시대라는것을 절감하게 되였다.

2

 

통일기를 휘날리며

 

체육이 사람들사이의 간격을 허물고 민족들간의 화해에 이바지한 실례는 허다하다. 반세기이상 분렬되여 살아오는 우리 나라에서도 체육은 민족의 화해와 단합에 적지 않은 기여를 하여왔다.

북과 남은 이미 해방후에 평양과 서울을 오가며 경평축구경기를 하였고 1990년에는 서울과 평양에서 통일축구경기를 진행하였으며 1991년에는 뽀르뚜갈에서 열린 세계청년축구선수권대회에 단일팀으로 참가하여 민족의 기상과 긍지를 세계에 널리 떨치였다.

그때로부터 10여년이 지난 6. 15시대에 와서 북과 남은 평양과 서울, 부산, 대구, 제주도 등을 오고가면서 다양한 체육교류를 활발히 진행함으로써 이를 통해 우리 민족끼리의 힘을 내외에 힘있게 과시하고 민족의 통일열망을 한껏 북돋아주었다.

2002년 9월말 부산에서 제14차 아시아경기대회가 개막되였다.

개막행사에는 44개 나라와 지역에서 온 선수들과 응원단, 부산시민들이 참가하였다.

백두산에서 채화한 아시아경기대회의 성화가 부산의 상공높이 타래쳐올랐다. 북과 남의 두 남녀선수가 공동점화를 한것도 뜻깊었고 노래 《아리랑》이 울려퍼지는 속에 북과 남의 선수들이 단일기를 앞세우고 함께 입장한것도 감동적이였다. 북과 남의 선수들이 손에 손을 잡고 공동으로 경기장에 들어서자 관중들은 모두 일어서서 끝없는 환호와 박수갈채를 보내며 감격의 눈물을 흘리였다. 7천만겨레는 민족도 피줄도 언어도 력사도 문화도 하나라는것을 만방에 과시하는 력사적순간이였다.

돌이켜보면 백두산에서 채화한 성화를 높이 추켜들고 제14차 아시아경기대회 개막식장으로 달려오는 과정은 온 겨레가 민족의 단합과 통일열기로 가슴을 불태우고 통일의 환희가 강산에 차넘치게 한 뜻깊은 과정이였다.

이 과정에 우리 민족은 북과 남, 해외의 온 겨레에게 있어서 최대의 애국은 통일이고 가장 큰 소원도 통일이며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나라의 통일을 이룩할데 대한 6. 15북남공동선언의 기치를 높이 들고나갈 때 조국통일의 그날은 더욱 앞당겨지게 된다는것을 깊이 확신할수 있었다.

이렇게 시작부터 하나된 민족의 통일열기를 시위하며 한껏 부풀어오른 북과 남의 선수들은 련일 민족의 슬기와 재능을 과시하며 우수한 경기성적을 쟁취하여 우리 민족에게 커다란 기쁨을 안겨주었다.

녀자력기 53kg급에서 우리 나라 리성희선수가 끌어올리기 세계신기록을 세우고 종합 1등을 쟁취함으로써 민족의 슬기와 자랑을 떨치였다.

일본팀과의 유술경기때에 진행된 북남공동응원은 부산시민들의 가슴을 뜨겁게 하였다. 북남응원단들은 《통일조국》, 《우리는 하나》를 웨치며 북과 남의 선수들을 가림없이 응원하였으며 이에 고무된 북과 남의 유술선수들은 경기장마다에서 조선민족의 영예를 떨치였다. 남측선수들은 통일기를 들고 북측응원단앞에 찾아와 인사하였다.

경기대회기간 북측응원단이 남조선인민들에게 준 영향은 대단하였다.

부산아시아경기대회 전기간 북측응원단은 남녘동포들과 마음을 합쳐 응원하여 북과 남이 하나라는것을 과시하였다.

중국 홍콩팀과의 축구경기에 참가한 공화국의 남자선수들을 응원하기 위해 북측응원단이 경기장에 도착하자 수많은 남녘동포들이 통일기를 흔들고 꽹과리와 북을 치며 《조국통일》구호합창으로 뜨겁게 맞이하였다.

북측응원단성원들이 경기시작전과 휴식시간에 《반갑습니다》, 《노들강변》, 《우리는 하나》 등 취주악에 맞추어 아름다운 률동을 펼치자 남측관람자들은 《와- 재청》 하고 함성을 올리였으며 경찰저지선을 뚫고 북측 응원단이 앉아있는쪽으로 들어오려고 하였다.

남쪽언론들의 표현대로 교태도 애교도 없었지만 마음은 저절로 끌려들고 보면 볼수록 더 보고싶어지는 《천연미인》, 《건강미인》, 《순수미녀》들이였다.

《〈평양꽃 사랑하는 아저씨부대〉가 생겨나고 인터네트에 북녀들의 사진과 이름이 소개되며 이북처녀와 결혼하겠다는 남자들이 무려 70%》, 《〈마음은 념불보다 제밥〉이라고 경기에는 관심없이 미녀보기에만 열중하고 그녀들을 며느리 삼겠다는 아빠, 엄마수는 셀수 없이 많다.》, 《북녀와 악수한 손을 씻지 않고 고이 간수하겠다는 대학생, 청년들의 수는 부지기수》…

이렇게 부산땅, 아니 온 남녘땅이 북의 응원단이 몰아온 평양꽃바람에 취한듯싶었다.

온 남녘땅을 뒤흔든 북측응원단의 출연, 이것은 위대한 장군님의 뜨거운 동포애적사랑과 민족애, 조국통일의 굳센 의지를 떠나서 생각할수 없다.

제14차 아시아경기대회를 앞둔 2002년 가을이였다.

그때로 말하면 서해무장충돌사건이 일어나 북과 남사이에 긴장상태가 떠돌고있던 때였다. 이러한 때에 남조선에서 제14차 아시아경기대회가 진행되는것으로 하여 대표단의 참가문제를 두고 해당 부문 일군들의 고심은 컸다.

경기날자가 하루하루 다가오는 조건에서 체육지도위원회(당시)에서는 선수단조직문제를 가지고 어떻게 하여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있었다.

그들의 이러한 심중을 헤아리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번 아시아경기대회에 선수단은 물론 녀성취주악대와 대규모응원단도 함께 보낼데 대한 통큰 조치를 취해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부산에서 진행하는 제14차 아시아경기대회참가문제를 단순히 남녘땅에서 진행되는 국제경기에 참가하느냐 아니면 그만두느냐 하는 실무적인 문제로 보지 않으시였다.

북의 선수단이 경기대회에 참가할뿐아니라 녀성취주악단과 대규모응원단도 함께 보내여 북과 남이 하나가 되여 응원한다면 민족의 화해와 단합을 더욱 강화할수 있고 6. 15북남공동선언의 기치높이 민족자주의 원칙에서 조국통일을 반드시 이룩하고야말 겨레의 굳센 통일의지를 세계에 힘있게 과시하는 계기로 될것이다, 이것이 위대한 장군님의 뜻이였다.

이로부터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남측이 경기대회개막식행사에 북과 남이 따로따로 입장하자고 제의해왔을 때에는 다른 나라에서 진행되는 경기에서도 북과 남이 단일기를 들고 나갔는데 제 나라, 제땅에서 하는 경기대회에 북과 남이 각기 자기 기발을 들고 나간다는것은 《두개 조선》을 인정하는것으로서 있을수 없는 일이라고 하시면서 단일기를 앞세우고 북과 남이 함께 입장하도록 하시였고 백두산에서 지핀 성화를 판문점에서 넘겨달라고 했을 때에는 그러지 말고 금강산에서 넘겨주도록 해주시였던것이다.

응원단은 북남녀자축구경기응원을 진행하여 부산땅을 다시금 들었다놓았다.

북남축구경기가 진행되는 경기장에는 북측응원단, 선수단 360여명과 《한겨레남북공동응원단》 1 000여명을 포함하여 2만여명이 참가하였으며 수천명의 군중들이 손에손에 든 통일기와 《우리는 하나다》라는 글을 새긴 응원소도구를 흔들면서 경기시작전부터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경기는 북과 남의 녀자축구선수들사이의 경기였지만 응원은 북과 남이 따로 없는 하나의 응원만이 있었다.

북측응원단이 《조국》이라고 웨치면 약속이라도 한듯 수천명의 남녘군중들이 《통일》 하고 화답하고 《우리는》 하면 《하나다》를 화답하는 열기띤 응원모습은 북과 남이 맞잡은 손이 얼마나 굳세고 하나되여 웨치는 함성이 얼마나 장엄한가를 절감하게 하는 순간이였다.

이렇게 부산에서 타오른 성화는 통일의 거세찬 열기를 내뿜으며 남녘땅전역에 자주통일의 불길을 세차게 지펴올렸다.

2003년 8월에 열린 제22차 세계대학생체육경기대회를 계기로 온 대구땅이 또다시 통일의 열풍으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원래 대구지역은 《한나라당》의 기본정치기반이다.

이런데로부터 《한나라당》패들은 대구에서는 어떻게 하나 북의 선수단과 응원단이 활동하지 못하도록 하려고 온갖 책동을 다하였다.

그러나 북측의 선수단과 응원단은 대구경기대회에 참가하여 온 민족의 기대에 맞게 활동하였으며 대구의 보수담벽을 뒤흔들어놓았을뿐아니라 남조선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었다.

세계대학생체육경기대회에서 가장 인기를 끌고 사람들의 주목을 받은것은 부산아시아경기대회와 마찬가지로 북녘의 대학생응원단이였다.

북의 녀대학생들의 하나같이 청신하고 아름다운 용모와 대학생의 성격에 맞게 새롭고 특색있게 펼치는 응원모습은 순식간에 남녘동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으며 경기대회를 새롭게 장식하였다.

남조선의 출판보도물들은 물론 미국, 일본, 중국, 로씨야 등 세계 많은 출판보도물들이 북측응원단에 대한 소식으로 지면과 화면을 채웠다.

북측응원단이 몰아온 열풍에 흥분된 대구시민들은 《우리 민족자존심을 걸고 필승》, 《반갑습니다. 북녘동포 여러분!》, 《가자 아리랑과 함께 백두산으로!》, 《통일의 리정표 6. 15공동선언리행》 등의 구호를 내붙였다.

특히 《휘파람》노래를 가지고 《첫 경기부터 불었네 휘파람, 휘파람, 결승전에도 불었네 휘파람, 휘파람》표어를 내걸고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으며 북의 노래들을 내보내였다.

경기가 한창이던 8월 29일 저녁 대구야구장에서는 북남공동예술공연이 진행되였는데 이에 대한 남녘동포들의 반영도 대단하였다.

야구장에 5만여명이 들어찼고 들어오지 못한 3만명의 시민들이 야구장곁에 있는 야산에 올라 북측응원단의 예술공연을 보며 흥분된 심정을 감추지 못하였다.

북측응원단성원들은 남조선과 미국이 진행하는 배구경기때 경기장에 찾아가 응원해주면서 둘 합치여 더 큰 하나가 되려는 조선민족의 굳센 의지를 보여주었다.

하기에 남조선의 한 고위관리는 《대구지역은 남측에서 제일가는 보수지역인데 이번에 북측대표단이 와서 대구가 변하기 시작하였다. 정말 북측대표단이 와서 대구사람들을 통일지향세력으로 돌려세우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전환적국면이 열린셈이다.》라고 하였다.

경기대회는 끝났으나 대구시민들은 경기대회 전기간 대구땅에 민족화해의 봄씨앗을 뿌려주고 하나된 조국에 대한 아름다운 희망을 안겨준 북의 대학생사절들과 작별하게 된 서운한 마음을 금치 못하며 오래도록 페막식장을 떠날줄 몰랐다.

제14차 아시아경기대회와 제22차 세계대학생체육경기대회가 보여주듯이 체육경기장마다에서 울려퍼진 북과 남의 하나된 목소리는 통일을 열망하는 겨레의 웨침이였으며 북과 남의 선수들이 거둔 자랑찬 경기성과는 민족의 힘모아 세기를 떨치려는 억센 의지의 과시였다.

이렇게 민족의 통일열기는 제16차 아시아륙상선수권대회, 북남통일축구경기대회를 비롯한 대회장마다에서도 끊임없이 분출하며 온 민족을 조국통일운동에로 힘있게 추동하였다.

3

 

통일의 노래 함께 부르며

 

6. 15공동선언발표이후 북과 남사이에는 체육교류뿐아니라 예술분야에서의 접촉과 교류도 활발히 진행되여 민족의 화해와 단합을 도모하였다.

력사적인 평양상봉을 전후로 하여 북의 학생소년예술단과 평양교예단, 국립교향악단이 서울에 나가 공연을 진행하여 주체예술의 위력을 시위하는 일대 선풍을 일으켰다. 또한 북의 여러 예술단과 통일음악단이 6. 15이후의 각종 통일행사들에 참가하여 공연활동을 벌리고 총련의 금강산가극단이 순회공연을 진행하여 온 남녘땅을 통일열기로 차넘치게 하였다.

특히 남쪽에서 진행된 통일행사들에서 펼친 북측예술인들의 춤과 노래는 온 남녘땅을 뒤흔들어놓군 하였다.

2002년 8월 15일 서울에서는 8. 15민족통일대회를 축하하는 북측예술인들의 공연이 진행되였다.

공연의 막이 열리여 북측 소개자가 반세기가 넘도록 분렬의 비극에 모질게 어혈졌던 삼천리강토에 력사적인 6. 15공동선언이 빛발쳐 서로 굳게 마주잡은 손과 손을 거쳐 민족의 따뜻한 피가 소리치며 흐르는 소리, 분명 통일이 마주 오는 소리가 삼천리 이 강산에 진동하는 때에 통일소원의 꿈과 더불어 북측예술단도 6. 15공동선언의 무지개를 타고 서울에 왔다고 하자 전체 관람자들은 우렁찬 박수갈채를 보내였다.

생각할수록 수십년세월 외세에 의하여 강요된 민족분렬의 쓰라린 아픔으로 잠 못 들던 우리 겨레였다. 그러던것이 6. 15통일시대에 와서 이렇게 한자리에 모여 통일의 봄맞이를 하는 이 격동적인 현실앞에서 관람자들은 젖어드는 마음을 억제할수 없었다.

관람자들은 북의 예술인들이 무용 《양산도》, 《달빛아래서》, 《쌍채북춤》, 《사냥군춤》, 《쟁강춤》, 《물동이춤》 등 종목들을 바꿀 때마다 《잘한다!》, 《좋다!》, 《와!》 하고 큰소리를 치면서 재청도 하고 휘파람을 불며 환호하였다.

공연장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북녘의 무용예술에 심취된 관람객들의 환희와 통일의 열기로 세차게 끓어번졌다.

북측예술인들의 공연에 대한 남조선언론들의 반영은 참으로 대단하였다.

북측의 예술공연에 대해 일주일전부터 사회적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예보를 낸 《SBS》는 공연당일에는 시청률이 제일 높은 시간에 중계를 하였는데 무용종목에 대한 방송원의 평가해설을 달고 화면에 《랑만에 넘치는 흥겨운 률동과 다정다감한 정서가 흘러넘치는 춤》이라는 소개글을 크게 냈다.

《SBS》뿐만아니라 《KBS》, 《MBC》, 《련합TV뉴스》 등 남측의 많은 방송, 통신들도 북의 예술인들의 공연소식을 널리 보도하였다.

남조선신문들은 8월 16일 《북측예술단공연은 관객들을 열광시켰다. 만수대예술단, 피바다가극단 등에 소속된 40여명의 배우들은 현란한 몸동작이 어우러진 〈양산도〉춤을 비롯해 〈방울춤〉, 〈쌍채북춤〉, 〈쟁강춤〉 등을 선보였고 1 000여명의 관객은 손짓, 몸짓 하나하나에 열화와 같은 박수를 보냈다.》는 등으로 저저마다 관평기사들을 실었다.

또한 서울주재 중국신화통신사 특파기자는 《조선예술인들이 이번에 서울에 와서 들었다놓았다. 공연을 보고난 인상이 너무 크다고 말할수 있다. TV로 많은 서울시민들이 보았다고 한다. 공연을 보고난 많은 늙은이들이 눈물까지 흘리면서 북의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보았다.》고 하면서 놀라움을 금치 못해하였다.

공연이 남조선인민들의 가슴속에 민족의 넋을 안겨주고 통일의 열광을 안겨준 뜻깊은 공연으로 성과적으로 진행될수 있은 여기에는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의 세심한 령도가 깃들어있다.

장군님께서는 2002년 8월 한 일군에게 서울에서 진행되는 8. 15통일행사와 관련한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면서 예술공연종목선정에서 성악과 기악, 무용을 배합하여야 만 공연이 될것으로 생각하는 우리 일군들의 틀에 박힌 생각을 바로잡아주시였다.

하여 공연장은 처음부터 공화국의 주체무용예술에 탄복한 관람자들의 환희와 통일의 열기로 세차게 끓어번졌던것이다.

2006년 6. 15광주통일행사때 광주와 목포에서 세차례에 걸쳐 진행한 북측예술단의 공연도 파문을 일으켰다.

광주시민들을 비롯한 관중들은 높은 기량으로 겨레의 심장에 통일애국의 불길을 지펴주는 북의 예술인들의 공연에 완전히 심취되여 종목이 끝날 때마다 《와-와-》소리를 지르면서 열광적인 박수갈채를 보내고 연방 네번씩이나 재청을 요구하였는가 하면 북녘예술인들이 부르는 민요가락에 맞추어 가설무대앞에 달려나와 어깨춤까지 추었다.

공연을 본 남과 해외대표들은 한결같이 북녘예술단의 공연에 대해 《렵기적이고 광신적인 남의 예술에 비해 북의 예술은 매우 신선하고 우아하고 황홀한 예술》, 《남에서는 도저히 흉내낼수 없는 민족특유의 황홀한 예술》이라고 찬탄해마지 않았다.

북녘의 예술인들의 공연에 감동된 남측사회자는 북측예술단의 공연이 진행되고 공연을 열광적으로 환호하기는 광주가 생겨 처음이라고 하면서 《평택에서 미군을 몰아내고 조국을 통일하자!》는 구호를 웨쳤는가 하면 가는 곳마다에서 남녘의 통일운동단체들과 시민들, 청년학생들이 《우리 민족끼리》, 《통일은 우리 민족끼리야》, 《통일 6. 15》 등을 부르면서 지금까지 남조선에서 진행된 통일행사때에는 볼수 없었던 통일분위기를 펼쳐놓았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처럼 예술의 거대한 힘으로 온 남녘땅에 통일의 봄바람을 불러오시였을뿐아니라 평양방문을 열망하는 남조선의 예술단체들을 평양에 초청하도록 하시였다.

여기에는 남조선예술인들을 6. 15통일행렬차에 태워 민족의 화해와 단합, 조국통일에 이바지하도록 하시려는 위대한 장군님의 숭고한 뜻이 담겨져있었다.

위대한 장군님의 뜨거운 동포애를 받아안고 선참으로 《KBS》교향악단이 평양공연의 막을 열었으며 뒤이어 《MBC》공연단성원들이 평양공연의 꿈을 실현하였다.

2002년 9월 27일 저녁노을이 아름답게 비낀 풍치수려한 대동강기슭에 자리잡은 동평양대극장무대에서는 남조선 《MBC》방송원의 환희에 젖은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위성전파를 타고 전세계에 실황중계되는 《2002〈MBC〉평양특별공연》의 사회자인 그는 공연이 마련된데 대한 기쁨과 격정을 피력하고 《MBC》방송이 앞으로 우리 민족끼리의 기치밑에 조국통일을 이룩하는 길에서 누구보다 앞장설것을 굳게 다짐했다.

지금까지 남조선에서 미국의 식민지지배에 아부굴종하며 민족의 영구분렬을 위한 반공반통일어용수단으로 리용되여오던 남조선방송의 이러한 극적변화를 보며 온 겨레는 력사적인 북남수뇌상봉과 남측 언론사대표단의 평양방문을 몸소 마련해주시여 남조선언론계와 문화예술계를 민족의 화해와 단합, 통일실현에 이바지하도록 이끌어주신 위대한 장군님에 대한 뜨거운 흠모와 감사의 정으로 끓어번지였다.

북과 남의 예술인들이 부르는 《다시 만납시다》의 노래가 극장안에 울려퍼지자 관람자들은 끊을래야 끊을수 없는 혈육의 뜨거운 정을 담은 열렬한 박수로 통일노래에 화답하였다.

가까이에 있는 자식보다 먼곳에 있는 자식을 더 생각하는것이 어머니의 심정이다.

위대한 장군님의 따사로운 손길은 저 멀리 바다건너 일본에서 활동하고있는 한 남조선녀가수에게도 뜨겁게 미치였다.

그로 말하면 어려운 가정에서 태여나 음악교육을 체계적으로 받지 못하였지만 자체로 노력하여 조선사람으로서 일본땅에서 이름을 떨치고있었다. 해마다 뜻깊은 태양절을 맞으며 세계 5대륙의 수많은 이름난 예술인들이 평양으로 모여들어 성대한 예술축전무대를 펼쳐놓을 때마다 김련자가수의 가슴속에서는 그 영광의 무대에서 노래를 불러보았으면 하는 충동이 일군 하였다. 그는 이 꿈을 안고 몇년전부터 축전에 참가하려고 시도해왔으나 반통일세력의 방해책동으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있었다.

해외에서 활동하는 한 남조선가수의 이 마음속소원을 깊이 헤아려보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2001년 4월 제19차 4월의 봄 친선예술축전에 그를 불러주시고 뜨거운 은정을 베풀어주시였다.

장군님께서는 녀가수가 준비해가지고 온 공연종목들을 일일이 알아보시고 단독공연도 하도록 해주시였으며 가수일행의 참관일정에 대해서도 관심을 돌리시고 옥류관에서 이름난 평양랭면맛도 보도록 해주시였다.

장군님의 따사로운 은정속에서 뜻깊은 방문의 나날이 하루하루 흘러갔다. 그럴수록 그의 가슴속에서는 장군님에 대한 감사의 정이 더더욱 솟구쳐올랐다.

하기에 김련자는 태양의 성지 금수산태양궁전과 만경대를 방문하고 평양지하철도를 돌아보면서 김정일장군님을 꼭 뵙고싶은것이 간절한 소원이라고 자기의 절절한 심정을 터놓았다.

그가 바라고바라던 영광의 시각이 왔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현지지도의 그 바쁘신 길에서도 그의 소망을 헤아려 4월 11일 김련자의 공연을 보아주시였던것이다.

커다란 흥분속에 무대에 나선 가수는 이 영광의 자리를 마련해주신 위대한 장군님에 대한 끝없는 감사의 정을 안고 노래를 불렀다.

공연이 끝나자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공연성과를 축하하여 꽃바구니를 전하시고 그의 일행을 접견해주시였다.

만면에 환한 미소를 담으시고 가수일행을 반갑게 맞아주신 장군님께서는 조선사람으로서 일본땅에서 이름을 떨치고있는 그의 소행에 대하여 높이 치하해주시면서 앞으로 아무때나 다시 평양을 방문하여 공연을 하라고, 다음해에 와서는 큰 극장들에서 공연을 많이 하여야 하겠다고 고무해주시였다.

그러시면서 우리 북쪽에도 공연할 장소는 많다고, 유명한 백두산에 가서도 공연할수 있다고, 이제는 문이 열렸으니 누구도 그 길을 막지 못할것이라고, 북쪽의 인민들도 같은 동포이니 노래로 서로 사귀도록 하여야 한다고 뜨거운 동포애의 정을 담아 말씀하시였다.

가수의 노래가 북과 남사이의 화해와 협력, 통일의 뉴대를 증진시키는 하나의 무지개다리로 되기를 바라시는 기대와 믿음이 어린 말씀이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날 가수일행을 자신의 옆에 나란히 세우시고 영광의 기념사진을 찍어주시였으며 그들을 위하여 만찬을 마련해주시였다.

녀가수에 대한 장군님의 믿음과 은정은 이에만 그치지 않았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다음해인 2002년 제20차 4월의 봄 친선예술축전에 그를 또다시 불러주시고 공연조직과 참관사업 및 체류일정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으로 보살펴주시였으며 4월 10일 귀중한 시간을 내시여 녀가수일행을 접견해주시였다.

정녕 우리 민족의 대단합을 위해 바치신 위대한 장군님의 헌신의 자욱이 있어 6. 15시대와 더불어 삼천리강토에는 통일의 노래가 끊임없이 울려퍼졌다.

4

 

남녘동포들의 소원을 풀어준 금강산관광

 

예로부터 금강산은 조선의 제일명산으로, 세계적인 천하절승으로 일러왔다. 독특한 산악미를 자랑하는 1만 2천봉우리들과 천태만상을 이룬 기기묘묘한 바위들, 구슬같이 맑은 물이 쏟아져내리는 폭포들과 계곡들…

금강산에 와보고 그 절경에 탄복한 일본의 어느 한 화가는 《금강산의 절승은 일본의 명승지들인 묘기산, 야바계곡을 1 000개 합친것보다 낫다.》고 하였으며 1930년대초 어느 한 외국인은 《미국의 국립공원인 요세미트 그란드카니온에 가보지 못한 사람과는 산수를 론할수 없다고 하던 시대는 이미 지나가고 알프스, 곤륜산줄기의 준봉들에 올라보지 못한 사람과는 산수를 론할수 없다는 시대도 지나고 이제는 금강산에 오르지 않은 사람과는 산수를 론할수 없는 시절이 되였다.》고 하였다.

이처럼 세계으뜸으로 소문난 금강산이지만 외세에 의하여 강요된 나라의 분렬로 하여 남녘동포들은 반세기이상이나 금강산에 와보지 못하고있었다. 생전에 금강산을 한번 구경이라도 해보았으면 하는것이 남녘동포들의 간절한 소원이였다.

그들의 마음속소원을 헤아리시고 그들에게 금강산관광길을 열어주신분은 바로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이시였다.

조선민족성원이라면 누구나 보고싶어하고 오르고싶어하는 세계의 명승 금강산에 남녘동포들모두가 와보게 하여 조선민족된 긍지를 가슴뿌듯이 느끼게 하여야 한다는것이 장군님의 뜻이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여러차례 남조선 현대그룹의 정주영명예회장과 정몽헌회장을 만나주시고 북남경제협력의 일환으로서 금강산관광사업을 잘해볼데 대한 믿음을 안겨주시였으며 금강산관광과 관련하여 제기되는 모든 문제를 즉석에서 다 풀어주시였다.

1998년 11월 18일 800여명의 관광객이 처음으로 장군님께서 열어주신 사랑의 배길을 따라 꿈에도 소원이였던 금강산관광길에 오르게 되였다.

그날 관광객들을 태운 배가 출항하면서 울린 고동소리는 위대한 장군님께서 열어주신 사랑의 배길을 따라 처음으로 금강산관광길에 오른 남녘겨레들이 터치는 환희의 고동소리였고 온 민족이 손을 잡고 금강산으로 오를 통일의 날이 멀지 않았음을 예고하는 희망의 기적소리였다.

초행길은 언제나 어려운 법이다. 금강산관광사업은 반세기이상이나 분렬되여있는 북과 남사이에 진행하는 경제협력사업의 일환으로서 난관과 어려움도 없지 않았다.

그때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현대의 관계자들에게 신심과 용기를 북돋아주시고 제반 조치들을 취하도록 하시여 남녘겨레들의 금강산관광길을 이어주시였다.

그리하여 금강산관광사업은 날이 갈수록 활기를 띠였고 첫 관광이 있은 때로부터 한해동안에만도 11만여명의 남조선 각계 동포들이 금강산을 다녀가게 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6. 15북남공동선언의 채택으로 온 겨레의 통일열기가 뜨겁게 분출되는 시대적요구에 맞게 금강산관광길을 더욱 넓혀주시여 더 많은 남녘동포들이 금강산관광길에 오르도록 해주시였다.

주체89(2000)년 9월 30일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금강산관광지구를 시찰하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정몽헌회장을 비롯한 현대관계자들과 함께 고성항을 비롯한 여러곳을 돌아보시면서 시작이 절반이라는 말이 있는데 현대에서 시작한 금강산관광을 잘 조직해보는것이 좋겠다고 크나큰 믿음을 다시금 안겨주시였다.

그러시면서 장군님께서는 내가 보건대 이제 금강산관광을 더 활성화하자면 어차피 남쪽과는 관광수송통로가 개발되여야 할것이라고 하시면서 그 하나하나에 대하여서까지 세심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금강산을 단순히 관광을 위한 금강산이 아니라 북과 남, 해외를 잇는 무지개다리로, 온 민족이 만나는 통일오작교로 되게 하시려는 장군님의 크나큰 도량에 현대관계자들은 그렇게 하면 장군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천하절승 금강산을 남쪽인민들이 다 보게 할수 있을것이라고 흥분된 심정을 감추지 못하였다.

이날 금강산관광을 비롯하여 북과 남사이의 경제협력을 더욱 발전시켜나갈데 대하여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신 장군님께서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조국통일을 위한 전민족대단결10대강령》을 제시하시면서 북과 남이 공존, 공영, 공리를 도모하고 조국통일위업에 모든것을 복종시키는 원칙에서 단결을 이룩할데 대한 사상을 밝히시였다고, 남쪽에서 자꾸 《상호주의》라고 하는데 구태여 《상호주의》라고 한다면 서로 배워주고 도와주는 이런 원칙에서의 《상호주의》라고 해야 할것이라고, 그런 식으로 공존, 공영, 공리를 해서 두 제도가 존재하는 련방제를 하여야 한다고 깊은 뜻을 담아 말씀하시였다.

이윽고 장군님께서는 두 제도가 존재하는 기초우에서 공존, 공영, 공리를 하자는것이지 우리의 사상과 제도를 남쪽에 강요하거나 먹이자는것이 아니라고, 우리가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서 우선 현대에서 제기한 금강산관광을 승인한것이라고 말씀하시였다.

북남경제협력을 더욱 폭넓게 진행하여 우리 민족의 숙원인 조국통일위업을 기어이 이룩하시려는 장군님의 철의 의지가 마디마디에 어려있는 말씀을 받아안으며 동행한 일군들과 현대관계자들은 숙연해지는 마음을 금할수 없었다.

오곡백과 무르익는 가을날 몸소 찾아오시여 믿음을 주시고 용기를 북돋아주신 장군님의 정력적인 령도가 있어 금강산관광사업은 보다 활기를 띠게 되였으며 2003년초부터는 동해림시도로를 통한 륙로관광도 진행되게 되였다.

이 격동적인 현실을 두고 남조선의 언론들은 《금강산륙로관광이 성사된 날은 이 땅에서 전쟁이 종식되는것을 세상에 선포한 날》이라고 하였으며 미국신문 《로스안젤스 타임스》는 《남북조선은 요새화된 비무장지대를 관통하는 금강산관광도로의 공식개통으로 또 하나의 력사를 만들었다.》고 대서특필하였다.

남녘인민들의 동경의 대상이였던 금강산은 듣던바 그대로 골짜기와 바위, 폭포와 못 그 어느 하나도 빼놓을수 없는 천하제일의 절경이였다.

수많은 남녘동포들은 생전에 금강산절경을 구경하게 된 감격과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6. 15공동선언이 있어 오늘의 금강산관광길도 있다고 하면서 세계적명산을 가진 조선민족의 긍지와 자부심을 안고 통일애국사업에 심혼을 바쳐갈 결의들을 피력하였다.

2003년 8월 금강산을 다녀간 남녘의 한 대학생이 자기의 수기에서 《남녘사람들을 다 금강산에 보내면 정말 통일이 될것 같다.》고 격동된 심정을 피력한것은 금강산관광이 얼마나 큰 의미를 가지는가를 그대로 엿볼수 있게 한다.

제주도에서 온 한 관광객은 《금강산에 가더라도 〈아〉, 〈오〉 같은 감탄사는 람발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눈에 안겨온 금강산은 나의 생각을 뛰여넘었다. 그것은 산이 아닌 거대한 불덩어리로 다가오는것이였다. 나는 한순간에 금강산절경에 취해버렸다.》고 하면서 금강산의 천하절경에 감탄을 금치 못해하였다.

남조선의 언론들도 금강산관광이 조선반도에 평화분위기를 조성하고 북남관계를 개선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고 널리 소개하였다.

언론들은 금강산관광이 북남사이의 긴장을 완화하고 북남관계를 개선하는데 크게 기여했다는 점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고 하면서 《금강산관광은 남북관계의 대명사》, 《만남과 화해, 협력의 상징》 등으로 평가하였다.

정녕 금강산에로의 관광은 위대한 장군님의 숭고한 민족애와 동포애, 현명한 령도가 낳은 우리 민족끼리 통일시대의 또 하나의 결정체이다.

5

 

삼천리에 굽이친 《아리랑》열풍

 

나라없던 지난 세월 철새처럼 정처없이 쫓기고 떠다니던 조선민족의 피눈물의 노래였던 《아리랑》이 6. 15통일시대에 와서 그 의미가 완전히 새로운것으로 달라졌다.

2005년 8월 평양의 5월1일경기장에서는 조선로동당창건 60돐, 조국해방 60돐을 맞으며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이 우리 인민들과 세계인민들의 커다란 기대와 관심속에 성황리에 개막되였다.

우리 민족의 100여년의 현대사를 종합적으로 보여주는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은 비탄의 《아리랑》소리 구슬피 울리던 조국땅에 어떻게 되여 강성부흥의 《아리랑》소리가 높이 울리게 되였는가를 사상예술적으로 깊이있게 담은 시대의 명작이다.

10여만명이 출연하여 하나와 같이 움직이는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은 공연 첫시작부터 우리 인민들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폭풍같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나라의 방방곡곡에서 남녀로소 막론하고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을 보려고 평양으로 달려왔고 아시아와 유럽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와 지역들에서도 수많은 관람객들이 앞을 다투어 찾아왔다.

하지만 누구도 한지맥으로 잇닿아있으면서도 분렬의 장벽으로 반세기이상 갈라져있는 남녘동포들에게 《아리랑》공연을 보여줄데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하였다.

비애의 《아리랑》, 망국의 《아리랑》으로부터 《강성부흥아리랑》, 환희와 승리의 《아리랑》으로 울려퍼지는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의 대서사시적화폭을 남조선인민들에게 보여주어 《아리랑》이 우리민족끼리시대에 민족이 함께 부르는 《아리랑》으로 되게 하여 통일운동의 새로운 국면을 열어놓을것을 구상하신분은 뜨거운 민족애를 지니신 위대한 장군님이시였다.

원래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은 위대한 김일성주석의 탄생 90돐에 즈음하여 창작공연된 작품이다. 처음에 창작가들은 김일성주석의 탄생 90돐에 즈음하여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을 준비하면서 작품의 제목을 《태양의 노래》라고 달았었다.

이 사실을 보고받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앞으로 보게 될 관람대상에 대하여 좀 생각해보았는가고 하시면서 제목을 직선적으로 달지 말고 《아리랑》이라고 다는것이 좋겠다고, 《아리랑》에 우리 수령님의 혁명력사를 집약화하면 된다고 일군들과 창작가들의 머리를 틔워주시였다.

그때 벌써 장군님께서는 남조선인민들에게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을 보여주실것을 구상하고계시였던것이다.

주체94(2005)년 9월 어느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한 일군을 전화로 찾으시였다.

장군님께서는 그 일군에게 남녘동포들에게 《아리랑》공연을 보여줄데 대하여 말씀하시면서 이번에 제16차 북남상급회담에 참가하기 위해 평양에 왔던 남측 당국대표단성원들이 《아리랑》공연을 다 보고 갔고 남측 통일부 장관도 《아리랑》공연을 보는것을 허락하겠다고 한것만큼 조직사업을 잘하여 다 데려다 보여야 하겠다고 말씀하시였다.

순간 그 일군은 커다란 흥분과 놀라움을 금할수 없었다.

수천명에 달하는 남조선의 각계각층이 비행기로 오가면서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을 관람하게 된다면 아리랑민족으로서의 긍지와 자부심, 우리 민족끼리의 련대의식이 얼마나 부풀것인가.

그야말로 6. 15통일시대, 우리 민족끼리 통일시대를 실감하게 하는 장쾌한 광경으로 될것이였다.

일군이 흥분으로 설레이는 마음을 다잡고있는데 장군님께서는 그들이 오면 우리가 대우를 잘해주면서 구경을 시켜주고 하루밤 재워서 보내면 다 좋아할것이라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남녘동포들의 《아리랑》관람길을 열어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 사업이 성과적으로 진행되도록 정력적으로 이끌어주시였다.

《아리랑》을 관람하기 위해 평양에 오는 남녘동포들을 숙식시키기로 했던 양각도국제호텔에 당창건 60돐 경축행사에 참가할 국내대표들을 들이는 문제가 제기되였을 때였다.

이때 해당 부문의 일군들은 당창건 60돐 경축행사를 보장해야 하는 조건에서 남측관람자들을 초청하는 사업을 주관하던 남측의 여러 단체들에 숙소관계로 10월 5일부터 12일까지는 《아리랑》공연관람이 어려울것 같으므로 평양참관단일정을 조절해줄것을 통지했다.

그러자 그들은 조선로동당창건 60돐 경축행사기간에 평양에 오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특히 많다고, 자기들은 양각도국제호텔 1개 방에 4명이나 6명이 들어도 좋고 복도를 침실로 해서 한개 층에 수십명씩 숙식하거나 5월1일경기장에서 천막을 치고 자도 좋다고 하면서 평양참관을 계속해줄것을 거듭 간청했다.

이 사실을 보고받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양각도국제호텔에 들기로 예정되였던 당창건 60돐 경축행사 국내대표들을 모두 다른 려관에 옮기고 양각도국제호텔과 보통강호텔을 통채로 남측참관단이 리용하도록 조치를 취해주시였다.

이렇듯 위대한 장군님의 세심한 관심과 은정어린 조치에 의하여 남녘동포들의 《아리랑》관람조직사업이 성과적으로 추진되였으며 2005년 9월 26일부터 하루에 수백명의 남녘동포들이 평양에 와서 1박2일간에 걸쳐 《아리랑》공연을 관람하고 여러곳을 참관하게 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열어주신 《아리랑》관람길을 따라 남조선의 각계각층 인민들이 너도나도 평양행에 올랐다.

평양비행장에 내린 참관단성원들의 얼굴마다에는 한결같이 평양방문이 실현된 꿈같은 현실로 하여 흥분과 격정의 빛이 어려있었다.

한 참관단성원은 우리는 평양에 《아리랑》을 관람하러 떠나기 전에 3일동안 너무 기뻐 잠을 자지 못했다, 너도나도 평양으로 오겠다고 나서고있는데 이제 《아리랑》대잔치판이 펼쳐질것 같다, 5년전 6. 15처럼 김정일국방위원장님께서 《아리랑》이라는 폭죽을 터뜨려 온 남녘땅을 빨갛게 물들여놓았다, 이남민중의 마음을 순간에 련북으로 돌려놓으신 김정일국방위원장님은 참으로 뛰여난분이시다라고 흥분에 겨워 이야기하였다.

평양에 온 남녘동포들의 감동과 흥분은 《아리랑》공연관람에서 최절정을 이루었다.

《아리랑》공연이 진행되는 5월1일경기장은 동포애의 뜨거운 정으로 차고넘치였다. 북의 동포들이 《우리는-》하고 구호를 웨치면 남녘동포들은 《하나다!》라고 화답하고 뒤이어 또다시 《조국-》 하면 《통일》 하고 화답해나섰다. 서로 손을 흔들어주고 울고웃으며 손을 맞잡는 모습은 우리 민족의 통일념원이 얼마나 뜨거운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10여만명이 출연하여 하나와 같이 움직이는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을 관람한 남녘동포들은 그 공연이 꿈아닌 현실이라는데 대하여 놀라움을 금치 못해하였다.

절세의 위인을 모시여 망국의 한을 가셔버리고 태양민족으로 존엄떨치는 우리 조국의 100년 력사를 1시간 20분의 무대에 펼쳐놓은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은 21세기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걸작이다.

《아리랑》공연을 관람한 남조선인민들은 《세계에 하나밖에 없는 거대한 금강석》, 《민족의 저력과 미래에 대한 상징》, 《북체제의 위력함, 북사회에 관통되여있는 강한 정신력을 1시간 20분동안에 충분히 읽었다.》, 《눈앞이 아찔하고 마음이 흥분되고 하늘나라 천궁에 온것으로 착각을 일으키는 공연》이라고 감탄을 터뜨렸다.

원래 남조선당국자들은 참관단성원들에게 주는 그 무슨 강습이라는데서 《아리랑》공연관람시 북을 너무 춰주는 말을 하지 말라, 공연을 보면서 절대로 일어서서 박수를 치지 말라, 배경대에 영상이 모셔질 때는 사진을 찍지 말라 등 구체적인 행동사항을 강조해서 들여보냈다. 그러나 《아리랑》공연에 매혹된 남녘관람자들에게 그것이 통할리 만무하였다.

공연관람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오는 뻐스안에서도 그들은 소감발표회를 열고 공연이 너무 감동적이여서 눈물없이는 볼수 없었다고 하면서 남쪽에 돌아가 북녘동포들의 마음을 널리 전하고 통일운동에 더욱 힘있게 떨쳐나설 결의들을 다지였다.

《아리랑열풍》은 오래동안 반공사상에 물젖어 북에 대하여 그릇되게 생각하던 사람들까지 평양으로 떠밀었으며 그들의 의식변화에도 큰 영향을 미치였다.

전라북도에서는 도지사를 비롯하여 도안의 시장, 의회 의장, 군수 등 50여명의 공무원들이 집단적으로 와서 공연을 관람하였는데 공연과정에 그들은 출연자들에게 열광적인 박수를 보내면서 《이밤이야말로 일생에 한번밖에 없는 행운의 기회》, 《황금을 주고도 보지 못할 천궁의 공연》이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이처럼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은 평양을 방문한 남녘동포들속에서 폭풍같은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온 남녘땅을 《아리랑열풍》으로 뜨겁게 달아오르게 하였다.

여기에 당황한 남조선의 극우보수세력들은 날로 확산되는 《아리랑열풍》을 잠재우고 남조선인민들의 북행길을 어떻게 하나 차단해보려고 악랄하게 책동하였다. 그들은 《아리랑》공연은 《체제선전용》이라느니 뭐니 하고 비난해나섰고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언론들을 내세워 북의 《아리랑》공연관람비가 엄청나게 비싸다느니, 남측의 각계 단체들이 북에 막대한 자금을 섬겨바친다느니 하는 허튼소리를 하며 악선전을 하였다. 그러면서 10월 17일이후에는 《아리랑》참관을 허용할수 없다고 이 사업을 주선하는 단체들에 로골적으로 압력을 가하였다.

지어 《국가안보의 마지막보루》라고 일컫는 남조선괴뢰군 사병들이 《아리랑》공연을 록화한것을 보려고 너도나도 구실을 붙여 휴가를 가는 바람이 불자 이런 군기문란은 전무후무한것이라고 아우성을 치면서 기무사를 군기조사에 내몰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아리랑열풍》은 남조선의 우익보수세력의 방해책동을 산산이 짓부셔버리며 온 남녘땅에 더욱 세차게 불어쳤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날로 높아가는 남녘동포들의 《아리랑》관람열망을 헤아려보시고 10월말까지 계속 남녘동포들을 평양으로 받아들이도록 해주시고 그 방도까지 하나하나 밝혀주시였던것이다.

그리하여 수많은 남녘동포들이 《아리랑》공연을 계속 관람하였으며 10월말까지의 한달 남짓한 기간에 무려 8 500여명의 남녘동포들이 평양에 들어와 《아리랑》공연을 관람하는 류례없는 통일잔치마당이 펼쳐질수 있었다. 해산기일이 다 찬 임신부가 시부모의 부축을 받으면서 관람석에 앉았다가 평양산원에서 《아리랑》옥동녀를 순산하는 전설같은 일화도 생겨났다.

참으로 온 남녘땅에 휘몰아친 2005년 《아리랑열풍》은 심오한 철학적내용에 황홀경의 극치를 이룬 대서사시적예술화폭으로 남녘겨레들을 반세기에 걸친 반북악몽에서 흔들어 깨우고 북남겨레가 하나가 되는 모습을 보여준 통일열풍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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