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자주통일열풍

 


2) 민족의 공영공리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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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화해와 단합, 번영을 위한 북남경제협력

 

우리 민족끼리 통일시대는 북남사이의 경제협력의 새로운 장을 펼쳐놓았다.

북남경제협력은 민족의 화해와 단합, 조국통일의 숭고한 목적을 하루빨리 실현하고 북과 남의 경제를 균형적으로, 합리적으로 발전시켜 민족의 부강번영을 도모할수 있게 하는 중요한 사업이다. 북남경제협력사업은 우리 민족끼리리념을 구현하여 조국통일과 민족공동의 번영을 위한 애국애족사업이다.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조국통일실현에서 북과 남사이의 경제협력을 강화하는것이 가지는 의의와 중요성을 깊이 통찰하시고 북남경제협력문제도 통이 크게 해결해주시여 민족경제의 균형적발전의 새로운 전망을 펼쳐주시고 그 실현을 위한 사업을 현명하게 이끄시였다.

그리하여 북과 남사이에는 수많은 경제협력사업이 진행되였으며 현실적이면서도 전망적으로 실리가 있는 문제들이 합의되고 실천되여나갔다.

실례로 2000년 8월 제2차 북남상급회담에서 경제협력의 제도적조건보장을 위한 사업을 추진시켜 투자보호, 2중과세방지, 세관, 통신, 검역, 거래상품의 원산지확인 등과 관련한 합의서를 채택발효시켰다.

또한 북과 남은 2005년 7월 개성에서 진행된 북남수산협력분과 1차회의에서 6. 15북남공동선언의 기본정신에 따라 서해상에서의 평화보장과 북남어민들의 공동리익을 실현하기 위한 수산협력문제를 토의하고 서해상에서의 공동어로문제, 수산물생산 및 가공, 류통분야에서의 협력사업문제, 수산부문 기술교류문제, 3국어장진출을 위한 협력문제 등을 담은 합의문을 발표하였다.

그리고 북남농업협력사업의 자연발생성과 분산성을 막기 위하여 2005년 6월에 진행된 제15차 북남상급회담에서 북남농업협력위원회 가동문제를 제기하고 합의하였으며 2005년 8월에 개성에서 북남농업협력위원회 제1차회의를 가지였다.

회의에서 북과 남은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농업협력을 실현해나가기로 합의하고 농업기자재지원문제, 농업과학기술분야협력문제, 축산, 과수, 남새, 잠업, 공예분야에서의 협력문제, 토지 및 생태환경보호를 위한 양묘장조성과 산림병해충구제를 위한 협력문제 등을 담은 합의문을 발표하였다.

이밖에도 2000년 8월 제2차 북남상급회담에서 남측이 제기한 림진강수해방지문제도 남조선인민들의 생활안정과 민족의 공영공리를 위한 사업인것만큼 이에 대한 북남당국사이의 협의를 심화시키기로 하였으며 북남경제협력추진위원회 회의와 림진강수해방지분과회의들에서 합의한대로 수해방지를 위한 큰물통보체계수립 및 산림조성묘목제공문제를 기본으로 추진해나가기로 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평양상봉이후 민족경제의 균형적발전과 공영공리를 위한 북남경제협력사업에 남조선당국은 물론 민간기업인들도 적극 참가할수 있도록 그를 위한 조치들을 하나하나 취해주시였다.

그중에서도 6. 15의 산아로 태여난 개성공업지구는 북남경제협력사업의 대표적결과물이라고 해야 할것이다.

사실 개성공업지구건설의 형성과 발전의 매 갈피갈피마다에는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의 령도의 손길이 깃들어있다.

6. 15공동선언발표이후 남조선의 현대, 삼성을 비롯한 대기업들과 수많은 중소기업가들은 각종 경제협력단체들을 조직하고 다종다양한 협력사업건들을 북측에 제기하면서 저저마다 평양방문을 요구해왔다.

더구나 북남경제협력사업이 당국사이의 사업으로 전환되고 협력대상과 투자의 범위가 넓어진 현실은 경제특구건설문제를 절실히 요구하였다.

6. 15공동선언이 발표된 직후인 주체89(2000)년 6월 29일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 또다시 평양을 방문한 현대그룹 명예회장 정주영일행을 접견해주실 때였다.

접견석상에서 정주영은 민족사에 특기할 력사적인 평양상봉을 마련하시고 온 겨레에게 통일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는 6. 15공동선언을 탄생시키신 위대한 장군님께 감사의 인사를 올리면서 외람되지만 자기가 생각하고있는 경제협력방안들을 말씀드리겠다고 조심스럽게 말하였다.

그는 위대한 장군님께서 북남관계가 험악했던 시기에도 대용단을 내리시여 금강산관광을 하도록 큰 배려를 돌려주시였는데 앞으로 현대가 북에 경제특구를 하나 건설할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주셨으면 한다고 말씀올렸다.

북남경제협력을 민족의 화해와 단합을 이룩하는 중요한 계기로, 민족의 부강번영을 위한 중대사로 간주하고계시는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의 소청을 헤아려 개성에 공업지구를 건설하도록 해주시였다.

어제는 금강산에로의 관광의 길을 열어주시고 오늘은 또 이렇게 개성공업지구건설을 통채로 맡겨주시는 장군님의 대용단에 정주영명예회장은 고마움을 금치 못해하였다.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그후 2000년 8월 지방현지지도의 길에서 남조선 현대아산 회장 정몽헌과 그일행을 접견해주시고 그들에게 개성지역을 공업지구부지로 확정해주시였다.

그리하여 2002년 11월 13일에 개성공업지구를 내올데 대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이, 11월 20일에 개성공업지구법을 채택함에 대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이 각각 발표되고 2003년 6월 28일에는 개성공업지구개발규정이 발표되였다. 이에 토대하여 북과 남은 2003년 6월 30일 온 겨레의 커다란 기대와 관심속에 개성공업지구건설착공식을 성대히 진행하였다.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와 남조선 현대아산관계자들, 그밖에 개성공업지구건설자들이 참가한 가운데 진행된 착공식에서는 먼저 남측의 현황보고가 있은 다음 쌍방의 축하연설들이 있었으며 이어 착공발파가 있었다.

참가자들은 남녘의 하늘가로 메아리쳐 울려가는 발파의 굉음을 들으면서 6. 15공동선언이 안아온 북남경제협력의 위대한 생활력에 대하여 다시금 절감하게 되였으며 앞으로 민족경제협력의 상징답게 개성공업지구건설을 힘있게 추진시켜나갈 결의를 가다듬었다.

개성공업지구건설착공식은 내외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남조선의 언론들은 《개성공단착공은 남북경협의 새시대를 열어놓은 력사적쾌거》라고 하면서 공업지구건설착공식소식을 크게 보도하였으며 세계의 여론도 《조선분단의 상징인 개성이 화해협력의 상징으로 자기의 새 모습을 드러내게 되였다.》고 평하였다.

개성공업지구에 첫삽을 박은 때로부터 거의 1년 반이라는 세월이 흐른 2004년 12월 15일 개성공업지구 현지에서 개성공업지구 첫 제품생산기념식이 진행되게 되였다.

민족경제협력의 상징인 개성공업지구는 조선민족 대 미국과의 대결의 축소판 즉 경제분야에서 조선민족과 미국과의 대결장이기도 하였다.

6. 15공동선언발표이후 우리 민족의 화해와 협력의 분위기를 처음부터 달가와하지 않은 미국은 개성공업지구건설이 론의되던 때부터 이에 간섭해나서면서 남조선당국이 철저히 저들의 승인하에서만 개성공업지구건설을 진척시키도록 강요해나섰다.

미국은 개성공업지구건설을 위한 현지조사 및 부지측정사업이 진행되자 통행에 대한 유엔군사령부의 승인이니 뭐니 하면서 첫걸음부터 빗장을 지르려고 악랄하게 책동하였다.

미국은 2004년 2월 제13차 북남상급회담에서 개성공업지구 시범공장지구건설이 합의되자 남조선당국과의 긴급협의회라는것을 벌려놓고 《테로지원국》에 전략물자를 수출할수 없게 규정한 와쎄나협정을 개성공업지구에 진출하는 남조선기업에도 적용하겠다, 콤퓨터를 비롯한 미국산 부품이 들어간 전략물자의 반입을 불허하겠다고 하면서 못되게 놀아댔다.

미국이 이 날강도적인 와쎄나협정을 휘둘러대며 《북이 남으로부터 반입한 콤퓨터를 군사용으로 전용한다.》느니, 《개성공단에 너무 기대를 가져서는 안된다.》느니 하면서 기종이 낡디낡은 486콤퓨터마저 반출금지항목에 넣는 악행을 저지른것은 공화국에 대한 도전인 동시에 6. 15공동선언에 대한 부정이였고 북과 남의 경제협력사업에 대한 악랄한 간섭행위였다.

남조선의 한 경제전문가는 개성공업지구건설에 대한 미국의 내정간섭적인 행위에 대해 경악을 금할수 없다고 하면서 《미국이 심지어 버섯종균배양설비마저도 군사용으로 전용된다고 반출금지항목에 넣었는데 이런것쯤은 북도 얼마든지 만들수 있는것으로서 이런 식으로 해서는 개성공단사업이 언제 가도 실현될수 없다.》라고 개탄하였다.

우리 민족끼리 하는 경제협력사업과 개성공업지구건설을 파탄시키려는 미국의 책동은 집요한것이였다.

미국은 서울 룡산기지에 있는 군사정전위원회 미국측 성원 20여명을 판문점공동경비구역에 상주시켜 비무장지대에 출입하는 인원들과 물자들에 대한 승인과 허가 등의 업무를 수행하게 될것이라고 하면서 이것은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있는 개성공단사업과 앞으로 추진될 개성륙로관광 등 남북협력사업을 원만히 지원하기 위한것》이라고 뻔뻔스럽게 변명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개성공업지구건설에 빗장을 지르려는 미국의 간섭책동을 반대하여 북과 남, 해외의 온 겨레가 적극 떨쳐나서도록 하시였다.

이에 따라 개성공업지구건설을 맡아하고있는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와 민족경제협력위원회를 비롯한 해당 기관들의 명의로 개성공업지구건설에 대한 미국의 간섭책동을 신랄히 규탄배격하는 담화문들이 련이어 발표되게 되였다.

담화문들에서는 미국이 《테로지원국》에 전략물자를 수출할수 없게 규정한 수출법규를 개성공단에 진출하는 남조선기업에도 적용하겠다고 한데 대하여 언급하고 지난 시기 개성공업지구건설의 초시기부터 통행에 대한 유엔군사령부의 승인이니 뭐니 하며 빗장을 질렀던 미국이 이제는 개성공업지구건설에 직접 간섭하며 본격적으로 장애를 조성하는 단계에 들어섰다는것, 이것은 미국이 우리 공화국에 대한 경제봉쇄와 압살정책의 일환으로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건설하는 개성공업지구에 손을 뻗쳐 이를 완전히 무산시키려 하고있음을 보여주고있다는것, 오늘 미국의 대조선정책은 북에나 남에나 다같이 막대한 피해를 주고있으며 이로써 우리 민족의 통일번영을 가로막는 주되는 장본인이며 불행과 고통의 화근으로서의 미국의 극악한 정체는 더욱 명백히 드러나고있다는것, 현실은 민족경제협력의 본보기를 창조하는 사업도 민족의 자주와 우리 민족끼리의 정신을 떠나서는 생각할수 없다는것을 확증해주고있다는것, 남조선당국은 미국의 정체를 똑바로 보고 진정으로 민족공조의 립장에서 북남사이의 모든 경제협력사업들을 추진해나가야 한다는것 등을 강조하면서 북과 남, 해외의 모든 동포들이 6. 15북남공동선언의 리행과 우리 민족의 화해와 협력에 훼방을 놓는 미국의 책동을 단호히 파탄시키고 민족경제협력의 표본인 개성공업지구건설이 반드시 성공할수 있도록 하기 위해 적극 떨쳐나설것을 호소하였다.

이 호소에 호응하여 남조선의 경제계는 물론 전반적인 민심이 미국의 너절한 내정간섭책동을 강력히 규탄해나섰다.

이렇듯 위대한 장군님의 정력적인 령도에 의하여 개성공업지구건설을 파탄시키려던 미국의 악랄한 책동은 걸음마다 분쇄되게 되였으며 민족의 힘을 모아 세계에 우뚝 솟아오르려는 겨레의 마음을 안고 개성공업지구건설은 보다 힘있게 추진되게 되였다.

경제협력사업의 전과정은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 밝혀주신 우리 민족끼리의 리념에 기초하여 북과 남이 민족경제협력사업을 힘있게 밀고나갈 때 세계에 소리쳐 자랑할만 한 경제강국을 우리 민족의 손으로 능히 일떠세울수 있다는것을 뚜렷이 확증해주고있다.

2

 

이어진 땅길, 하늘길, 바다길

 

6. 15자주통일시대, 우리 민족끼리 통일시대는 둘로 갈라졌던 지맥이 하나로 이어지고 바다길, 하늘길도 열리는 꿈같은 현실을 펼쳐놓았다.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하나의 강토가 미국의 남조선강점으로 두동강이 된채 반세기가 넘는 오랜 세월 겪고있는 분렬의 고통을 누구보다 가슴아파하시며 그를 제거하는데 심혈을 기울이시였다.

철도와 도로는 나라의 동맥이다. 동맥이 막히면 생명유기체의 활동이 위험에 빠지고 그것이 지속되면 생명마저 보존할수 없는것처럼 나라의 동맥인 철도와 도로가 끊기면 민족성원들의 래왕과 접촉이 끊기고 이것이 지속되면 단일민족으로서의 존재도 서서히 사멸될것이다. 때문에 철도와 도로는 한피줄을 이은 겨레들사이에 동포애의 정을 두터이 하고 민족의 뉴대를 공고히 이어주는데서 떼여놓고 생각할수 없는 중요한 부분이다.

그런것만큼 북과 남사이의 철도와 도로를 잇는 문제는 민족의 뉴대를 두터이 하고 공영공리를 도모하는 원칙에서, 끊어진 모든 철도와 도로를 동시에 잇는 원칙에서 진행되여야만 원만히 풀릴수 있는것이다.

그러나 미국과 반통일세력들의 책동으로 하여 6. 15북남공동선언이 발표된지 2년이 다되여오도록 북남철도, 도로련결문제는 회담탁에서만 론의되는 문제로, 여러차례 합의를 해놓고도 실현되지 못하는 문제로 남아있게 되였다.

이러한 비정상적인 사태를 깊이 헤아리신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주체91(2002)년 4월 남측 특사를 접견해주신 자리에서 북남철도, 도로련결문제와 관련한 귀중한 말씀을 주시였다.

북남철도와 도로련결문제가 상정되였을 때였다. 특사는 신의주-서울사이의 철도와 개성-문산사이의 도로련결문제만을 말씀올리였다.

그의 말을 들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신의주-서울사이의 철도만 련결할것이 아니라 동해선철도도 련결하여야 한다, 동해선철도를 련결하여야 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전을 보장할수 있다, 신의주-서울철도만 련결하면 조선땅이 찌그러질수 있다고 의미심장하게 말씀하시였다.

조선땅이 찌그러질수 있다!

깊은 뜻이 담긴 이 한마디의 신통하고 생동한 비유속에 백마디의 타이르심이 있었다.

그것은 동서의 철도를 다 련결하여야 철도가 민족경제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키는데 실질적으로 이바지할수 있으며 실리도 크다는 뜻으로서 민족적리익의 견지에서 하신 가르치심이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숭고한 뜻을 받들어 4월 5일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비서와 남측 특사사이에 두차례에 걸쳐 진행된 회담에서 발표된 공동보도문은 셋째 조항에 다음과 같은 합의내용을 담았다.

《쌍방은 북남사이의 끊어진 철도와 도로를 련결하는것이 중요하다는 인식아래 동해지구에서 새로 동해선철도 및 도로를, 서해지구에서 신의주-서울사이의 철도 및 개성-문산사이의 도로를 빨리 련결하기로 하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애국애족의 결단에 의해 끊어진채 수십년동안 녹쓴 철길과 잡초무성한 도로가 다시 련결된다는 소식에 접한 온 겨레는 감격을 금치 못해하였다.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동강난 철도와 도로, 그것은 민족분렬과 그로 인한 불행과 고통의 상징이였다.

끊어진 두줄기 철길의 침목사이에 아름드리나무들이 뿌리내리고 동강난 도로는 지뢰밭으로 변하여 짐승들도 넘나들지 못하였으니 철도와 도로련결은 말그대로 갈라진 강토의 지맥과 끊어진 민족의 혈맥이 이어지는 통일의 시작이기도 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후 여러차례에 걸쳐 금강산에서 진행되는 북남철도 및 도로련결분과회의사업을 료해하시면서 제기되는 문제들을 모두 풀어주시였다.

그리하여 9월 13일부터 17일까지 금강산에서 북남철도 및 도로련결분과 제1차회의가 성과적으로 진행되여 동해선과 서해선의 철도와 도로련결을 최단기간내에 끝낼수 있는 제반 조치들을 협의하고 합의서를 발표하였다.

2002년 9월 18일 강원도 고성군 금강산청년역과 개성역에서는 력사적인 북남철도련결착공식이 진행되였다.

민족분렬의 비운인양 고삭아 부스러진 침목우에 시뻘겋게 녹물이 오른 두줄기 철길이 뚝 끊기여 반세기이상 종착역 아닌 종착역으로 되였던 동서의 두 역에서는 같은 시간에 철길과 도로를 련결하는 의식이 있었다. 착공식에 참가한 주석단성원들이 공사의 첫삽을 박았다. 이어 통일조국의 새 아침을 불러오는 장쾌한 서곡인양 착공의 발파소리가 높이 울려퍼졌다.

외세가 쌓아놓은 분렬의 장벽을 통채로 날려보내는듯 천지를 진감하며 하늘가 멀리 울려퍼지는 착공의 발파소리, 정녕 이것은 우리 민족끼리의 기치밑에 민족자주의 원칙에서 조국통일을 기어이 이룩하시려는 위대한 장군님의 드팀없는 신념과 의지의 발현이였고 민족의 존엄을 떨치시고 운명을 지켜주시는 민족의 어버이를 우러러 터치는 겨레의 환호성이였다.

온 겨레의 크나큰 관심속에 진행된 착공식은 쌓이고쌓인 민족의 원한과 분렬의 장막을 밀어내고 7천만겨레에게 조국통일의 새로운 희망과 용기를 안겨주는 뜻깊은 계기로, 민족의 혈맥을 잇고 겨레의 힘을 하나로 합쳐 이 땅우에 통일되고 부강번영하는 강성국가를 반드시 일떠세울 우리 인민의 확고부동한 신념과 의지를 과시하는 력사적인 사변으로 되였다.

남조선의 언론들은 《대립과 갈등의 분단 반세기를 넘어 남북협력과 화해의 시대를 연 의미있는 일》, 《뭉클한 감격으로 온몸의 혈관이 박동친다.》 등으로 일제히 착공식소식을 보도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력사적인 착공식이 진행된 다음에도 북남철도, 도로련결사업에 깊은 관심을 돌리시고 이 공사를 중단없이 적극 추진하도록 현명하게 이끄시였다.

하여 2003년 2월 5일 민족분렬사상 처음으로 동해선림시도로가 완공되여 금강산륙로관광을 위한 시험답사가, 2월 14일에는 시범륙로관광이 성과적으로 진행되였고 2월 21일에는 개성-문산사이 림시도로가 개통되여 개성공업지구건설을 위한 현지답사가 진행되였다. 그리고 6월 14일에는 동해선과 서해선철도련결행사를 북과 남이 공동으로 동시에 진행하였다.

드디여 삼천리강토의 지맥이 하나로 이어지게 되였다.

남조선의 《CBS》방송은 북남철도련결행사에 대하여 《지난 1950년 6. 25전쟁으로 끊어진 남북의 철길이 6월 14일 분단의 상징인 군사분계선에서 다시 련결되였다. 군사분계선 바로 아래 옛 장단역자리에는 지난 50년 전쟁당시 북쪽에서 향하던 렬차가 지금도 녹이 쓴채 멈추어 서있다. 이 철도를 통해 앞으로 렬차가 달리는 모습을 다시 볼 날도 머지않아 오게 되였다. …오늘 궤도련결로 렬차가 곧 달릴수 있는것은 아니지만 분단 반세기만에 남북의 혈맥이 다시 이어졌다는데 그 의미가 있다.》라고 전했다. 로씨야의 《엔떼웨TV》는 《조선반도의 북과 남이 철도를 련결하였다. 6월 14일 북남조선이 끊어졌던 반도의 철도를 련결하는 상징적인 의식을 군사분계선에서 진행하였다.》고 하면서 북과 남의 철도련결로 우리의 강토가 하나로 이어진데 대하여 상세히 전하였다.

그로부터 4년후인 2007년 5월 17일 북남철도련결구간 렬차시험운행이 진행되였다.

원한의 분계선을 꿰질러 동해선에서는 북측 렬차가 금강산청년역에서 남측 제진역을 향해, 서해선에서는 남측 렬차가 문산역에서 북측 개성역을 향해 기적소리를 높이 울리며 출발하였다.

민족의 혈맥을 하나로 잇고 화해와 단합, 협력의 대통로를 마련하는 이 경이적인 사변은 땅길에만 펼쳐진것이 아니였다.

6. 15시대에 반드시 나라의 바다길, 하늘길도 하나로 이으실 장군님의 원대한 구상에 따라 민족분렬의 비운이 떠돌던 바다길, 하늘길에도 드디여 민족의 화해와 단합의 뜨거운 열기가 감돌기 시작하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숭고한 민족애와 통이 큰 결단으로 북남해운당국간 유선통신망이 운영되기 시작하였으며 북측선박들의 제주해협을 통한 동서해항행이 실현되고 남측선박들의 인천-해주간 직항로운항과 북측선박들의 해주직항로를 통한 대양에로의 항행도 개시하였다.

또한 서해직항로가 열려져 수많은 사람들이 너도나도 하늘길에 올랐다.

사실 민족이 당하는 고통과 불행을 두고 그토록 가슴아파하시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력사적인 평양상봉을 마련하시던 나날에 벌써 나라의 하늘길을 잇기 위한 작전을 펼치시고 그 실현을 위하여 여러가지 조치를 취해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력사적인 평양상봉에 참가하는 남측대표단의 래왕경로를 서울-평양, 평양-서울직항로로 정해주시고 쌍방 민항실무자들의 접촉을 통해 이를 위한 실무절차문제들을 원만히 해결하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세심한 지도밑에 2000년 6월 쌍방민항관계자들의 실무접촉에서는 서울-평양직항로확정문제, 민항기들의 비행자료문제, 비행지휘문제, 리착륙시안전문제, 비행장기술봉사 등 실무적인 문제들이 협의되였다. 그리하여 위대한 장군님께서 열어주신 첫 하늘길을 따라 2000년 6월 13일 남조선 김대중《대통령》일행이 평양비행장에 도착하는 력사적인 광경이 펼쳐지게 되였다.

그러나 그때까지만 하여도 민족분렬이후 처음으로 있은 비행이 앞으로 민족사에 어떤 광경들을 련이어 재현시킬지는 그 누구도 몰랐다.

북과 남의 동포들은 6. 15공동선언이 발표된 후에야 련이어 날아가고 날아오는 비행기들을 바라보면서 위대한 장군님께서 력사적인 평양상봉의 나날 나라의 하늘길을 하나로 이어주신 그 깊은 뜻을 비로소 알수 있었다.

조국해방 55돐이 되는 2000년 8월 15일, 북녘의 제1차 흩어진 가족, 친척방문단을 태운 비행기가 분렬의 장벽을 날아넘어 처음으로 서울 김포비행장에 내렸다. 북녘동포들을 태우고 왔던 비행기는 잠시후 남녘의 흩어진 가족, 친척방문단을 태우고 다시 평양으로 날았다.

이로써 그토록 갈망해왔던 북남민항기들의 상대측지역에로의 비행력사가 시작되였으며 6. 15가 펼친 하늘길을 따라 한해에만도 수백, 수천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북과 남을 오고갔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남측인사들에게 보내시는 칠보산송이버섯도 이 하늘길을 통해 전달되였으며 조선로동당창건 55돐 경축행사에 참가하는 남조선정당, 단체대표들도 장군님께서 보내주신 비행기를 타고 이 하늘길을 날아 평양에 왔다.

북남상급회담을 비롯한 당국회담 쌍방대표단들과 민족통일대축전대표들, 공화국을 방문하는 남측 기업인들과 수많은 참관단, 관광단성원들, 각이한 예술단과 선수단 등 북과 남의 각계각층 사람들이 하늘길을 리용하였다.

참으로 위대한 장군님께서 열어주신 땅길, 바다길, 하늘길, 그것은 민족의 화해와 단합을 앞당기는 길이였고 통일의 래일을 마중해가는 길이였다.

끊어지고 막혔던 땅길, 바다길, 하늘길로 북과 남의 겨레가 너도나도 북으로, 남으로 오가는 이 벅찬 현실이야말로 우리 민족끼리 통일시대가 안아온 또 하나의 민족사적경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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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적기업가로 내세워주시며

 

진정으로 나라의 통일을 원하고 민족의 평화번영을 바라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손잡아 이끌어주신분이 바로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이시였다.

민족이 잘되고 잘살게 하자는 사람들과는 그 누구와도 언제나 손잡고 참다운 애국의 길로 이끌어주신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현대그룹 정주영명예회장과 그일가를 우리 민족끼리 통일시대와 더불어 민족의 공영공리를 위한 길에 헌신하도록 이끌어주시였다.

정주영이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이나마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무엇인가 이바지하려는 소망을 안고 판문점을 통해 공화국북반부를 방문한 때로부터 두해가 지난 주체89(2000)년 6월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평양을 찾아온 현대그룹 정주영명예회장과 정몽헌회장일행을 또다시 만나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격정에 휩싸여있는 그들일행을 뜨겁게 환영해주시고 그의 건강상태며 기업형편에 대하여 하나하나 료해하시였다. 그러시고는 개성공업지구건설과 금강산관광사업을 비롯한 경제협력사업에서 제기되는 여러가지 문제들을 흔연히 풀어주시였다.

이날 장군님께서는 방북의 길은 정주영명예회장선생이 선참으로 개척하였다고, 명예회장선생은 민족이 화해하는 길을 열어놓은 개척자와 다름없다고, 명예회장선생의 공적은 앞으로 력사에 큰 장을 차지하게 될것이라고 높이 평가하시였다.

장군님의 말씀을 받아안은 명예회장은 감격에 겨워 《고맙습니다, 장군님!》 이렇게 거듭 인사드리였다.

돌이켜보면 그는 수십년세월 《기업으로 민족의 자부심을 높이 세우겠다.》는 나름대로의 신조를 가슴에 품고 살아왔다. 하지만 진정한 애국의 길을 몰랐던탓에 그의 삶은 재벌이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날수 없었다.

기업은 번창했어도 마음은 쪼들렸고 돈은 많아도 옳바로 쓸 곳을 몰랐다.

가진것이 있다면 자기딴의 민족적량심과 기업밖에 없는 자신에게서 한가닥 애국의 싹을 소중히 여기시고 따뜻이 손잡아 북남경제협력의 길, 민족화해의 길로 이끌어주시니 김정일장군님이시야말로 정신적방랑객의 구원자이시고 참애국의 길을 밝혀주신 위대한 스승이시였다.

이렇듯 북남경제협력의 개척자로 높이 평가해주시고 내세워주신 김정일장군님의 크나큰 믿음과 사랑을 받아안은 정주영명예회장과 정몽헌회장은 자기들의 생을 그에 보답하는 길에 바쳤다.

2001년 3월 21일 정주영명예회장은 로환으로 사망하였다.

정주영명예회장이 사망하였다는 소식을 받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못내 애석해하시며 그 즉시 조의표시를 특별히 잘할데 대하여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그러시고도 아픈 가슴을 달랠수 없으시여 3월 22일 자신의 이름으로 정주영명예회장의 유가족들에게 조전을 보내시였다.


정주영선생의 유가족들에게

 

나는 북남사이의 화해와 협력, 민족대단결과 통일애국사업에 기여한 정주영선생의 사망에 즈음하여 현대그룹과 고인의 유가족들에게 심심한 애도의 뜻을 표합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위원장
김 정 일

주체90(2001)년 3월 22일 평양

 

통일애국사업에 이바지한 남녘의 대기업가를 나라와 민족앞에 내세워주시려는 위대한 장군님의 하해같은 은정이 자자구구에 어려있는 조전은 만사람의 가슴을 뜨겁게 달구어주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사랑을 못다 주신것만 같아 3월 23일 고인을 추모하는 조의대표단을 파견할데 대한 특별조치도 취해주시였다. 그리하여 3월 24일 오전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을 단장으로 하는 조의대표단이 북남직항로를 따라 비행기로 서울을 향해 날아가게 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정주영의 사망과 관련하여 분렬사상 처음으로 조의대표단을 파견해주시고 조전과 화환을 보내주신 소식은 남녘땅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다.

남조선언론들은 《김정일위원장 조화를 보내》, 《분단뒤 첫 조문단, 북 최고례우표시》, 《분단사상 첫 남북간 조문단파견》 등으로 대서특필하였으며 각계층 인사들은 장군님의 고매한 덕망에 감탄을 금치 못해하였다. 그러면서 언론들은 남조선에서 《대통령》도 아닌 한 재벌총수의 장례를 국가수반장례처럼 치르면서 전지역적으로 애도분위기에 휩싸인적은 일찌기 없었다고, 이것은 정주영이 김정일장군님과 특별한 인연을 맺고 민족통일을 위한 참다운 인생의 길을 걸은데 그 연원이 있다고 격찬하였다.

장군님께서는 정주영명예회장의 애국적소행을 잊지 않으시고 그가 사망한 후에도 남조선의 현대가 금강산관광활성화를 위한 사업을 계속 추진하도록 조치를 취해주시였고 2003년 4월 평양의 보통강기슭에 체육관이 건설되였을 때에는 류경정주영체육관으로 명명하도록 하시여 그의 이름이 후세에 길이 전해지게 해주시였다.

정몽헌회장에 대한 위대한 장군님의 은정 또한 극진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2000년 8월 9일 북을 방문하고있는 현대아산 정몽헌회장일행과 오찬을 함께 하시며 따뜻한 담화를 나누시였다.

이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개성공업지구건설과 관련한 정몽헌회장일행의 무랍없는 소청도 흔쾌히 들어주시면서 금강산려관보수운영도 현대에서 맡아하라고, 지금 금강산관광배가 공해상으로 에돌아다니는데 경제적실리에 맞게 해상분계선을 넘어 곧추 지나다니도록 승인해주겠다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앞으로 현대마크를 단 배들이 쌍방이 서로 포들을 맞대고 경계하고있는 해상군사분계선지역을 버젓이 오간다면 그만큼 현대의 영상이 높아질것이라고 하시면서 자신께서는 정주영명예회장을 존경한다고 정을 담아 말씀하시였다.

온 겨레를 한품에 안으시고 실리를 보장하고 편의를 도모하는 방향에서 모든 문제를 대하시고 처리하시며 북과 남의 경제협력시대를 개척하는데 기여한 현대를 극력 내세워주기 위해 그토록 마음쓰시는 민족의 위대한 어버이 김정일장군님!

그 품에 안겨 남조선 현대아산 정몽헌일행이 받아안은 실리와 혜택은 얼마나 큰것이였던가.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헤여지기 아쉬워하는 그들에게 9월말경에 금강산지구에서 다시 만날것을 약속하시였다.

그 약속을 잊지 않으시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2000년 9월 30일 현대아산에서 건설한 금강산관광지구 시설들을 돌아보시고 오찬회석상에서 그들이 스스럼없이 제기하는 북남경제협력제안들을 하나하나 들어주시고 북남철도, 도로련결과 내금강개발사업 등을 맡겨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후에도 금강산관광과 개성공업지구건설을 비롯하여 현대에서 진행하는 협력사업에 깊은 관심을 돌리시고 주실수 있는 특권과 특혜들을 다 베풀어주시였으며 남조선의 반통일세력이 현대를 모함하는 《특검》소동을 벌려놓았을 때에는 현대가 끝까지 민족경제협력의 길을 걸어나갈수 있도록 힘을 주고 믿음을 주시였다.

뿐만아니라 2003년 8월 민족화해협력의 개척자의 한사람인 정몽헌회장이 《한나라당》(당시)을 비롯한 반통일세력의 모함에 의해 뜻밖에 사망하였을 때에는 못내 애석해하시면서 심심한 조의를 표시하도록 하시였다.

사상과 제도, 재산의 유무와 신앙의 차이보다도 민족공동의 리익을 첫자리에 놓으시고 민족대단결의 위대한 정치를 펼쳐오신 위대한 장군님의 이렇듯 넓은 도량과 보살피심이 있어 내외반통일세력의 책동이 그 어느때보다 악랄한 속에서도 민족의 화해와 단합, 통일을 위한 경제협력사업은 중단없이 진행될수 있었다.

한번 인연을 맺으면 영원히 변함없이 뜨거운 믿음과 사랑을 안겨주시는 김정일장군님의 따사로운 손길은 그 이후에도 정주영일가에게 끊임없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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