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자주통일열풍
1) 우리 민족끼리의 기치아래
우리 민족끼리 통일의 문을 열자
6. 15북남공동선언의 채택으로 펼쳐진 우리 민족끼리 통일시대, 자주통일시대의 힘찬 발걸음을 격동적인 사변들로 자랑스럽게 내짚은 온 겨레는 커다란 환희속에 새 세기의 첫해인 2001년을 맞이하였다.
그리도 절절하게 통일과 평화를 갈망해왔으며 북남관계개선을 지향해온 온 겨레는 6. 15의 자랑찬 첫걸음이 더욱 줄기차게 이어질것을 바라마지 않고있었다.
2000년에 조국통일의 불멸의 대강을 마련하시고 민족분렬이후 일찌기 없었던 사변들을 안아오시여 겨레의 가슴마다에 통일에 대한 희망과 굳은 확신을 안겨주신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21세기의 첫해인 2001년을 민족자주통일의 획기적국면을 여는 의의깊은 해로 빛내이실 구상을 펼치시고 그 실현을 위한 사업을 이끌어주시였다.
주체90(2001)년 1월 3일이였다.
이날 일군들과 자리를 같이하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한해의 전망을 밝혀주시면서 조국통일과 관련한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우리는 하루빨리 조국을 통일하여야 합니다. 수령님께서는 우리 인민들에게 줄수 있는 최대의 선물은 조국통일이라고 하시면서 조국통일위업에 온갖 심혈과 로고를 다 바치시였습니다. 수령님께서 생애의 마지막시각에 보아주신 문건도 조국통일과 관련한 문건이였습니다.》
위대한 김일성주석의 조국통일유훈을 받들어 통일위업을 기어이 이룩하실 철석의 의지가 어려있는 말씀이였다.
그이의 말씀을 받아안는 순간 일군들은 김일성주석께서 서거하신 바로 그날 수령님의 집무실 책상우에 놓여있는 조국통일과 관련한 문건을 보시고 그토록 절통해하시던 위대한 장군님의 숭엄하신 모습과 함께 판문점을 찾으신 그날 수령님의 친필이 새겨진 통일친필비앞에서 오래도록 발걸음을 멈추시고 기어이 조국통일을 이룩하실 결심을 피력하시던 장군님의 거룩하신 모습이 떠올라 가슴후더워옴을 금할수 없었다.
장군님께서는 말씀을 계속하시였다.
《지난해에 력사적인 평양상봉이 이루어지고 6. 15북남공동선언이 발표된것은 조국통일을 위한 투쟁에서 획기적인 사변으로 됩니다.
조국통일을 실현하는데서 중요한것은 민족적단합을 이룩하는것입니다. 남조선언론사대표단을 만났을 때에도 이야기하였지만 6. 15북남공동선언을 지지하는 사람이라면 과거를 묻지 말고 다 손을 잡아야 합니다. …수령님께서는 지난날 〈반공〉을 하던 사람들도 조국통일의 길에 나서겠다고 하면 대담하게 포섭하시였습니다. 우리는 조국통일을 위하여 나서는 사람들은 다 포섭하여 민족적단합을 이룩하여야 합니다.》
새해에 민족의 통일운동을 힘있게 전진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민족적단합을 이룩하여야 하였다. 온 겨레가 외세에 의해 반세기이상 분렬의 고통과 불행을 겪어온데는 우리 민족이 단합하지 못한것과 적지 않게 관련되여있었다. 사상과 리념, 제도와 거주지역, 주의주장이 다르다고 하여 서로 반목질시하고 불신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에 대해 깊이 헤아리시고 우리 민족은 반드시 모든 차이를 초월하여 민족대의를 앞세우고 단합하여야 하며 또 능히 단합할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시고 력사적인 평양상봉에서 우리 민족끼리라는 통일의 대명제를 밝히시였다.
민족적단합은 력사적인 평양상봉의 핵이였고 6. 15북남공동선언의 종자였으며 그것은 우리 민족끼리라는 대명제로 새롭게 규정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력사적인 평양상봉과 6. 15북남공동선언을 통하여 확인된 새로운 민족단합의 리념인 우리 민족끼리에 기초하여 온 민족의 대단결을 새로운 높은 경지에 올려세움으로써 새 세기의 가까운 앞날에 조국통일위업을 반드시 이룩하시려는 굳은 의지를 피력하시였던것이다.
새해벽두에 6. 15북남공동선언의 기치아래 온 민족의 힘을 하나로 묶어세워 하루빨리 조국을 통일할 의지를 다시금 엄숙히 천명하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우리 민족끼리 통일의 문을 여는 2001년대회를 소집하고 이 대회에서 2001년을 통일의 문을 여는 해로 빛내이기 위한 획기적인 조치들을 취하도록 하시였다.
이에 따라 1월 10일 평양에서는 우리 민족끼리 통일의 문을 여는 2001년대회가 성대히 진행되였다.
공화국정부, 정당, 단체와 각계 인사들이 참가한 가운데 진행된 대회에서는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자주적평화통일의 획기적국면을 열어나갈데 대한 문제를 토의하였다.
대회는 6. 15북남공동선언이 조국통일의 3대원칙에 기초하고있는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선언이며 조국통일의 리정표라는것을 다시금 확인하고 그것을 철저히 리행하기 위한 과업과 방도들을 제기하였다. 그러면서 6. 15북남공동선언에 대한 태도는 곧 조국통일문제에 대한 태도로 되며 북남공동선언을 리행하는데서는 북과 남, 당국과 민간, 여야가 따로 있을수 없다고 하면서 7천만겨레가 북남공동선언을 리행하는데서 주인이 되여야 하며 바로 여기에 우리 민족끼리 통일의 문을 여는 비결이 있다고 강조하였다.
대회에서는 그 실천적조치로서 21세기의 첫해인 2001년을 《우리 민족끼리 통일의 문을 여는 해》로 정할것을 제의하였으며 북남공동선언이 발표된 6월 15일부터 8. 15해방의 날까지를 6. 15-8. 15민족통일촉진운동기간으로 설정하고 이 기간에 조국통일운동에서 새로운 앙양을 일으킴으로써 민족의 한결같은 조국통일의지와 단합된 모습을 내외에 과시하며 21세기의 첫 해방의 날을 전민족적인 통일대축전으로 빛나게 장식할것을 열렬히 호소하였다.
이어 《7천만겨레에게 보내는 호소문》을 채택하였다.
우리 민족끼리 통일의 문을 여는 2001년대회의 제안과 호소는 6. 15공동선언을 리행하여 기어이 우리 민족자체의 힘으로 조국통일위업을 이룩하려는 겨레의 한결같은 의지를 반영한것으로 하여 내외의 적극적인 지지와 찬동을 불러일으켰다.
전파를 타고 대회소식이 전해지기 바쁘게 대회의 제안을 지지하여 1월 11일에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총련) 중앙상임위원회 부의장, 재중조선인총련합회 의장의 담화가 발표되였으며 12일에는 남조선의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의 성명이 나오고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민주평통)의 보도자료가 발표되였다. 그뒤를 이어 남조선과 해외동포들속에서 대회의 제안을 지지하는 성명과 담화들이 련이어 나오고 결의대회를 비롯한 여러가지 모임들이 널리 벌어졌다.
범민련 남측본부를 비롯한 남조선의 통일운동단체들과 각계 인사들은 공화국의 제안을 《민족의 힘을 하나로 모으는 중요한 제기》, 《6. 15공동선언의 의미를 재확인하고 충실한 리행의지를 밝힌》 제기로 적극 지지하면서 그 실현을 위해 최선을 다할 립장을 표명하였다. 그리고 총련과 그 산하단체들, 재중조선인총련합회와 그 산하 각 지구협회들, 국제고통련과 범민련 독립국가협동체지역본부, 각 공화국 고통련조직들, 재미동포전국련합회와 그 산하 지역조직들, 범민련 유럽지역본부와 자주민주통일아메리카련합을 비롯한 해외교포조직들과 각계 동포들이 6. 15북남공동선언리행을 위한 조국통일대행진에 적극 떨쳐나설것을 굳게 다짐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전세계 근로자들의 국제적명절인 5. 1절에 즈음하여 북남로동자들의 통일대회를 가지도록 하시고 뒤이어 북남농민대회를 성과적으로 진행하여 우리 민족끼리 통일의 문을 여는 2001년에 북과 남의 계층별련대련합을 강화하도록 하시였다.
이밖에도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6. 15북남공동선언발표 1돐을 민족적단합과 민족의 통일열기를 더욱 고조시키는 중요한 계기로 되게 하실 구상을 안으시고 5월 16일에 6. 15북남공동선언발표 1돐 기념행사와 관련한 여러가지 조치도 취해주시였다.
이에 따라 2001년 5월 28일 평양에서는 공화국정당, 단체합동회의가 소집되였다. 회의에서는 6. 15북남공동선언발표 1돐에 즈음하여 금강산에서 북과 남, 해외의 각계각층이 참가하는 민족통일대토론회를 성대히 진행하며 북과 남, 해외에서 각기 의의있는 행사들을 널리 조직하고 8. 15까지 민족통일촉진운동을 계속 힘있게 벌려나갈데 대한 문제가 토의되였으며 력사적인 6. 15공동선언발표 1돐과 6. 15-8. 15민족통일촉진운동기간에 할 제반 사업과 행사를 겨레의 지향과 요구에 맞게 성과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6. 15-8. 15민족통일촉진운동을 위한 북측준비위원회를 내올것을 결정하였다.
공화국정당, 단체합동회의소식이 전해지자 북과 남, 해외에서 합동회의제안을 지지하는 목소리가 높이 울려퍼지고 6. 15공동선언발표 1돐을 기념하는 각종 행사들이 진행되였다.
남조선에서는 6. 15남북공동선언실천을 위한 2001민족공동행사추진본부와 재야단체들이 단일기구를 구성하였으며 범민련 남측본부와 《한총련》 등 40여개 학생, 시민단체들로 구성된 6. 15남북공동선언실현과 《한》반도평화를 위한 통일련대(통일련대)가 6월 3일 서울에서 1만여명의 참가밑에 6. 15남북공동선언실천 범국민대회를 가지고 대학로에서 종묘공원까지 시위를 진행하였다.
일본과 중국, 로씨야를 비롯한 세계 여러 지역의 해외동포들도 보고회와 집회, 영화감상회와 예술축전, 음악회들을 널리 조직하였다. 미국에서도 로스안젤스, 뉴욕, 시카고, 보스톤 등 미국 전지역에서 온 각계 동포단체대표들, 개별인사 수백명이 참가한 가운데 6. 15북남공동선언실현 아메리카주동포통일축전이 뜻깊게 진행되였다.
공화국에서는 6월 14일 북남공동선언발표 1돐기념 평양시보고회가 성대히 열리고 《로동신문》에 기념사설 《6. 15북남공동선언의 기치따라 조국통일위업을 실현해나가자》가 크게 실렸으며 북남공동사진전시회 《백두에서 한나까지》가 개막되였다.
북과 남, 해외에서 다양한 통일행사들이 련일 진행되는 가운데 드디여 6월 15일 금강산에서는 《6. 15공동선언과 민족의 과제》라는 주제로 6. 15공동선언발표 1돐기념 민족통일대토론회가 성대히 진행되였다. 여기에는 공화국의 정당, 단체대표 200여명과 남조선의 정당, 단체대표 200여명, 세계 각 지역의 해외동포대표단과 대표 20명 그리고 방청으로 각계 인사 250여명이 참가하였다.
《아리랑》의 선률속에 대형통일기발이 게양된데 이어 토론회개최가 선언되고 북남대표단 단장들의 축하연설과 토론들이 진행되였다.
토론자들은 한결같이 6. 15공동선언은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선언이며 새 세기 우리 민족이 틀어쥐고나가야 할 조국통일의 기치로, 리정표로 된다고 강조하면서 민족의 단합된 힘으로 6. 15공동선언을 철저히 리행하기 위한 실천적문제들을 언급하였다. 그들은 통일문제를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풀어나가려는 확고한 립장을 견지하며 민족적존엄과 민족의 리익을 첫자리에 놓고 사상과 리념, 제도의 차이를 초월하여 굳게 단결하며 북과 남, 해외의 각계층 단체들과 인사들이 련대, 련합을 적극 실현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6. 15공동선언을 삶의 목표로 삼고 조국통일위업수행에 헌신하려는 토론자들과 그에 호응하여 열광적인 박수를 보내는 참가자들의 마음과 마음이 한데 어울려 토론회장은 말그대로 통일열기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토론회에서는 6. 15공동선언발표 1돐기념 민족통일대토론회 공동보도문과 일본당국의 력사외곡책동을 규탄하는 공동성명이 채택되였다.
온 민족의 커다란 관심과 기대속에 진행된 6. 15공동선언발표 1돐기념 민족통일대토론회는 북과 남, 해외의 각당, 각 단체대표들과 각계 인사들이 한자리에 모여 우리 민족끼리의 통일의지를 가다듬은 력사적인 회합이였다.
하기에 남조선의 신문, 통신들은 6. 15공동선언발표 1돐기념 민족통일대토론회를 가리켜 《50여년만에 열린 남북련석회의》, 《남북련석회의이후 가장 큰 규모의 회합》이였다고 평하였다.
이렇듯 2001년을 민족자주통일의 획기적국면이 열리는 뜻깊은 해로 빛내이실 위대한 장군님의 철석의 의지와 신념에 의하여 북과 남, 해외에서는 실정에 맞는 다양한 통일행사들이 벌어졌으며 이를 계기로 겨레의 통일열기는 급격히 고조되여갔다.
민족주의에 대한 옳바른 리해를 주다
우리 민족끼리의 기치를 높이 들고 통일에로 나아가는 민족의 앞길에는 의연히 애로와 난관이 가로놓여있었다.
화해와 단합의 길로 나아가는 북남관계의 발전을 두고 저들의 대조선압살정책에 심각한 위기를 느낀 부쉬행정부는 북남관계와 조선반도정세를 극도로 긴장시켜 6. 15공동선언발표이전의 대결상태로 되돌려세움으로써 우리 민족의 자주통일기운을 차단말하고 더 나아가서 우리 공화국을 힘으로 압살하려고 하였다.
또한 내외의 반통일세력은 우리 민족끼리의 리념이 마치도 그 무슨 《적화통일전략》인듯이 외곡비방하면서 민족내부에 쐐기를 박기 위해 악랄하게 책동하고있었다.
현실은 북과 남, 해외의 온 겨레가 그 어느때보다도 우리 민족끼리의 기치를 높이 들고 더욱 굳게 단결할것을 요구하였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 민족끼리의 리념을 옹호고수하고 실현하기 위한 사상적기초를 옳바로 밝히는것이 더없이 중요한 문제로 나섰다.
이러한 실태를 깊이 통찰하신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주체91(2002)년 2월 불후의 고전적로작 《민족주의에 대한 옳바른 리해를 가질데 대하여》를 발표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로작에서 민족주의에 관한 주체의 사상리론을 집대성하심으로써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고 귀중히 여기는 사람이라면 누구를 막론하고 우리 민족끼리의 기치밑에 모여와 통일애국의 대하에 합류할수 있는 리론실천적무기를 안겨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로작에서 우선 민족주의에 대한 주체적해명을 주시였다.
민족주의는 민족이 형성되고 발전하는데 따라 민족의 리익을 옹호하는 사상으로 발생하였다. 민족의 형성시기는 민족마다 다르지만 매개 민족은 피줄과 언어, 지역과 문화생활의 공통성에 기초하여 력사적으로 형성되고 공고화된 사회적집단이며 여러 계급, 계층들로 이루어졌다. 이로부터 사람들은 계급, 계층의 성원인 동시에 민족의 성원으로 되며 계급성과 함께 민족성을 가지게 된다. 이 계급성과 민족성, 계급적요구와 민족적요구의 호상관계를 바로 리해하는것은 민족주의에 대한 옳바른 리해의 출발점으로 된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로작에서 계급성과 민족성, 계급적요구와 민족적요구는 뗄수 없이 밀접히 련관되여있다고, 물론 민족을 이루는 계급, 계층은 그들의 각이한 사회경제적처지로부터 계급적요구와 리해관계가 서로 다르지만 계급, 계층의 리해관계를 초월하여 민족의 자주성과 민족성을 옹호고수하고 민족의 륭성번영을 이룩하는데 대해서는 민족성원들이 다같이 공통된 리해관계를 가진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언급하시였다.
《자기 민족을 사랑하고 민족의 특성과 리익을 귀중히 여기며 민족의 륭성번영을 지향하는것은 민족성원들의 공통된 사상감정이며 심리입니다. 민족성원들의 이러한 사상감정과 심리를 반영한것이 바로 민족주의입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사람들이 민족국가를 단위로 하여 살며 운명을 개척해나가는 조건에서 진정한 민족주의는 곧 애국주의로 된다고 하시며 민족의 리익을 옹호하는 사상, 애국애족의 사상이라는데 민족주의의 진보성이 있다고 밝히시였다.
지난 시기 민족주의는 민족의 형성발전과 함께 진보적인 사상으로 발생하였으나 부르죠아지의 리익을 옹호하는 사상으로 인식되였다. 봉건을 반대하는 민족운동시기에 신흥부르죠아지들이 민족주의의 기치를 들고 그 선두에 섰던것으로 하여 인민대중의 리익과 신흥부르죠아지의 리익이 기본적으로 일치하였으며 따라서 신흥부르죠아지가 든 민족주의의 기치가 민족공동의 리익을 반영하는것으로 되였다. 부르죠아혁명이 승리한 후 자본주의가 발전하고 부르죠아지가 반동적지배계급으로 되면서 민족주의는 부르죠아계급의 리익을 옹호하는 수단으로 리용되였다. 부르죠아계급이 자기의 계급적리익을 민족적리익으로 위장하여 민족주의를 계급적지배를 실현하는 사상적수단으로 리용함으로써 민족주의는 사람들속에서 민족의 리익과 배치되는 부르죠아사상으로 인식되게 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민족을 사랑하고 민족의 리익을 옹호하는 진정한 민족주의와 부르죠아계급의 리익을 옹호하는 부르죠아민족주의를 갈라보아야 한다고 하시면서 부르죠아민족주의의 반동적본질을 발가놓으시였다.
그러시면서 선행한 로동계급의 혁명리론에서 민족주의에 대한 옳바른 해명을 주지 못한데 대하여서와 민족주의를 반사회주의적사상조류로, 공산주의와 량립될수 없는 사상인것처럼 보는것은 잘못된 견해라고 하시면서 이렇게 언급하시였다.
《애국애족은 공산주의와 민족주의에 공통적인 사상감정이며 여기에 공산주의와 민족주의가 련합할수 있는 사상적기초가 있습니다.》
참으로 마디마디 민족대단합의 심원한 진리가 새겨져있는 귀중한 가르치심이였다.
북과 남에는 서로 다른 사상과 제도, 정견과 신앙이 존재한다.
그러나 민족이라는 하나의 울타리안에 있는 단일민족으로서 민족을 사랑하고 민족의 리익을 귀중히 여기는것은 민족의 한 성원으로서의 공통된 사상감정이다.
애국애족이 공산주의와 민족주의가 단합할수 있는 사상적기초라는 장군님의 말씀이야말로 과거 민족주의에 대한 잘못된 리해로부터 공산주의와 민족주의를 서로 상반되는 개념처럼 생각하며 반목질시하던 대결의 그늘에 던져진 재생의 빛이였으며 민족내부에 반목과 불화의 쐐기를 박으려고 공산주의와 민족주의사이에 넘을수 없는 심연이 있는것처럼 떠벌이던 제국주의자들과 반동들의 궤변에 내리는 사형선고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민족주의는 국제주의와도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고 하시면서 민족주의를 떠난 국제주의란 사실상 아무런 의의도 없으며 자기 나라, 자기 민족의 운명에 대하여 무관심한 사람이 국제주의에 충실할수 없다고 지적하시였다.
장군님께서는 로작에서 또한 위대한 수령님은 가장 견결한 공산주의자이시면서 절세의 애국자, 진정한 민족주의자이시였으며 국제주의자의 귀감이시라고 하시면서 수령님의 한없이 넓은 도량과 고매한 인품에 이끌려 수많은 민족주의자들이 떳떳하지 못한 과거와 결별하고 민족적단합과 조국통일을 위한 애국의 길에 나섰다는데 대하여 지적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자신께서도 역시 수령님께서 밝히신바와 같이 참다운 혁명가, 공산주의자가 되려면 열렬한 애국자, 진정한 민족주의자가 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고, 우리는 위대한 수령님의 애국, 애족, 애민의 숭고한 사상을 그대로 이어나가고있으며 광폭정치로 민족의 각계각층을 하나로 묶어세우고 그들을 애국의 한길로 이끌기 위하여 모든 노력을 다하고있다고 지적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로작에서 다음으로 제국주의자들의 《세계화》, 《일체화》책동을 단호히 반대배격하며 우리 민족의 우수한 민족성을 살리고 민족의 자주성을 옹호고수할데 대하여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우리는 제국주의자들의 <세계화>, <일체화>책동을 단호히 반대배격하여야 하며 우리 민족의 우수한 민족성을 살리고 민족의 자주성을 옹호고수하기 위하여 견결히 투쟁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조선민족제일주의에 대하여 자주 강조하는것도 민족성을 살리고 민족의 자주성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오늘날 민족주의를 반대하고 민족의 자주적발전을 가로막는것은 다름아닌 제국주의자들이다. 제국주의자들은 저들의 지배주의적야망을 실현하기 위하여 《세계화》, 《일체화》의 간판을 들고 교활하게 책동하고있다. 제국주의자들은 과학과 기술이 급속히 발전하고 나라들사이의 경제교류가 세계적범위에서 활발히 진행되고있는 오늘의 조건에서 자주적인 민족독립국가건설리념이나 조국애, 민족애 같은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민족적편견》이며 《세계화》, 《일체화》가 시대의 흐름이라고 떠들고있다.
매개 나라와 민족들이 자기의 사상과 제도, 자기의 문화를 가지고 자기 운명을 개척해나가는 오늘의 세계에서 정치, 경제, 사상문화를 포괄하는 세계의 《일체화》란 있을수 없다.
미제국주의자들의 《세계화》, 《일체화》책동은 세계를 미국식《자유세계》, 《민주주의세계》로 만들어 저들이 모든 나라와 민족들을 지배하고 예속시키자는것이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현시대는 자주성의 시대이며 제국주의자들의 《세계화》, 《일체화》책동은 자주성을 지향하는 세계인민들의 줄기찬 투쟁에 의하여 파산을 면치 못하게 될것이라고 하시면서 우리는 제국주의자들의 《세계화》, 《일체화》책동을 단호히 반대배격하며 우리 민족의 우수한 민족성을 살리고 민족의 자주성을 옹호고수하기 위하여 견결히 투쟁하여야 한다고 지적하시였다. 그러시면서 현시기 민족의 자주성을 옹호하고 실현하는데서 우리앞에 나서는 가장 중요한 과업은 조국을 통일하는것이라고 언명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6. 15북남공동선언에는 조국통일문제를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풀어나가기 위한 원칙과 방도들이 전면적으로 밝혀져있다고 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북남공동선언은 <우리 민족끼리>의 리념에 기초하고 애국애족의 정신으로 일관된 민족단합의 강령이며 조국통일의 대강입니다. 북남공동선언을 지지옹호하고 철저히 리행하는 여기에 자주와 평화, 조국통일의 근본담보가 있습니다.》
장군님의 이 명제에는 민족의 리익을 옹호하는 사상, 애국애족의 사상인 민족주의가 6. 15통일시대의 민족단합의 강령이며 조국통일의 대강인 우리 민족끼리의 리념을 옹호고수하고 실현하기 위한 사상리론적기초로 된다는 심오한 뜻이 담겨져있다.
우리 민족끼리의 리념은 외세의 간섭이 없이 우리 민족자신이 주인이 되고 힘을 합쳐 나라의 통일문제를 자주적으로, 평화적으로, 민족대단결의 원칙에서 풀어나가는 민족자주사상의 구현이다. 다시말하여 민족을 사랑하고 민족의 리익을 옹호하는 모든 사람들이 힘을 합쳐 나라의 통일문제를 풀어나가는 민족적기치이다.
이것은 애국애족의 사상인 진정한 민족주의가 다름아닌 우리민족끼리리념의 사상적바탕으로 된다는것을 말해준다.
위대한 장군님에 의해 진정한 민족주의가 자기 민족을 사랑하고 민족의 리익을 옹호하는 사상, 애국애족의 사상으로 정립됨으로써 우리민족끼리리념의 정당성을 론증하는 사상리론적기초가 마련되게 되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불후의 고전적로작 《민족주의에 대한 옳바른 리해를 가질데 대하여》는 온 민족을 진정한 민족주의의 구현인 우리 민족끼리의 리념을 실현하기 위한 통일애국운동에로 힘있게 고무추동하는 불멸의 기치로 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밝히신 민족주의사상에 의하여 민족주의에 대한 지난날의 편견적이고 교조주의적인 인식의 낡은 울타리에 얽매여 통일운동의 거족적인 대하에 뛰여들기를 주저하던 사람들도 진정한 애국의 길, 통일의 길에 가슴펴고 나설수 있게 되였다.
이렇듯 사상리론의 영재이시며 절세의 애국자이신 위대한 장군님에 의하여 민족주의는 온 겨레를 민족대단합의 대하에 합류시키는 민족적리념으로 확고히 자리잡게 되였다.
통일을 위한 대화와 협상이 되도록
북과 남사이의 대화와 협상을 시대의 요구에 맞게 새롭게 발전시키는것은 민족적단합과 조국통일을 이룩하기 위한 중요한 방도의 하나이다.
우리 민족내부에 비록 사상과 리념, 정견과 신앙에서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북과 남, 해외의 모든 동포들이 서로 속을 터놓고 마주앉아 대화와 협상을 해나가면 서로의 리해와 신뢰를 두터이 하고 민족공동의 목적을 위하여 뜻과 힘을 합칠수 있다.
평양상봉을 통하여 지난 시기에는 볼수 없었던 북남당국간의 활발한 대화와 협상이 이루어지게 되였다.
그러나 대화와 협상이 지난날의 불신과 대결의 낡은 타성에서 하루아침에 벗어난다는것은 쉬운 일이 아니였다.
더구나 지금껏 동족을 멀리하고 외세공조에만 매달려온 남조선당국과 우리 민족끼리의 정신에 기초하여 진실로 통일문제를 론한다는것은 결코 헐한 일이 아니였다.
2001년에 접어들면서 좋게 발전하던 북남관계는 또다시 긴장한 대결분위기로 바뀌였으며 이것은 북남상급회담에 어두운 그늘을 던지였다.
미국과 그에 추종하는 반통일세력의 악랄한 간섭책동때문이였다. 대통령선거당시부터 대조선강경정책을 부르짖던 부쉬와 그 일당은 집권 첫날부터 공화국의 있지도 않는 핵《위협》설을 내걸고 호전적인 폭언을 거리낌없이 줴치였으며 공화국을 《불량배국가》, 《테로지원국》으로 모해하면서 반공화국압살책동의 도수를 높이였다.
남조선당국은 민족공조보다 외세와의 공조를 중시하면서 6. 15북남공동선언에 배치되는 그 무슨 《포괄적상호주의》라는것을 들고나왔다. 한편 반통일세력은 《안보》와 《공조》를 내걸고 《주적》론을 펴면서 미국의 반공화국압살기도에 가담해나섰다.
더우기 미국에서 일어난 9.11사건을 계기로 남조선당국자들은 북의 그 무슨 《도발가능성》이니, 《주적》이니 하고 떠들면서 비상경계조치까지 취하고 무력증강과 전쟁연습에 매여달렸다.
이러한 긴장한 정세의 흐름을 타고 서울에서 제5차 북남상급회담이 진행되였으며 뒤이어 2001년 11월 9일부터 14일까지 금강산에서 제6차 북남상급회담이 개최되게 되였다.
제6차회담은 누가 진실로 6. 15공동선언을 존중하고 성실히 리행해나가며 누가 그것을 부정하고 북남관계발전에 훼방을 놀고있는가를 다시금 뚜렷이 확증해주었다.
회담에서 남측은 북남관계를 엄중한 상태에 빠뜨린 저들의 행위를 시인, 사죄할 대신 오히려 인위적인 난관만을 조성하였다.
남측 수석대표는 회담시작부터 결실없이 돌아갈것도 생각하고 왔다느니 하면서 회담을 파탄시키기 위한 기도를 공공연히 드러내고 쌍방 실무자들이 여러날동안 밤을 새워가며 진지하게 론의하고 합의한 사항들마저 순간에 뒤집어놓는 매우 불손한 행동도 서슴지 않았다.
제6차 상급회담은 북남대화력사에 있어보지 못한 5박6일간의 긴 회담으로 기록되였으나 흩어진 가족, 친척방문단교환사업을 비롯하여 중요한 사항들을 합의하고서도 남측 수석대표가 그것을 뒤집어놓음으로써 결국 결실없는 회담으로 되고말았다.
북남사이의 긴장상태는 2002년 봄기운이 짙어가도록 풀리지 못하고있었다.
6. 15시대가 앞으로 계속 전진하느냐 아니면 대결시대로 되돌아가느냐 하는 갈림길에서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북남관계가 침체상태에 빠져들어가고 조미관계를 비롯한 대내외정세가 복잡한 속에서도 천재적예지와 탁월한 령도로 북과 남이 력사적인 6. 15공동선언을 굳건히 고수하며 화해와 단합, 통일에로 나가도록 정력적으로 이끌어주시였다.
주체91(2002)년 4월 4일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평양을 방문한 남측 특사일행을 만나주시고 오랜 시간 진지한 담화를 나누시였다.
이날 장군님께서는 6. 15북남공동선언의 기본정신을 존중할데 대하여, 미국과 반통일세력의 악랄한 책동으로 조선반도에 조성된 위기사태를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풀어나갈데 대하여, 당면하여 북남관계를 원상회복할데 대한 문제를 비롯한 6. 15북남공동선언을 철저히 리행하는데서 나서는 원칙적인 요구들을 하나하나 밝혀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만찬회석상에서도 6. 15공동선언의 기본정신에 배치되게 행동한 그들을 책망하실 대신 너그러운 아량으로 대해주시면서 우리 민족끼리의 리념을 다시금 되새겨주시였으며 그들이 제기하는 북남상급회담재개문제와 흩어진 가족, 친척상봉문제, 특사의 평양방문과 관련한 공동보도문작성문제에 대해서도 명쾌한 대답을 주시였다.
남측 특사는 우리 민족끼리의 리념에 따라 조국통일을 기어이 실현하고 민족공동의 번영을 이룩하시려는 김정일장군님의 확고한 의지앞에 머리를 숙이지 않을수 없었다.
다음날 남측 특사일행은 위대한 장군님의 넓으신 도량과 대용단으로 마련된 4.5공동보도문을 받아안고 판문점을 넘어 서울로 돌아갔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남측 특사일행을 몸소 접견해주신 소식은 즉시에 내외의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남조선잡지 《민》은 《미국의 대북적대정책과 전쟁위협으로 발단된 북미간의 초강경대립은 김대중정부의 대미의존정책과 반통일세력의 부채질과 어울려 남북의 대화마저 중단시킨것이다. 끝을 파악할수 없었던 남북의 소강국면은 4월 3일부터 6일까지 림동원특사의 방북과 특사회담, 김정일국방위원장 면담을 통해 극적으로 돌파했다.》고 전했다.
또한 남조선의 《로동일보》는 《얼어붙었던 남북관계에 다시 해볕이 비치기 시작, 남북사이에 합의된 공동보도문이 이같은 분위기를 잘 말해주고있다. 남북 량측은 이번 회담에서 민족공조냐 외세와의 공조냐 하는 문제로 많은 론쟁을 벌린것으로 알려졌다. 민족의 미래를 외세의 손에 맡길수 없다는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따라서 민족공조가 남북문제해결의 근간이 되여야 한다.》고 하면서 남조선당국이 외세공조가 아니라 민족공조를 우선시하는 길로 방향전환을 할것을 촉구하였다.
6. 15북남공동선언발표이전의 대결관계로 되돌아갈번 했던 북남관계는 위대한 장군님의 남측 특사접견을 계기로 다시 화해와 단합의 분위기를 맞이하게 되였다. 그 흐름을 따라 4월말부터 5월초까지 제4차 흩어진 가족, 친척상봉이 진행되였고 남조선 제주도민회대표들이 평양을 방문하였으며 동해선 및 서해선 북남철도련결을 위한 착공식과 북남개천절공동행사가 진행되는 등 북남사이의 화해와 교류분위기가 다시 고조되였다.
제6차 북남상급회담이 있은지 9개월만인 2002년 8월 12일부터 14일까지 서울에서 제7차 북남상급회담이 진행되였다.
회담에서 쌍방은 력사적인 6. 15북남공동선언을 확고히 리행해나갈 의지를 확인하였으며 2002년 4월 5일의 공동보도문과 그밖에 서로 관심하는 문제들을 실천해나가기 위한 대책을 협의하고 10개 조항의 공동보도문을 발표하였다.
공동보도문에서 쌍방은 북남경제협력추진위원회 제2차회의를 8월 26일부터 29일까지 서울에서 개최하고 여기에서 북남철도 및 도로련결문제, 개성공업지구건설문제, 림진강수해방지문제와 그밖의 경제협력문제들에 대해 협의하기로 하였으며 북남철도 및 도로련결을 위한 군사적보장조치를 시급히 취하며 쌍방 군사당국자간 회담을 빠른 시일안에 가지도록 각기 자기측 군사당국에 건의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흩어진 가족, 친척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북남적십자회담문제, 금강산관광활성화를 위한 당국회담문제 등 여러 문제에 합의했음을 밝히였다.
이처럼 내외의 커다란 관심과 기대속에 6. 15북남공동선언발표이후 2007년 7월까지 북남당국사이에는 21차의 상급회담과 13차의 경제협력추진위원회 회의 그리고 8차의 적십자회담과 6차의 장령급군사회담을 비롯하여 무려 140여차의 회담과 접촉이 진행되였으며 거의 모든 회담들에서 매번 합의문건이 채택되였다. 이것은 북남대화력사에 전례없는 기록으로서 1971년부터 6. 15북남공동선언채택이전까지 무려 29년간 346회의 회담에서 북과 남이 35건의 합의를 이루어냈다는 사실과 비교해볼 때 6. 15공동선언채택이후 북남대화에서 얼마나 놀라운 성과가 이룩되였는가를 잘 알수 있게 한다.
회담은 그후에도 2008년 《실용정권》이 출현하기 전까지 계속 진행되였다.
참으로 온 겨레를 한품에 안아 민족자주, 민족대단합의 길로 이끌어주시는 위대한 장군님께서 계시여 대결과 불신이 지배적이던 북남대화와 협상분위기가 우리 민족끼리의 리념밑에 화해와 협력을 지향하는 대화분위기로, 조국통일에 이바지하는 실질적인 회담으로 되여 우리 겨레에게 통일의 희망과 확신을 안겨주게 되였다.
자료
조국통일3대헌장기념탑
평양시 통일거리 남쪽입구의 평양-개성고속도로를 중심축으로 하여 10여만㎡의 드넓은 부지에 궁륭식으로 특색있게 건립된 조국통일3대헌장기념탑은 민족적색채가 넘치는 탑신과 부주제군상들이 부각되여있는 기단이 조형예술적으로 완벽한 조화를 이룬 기념비적창조물이다.
도로의 좌우 량옆으로부터 금시라도 얼싸안고 통일만세를 부를듯 두팔을 힘껏 뻗쳐 조선지도가 새겨진 3대헌장마크를 높이 받들어올리는 조선옷차림의 두 녀인의 열정적이고 환희에 넘친 모습을 형상한 탑신의 높이는 30m로서 3대헌장이 조국통일의 불멸의 기치이라는 의미가 담겨져있다.
기념탑의 너비는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조국을 자주적으로 통일할것을 약속한 력사적인 6. 15북남공동선언을 상징하여 61.5m로 되여있고 무게는 7천만 우리 겨레의 통일의지를 반영하여 7 000t으로 되여있다.
명제비의 비돌에는 다음과 같은 위대한 김일성주석의 명제가 정중히 새겨져있다.
《조국을 통일하려면 그가 북에 살건 남에 살건 해외에 살건 관계없이 온 겨레가 통일운동에 떨쳐나서야 하며 사상과 리념, 정견과 신앙의 차이에 관계없이 각계각층의 모든 동포들이 민족대단결의 원칙에서 하나로 굳게 뭉쳐야 합니다.
김 일 성》
탑신의 량쪽 기단에는 조국통일3대원칙편, 전민족대단결10대강령편, 고려민주련방공화국창립방안편 그리고 통일조국 만세편 등 4개의 편으로 이루어진 부주제군상들이 특색있게 형상되여 조국통일3대헌장기념탑의 사상주제적내용을 폭넓게 보여주고있다. 또한 기념탑의 좌우 량쪽에는 북과 남, 해외의 여러 단체들과 개별적인 대상들 그리고 세계 여러 나라 정부와 국제기구 및 개별적인사들이 지성껏 마련하여 보내온 수많은 기증돌들이 전시되여있는 방들이 있다. 이 방으로 들어가자면 그 무게가 3t이나 되는 돌문을 열어야 하는데 이는 조국통일은 북과 남, 해외의 3자가 힘을 합칠 때 가능하다는 리치를 새겨주고있다.
돌문의 중심에 부각된 조국통일상메달은 통일에 기여한 사람이라면 그가 누구든 조국과 더불어 영생한다는 심오한 진리를 담고있다.
그 사상적내용이 심오하면서도 형식이 독특한 우리 민족의 자랑 조국통일3대헌장기념탑은 위대한 장군님의 발기와 구상, 현명한 령도의 손길에 의해 21세기의 첫 기념비로 이 땅우에 일떠서게 되였다.
2001년 민족통일대축전개막을 앞두고 온 민족이 통일열기로 세차게 끓어번지고있던 뜻깊은 8월 14일 현지에서 조국통일3대헌장기념탑준공식이 성대히 진행되였다.
《우리는 하나》
위대한 김일성주석의 유훈이며 더는 미룰수 없는 민족지상의 과업인 조국통일을 기어이 실현해나가실 의지를 지니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수령님의 탄생 90돐이 되는 주체91(2002)년에 북과 남이 《우리 민족끼리 조국을 통일하자!》라는 구호를 더 높이 추켜들고 자주통일의 열풍을 더 세차게 일으켜나가도록 하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우리 민족의 자주통일의지를 해내외에 과시하도록 하기 위하여 공화국정부, 정당, 단체회의를 열고 조국통일을 위한 획기적인 제안으로서 전체 조선인민에게 보내는 3대호소, 3대제의를 담은 호소문을 발표하도록 하시였다.
이것은 조국통일의 앞길에 가로놓인 반통일세력의 인위적인 장애를 제거하고 온 민족이 자주통일의 력사적인 리정표인 6. 15공동선언을 성과적으로 리행해나갈수 있게 하는 애국애족적인 발기였다.
그리하여 1월 22일 인민문화궁전 원탁회의실에서 진행된 공화국정부, 정당, 단체합동회의에서는 해내외의 전체 조선동포들에게 보내는 3대호소, 3대제의를 담은 호소문을 만장일치로 채택하였다.
○ 3대호소
첫째, 자주통일의 기치인 6. 15북남공동선언은 철저히 고수되고 리행되여야 한다.
둘째, 북남관계는 진전되고 조국통일운동은 활성화되여야 한다.
셋째, 나라의 평화를 위협하고 통일을 장애하는 요인들은 제거되여야 한다.
○ 3대제의
• 2002년을 《우리 민족끼리 단합과 통일을 촉진하는 해》로
• 북남공동선언이 발표된 6월 15일을 《우리 민족끼리 통일의 문을 여는 날》로
• 5월부터 7.4공동성명이 발표된 7월을 거쳐 조국이 해방된 8월까지를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나가는 운동기간》으로 할것을 제의
공화국정부, 정당, 단체합동회의의 3대호소, 3대제의는 전체 북, 남, 해외동포들의 전폭적인 지지와 호응을 받았으며 우리 민족끼리의 기치아래 전진하는 자주통일운동의 힘있는 추동력으로 되였다.
이렇게 우리 민족끼리 자주통일의 결정적국면을 열어나가기 위한 획기적인 대책으로서 3대호소, 3대제의를 제시하도록 하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를 실현하는 사업의 일환으로 6. 15공동선언발표 2돐을 기념하는 민족통일대축전을 새 세기의 참신하고 특색있는 통일행사로 성대히 진행하도록 현명하게 이끌어주시였다.
장군님께서는 6월 5일과 9일을 비롯하여 여러차례에 걸쳐 민족통일대축전과 관련한 가르치심을 주시여 행사를 성과적으로 진행할수 있는 실무적문제들을 다 밝혀주시고 필요한 조치들도 취해주시였다.
특히 장군님께서는 대축전마감을 《우리는 하나》의 대합창으로 장식할데 대하여 밝혀주시였다.
《우리는 하나》로 말하면 세상에 나온지 얼마 되지 않은 노래로서 위대한 장군님께서 김일성주석탄생 90돐을 맞으며 창작되는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의 조국통일장에 새로 나온 이 노래를 주제가로 친히 선정해주시고 하나의 피줄, 하나의 강토, 하나의 문화와 력사를 자랑하며 살아온 우리 민족의 절절한 통일념원과 굳은 의지를 온 세상에 높이 구가하도록 하신 명곡이다.
북과 남, 해외의 대표들이 참가하는 6. 15공동선언발표 2돐기념 민족통일대축전행사의 마감을 이 노래로 장식하도록 할데 대한 장군님의 가르치심에는 민족분렬의 고통을 하루빨리 끝장내고 기어이 통일조국을 안아오기 위한 자주통일의 열풍이 삼천리강산에 더 세차게 굽이치도록 하시려는 깊은 의도가 담겨져있었다.
통일행사에서 부를 노래 하나를 놓고도 겨레의 통일념원과 의지, 민족성부각의 측면에서 사색에 사색을 거듭하시는 위대한 장군님의 이렇듯 정력적이고 세심한 령도로 6. 15북남공동선언발표 2돐기념 민족통일대축전은 절승의 명산에 새겨진 또 하나의 명화폭으로 아로새겨질수 있었다.
마침내 2002년 6월 14일 금강산에서는 6. 15공동선언발표 2돐기념 민족통일대축전이 성대히 개막되였다.
노래 《우리는 하나》의 주악이 울려퍼지는 가운데 6월의 훈풍에 춤을 추며 대형통일기가 게양된데 이어 개막이 선언되고 민족통일대축전의 첫 행사로서 민족단합대회가 진행되였다.
단합대회에서는 북측을 대표하여 조선직업총동맹 중앙위원회 위원장이, 해외측에서 6. 15민족통일대축전 해외준비위원회 위원인 범민련 일본지역본부 의장이, 남측을 대표하여 통일련대 상임대표가 연설하였다.
연설자들은 6. 15공동선언의 민족사적의의와 정당성을 론증하면서 6. 15공동선언실현을 각방으로 방해하는 안팎의 반통일세력들의 준동을 폭로단죄하고 선언에 명시된 우리 민족끼리의 리념을 불변의 통일단합의 기치로 옹호고수하고 결사관철할 의지들을 표명하였다.
이채를 띤것은 《련대》, 《련합》의 두 팀으로 갈라져 진행되는 다채로운 민족체육경기와 유희오락이였다. 여기에서도 통일운동의 상징적의미로 진행되는 6. 15km통일마라손경기가 사람들에게 깊은 여운을 주었다.
경기참가자들은 민족통일대축전이 성사되기까지 반통일세력들의 끈질긴 방해책동을 물리치며 힘차게 달려왔으며 앞으로도 끊임없이 부닥치게 될 도전을 과감히 극복하고 통일의 려명을 안아올 불타는 일념으로 단내를 뿜고 땀방울을 쏟으며 기운차게 달려 6. 15km마라손의 결승테프를 끊었다.
민족자주통일을 실현하는 길에서 련대와 단합을 더욱 강화하기 위한 북, 남, 해외대표들의 계층별상봉들이 진행되고 뒤이어 북과 남, 해외합동예술공연과 1 600여명이 출연한 《아리랑》, 《우리는 하나》의 대합창으로 대축전의 절정을 훌륭히 장식하였다.
노래 《우리는 하나》가 다시금 울려퍼지자 반만년의 유구한 세월 피줄과 강토도 하나, 력사와 문화도 하나인 단일민족으로 자랑떨쳐온 우리 겨레가 세기에 세기를 이어 수십년세월 겪어온 분렬의 고통을 하루빨리 가시고 자주통일의 새날을 기어이 안아오고야말 철석같은 통일의지를 격조높이 노래한 가사의 심오한 철학성과 선률의 곡진한 여운에 대표들의 가슴은 후더움에 젖었고 눈가마다에는 뜨거운것이 고여올랐다.
축전페막식에서는 7천만겨레에게 보내는 공동호소문을 채택하였다.
호소문에서는 온 겨레가 6. 15공동선언을 더욱 높이 들고 그 리행을 가로막으려는 온갖 시도를 반대하며 6. 15공동선언의 기본정신인 우리 민족끼리의 대명제를 민족의 생명선으로 하여 외세에 의한 전쟁의 위험을 막고 통일의 장애가 되는 온갖 행위들을 단호히 물리치며 사상과 리념, 제도의 차이를 초월하여 련대련합을 더욱 힘있게 도모해나갈데 대하여 호소하였다.
민족의 명산에서 진행된 2002년 민족통일대축전행사는 6. 15공동선언의 력사적의의와 불멸의 생활력을 다시한번 확증하고 중첩되는 그 어떤 도전과 시련속에서도 공동선언을 끝까지 지지옹호하고 철저히 관철하려는 온 겨레의 드팀없는 의지를 내외에 과시한 동시에 반통일세력들에게 강한 타격을 안긴 또 하나의 특기할 사변이였다.
6. 15공동선언발표 2돐을 기념하는 통일행사인 민족통일대축전이 이처럼 성대히 진행되고 하나된 조국에서 하나의 민족으로 살려는 온 겨레의 념원을 반영한 노래 《우리는 하나》가 금강산의 하늘가에 높이 울려퍼질수 있은것은 온 겨레를 자주통일의 길로 이끌어주신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의 현명한 령도가 있었기때문이였다.
대축전행사에 참가한 남측참가자들은 대회가 전례없이 성대히 진행된데 대하여 감개무량해하면서 자기들의 격동된 심정을 피력하였다.
특히 성대한 대축전행사를 직접 마련해주신 위대한 장군님에 대한 열렬한 흠모의 정을 숨김없이 터놓았으며 축전행사에 대해서도 더없는 만족을 표시하면서 지금까지 통일행사가 여러번 진행되였지만 이번 축전은 이전보다 매우 특색있고 흥미있게 진행되였다, 이런 행사를 한해에 한번만이 아니라 여러번 진행하면 통일열기를 더욱 높일수 있겠다고 본다, 민족오락경기도 모든 종목이 재미있고 명랑하게 민속적으로 꾸며져있어 절로 흥이 난다, 6. 15가 이렇게 좋다는것을 남쪽국민들이 다 알아야겠는데 아쉽다고 하였다.
그리고 노래 《우리는 하나》에 대하여 자기들의 심정이 충분히 반영되고 이번 행사의 성격에도 꼭 맞는 노래이다, 특히 둘 합치면 더 큰 하나가 된다는 가사는 기막히게 좋다고 하면서 가사를 적고 악보를 요구하는 등 행사기간에 이 노래를 배워가기 위해 애썼다.
민족의 명산 금강산에서 울려퍼진 《우리는 하나》의 노래소리는 하루빨리 하나가 되기를 소원하는 온 겨레의 마음을 담아싣고 통일의 함성마냥 삼천리강산에 메아리쳤다.
우리 민족은 하나임을 다시금 뜨겁게 확인하는 통일행사들이 련이어 진행되였다.
2002년 10월 3일 평양시 강동군에 자리잡은 단군릉에서는 북과 남, 해외의 대표들이 참가한 개천절기념민족공동행사가 개최되였다.
행사에는 남측에서 개천절기념 민족공동행사준비위원회 위원장을 단장으로 하여 민족종교협의회, 조국평화통일불교협회, 대종교총본사를 비롯하여 9개의 종교단체들과 50여개의 시민, 사회단체 대표들로 구성된 개천절기념 민족공동행사대표단과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성원 200여명이 참가하였으며 북측에서 조선사회민주당 위원장과 단군민족통일협의회 회장 등 관계일군들과 각계각층 인민들 그리고 조국에 체류중인 해외동포 150여명이 참가하였다.
행사에서는 먼저 남측에서 준비해가지고 온 제물들도 함께 놓고 제례의식을 진행한 다음 북, 남, 해외의 대표들이 단군을 원시조로 하는 우리 민족은 절대로 둘로 갈라져서는 안되며 외세를 배격하고 조국을 반드시 통일해야 한다는 주제의 연설들을 하고 《7천만겨레에게 보내는 호소문》을 채택하였다.
이어 북, 남, 해외대표들이 《통일기원식수》를 하고 북측 예술인들의 공연이 있은 다음 다같이 노래 《우리는 하나》를 합창하고 춤마당을 펼치였다.
우리 민족의 시조릉앞에서 진행된 이날의 행사를 통하여 참가자들은 우리모두는 한피줄을 이은 단군민족의 한 성원, 그 무엇으로써도 갈라놓을수 없는 한민족임을 뜨겁게 절감하였다.
특히 단군민족의 후손으로서 처음으로 단군시조의 본향인 평양, 5천년 단일민족사의 정통성이 살아숨쉬는 땅을 밟게 된 남측성원들이 받아안은 감동은 자못 컸다.
그들은 유서깊은 력사와 겨레의 넋을 체현하신 민족의 영명한 령도자가 계시고 6. 15가 밝힌 우리 민족끼리의 리념이 있어 차례진 행운임을 절감하면서 이번 개천절민족공동행사가 단군민족은 둘이 아닌 하나임을 확인하고 나라의 자주평화통일을 이룩하기 위한 운동에서 커다란 계기가 될것을 기대하였으며 단군민족의 넋을 지키고 통일을 위해 이바지할 결심과 자각을 가다듬었다.
둘이 되면 못사는 하나임을 절감하며 둘 합치여 더 큰 하나가 되려는 겨레의 막을수 없는 민족통일의지의 분출은 비단 2002년에 진행된 통일행사장들에서만 울려나온것이 아니였다.
그 이듬해인 2003년 10월 평양에서 진행된 개천절행사와 류경정주영체육관 개관식장에서도, 해마다 북과 남을 오가며 진행된 민족통일대축전행사장들에서도 그리고 우리 조국강토의 한끝인 제주도의 민족통일체육문화축전장을 비롯하여 6. 15시대에 들어와 펼쳐진 통일행사장들마다에서 북과 남, 해외의 대표들은 노래 《우리는 하나》를 다같이 함께 부르며 통일된 조국땅에서 영원히 하나의 민족으로 살려는 드팀없는 의지와 신념을 과시하였다.
실로 민족의 통일열기를 더욱 고조시켜 온 민족의 단합된 힘으로 자주통일시대의 전진을 힘있게 추동하도록 이끌어주신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의 현명한 령도에 의하여 6. 15공동선언발표이후 우리 조국땅에서는 이전시기에는 상상도 하지 못할 통일행사들이 수많이 진행되였으며 그 하나하나의 통일행사들은 민족의 화해와 협력을 강화하고 더 큰 하나가 되여 통일강성국가를 일떠세울 전체 조선민족의 드팀없는 의지와 기상을 만방에 떨친 중요한 계기로 되였다.
또다시 안아오신 자주통일의 열풍
2005년으로 말하면 6. 15공동선언발표 5돐을 맞으면서 우리 민족끼리의 기치밑에 온 겨레의 자주통일운동이 어느때보다 고조되는 반면에 통일의 거세찬 물결에 시대의 기슭으로 밀려나게 된 내외반통일세력의 도전이 더욱더 악랄해지고있던 시기였다.
선군의 기치를 변함없이 높이 추켜들고 조국통일과 강성국가건설을 위한 투쟁을 힘있게 벌려나가고있는 공화국을 눈에 든 가시처럼 여기면서 대조선적대시정책을 악랄하게 추구해오던 미국은 2005년에 들어와 공화국의 존엄을 심히 건드리는 호전적인 망언을 련발함으로써 전체 조선민족의 커다란 분노를 자아냈다.
당시 새로 구성되는 제2기 부쉬행정부의 국무장관으로 지명된 라이스는 1월 18일 미국회 상원 인준청문회에서 공화국을 《폭정의 전초기지》라고 악의에 찬 발언을 하였다. 련이어 이틀후인 1월 20일 부쉬는 제2기 대통령취임식에서 한 연설에서 세계에서 《폭정》을 종식시키는것이 미행정부의 최종목표라고 선언하면서 필요하면 군사력행사도 배제하지 않겠다는것을 숨기지 않았다.
부쉬는 또한 2005년도 미국의 대내외정책방향을 밝히는 《년두교서》에서도 공화국의 《핵무기야망을 포기시키기 위해 아시아의 다른 나라들과 협력하고있으며 우리 시대의 위험을 타승하기 위한 련합전선을 형성》하겠다고 공언하였다.
미국의 새 행정부의 련이은 이러한 망발들은 공화국과는 절대로 평화적으로 공존하지 않겠다는것을 정책화하고 이전보다 공화국에 대한 고립압살정책을 더욱 강화하겠다는 저들의 본심을 명백히 드러내놓은것이였다.
지난 시기에도 적들이 칼을 빼들면 총을, 총을 내대면 대포를 내대는 초강경자세로 미국의 고립압살책동에 당당히 맞서온 공화국정부는 미행정부의 이러한 책동에 대처하여 2005년 2월 10일 외무성성명을 통해 정식으로 핵무기보유를 전세계에 공식선언하였다.
공화국의 핵보유선포는 국력이 약했던탓에 오랜 세월 강대국들의 각축전마당에 운명을 맡기고 망국과 분렬의 쓰라린 비극을 겪어온 우리 민족의 운명개척에서 일대 전환을 알리는 장엄한 선언이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선군정치에 의해 민족의 존엄과 리익을 지키고 나라의 통일과 민족번영의 길을 자주적으로 열어나갈수 있는 믿음직한 군사적담보가 마련되게 되였던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숭미공미사상에 물젖은 남조선의 적지 않은 사람들속에서는 공화국의 핵억제력에 대한 몰리해가 작용하고있었다. 미국과 일본을 비롯한 국제반동들과 극우보수세력들이 공화국의 핵보유가 남조선에 대한 위협으로 된다는 모략선전을 악랄하게 벌리는 실정에서 일부 계층에서 불안감을 가지기도 하였다.
공화국의 핵보유선언과 관련한 미국과 그 추종세력들의 이러한 악랄한 책동으로 하여 조선반도에는 전쟁의 위험이 더욱 짙게 드리워지게 되였고 통일을 위한 겨레의 투쟁과 북남관계에도 난관이 조성되였다.
조성된 정세는 6. 15를 고수하고 전진시키느냐 아니면 대결상태에로 되돌아가느냐 하는 심각한 문제들을 제기하고있었다.
이러한 정세에 대처하여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내외반통일세력의 책동을 짓부시고 우리 민족끼리의 기치밑에 힘차게 전진하는 겨레의 통일운동을 새로운 높은 단계에로 올려세우기 위해 6. 15북남공동선언발표 5돐기념 민족통일대축전을 평양에서 성대히 진행하도록 온갖 조치를 다 취해주시였으며 2005년 6월 17일에는 6. 15공동선언발표 5돐기념 민족통일대축전에 참가한 남조선《대통령》의 특사인 통일부 장관과 문익환목사의 부인 박용길녀사 그리고 남측의 평양상봉연고자들을 만나 우리 민족끼리의 정신을 다시금 깊이 심어주시였다.
이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만면에 환한 웃음을 지으시고 남측 특사에게 그가 평양에 처음으로 왔지만 우리는 하나의 피줄을 이은 동족이여서 구면같이 생각된다고 하시며 오랜 시간 특사와 이야기를 나누시면서 나라의 통일문제를 자주적으로 풀어나가며 민족공동의 번영과 발전을 이룩하는데서 나서는 문제들에 대해 귀중한 말씀을 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접견석상에서 핵문제와 6자회담에 대한 공화국의 립장을 밝히시고 당면한 북남관계에서 제기되는 문제들과 남측이 제기한 문제들에 대하여 전면적이고 명백한 해답을 주시였다.
그러시면서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우리가 핵을 가지는것은 불가피하게 취한 조치이며 남쪽인민들을 대상해서는 그것을 절대로 쓰지 않는다고, 이에 대해 남조선인민들에게 꼭 전달해주기를 바란다고 말씀하시였다.
자자구구에 철의 론리와 애국애족의 피가 흐르고 부정할수 없는 진실이 담겨진 말씀이였다.
공화국의 핵억제력, 이것은 어디까지나 불의와 침략을 일삼으며 공화국을 기어이 압살하려는 미국에 대한 응징과 보복의 불벼락이지만 동족에게는 평화와 번영의 믿음직한 방패인것이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서해상에서의 분쟁문제를 어떻게 풀겠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그 자리에서 즉시 해결책을 제시하시였다.
이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맞서있는 륙지에서도 분쟁이 없는데 군사분계선도 없는 서해상에서 분쟁이 일어난다는것은 말도 안된다고 하시면서 그곳에서 북남어업협력을 하는것이 좋으며 이를 위해서 회담을 하여야 한다고 가르쳐주시였다.
서해해상문제를 해결할수 있는 방도를 대번에 밝혀주시는 위대한 장군님의 비범성에 특사는 감탄을 금치 못해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날 남측 특사일행과 평양상봉연고자들, 문익환목사의 부인을 위하여 오찬을 마련하시였다.
오찬회장에서도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북남대화와 접촉에서 새로운 전환을 일으킬데 대한 말씀을 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옛날에는 전대협 대표 1명이 오는것만 가지고도 말이 많았는데 지금은 숱한 민간대표단이 오고있다고 6. 15공동선언발표이후 변화발전된 북과 남사이의 오늘의 관계에 대하여 지적하시면서 북과 남이 마주앉아 회담하는것도 시대가 달라지는데 맞게 바뀌여야 한다고, 리성적으로 해야지 더이상의 체면유지놀음은 허락되지 않는다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계속하여 우리 민족은 하나이라고, 우리는 빨리 통일을 해야 한다고 절절히 이르시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한없이 숭고한 풍모와 따뜻한 동포애, 파격적이고 거침없는 언변에 매혹된 남측성원들은 어쩌면 그리도 모든 말씀을 가슴이 시원하게 하시는가고, 막혔던 속이 다 내려간다고 하면서 자기들의 흥분된 심정을 토로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오찬을 마치고 그들을 바래워주시면서 서울까지 비행기를 타고 가는데 《ㄷ》자형으로 된 서해항공로를 리용한다는 말을 들으시고 무엇때문에 말썽많은 서해로 돌아가는가고, 륙지상공을 관통하는 직항로로 바꾸도록 하자고 말씀하시며 평양-서울직항로문제도 즉석에서 풀어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남측 특사일행을 만나주시고 우리 민족끼리의 기치밑에 조국통일운동을 더욱 힘있게 벌리며 북남관계에서 새로운 전환을 가져올데 대한 강령적인 말씀을 하신 6월 17일은 우리 민족의 조국통일운동력사에서 격동적인 사변의 날로 기록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남조선통일부 장관을 접견하신 소식은 남조선에 또다시 《6. 15열풍》, 《김정일열풍》을 일으켰다.
남측대표단일행이 저녁에 인천비행장에 도착하자 오전부터 대기하고있던 200여명이나 되는 내외기자들이 저저마다 몰려와 위대한 장군님을 만나뵈온데 대해 질문공세를 들이대였다.
남조선통일부 장관은 기자회견에서 위대한 장군님을 만나뵈온 석상에서 이룩된 중요한 합의들이 그이의 결단과 배려에 의한것이라는것 특히 《김정일국방위원장은 현장에서 결정할것은 즉각 결정하는 시원시원하고 결단력있는 지도자》이시라는것 등 장군님의 위인상에 매혹된 자기의 심정을 그대로 토로하였다.
남조선의 주요신문, 잡지들도 《17일 이뤄진 김정일국방위원장과 정동영과의 면담은 여러모로 파격적이였다.》(《중앙일보》 2005. 6. 18), 《이번 면담은 남북대화의 전면복원과 심화의 토대가 될 전망이다.》(《한겨레》 2005. 6. 18), 《…남북관계진전과 한반도평화증진에 일대 돌파구를 연 중대한 사건이였다.》(《중앙일보》 2005. 6. 20) 등으로 위대한 장군님께서 남측 특사일행을 접견해주신 소식을 앞을 다투어 보도하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정력적인 령도밑에 6. 15북남공동선언발표 5돐을 계기로 다시한번 온 겨레의 가슴을 뜨겁게 달구어준 통일의 열기는 그로부터 두달후 조국해방 60돐을 맞으며 서울에서 진행된 자주, 평화, 통일을 위한 8. 15민족대축전을 통하여 더욱 고조되였다.
세차게 휘몰아친 자주통일의 열풍을 타고 그후 북남대화에서도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
2005년 6월 21일부터 23일까지 서울에서 진행된 제15차 북남상급회담에서는 극우보수세력들의 준동이 극도에 이르고 토의할 문제들이 많았지만 단 한차례의 전체회담으로 모든 문제들을 타결하고 북남관계전반을 다룬 12개 조항의 공동보도문을 발표하는것으로 새로운 성과가 마련되였다.
그리하여 제15차 북남상급회담은 종래의 낡은 틀을 벗어던지고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많은 합의를 이룩한 회담으로, 동족으로서 진심으로 합심하고 협력하여 민족공동의 실리를 도모해나가는데서 신기록을 세운 회담으로 되였다.
남조선의 《KBS》방송이 《남북관계의 새로운 봄맞이》로 묘사하면서 《이번 제15차 장관급회담의 공동보도문을 종합해보면 7월과 8월에만도 11차례, 12월까지의 남북대화일정이 잡힌셈이여서 앞으로 남북대화가 보물처럼 쏟아진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 회담에서는 상대방에 대한 비방과 비난도 거의 없었던것으로 알려졌다.》라고 평하며 놀라움을 표시한것을 비롯하여 모든 언론들이 제15차 북남상급회담정형을 경쟁적으로 보도하였다.
뒤이어 열린 북남경제협력추진위원회 제10차회의에서도 북남이 서로에게 리익이 되는 새로운 방식의 경제협력에 합의를 보는 성과가 이룩되였다.
뿐만아니라 제15차 북남상급회담을 계기로 일시 정지상태에 빠져있던 전반적인 북남관계는 활기를 띠게 되였고 민족의 통일열기가 더한층 고조되였다.
참으로 2005년은 6. 15자주통일시대를 향도해나가시는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의 비범한 예지와 령도력에 의하여 조국통일과 북남관계발전에 빛나는 장으로 기록될 또 하나의 사변이 일어난 격동의 해였다.
자료
6. 15민족공동위원회 결성
6. 15공동선언발표이후 북과 남에 조성된 새로운 환경은 그에 맞게 남조선과 해외의 각계각층을 하나로 결속시키기 위한 통일전선체적인 조직을 내오는 문제를 성숙된 요구로 제기하였다.
이로부터 북과 남, 해외의 온 겨레는 조국통일의 거족적운동을 위하여 선차적으로 제기되는 민족대단결의 모체를 마련하기 위한 준비사업을 힘있게 다그쳤다.
2004년 11월 금강산에서 진행된 북과 남, 해외의 각계층 대표들과 여러 통일운동단체대표들의 실무접촉에서는 앞으로의 통일운동과 민족공동의 통일행사들을 광범하게 협의추진하기 위하여 6. 15공동선언실천을 위한 북, 남, 해외공동행사준비위원회를 2005년의 적절한 시기에 내오며 당면하여서는 북과 남, 해외에서 각기 지역준비위원회를 내올데 대한 문제가 합의되였다.
이에 따라 6. 15공동선언실천을 위한 북, 남, 해외공동행사 지역준비위원회들이 결성되였다.
그리고 2005년 3월 4일 금강산에서는 6. 15공동선언실천을 위한 북, 남, 해외공동행사준비위원회의 결성을 온 민족앞에 선언하였다.
6. 15공동선언실천을 위한 북, 남, 해외공동행사준비위원회는 6. 15공동선언에 기초하여 나라의 자주적평화통일을 이룩하기 위해 범민련결성이후 처음으로 북과 남, 해외의 각계층 정당, 단체, 인사들을 가장 폭넓게 망라하여 결성된 상설적인 전민족적통일운동련대기구였다.
그후 6. 15공동선언실천을 위한 북, 남, 해외공동행사준비위원회를 점차 북남공동선언을 지지하는 온 겨레를 하나로 단합시키고 조국통일운동을 거족적으로 힘있게 추진시켜 나가는 상설적인 전민족적규모의 통일애국운동기구로 확대발전시켜나가기 위한 사업이 힘있게 전개되였다.
2005년 12월 10일 북과 남, 해외의 대표들은 중국 심양에서 통일운동련대기구창설의 정당성과 의의를 다시한번 확인한데 기초하여 6. 15공동선언실천을 위한 북, 남, 해외공동행사준비위원회를 《6. 15공동선언실천 민족공동위원회》(6. 15민족공동위원회)로 그 명칭을 바꾸었다. 뿐만아니라 위원회의 규약도 채택발효시키고 공동사무국도 설치하여 6. 15민족공동위원회는 행사위주의 조직으로부터 상설적인 통일운동련대조직으로 강화발전되게 되였다.
상설적인 통일운동련대기구인 6. 15공동선언실천 민족공동위원회가 결성됨으로써 우리 겨레는 6. 15북남공동선언발표이후 5년간 통일운동에서 거둔 성과를 계승하여 민족의 통일지향과 의지를 하나로 모아나갈수 있는 민족대단합의 모체, 강력한 추동력을 가지게 되였으며 그것을 주축으로 하여 민족의 단합과 통일을 위한 투쟁을 더욱 힘있게 전개해나갈수 있게 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