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우리 민족끼리의 6. 15

 

2) 6. 15의 첫걸음

1

 

화해와 신뢰의 분위기를 조성하도록

 

력사적인 평양상봉과 6. 15북남공동선언의 채택으로 하여 조선반도에는 자주통일의 새시대, 우리민족끼리시대가 도래하였다.

반목과 불신, 대결이 지속되여오던 북남관계는 화해와 협력, 단합의 새로운 장을 맞이하고있었다.

이러한 속에서 북과 남은 6. 15북남공동선언리행을 위한 사업에 착수하였다.

북과 남, 해외의 온 겨레는 분렬 55년만에 처음으로 이루어진 북남수뇌상봉과 그 귀중한 성과물인 6. 15공동선언이 성과적으로 리행되여 통일의 길로 이어지기를 간절히 바라마지 않았다.

우리 나라 속담에 시작이 절반이라는 말도 있듯이 온 민족의 절절한 기대와 념원에 맞게 6. 15시대가 명실공히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통일의 문을 열어나가는 자주통일의 새시대로 되게 하자면 6. 15북남공동선언리행을 위한 첫걸음을 잘 떼여야 하였다.

이것을 깊이 통찰하신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6. 15시대의 요구에 맞게 북남관계를 시급히 개선하고 조국통일위업실현의 새로운 전환기를 열어놓기 위한 사업을 현명하게 이끌어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북남관계를 개선하고 6. 15북남공동선언을 철저히 리행해나가는데서 북과 남사이에 화해와 신뢰의 분위기를 조성하는것을 선차적인 문제로 보시였다.

원래 약속이란 상대방에 대한 믿음과 신뢰에 기초하여 맺어지는것이다. 개인들사이의 자그마한 약속이나 국가간에 맺어지는 협정이나 다 상대방에 대한 믿음과 화해의 감정이 없이는 그것을 지킬수 없다는것은 자명한 리치이다.

지난 시기 북남관계의 력사를 돌이켜보면 북과 남사이에는 여러번 통일을 위한 큰걸음을 내디딜수 있는 좋은 합의들이 이룩되기도 하였다. 20세기 70년대와 90년대에 진행된 북남고위급회담들과 그 결과물들인 7. 4공동성명과 《북남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협력, 교류에 관한 합의서》가 그 대표적실례이다. 그러나 그때마다 남조선당국이 대화상대방인 북을 비방중상하고 화해분위기를 흐리게 하여 모처럼 성사된 합의들이 실행에로까지 이어지지 못하였다. 력사적인 7. 4공동성명이 나온 직후에도 북과 남은 서로 비방중상을 중단할데 대한 문제를 합의하였지만 남측이 그것을 휴지장으로 만들어버림으로써 북남관계가 또다시 악화되는 결과가 초래되였던것이다.

이것을 누구보다 가슴아프게 여겨오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번만은 그렇게 되여서는 안된다는 확고한 결심을 안으시고 몸소 북남쌍방사이의 비방중상을 중지하고 화해와 신뢰의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한 문제를 해결하시였다.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오늘 북과 남사이의 관계를 불신과 대결의 관계로부터 신뢰와 화해의 관계로 전환시키는것은 민족적단합과 조국통일을 실현하는데서 절실한 요구로 나서고있습니다.》

주체89(2000)년 6월 15일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평양방문을 성과적으로 마치고 돌아가는 남측 당국자일행을 위해 마련하신 오찬회석상에서 남측성원들에게 나는 오늘 이 자리에 남쪽의 여러 장관들도 앉아계시기때문에 내가 근심하고있는 문제를 하나 이야기하려고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순간 누구라 없이 금의환향하게 되였다는 만족감에 한껏 들떠있던 남측일행은 긴장해졌다.

장군님께서는 이제 10일 있으면 우리 나라에서 전쟁이 일어난 6월 25일인데 이번에는 다른 해와 달라서 50돐이다, 내가 알기에는 남쪽에서 많은 행사들을 벌리자고 하고 또 미국에서도 행사를 크게 하려고 한다고 하는데 공동선언을 채택하고 10일 있다가 6. 25전쟁문제를 다시 거론하면서 우리를 자극하면 공동선언에 수표한것이 무효로 된다, 남쪽에서 약속을 어기면 되겠는가고 하시였다. 그러시고는 우리는 6. 25에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고 하시였다.

장군님의 이 말씀은 정통을 찌르는것이였다.

해마다 6. 25가 되면 남조선에서는 반공놀음들이 벌어졌다. 이것들은 당국이 주도하는 관제행사로서 남조선의 력대 통치배들은 그것을 남조선인민들속에 공화국에 대한 적대감을 고취시키고 《승공통일》, 《흡수통일》의 허황한 꿈을 실현하기 위한 하나의 계기로 악용하여왔다. 특히 남조선당국은 한해전부터 미국과 함께 6. 25전쟁발발 50년이 되는 2000년에 《6. 25반공행사》를 크게 벌리기로 하고 많은 자금을 들여 준비해왔다. 그들은 남조선과 미국에서 대규모적인 공동행사를 벌려놓기로 합의보고 그 준비를 해왔으며 행사의 성격도 지난 시기와 같이 반공대결분위기를 고취하는데 두려고 계획하였다.

그런것만큼 당시의 시점에서 《6. 25반공행사》문제를 어떻게 처리하는가 하는것은 북남공동선언에 대한 남측의 립장을 판별하는 시금석으로 되였다.

하기에 장군님의 말씀에 남조선당국자는 와뜰 놀라며 그렇게 되여서는 안된다고 말하는것이였다.

그러자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가벼운 미소를 띠우시고 긴장된 기색을 감추지 못하는 남측성원들을 바라보시며 이번에 내가 한번 청와대나 문화관광부, 통일부에서 이 문제를 어떻게 조종해나가는가 하는 실력을 시험쳐보겠다고, 그것을 조종하지 못하면 장관자리를 다 내놓게 하고 내가 직접 서울에 나가 장관을 겸임하겠다고 말씀하시며 호탕하게 웃으시였다.

잔뜩 긴장해있던 남측성원들은 장군님의 해학적인 말씀에 웃음보를 터뜨리면서도 많은 가책을 받았는지 그렇게는 안될것이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자기들이 그런 문제들에서 서로 협력해나가겠다고 거듭 말씀드리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다시금 남조선당국자에게 이번 6. 25때 남측에서 의연히 반공소동을 일으키며 우리를 자극하면 우리는 그것을 북남공동선언에 대한 공공연한 도전으로 인정할것이라고 하시면서 이것을 강조하는것은 결코 남조선의 야당이나 극우보수세력들의 반공모략소동이 두려워 그러는것이 아니라 북남관계개선과 나라의 통일을 열망하는 온 민족과 세상사람들앞에 희망과 신심, 락관을 안겨준 귀중한 북남공동선언의 존엄과 가치가 희석되거나 손상되지 않게 되기를 바라는 뜻에서이라고 강조하시였다.

남조선당국자는 평양상봉의 성과를 누구보다 귀중히 여기시는 장군님의 이 말씀에 깊이 공감하여 《6. 25반공행사》문제를 잘 조종해나갈데 대하여 거듭 약속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날 전연에서 쌍방이 해오던 비방방송을 중지할데 대한 문제도 상정시켜 해결하시였다.

장군님께서는 남측성원들에게 군사분계선에서 서로 상대방을 비방하는 방송을 하고있는데 공동선언의 내용에는 없지만 우리가 모범을 보여 그런 방송을 하지 않겠으니 남에서도 그만두는것이 어떤가고 하시였다. 그러시면서 서로의 대결관념을 없애는데서 군대를 잘 관리하는것이 중요하며 그러자면 군대를 나라와 민족의 번영을 위한 일을 하게 하여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북남사이의 비방중상중지는 전연에서부터 해야 한다는 가르치심이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날로 해당 부문에 전연에서 남측에 대한 일체 방송을 중지할데 대하여 명령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정력적인 활동에 의하여 북남공동선언리행을 위한 유리한 조건이 마련되게 되였으며 남조선에서는 일찌기 없었던 놀라운 일들이 련이어 일어났다.

남조선당국자는 서울에 돌아가자마자 전연에서 북에 대한 비방중상방송을 중지하도록 지령을 내렸다. 그리하여 7. 4공동성명발표이후 처음으로 남조선국방부는 평양상봉이 끝난 다음날인 6월 16일 군사분계선에서 진행해오던 대북비난방송들을 즉시 중지하도록 하였다. 또한 6월 20일 《국방부지침》을 발표하여 위대한 장군님에 대한 호칭을 공식직함을 붙여 《김정일국방위원장》으로 하도록 하였고 북에 대한 표현도 고치도록 하였다. 또한 남조선당국은 6월 19일부터 23일사이에만도 3차례나 남조선의 주요언론사 사장들과 주필, 편집국장, 보도부장 등 언론계의 중진인물들을 모두 청와대에 불러들여 조찬, 오찬, 만찬을 차려주면서 대북비난을 자제해줄것을 요청하였다. 남조선언론들은 위대한 장군님께서 평양을 방문한 남측일행에게 통일의 분위기를 마련하자면 북남사이의 비난전을 그만두어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고 하면서 남측도 북의 모범을 따라 대북비난선전을 중지해야 한다고 강하게 요구해나섰으며 실지 그러한 조치들을 취하였다. 《KBS》, 《MBC》, 《SBS》 등 방송들뿐아니라 많은 신문들이 북에 대한 비난선전을 중지하고 《강성대국이란 무엇인가》, 《선군정치방식이란 무엇인가》 등의 표제를 달고 북을 객관적으로 소개보도하는데 전례없는 열의를 보였다.

남조선당국은 《6. 25전쟁기념행사》에 대해서도 그 규모를 대폭 줄이고 내용도 《평화공존》으로 바꾸었다. 남조선의 극우보수단체들도 내외정세가 급격히 변화되고 종전처럼 반공일변도로 나가다가는 더욱 고립배격당할수 있다는 위기감으로부터 당국과는 별도로 준비해온 반공행사의 성격을 부랴부랴 수정하지 않을수 없었다.

쌍방사이의 비방중상이 중지되고 남조선에서 대규모의 반공행사가 취소됨으로써 반목과 불신, 대결관념을 청산하고 북남사이에 화해와 신뢰의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한 전제조건이 마련되게 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북남사이에 진행되는 대화와 협상들에서도 화해와 협력, 신뢰의 분위기를 세워나가도록 하시였다.

장군님께서는 6. 15북남공동선언리행을 위한 첫 조치로서 북남상급회담을 비롯한 여러 갈래의 회담을 가질데 대해 밝혀주시면서 앞으로 열리게 되는 회담들을 신의와 협력의 정신에서 실질적으로 문제를 타결하는 실리있는 회담으로 되게 할데 대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그리하여 2000년 7월 29일부터 31일까지 6. 15북남공동선언발표이후 그 리행을 위한 첫 조치로서 서울에서 진행된 제1차 북남상급회담에서 북측은 위대한 장군님의 숭고한 뜻을 받들어 북남회담을 새로운 시대적요구에 맞게 운영해나가기 위한 원칙적문제들을 제기하고 회담을 북남공동선언의 합의사항을 리행하는 회담으로, 불신과 론쟁으로 일관되던 과거의 타성에서 벗어나 신의와 협력의 정신에서 문제를 타결하는 회담으로, 실질적으로 결실을 맺는 회담으로 만들데 대한 문제들에서 남측과 합의를 보았다. 이것은 상급회담뿐아니라 북과 남사이에 진행될 여러 갈래의 회담들을 6. 15북남공동선언리행에로 지향시켜 실속있게 전개해나갈수 있는 담보로 되였다.

이러한 성과에 토대하여 그해 8월 29일부터 9월 1일까지 평양에서 열린 제2차 북남상급회담에서는 조선반도의 긴장상태를 완화하고 평화를 보장하기 위한 쌍방 군사당국자들의 회담을 조속한 시일내에 가지도록 건의할데 대한 문제, 경제협력을 확대발전시키기 위한 제도적담보를 마련할데 대한 문제를 비롯하여 북남관계에서 제기되는 모든 문제들을 우리 민족끼리 풀어나가는데 합의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9월 1일 평양에 온 북남상급회담 남측 수석대표를 접견해주시고 공동선언의 정신에 맞게 북남관계를 발전시키는데서 나서는 문제들을 하나하나 밝혀주시였으며 그를 위하여 조찬도 마련해주시고 기념사진도 함께 찍으시였다.

한편 2000년 추석을 맞으며 위대한 장군님께서 남조선의 각계 인사들에게 보내시는 칠보산의 송이버섯을 전달할데 대한 위임을 받고 조선인민군 대장과 함께 서울에 나간 북측의 책임일군은 남측의 관계자들과 북남간에 제기되는 현안문제들에 대하여 폭넓은 의견을 교환하고 9월 14일 북남공동보도문을 발표하였다. 공동보도문에는 북측인민무력부장과 남측 국방부 장관사이의 회담을 개최하는 문제, 서해선철도 및 도로련결을 위한 착공식개최문제, 림진강수해방지 공동조사문제 등의 내용들이 들어있었다.

이렇게 북과 남사이에 화해와 협력의 분위기가 높아가고 공동선언리행을 위한 사업들이 성과적으로 추진되는 가운데 2000년 9월말 공화국에서는 정부, 정당, 단체합동회의를 열고 조선로동당창건 55돐행사에 남조선의 정당, 단체들과 개별적인사들을 초청하는 편지를 남측에 보내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조선로동당창건 55돐행사에 남조선의 정당, 단체대표들과 각계 인사들을 초청할데 대해 몸소 발기하신데 따라 이루어진 사업이였다.

여기에는 력사적인 북남공동선언이 채택되고 자주통일의 새시대, 우리 민족끼리의 시대가 펼쳐지고있는 새로운 환경과 조건에 맞게 화해와 협력, 신뢰에 기초하여 북남관계를 더욱 높은 단계에로 끌어올리시려는 장군님의 깊은 의도가 담겨져있었다.

북측의 이러한 초청제의는 온 남녘땅을 다시한번 끓게 하였다. 남조선의 광범한 인민들과 통일단체들, 진보세력은 이를 열렬히 지지환영하였는가 하면 극우보수세력은 남조선정당, 단체들에 대한 북측의 제의를 《통일전선전략》이니, 《실정법》위반이니 하면서 거부하는 태도를 취하였다.

하지만 민족적화해와 단합을 지향하는 민심에 눌리워 결국 북측의 초청제의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되게 되였다.

이렇게 되여 남조선에서 14개 정당, 단체대표, 개별적인사 45명과 한겨레신문사와 《SBS》 기자 30여명 등 모두 78명이 평양에 도착하였다.

평양에 온 남측대표들은 위대한 장군님을 모시고 김일성광장에서 진행된 조선로동당창건 55돐경축 열병식과 군중시위, 청년학생들의 야회와 홰불행진, 5월1일경기장에서 진행된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백전백승 조선로동당》을 비롯한 경축행사들을 참관하였다. 또한 공화국의 정당, 단체일군들과 조국통일문제를 놓고 쌍무적 및 다무적접촉들을 진행하였다.

이에 대하여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10월 10일 한 일군에게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당창건 55돐에 즈음하여 남조선의 정당, 단체, 개별인사들이 평양에 왔는데 이것은 1948년 남북련석회의이후 처음으로 있는 일입니다.》

위대한 장군님의 발기와 구상에 따라 조선로동당창건 55돐 경축행사에 남조선의 정당, 단체대표들과 각계 인사들이 참가함으로써 10월의 명절은 민족의 대축전으로 더욱 의의있고 뜻깊게 장식될수 있었으며 우리 민족끼리 통일의 문을 열어나가려는 겨레의 지향과 의지가 힘있게 과시되게 되였다.

력사적인 평양상봉과 6. 15북남공동선언발표이후 북남사이에 화해와 신뢰의 분위기가 조성되고 삼천리강산이 통일열기로 달아오르자 미국과 남조선의 반통일세력은 북남관계개선과 조국통일의 앞길에 빗장을 지르려고 책동하였다.

미국은 북남관계개선이 지내 빠르다느니, 속도를 늦추어야 한다느니 하면서 남조선당국에 압력을 가하고 남조선의 극우보수세력과 괴뢰군부를 사촉하여 북남관계개선의 좋은 분위기를 흐려놓기 시작하였다. 2000년 10월말부터 11월초까지 미국과 남조선괴뢰군부는 대규모의 《독수리》합동군사연습을 강행해나섰으며 얼마후에는 전투함선들을 서해의 북측령해깊이 침투시키는 도발행위를 감행하였다. 더우기 그해 12월 4일 남조선괴뢰국방부는 공화국을 《주적》으로 규정한 《2000국방백서》를 공식발표하였는바 군부호전분자들은 이 《국방백서》에서 있지도 않는 북의 《전력증강》이니, 《지속적인 침투활동추진》이니, 《군사적위협의 존재》이니 하고 북을 걸고들면서 북의 《현실적군사위협》이 해소될 때까지 이른바 《주적관념》을 유지할것이라고 떠벌였다. 남조선의 통일부도 그 무슨 《여론조사》놀음을 벌려놓고 공화국의 존엄높은 정치체제를 걸고들었다.

민족공동의 귀중한 성과물인 6. 15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도발행위들은 온 겨레의 분노를 자아냈다.

미국과 야합한 남조선의 반통일분자들의 이러한 책동을 짓부셔버리지 않는다면 6. 15북남공동선언의 성과적인 리행을 기대할수 없는것은 물론 북남관계가 다시금 대결상태로 되돌아갈수 있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북남관계를 되돌려세우려는 내외의 반통일세력의 온갖 책동을 민족의 드높은 통일열기로 짓부셔버리도록 하시였다.

12월 10일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대변인성명을 발표하여 남조선당국이 동족사이에 극도의 적대감을 고취하는 《주적》론을 또다시 들고나오고 공화국의 정치체제까지 걸고드는것은 명백히 6. 15공동선언에 대한 배신이며 북남관계를 대결의 시작점으로 되돌려세우려는 반통일행위라고 단호히 규탄하였으며 12월 12일 평양에서 진행된 제4차 북남상급회담에서도 북측은 남측 군부호전세력이 들고나온 《주적》론을 되게 문제시하고 남조선당국이 온 민족앞에 확약한 우리 민족끼리의 정신을 귀중히 여기고 민족의 화해와 단합, 나라의 통일을 위한 립장과 자세로 나올것을 강력히 요구하였다. 북측의 사리정연한 주장앞에 남측은 사죄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북남사이의 화해와 단합, 신뢰의 분위기를 조성하도록 하기 위한 사업을 정력적으로 이끌어주신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의 현명한 령도에 의하여 6. 15의 첫걸음은 통일을 갈망하는 온 겨레의 가슴을 쾅쾅 울리며 북남관계의 새로운 장을 련이어 펼치였다.

2

 

일화

 

분렬의 장벽을 넘어간 칠보산송이버섯

 

동해바다가에 우뚝 솟아 《함북금강》으로 불리우는 칠보산, 일곱가지 보물을 가지고있다고 하는 이 명산의 명물들가운데는 우리 나라 버섯가운데서 단연 으뜸으로 손꼽히는 송이버섯도 있다.

소나무의 상긋한 냄새와 달짝지근하면서도 쫄깃쫄깃한 감을 주는 부드러운 맛으로 하여 예로부터 소문난 칠보산송이버섯은 6. 15와 더불어 더욱 유명해졌다.

주체89(2000)년 8월 어느날,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전선시찰의 길에서 인민군군인들이 칠보산에서 첫물송이버섯을 많이 땄다는 보고를 받으시였다.

이 보고를 받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못내 만족해하시며 동행한 일군들에게 력사적인 평양상봉때 남측성원들이 연회상에 오른 송이버섯료리를 보고 부러워하기에 가을에 가서 칠보산에서 나는 첫물송이버섯을 보내주겠다고 약속하신데 대하여 이야기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력사적인 평양상봉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가는 남측대표단일행을 위해 국방위원회명의로 차리도록 하신 오찬회석상에서 남조선당국자의 부인 리희호는 연회탁에 오른 송이버섯료리를 보고 귀한것이라고 부러워하였다.

그때 장군님께서는 이번에 평양에 온 모든 남측 귀빈들에게 칠보산에서 나는 첫물송이버섯을 선물로 보내주겠다는 뜻깊은 약속을 하시였던것이다.

이러한 사연을 이야기하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남측에 송이버섯을 보내줄 때 력사적인 평양상봉에 참가하였던 남측성원들은 물론 6. 15공동선언발표직후 평양에 왔던 현대그룹 명예회장 정주영일행과 남조선언론사대표단 성원들에게도 보내주며 한사람당 몫도 1~2㎏정도가 아니라 10㎏씩 하면 그들이 대단히 좋아할것이라고 하시며 환한 웃음을 지으시였다.

일군들은 한순간 놀라움을 숨기지 못하였다.

그것도 그럴것이 장군님의 말씀대로 200여명의 남측성원들모두에게 각각 10㎏씩 주자고 해도 2t이상의 송이버섯이 있어야 하는데 그 수량도 엄청났거니와 국제시장가격으로 볼 때 그 값도 약차한것이였다.

놀라움에 서로의 얼굴만 마주보고 서있는 일군들을 둘러보시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호탕하신 어조로 왜 그렇게 놀라는가, 줄바에는 아예 통이 크게 남조선의 현직《국회》의장과 여야당 당수들에게까지 한아름씩 안겨주자고 말씀하시였다.

며칠후 장군님께서는 송이버섯의 선도보장문제도 있고 하여 사전에 그 수송문제와 인계인수방법을 토의하여야 하겠는데 어떻게 하면 합리적이겠는지 이에 대한 의견을 보내주기 바란다는 통지문을 남측에 보내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후에도 여러차례에 걸쳐 송이버섯포장문제, 수송경로 및 방법문제와 관련하여 구체적인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제2차 북남상급회담에 참가한 남측 수석대표일행을 접견하신 자리에서도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우리 국방위원회에서 지금 남쪽에 보낼 칠보산송이버섯을 준비하고있다고 하시면서 우리 나라 송이버섯가운데서 가장 좋은것이 칠보산송이버섯인데 다른 나라에도 이름났다는것, 송이버섯이 비록 소비하면 없어지는것이지만 그래도 우리 북쪽의 마음과 향기를 느끼게 하기 위해서 일부러 보낸다고 하시면서 이제 한사람당 10㎏씩 추석 전날에 보내주겠으니 선물을 받는 사람들이 친지들과 세간난 자식들에게도 나누어주어 명절날 쓰게 하라고 친어버이심정으로 말씀하시였다.

그로부터 열흘후 장군님께서는 칠보산송이버섯을 전달할 위임을 받고 남조선에 나가게 된 일군을 부르시여 남쪽사람들에게 민족의 향취를 한껏 안겨주고 돌아오라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이렇게 되여 위대한 장군님의 위임에 의하여 국방위원회를 대표하는 조선인민군 대장이 주체89(2000)년 9월 11일 사랑의 송이버섯을 비행기에 싣고 분렬의 장벽을 넘어 서울에 도착하였다.

서울의 신라호텔 영빈관에서 남측 각계 인사들의 참가밑에 진행된 송이버섯선물전달식에서 조선인민군 대장은 위대한 장군님께서 남녘의 평양상봉수행원들과 언론사대표단 성원들, 현대그룹 정주영명예회장일행 등 267명에게 보내주신 송이버섯을 1인당 10㎏씩 전달하였으며 그밖에 평양에 와보지 못한 64명의 각계 인사들에게도 똑같이 송이버섯을 정중히 전달하였다.

추석을 맞으며 민족의 향취그윽한 첫물송이버섯을 받아안은 남조선의 각계 인사들은 송이송이마다에 슴배여있는 위대한 장군님의 고결한 인정미와 하늘같은 겨레사랑, 민족사랑의 정이 뜨겁게 닿아와 고마움을 금치 못해하였다. 송이버섯을 보내주시여도 한두번 맛보는 정도가 아니라 한지함씩 통채로 안겨주시는 장군님의 크나큰 도량에 온 남녘이 경탄하였다.

하기에 지난 시기 우리를 적대시하며 한생을 반공으로 살아온 한 야당의 총재라는 사람까지도 김정일장군님의 정과 덕을 무심히 받아들일수만 없어 그이께 감사의 표시로 전례없이 답례선물을 삼가 올리였다.

칠보산송이버섯선물에 대한 이 전설같은 이야기는 남녘동포들에게 민족의 향취를 안겨주기 위해 그토록 마음써오신 위대한 장군님의 숭고한 민족애, 동포애를 겨레의 가슴속에 깊이 새겨주며 길이길이 전해질것이다.

3

 

조국의 품에 안긴 비전향장기수들

 

우리 민족끼리 통일시대의 힘찬 첫걸음을 뗀 이 땅에서는 이전에는 상상조차 할수 없었던 경이적인 사변들이 련이어 일어났다.

주체89(2000)년 9월 2일 오전 10시 온 겨레의 뜨거운 관심과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남조선에서 수십년세월 철창속에서도 신념과 의지를 굽히지 않은 통일애국투사들, 63명의 비전향장기수들이 판문점의 중앙분리선을 넘어 꿈결에도 그리던 사회주의조국의 품에 안기였다.

당과 군대, 국가의 지도간부들과 정다운 혈육들이 판문점에 나가 그들을 뜨겁게 포옹하였다.

얼마나 바라고 기다리던 이날인가.

날이 갈수록 깊어만 가는 분렬과 대결의 심연속에서 살아서 다시 돌아가리라고 생각지 못하였던 비전향장기수들이 위대한 장군님의 품, 사회주의조국의 품으로 돌아오는 이날의 광경은 참으로 눈물없이는 볼수 없었다.

거의 한생을 철창속에 갇혀있으면서도 눈물을 보일줄 몰랐던 강철의 인간들, 사형장으로 나가는 사랑하는 동지들과 영결하면서도 오열과 피눈물을 씹어삼키며 결사의 노래를 불렀던 불굴의 통일애국투사들의 얼굴마다에서는 기쁨과 감격, 고마움에 젖은 눈물이 흘러내리였다.

개성에서 평양에 이르는 수백리 연도에 환영의 꽃바다가 펼쳐졌고 평양시민모두가 거리에 떨쳐나와 승리자의 월계관을 쓰고 영웅이 되여 돌아오는 그들을 열렬히 환영하였다.

공화국의 신문, 방송들은 물론 세계의 언론들이 비전향장기수들에 대한 특대형환영행사를 대서특필하고 실황중계하였다.

조선반도에 펼쳐진 이 믿어지지 않는, 전설이 아닌 엄연한 현실을 지켜본 세상사람들은 경악과 경탄의 감정을 동시에 느끼였다.

21세기를 눈앞에 두고있는 시기까지도 《자유민주주의사회》라고 자처하는 남조선땅에 중세기적인 사상전향을 강요당하여온 비전향장기수들이 있다는 사실앞에 경악하였고 한두명도 아니고 63명의 통일애국투사들이 조국의 품으로 돌아오는 격동적인 모습을 보고 경탄을 금치 못하였다.

력사를 거슬러보아도 세상에는 비전향장기수라는 말도 없거니와 이런 영웅전사들의 조국개선이라는 사변도 있어본적이 없다.

짜리로씨야가 나뽈레옹시기의 포로들을 데려가라고 하였으나 당시 프랑스의 부르봉왕조가 나뽈레옹때의 포로들은 모른다고 돌려받는것을 거절함으로써 숱한 프랑스병사들이 로씨야의 감옥에서 근 30년간이나 옥살이를 하면서 갖은 고통을 다 당하며 죽어갔다는 비참한 이야기는 품어줄 조국이 없고 령도자가 없는 포로들의 운명이 얼마나 비참한가를 보여주었다.

세계언론은 한때 미국에 체포되였던 이전 쏘련의 한 정보일군과 쏘련령공에서 격추되여 포로되였던 미국의 《U-2》간첩비행기 비행사를 교환한 사실을 크게 떠들어댔다.

그러나 비전향장기수들의 귀환은 그러한 일대일의 포로교환이 아니였다. 63명 통일애국투사들의 당당한 개선이였다.

세기의 분기점에서 일어난 이 세계적인 사변은 혁명동지 한사람한사람을 귀중히 여기시며 그들의 운명을 끝까지 책임지고 보살펴주시는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만이 펼치실수 있는 숭고한 동지애와 의리의 세계, 우리 민족끼리의 6. 15가 낳은 사랑의 력사적화폭이였다.

반세기이상 지속되여온 민족분렬의 력사속에 세상에 없는 비전향장기수로 불리운 통일애국투사들의 생존여부가 남조선의 인권운동단체들과 진보적인사들에 의해 알려지기 시작한것은 1990년대 초엽이였다.

그때까지 세상사람들은 27년동안 감옥살이를 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넬슨 만델라를 세계최장기수로 알고있었다. 그가 형기를 마치고 출옥했을 때 세계는 얼마나 떠들었던가.

그런데 조국통일을 위하여 투쟁하다가 체포된 비전향장기수들은 통일애국의 뜻을 지켜 전향하지 않는다는 단 한가지 리유로 30~40년 심지어 45년간이나 옥중고초를 치르어야만 하였다. 인간의 초보적인 자유마저 완전히 박탈당한 상태에서 애기주먹만 한 보리밥 한덩이가 한끼의 《먹이》였고 0. 75평의 페쇄된 독감방이 생활공간이였다.

한때 비전향장기수들의 석방운동을 벌리던 남조선의 진보적인사들이 서울의 명동성당앞에 0. 75평의 가설독감방을 만들어놓고 그속에서 하루동안 감옥체험을 해본 일이 있었는데 그들은 다 《죽음보다 더 고통스러운 한시간이 백년같이 긴 지옥의 체험이였다.》고 고백하였다고 한다.

남들이 하루도 견디기 힘들어한 곤난을 비전향장기수들은 자기의 사상과 신념을 지켜 수십년동안이나 이겨냈던것이다.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굴할줄 모르는 그들의 신념과 의지를 값높이 평가하시면서 비전향장기수들의 생사여부가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초시기부터 그들을 조국의 품으로 데려오기 위한 통이 큰 작전을 펼치시였다.

그리하여 1993년 3월에 비전향장기수 리인모가 판문점을 넘어 조국의 품에 안기게 되였으며 비전향장기수들을 데려오기 위한 투쟁에서는 돌파구가 열리게 되였다.

주체83(1994)년 2월 28일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에게 세계에 옥중투쟁을 하여 소문이 난 사람들이 있지만 남조선의 감옥에서 30년 또는 40년을 굴하지 않고 옥중투쟁으로 인생의 전부를 보낸 비전향장기수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30년, 40년 옥중투쟁을 하면서 전향하지 않은 혁명가들에 대한 이야기는 오직 우리 당에 의하여 교양육성된 혁명가들속에서만 나오고있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면서 나는 남조선에 있는 비전향장기수들을 어떻게 하나 모두 데려올 결심을 하고있다, 나는 비전향장기수들을 데려오는 문제를 혁명의 길에서 우리 당을 받들어싸운 동지들에 대한 혁명적의리로 여기며 혁명의 령도자가 전사들에게 베풀어야 할 고귀한 사랑으로 간주하고있다고 힘주어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후 전선시찰의 길을 이어가시는 속에서도 불굴의 통일애국투사들을 한시도 잊지 않으시고 그들의 건강과 귀환을 위해 수십여차의 간곡한 가르치심을 주시였으며 적극적인 조치도 취해주시였다.

1997년 5월 남조선에 있는 비전향장기수 김인서가 34년간의 옥중투쟁과정에 얻은 병세가 악화되여 고생하고있다는 보고를 받으신 장군님께서는 몹시 가슴아파하시면서 그의 건강회복에 필요한 고급약들을 보내도록 하시였으며 그 약들이 어떻게 하나 본인에게 가닿도록 제반 조치들을 다 취해주시였다.

또한 북에 처자가 있건없건, 고향이 북이건 남이건 관계없이 공화국의 품에 안기기를 희망하는 통일애국투사들은 다 데려오도록 뜨거운 은정을 베풀어주시면서 그들을 데려오기 위한 투쟁이 세계적범위에서 힘있게 벌어지도록 이끄시였다.

공화국의 사회단체들은 통일애국투사들을 조속히 돌려보낼것을 요구하여 성명과 담화를 련속 발표하였으며 그 실현을 위한 련대성을 호소하여 국제인권단체들과 기구들, 세계 각국의 인권기구들과 정당, 단체들에 편지들을 보내였다. 한편 남조선과 해외동포들속에서도 편지보내기, 서명운동, 기자회견, 항의투쟁 등 다양한 형태의 운동이 벌어졌으며 여기에 정의와 진리를 사랑하고 인권을 존중하는 국제사회계와 세계 각국의 진보적인 정당, 단체들도 광범히 참가함으로써 통일애국투사들을 공화국으로 돌려보내는 문제는 세계적으로 20세기 최대의 인권문제, 인도주의문제로 부각되게 되였다.

비전향장기수들을 조국의 품으로 데려오기 위한 투쟁을 정력적으로 이끌어오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세기가 교차되는 2000년에 이 문제를 빛나게 해결하시였다.

다가오는 새 세기와 더불어 조국통일의 전환적국면을 열어제낄 웅대한 구상을 무르익히시던 2000년 1월 어느날 남조선에 있는 비전향장기수모두를 빨리 데려올데 대한 가르치심을 주신 장군님께서는 력사적인 북남수뇌상봉을 통하여 자신께서 몸소 비전향장기수문제를 해결하실 단호한 결심을 내리시였다.

민족분렬 55년만에 처음으로 이루어진 북남수뇌상봉앞에는 민족의 장래와 관련하여 북과 남사이에 해결하여야 할 많은 문제들이 놓여있었다.

하지만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 모든것들의 앞자리에 비전향장기수들을 데려오는 문제를 놓으시고 북남수뇌회담에 상정시키시였다. 장군님께서는 남측 당국자와의 회담시 비전향장기수문제를 평양상봉에서 해결해야 할 중요한 문제로 내세우시고 흩어진 가족, 친척문제와 함께 인도적문제의 테두리안에서 해결하도록 하시였다. 그리고 회담이 끝나고 남측 당국자와 목란관연회장으로 향하는 차안에서와 연회도중에도 장군님께서는 이 문제를 상론하시여 결말을 보시였다.

그리하여 비전향장기수문제는 6. 15북남공동선언에 명기되게 되였다.

《3. 북과 남은 올해 8.15에 즈음하여 흩어진 가족, 친척방문단을 교환하며 비전향장기수문제를 해결하는 등 인도적문제를 조속히 풀어나가도록 하였다.》

인류정치사에는 정치지도자들간의 합의문서들이 허다하다.

그러나 수십년세월 옥에 갇혀있던 옛 병사들을 데려오는 문제를 포로교환각서도 아니고 전쟁종식문서도 아닌 력사적인 통일선언문에 명기한 례는 없었다. 하기에 세계는 북남공동선언을 조국통일의 리정표일뿐아니라 장군님의 인덕정치, 도덕의리의 력사적선언이라고 격찬하였던것이다.

력사적인 평양상봉이 있은 때로부터 10여일 남짓이 지난 6월 28일 일군들과 자리를 같이하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수십년동안 형언할수 없는 악형과 박해속에서도 혁명적지조를 지켜온 비전향장기수들을 모두 데려오실 확고한 결심을 표명하시면서 인간으로서 최악의 고통을 당하면서도 30?40년동안 지조를 지킨다는것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 전향하겠다는 말 한마디만 하면 감옥살이고통을 면할수 있었지만 비전향장기수들은 그 어떤 유혹이나 강압에도 굴하지 않았다고 크나큰 믿음을 담아 말씀하시였다. 그러시면서 비전향장기수들을 한꺼번에 수십명이나 데려오는것은 지금까지의 력사에 있어본적이 없는 일이며 오직 우리 나라에서만 있을수 있는 일이라고, 비전향장기수들을 데려오면 최상으로 우대해주며 그들을 높이 내세우고 자랑하여야 한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그로부터 이틀후인 6월 30일 재미녀류기자 문명자와 하신 담화에서도 장군님께서는 우리는 남측에 할수 있는껏 다 양보해보려 한다시며 6. 15공동선언리행과 비전향장기수들을 무조건 데려오실 의지를 피력하시였다.

이러한 의지와 결심으로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남측이 평양상봉에서 합의한대로 8.15조국해방기념일을 계기로 비전향장기수들을 돌려보내지 않았을 때에도 남측을 엄하게 추궁하게 하시고 그들로부터 9월초에 무조건 비전향장기수들을 돌려보내겠다는 담보를 받아내도록 하시였다.

온 세계가 《혁명가들의 암흑으로부터 광명에로의 대이동》, 《세기의 기적》이라고 하며 경탄을 금치 못해한 비전향장기수들의 귀환은 이렇듯 동지애와 의리의 최고화신이신 위대한 장군님의 정력적인 령도에 의하여 이루어질수 있었다.

진정 한줌 흙으로 력사의 락엽속에 묻힐번 한 그들의 운명을 구원하시여 고엽인생을 청엽인생으로 부활시켜주신 김정일장군님의 위대한 사랑과 믿음이 있어 우리 민족끼리의 6. 15와 더불어 이 땅에는 가장 숭고하고 아름다운 의리와 동지애의 화폭이 펼쳐졌던것이다.

4

 

언론인의 사명과 역할을 다하도록

 

우리 민족끼리의 통일열풍, 자주통일열풍속에 북남관계에서 화해와 단합, 협력의 새로운 장이 펼쳐지기 시작하던 주체89(2000)년 8월 5일 남조선의 언론사대표단이 평양에 도착하였다. 남조선 문화관광부 장관과 신문협회 회장인 한겨레신문사 사장, 방송협회 회장인 《KBS》 사장을 공동단장으로 하여 남조선의 주요신문, 방송회사 사장, 총국장들로 구성된 전례없이 큰 규모의 대표단이였다.

남조선의 한다하는 언론인들로 무어진 대표단의 평양방문은 6. 15북남공동선언리행에서 언론이 노는 역할과 남조선언론의 실태를 깊이 헤아리신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 취하신 조치에 따라 이루어진것이였다.

언론은 사회여론의 대변자, 정의와 량심의 선도자이다. 조국통일위업수행에서도 언론은 자기의 사명과 본분에 맞게 인민들의 통일지향과 념원을 대변하여 온 겨레를 통일애국투쟁에로 불러일으키는 선도자적인 역할을 하여야 하는것이다.

그러나 남조선의 언론기관들로 말하면 그 대부분이 력대 독재정권의 정치시녀, 어용도구로서 남조선인민들속에 반공화국대결의식을 고취하고 통일열기에 찬물을 끼얹어왔다. 7. 4공동성명이 발표되였을 때 집권자들의 반공화국대결정책에 추종하여 공화국에 대한 악랄한 비방중상으로 북남관계를 파탄에로 몰아가는데 앞장선것도 다름아닌 남조선의 보수언론이였다. 6. 15공동선언이 나온 후에도 《조선일보》와 같은 반공보수언론들은 의연히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며 북남간에 불신과 적대감을 고취하기에 급급하였다.

남조선보수언론들의 이러한 행위는 북남공동선언리행과 북남관계개선에 장애로 되고있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남조선언론과의 사업을 잘하는것이 통일운동을 촉진시키는데서 선차적과제로 나선다는것을 통찰하시고 력사적인 평양상봉때 남조선의 언론사대표들을 초청하도록 하시였다.

이렇게 되여 평양으로 오게 된 남조선의 언론사대표단 성원들의 방문의 나날은 위대한 장군님의 깊은 관심과 뜨거운 은정속에서 흘러갔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남조선의 언론사대표들이 평양방문기간 한피줄을 나눈 북녘인민들의 따뜻한 동포애의 정과 고상한 정신도덕적풍모를 느낄수 있도록 그들의 체류일정, 숙식조건 등에 깊은 관심을 돌리시였다. 대표단의 일정에서 백두산지구참관에 특별한 의의를 부여하신 장군님께서는 그들에게 특별비행기까지 내주도록 하시였으며 남조선의 《중앙일보》 사장이 방문기간에 생일을 맞게 된다는것을 아시고는 그에게 성의껏 생일을 차려주도록 하시는 은정도 베풀어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각별한 관심과 사랑속에 남조선의 언론사대표들은 아무런 불편도 없이 방문의 날을 보내였다. 그들은 만경대와 국제친선전람관, 로동신문사와 조선중앙방송위원회를 비롯한 평양과 지방의 여러 대상들을 참관하였으며 북의 언론인들과 한자리에 모여 력사적인 북남공동선언리행을 위해 함께 노력할것을 다짐하고 북남언론기관들의 공동합의문도 채택발표하였다.

특히 8월 9일 백두산지구를 찾고 남조선언론사대표단성원들이 받아안은 충격은 컸다.

백두산밀영고향집에 소중히 보존되여있는 사적물들을 주의깊게 돌아보면서 그들은 백두의 정기를 안고 빨찌산의 아들로 탄생하신 위대한 장군님의 위인상을 더 잘 알게 되였으며 백두산정에 올라 이 세상 어디에서도 볼수 없는 백두산의 장엄한 해돋이를 부감하면서 우리 민족은 백두산하늘아래서 한피줄을 잇고 살아온 하나의 민족임을 페부로 느낄수 있었다.

그럴수록 그들은 한시바삐 백두산이 낳은 위인이신 김정일장군님을 만나뵙고싶은 충동을 더더욱 금할수 없었다.

지방현지지도의 길에서 남조선언론사대표단의 백두산지구참관정형과 그들이 이번 방문길에 어떻게 하나 국방위원장님을 꼭 뵙게 해달라는 청원을 제기한데 대해 보고받으시고 8월 12일 평양으로 돌아오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쌓이고쌓인 피로도 푸실 사이없이 이날 낮 12시부터 무려 3시간 20분동안이나 그들을 만나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먼저 평양을 방문한 남조선언론사대표단을 열렬히 환영하시고 그들과 따뜻한 담화를 나누시였다.

그이께서는 이번에 북과 남의 언론기관대표들이 한자리에 모여 민족의 통일지향과 의지를 담아 훌륭한 공동합의문을 채택한데 대해 축하하신 다음 우리 민족이 겪어온 수난에 찬 분렬의 력사를 회고하시면서 민족적자존심을 가지고 새 세기의 요구에 맞게 민족앞에 나서는 력사적과제를 풀어나가며 민족공동의 리익을 도모하고 북남관계를 새롭게 발전시킬데 대하여 말씀하시였다.

계속하여 장군님께서는 6. 15공동선언이 발표된 이후 북과 남의 제반 관계가 민족적화해와 단합, 조국통일에 리롭게 발전하고있는데 대하여 만족을 표시하시고 공동선언을 리행하는데서 북과 남의 언론기관들과 언론인들이 자기의 책임과 임무를 다하여야 할것이라고, 이제는 북남언론기관들의 공동합의문도 나온것만큼 서로 힘을 합쳐 공동선언리행에 도움이 되고 인민들의 의사에 맞는 언론활동을 적극 벌려나가야 할것이라고, 이제는 누구도 민족의 화해와 단합, 통일에로 나가는 시대의 흐름을 멈춰세우거나 훼방하는 일을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하시였다.

정의와 량심의 대변자인 언론인들이 민족의 자주정신을 높이 발양시키고 온 겨레를 자주통일의 한길로 불러일으키는 선구자로서의 자기의 사명과 역할을 원만히 수행해나가기를 바라시는 크나큰 뜻이 담긴 그이의 말씀을 받아안으며 남측의 언론사대표들은 지난날 자기들의 불미스러운 과거가 돌이켜지는지 얼굴을 들지 못하였다.

그들의 속마음을 헤아리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누구든지 6. 15공동선언을 지지환영하고 통일위업을 실현하는데 나선다면 여당이건 야당이건 관계없이 그리고 과거는 물론 어제날의 실언도 불문에 붙이고 함께 손잡고나갈것이라고 하시였다.

이윽고 장군님께서는 언론사대표들을 오찬회장으로 이끄시였다.

후날 세계의 언론이 《미국에 의해 수십년간 길들여진 반공나팔수들을 너무도 짧은 순간에 련공나팔수들로 변신시킨 경이스러운 오찬》이라고 평한 목란관에서의 이날의 오찬회는 처음부터 환희와 격정으로 끓어번졌다.

남조선언론사대표단 성원들은 자기들을 평양에 초청하시고 세심한 관심을 돌려주신 위대한 장군님께 진심으로 되는 감사의 뜻을 표하면서 그이의 건강을 축원하여 축배를 들었다.

의례절차 같은것은 당초에 뒤로 제쳐놓으시고 너무도 허물없이 자기들을 대해주시는 위대한 장군님의 소탈한 풍모에 어려움이나 자제력도 잊고 그들은 축배잔을 내려놓기 바쁘게 기자로서의 기질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먼저 어느 한 신문사 사장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장군님께 서울에 언제쯤 오시겠는가고 첫 질문을 올리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비위살좋은 그의 질문이 언론인고유의 직업적타성에서 나온것이라고 아량있게 대하시며 우렁우렁한 음성으로 적절한 시기에 가겠다고 대답을 주시였다.

그러자 그는 국방위원장님께서 서울에 오신다면 우리 언론사 전체 성원들이 떨쳐나서 국방위원장님을 열렬히 환영하겠다고 말씀을 올리였다.

장군님께서 고맙다고 하시며 한손을 들어 그에게 답례를 보내시는데 누군가 또 질문을 올렸다.

《남북조선 수뇌분들을 시드니올림픽에 초청할 경우 시드니에 가시겠습니까?》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미소를 지으시며 시드니에 가서 배우노릇을 하기보다는 같은 민족이 사는 서울에 가서 동포들을 먼저 만나보겠다고 말씀하시였다.

별로 생각해보실 시간적여유도 없이 즉석에서 주시는 대답이였으나 기지가 넘치고 심원한 뜻이 담긴 말씀이여서 남측의 언론인대표들은 약속이나 한듯 자리에서 일어나 요란한 박수갈채를 터뜨렸다.

연회장의 분위기는 한껏 고조되고있었다.

《전주김씨의 시조묘를 찾아보시지 않겠습니까?》

《제주도에 오시지 않겠습니까?》

《미국과의 수교는 언제쯤 될것으로 전망하십니까?》

《일본과의 관계정상화는 언제 실현하시겠습니까?》

위대한 장군님을 모시고 진행하는 인터뷰이기라도 한듯 그들의 질문은 무례하다 할 정도로 극성스러웠다.

하지만 장군님께서는 남측의 언론사대표들이 관심하는 문제들에 대해서 명쾌한 대답을 주시였는데 그 모든 말씀들이 그들에게는 너무도 놀랍고 경탄스러웠다. 어떤 복잡한 문제에도 막힘이 없으시였고 마디마디에 심오한 철학이 담겨져있었다.

남조선에서는 그래도 제노라 하는 언론사의 대표들은 활달하고 위풍당당하시면서도 너무도 평범하신 위대한 장군님의 인품에 완전히 매혹되였다.

허물없이 언론사대표단 성원들과 잔을 찧으시고 사진도 찍어주시고, 오랜 친구처럼 그들의 팔을 끼고 다정히 걷기도 하시고 막역한 사이처럼 격식없이 롱도 하시고, 대표단성원들이 관심하는 문제들에 때로는 단마디로 명백하게, 때로는 해학적인 표현을 섞어가며 누구에게나 가슴후련하게 명쾌한 답변을 주시는 장군님은 말그대로 《천하를 얻고 천하를 움직이시는 멋진 지도자》이시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절세의 위인에 대한 끝없는 경모와 매혹의 감정이 오찬석상에 차넘치고있는데 문득 대표단의 한 성원이 자리에서 일어나 정중한 자세로 위대한 장군님께 질문을 올렸다.

《국방위원장님, 통일은 언제쯤 됩니까?》

간단하고 단순한것 같은 질문이였지만 온 겨레가 반세기이상이나 마음속에 절절하게 간직하고 살아온 거대한 의미가 담긴 질문이였다.

그 자리에 참가한 모든 사람들이 숨을 죽이고 장군님을 우러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즉석에서 장내를 찌렁찌렁 울리는 음성으로 그것은 북과 남이 마음먹기에 달려있다고, 우리가 어떻게 결심하고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치는가에 따라서 통일은 이제 당장이라도 실현될수 있는 문제이라고 힘주어 말씀하시였다.

6. 15북남공동선언의 기본정신인 우리 민족끼리의 리념이 바로 통일을 이룩할수 있는 근본비결임을 깨우쳐주는 뜻깊은 말씀은 만장을 숭엄한 분위기에 휩싸이게 하였다.

이어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두달전 북과 남은 공동선언에서 자주적으로 우리 민족끼리 단합해서 통일의 문을 열데 대하여 전세계앞에서 확약하였다, 이 세상에서 제일먼저 국가를 세우고 문명을 떨쳐온 슬기롭고 용감한 우리 조선민족이 그래 무엇이 모자라서 우리끼리 통일을 이루지 못하겠는가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면서 남의 강요에 의해 갈라졌던 부부가 다시 만날 때에도 단계적으로 재화합하는가고 반문하시고나서 서로 만나 포옹하고 오해를 풀면 되는거지 일부 사람들처럼 그 무슨 《상호주의》요 뭐요 하는 보따리장사군같은 괴이쩍은 론거를 들고나와 문제를 까다롭게 해서는 백년이 가도 평화통일이 안된다고, 우선 남의 잔치상에 감놔라 배놔라 하고 참견하는 불쾌한자들이 없어야지 그자들의 롱락물이 되였다가는 우리 민족끼리 서로 싸우다가 외세에게 어부지리를 주고 또다시 노예가 되여 남부녀대하고 유태민족처럼 뿔뿔이 흩어지고만다고 절절히 말씀하시였다.

들으면 들을수록 조국통일의 주인은 바로 우리 민족자신이라는 철리를 깊이 새겨주는 장군님의 심오한 말씀은 남조선언론사대표단 성원들로 하여금 지난날 민족을 외면한채 외세에 집착하여 공화국을 반대하고 통일을 방해하는 언론활동을 해온 죄책감을 금할수 없게 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죄송스러워하는 이들의 마음을 너그럽게 헤아려주시며 자신께서는 이 자리에 참석한 모든 사장선생들이 일일천추로 통일을 갈망하는 남녘겨레의 마음을 안고 평양으로 온것을 고맙게 생각하며 그런 의미에서 다시한번 통일애국에 불타는 선생들의 그 대용단에 깊은 사의를 표한다고 따뜻이 말씀하시였다.

그이의 말씀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우뢰같은 박수갈채가 터져나왔다.

언제나 민족의 리익을 첫자리에 놓으시고 말씀 한마디 하시여도 애국의 넋과 민족의 향취가 넘쳐나는 말씀을 하시는 위대한 장군님을 우러르며 남측의 언론인들은 흘러가는 한초한초의 시간이 아까워 북남 및 국제관계는 물론 생활적인 문제들에 대한 질문까지도 경쟁적으로 올렸다.

앞으로의 대외관계전망에 대하여 말씀해주셨으면 한다는 어느 한 방송사 사장의 청을 받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우리는 주변에 큰 나라들을 두고있고 북과 남의 인구를 합쳐도 1억이 안되는것만큼 어디까지나 제정신을 가지고 존엄있게 살아야 한다고, 큰 나라라고 하여 그에 비굴하게 아첨하거나 굽신거리지 말아야 한다고 하시면서 자주성은 곧 민족의 생명이라고 할수 있다, 나라와 민족의 자주성을 고수하고 리익을 지키는데서는 뭐니뭐니해도 군대가 강해야 한다, 우리의 힘의 원천은 크게 두가지라고 할수 있는데 하나는 온 사회의 일심단결이고 다른 하나는 강한 군사력이다, 강한 군사력이 없이 그저 큰 나라들과 친하게 지내면 옛날의 대원군이나 민비신세를 면할수 없다고 알기 쉽게 설명해주시였다.

시간이 퍼그나 흘러 오찬회를 마감할 때가 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북에 와서 너무도 극진한 환대를 받았기때문에 앞으로 북측대표들이 남에 나오면 어떻게 대접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언론사사장들에게 그런건 조약을 체결한것도 없으니 남쪽식으로 하면 될것이라고 하시여 장내에 웃음바다를 펼쳐놓으시였다.

떨어지기 아쉬워하는 그들을 한사람한사람 바라보시며 장군님께서는 통일의 그날은 시시각각 다가오고있다, 민족의 화해와 단합에 이바지하는 통일언론으로 새롭게 태여나 시대의 선도자이고 정의로운 투사로서의 언론인의 사명과 역할을 훌륭히 다해나가기를 바란다고 힘주어 말씀하시였다.

남조선언론사대표단 성원들은 위대한 장군님께서 오랜 시간에 걸쳐 자기들을 친절히 만나주시고 민족적단합을 도모하며 나라의 통일을 앞당기기 위한 유익한 말씀을 해주신데 대하여 깊은 사의를 표시하면서 연회장을 떠나시는 장군님께 다함없는 존경과 감사의 인사를 드리였다.

이날의 담화와 오찬은 남녘의 언론인대표들에게 있어서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의 탁월한 식견과 언제나 민족을 생각하고 통일을 바라시는 그 숭고한 풍모에 완전히 반한 매혹과 감동, 충격의 순간순간이였다.

다음날인 8월 13일, 남조선의 주요신문들과 방송들은 일제히 위대한 장군님께서 무려 3시간이 넘는 오랜 시간 평양을 방문한 남측언론사대표단 성원들을 만나주신 소식과 목란관오찬회에서 하신 장군님의 말씀을 전면 게재하고 보도하였다.

김정일국방위원장. 목란관에서 평양을 방문한 언론사 사장단 성원들과 오찬 진행.

김정일국방위원장은 순간에 온넋이 끌리는 매혹의 지도자였다. 아시는것이 너무 많으셔 놀라왔고 판단력과 림기응변이 너무 능하셔 경탄스러웠다. 어떤 복잡한 문제에도 막힘이 없이 명쾌한 해답을 주셨고 한마디의 말씀에도 심오한 철학을 담아 풀이하셨다. 허물없이 사장단성원들과 건배도 하시고 사진도 함께 찍으시였으며 오랜 친구처럼 팔을 끼고 다정히 걸으시며 막역한 벗인듯 격의없는 롱도 하셨다.》

《이남언론의 <대부>들이 평양을 다녀와 련공통일언론이 되였다. 반공선전에서는 남에게 뒤지지 않는다는 이남언론이 단 한번의 방북으로 위인칭송언론, 련북통일언론의 장을 펼치게 됐으니 이것이야말로 듣던바 처음이요, 보던바 처음이다. 이런 희한한 일은 세계의 모든 명인, 재사들과 뛰여난 정치가들을 다 합한것보다 더 걸출한 김정일장군께서만이 펼쳐놓으실수 있다.》

외신들까지도 《오찬에 참가한 언론사사장들모두가 속기수가 되여 김정일국방위원장의 말씀을 한마디라도 놓칠세라 빠짐없이 기록보도한것만 보아도 목란관오찬회의 열기를 가히 짐작할수 있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은 목란관오찬을 통해 지난날 불신과 대립만이 지배했던 북남언론사에 종지부를 찍고 통일언론의 탄생을 선포하였다.》고 격찬하였다.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 남조선언론사대표단을 만나주신것은 북에 대한 남조선언론의 이지러진 관점을 바로세우고 6. 15북남공동선언리행에서 언론인의 본분을 지켜나가도록 하는데서 전환적계기로 되였다.

언론사대표단의 평양방문이후부터 남조선언론들은 위대한 장군님의 위인상을 적극 소개선전하고 련북을 지향하는 언론으로 새로운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남조선의 《경향신문》(2000년 12월 21일부)과 잡지 《시사져널》은 20세기 특기할 사변을 마련하신 위대한 장군님을 《2000년 올해의 인물》로 전례없이 발표하였다. 특히 남조선언론계는 위대한 수령님과 장군님의 영상사진을 많이 모시였는데 주요신문 11종과 잡지 14종만 보아도 수령님과 장군님의 영상사진을 총 1 030상을 모시였다. 그런가 하면 주요신문들과 잡지들이 북남합의서발표 이전인 2000년 3월 한달동안에 북과 관련한 기사를 평균 7. 5건(사설은 평균 3. 5건)을 실었다면 언론사대표단의 평양방문이후인 9월과 10월에는 사설만 해도 한달에 평균 10건으로서 3일에 한번정도로 실었으며 기타 시론, 론평 등은 거의 매일 싣다싶이 하였다.

또한 6. 15공동선언발표 5돐이 되는 2005년까지 5년간 남조선의 주요출판물들에 모셔진 위대한 장군님의 영상사진은 무려 3300여상이나 되며 위대성소개기사들과 반향자료들은 4 000여건이나 되였다.

남조선언론들의 이러한 동향과 관련하여 우익보수세력들속에서는 《친북언론으로 전향했다.》, 《남의 정부기관지인지 북의 정부기관지인지 분간할수 없다.》는 아우성까지 터져나왔다.

이 경이적인 현실은 투철한 민족자주사상과 뜨거운 사랑, 크나큰 도량으로 만인을 매혹시키시는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의 위인적풍모가 안아온 6. 15시대의 또 하나의 기적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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