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우리 민족끼리의 6. 15

 

1) 새 세기 자주통일의 리정표를 마련하시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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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교차점에서 내리신 력사적결단

 

전대미문의 고난과 시련속에서도 조국통일3대헌장의 기치높이 민족의 화해와 단합, 통일을 위한 거족적인 투쟁을 벌려온 우리 겨레는 20세기의 마지막해인 주체89(2000)년을 맞이하였다.

세기와 세기가 교차되는 분기점인 이해 4월 10일 북과 남이 다가오는 6월에 평양에서 수뇌상봉과 최고위급회담을 개최하기로 합의하였음을 내외에 선포하는 4. 8합의서가 동시에 발표되였다.

《북과 남은 력사적인 7. 4북남공동성명에서 천명된 조국통일3대원칙을 재확인하면서 민족의 화해와 단합, 교류와 협력, 평화와 통일을 앞당기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합의하였다.

김대중대통령의 요청에 따라 김대중대통령이 금년 2000년 6월 12일부터 14일까지 평양을 방문한다.

평양방문에서는 조선로동당 총비서이신 김정일국방위원장과 김대중대통령사이에 력사적인 상봉이 있게 되며 북남최고위급회담이 개최된다.

쌍방은 가까운 4월중에 절차문제협의를 위한 준비접촉을 갖기로 하였다.》

후날 《4. 8북남합의서》로 불리운 이 합의서의 발표는 북과 남, 해외의 온 겨레를 감격과 환희에 휩싸이게 한것은 더 말할것도 없고 세계를 깜짝 놀래우며 이목을 집중시켰다.

남조선에서는 여야당과 경제, 시민, 로동계는 물론 군부까지도 앞을 다투어 합의서를 지지환영하는 립장들을 밝혔다. 합의서발표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북남수뇌회담이 《바람직하다》는 사람이 81%에 달했으며 북남수뇌회담으로 《남북관계개선의 전기가 마련될것》이며 이로 하여 《통일이 더 빨리 올것》이라고 한 사실은 4. 8북남합의서채택을 지지환영하는 남녘의 민심을 보여주는것이였다.

북남합의서발표에 따른 세계 각국의 반향도 컸다.

중국외교부와 로씨야외무성은 북남합의서를 지지환영하는 정부의 립장을 밝혔으며 미국과 일본도 속은 어쨌든 합의서를 지지환영하는 태도를 보였다. 클린톤이 남조선당국자에게 축전을 보내여왔는가 하면 미국무성 대변인은 《우리는 이 사변을 환영한다.》는 성명을 발표하고 미국무장관 보좌관이 《뉴욕 타임스》지와의 회견에서 미국은 남북간 《정상회담》을 오래동안 직간접적으로 지지하고 권유해왔다고도 하였다. 일본의 고위정객들도 북남수뇌회담이 일조관계발전에 훌륭한 영향을 미칠것이라고 하였다.

4. 8북남합의서의 발표는 잔잔한 호수에 던져진 돌마냥 온 세계에 충격의 파장을 일으켰다.

하다면 온 겨레의 가슴마다에 환희와 격정을 불러일으키고 세상사람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안겨준 4. 8북남합의서가 어떻게 나오게 되였는가. 1994년이후 얼어붙었던 북남관계에 파렬구를 내고 민족사적사변을 예고하는 합의서를 이끌어낸 원동력은 과연 무엇인가.

그것은 조국통일을 필생의 사명으로 여기신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의 애국애족의 통일의지와 탁월한 령도, 만인을 한품에 안으시는 인덕과 도량이였다.

저물어가는 1999년을 보내고 밝아오는 2000년을 맞으시며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우리 민족이 걸어온 20세기의 비운의 력사를 돌이켜보시였다.

20세기 초엽 사대와 부패무능으로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겨 40여년세월 식민지노예살이를 하지 않으면 안되였던 우리 민족이였다. 해방후 또다시 외세에 의하여 하나의 강토, 하나의 민족이 둘로 갈라진 때로부터 어느덧 55년이 되였으니 정녕 우리 겨레는 민족분렬의 비극을 끝장내지 못한채 새 세기를 맞아야 한단 말인가. 아니다. 결코 그럴수 없다. 외세에 의하여 망국과 분렬의 년륜을 새기지 않으면 안되였던 20세기의 민족적비운사에 종지부를 찍고 21세기에 통일번영의 새로운 민족사를 수놓으려는것은 조선민족의 열렬한 지향이고 념원이다. 오늘날 민족최대의 숙원인 조국통일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 통일을 지향하는 애국세력과 분렬을 추구하는 반통일세력사이의 력량관계는 조국통일에 더욱 유리하게 전변되고있다. 이제는 자주통일의 새로운 전환적국면을 열어나가기 위한 결정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지난 시기의 분렬과 대결의 장벽을 허물어버리고 민족적화해와 단합의 새 력사를 창조해나가야 한다.

그이의 이러한 구상과 결심은 2000년 1월초 일군들에게 하신 말씀들을 통해서도 잘 알수 있다.

1월 1일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을 부르시여 2000년 새해를 맞으며 신심드높이 일을 더 잘해야 하겠다고 하시면서 2000년에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의미심장한 말씀을 하시였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1월 4일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에게 조국통일문제와 관련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우리는 2000년에 나라의 자주적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정치공세를 벌리는데서 주체성과 민족성을 계속 강하게 들고나가야 하며 자주의 기치, 민족대단결의 기치를 더욱 높이 추켜들고나가야 한다, 우리 나라는 20세기 초엽에 외세의 간섭과 사대매국노들의 외세의존으로 망했고 조국해방후에는 외세에 의하여 반세기가 넘도록 나라가 분렬되여 민족적비운을 겪고있다, 세계에는 우리 나라처럼 오랜 세월 외세에 의해 갈라져 사는 민족은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21세기의 문어구에 들어서는 오늘 우리의 생명은 자주이고 자주는 곧 통일이라는 사상을 강하게 들고나가야 한다고 하시면서 올해를 조국통일위업수행에서 결정적전환을 이룩하는 의의있는 해로 되게 하여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통일의 새로운 장을 펼치기 위한 위대한 장군님의 사색과 구상은 더욱 무르익어갔다.

그이께서는 2000년초에 들어와 조성된 정세를 예리하게 주시하시였다.

당시 남조선에서는 통일을 지향하는 대세의 흐름에 편승하여 보수적인 정치인들과 집권상층까지도 북남관계개선과 나라의 통일문제를 집권유지의 명분으로 내세우지 않으면 안되게 되였다.

그것은 2000년으로 임기중반을 넘기게 된 남조선당국자에게 있어서 북남관계에서 《정치실적》이 없기때문이였다. 이 시기에 남조선인민들속에서 집권자의 인기도는 초기 90%에 이르렀던 지지률이 30%선으로 곤두박질치는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으며 임기 5년간 북남대화탁에 한번 나와보지도 못하고 정치무대에서 사라진 전 집권자와 별반 차이가 없는 운명에 처하게 되였다. 더우기 눈앞에 박두한 4월 13일 16대 남조선《국회의원선거》를 성과적으로 치르지 못하면 《국민의 정부》의 정치적장래가 우려를 넘어 비참한 결말로 이어지리라는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또한 위대한 장군님께서 펼쳐가시는 선군정치의 위력에 의해 미국과 일본이 북과의 관계개선의 문을 두드리고있어 자기들만 소외되고있다는 조바심이 남조선당국자들을 불안하게 하고있었다. 미국대통령 클린톤은 이해말에 있게 될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조선문제 하나 해결하지 못한다는 공화당의 비난과 공격을 받고있는 형편에서 선거전야에 조미관계에서 그 무슨 실적을 올려보려고 고심하고있었고 일본도 공화국과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굽어들고있었다.

이로부터 남조선당국자는 《국회의원선거》전에 어떻게 하나 북남당국간 접촉의 기회를 얻어 선거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해보려고 하였다.

특히 그는 북남최고위급회담을 위하여 남조선의 전 당국자가 평양에 가게 되였던 전례를 따라 위대한 장군님께서 자기를 평양에 불러주실것을 여러 통로를 통해 요청해왔다. 이어 유럽방문길에 나섰던 남조선당국자는 도이췰란드의 베를린자유대학에서 한 연설에서 《남북경제협력확대》, 《리산가족문제해결》, 《한반도평화정착》, 《당국간 대화정상화》의 《4대제안》을 기본내용으로 하는 베를린선언이라는것을 발표하였다.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이러한 형세를 환히 꿰뚫어보시며 지금이야말로 조국통일의 전환적국면을 열어놓기 위한 결정적인 조치를 취할 때라고 보시였다.

세기와 세기가 교체되는 력사의 분기점에서 조국통일의 새로운 국면을 열어제끼실 구상을 무르익히시던 장군님께서는 북남최고위급회담이 개최된다는 소식에 접하여 온 겨레가 통일에 대한 환희와 격정으로 들끓던 1994년 6월의 잊을수 없는 그 나날들을 돌이켜보시였다.

그이의 눈앞에는 우리 인민들에게 줄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조국통일이라고 하시던 위대한 김일성주석의 숭엄한 영상이 안겨왔다. 북남최고위급회담과 관련한 문건에 위대한 생애의 마지막 친필존함을 남기시고 우리 겨레가 일일천추로 고대하던 조국통일이 바야흐로 눈앞에 다가왔다고 하시던 김일성주석의 우렁우렁한 음성이 금시 귀전에 울리는것만 같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한생의 념원, 간곡한 유훈이며 자신의 필생의 사명인 조국통일, 그것은 더는 미룰수 없는 우리 민족지상의 과제이다. 20세기를 마감하는 오늘 우리 민족만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분렬된 민족으로 남아있는 비극의 력사, 치욕의 력사를 끝장내야 한다. 새로운 정세변화가 조성되고있는 지금 겨레의 가슴속에 박힌 분렬의 못을 뽑고 신음하는 조국의 아픔을 풀기 위하여 일대 전환의 결단이 있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민족분렬 55년을 맞는 겨레의 절규이고 갈망이며 시대의 호소이다.

분렬의 얼음장을 삽시간에 녹여버릴 뜨거운 애국애족의 열류가 장군님의 가슴속 깊은 곳에서 용암마냥 끓어번졌다. 그이의 사색은 깊어만 갔다.

통일을 위한 대용단을 구상하시며 사색의 바다에서 심연의 노를 저어가시는 위대한 장군님의 모습은 북남최고위급회담개최라는 대결단을 내리시던 위대한 김일성주석의 숭엄한 모습 그대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자신께서 무르익혀오신 구상에 대한 확신을 더욱 굳히시였다.

북남수뇌들이 만나 한자리에 앉는다는것자체가 이 나라의 새 력사를 빛나게 장식할 장거이다. 북남수뇌상봉은 미제의 분렬책동을 산산이 부셔버리고 겨레의 머리우에 드리운 분렬의 먹장구름을 활활 불태워버릴 대사변인것이다. 시간을 잃으면 력사를 잃는다. 지금이야말로 수령님께서 위대한 생애의 마지막시기에 남기신 그 숭고한 애국애족의 통일유훈을 꽃피워야 할 시기이다.

새 세기의 문어구에 들어서는 이해에 조국통일운동에서 전환적국면을 열어제낄 원대한 뜻을 품으신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드디여 력사적결단을 내리시였다.

그이께서는 남조선당국자의 평양방문초청제의를 넓으신 도량으로 대하시며 조국통일운동사에 금문자로 기록될 북남수뇌상봉과 회담을 2000년 6월 평양에서 진행하실것을 결심하시였던것이다.

그리하여 3월 8일부터 싱가포르에서 시작된 북남간의 비공개접촉은 베이징접촉을 거치면서 여러차례 진행되게 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매일같이 북남베이징접촉정형을 보고받으시고 구체적인 지도를 주시였다.

장군님께서는 주요쟁점사항의 하나로 되고있던 초청합의문에 자신의 존함을 밝힐데 대한 남측의 요구도 대범하게 받아들이시고 남조선당국자가 장군님과 상봉하게 된다는것을 밝힐데 대한 그들의 요청에 동의도 주시면서 접촉을 성사시켜나가도록 하시였다.

3월 27일에도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에게 북남합의서에 담아야 할 내용들에 대하여 상세히 밝혀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탁월한 예지와 지도에 의하여 드디여 4월 8일에 북남합의서가 채택되게 되였다.

실로 4. 8북남합의서의 발표는 세기와 세기의 교차점에서 빛나는 예지와 비범한 통찰력으로 조성된 정세를 과학적으로 분석판단하시고 력사적인 대결단을 내리신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에 의하여 마련된 민족사적사변이며 자주통일시대의 개막을 예고하는 장쾌한 뢰성이였다.

합의서에 따라 북과 남은 4월 22일부터 5월 18일까지의 사이에 력사적인 평양상봉과 북남최고위급회담준비를 위한 5차례의 준비접촉과 2차례의 통신, 보도실무자접촉을 진행하였으며 5월 31일에는 남측선발대가 평양에 왔다.

장엄한 력사적사변의 서곡이 울린 후 온 겨레의 절박한 념원과 기대의 마음들과 세계의 이목은 평양으로, 조선으로 향하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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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남수뇌상봉과 6. 15북남공동선언의 채택

 

드디여 력사의 순간이 다가왔다. 조선반도에 도래할 사변을 기다리며 겨레의 뜨거운 관심과 온 세계의 이목이 평양으로 집중되고있는 가운데 주체89(2000)년 6월 13일이 밝아왔다.

이날 아침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어려운 걸음을 하는 김대중대통령을 백화원 영빈관에서 맞이할수 없다고, 그가 나이도 많은데다가 동족이라는 점을 고려하여 동방례의지국의 례의범절에 맞게 잘 맞이해주어야 한다고 하시며 몸소 비행장에 나가실 결심을 밝히시였다.

오전 10시 15분, 남조선《대통령》의 일반수행원들과 기자들을 태운 비행기가 평양비행장에 먼저 착륙한데 이어 남측 당국자일행이 탄 전용기가 서서히 내리였다.

10시 35분,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 비행장구내에 나오시였다.

순간 수천명 환영군중이 터쳐올리는 《만세!》의 폭풍같은 환호성과 환영곡이 천지를 진감하며 비행장구내를 들었다놓았다.

위대한 장군님의 모습을 비행장에서 뜻밖에 뵙게 된 남측 기자들을 비롯한 일행은 한동안 어리벙벙해있다가 급기야 정신을 차리고 박수를 쳤다. 그 시각 비행기안에서 남측관계자를 통하여 위대한 장군님께서 마중 나오시였다는것을 알게 된 김대중대통령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천만뜻밖의 사실앞에 한동안 움직일줄 몰랐다. 그날 아침 그는 평양을 방문한다는 중압감으로 하여 아침식사도 제대로 들지 못했다. 평양에 가면 누가 비행장에 마중 나올지, 평양시민들은 자기를 어떻게 맞이해줄지, 협상이 제대로 될지 걱정되여 긴장된 얼굴표정을 좀처럼 풀지 못하며 비행기에 몸을 실었던 그로서는 김정일국방위원장님께서 자기를 마중하러 비행장에 나오시였다는 사실이 좀처럼 믿어지지 않았던것이다.

이때의 남측대표단일행의 심리상태에 대하여 일본의 《도꾜신붕》은 《김대중을 맞이한 북조선 김정일총비서특유의 파격적인 대응은 너무도 예상외여서 한국대표단으로서는 한대 얻어맞은것 같이 얼떨떨해지고말았다.》고 전하였다.

이윽고 남측 당국자는 이 사실을 확인하는 환영군중의 환호성이 진감하는 속에 상기된 표정으로 비행기에서 내리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상상도 못한 파격적인 영접으로 하여 당황해하는 남측 당국자와 굳은 악수와 뜨거운 인사를 나누시였다.

《김대통령께서 어렵고 두려운 길을 용케 오셨습니다.》

《국방위원장님께서 이렇게 공항에까지 나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남측 당국자와 함께 조선인민군 륙해공군명예위병대를 사열하고 열광적으로 환영하는 군중들앞을 지나 승용차에 이르신 김정일장군님께서는 함께 차를 타고 가면서 이야기를 나누자고 하시며 그를 승용차의 상석에 앉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김대중대통령과 함께 타신 승용차는 모터찌클의 호위를 받으며 60여만 시민들의 열렬한 환호속에 환영일색으로 단장된 평양의 중심거리들을 돌아 숙소로 정해진 백화원영빈관으로 향하였다.

이것이 분렬 55년만에 이루어진 북남수뇌분들의 상봉의 첫 모습이였다.

그 시각 평양비행장에 나온 북녘의 인민들뿐아니라 TV와 대형전광판앞에서 북남수뇌상봉을 실황으로 보고있던 남녘의 동포들과 세계 각지의 해외동포들도 격정속에 울고웃으며 감격을 금치 못했다.

세상천지를 밝게 비쳐주는 태양처럼 환한 미소, 천리혜안의 예지가 비낀 안광, 자신감과 당당함이 력력히 차넘치는 박력있는 걸음새, 소탈함이 슴배여있는 수수한 야전복차림 등 위대한 장군님의 출중한 인품과 풍모는 온 겨레를, 아니 전세계를 경탄시켰다.

남측 당국자의 평양비행장도착소식이 현지시간으로 그대로 중계되던 서울 롯데호텔 프레스쎈터에 북남수뇌상봉취재를 위해 모여든 남조선의 111개 언론사 772명, 세계 각국의 173개 언론사 503명 등 1 275명의 기자들은 그 력사적인 장면앞에서 열렬한 박수를 터쳤다. 원래 박수를 치는데서는 깍쟁이로 소문난 기자들속에서 마지못해 치는 투덕투덕소리가 아니라 환호와 눈물이 뒤섞인 열광적인 박수가 누가 먼저랄것 없이 터져나왔던것이다. 박수는 모두 세차례, 처음은 장군님께서 비행장에 나오시였을 때였고 두번째는 장군님께서 남측 당국자와 손을 맞잡으시였을 때였으며 세번째는 같은 차에 오르시는 파격적인 모습이 나타났을 때였다.

이날의 감격적인 장면을 보고난 남조선의 한 소설가는 《화면에 비친 김정일국방위원장님의 일거수일투족은 시종 활기에 차있고 지극히 허심탄회하고 자연스러워 어찌 보면 차라리 자유세계에서 들어간 우리 김대통령보다 그이쪽이 더 자신만만하고 자유분방해보이기까지 하였다. 그러면서도 추호나마 례의에 어긋나는 일없이 손님을 맞이하는 정중함은 시종 잃지 않고있었다. 쓰딸린이후 사회주의나 그 영향하에 있던 국가의 지도자에게서 례외없이 보였던 장중한 태도나 차디찬 례의적인 몸짓이 아니라 정말로 진정으로 뜨겁고 허심탄회하게 반가와하는것이 알알하게 속속들이 살갗으로 깊이 와닿는 점도 여간 놀랍지 않다.》라고 자기의 흥분된 심정을 피력하였다.

온 겨레와 인류에게 상상밖의 충격을 안겨주며 백화원에 이르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숙소의 홀에서 먼저 김대중대통령과 기념촬영을 하신데 이어 김대중대통령내외 그리고 공식수행원들과 각각 기념촬영을 하시였다.

그러시고나서 장군님께서는 응접실에서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시였다. 그이께서는 우리는 김대통령의 신변안전관계를 고려하여 쌍방이 합의한 평양방문날자를 하루 늦추잡아 6월 13일로 공개하였다고, 그랬더니 외신들은 우리가 영접준비가 안되여 하루 연기되였다고 보도했는데 그것은 사실을 모르는 소리라고 하시였다.

계속하여 장군님께서는 《이번에 김대중대통령께서 평양을 방문하신데 대해 우리 인민모두가 진심으로 기뻐하고있습니다. 전번에 남쪽에서 특사가 왔을 때 우리가 김대통령이 평양에 오시면 섭섭치 않게 해드리겠다고 말한적이 있습니다.》라고 하시면서 우리는 실지로 이번에 말보다 실천으로 어려운 길을 걸어온 김대통령께 섭섭치 않게 해드리겠다고, 우리가 성의를 다하느라고 하였지만 소홀한 점이 있으면 이야기해달라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밖에 여러가지 문제들을 화제에 올리시며 이야기를 나누시다가 다음날의 상봉을 약속하시고 손님들의 열렬한 바래움을 받으며 백화원을 나서시였다.

남조선의 방송들과 언론계는 물론 세계의 방송, 통신, 신문들은 앞을 다투어 평양상봉소식을 즉각 특별실황중계하였으며 시간마다 최대의 중대긴급보도로 내보냈다. 세계 210개 나라에 하루 24시간 정치보도를 제공하는 미국의 CNN TV방송은 《김대중대통령이 북조선의 수도 평양에서 김정일국방위원장의 영접을 받으면서 력사는 이루어졌다.》는 의미있는 첫말로 평양상봉소식을 전세계에 날리면서 《김정일위원장이 비행장에까지 마중 나온것은 예상치 못했던것이며 매우 긍정적인것으로 받아들여진다.》라고 그 의미를 덧붙였다. 일본의 NHK, 미국의 AP 그리고 프랑스, 도이췰란드, 영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많은 통신, 방송들도 위대한 장군님께서 친히 비행장에 나오시고 백화원영빈관까지 김대중대통령과 함께 차를 타고 가신데 대해 《파격적인 례우》로, 이번 상봉과 회담의 긍정적인 결실을 예고해주는 《일대 사변》으로 보도하였다.

미국 부르킹스연구소의 객원연구원 알랙싼드르 만쓰로프는 《김정일국방위원장이 평양비행장에 홀연히 나타나서 보여준 세련된 몸짓과 김대중에 대한 공손한 례의는 서방에 큰 충격을 주었다.》고 했고 스위스의 《노이에 쯔리흐 차이퉁》지 론설위원인 비제르는 《평양지도자의 웃는 모습은 세계에 대해 누가 북을 무서워해야 하는가 반문하게 하는 매력있는것이다.》라고 평하였다.

시시각각 전해지는 평양북남수뇌상봉소식에 세계는 감격과 놀라움에 뒤흔들렸으며 폭포처럼 쏟아져 지구를 뒤덮은 충격적인 보도들과 세계 정계, 사회계의 목소리는 끝이 없었다.

세계 각국은 일제히 환영론평을 발표하여 평양상봉과 회담에 대한 보다 큰 기대와 지지를 표시하였다. 중국외교부 대변인은 평양수뇌회담이 긍정적인 성과들을 거두어 북남관계와 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정유지에 기여하기를 바란다는 립장을 표명하였고 미국의 백악관대변인은 우리는 김대중이 받은 따뜻한 환대에 고무되여있다고 밝혔다. 일본내각관방장관은 북남수뇌의 악수를 보니 감개무량하다고 하면서 회담이 원만하게 끝나기를 바란다는 의사를 표시하였다. 당시 유엔사무총장이였던 코피 아난도 유엔대변인을 통하여 발표한 성명에서 북남수뇌회담을 개최한 김정일국방위원장의 구상과 지혜에 경의를 표하고 이번 회담이 북남통일은 물론 조선반도와 그 주변지역의 항구적평화와 안정을 향한 전환점이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평양상봉의 첫막을 올린 영접행사를 지켜보며 우리 겨레와 세계가 터쳐올린 환호와 놀라움은 아직 시작에 불과하였다. 그 다음날인 14일과 15일에도 위대한 장군님의 뜨거운 민족애와 위인적풍모에 반한 세상사람들의 경탄의 목소리는 더욱더 증폭되였다.

6월 14일 오후 백화원영빈관에서 열린 남측 당국자와의 단독회담에서도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따뜻한 동포애의 정으로 그를 대하시면서 숭고한 민족애와 철의 론리로 조국통일의 새로운 리정표로 될 북남공동선언을 이끌어내시였다.

분렬 55년만에 처음으로 북남의 수뇌분들이 마주앉아 나라의 통일과 민족의 장래문제를 허심탄회하게 상론하는 력사적인 이 회담에서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겸허한 자세로 김대중에게 먼저 발언하도록 하시고 그가 베를린선언과 그것을 그대로 옮겨놓은 《친서체계》의 내용을 되풀이하는것을 오랜 시간 마지막까지 주의깊게 들어주시였다.

남측 당국자의 발언이 끝나자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2000년대를 맞이하는 첫해에 우리가 처음으로 상봉하는것만큼 7천만겨레에게 조국통일에 대한 락관을 주는 선언적인 문건을 하나 내놓는것이 좋겠다고 하시면서 선언적인 문건에 담을 자주통일사상과 합리적인 통일방안들을 철의 론리로 펴나가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첫째로, 이번에 구시대의 유물을 청산한다는 의미에서 2000년대에 우리 민족끼리를 공동의 리념으로 하여 나라의 통일을 민족자주적으로 실현할데 대하여 천명하자는것, 둘째는 련방제문제로서 북과 남의 두 제도, 두 체제를 그대로 두고 련방제통일을 지향하되 당면하여 이번 선언에는 낮은 형태의 련방제문제를 담자는것, 셋째로, 당국대화를 개최하고 련방기구를 내올데 대한 문제를 해결하면서 북남사이의 경제, 사회문화, 인도적문제도 풀어나갈데 대하여 주장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제반 문제들에 대한 일관하고 원칙적인 립장을 명백하게 말씀하시였고 상대측에서 잘못 생각하고있는 문제들에 대하여서는 알기 쉽게 해설해주시였다. 특히 남측 당국자가 련방제문제를 선언에 담는 문제에 대하여 몹시 바빠하자 남쪽에서 대통령이 내놓은 《련합제》와 우리의 낮은 단계의 련방제가 뜻이 같기때문에 호상 협의해서 하기로 했다, 이렇게 하자는것이라고 하시며 합의를 보시였다.

그이의 사리정연하고 애국애족적인 주장앞에서 남측 당국자는 시종 깊은 리해와 공감을 표시하였으며 이렇게 되여 장군님의 말씀대로 공동선언을 발표하기로 하고 그 내용에 대하여 합의를 보게 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제 공동선언이 나가면 아마 세상이 또 한번 놀랄수 있다고, 북과 남이 민족주체를 찾았다고 할것이라고, 바로 우리 민족끼리 한다는것이 중요하다고, 우리 민족끼리라는 이 말에 방점이 있다고 힘주어 말씀하시였다.

무려 4시간여에 걸쳐 진행된 력사적인 단독회담을 마치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저녁에 상대측에서 차리는 답례연회도 주최측이라고 하여 대통령이 먼저 연회장에 가서 격식대로 현관앞에서 자신을 맞이할것 없이 같은 차를 타고 함께 가자고 하시며 연회장으로 향하는 차안에서도 그리고 연회도중에도 공동선언문내용에 대하여 거듭 토론하시여 최종합의를 보시였다.

국제관계사는 무수한 수뇌상봉들과 회담들을 자기의 페지에 기록하고있지만 평양수뇌상봉처럼 온 세계에 커다란 파문과 격정을 불러일으킨 상봉, 북남수뇌회담과 같이 그처럼 커다란 성과를 이룩한 회담을 알지 못한다. 우리 나라와 같이 제2차 세계대전의 종결과 함께 분렬되였던 도이췰란드에서는 1970년 3월 19일 오전 10시 기차편으로 국경도시 에어푸르트에 도착한 서도이췰란드의 빌리 브란트총리가 그 도시의 한 호텔 3층에서 빌리 스토프 동도이췰란드총리와 첫 수뇌회담을 가졌다. 이에 대해 《불특정 자유의제가 합의되였을뿐이다. 분단 23년만에 이루어진 첫 회담은 각자의 기존립장확인이 소득이였다.》고 기록되여있다. 1986년 10월 쏘미수뇌회담 역시 《합의사안 하나없이 끝난 회담》으로 세인의 혹평을 받았다.

정치, 사상, 군사적으로 가장 첨예하게 대치하고있는 지역의 북남수뇌회담, 처음부터 남측에서 《만나는것자체가 성과》라고 할 정도로 그 결실을 예측할수 없는것으로 간주되고있던 이러한 회담에서 조국통일을 위한 중대한 문제들에 합의를 본것은 그야말로 기적이 아닐수 없었다.

이날 저녁 목란관에서 남측 당국자의 명의로 차린 답례연회가 한창 고조되고있을 때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공동선언에 합의를 보았으므로 우리 함께 연단에 나가 공동선언이 합의되였다는것을 선포하자고 하시며 남측 당국자와 함께 연탁으로 나가시였다.

《여러분!》

순간 장내에는 숭엄한 정적이 깃들었고 좌중의 시선이 일시에 연탁으로 쏠리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장중한 목소리로 말씀을 이으시였다.

《력사적인 북남공동선언이 합의되였음을 알립니다.》

그러시고는 남측 당국자의 손을 잡고 높이 쳐드시였다.

그 순간 장내에서는 폭풍같은 환호와 우렁찬 박수가 터져올랐다. 격정의 눈물없이는 볼수 없는 극적인 이 장면, 이 자랑스러운 쾌거앞에서 북쪽의 일군들이나 남측일행이나 할것없이 모든 연회참가자들은 이름할수 없는 감격과 환희로 가슴들먹이였다.

목란관연회가 끝난 14일 밤 백화원영빈관에서는 공동선언의 탄생을 정식 확인선포하는 서명식이 있었다.

선언문서를 받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펜을 드시자마자 활달한 필체로 순식간에 박력있게 서명하시였다. 서명을 마치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남측 당국자의 손을 뜨겁게 잡으시고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우리는 력사적인 북남공동선언에 서명하였다고, 력사적인 북남공동선언이 채택된것을 축하하여 모두 같이 축배를 들자고 말씀하시였다. 그러시고는 력사적인 오늘을 영원히 잊지 않기 위하여 우리 다같이 기념사진을 찍자고 하시며 김대중대통령일행과 또다시 뜻깊은 기념사진을 찍으시였다.

북남공동선언은 6월 15일 날자로 발표되였다.

이 민족사적사변이 이루어진 시간은 불과 2박3일, 더 정확히는 55시간이였다. 반만년을 헤아리는 유구한 우리 민족사는 더 말할것도 없고 장장 반세기이상 지속되여온 민족분렬의 력사를 놓고보아도 55시간이란 그야말로 순간에 불과하다.

하지만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위대한 사상과 고결한 풍모, 숭고하고도 진정에 넘치는 지성과 동포애로 분렬 55년만에 처음으로 마련된 북남수뇌상봉과 회담의 순간순간을 성공의 절정에로 이끄시여 자주통일의 새로운 리정표를 마련하시는 거대한 업적을 이룩하시였던것이다.

이에 대해 칭송한 남조선과 세계의 수많은 반향가운데서 한가지만을 보기로 하자.

《남북의 두 지도자가 만나 자리를 함께 한 날은 2박3일에 불과했다. 55년만의 만남치고는 너무 아쉬울만큼 짧은 시간이였다. 그러나 그사이에 <평양대특급>이라 할만 한 세기적작품을 성공리에 완성시켜 전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평양대특급>은 <21세기의 마지막 분단국가>라는 오명을 청산하는 동시에 랭전시대를 최종마무리하는 기념비적작품이였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누가 뭐래도 김대중과 김정일국방위원장이다. 말하자면 공동주연으로 볼수 있다. 그러나 굳이 따진다면 공동주연중 김정일위원장이 단연 돋보였다. 김정일위원장이 주역처럼 부각된것은 세계무대에 혜성처럼 등장한 돌발성에다 이 세기적만남의 제작과 연출 등 모든 책임을 떠맡는 위치에 있었기때문이다. 그러다보니 김대중은 부차적인 역으로 세계인의 눈에 비쳤다.》(《월간중앙》 2000년 8호)

그렇다. 위대한 장군님에 의하여 그 짧은 55시간동안에 자주통일시대의 새 력사가 창조되였다. 비범한 예지와 통찰력, 명철한 결단과 대범한 포옹력, 위대한 정치실력과 숭고한 동포애를 지니신 김정일장군님을 모시여 우리 겨레는 력사적인 평양상봉과 6. 15북남공동선언의 채택으로 우리 민족끼리 통일시대라는 경이적인 사변을 맞이하게 되였던것이다.

하기에 오늘도 우리 겨레는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의 그날의 숭고한 모습을 불멸의 화폭으로 가슴에 새겨안고 민족만대에 길이 빛날 그 업적을 끝없이 칭송하고있는것이다.

3

 

6. 15북남공동선언의 근본핵-우리 민족끼리

 

이 세상에 존재하는 언어들가운데서도 가장 정확하고 표현력이 풍부한 우리 말에는 사람들의 일상생활에서 흔히 쓰이는 낱말들이 수없이 많다. 우리 민족끼리라는 말도 그러한 낱말들중의 하나이다. 《조선말대사전》에 1인칭의 복수를 나타내는 대명사, 말하는 사람이 말듣는 사람을 상대하여 자기와 함께 자기와 관련되는 여러 사람을 다같이 가리킬 때 쓰이는것으로 기록되여있는 《우리》라는 단어는 일상생활용어로 사용되는 말이며 《민족》이라는 개념도 기나긴 민족분렬의 력사를 체험하여오는 조선사람들에게는 너무나도 그 뜻이 명백한 단어이다. 《끼리》라는 불완전명사 역시 우리의 언어생활에서 자주 쓰이는 낱말이다.

이렇게 단어로는 세개, 글자로는 여섯개밖에 되지 않는 우리 민족끼리, 이전에는 그처럼 평범하게만 여겨지던 이 말이 6. 15자주통일시대를 상징하는 시대어로 되였다.

그것은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 민족분렬사상 처음으로 진행된 북남수뇌회담에서 밝히시고 공동선언에 명문화하여주신 조국통일의 기본리념이 다름아닌 우리 민족끼리이기때문이다.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시였다.

《북남공동선언에서는 나라의 통일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한 조항이 기본입니다.》

우리 민족끼리는 6. 15북남공동선언의 근본핵으로서 나라의 통일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나갈데 대한 민족공동의 통일리념이다.

6. 15공동선언은 곧 우리 민족끼리의 선언이고 6. 15자주통일시대는 우리 민족끼리의 시대이며 6. 15와 우리 민족끼리는 동의어로 되였다.

우리 민족끼리라는 이 말이 조국통일의 대명제, 자주통일시대의 기치로 된것이다.

력사적인 평양상봉과 6. 15북남공동선언이 채택된지도 벌써 10여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사람들은 오늘도 너무나도 소박하고 평범한 이 하나의 단어속에 자주적인 조국통일사상과 리념을 다 담으신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의 천재적인 예지에 탄복을 금치 못해한다.

《론박할수 없는 진리는 그 어떤 장식을 요구하지 않는다.》, 《장식을 하지 않는것이 바로 진리의 장식이다.》라고 한 옛 명인들의 말은 바로 이러한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일것이다.

우리 민족끼리의 리념에는 통일문제해결에서 그 어떤 외세의 간섭도 허용하지 않고 북과 남, 해외의 전체 조선민족의 단합된 힘으로 기어이 조국통일성업을 이룩하시려는 위대한 장군님의 철의 의지와 담력이 맥박치고있다. 또한 여기에는 위대한 김일성주석께서 제시하시고 북과 남이 합의하여 공포한 7. 4공동성명에 반영되여있는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의 조국통일3대원칙이 집약되여있다.

조국통일을 우리 민족끼리 실현한다는것은 외세의존이 아니라 민족자체의 힘으로 자주적으로 이룩한다는것이고 전쟁의 방법이 아니라 평화적으로 성취한다는것이며 사상과 제도, 신앙과 재산의 유무에 관계없이 전민족의 대단결로 이룩해나간다는것이다.

우리 민족끼리의 리념은 무엇보다도 민족자주의 리념이다.

우리 나라의 통일문제는 우리 민족내부문제, 민족지상의 과업이며 나라의 통일문제를 해결하는데서 공화국정부는 시종일관 자주를 주장하여왔다.

그것은 민족적자주권이 나라와 민족의 생명이며 조국통일이 우리 민족의 생명문제, 자주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성스러운 위업이기때문이다.

물론 우리 나라의 통일문제는 저들의 전략적목적과 리익을 추구하는 외세에 의하여 산생된 문제이며 통일문제해결에서 조선의 분렬에 책임이 있는 유관국들의 역할도 중요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외세에 의해 짓밟힌 민족의 자주권을 외세에 의거하여 되찾는다는것은 있을수 없는 일이다. 이것은 지난 기간 전세계적범위에서 벌어진 여러 나라와 민족들의 민족해방투쟁사를 통해서도 잘 알수 있다.

특히 20세기 초엽 일제에게 국권을 강탈당한 우리 민족이 벌려온 피어린 반일민족해방투쟁은 외세에 의존해서는 나라와 민족의 자주권을 지킬수도 되찾을수도 없다는 력사의 진리를 더욱 확증해주고있다.

민족의 자주권을 되찾는 일은 어떤 경우에도 우리 민족끼리 해야 한다. 자기 집안일은 집안끼리 해결해야지 남이 끼여들면 쉽게 풀릴 문제도 복잡해지고 어렵게 될수 있다. 더우기 남조선을 강점하고있는 미국은 우리 나라의 분렬을 영구화하고 나아가서 전조선에 대한 지배와 예속을 추구하고있다. 이러한 미국이 우리 민족내부문제에 간섭하려는것을 배격하고 우리 민족끼리 자기 문제를 풀어나가는것은 응당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민족내부에는 이 진리를 부정하면서 통일문제를 외세의 도움으로 해결하려는 세력이 존재하여왔으며 이러한 사대매국세력의 외세의존정책은 민족의 분렬이 지금까지 지속되게 한 주요한 원인중의 하나이다.

그러므로 전체 조선민족은 통일의 주인이라는 자각을 가지고 손잡고 떨쳐나 나라의 통일문제를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풀어나가야 하는것이다.

우리 민족끼리는 또한 민족대단결의 리념이다.

단결은 민족의 생존방식이며 힘이다. 각이한 계급과 계층으로 이루어진 민족성원들이 단결을 이루지 않고서는 민족을 유지발전시킬수 없다. 단결이자 민족의 존재이며 단결의 공고성이자 민족의 생명력이다.

오늘 자기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외세에 의하여 인위적으로 초래된 민족분렬의 비극을 겪고있는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 민족의 대단결을 이룩하는것은 특별히 중요한 문제로 나선다. 그것은 조국통일 그자체가 끊어진 민족의 혈맥을 다시 잇기 위한 전민족적인 위업이며 조국통일의 주체는 다름아닌 우리 민족이기때문이다. 따라서 민족의 대단결을 떠나서 조국의 자주적평화통일에 대하여 결코 생각할수 없으며 전민족의 대단결은 곧 조국통일이라고 말할수 있는것이다.

우리 민족끼리는 민족의 대단결을 전제로 하고있으며 민족의 대단결을 도모하자면 우리 민족끼리의 리념을 구현해야 한다.

민족의 대단결은 각이한 계급과 계층을 이루고있는 모든 민족성원들이 스스로 공감하고 받아들일수 있는 민족공동의 옳은 리념이 있어야 실현될수 있는데 우리 민족끼리가 바로 그러한 리념인것이다.

우리 민족끼리에는 조국을 사랑하고 민족의 넋을 귀중히 여기며 통일을 절절히 바라는 전민족적인 사상감정과 심리가 그대로 반영되여있다. 또한 사상과 제도, 신앙과 정견의 차이를 뛰여넘어 같은 혈육, 같은 형제, 같은 민족으로서 굳게 손잡고 나가려는 뜨거운 동포애와 모든것을 조국통일에 복종시키고 통일을 위해 나서는 사람들은 다 믿고 품어주는 대해같은 도량과 따뜻한 은정, 가장 폭넓은 애국애족의 정신이 맥박치고있다.

김일성주석의 민족대단결사상과 한없이 넓은 도량을 그대로 체현하시고 민족의 대단결로 나라의 통일을 실현하시려는 위대한 장군님의 굳은 의지와 숭고한 동포애가 맥맥히 흐르고있는 우리 민족끼리의 리념이야말로 전체 조선민족이 높이 들고나가야 할 민족대단결의 기치이다.

우리 민족끼리는 다음으로 조선반도의 평화를 보장하고 나라의 통일을 평화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평화통일의 리념이다.

평화는 곧 애국애족이다. 나라의 통일을 평화적방법으로 하려고 하는가 아니면 비평화적방법으로 하려고 하는가 하는것은 우리 민족의 사활과 직결되는 문제이다. 남조선에 미국의 수많은 핵무기가 배비되여있는 조건에서 조선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게 되면 핵전쟁으로 번져져 조국강토는 초토화되고 우리 민족은 헤아릴수 없는 참화를 당하게 된다.

우리 민족끼리에 반영된 평화통일리념에는 우리 민족이 함께 힘을 합쳐 조국강산에 드리운 전쟁의 검은 구름을 가시고 통일되고 번영하는 평화로운 조국강토를 후손만대에 길이 물려주려는 숭고한 애국애족의 정신이 깃들어있다.

미국의 반공화국대결정책, 핵전쟁정책을 짓부시고 조선반도의 평화와 평화통일을 실현하자면 우리 민족끼리의 기치를 높이 들고나가야 한다.

실지로 북과 남은 우리 민족끼리를 핵으로 하는 6. 15공동선언을 채택함으로써 조선반도에 공고한 평화를 보장할수 있는 유리한 국면을 조성하였다.

조선반도의 평화보장에서 관건적의의를 가지는것은 공화국과 미국사이의 평화협정체결이다. 이로부터 공화국정부는 지난 기간 일관하게 정전협정체결의 당사자로서 조선반도평화보장의 직접적인 책임을 지고있는 미국과 평화협정을 체결할것을 주장하여왔다.

그러나 미국은 공화국과의 평화협정체결을 한사코 반대하면서 조선반도평화보장에서 자기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하여 이른바 《당사자해결원칙》이라는것을 들고나왔다. 즉 조선반도의 통일문제는 그 당사자인 북과 남사이의 문제이며 당사자들끼리 해결해야 한다는것이다.

마치도 조선사람들의 의사를 존중해주는것 같은 미국의 이러한 기만적인 술책은 력사적인 북남수뇌상봉과 거기에서 채택된 6. 15북남공동선언, 우리 민족끼리의 선언에 의하여 보기 좋게 물거품이 되게 되였다.

참으로 민족자주, 민족대단결, 평화통일의 리념인 우리 민족끼리는 6. 15북남공동선언의 근본핵으로서 6. 15시대의 자주통일의 기치, 대명제이다.

이 위대한 통일기치가 제시됨으로써 우리 민족은 조국통일위업을 승리적으로 개척해나갈수 있는 위력한 사상리론적, 실천적무기를 가지게 되였다.

위인의 업적중의 업적은 만인이 공감하는 과학적인 사상과 리론의 제시에 있다.

조국통일에 대한 겨레의 지향과 요구를 집약적으로 담고있는 우리민족끼리리념을 제시하신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의 불멸의 업적은 우리 민족의 성스러운 조국통일력사와 더불어 영원히 빛을 뿌릴것이다. 오늘날 위대한 장군님께서 정립하여주신 우리 민족끼리의 리념에 대한 태도는 자주냐 사대냐, 애국이냐 매국이냐, 통일이냐 분렬이냐를 가르는 시금석으로 된다. 우리 민족끼리야말로 조국통일의 생명선이며 이 기치를 높이 들고나가는데 조국통일의 바른길이 있고 그 지름길이 있다.

4

 

일화

 

재미녀류기자가 받아안은 감동

 

력사적인 평양상봉이 있은 때로부터 보름만인 주체89(2000)년 6월 30일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조국에 체류하고있던 재미녀류기자 문명자를 접견하시였다.

이날의 상봉은 위대한 장군님께서 강원도에 대한 현지지도의 길에 계시였던 관계로 평양이 아니라 원산에서 이루어졌다.

남조선에서 태여나 일본에서 고등교육을 받은 문명자는 박정희《유신》독재에 환멸을 느끼고 등을 돌린 후 한생의 거의 전부를 일본과 미국에서 언론활동에 종사하면서 세계의 유명짜한 인물들을 거의다 만나보았으며 30년나마 미국무성 및 백악관출입기자로서 1979년 일본의 유명한 녀성잡지 12월호가 세계를 움직이는 녀성 12명을 선발한 가운데 한명으로 꼽을 정도로 이름을 드날린 녀류기자였다. 이러한 그에게 있어서 위대한 장군님을 만나뵙고 가르치심을 받는것은 유명한 녀류기자로서, 해외에 살고있는 조선사람으로서 이미 오래전부터 마음속에 품고있던 소원이였다.

하기에 그는 민족의 어버이 김일성주석께서 뜻밖에 서거하시였다는 비보에 접하고 평양에 달려와 조의식장에서 장군님을 처음으로 만나뵈온 때로부터 조국을 방문하는 기회마다 그이의 접견을 받게 해줄것을 여러번 요청하였다.

그 소망이 드디여 이루어진것이였다.

이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문명자와 오찬도 같이하시면서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누시였다.

먼저 장군님께서는 북남력사상 처음으로 북과 남 수뇌들의 상봉과 회담이 진행되고 거기에서 북남공동선언이 채택되게 된 경위에 대하여 말씀하시면서 그때 녀사가 참가하여 증견자로서 옆에 있었으면 좋았을것이라고 하시였다.

기자로서 우리 민족사에 길이 남을 력사의 현장을 목격하지 못한 아쉬움을 안고있는 자신의 심정을 헤아리시여 력사적인 북남수뇌상봉과 회담진행과정을 상세히 설명해주시는 장군님의 말씀을 한마디라도 놓칠세라 문명자는 열심히 귀를 기울이였다.

이번 평양상봉과 회담은 서로 리해하고 신뢰를 쌓는 방향에서 진행되였다고, 남측성원들도 한번 와보는것이 다르고 두번 와보는것이 다를것이라고, 우리는 그들의 과거력사가 어떻든 이번 기회를 통하여 북남관계를 개선해보겠다는 개진경향만 보여도 성과라고 생각한다고 하시며 력사적인 평양상봉과 북남수뇌회담에 대하여 총괄하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잠시 동안을 두시였다가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김일성주석님께서는 생전에 정견과 신앙의 차이를 초월하여 민족의 리익을 앞에 놓고 온 민족이 단결하여야 한다는데 대하여 늘 말씀하군 하시였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어제까지는 우리를 나쁘게 대하였지만 오늘은 우리와 만나 화해하자고 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굳이 지나간 과거를 들추며 사죄하라는 식으로 대할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 순간 문명자는 자기가 지금 김일성주석님을 만나뵙는 환각에 빠진것만 같았다. 어쩌면 김정일국방위원장님은 주석님과 꼭같으실가. 언제나 민족의 존엄과 리익을 우선시하고 마음속에 항상 통일을 안고 사시는 그 뜨거운 애국의 열정도 주석님 그대로이고 바다같은 도량과 인덕 또한 주석님의 도량과 인덕 그대로였다. 그래서 우리 겨레모두가 주석님 그대로이신 김정일장군님을 민족의 령수로 높이 받들어모시는것이 아닌가.

위대한 장군님의 접견을 받는 전기간 그의 가슴속에서는 이러한 흥분과 감동이 세차게 일어번지였다.

장군님께서는 이날 북남공동선언리행에서 나서는 중요한 문제들과 조미관계를 비롯한 여러 문제들에 대하여서도 이야기하시였는데 그 말씀 한마디한마디에는 반드시 우리 민족자체의 힘으로 조국의 자주적평화통일을 이룩하시려는 결심과 의지가 맥박치고있었다. 위대한 장군님을 만나뵙고 그이의 가르치심을 받아안은 문명자의 가슴속에는 김일성주석님과 사상과 령도도, 풍모와 덕망도 꼭같으신 김정일국방위원장님이시야말로 조국통일성업을 이룩하시고 배달민족의 창창한 미래를 열어나가실 통일의 구성이시고 민족의 어버이이시라는 확신이 굳게 자리잡게 되였다.

하기에 그는 후날 김정일국방위원장님은 강하면서도 소탈한분이였고 자신을 두차례에 걸쳐 만나주시였던 김일성주석님의 모습 그대로였다고 자신의 심정을 피력하였던것이다.

5

 

일화

 

오찬회장에서 하신 우리 민족끼리에 관한 특강

 

력사적인 평양상봉의 마지막날인 주체89(2000)년 6월 15일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남측 당국자일행의 평양출발을 앞두고 환송오찬을 마련하시였다.

김대중을 비롯한 남측대표단 성원들은 마지막까지 자기들을 그처럼 환대해주시는 위대한 장군님께 거듭 감사의 인사를 올리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극진한 환대에 황송함을 금치 못해하는 그들의 심정을 헤아리신듯 시종 따뜻한 동포애의 정과 해학적인 유모아로 오찬회장의 분위기를 환희의 절정으로 이끌어가시였다.

이날 오찬석상에서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번에 김대통령과 남측 정치인들이 평양에 와서 대단한 일을 하였다고, 우리는 이번에 북과 남이 합의한 공동선언을 귀중히 여기고 그 실현을 위하여 모든것을 다함으로써 온 겨레에게 조국통일에 대한 신심과 락관을 안겨주어야 한다고 하시면서 나는 이 자리에 참석한 남측 정치인들이 북남공동선언실현을 위한 사업에서 민족적책임을 다하리라고 믿는다고 말씀하시였다.

장내에서는 열광적인 박수갈채가 쏟아져나왔다.

시간이 흘러 오찬회가 끝나가는 아쉬움을 안고 남측의 장관들이 장군님의 주위를 에워쌌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들을 바라보시며 북남공동선언을 리행하여야 할 민족사적임무가 우리에게 짊어져있다, 너무 서두르거나 조급하게 하지 말고 하나하나 착실하게 해나가야 한다, 우리는 언제나 민족문제를 우선시해야 한다, 민족문제는 어디까지나 민족문제이고 다른 나라들과의 관계문제는 말그대로 외교문제라고 말씀하시였다.

이어 그이께서는 우리는 남측 당국이 다른 나라들과 공조하는것을 무턱대고 반대하는것이 아니라고 하시면서 문제는 우리 민족끼리 화해하고 단합하는 조건에서 다른 나라들과 공조를 해야 한다, 자기 민족을 반대하는 국제공조란 있을수 없다, 우리는 우리 민족을 위한 공조를 하여야 한다고 절절히 강조하시였다.

열렬한 민족애를 안으시고 우리 민족끼리 통일의 문을 열어나갈것을 호소하시는 장군님을 우러르는 김대중을 비롯한 남측대표단 성원들의 얼굴에는 그이에 대한 다함없는 존경과 신뢰의 빛이 어리였다.

참으로 이날의 뜻깊은 오찬회는 남측의 당국자와 장관들을 대상으로 위대한 장군님께서 하시는 우리 민족끼리에 관한 특강이였으며 6. 15공동선언을 어김없이 실행할것을 온 겨레앞에 다짐하는 자리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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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충격》

 

남조선잡지 《월간중앙》 2000년 8월호에는 이런 글이 실렸다.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이 나라는 여러 방면에서 지금 경천동지할 격변기를 맞고있다. 지난 55년동안 우리 사회를 지탱해오던 사상적기본틀을 비롯한 총체적남북인식구조가 한순간에 뒤바뀌는 그야말로 <초현실적상황>에 직면한것이다.

TV화면에 나타난 김정일위원장의 일거수일투족은 낯설지만 신기하고 흥미로우면서도 놀라운것이였다. 이런 모습이 국민들에게 안겨준 충격은 가히 <핵폭탄>에 비유할 정도였다. 어느날 갑작스레 남쪽나라에 직격투하된 이 폭탄은 2박3일내내 지속된 <섬광의 축제>로 끝나지 않았다. 우리 사회 전부분에 걸쳐 엄청난 <후폭풍>을 몰고왔다. <김정일핵폭풍>은 지난 55년간 우리 사회를 떠받쳐온 기존의 인식체계를 일거에 초토화하였다. 20대전후의 세대들을 중심으로 심지어 북동화현상까지 나타나고있는 실정이다.》

력사적인 평양상봉이 있은 직후 남조선사회에서 세차게 일어번진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에 대한 열광적인 흠모열풍, 숭배열의와 북으로 쏠리고있는 남조선 각계각층의 민심의 괄목할만 한 변화가 일어난데 대한 글이다.

이것은 당시 남녘땅에 휘몰아친 《김정일숭배열풍》에 대한 비교적 정확한 평가라고 말할수 있다.

주체89(2000)년 6월, 2박3일의 55시간동안 평양에서 이루어진 력사적인 북남수뇌상봉과 회담의 매 순간순간을 지켜보며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의 위인적풍모에 크나큰 충격을 받은 온 남녘땅은 놀라움과 경탄, 환호와 열광으로 들끓었다.

평양비행장을 진원으로 하여 일파만파로 퍼져나간 《김정일충격》은 《김정일해일》, 《김정일열풍》이 되여 남조선을 휩쓸면서 달아오른 6월을 더욱 가열시켰으며 《김정일례찬론》, 《김정일숭배론》으로 급기야 상승기류를 일으켰다.

그 앞장에 선 사람들은 북남수뇌상봉의 력사적인 현장을 직접 목격한 남측수행원들이였다.

그들은 서울에 돌아가자마자 평양방문에서 받아안은 충격과 흥분을 각종 언론과 모임을 통하여 널리 소개하였다.

남조선문화관광부 장관은 6월 15일 서울에 도착한 날 TV에 출연하여 《김정일국방위원장은 민족적인 례의가 밝으신분》, 《통이 크고 호탕하며 모든것에 환하시고 매우 넓으신분》으로 위대한 장군님을 높이 칭송하였다. 통일부 장관도 존칭수식사를 그대로 붙여 위대한 장군님을 호칭하면서 6. 15공동선언리행에 모든것을 다할 결의를 표명하였다. 이러한 그를 놓고 남조선의 보수야당소속의 한 《국회》의원은 《통일부 장관이 김정일위원장의 홍보부 장관이 된것 같다.》고까지 하였다.

《정부》관계자들과 함께 평양을 다녀온 특별수행원들의 반향도 대단하였다. 한 대학교수는 위대한 장군님은 《순간적인 재치가 번뜩이고 매우 쾌활하며 결단력이 있는 지도자》라고 칭송하였고 한 수행원은 《격식을 따지지 않는 합리적이고 소탈한 성격의 소유자》, 《일단 결정을 내리면 정말 화끈하게 일을 처리하는 형의 지도자》이시라고 찬양하였다. 남조선경제인련합회 부회장과 민주평화통일자문회 수석부의장은 위대한 장군님은 《판단력이 빠르고 유모아감각과 순발력, 회의장을 주도해나가는 능력이 탁월》하였다고 탄복을 금치 못하였다.

김정일위원장은 유일한 중심이였고 김정일위원장이 결심하고 판단하고 행동하는 그 모든것이 의전이고 격식이며 관례가 되는듯 했다. 김정일위원장은 조금의 거침도 약간의 막힘도 없었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의 솔직하고 유모아 넘치는 대화술이 인상깊었다.》, 《언어를 골라서 쓸줄 알았고 풍부한 표현력을 갖고있었다.》

이것이 서울에 돌아가 위대한 장군님의 위인적풍모에 매혹된 남측수행원들의 한결같은 반향이였다.

평양에 왔던 남측 기자들속에서도 수행원들에게 뒤질세라 위대한 장군님을 칭송하는 목소리가 련속 울려나왔다. 남조선에서 보수적인 언론으로 알려진 신문 《동아일보》 정치부 차장은 위대한 장군님의 위인상과 특징을 《첫째로 솔직하고 소탈하신분》, 《둘째로 대단한 카리스마의 소유자》, 《셋째로 아는것이 많은분》, 《넷째로 우리 식 사회주의의 지도자답게 우리의것에 대한 집착이 강한분》, 《다섯째로 거침없으면서도 례의가 깍듯한분》이시라고 격찬하였다.

위인칭송의 메아리는 남조선의 언론을 통해 더더욱 급속도로 퍼져갔다. 남조선신문들이 전례없이 앞을 다투어 태양의 미소를 지으신 위대한 장군님의 영상사진으로 지면을 꽉 채우는가 하면 TV와 방송들에서는 장군님의 우렁우렁한 음성이 처음으로 공개되여 수십차례나 반복 전해졌다. 지어 언론들은 위대한 장군님의 옷차림에 대해서까지 세밀한 관심을 돌리면서 복장에서도 파격적이라고, 자신의 예술적기지로부터 자기식의 독특한 류행을 창조하시였다고 보도하였다.

남조선잡지 《시사져널》이 《대북문제에서 보수적인 론조를 유지하던 국내언론들도 련일 김정일국방위원장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기사를 내보내며 <보안법>위반을 서슴지 않고있다.》고 할 정도로 남조선언론계의 보도자세는 전례를 뛰여넘는것이였다.

이렇게 온 남녘땅을 불도가니처럼 달아오르게 한 《김정일충격》, 《김정일열풍》은 남조선언론의 분석처럼 평양상봉이후에 엄청난 《후폭풍》을 몰아왔다.

이 《후폭풍》은 남조선사회전반에 세차게 몰아쳤으며 로동자, 농민, 정치인, 학생 등 각계각층을 휩쓸었다. 이에 대하여 남조선의 한 장관은 《김정일국방위원장님의 위상이 이번 평양회담을 통해 더욱 높아졌다. 국방위원장님은 남쪽주민들속에서 신화적인 위인으로 칭송받고있다.》고 말하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친근한 영상은 감격의 서광으로 사람들의 마음속에 비껴들어 남조선전역 그 어디에서도 장군님의 위인상에 대한 이야기로 꽃을 피웠고 금방 다가올것만 같은 통일에 대한 희망으로 설레이였다. 남조선의 각계층 인민들속에서는 《장군중의 장군》, 《바다같이 열린 성격을 소유하신분》, 《열정적이고 정열에 넘치는분》, 《판단력이 뛰여나신분》 등 위대한 장군님의 위인적풍모에 매혹된 목소리가 수없이 울려나왔다. 이에 대하여 남조선 관동대학교의 어느 한 교수는 《김정일충격, 그것은 쾌활함과 친근감의 이메지가 주는 긍정적충격》이라고 평하였다. 남조선의 인터네트홈페지들에는 위대한 장군님의 인간상에 반한 흠모와 감사의 글들이 수많이 실리였다. 력사적인 평양상봉이후 남조선의 곳곳에서는 시인들뿐만이 아니라 직종과 나이를 불문하고 일반주민들속에서까지 장군님을 흠모하는 시짓기경기가 인터네트망을 통해 련일 계속되였는바 며칠사이에 인터네트에 《삼행시나라》, 《모여라 삼행시》 등의 홈페지가 개설되고 여기에 오른 시만도 200여편이 넘었다. 인터네트회사인 싸이버링크가 개설한 《통일념원편지쓰기》라는 홈페지는 《김정일위원장님 반갑습니다》라는 주제의 편지란을 설정하고 인터네트가입자들이 위대한 장군님께 올리는 통일념원편지를 전문적으로 올리였다.

김정일국방위원장 따라하기》가 또한 사회적으로 급속히 파급되여갔다. 정치인들속에서는 《김정일식즉단즉결》을 외우며 위대한 장군님의 《통이 큰 정치》를 배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위대한 장군님식 《대화법》과 함께 장군님께서 쓰시였던 색안경과 입으시였던 옷차림도 사회적으로 널리 류행되였다. 대학생들을 비롯한 각계각층속에서 《김정일식수표하기》, 초등학교 학생들속에서 《김정일식주체필법》으로 글씨배우기풍조가 생겨나는 등 위인칭송의 열풍은 그야말로 전사회적성격을 띠고 세차게 일었다.

력사적인 평양상봉을 계기로 온 남녘땅을 휩쓴 《김정일숭배열풍》은 지난 55년간 남조선사회를 떠받쳐온 기존의 인식체계를 일거에 붕괴시킨 거대한 격변이였다. 그것은 반세기이상이나 남조선에 체질적으로 굳어진 미제의 식민지통치기반과 반공반북분렬체제를 밑뿌리채 뒤흔들고 남조선의 정치정세를 전반적으로 민주화의 흐름에 들어서게 하는 획기적인 전변을 가져왔다. 6월 15일 남조선에서 보수적인 경향이 강한 신문 《중앙일보》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응답자의 97%가 《북에 대한 인식이 좋아졌다.》고 답변하였다. 또한 평양상봉직후 남조선여론조사기관인 《현대리서치》가 《국회》의원들을 대상하여 진행한 의식조사에서도 84%가 위대한 장군님을 《현실을 잘 리해하는 인물》, 《대화가 가능한 합리적인 인물》, 《파격적이고 통이 큰 인물》이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남조선정치계에서 일어난 전례없는 의식변화였다.

단 2박3일이라는 력사의 한순간은 남조선사람들속에 지배하고있던 뿌리깊은 적대의식을 180°로 급선회시켰던것이다.

인류정치사에 이와 같은 기적을 창조한 정치가는 일찌기 없었다.

남녘땅전역에 세차게 휘몰아친 《김정일숭배열풍》은 위대한 장군님이시야말로 온 겨레가 숭배하고 따르는 민족의 어버이, 통일의 구성이심을 객관적인 진리로 확증하였다.

이 경이적인 현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였다.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의 열화같은 민족애와 조국애, 숭고한 덕망과 인품, 탁월한 지략과 정치실력이 안아온 력사의 필연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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