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 장 대결의 종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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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후에 온다던 노불은 나타나지 않고 뜻밖에도 송호정이 찾아왔다. 송호정은 오성도의 기자회견소식을 신문에서 보고 오성도에게로 달려갔다.
중국관내에서부터 격의없이 살아온 막역지우이니 목에 칼을 받더라도 친구를 만나야 되겠다구 사정을 했다. 한사코 도리질하는 오성도에게 1분이라도 좋으니 차입물을 전하게 해달라고 억지를 부렸다. 마지막에는 위협도 하고 달래기도 하였다. 끝내 승인을 받았다.
면회에 동석하게 된 최운하부청장의 방에서 만나라고 하였지만 송호정은 감방을 찾아왔다고 하였다.
면회시간은 3분이였다.
송호정이 처가 정성껏 꾸려준 음식꾸레미를 들고 나타나자 정시명은 반갑기 그지없었으나 너무 위험천만한 자리에 나선듯싶어 불안하기 그지없었다.
(예가 어디라고…)
무모한 객기를 부리는것 같아 긴장하기도 했다. 송호정은 정시명의 질책어린 눈길을 의식하였으나 다시 새겨볼새가 없이 그의 꺾어진 팔을 부여잡았다.
《아- 아…》
송호정은 짧은 탄식을 내지르며 너무도 애통하여 눈물을 쏟고 이발을 뿌드득뿌드득 갈았다.
《천금만금 같은 사람을 이 지경되게 하다니…》
그러나 몇분되지 않는 면회시간에 촉박감을 느꼈던지 감정을 다잡고 다급하게 그러나 나직이 말을 시작했다.
《이보게, 시간을 끌게. 엉, 내 말을 알겠나?》
송호정은 안타깝게 속삭였다.
정시명은 미소를 지었다. 자기가 리승만을 꺼꾸러뜨릴테니 그때까지 죽지 말라는것이다. 이 말을 하고싶어 위험을 무릅쓰고 나타난 모양이다.
《재판을 하게 되면 항소하게. 고등법원까지…》
《허허… 항소는 왜? 나야말로 이 나라의 죄인이 틀림없는데… 호정, 정말 하려나?》
정시명은 송호정의 급해맞은 이야기를 롱조로 받다가 의미심장하게 물었다.
《못견디겠네, 더는… 정형까지 이렇게 됐는데… 난 더 참을수 없네.》
정시명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것이 전쟁의 불을 앞당겨오지 않을가?》
《젠장!… 내가 뭐 합의를 받자고 온줄 아나? 난 해내고야 말걸세. 그저 길어서 두달, 두달만 견지하여 주게.… 이 교즈는 말일세, 우리 마누라가 눈물로 빚은걸세.》
송호정이 쫓기는 사람처럼 다급하게 꾸레미를 헤쳐놓으며 말했다.
정시명은 최운하의 고양이눈이 안경속에서 뱅글뱅글 돌아가는것을 눈치채자 호탕하게 웃으며 화제를 돌렸다.
《부인께 내 인사를 전해주게. 교즈를 맛있게 먹겠네. 너무 걱정말라구. 중경감옥이 생각나나? 거기서도 일곱해동안 딩굴다가 살아났는데 내 나라 감옥에서 견뎌내지 못할가?》
《그만!》
뒤에 서있던 최운하가 그들의 대화를 중단시켰다.
《이 녀석, 벌써 3분이야?》
송호정이 그놈을 당장 삼켜버릴듯 노려보며 벽력같이 고함을 질렀다.
《사령관님, 질서를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이 사람은 특급 국사범인입니다. 사령관님도 화입을수 있습니다.》
《화입는다구?》
송호정이 홱 고개를 돌리더니 험악한 눈길로 그를 노려보았다.
《내 따라지인생 백천으로 이분과 금새를 같이할수 있다면 백천번 형장에 올라서겠다. 이분이 도대체 누군지 아느냐? 이 사람 다쳤다간 하늘이 내리는 급살을 받을줄 알아라.》
송호정의 벽력같은 고함소리가 감방을 쩌렁 울렸다.
그러나 최운하는 독뱀같은 랭랭한 눈초리로 맞섰다.
《사령관님, 다시한번 경고합니다. 이자는…》
최운하가 얄팍한 입술을 나불거리며 매섭게 한마디 더했다.
순간 송호정의 무서운 격노가 그의 뒤말을 삼켰다.
《또 한번 지껄여봐라, 이 송충이같은 놈아, 누굴 보고 함부로 이자야? 어르신이라고 불러, 어서 다시 불러?》
여차직하면 권총이라도 뽑아들 서리찬 기상에 최운하는 덫에 걸린 토끼새끼처럼 할딱거리였다.
《허허, 호정, 그 사람을 너무 몰아대지 말게. 양놈들이 시켜 하는짓인걸 이사람손탁으로 어찌한단 말인가.》
정시명이 호탕하게 웃으며 송호정을 만류했다.
최운하가 위협조로 맞서며 두사람에게 번갈아 살기가 어린 눈총을 쏘았다.
송호정도 그놈과 더 싱갱이질 하다가는 아까운 시간만을 잃을것 같아 불끈거리는 속을 달래고 타협조로 말하였다.
《이 송호정이 총사령관감투 벗었다구 넝마꼴인줄 알아? 좋아, 1분만 더… 부탁하네. 정형, 꼭 항소를 하게. 내 오성도에게서 들었는데 정형에 대한 기소장이 2만페지가 넘어된다고 하더구만 그러니…》
송호정이 사정하듯이 절절하게 매달렸다.
《허허… 정말 내 몸값이 대단한걸. 하지만 호정, 난 항소는 하지 않겠소. 그건 내가 <한국>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며 <한국>이 만들어낸 법을 인정하지 않으며 그 법이 내세울 재판자체를 인정하지 않기때문일세.
그러나 나는 력사의 법정에서는 <죄인>으로 심판을 받아야 할 몸이요. 력사앞에 지닌 나의 임무를 해내지 못했기때문이요.
그렇소. 나는 <죄인>이요. 전쟁은 눈앞에 왔소. 우린 그걸 끝내 막아내지 못한 <죄인>으로 되고말았소. 우리모두는 력사앞에서 <죄인>이 되였소.》
정시명이 이렇게 깊은 자책과 고민이 압축된 심장을 헤쳐놓는데 최운하가 씹어뱉듯이 랭담하게 명령하였다.
《면회 그만, 간수, 이 사람들을 격리시켯!》
그러자 송호정이 홱 몸을 돌려세우고 다가드는 눈딱부리와 뒤짐을 지고 거드름을 빼는 최운하를 당장 짓조겨놓을듯 험악한 기상을 하였다.
《허허, 호정, 어서 나가보게. 이자들앞에서 밸을 쓸건 없소. 어찌겠나.》
정시명은 형리들과 맞서 눈총을 쏘고있는 송호정을 차분한 목소리로 달래였다.
《사령관님.》
눈딱부리가 송호정의 팔을 잡자 송호정이 힘껏 그자를 떠박질렀다.
《이놈, 어따가 함부로 손질이냐? 내 발로 나가겠다.》
송호정이 성이 머리끝까지 치받쳐 감방이 떠나갈듯 고함쳤다. 하더니 정시명의 성한 팔을 두손으로 꽉 틀어잡고 자기 볼을 마구 비비였다.
《정형!》
그는 한무릎을 바닥에 박은채 어깨를 마구 떨었다. 철창문을 나서는 그의 두다리가 휘청거리고 또다시 눈물이 비오듯 쏟아졌다.
정시명은 자기때문에 송호정이 서뿔리 거사를 꾸미다가 그 자신마저도 곤경에 빠져들어갈가봐 위태위태한 심정을 금할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그의 등뒤에 대고 소리쳤다.
《호정, 심사숙고하게.》
송호정이 그 소리에 발목이 잡힌듯 홱 돌아서더니 그를 잠시 눈물에 젖은 얼굴로 바라보다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데 간수가 최운하의 눈총을 받고 하는수없어 곰통같은 몸으로 그를 막아섰다.
이 시기 송호정은 류동명과 함께 거사준비를 본격적으로 다그치고있었다. 자객행위라는 정시명의 비난을 받자 형식을 바꾸어 군사혁명으로 폭을 넓혔다.
그는 거사의 기본주력을 자기의 친구가 거느린 려단으로 선정하고 려단의 장교들을 《광복군》출신들로 꾸리게 하였다. 그러느라니 시간이 걸렸다.
한편으로는 《호국단》의 무기구입이라는 공식적인 승인을 받아가지고 일본에 보낸 부하에게 무기구입을 다그치라고 독촉하였다.
그 무기가 8월 중순에 인천에 도착하게 되여있었다. 송호정은 《흥국상회》성원 2백여명이 체포되고 뒤이어 정시명이 체포되고 구원될 가망이 없다는 소식에 접하자 무조건 한달을 앞당겨 도착시키라고 지시하였다.
송호정은 무기가 도착하면 즉시에 자기의 거사의 주력군을 무장시키고 8월 중순에 경무대와 서울의 주요기관들을 타고앉을 결심이였다. 그가 정시명에게 길어서 두달이라고 찍어서 기간을 밝힌데는 이러한 타산이 있었다.
정시명이 자리에 누워 안정하려고 하는데 맹호가 손가락만 하게 돌돌 만 미농지를 괴춤에서 꺼내 그의 눈앞에 반듯이 펴주었다.
《뭐요?》
《3번동지가 보내온것입니다. 눈딱부리가 좋은 일 하나 해주었지요.》
《눈딱부리가?》
그러니 《눈딱부리》도 통일애국자들에게 점수를 한점이라도 더 따고싶어하는 모양이다. 이건 반동진영이 크게 동요하고있다는 하나의 증거이다.
《의견을 달랍니다.》
미농지를 더듬던 정시명은 대뜸 입부터 벙글써해졌다. 거기에는 한편의 노래가 옮겨져있었다.
노래제목은 《결사의 노래》다. 자기가 10호동에 옮겨진 첫날 읊은 즉흥시를 다듬어 거기에 곡을 붙여왔다. 다재다능한 안지생에게 이런 재간도 있었던가. 즉흥시를 다시한번 보내달라고 할 때 벌써 그의 머리에 번개치듯 곡상이 떠올랐던 모양이다. 불같은 신념과 기상이 오선지우에 억세게 나래쳤을것이다.
정시명은 평소에 웃기 잘하고 꾀가 많고 대바르던 안지생이 주먹을 휘두르며 퍼덕이는 곡상을 오선지에 그려가는 모습을 깊은 감동에 젖어 련상해보았다.
《벌써 이 감방에 이 노래가 보급되였답니다.
<눈딱부리>가 그러는데 자기도 가슴이 왈랑왈랑 하더랍니다.》
《가슴이 왈랑왈랑해?… 하하… 아무렴. 3번이 뜨뜨미지근한 노래를 지었을라구.》
정시명은 음악조예가 없어 악보를 볼수 없는것이 여간 아수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이 노래는 그 열혈의 청년의 심장처럼 순결하고 억세고 고결하게 엮어졌을것이라고 믿어마지 않았다.
《회장동지도 곡을 보시지 못합니까?》
맹호가 실망스러워했다.
정시명도 딱해서 손을 내둘렀다.
《하, 어쩐다… 들으나마나 이건 폭풍일거요. 뢰성일거요. 암, 포성같은 노래겠지. 동지들이 벌써 따라부른다니 뭐 나도 의견이 없다고 전하오.》
정시명은 격해서 부르짖으며 미농지를 내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