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 장 피에 젖은 철창가
5
오후시간에는 15분간의 운동시간이 있었다.
이 시간에는 움직일수 있는 사람들은 몇개 감방씩 교대로 뒤마당에 나가 바깥바람을 쏘이며 넓지 않은 공간을 거닐었다.
어느날 운동시간이 되자 맹호는 나가지 않고 그를 부축해주며 말하였다.
《정시명선생님에게 1번 번호를 드리기로 한답니다. 2번동지가 오늘 운동시간에 동지들을 만나줄것을 희망합니다. 3번동지가 대렬을 인솔하겠다고 합니다.》
《그래?… 그런데 어떻게 한다?…》
《여기서 동지들을 사열해달라고 합니다. 감방사열식을 하겠다는겁니다.》
《감방사열식?!…》
《저기 뙤창에 가면 마당쪽이 보입니다. 그런데 선생님이 거기에 나서줄수 있겠는지 걱정스럽다고 했습니다.》
《그렇구만.… 조직의 지시인데 그 무슨 구실을 걸게 있소. 해야지. 그런데 키가 닿지 않을것 같구만.》
정시명은 속안이 엄숙해지면서도 자기 키보다도 머리 하나는 더 높게 있는 뙤창을 걱정스럽게 쳐다보았다.
《그건 일없습니다. 저의 등을 밟고 내다보십시오.》
《그래… 음… 해내야지. 맹호동무, 나를 일으켜주오.》
맹호는 정시명의 등을 조심히 두손으로 받쳐주었다.
상반신을 일으켜세우던 정시명은 허리가 금시 뚝 부러지는듯 한 아픔에 도로 자리에 넘어졌다. 적들에게 체포될 때 허리를 다친것이 아직도 회복되지 않은것이였다.
감방문들이 열리는 소리가 나기 시작하였다.
《세개 호실씩 교대로 산보를 하게 됩니다.》
《자, 다시 해주오.》
《일어날수 있겠습니까? 힘들면 오늘은 그만둡시다.》
《아니, 일어나야지. 일어나야 해. 암, 일어나구말구.》
정시명은 아래입술을 지그시 깨물고 일어났다. 이마에 벌써 비지땀이 즐벅이 배여올랐다. 등골에도 식은 땀이 둘둘 굴러내리는것 같았다.
《맹호동무, 나를 세워주오.》
《아니, 선생님!》
《어서, 조직의 지시인데. 그리고 나도 동지들을 보고싶소. 세워만 주오.》
맹호는 정시명의 겨드랑이에 어깨를 들이밀고 뙤창밑으로 다가갔다. 맹호는 무릎과 팔굽을 고이고 엎디였다.
정시명은 여러번 실패를 하다가 마침내 그의 등에 올라 철창을 틀어쥐는데 성공하였다. 그는 후두두 떨리는 다리를 가누며 철창을 잡은 오른손으로 전신의 힘을 다 짜내 매달렸다.
《선생님! 바깥이 보입니까?》
《보이오. 그런데 맹호동무가 견딜수 있겠소?》
《제 걱정은 마십시오. 이것도 싸움이 아닙니까.》
맹호도 변변치 못한 몸으로 정시명의 몸을 받들어주자니 맥이 빠지고 엉뎅이뼈가 지끈지끈해왔으나 이를 악물고 버티고있었다.
《2번동지는 누구요?》
《모릅니다.》
《음.》
정시명이 갇힌 2층 6호실 뙤창을 쳐다보며 마당끝에서 발돋움을 하고있던 수인들이 자기의 눈길과 마주치자 호실별로 질서정연하게 렬을 지었다.
정시명은 맨 앞줄에 있는 낯익은 얼굴을 띄여보았다.
그는 안지생이였다.
《안동무!》
그는 입속으로 고마움에 젖어 나직이 불러보았다. 매우 수척해졌다. 그도 한팔은 붕대로 매서 목에 걸고있었다.
안지생은 정시명의 눈길과 마주치자 싱긋 웃으며 한손을 번쩍 쳐든다. 그 웃는 눈가에 눈물이 어린듯싶다.
정시명은 가슴이 뭉클해져서 그에게로 고개를 힘있게 끄덕여보였다.
드디여 대렬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모두가 6호실 뙤창을 향하여 고개를 들고 지나간다.
정시명은 사랑하는 전우들에게로 정찬 눈길을 보내여 화답하였다.
뜨거운 감격의 열풍이 온몸에 휩싸여들어 이 순간 아픔도 잊어버렸다.
눈과 눈들이 부딪쳐 번쩍 섬광이 일었다. 믿음과 사랑, 기대와 맹세가 빛발친다.
다만 정시명은 자기의 오른팔의 힘이 진하여 뙤창가에서 주저앉아버리면 동지들을 실망시키게 된다는 생각으로 더욱 그악스레 철창을 잡고있을뿐이였다.
김명호에게 더욱 믿음이 가고 고마움이 갔다. 자기는 운신하기 힘들어 마당에 나오지 못한채 감옥사열식을 조직해준 모양이다.
이것을 통하여 동지들의 기세를 올려주고 하나로 더욱 전투적으로 묶어세우려고 한다.
그런데 눈여겨보니 여러명의 수인들은 그 대오에 끼여서지 못한채 조금 후미진 뒤에서 고개를 떨구고 서성거리고있다.
《아하― 》
아마도 전우들이 대오에서 추방해버린 모양이다. 혁명가의 대오, 애국투사들이 정렬한 대오에 끼여들 자격을 박탈해버린 모양이다.
그들의 축 처진 모양을 보니 어쩐지 속이 서글퍼졌다.
마지막으로 녀감방에서 여러명의 녀성들이 나왔다.
두명의 녀성들이 다리를 몹시 절고 다른 두명도 팔을 처매들고있었다.
정시명은 그중에서 다리를 심하게 절면서도 머리를 단정하게 빗어넘긴 김승원의 처 윤미향을 첫눈에 알아보았다.
그의 옆에는 다섯살잡이 그의 아들이 두눈을 반짝이며 따라서고있었다.
정시명은 순애네의 결혼식에 갔다가 그애와 함께 밤으로 탑을 만들며 애의 재롱을 받아주던 생각이 떠올라 코마루가 찡하게 저려났다.
(저 어린것이 벌써부터 고생을 겪는구나. 참…)
그애앞에서 큰 죄를 지은것 같다.
윤미향은 정시명이 서있는 뙤창을 쳐다보다가 눈이 마주치자 《회장선생님!》하고 큰소리로 부르며 두손으로 얼굴을 싸쥐고 울음을 터뜨렸다. 네명의 녀성들이 일시에 얼굴을 싸쥐고 그 자리에 폭싹 주저앉으며 울었다.
김명호의 처의 얼굴도 보였다. 그도 얼굴을 싸쥔채 어깨를 흔들고있다.
그 순간 주저앉은 녀인들에게 힘을 주듯이 힘찬 노래소리가 어느 감방에서 울리기 시작하였다.
민중의 기 붉은기는
전사의 시체를 싼다
시체가 식어 굳기 전에
혈조는 기발을 물들인다
그것은 분명 김명호의 목소리였다. 굵고도 잘 다듬어진 목소리다.
그도 뙤창가에 매달려있는 모양이다. 사열식을 지휘하다가 녀성들의 행진이 지체되자 노래로 지원을 하는 모양이다.
김명호의 노래는 우렁찬 합창으로 이어졌다.
높이 들어라 붉은 기발을
그 밑에서 굳게 맹세해
비겁한자야 갈라면 가라
우리들은 붉은기를 지키리라
그것은 열병광장의 행진곡처럼, 격전장을 진감하는 돌격나팔소리처럼 우렁차고도 비장하게 감옥을 뒤흔들었다.
그 우렁찬 열병행진곡에 떠밀린듯 윤미향이 다시 일어났다.
다른 녀인들도 자리에서 일어나 윤미향을 따라 보무당당하게 뒤마당을 돌기 시작하였다.
엎드려있는 맹호도 마당에서 벌어진 장엄하고 비장한 광경이 그려지는듯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였다.
노래는 2층에서 시작되여 1층으로 번져갔다.
10호동의 전체 감방이 목소리를 합친 노래에 여러명의 간수들이 꽥꽥 소리를 지르며 분주하게 뛰여다녔다.
그러나 노래는 오래도록 계속되고 그 노래에 맞추어 녀동무들은 보다 힘찬 걸음으로 마당을 여러바퀴 더 돌아갔다. 간수장은 수인들에게 집단처벌로 한주일간 운동시간을 주지 않는다고 선포를 하였지만 이날의 감옥사열식은 모두에게 전투적인 여운을 남겨주었다.
보다 벅찬 환희와 보람으로 수인들의 심장은 끓어올랐고 동지적련대의식으로 굳세여져갔다.
정시명은 감옥에 차넘치는 투쟁활기를 느끼자 대단히 흡족해졌다. 김명호가 고맙고 미더워졌다.
허지만 원쑤들의 소굴에서 벌어지는 결사적인 싸움의 뒤끝에는 피와 희생이 뒤따랐다. 아마도 적과의 결투는 그 어디서 벌어지든지 값비싼 대가가 없이는 한걸음도 전진할수 없는 모양이다.
이튿날 새벽이였다. 정시명이 미명무렵에야 눈을 좀 붙이는데 2층복도가 웅성거리더니 별안간 뒤마당에서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1번동지! 동지들!
2번은 마지막 전투장에 나섭니다. 동지들, 안녕히!
조국통일 만세!》
고요한 새벽대기를 마구 휘젓는 웨침에 정시명은 눈을 떴다. 다급하면서도 마디마디 여력을 다 모아 웨친다.
정시명은 대뜸 목소리가 굵고 터갈라진것으로 보아 김명호의 목소리가 틀림없다고 판단하였다.
정시명은 북소리같이 웅건한 그 웨침에 화닥닥 놀라 허리를 세웠다.
(아― 아― 이 무슨 일이냐?!)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애쓰며 속으로 부르짖었다.
맹호도 벌떡 자리를 차고 일어났다. 감방들이 우실렁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맹호가 뒤마당에서 벌어지고있는것을 보려고 뙤창의 철창을 부여잡으려고 애를 쓰다가 《회장동지, 어서요!》하면서 뙤창밑에 팔다리를 뻗치고 엎드렸다. 자기 등을 타고 뙤창에 어제처럼 매달리라는것이였다.
정시명은 자리에서 가까스로 일어나자 미안하다는 말을 할 겨를도 없이 속이 급해나서 맹호의 등을 밟고 뙤창의 철창을 틀어잡았다.
뒤마당에서는 지금 김명호가 다섯놈의 교형리들에게 끌려가고있었다.
대문가까이에는 그를 태우려고 사방을 둘러막은 수인차가 발동을 걸어놓고 대기하고있었다.
김명호는 허리를 꿋꿋이 편채 놈들에게 떠밀려 다리를 절룩거리면서도 황황히 타는 눈으로 이쪽을 돌아보군 했다.
《저런!… 저런!》
정시명은 뜻밖의 재변에 비명만 연방 내질렀다.
이른새벽에 김명호를 끌어낸것은 최운하놈이였다. 그놈은 어제 저녁 10호동에서 벌어진 소요를 보고받다가 그 조직자가 김명호라는 소리에 즉시 사형집행을 하라고 명령하였던것이다.
《명호!》
정시명이 뿌려던지듯 떨리는 목소리로 웨쳤다. 그 소리를 가려들었는지 차에 오르던 김명호가 홱 돌아선다.
드디여 눈과 눈이 마주쳤다. 애정과 믿음의 불꽃이 세차게 일었다.
김명호는 량쪽에서 팔을 잡고있는 졸병놈들을 뿌리치고 머리우로 철쇄에 묶인 주먹을 불끈 쳐들어보였다. 그리고는 거세고 웅글은 어조로 웨쳤다.
《1번동지! 전사 김명호는 피로써 자기 과오를 씻으렵니다. 나를 용서하여주십시오!》
피에 젖은 간청이였다.
죽음터로 향한 인간의 옭맺힌 한이 서린 부탁에 정시명은 금시 가슴속에 피가 뚝뚝 떨어지는듯싶었다.
자동차운전칸에 타고있던 최운하놈이 뛰여내리더니 뭐라고 고아댔다. 김명호의 어깨에 졸병놈의 무지막지한 총탁이 날아들었다.
김명호는 조금 비칠거렸다. 그러나 혼신의 힘을 다 짜내는듯 그 거쿨진 몸을 거연히 버티고있었다. 이방저방에서 목메인 부르짖음과 통곡이 울려왔다. 그속에서 김명호 처의 울음소리인지 녀인의 바스라지는듯 한 애끓는 울음소리가 뼈를 갉아낸다.
정시명은 사랑하는 전우의 최후의 유언에 접하자 마냥 가슴이 울떡울떡 뛰여올랐다. 서울땅에 와서 그와 얽힌 가지가지 사연들이 번개불처럼 번쩍번쩍 떠올랐다. 《흥국상회》가 이룩한 커다란 승리마다에 김명호의 공로가 력력하다. 《흥국상회》의 2인자가 될만 한 실력과 품격을 겸비한 훌륭한 투사였다. 속통이 크고 담대한 지휘관이였다. 생활에서는 구석진 곳이 없는 락천가요 비단결같은 인간이였다.
그가 본의아닌 실수로 마음이 천갈래만갈래 찢어져있다가 스스로 이 죽음의 복마전을 향할 때 남겼던 편지의 구절구절들이 지금도 생생하다. 범상한 인간이라면 엄두조차 낼 일인가.
그것이 바로 인간 김명호였다. 애국충신 김명호였다.
헌데 그 심지바른 인간이 생의 마지막순간에도 통일위업에 끼친 손실때문에 쓰라린 회한을 씹고있는것이다.
정시명은 뛰쳐나가 실팍한 그의 허리통을 그러안고 혁명은 동무를 어제도 오늘도 변함없이 아낀다고, 볼을 비비고 등을 두드리며 속삭이고싶었다. 어찌된 일인지 눈물은 말라들고 쿡쿡 찔러드는 아픔이 눈을 쓰리게 했다.
(아, 저 사람의 맺힌 한을 풀어줄수 있다면… 그럴수만 있다면…)
정시명은 사랑하는 전우에 대한 애달픈 심회에 사무쳐있다가 불쑥 튀여난 생각에 떠밀려 감방이 쩌렁하게 소리쳤다.
《동지들! 2번동지에게 눈물이 아니라 노래를 보내줍시다. 노래를!》
그 우렁찬 호소에 화답하듯 옆방에서 울음소리대신 노래가 터져나왔다.
민중의 기 붉은기는
전사의 시체를 싼다
시체가 식어 굳기 전에
혈조는 기발을 물들인다
바로 어제 김명호가 전우들을 고무하여 선창을 뗐던 그 신념의 노래였다.
노래는 이어 10호동 전체 감방이 받았다. 심장과 심장들이 노래속에 하나로 합쳐졌다. 그것은 노래가 아니였다. 사랑이고 믿음이였다.
죽음으로 생의 가치를 아름답게 물들인 인간에 대한 피어린 례찬이였다.
때아닌 이른새벽에 장엄한 혁명가로 10호동이 들썩거렸다.
김명호는 대리석 부각상처럼 검붉은 벽돌담벽을 배경으로 주먹을 불끈 쳐들고있다가 정시명을 향하여 고마움에 젖어 벙긋 선이 굵은 웃음을 보냈다. 만시름이 가셔진 밝은 웃음이였다. 뼈저린 고뇌가 깨끗이 지워진 사나이의 맑은 웃음이였다.
정시명은 그 맑은 웃음을 보는것이 더없이 다행스러웠으나 한편으로는 무딘칼로 가슴을 에여내는듯 한 비분을 금할수 없었다.
김명호는 자기를 떠나보내는 이 고별의 노래를 자신의 삶에 대한 애국위업의 변함없는 사랑의 읊조림으로, 최대의 표창으로 받아들이는것이다. 그걸 확인하기에 행복에 젖어있는것이다. 그리고 전우들이 마지막인사로 페부에 새겨가는것이다.
(아, 명호! 부회장, 이 사람아!…)
정시명은 이렇게 나직이 입속으로 부르짖으며 흑흑 흐느꼈다.
다시 최운하가 꽥 소리지르자 자동차의 뒤문이 열렸다.
김명호는 자동차 사다리로 넘어지지 않으려고 애쓰며 꿋꿋이 올라간다.
뒤문이 덜컥 닫기고 자동차는 도망치듯 뒤마당에서 달아났다. 뒤마당은 다시 텅 비고 무거운 정적이 드리웠다.
그러나 정시명은 뒤마당에 차넘치는 김명호의 웃음을 분명 보고있었다.
아직도 김명호가 부각상처럼 쇠고랑을 찬 한팔을 쳐들고있는것 같다.
불굴한 인간의 넋이 그 웃음과 더불어 억세게 퍼덕거린다.
또 한명의 전우를 최후의 싸움터에 내보낸 10호동은 결사전의 노래로 뒤설레고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