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 장 피에 젖은 철창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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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시명은 인차 10호동의 2층으로 자리를 옮겼다.
정시명은 자리에 누워서 음침한 감방의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다. 희무스레한 전등부터 눈에 밟혀왔다. 촉수가 낮고 전압도 낮은데다가 끼워놓은이래 누구의 손길도 가보지 않은듯 뿌옇게 때가 올라 그 어떤 삶도 여기서는 부정하는듯싶은 희뿌연 빛을 던지고있다.
그다음 눈에 안겨드는것은 엄지손가락만 한 굵은 쇠창살이 박힌 뙤창이였다.
세상을 바라볼수 있는 유일한 창구이다.
수인들의 한숨과 피와 눈물에 얼룩진듯 거뭇거뭇한 벽을 더듬던 정시명의 입에서는 탄성이 튀여나왔다.
《광복만세》
그것은 분명 반일지사들이 새겨놓은 글발이다. 그옆으로 희미하게나마 크고작은 글발들이 눈에 띄였다. 이름도 있고 짤막한 시구도 있는가 하면 《우리는 간다. 동지들아 슬퍼말라》는 선렬들의 마지막 당부도 적혀있다.
《통일》까지 써놓고 무엇인가 쓰다만 글발도 있었다. 아마도 자기의 심장의 마지막 웨침을 다 새겨놓지 못한채 형장으로 끌려나간 모양이다.
정시명은 저으기 격동되였다. 글발들은 마치도 피로써 엮어진 항전투사들의 불멸의 이야기를 전해주고있는것만 같았다. 이 어둑침침한 죽음의 무굴에서 침략과 압제에 도전한 우리 력사의 근대사를 읽게 된것이 신비스럽다. 선렬들은 숨졌어도 그네들의 의로운 넋은 아직도 이 감옥의 피비린 철창속에서 굳세게 나래치고있다. 저들앞에서 부끄럽지 말아야 한다. 그들처럼 생애의 마지막순간까지 위대한 리상과 목적을 향하여 분투해야 한다.
정시명은 중경감옥에 갇혀있을 때 여러명의 동지들과 함께 감옥벽에 이런 글발을 새겨가던 일이 생각났다.
그것은 고독과 무료함을 달래기 위한것이 아니였다. 혁명정신과 삶의 가치를 자기의 심장에 쪼아박은것이며 매일매시 투지를 다시 벼르어가는, 자기를 지키기 위한 처절한 투쟁이였다.
정시명은 이제부터 자신도 운신할수 있게 되면 담벽에 글을 남길 생각을 하였다.
이튿날 오후에 애젊어보이는 한 청년이 절뚝거리며 들어왔다.
얼굴이 검실검실하고 선이 굵고 눈섭이 엄지손가락처럼 굵은게 꼭 마동열을 련상케 하였다. 꼬리가 약간 들린 눈매가 감때나사와 보이면서도 돌로 깎아놓은듯 한 턱이며 우뚝 솟은 코마루가 억센 의지를 엿보게 하였다.
청년은 감방에 들어서자 반죽좋게 제먼저 손을 척 내밀며 자기를 소개하였다.
《택시사업소에서 일하던 명주철입니다. 전라도 개똥쇠라면 다 압니다. 여기서는 저더러 맹호라 부르니 아바이도 그렇게 불러주십시오. 오늘 아침 간수부장이 찾는다기에 또 몽둥이찜질이구나 했더니 이 방에 중죄인이 있다고 하면서 방을 옮기라 합디다. 제가 도울 일이 없겠습니까?》
《고맙소, 젊은 친구. 자, 이리 와서 앉으라구.》
정시명은 고문의 흔적은 력력해도 젊음과 열정이 풍기는 젊은 전우의 손목을 잡아주며 자기 옆에 앉혔다. 손바닥에 장알이 배긴게 로동계급다운 맛이 풍긴다. 그의 이름을 더듬어보았다.
(아, 그렇지. 전라도 개똥쇠… 하하…)
생각이 났다. 지난해 례영이가 리창순이와 맞다들었을 때 사귀였던 택시운전사의 이름이 명주철이라고 했지. 전라도 개똥쇠라며 깔깔거렸지. 뒤날에 투쟁에 인입하다가 김명호의 선에서 련락사업을 맡아보도록 넘겨주었다고 했지.
맹호라… 제가 붙여놓은 별명인가? 그전에 김아성이가 김형진이라는 이름대신 반동들과 끝까지 맞서는 아성이 되겠다며 이름을 고쳐부르던 생각이 났다.
《많이 맞았구만.》
정시명은 맹호가 자리에 앉는 자세가 불편하고 엉뎅이를 바닥에 붙일 때 얼굴을 찡그리는것을 포착하고 다심하게 물었다.
《예, 많이 맞았습니다. 엉치뼈가 잘못된것 같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뭐 괜찮습니다.》
《뭘 대라고 때렸소?》
《뭐 정시명이 누구냐고 박달나무로 그냥 조기지요. 모르는 사람 어떻게 대라느냐고 맞섰더니 건방지다고 또 두드려 패지요. 허참, 그리고 상급인물들을 아는껏 대라는겁니다. 엥, 가량이 없는 놈들이지요.》
《정시명을 대라고 때린단 말이요? 지금도 그런 문초를 받소?》
《예, 그게 기본입니다. 사실 전 그런분을 모릅니다. 뭐 저뿐이 아닙니다. 하지만 뭐 안다고 한들 대줄탁이 있습니까. 아, 저기 눈딱부리가 오는군요.》
맹호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철창가로 다가가 록록치 않게 꽥 소리질렀다.
《눈딱부리형님, 물 좀 달라.》
《오라, 너 6호실 애꾸러기가 어델 갔는가 했더니 여기 와있었구나.》
몸집이 크고 눈딱부리인데다가 웃입술이 우로 뒤집힌 간수가 달려오더니 금시 맹호를 족칠듯이 커다란 주먹부터 휘두른다.
《이건 하루만에 만났는데 재수없이 떡떡거리겠어? 그래도 널 형님이라고 개올리는건 이 10호동엔 맹호밖에 없단 말이다. 물 안주면 또 소동을 부릴테야.》
맹호는 비켜서지 않고 가슴을 쩍 펴고나서 이죽거리였다.
《소란을 피워봐라. 코밑이 반질반질한게 담도 크시네. 이번에는 토끼장이야.》
토끼장이란 벌감방중에서도 제일 작은 방이다. 방이 너무 좁고 작아서 그안에 들어가면 일어설수도 없고 누울수도 없어 하루만 지내도 미쳐날 지경이다.
《그까짓 쥐굴에라도 틀어박아 봐라. 이 맹호가 눈섭 한오리 깜짝거릴것 같으냐?》
간수가 어쩔수 없는듯 주먹질을 해보이더니 사라졌다가 주전자를 들고왔다.
《눈딱부리형님, 고맙수다. 헌데 같은 값이면 군소리없이 해줘야 통일된 다음에 봐준단 말이야. 물심부름 몇번, 얼마나 곱게 해줬는가 하는것도 다 적어놓고있단 말이야.》
《헹, 개떡같은 소리만 한다. 어서 물이나 마셔.》
간수는 맹호의 너스레가 과히 싫지 않은듯 히죽벌쭉거리며 물주전자를 건네주었다.
두사람의 대화에 어쩐지 정시명은 웃음집이 흔들거렸다. 정신적으로 박약한자와 풍요한 인간의 대결이다. 너무도 현격한 차이를 가진 인간들의 상이 짧은 대화속에 선명하게 그려진다.
맹호는 정시명에게 물을 권하였다. 자기도 물을 맛스럽게 들이킨다. 그는 옷자락을 적셔 정시명의 목부위에 아직도 붙어있는 피자국을 꼼꼼히 닦아주었다.
간수가 주전자를 받아들고 떠나가자 맹호는 벌쭉 웃었다. 간수녀석을 다불리던 자기의 수작이 저로서도 어처구니없었던 모양이였다.
《허허. 괴짜군, 괴짜야.》
정시명은 이름그대로 맹호처럼 덤벼들다가도 떡심좋게 간수를 쥐고 구슬려대는 청년의 담기어린 모습이 대견스럽기도 하고 재미가 있어 아픔도 가뭇 잊어버리고 다시 소리내여 웃었다. 례영이가 참 훌륭한 젊은이를 투쟁대오에 세웠다고 생각하였다.
《선생님은 여길 처음 들어오셨나요? 들어온지는 오래 됩니까?》
《아니, 나는 그저께 왔소.》
《그저께요?… 편하게 살아가자면 거저 죽었소 하고 지내서는 안됩니다. 저놈은 여기서는 코끼리라고도 불러요. 저렇게 몸집은 커도 속은 물렁탕이지요. 저런 놈은 막 굴려야 말을 듣습니다. 매를 맞을가봐 설설 기다가는 더 큰 매를 맞아요.》
《허허… 그럴듯 해.》
《몇달 살아보니 신수 편하게 지내는데는 두가지 요령이 있습니다. 한가지는 저놈들에게 아예 손을 들어주는건데 거야 개, 돼지보다 못한짓이니 할수 없지요. 다른 한가지는 아주 고약하게 처신해서 저놈들이 마주서야 덕볼게 없다고 돌아서버리게 하는거지요. 그렇게까지 되자면 몇번은 몽둥이찜질에 오소리장, 토끼장에 들락날락해야 하는데 그걸 통과하면 그 다음에는 팔자가 늘어진답니다.》
말끝에 또다시 웃음집이 흔들거렸다.
맹호는 감옥살이요령을 경험자답게 들려주면서도 정시명의 상처를 더듬으며 물에 적신 옷자락으로 꼼꼼히 씻어준다.
그때 담벽이 규칙적으로 울리기 시작하였다.
맹호는 손을 멈추고 다소 난처한 표정으로 정시명을 흘깃 쳐다보더니 그쪽에 가서 조용히 귀를 기울이기 시작하였다. 그 다음에는 다시 정시명을 쳐다보고 량해를 구하는듯 한 눈길을 지었다.
그는 반대편 담벽에 붙어서 딱따구리가 나무를 쫏듯 손부리로 담벽을 두드리기 시작하였다.
정시명은 통방신호가 오고간다는것을 눈치챘다. 그래 맹호가 마음을 놓고 신호를 보내도록 돌아누워버렸다. 그리고는 맹호에 대한 평가를 내려보았다.
적들이 끄나불을 들이밀수도 있다. 김명호의 감방에 홍민표놈을 들이밀듯이 또 하나의 연극을 꾸밀수도 있다.
그런데 어쩐지 첫눈에 무척 호감이 갔다. 일에 다지운 뼈대가 알리면서도 슬기가 있고 머리가 트인 청년이다. 그리고 굽힘이 없고 다기찬것이 느껴진다.
정시명은 보이지 않는 힘이 사람들을 묶어세우고 굴함없는 의지의 싸움을 벌리고있다는것을 맹호의 언행을 통하여 간파하였다.
비록 고문에 육체적으로는 쇠약하고 지쳤지만 이들은 싸우고있다. 의지와 신념으로 원쑤들과 맞서 자신들을 지키고 동지들을 지켜주는것이다.
정시명은 이들의 뒤에 김명호며 안지생이 크게 활약하고있을것이라고 확신하였다.
《김부회장, 고맙소.》
정시명은 김명호의 마지막모습이 떠올라 가슴이 쓰려나면서도 고마움에 젖어 이렇게 입속으로 뇌이였다.
맹호는 신호를 다 보냈는지 벽쪽에서 돌아앉으며 다소 열적은 표정을 짓고 머뭇거리다가 물었다.
《옆에서 문안을 전해왔습니다. 그런데 제가 아바이를 어떻게 불러야 될가요? 여기선 새로운분이 들어오면 서로 알려주는게 도덕이랍니다.》
정시명은 맹호가 감옥안의 조직에 새로 나타난 인물에 대하여 보고하려 한다는것을 알아차렸다.
정시명은 아까 맹호가 부러진 팔을 쓰다듬으면서 우선은 상처를 확인한다는것을 눈치챘다. 정말 중죄인이 맞는가, 개가 아닌가, 상처가 일부러 흉내를 낸것이 아닌가 하는것을 가려내려는것 같았다.
그러니 조직은 벌써 자신에게 손을 뻗쳐온것이다.
정시명은 자기를 공개하기로 결심했다. 그것이 이제부터 함께 고락을 같이할 동지들에게 좋을것 같았다. 당장은 자기를 걸고 고문을 들이댄다니 동지들의 피해도 덜수 있을게 아닌가.
정시명은 나직이 대답을 주었다.
《맹호동무, 옆방에 전하시오. 나는 정향이라는 사람이요. 다르게는 정시명이라고도 부르오.》
《예? 정시명이라구요?!…그러면?… 아니 아바이가 정말!…헹, 모를 소린걸…》
맹호는 깜짝 놀라 저으기 당황해하기까지 하면서 혀밭은 소리를 연방 내지른다. 그리고는 무슨 쓸개빠진 소리냐는듯 눈을 흘기며 부정해버린다.
정시명은 쉽게 믿음이 안가는듯 손을 내두르기까지 하면서도 자세를 바로잡느라고 불편한 몸을 흔드는 맹호를 애무가 어린 눈으로 쳐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렇소.〈흥국상회〉회장 정시명이요. 아마 적지 않은 사람들은 나를 정향이나 심양 정씨나 륜파라고 알고있을거요.》
《아, 그러니 륜파동지가?!… 저도 륜파동지가 우리 조직의 최고책임자라는 말은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회장선생님! 정시명선생님!》
맹호가 아직도 의혹이 채 가시지 않은 표정으로 얼떨떨해있다가 드디여 정시명의 어글어글한 눈확에 비낀 사랑과 믿음과 진실을 확인한듯 얼른 정시명에게로 다가와 성한 오른팔을 부여잡았다.
그는 감격에 넘쳐 나직이 속삭이였다.
《정시명선생님, 우리는 그런분이 세상에 없다고 뻗쳤지요. 뭐 저뿐만 아닙니다. 하긴 누구도 들은적 없고 본적 없는분이니깐요. 그런데 어떻게 여기로 들어오셨습니까. 야 참! 선생님만은 들어와서는 안되지 않습니까? 조직은 어찌됩니까?》
《맹호동무, 너무 흥분하지 마오. 조직은 건재하고있소. 아마도 통일이 될 때까지는 끝까지 자기의 대오를 이어가며 싸우게 될거요. 자, 어서 신호를 보내오. 나의 인사도 전해주오. 통일승리의 그날이 다가오고있으니 끝까지 함께 싸우자구 말이요.》
《예.》
맹호는 그에게서 물러나 의기양양해서 벽에 가 붙어앉았다. 그의 어깨와 주먹이 마치도 전건을 두드리듯 률동적으로 움직이는데 그 모습에 환희와 슬픔과 격동이 엇갈려 비껴간다.
정시명은 맹호가 감옥안의 조직과 동지들에게 자기의 첫 인사를 전하는것을 물끄러미 지켜보았다.
감방들에서 웅성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정시명! 정시명!》 이런 열찬 부르짖음이 들려왔다.
정시명은 자기의 인사를 받아들일 동지들의 심정을 그려보았다.
그들에게 보다 큰 좌절과 실망을 주는 소식으로 되지 않을가, 그래서는 안된다. 그들의 전투적사기를 앙양시켜야 한다.
정시명은 그가 통방신호를 마치자 자기의 격동된 마음을 시구에 담아 담담히 엮기 시작하였다.
천둥번개 태를 친다고
송죽의 곧음 굽힐수 없고
천지풍파 거칠다고
바다의 푸름 지울수 없나니
억사철사 칭칭 감긴들
투사의 넋이야 얽맬수 있으랴
맹호는 다시 통방신호를 보내기 시작하였다.
지사의 인생길 순탄치 않아
한번 주저앉으면
다시 일어서기 힘들고
한걸음 비켜서면
다시 들어서기 어렵나니
장하다 그대들 불굴하도다
용사에게 전장터가 따로 있더냐
단두대도 우리에겐 판가리싸움
고별의 노래는 결사의 언약
너와 나 나와 너 통일에 살 때
눈부신 태양은 찬란한 빛으로
녹쓸은 철창을 태워버리리라
조국통일 만세!
그의 열렬한 호소와 사랑이 담긴 시구가 감방과 감방들에 한바퀴 돌아갔다.
온 감방이 불굴의 정신력으로 움씰움씰거렸다. 감방들에서는 일제히 우렁찬 구호가 터져나왔다.
《조국통일 만세!》
저녁무렵에 터져나온 함성에 간수들이 쓸어나왔다.
그러나 이미 자리가 정돈되고 수인들은 얌전하게 앉아 악을 쓰며 돌아가는 간수들을 조롱기어린 눈초리로 맞았다.
이날 밤, 다시 통방이 날아왔다. 3번의 요구인데 낮에 읊은 즉흥시를 다시한번 보내달라는것이였다.
《3번?…》
정시명이 의아쩍어하면서도 조직의 새로운 지시로 접수하고 모진 동통을 이겨가면서 낮에 읊었던 시구절을 더듬어갔다. 맹호가 신명이 나서 정시명이 외우는 시구절들을 통방신호로 옆방에 넘겨주었다. 뜻과 힘과 열정이 맥맥한 정시명의 심장의 읊조림은 또 한차례 감방을 조용히 흔들며 3번에게로 전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