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 장 정 면 돌 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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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겨울이 오려나?…》
김아성은 손바닥만 한 뙤창너머 바깥하늘을 내다보다가 희끗희끗 눈꽃이 날리는것을 보자 혼자소리로 중얼거렸다.
즉결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청주감옥의 사형수감방에 들어온지 꼭 보름째이다.
청주감옥에는 1 500여명이 수감되여있었다. 그중에 이른바 좌익계로 잡혀온 정치범이 1천명정도 된다고 한다.
김아성이 들어선 사형수의 감방에는 세명이 있었다. 두명은 지리산빨찌산에서 싸우던 사람들이였다. 세명 다 피골이 상접하고 육신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있었다. 그래도 조금도 비관을 모른다. 아침 일찌기 일어나 체조를 하고 학습토론도 하고 바깥동정에 귀를 기울이군 한다.
이따금 벽이 울리였다. 딱따구리가 나무를 쫏듯 규칙적인것으로 보아 저들끼리 알리는 통방신호 같기도 하였다.
처음에는 서로 눈치를 보았으나 이내 친숙해졌다.
김아성은 그들에게 애인이 놈들한테 붙잡혀 모욕당하는것을 보고 참을수 없어 행패질하던 놈들을 갈겨치우고 사형을 선고받았노라고 간단히 자기 소개를 하였다.
김아성의 대쪽같아보이는 성미와 솔직해보이는 기질이 마음에 들었는지 그들도 자기를 밝히고 바깥소식을 물었다.
김아성은 군법회의 즉결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때로부터 탈옥할 하나의 결심을 다져오며 기회만 노리여왔다.
《헝, 내 네놈들이 올가미를 조일 때까지 곱게 앉아 기다려줄줄 아느냐. 내 몸값을 총탄 몇발과 바꾸다니. 어림도 없다. 그래서야 김아성이 아니지. 내 몸이 열배, 백배가 돼서 순애의 복수전을 벌리기 전엔 이 김아성이 쉽게는 넘어지지 않을테다.》
그는 청주감옥으로 호송되는 도중에 호송원들을 발로 차던지고 내뛰려고 했다. 그런데 수갑에다 족쇄까지 채우고 머리에 고깔처럼 생긴 수인모자까지 푹 씌워놓는 바람에 움직일수 없었다.
청주감옥에 들어섰어도 줄곧 도망칠 기회만 노려왔다.
여기로 끌려온 며칠후 길철과 련계가 취해졌다.
그에게 길철의 지시문을 전해준 사람은 감옥의 부감옥장이였다. 그는 광복전에도 이 감옥에서 후방경리일을 보았다고 한다. 광복이 되자 감옥에서 못되게 논 놈들은 도망치고 그도 물러났었다. 청주감옥이 다시 죄수들을 끌어들이자 그도 불리워나와 부감옥장이 되였다.
그는 김창기의 선에 인입되여 크게 하는 일없이 지내왔는데 김창기련락원이 길철의 지시문을 가지고 나타났다. 곧 김아성과 련계를 가지고 지시문을 전달하라고 하였다.
지시를 받은 부감옥장은 김아성이 도착하자 바람으로 감방규률을 문란시킨다고 트집을 걸어 자기 사무실에 불러다놓고 담당간수앞에서 따귀를 몇대 철썩철썩 붙이였다.
김아성이 따귀 몇대 건사하고는 눈에 불이 나서 《이새끼가 사형수를 친다.》하며 갈범처럼 덤벼들었다. 부감옥장은 그의 뒤잔등을 발바닥으로 차서 쓰러눕히고는 그의 가슴을 타고앉으며 소리쳤다.
《간수 뭘해? 나가서 오라를 가지고 와! 이놈을 동태로 만들어 벌감(중벌을 적용하는 방)에 처넣어야 한다.》
간수가 방에서 나가자 부감옥장이 재빨리 물었다.
《청파를 아시오?》
《예?》
김아성이 눈이 둥그래졌다. 청파란 전우들속에서 통하는 길철의 별호였다.
《아오.》
《받으시오.》
부감옥장은 그의 손에 쪽지를 쥐여주었다.
《거기 연필심도 있으니 쪽지를 보고 회답을 쓰시오. 이틀후에 불러내겠소.》
김아성은 고개를 끄덕이였다.
간수가 나타나자 부감옥장은 버둥거리는 김아성을 타고앉은채 고함을 질렀다.
《왜 꾸물거리는거야? 와서 이놈을 꽁꽁 묶어라. 청주가막소맛을 보여줄테다. 이틀간 벌감에 처넣어.》
벌감은 감옥의 지하실에 있었다. 밤이건 낮이건 한치앞도 볼수없이 캄캄하였다. 다만 밥을 먹을 때만 15분간 전등을 켜주었다.
쪽지에는 절대로 경거망동하지 말되 항소서(선고에 항의하여 법원에 제출하는 글)를 즉시 제출하라는 길철의 엄격한 지시가 있었다.
경거망동이라는 길철의 지적에 김아성은 자기가 저지른 일에 대한 가책부터 앞섰다.
결혼식날 순애의 체포소식에 접한 순간부터 아성은 리성을 잃어버렸다.
순애를 탈환해야 한다는, 그를 구원할수 없으면 그와 함께 차라리 죽어버리겠다는것이 당시 아성의 심정이였다.
그는 만탄창한 두정의 권총을 들고 무턱대고 경무대 특별경찰관의 요란스러운 특수신분증을 휘두르며 륙군참모본부의 철문을 열었고 장억수도 찾아냈다.
그러나 아성이 장억수를 만났을 때는 순애가 심문도중 그놈들에게 맞아죽은 후였다.
김아성의 분노는 걷잡을수 없었다. 장억수로 하여금 순애에 대한 심문에 참가하였던 총무과장놈을 불러오게 한 김아성은 다시금 그놈들의 입을 통하여 순애가 이미 고인이 되였다는것을 확인하자 즉석에서 두개의 탄창을 다 풀어버렸다. 군법회의 즉결심판에서 김아성은 군부가 자기 애인을 재판없이 처형한데 대한 불법무법을 응징했다는 한마디로 자신을 변호하였다.
김아성은 애인의 원한을 풀어주었다는것으로 순애와 자기의 량심앞에서 당당하다고 생각하였다. 사나이로서 죽어도 한을 남길게 없다고 자기의 비통한 마음을 위로하였다.
자신이 얼마나 분별없고 무책임한 란동을 벌려놓았는가를 깨닫게 된것은 사형선고를 받고 청주감옥에 끌려온 뒤였다.
《흥국상회》에 놈들의 마수가 뻗치기 시작하고 적들의 사찰책동이 강화되고있는 어려운 형편에서 대내의 안전사업에서 긴요한 몫을 안고있는 자신이 임무를 포기하고 자리를 비우게 되였으니 얼마나 어리석고 무책임한것인가. 순애의 죽음으로 비통해할 동지들에게 또다시 커다란 걱정거리와 부담을 끼치게 되였으니 그 역시 얼마나 죄스러운 일인가.
그는 길철에게 보내는 회답에 자기의 괴로움을 짤막히 토로하였다.
《제가 죽어 마땅한 짓을 하였습니다. 이제야 저지른 일이 얼마나 한심한가를 통절히 느끼며 때늦은 후회나마 하고있습니다. 그러나 저를 믿어주십시오. 이제부터라도 지시에 절대복종하며 기어이 탈옥을 하겠다는것을 보고합니다. 정면돌파하는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정면돌파하렵니다. 항소리유서는 쓰겠지만 써야 승산은 없을것입니다.》
이틀후에 아성은 다시 부감옥장과 마주섰다.
《벌감맛이 어때? 또 소란을 피우면 벌감 열흘이다.》
김아성은 고개를 꺼떡거리고는 간수가 바줄을 풀어주는 기회에 얼른 부감옥장의 발치에 쪽지를 떨구어주었다.
며칠후에 길철의 지시문이 다시 전달되였다.
《탈옥투쟁에 대하여 원칙적으로 승인한다. 부감옥장을 믿고 방조를 받으라. 항소리유서는 반드시 빨리 제출하라. 시간을 얻어내야 한다. 신심을 가지고 용기를 잃지 말라.》
김아성은 자기를 위하여 기울이고있는 전우들의 정이 고마와 코마루가 찡하였다. 그리고 이렇듯 힘있게 자신만만하게 그리고 재빨리 자기의 일거일동을 장악하고 손을 뻗치고있는 《흥국상회》의 전투력과 조직력에 탄복해마지 않았다.
그는 삶에 대한 강렬한 애착을 느끼며 새로운 힘과 투지를 안고 계획을 세우고 탈옥준비를 하기 시작하였다. 우선은 군법회의의 즉결심판에 불복하는 항소리유서를 제출하였다. 항소리유서를 제출하면서 부감옥장에게 법무관계를 물어보니 기각되는 경우에도 20일정도 걸린다고 하였다. 그러니 20일안으로 거사준비를 완료하여야 하였다. 나이가 지숙해보이는 부감옥장은 필요한 물질적준비와 기회는 자기가 마련하겠으니 신호가 있는 경우 응할수 있도록 건강이나 추세우라고 타일렀다.
사실 선고를 받기전에 륙군참모부놈들의 보복적인 폭행에 아성의 몸은 성한데가 없었다. 다행히도 뼈는 다친데 없었다.
어느날 간수가 와서 그를 끌고 어느 한 방에 들어갔다.
코등에 도수높은 안경을 걸고 사복을 입은 사람이 앞에 문건을 펴들고 앉아있다가 그를 주의깊게 살피였다.
《서울 지방검찰검사 안영선이요. 당신이 경무대 특별경찰관 김아성이요?》
그는 법관다운 메마르고 딱딱한 어조로 물었다.
《그렇소. 지금은 사형수고…》
《이 사람을 아오?》
이미 제출한 항소리유서때문에 찾는줄 알았는데 검사는 한장의 사진을 꺼냈다. 김명호의 사진이였다. 김아성은 주로 안지생과만 련결되여있었으므로 길철과는 면목이 있었으나 김명호는 깊이 상종하지는 않았다.
《모르오.》
《좋소. 이 녀자는?…》
다음으로 손에 쳐들어보인것은 례영의 사진이였다. 그는 례영의 사진을 보는 순간 (아차, 뭐가 잘못되였구나!)하고 놀랐지만 태연하게 대답하였다.
《모르오.》
《좋소, 다음… 이 사람은 모르겠소?》
그것은 정시명의 사진이였다. 아성은 가슴이 철렁하고 숱진 눈섭이 한동안 푸들쩍거렸다. 그러나 그는 의연히 고개를 가로 저었다.
《모르오.》
김아성의 대답이 떨어지기 바쁘게 군소리없이 사진을 번갈아 들어보이던 그놈의 오른주먹이 이마에 날아들었다. 련이어 왼주먹이 날아들었다.
김아성은 두번째 날아드는 주먹을 쳐갈기며 벌떡 일어났다. 그러나 옆에 있던 두놈의 경찰이 달려들어 손을 뒤로 틀어잡았다.
《이놈아, 말같지 않은 소릴 하지도 말아. 난 사형수다. 내가 안다면 안다고 대답할것 같으냐?》
《뭐야?!》
검사가 또다시 김아성에게 덤벼들었으나 김아성의 담벽같은 기상에 기가 눌리웠던지 아니면 부하들앞에서 검사로서의 체면을 손상시킨다고 생각했던지 자리에 도로 앉으며 소리쳤다.
《좋다, 특별수사본부에 가서 말해보자.》
이리하여 김아성은 다시 서울로 압송되여 특별합동수사본부의 심문장에 나서게 되였다. 그는 거기서 뜻밖에도 례영이, 김명호와 마주서게 되였다.
일은 항소리유서에서 생겨났다. 이른바 3자대질심문인것이다.
항소리유서를 접수한 고등법원은 륙군본부에서 리순애를 재판없이 살해한 정형을 조사하게 되였다.
이것이 특별합동수사본부에 망라되여있는 륙군정보국 방첩과장에게 보고되고 오성도의 귀에 들어가게 되였다.
오성도는 순애와 김아성이 공산당선이나 빨찌산소속이 아니겠는가 하는데 주목이 갔다. 그는 이들이 필경 정향의 《흥국상회》와 련결된 선이라고 단언하였다. 끝내 오성도는 김아성이 정향과 례영이와 동행한 사실이 있다는것을 들춰냈던것이다.
그러나 김아성은 례영이도 모른다고 뻗치였다.
또 한차례의 뭇매질과 고문이 벌어졌다.
그러나 손을 든것은 오성도쪽이였다. 김아성은 여러번 실신하였다가 청주감옥으로 되돌아왔다.
가뜩이나 성한데 하나 없는 몸이 다시 살인적인 고문을 당하고 보니 운신하기조차 힘들어졌다.
부감옥장은 즉시 김창기에게 현상태에서는 탈옥에 성공할수 없다고 보고하였다.
김창기는 아뜩해졌다. 탈옥을 될수록 빨리 당기려고 하였는데 운신조차 하기 힘든 사람을 어떻게 한단 말인가.
김아성의 운명을 놓고 자신을 걷잡지 못하던 김창기는 정시명의 생각부터 앞섰다. 그것은 김창기의 복잡다단한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고결한 추억이였다. 인정으로 얽혀있는 인간들의 세계, 사랑과 우애로 넘치는 인간륜리의 극치였다.
김창기는 그날의 그 눈물겨운 추억만 떠올려도 자기가 들어선 참인간들의 세계가 얼마나 신성하며 그곳에서 삶의 보람을 찾은 자신의 한생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행복이였는가를 뜨겁게 실감하군 하였다.
(김아성을 구원할수 없다면 아예 노그라들고 말테지. 암 그렇구말구. 그러니 이 김창기가 아성일 구원하지 못하고서야 사람값이 없지.)
김창기는 드디여 단독으로 김아성을 구원하기로 결심하였다. 제 한목숨 바쳐서라도 그를 구원해내고야말리라 속다짐을 하였다.
늦잡다가는 그 사람을 아예 떼울수 있으며 그러면 자신은 《흥국상회》앞에서 씻을수 없는 죄를 짓게 된다는 촉박감이 극한의 결투에로 그를 부추겼던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