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장  죄여드는 그물

3

 

오성도는 서울경찰청 부청장의 방에 들어서자 정향의 딸이라는 녀자부터 만나겠다고 하였다.

례영이 경찰놈들의 부추김을 받으며 방안에 들어섰다. 오성도는 멍이 지고 부어오른 젊은 녀인의 얼굴을 보자 눈살을 찌프렸다.

《어느 녀석이 심문했소?》

오성도는 한발자국 나서는 수사관을 당장 멱살이라도 잡을듯 노려보다가 차거운 어조로 따지였다.

《당신은 아름다운 녀성과 말하는 방법을 모르는가? 항차 우리가 찾고있는 정향의 딸이라고 했는데 경찰이 례절이 있어야지. 경찰의 지능도라는게 이렇게 수준이하라니깐. 당신 소속이 어딘가?》

오성도는 례영이 들으라구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골을 내기 시작했다.

《충청북도 검찰청입니다.》

《당신은 오늘부터 내밑에서 얼씬거리지 말아.》

오성도는 곁에 서있는 최운하부청장을 흘끔 돌아보고는 별안간 수사관에게로 홱 몸을 돌리며 고함을 쳤다.

《당장 내 눈앞에서 사라져!》

수사관놈이 허리를 꼿꼿이 펴더니 비실비실 방에서 나가버렸다.

《미안하게 됐소, 아가씨》

오성도는 수사관을 쫓아버리는 연극을 놀고나서 례영의 참혹한 몰골을 사뭇 측은한 눈으로 보며 여간 싹싹하지 않은 소리로 말을 꺼냈다.

례영은 신사연하는 오성도의 허세에 긴장해졌으나 무표정한 눈길로 창밖을 내다보기만 하였다.

《아가씨, 앉으시오. 우리 경찰이 아직도 왜놈때 고태를 다 벗지 못해 이런 수준이지요. 인간이라는 의미를 떠난 행위는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하오. 법이라는건 인간을 위해 만들어졌다는걸 저 무식한것들이 모르고 덤비는게 탈이거든. 그러나 법기관의 지나친 잔혹행위에 대해서 리해도 해주시오. 어차피 나나 아가씨나 <한국>이라는 하나의 실체속에서 서식하는 동시대의 인간들이 아니요. 국민을 지키자니 <한국>을 보호하고 그걸 지켜내자니 이런 무지도 생기는거지요. 앉으시오.》

례영이가 여전히 대척이 없자 리창순이 《처녀가 수사관이 사죄할 때까지 묵비권을 행사할것이라 하였습니다.》하고 일러바쳤다.

《그렇군.》

오성도는 리창순의 말을 얼른 받으며 여전히 시원스럽게 말을 이었다.

《심문관의 사죄? 내가 대신 사죄하지요. 폭행정도에 따라 추궁하고 벌을 내릴것을 약속하오. 내가 담보하오. 참 내가 자기 소개를 하지 않았던가?… 난 정시명수사를 책임진 특별합동수사본부 본부장 오성도요. 정시명이라는 이름이 생각나오? 나와 좀 얘기해봅시다.》

오성도가 감언리설을 늘어놓기 시작하였으나 례영의 입은 기워맨듯 열리지 않았다.

리창순이 한본새로 버티는 례영의 야무진 모습을 그냥 지켜만 보고있자니 땀이 났던지 또다시 참견해나섰다.

《본부장님, 수사관이 좀 너절한 수작을 했습니다.》

《너절한 수작? 어떻게?》

《그는 이 녀잘 정향의 첩이라고 모욕했습니다. 그런 관계가 아니라는건 저도 보증할수 있습니다.》

《아, 그런 일도 있었군. 상식이전이야. 상식이전… 그만큼 고아대도 일본새들이 이렇다니까. … 그러니 자기를 피칠갑을 해놓은데는 용서가 될수 있지만 아버지를 모욕한데 대해서는 타협할수 없다 이것이겠소? 음, 그렇다니… 뜻이 높아. 좋소. 리해가 가오.》

오성도는 눈앞에 서있는 녀인의 입을 매질이나 얼림수로는 열수 없으며 더구나 이 자리에서는 그의 마음을 움직일수 없다고 판단하고 이렇게 제잡담 말롱간질을 부렸다. 좀 시간을 주고 경과를 지켜보자, 이렇듯 도고한 녀인들과는 서두르거나 폭력을 휘둘러서는 안된다, 정향의 양딸이라니 정향이라는 인간도 이제는 끝을 보게 되겠는데 서둘러서 그물안에 든 고기를 놓칠 까닭이 있는가.

《부청장, 이 녀자를 당장 경찰병원에 데리고 가서 치료를 해주시오. 수사관이 정식으로 사죄하도록 하시오. 그리고 래일 대검찰청 대공분실에서 안영선검사를 보낼터이니 그에게 이 녀자를 이관하시오. 집행결과를 저녁에 나에게 보고하시오.》

오성도는 엄격하게 지시하고는 다시금 례영의 금새를 곁눈질해보았다. 상하기는 했으나 눈과 코와 입이 다 예쁘장스럽고 품행이 무척 단정해보였다. 설렁하게 뻗어오른 목이 대리석을 깎아 빚어놓은듯 희고 매츨한데 그 아래 수박색뜨개옷과 하얀 바지를 산뜻하게 바쳐입은것이 마치도 한떨기의 흰 국화를 보는듯 싶다. 꼭 다문 입술과 오똑하게 솟아난 코마루며 약간 들릴싸한 눈길에 허술하게 대할수 없는 매력과 기품이 어려있다.

오성도는 젊은 녀성이 훌륭한 교양을 받으며 자랐다는 직감부터 들었다. 이 아가씨가 정향의 분신이라면 정향이라는 인간상도 쉽게 짐작이 된다. 이런 인간과 말하는 법은 달라야 한다.

그는 례영이를 굽혀내기 위해서는 좀 연구가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다시 은근한 어조로 말했다.

《아가씨, 치료를 받고 다시 만납시다.》하고 오성도는 례영의 좌우에 장승처럼 버티고있는 경찰들에게 눈짓을 하였다.

례영은 다시 경찰에게 끌려 구류장으로 갔다.

《다른 사람을 보여주오.》

오성도한테서 한바탕 취조라도 받고난 기분이 된 최운하는 자리에 앉아 자기에게로 멸시어린 눈빛을 보내며 여전히 독을 피우고있는 상대의 동정을 조심스럽게 살피다가 주눅이 들어 대답하였다.

《꼭 봐야 되겠소? 그 사람은 흥미가 없을게요. 팔부짜리 인간이요. 광복직후 전라도에서 쫓겨다니던 놈이 맞기는 한데 만나보니 재목이 못되는 얼뜨기요. 그래 쫓아버리라고 했소. 여, 강검사, 그 고백서라는걸 가져와.》

방 한가운데 서있던 사복쟁이가 문밖에 나갔다가 이내 한통의 문건을 가져다 최운하에게 내밀었다. 최운하는 그걸 받아 오성도에게 내밀며 설명을 하였다.

《이걸 보시오. 공산주의이단자에 불과한 인간이요. 뭐 고백서라나… 정말 팔부짜리라니까.》

오성도는 최운하의 말을 듣고 흥심을 잃은듯 《고백서》를 받아들고 눈으로 대강 훑었다. 다 읽고난 오성도는 시무룩이 웃다가 다시한번 중간부분에서부터 찬찬히 더듬기 시작하였다. 그는 문건을 덮어놓고 손바닥에 턱을 고이고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끌어오시오.》하고 짤막하게 지시하였다. 남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자기의 관찰과 륙감을 중시하는 그의 특유한 고집과 자존심이 다시 꿈틀거리였다.

김명호가 경찰의 호송밑에 문턱을 넘어섰다.

오성도는 독뱀처럼 랭랭하고 예리한 눈초리로 방안에 들어와 겁을 먹은듯 두리번거리는 어리숙해보이는 상대의 모습을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깐깐히 훑었다.

오성도의 파고드는듯 한 눈길이 아래우를 여러번 훑자 김명호는 《하-》하고 피식 웃기부터 한다. 그 웃음발이 싱겁고 게접스럽게 짝이 없다.

오성도는 저도 모르게 눈을 빨았다.

《한대 태우시오.》

오성도는 담배갑에서 담배 한대를 꺼내 그에게 내밀었다. 그리고는 성냥불까지 켜댔다.

《고맙능기요. 상관나리.》

김명호는 오성도가 내미는 성냥가치를 겁에 질린듯 엉거주춤거리며 받아들고 허리를 굽석거린다. 오성도의 눈길이 담배에 불을 붙이는 그의 손동작을 지켜보았다. 보통사람이라면 이 문턱을 넘어서면 너나없이 한풀 죽는다. 내미는 담배나 성냥가치도 부들부들 떠는 손으로 힘겹게 받아들이군 한다. 헌데 김명호는 아무런 느낌도 없는듯싶다. 아니면 앞에 진을 치고있는 상대가 눈아래에 굽어보이는듯 태연하게 받아든다. 신경이 질겨먹은 사나이인가, 아니면 정말 팔부짜리 멍청이인가.

별안간 오성도는 책상을 부셔버릴듯 내리치며 방안이 떠나갈듯 고함을 질렀다.

《정시명이 어디 있어?》

급습을 들이댄것이다. 그러나 상대는 꺼멓게 멍이 진 눈통이 쓰린듯 한번 눈을 감았다떴을뿐이였다. 그는 별다른 반응이 없이 고개를 천천히 돌리더니 담배까지 한모금 길게 들이빤 다음 어줍게 물었다.

《무슨 정시명말입니껴?》

《그렇다?…》

오성도는 아직은 어리숙한지 아니면 어리궂은 흉내를 내는지 인차 가늠이 되지 않아 제김에 골이 나서 씨근덕거렸다. 그러다가 궁둥이에 방망이찜질을 당한 망아지처럼 벌떡 몸을 솟구치며 걸상을 뒤로 차던진 다음 돌덩이같이 단단한 주먹으로 김명호의 오른볼을 냅다 갈겼다. 그러자 대방의 어리숙해보이던 눈에서 분노의 불찌가 숯불처럼 번쩍하고는 이내 사라지고 죽을상이 되여 볼따귀를 싸쥐고 신음소리를 냈다.

《와 이러능기요?…》

오성도는 그의 눈에서 적의를 품은 섬광이 번쩍하는것을 놓치지 않았다. 김명호는 땅에 주저앉아서 죽는다고 여전히 볼을 싸쥐고 돌아간다. 그 모양을 다시 쏘아보던 오성도는 끌어가라고 지시하였다. 그리고는 《고백서》에 다시 눈길을 묻은채 방금 마주섰던 인간에 대한 평가를 내려보았다.

첫인상으로 보면 어리숙하게도 보이지만 그의 행동거지에는 이미 틀에 박힌 위엄과 속대가 얼씬얼씬 비끼고있었다. 호인같은 얼굴에도 상대를 누르는 품격이 어려있고 짤막짤막 던지는 말에도 빈틈이 없고 사뭇 끌리는데가 있다. 그는 《고백서》를 읽을 때부터 상대가 정말 팔부짜리가 아니면 고도의 지성과 림기응변의 지혜를 가진 세련된 거물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오성도는 문득 신치호가 지금쯤 수사본부에 도착했을수 있다는 생각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신치호를 직접 북에 보내여 정시명이라는 존재에 대하여 신원을 조회해올것을 결심하고있었다.

오성도는 《팔부짜리》에 대한 결론을 기다리는 최운하에게 쪼아박듯 마디마디 력점을 찍으며 말하였다.

《저놈은 당신말대로 팔부가 아니면 거물이요. 주리를 틀어보시오. 당신들 손아귀가 약하단 말이요. 까마귀가 두루미흉내를 내서는 밥주머니를 채우지 못해.》

경찰은 경찰답게 방망이를 휘둘러대라는것이다.

오성도는 다소 어리벙벙해있는 최운하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주며 피맛을 한껏 즐겨보라고 부추기고는 문을 나섰다.

최운하가 따라나섰다.

《좋소. 그런데 그가 진짜 팔부짜리라면…》

《어쨌단 말이요?》 오성도가 역증을 냈다.

상관의 위세에 기가 죽어있던 최운하는 짐승의 이발처럼 사납게 삐져나온 이발을 드러내며 벌쭉거렸다.

《좋아요.》

최운하는 느닷없이 너털웃음을 터치였다. 놈은 하루라도 피를 보지 않고서는 잠자리에 들어서도 쉬이 잠을 청하지 못하는 야수였다.

오성도와 최운하의 말 한마디에 하루에 열명이라도 병신이 될수 있고 교수대에 오를수 있다. 리승만의 독재지반을 지켜선 1급파수군들인 두 교형리들은 이제 즐기게 될 피의 란무를 생각하며 야릇한 눈길을 주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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